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남편이 묻는다.

 

"투란도트에서 류는 어떤 역할이야?"

 

읭? 뜬금없이 왠 투란도트??

 

"류 죽어요."

 

놀란 남편, 눈이 뚱그레진다.

 

"죽는다고? 왜? 뭐하다가?"

 

"류는 칼라프 아버지 시녀인데, 칼라프를 사랑해서 이름을 말 안하려고 죽어요."

 

"...?"

 

그랬다. 남편은 투란도트 내용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여차저차 투란도트 줄거리 하며 류가 죽고도 나머지는 잘 먹고 잘 살았다 얘기하면서

 

푸치니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아름다운 투란도트, 하지만 남자를 혐오하고 그래서 남자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전혀 없는 사람.

 

비록 나라는 망했지만, 로열패밀리인 타타르 왕국의 잘 생기고 고귀한 왕자님 칼라프.

 

이야기는 이렇게 아름답고 잘 생긴 두 남녀가 우여곡절을 넘나 든 끝에

 

수많은 희생을 딛고 화해로 나아가 결국 둘은 행복하게 사는 걸로 마무리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비부인'도 그렇고, '투란도트'도 그렇고

 

푸치니는 여자를 좋아했다는데, 그가 생각하는 여자는 쵸쵸상이나 류처럼

 

아름답고, 순종적이고, 절개(?)가 있는 종족인가보다.

 

그러면 왜 그들을 죽이지?

 

아... 나비를 잃지 않기 위해 고정시키는 것처럼 그녀들이 가장 아름다울 때 죽여버려

 

영원히 간직하려는 건가...

 

 

두 여자와 한 남자의 구도는 선한 한 여자와 남자, 그리고 악한 여자.

 

푸치니 입장에서는 선한 자신과 악처, 그리고 애인들..쯤 될지도

 

굳이 한 쪽이 악하지 않더라도 어딘가 한 명에게 마음이 가기 마련인데,

 

투란도트를 보면,

 

류는 칼라프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칼라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더 나아가 이 잔혹한 공주와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여기서 나라를 재건할 목표를 갖고 있던 칼라프가 감정에 눈이 멀어 대의를 저버리고 모두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든 점은 부각되지 않는다.

 

남는 건... 모두의 목숨을 건 사랑 뿐.

 

칼라프도, 류도 모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랑을 한다.

 

그런데 투란도트는 왜 칼라프에게 마음을 열까?

 

로우링 공주의 원한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데, 온갖 왕과 왕자들이 목이 잘려나가는 것을 보고도 차갑게 돌아섰으면서, 그들도 목숨을 걸고 그녀를 사랑했는데, 오직 칼라프에게만 마음을 연 까닭은 무엇일까.

 

칼라프가 잘 생겨서...? 그러기엔 그 전에 잘 생긴 남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을텐데...

 

어쩌면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이성을 아예 몰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수수께끼를 맞추자 비로소 상대를 바라보고 그제서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제껏 남자는 다 강간범에 살인마인 줄 알았는데, 눈 앞에 있는 남자는 로우링 공주와 전혀 관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래도 인정할 수는 없었겠지. 십여 년을 지배해 온 생각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테니.

 

그래서 가진 권력을 동원하여 온 사람을 괴롭히고, 급기야는 죽게 만들기까지.

 

그런데, 그런 잔혹한 모습들을 보면서도 칼라프는 투란도트를 사랑한다.

 

어째서!!!! 예쁘니까?

 

정말로 궁금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을 때도 개츠비가 데이지를 사랑하는 이유를 모르겠던데, 여기서도 마찬가지.

 

예쁘니까? 혹은 사랑에는 이유가 없으니까? 

 

 

사랑에 빠지는 건, 이유가 없는 것이겠지.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좋아보이고, 그 사람이 보는 내가 어떨지 신경 쓰이고, 나를 좋아해주면 좋겠고. 그 사랑이 계속되는 시간 동안 세상 모든 기쁨, 모든 아픔, 모든 슬픔, 모든 외로움 다 끌어안았다가, 사랑에서 빠져나오게 되어버리면... 언제 그랬냐는듯 차갑게 돌아서버린다. 이유도 없이. 사랑이란 그런 것일테지.

