아르망스 세계문학의 숲 52
스탕달 지음, 임미경 옮김 / 시공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어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마련한 양조위 특별전을 보고 왔다. 영화 <무간도> 상영 뒤 양조위 배우가 직접 무대에 올라온 것이다. 내 살아 생전에 양조위 배우님을 직접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감격했고, 감격해서인지 GV 진행 내내 영상을 찍는 내 손이 떨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어제 처음 알았다. 내게 수전증이 있다는 사실을.


내게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설레고 떨리고 보고 싶고. 그래서 알라딘에 자랑해야 하는데 아이클라우드로 사진이랑 동영상이랑 못 빼서 얼마나 화딱지가 나던지!! 어쨌든 <의천도룡기> 86년 버전을 보고 양조위 배우의 눈빛에 빠졌는데, 이번 부국제에 그가 온다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할만큼 최선을 다해 티켓팅을 했고, 무간도를 봤고, 오픈 토크를 봤다. 만세!!! 그리고 사람들한테 자랑했다. 양조위 봤다고. 물론 어린 친구들은 샹치의 아버지로만 알고, 무간도가 뭐예요? 하면서 무'관'도를 찾기도 했지만.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아르망스와 옥타브는 다르다. 사랑을 숨기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르망스의 경우 가난하기 때문에 옥타브와 결혼하면 주변의 질투와 뒷담화로 옥타브가 자신에 대한 사랑이 식을까봐 겁낸다고 하고, 옥타브는 치명적인 비밀을 안고 있다. 물론 다 읽을 때까지 그의 비밀을 알 수 없어 매우 답답하긴 했지만.(이 비밀은 스탕달이 친구인 메리메에게 보낸 편지에 드러난다.)


내가 만약 사랑을 숨겨야 한다면, 너무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숨겨야 한다면 어떻게 했을까. 감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데, 어떻게 숨길 수 있을까. <좁은문>의 알리사처럼 매일 신에게 기도할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용기를 주소서." 아니면 <클레브 공작부인>의 샤르트르 양처럼 계속 도망쳐야 할까. 하지만 그들의 결말은 어떠했는가. 사람이 터질 것처럼 강렬한 감정을, 그것이 사랑이든 분노이든 어떤 것이든 계속 억누르고 숨기려고 하면 결말은 뻔하다.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거나. 그렇지 않겠는가. 심지어 그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갓 넘긴 20대가 아니던가.


'1827년 파리의 어느 살롱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이 책에는 파리의 귀족 사회의 오만함과 속물 근성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도망 갔다 파리로 돌아 온 드 말리베르 후작과 후작 부인, 아들인 옥타브는 재산도 많이 잃어 가난했으나 갑자기 배상법이 통과 되면서 2백만 프랑이라는 배상금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사교계에서 외부인,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던 옥타브는 일약 스타가 되고, 옥타브의 사촌누이인 아르망스는 속물이 된 것 같은 그를 경멸하게 된다. 돈과 권력에 일절 관심이 없던 옥타브는 그런 아르망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그러기 위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녀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상태다. 사랑하지만 사랑을 이룰 수 없기에 그들은 서로를 더욱 간절하게 사랑하고 절망적으로 이별을 만들려고 하는데... 


언제나 죽음을 갈망하는 옥타브는 찬란한 행복 가운데에서도 그 행복을 뒤엎을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는다. 아르망스가 세간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둘이 떠나는 것으로 자신에게 걸었던 속박을 풀 수 있다고 믿었다면, 옥타브는 보다 더 근본적인 자신만의 이유로 사랑을 거부한다. 


말을 할 수 없어서 말하지 않는 것이겠지. 처음부터 끝까지 둘은 자신안에 갇혀서 서로를 자신의 생각대로 바라본다. 어쩌면 둘은 환상을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대체 무슨 고귀한 신념을 이룰 거라고 그렇게 숨기고 삼키고 끝내 뱉어내지 못하는지. 삶은 살아야지, 죽은 채로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배상법이 통과되고 사교계에서 옥타브를 떠받들던 초반에, 아르망스의 눈길을 느낀 옥타브가 하원의원에게 경멸을 내보이는 장면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젊음이란 그런 것이구나, 2백만 프랑이든 무엇이든 그걸 보고 나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냥 웃고 말텐데. 사람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나 또한 어느 면에서는 모자란 구석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좋은 건 사실이니까. 그냥 적당히 하면 될텐데 말이다. 이런 나는 둥글어진 것일까, 속물이 된 것일까.


드 보니베 기사와 드 수비란 씨의 음모가 왜 그냥 사라졌을까. <위험한 관계>를 들먹였으면 왠지 드 보니베 기사의 추악함이나 드 수비란 씨의 비열함이 드러났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하긴 나는 알고 있으니까, 우리 독자들은 알고 있으니까 둘이 결국 좋게 끝나지는 않았을 거라 믿는다. 사람 성격이 어디 가나 말이지.

안녕, 영원히 안녕, 사랑하는 아르망스!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리라! - P192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하라 2022-10-10 0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의천도룡기는 양조위님 한국 팬분들의 다수가 빠져들고만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어요. 소설을 읽으면서도 양조위님의 장무기를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꼬마요정 2022-10-10 01:30   좋아요 2 | URL
그쵸 이하라님!! 정말 반할 수 밖에 없는 배우인 것 같아요 ㅎㅎㅎ 저도 무얼 보든 늘 양조위 배우님의 장무기가 떠오른답니다^^

청아 2022-10-10 1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르망스 읽으셨군요~♡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읽는내내 심리묘사에 감탄했던것 같아요!

양조위 이야기 넘 재밌습니다. 하...저라면 청심환이 필요했을거예요^^*

꼬마요정 2022-10-10 23:38   좋아요 2 | URL
답답하다못해 사리가 나올 지경이었어요. 세상에, 스탕달이 편지에 밝히지 않았다면 전 정말 옥타브를 이해할 수 없었을 거에요. 근데 그 심리묘사가 묘하게 저를 설득하긴 했어요. 그래, 그럴 수 있어. 에구 안타깝다 어쩌지. 답답해 으악 뭐 이렇게요 ㅎㅎㅎ

청심환… 생각도 안 나더라구요. 아무것도… ㅎㅎㅎ

프레이야 2022-10-10 11: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오픈토크까지!!
ㅋㅋ 수전증에 심장 벌렁거리는 소리 다 들리는 것 같아요.
많이 늙어 보였어요 티비에서 보니.
양조위도 늙는구나! ㅠㅠ
사진이랑 동영상 공유해 주세요 ^^

꼬마요정 2022-10-10 23:42   좋아요 3 | URL
무간도 끝나고 밥 먹고 잠시 방황하니까 어느새 오픈 토크 시간이더라구요. 그 날 센텀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ㅎㅎㅎ 옆 사람들은 들었을지도 몰라요 심장 소리, 손 떠는 소리… ㅎㅎㅎ 양조위는 나이 들어도 그 눈빛과 미소는 여전하더라구요. 너무 좋아요 ㅎㅎㅎ

사유원도 그렇고 gv도 그렇고 사진 빼다가 시간 다 갔어요ㅠㅠ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후기 써야 하는데ㅠㅠㅠㅠㅠ

scott 2022-10-10 1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정님 양조위 실물 보고 수전증이 ㅎㅎㅎ 저도 수년 전에 보고 화면 보다 훠얼씬 멋지고 목소리도 훠얼쒼 멋져서 깜놀했었습니다!^^

꼬마요정 2022-10-10 23:43   좋아요 2 | URL
gv 동영상 찍다가 손이 떨려서 화면이 계속 흔들…. 무슨 지진난 줄 알았네요 ㅎㅎㅎ 정말 화면보다 더 멋지고 목소리도 멋지고 그냥 다 멋집니다^^

바람돌이 2022-10-10 14: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양조위 직관한 눈 삽니다. ㅎㅎ
나이들수록 더 멋있어지는 배우잖아요. 악 저는 양조위 눈빛만 떠오리면 소름이 쫙 돋아요. 너무 좋아서.... ㅎㅎ

꼬마요정 2022-10-10 23:45   좋아요 3 | URL
제 눈은 팔 수 없어요. 이제 영원히 제 눈입니다 ㅎㅎㅎ 살아서 양조위 배우님을 직접 보다니요!! 이건 기적이에요 ㅎㅎㅎ

새파랑 2022-10-10 15: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아르망스ㅋ 읽은분들은 모두 답답함을 느낄거 같습니다 ㅎㅎ 그래도 정말 애정이 가는 작품이라는~!! 그리고 이렇게 양조위랑 연결되는군요 ^^

꼬마요정 2022-10-10 23:51   좋아요 3 | URL
아르망스는 답답한데 뭔가 마음이 가요. 둘이 상황도 안 좋은데다 그 마음이 안타까워서일까요. 스탕달이 마음의 작용이나 상태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급하게 양조위 배우님 보고 온 거 자랑하고 싶은데 가장 잘 어울리는 책 같지 않나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2-10-10 22: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양조위 배우를 직접 보고 오시다뇨!
상치에서조차 멋짐과 우아함이 뻗어 나오더라고요~~

꼬마요정 2022-10-10 23:54   좋아요 2 | URL
샹치 안 보고 싶었는데 양조위 배우님 때문에 봤거든요. 춤추는 것 같은 무예 겨루기나 그 눈빛은 잊을 수 없을 거에요. 다시 본 무간도는 또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아, 너무 좋습니다^^

scott 2022-10-11 0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댓글들이 넘 재밌어요 ㅎㅎ 양조위 눈빛 실물 영접한 요정님! 오래도록 기억을 ^^

꼬마요정 2022-10-11 23:18   좋아요 2 | URL
이렇게 다들 양조위 배우님을 좋아할 줄 몰랐어요 ㅎㅎ 아니, 사실 다들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 살포시 자랑을.. 흠흠. 정말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