 

그래서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이 정말로 행복해서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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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9-17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주의 잔혹한 면을 알면서도 사랑한다? 이거 팜므파탈에 매료된 남성의 심리상태와 비슷한 것 같은데요.. ㅎㅎㅎ

꼬마요정 2017-09-18 16:30   좋아요 0 | URL
정말 궁금합니다. 아무리 좋아해도 정나미 떨어지는 모습이 있을텐데, 저렇게 잔혹한데 어떻게 사랑에 의심 한 점이 없는걸까요?

cyrus 2017-09-18 19:07   좋아요 1 | URL
저 같으면 상대방이 난폭하고, 비뚤어진 성격임을 알아차리면, 그 사람과 멀리하려고 해요. 팜므 파탈에 빠진 남자는 상대방의 매력에 대한 판타지를 강하게 느껴요. 그래서 상대방의 부정적인 면을 봤는데도 못 떠나고 붙어있는 것 같습니다.

skarly 2017-09-19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쁜데 잔혹하기까지 하다구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죠 ㅎㅎ

꼬마요정 2017-09-19 15:40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잘 생겼지만 잔혹하다면 무섭거든요. 하지만 나쁜 남자를 좋아하고,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뭔가 엄청난 매력이 있나봐요~

skarly 2017-09-20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작품속에서 잔혹함은 윤리적 금기를 내팽겨칠 정도의 강력한 욕망, 열정으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초인적인 면모랄까요. 현실에서의 잔혹함은 좀 다른 얘기이긴합니다;

꼬마요정 2017-09-21 09:59   좋아요 0 | URL
그렇죠.. 현실과는 다른데 가끔 감정을 이입해서 상상하다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뭐 이렇게 되긴 합니다.^^; 투란도트... 매력적이에요..^^
 

이러고 자고 있다.

나는 이 모습을 보고 사진 찍기 바빴고,

찰칵찰칵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쩍벌 자세로 자는 녀석이 참 여유로워보인다.

지친 하루, 동생을 베개 삼아 누워 자니 좋으니?

아아.. 이런 게 삶이지.. 느긋함.. 좋은 낱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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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벽에 부딪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동, 서양을 가리지 않고, 시대를 뛰어넘는 이 느낌...

 

바로 '여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세라고나 할까.

 

온갖 놈팽이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어린 여자는 언제나 '순결'해야 한다는 그 끔찍한 올가미.

 

종족 번식이 어디 남자 유전자에만 콱 박혀 있는가?

 

알퐁스 도데의 '별'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건 당연한거지 아름다운 게 아니라.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보면, 욕정이 망쳐놓은 인생이 도대체 몇이던가.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고, 일제가 조선인, 중국인 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행위들은 모두 비판의 여지가 없는데, 어째서 성노예로 끌려가신 분들은 그렇게 모욕받아야 하는가. 나라가, 그 대단하신 위정자들이 그녀들을 지켜주지 못해놓고서는.

 

딩링의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도 전전이 무슨 잘못인가..

 

'성'과 관련되면, 어째서 피해자의 잘못을 이야기 하는걸까?

 

'로미오와 줄리엣'에게도 그런 잣대를 들이대보시지.

 

춘향이는 왜, 이몽룡에게 순정을 바쳤는데 욕 안 해?

 

 

 

'파우스트'에서 그레첸은 파우스트 한 사람만을 사랑했지만 손가락질 받았고,

 

 

 

'돈키호테'에 나오는 그 무수한 이야기들 속 여자들... 그녀들은 사랑에 빠져 애인과 도망쳤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사람들의 멸시와 수군거림이었다. 목동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 레안드라는 자신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화자는 젊은이가 그토록 자제했다는 게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남자는 참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만 성에 있어서만큼은 본능이 우선한다니, 이 무슨 멍멍이 소리인지. 그 뿐인가, 사랑을 받아주면 받아줬다고 난리, 안 받아주면 안 받아줬다고 난리.. 마르셀라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서 목동이 되었더니 그리소스토모의 사랑을 안 받아줬다고 온갖 비난을 퍼부었지. 당연한 일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해야 했고...

 

 

 

 

'햄릿'에서도 햄릿은 오필리어에게 수녀원에나 가라고 소리친다. 한참 어리고 어여쁜 소녀를 꼬드길 때는 별이나 태양, 진실을 의심한다해도 자신의 사랑은 의심하지 말라고 큰소리 쳐놓고 아무 설명 없이 그녀를 모욕했지.

 

헨리 제임스의 '데이지 밀러'에서도 윈터본은 데이지를 좋아하면서도 주변의 소문과 그녀의 자유분방한 행동을 보고 그녀가 방탕하다고 믿고 상처를 준다.

 

그 외에도 무슨 책을 읽든 언제나 성 결정권이 남자에게 부여된 특권인 듯 해서 참 불편하다.

 

옛날에는 그랬어..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그래서 '천일야화'가 참 좋다.

 

나름 복수라고나 할까.

 

마신이 상자에 꽁꽁 싸매서 바다 깊숙이 숨겨두어도, 그녀는 마신이 잠들 때면 다른 남자들을 유혹한다. 마신 엿 먹이려고. 힘이 약해 마신에게서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그녀 나름대로 복수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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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9-13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한 여직원과 점심을 같이했는데
꼬마요정님의 의견과 비슷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네요.
남녀를 가르지 않는 인간보편의 성적 평등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네요^^

꼬마요정 2017-09-13 18:16   좋아요 1 | URL
네.. 책을 읽다보니 자꾸 거슬리더라구요.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구요.
계급에서 오는 불평등도 거슬리지만, 어떻게 한결같이 ‘여성의 성‘에는 요상한 잣대를 들이대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분이 나도 둘이 났지, 한 명만 났나요.. 그런데 남자는 으시대며 떠나고 여자는 남아서 돌이나 맞고.. 언제쯤 성이 평등해질지 생각해봅니다.^^

cyrus 2017-09-13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고전을 읽을 때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성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됩니다. ‘옛날이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은 소극적인 분석입니다.

꼬마요정 2017-09-13 18:18   좋아요 0 | URL
‘고전‘이라고 무조건 옳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니까요. 음.. 그래.. 그랬지.. 이렇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보다 더 많은 책들에서도 나타나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정말 무섭더라구요. 이렇게 책을 읽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들이 스며들게 될테니까요.
 

 

얼마 전 <뮤지컬 레베카>를 보고 왔다.

 

일단, 엄막심.. 수트 입은 모습에 숨이 탁 막혀 잠시 진공 상태에 빠졌더랬다. 잘 생긴 건 알고 있었지만, 막심이란 캐릭터가 이렇게 잘 생겼어요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인 줄은 몰랐다. 책에서 본 막심의 느낌과 비슷해서 몰입하기 좋았다. 청혼할 때 더블자켓 입었을 땐 농담 안 해... 그러더니, 다음엔 빽바지 입었을 땐 농담 안 한다고.. 나윤 호퍼가 손등에 강제 키스 하니까... 아세톤으로 지워야겠다고.. 하아.. 이 깨알 같고 능청스러운 애드립이라니. '신이여'와 '칼날송' 할 때의 그 표정, 몸짓... 완벽했다. 특히 레베카 연기... 섹시해...

 

김선영 댄버스... 온 몸으로 카리스마랑 아우라를 풍기는데, 너무 놀랐고 좋았다. 처음 이히의 장갑을 주워주는 장면부터 손동작과 내리까는 목소리, 비웃음까지 압도적이었다.

신영숙 댄버스... 확실히 동작이 크고 표정이 풍부했다. 당연히 카리스마와 아우라는 기본이고, 멋졌다.

 

그런데, 책을 떠올리며 극을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막심의 말대로라면,

 

레베카는 왜 막심을 그렇게 증오했을까?, 정말 레베카는 나쁜 년이었을까? 였다.

 

레베카는 죽고 없다. 레베카는 자신을 변호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녀만을 알 뿐이다.

 

일단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한다. 레베카는 우아하고 지적이며 아름답다고.

 

그런데 막심은 말한다. 그녀는 뻔뻔하고, 맨덜리 모두를 속였다고.

 

1. 막심의 말이 사실이라면.

레베카는 왜 막심을 그렇게까지 미워했을까?

 

손에 피를 묻히게 하고, 무서운 혐의가 가도록 만들고, 결국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명예를 실추시키기까지. 완벽했다. 막심이 그동안 쌓아올린 것들은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진실이든 거짓이든 다 무너졌다. 모두에게 비춰진 모습은 완벽한 귀족 부부의 모습. 그러나 드러난 사실은 불화로 가득했던 결혼 생활. 결국 막심은 자신의 영지에서 살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된다. 뮤지컬에서야 댄버스가 불을 질렀지만, 책에서는 누가 지른지 알지 못한다. 명예와 자존심에 금이 간 막심이 스스로 불을 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레베카는 진정으로 막심을 잘 알고 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레베카는 막심을 사랑했을까? 하지만 막심은 맨덜리나 가문에만 관심이 있을 뿐, 모두가 칭송하고 사랑하는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랑이 증오로 변했고,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없애버리고 싶었을까.

 

아니면, 자신은 여자로 태어나서 능력을 펼치지도 못하고, 아내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막심은 남자로 태어나 영지도 물려받고, 야망도 실현할 수 있는데 가문을 위한 책임감에 짓눌려 힘들어 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을까. 질투도 하고. 내가 막심이었다면 많은 것을 이루었을텐데, 왜 막심은 다 가져놓고 저렇게 소심할까. 거기다 죽음마저 자기 생각과 다르자 증오심, 질투심이 폭발해서 저런 계략을 꾸민 걸지도.

 

2. 과연 막심의 말이 사실일까?

막심은 레베카가 부정하고 나쁜 여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과연 사실일까? 레베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건 다름 아닌 막심이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있지도 않는 레베카의 행실을 꾸며낸 건 아닐까?

 

레베카는 모두에게 완벽했던 여자였다. 20년 정도를 그렇게 가면을 쓰고 같이 생활하던 사람들을 깜쪽같이 속일 수 있을까. 책에서는 프랭크나 가일스 등 가까운 지인들에게까지 손을 뻗쳤다고 했는데, 그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라면 오히려 남자들이 탐내지 않았을까. 그래놓고 거절 당하자, 앙심을 품고 그 여자가 유혹한거야.. 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온 걸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막심의 아내인 레베카를 여자로 마음에 품었다면, 그 죄책감이 그녀를 나쁜 년으로 몰고 가도록, 자신을 정당화한 건지도 모른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고, 매력적이고, 명석하고... 그런 그녀가 누구보다 고고했던 건 당연할테지. 그래서 오히려 드 윈터 가문은 그녀를 질시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옆을 지키던 댄버스 부인. 그녀는 정말로 레베카와 마음을 나누는 사이였을까?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레베카를, 댄버스 부인은 존경하고 사랑했을거다. 그리고 같이 맨덜리 저택으로 왔을 때 이런 주인을 모신다는 자부심까지 더해져서 아주 자랑스러웠을테지. 그래서 맹목적으로 그녀를 섬겼고, 어쩌면 자신이 그녀와 모든 것을 나눈다고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레베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진실을, 가장 가깝다고 믿었는데 자신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는 데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잭 파벨은 하는 행동으로 보아선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남자니까. 그녀가 그와 놀아났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레베카는 사촌이라 불쌍해서, 혹은 자기 사촌이 그렇게 사는 게 위신에 안 맞다고 생각해서 돈을 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가 죽고 나니 파벨은 저렇게 떠벌리면서 한 몫 챙기려는 걸지도.

 

 

레베카는 죽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어볼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낸 레베카를 이야기한다.

 

과연 그녀는 정말 어떤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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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드라마 <하백의 신부>를 보던 중,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그 장면이 나온 사진이 있을까 포털을 뒤져봐도... 없네.. 없어...

 

그래,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장면은..

 

일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 토요일 아침을 먹고 어디 갈까? 하는 하백에게 소아는 다른 일을 하자고 한다.

 

다름 아닌 대청소!!

 

구석 구석 먼지를 털고 물걸레로 닦아내면서 둘은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몸을 부딪쳐가며 청소를 한다.

 

분명 다른 곳에서 시작했는데, 자석에 끌리듯 서로를 만나는 거다.

 

아...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닥터 지바고>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유리와 라라가 오두막집에서 도피 생활을 할 때... 그 작은 공간에서 서로의 몸이 닿을 때마다 사랑을 나눴다는...

 

다른 어떤 장면보다도 로맨틱하게 다가왔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사랑을 나누고 그러지는 않는데, 그 묘한 떨림과 설레임이 막 다가오는거다.

 

 

나는 당장 책을 펼치고 싶었다. 그 대목을 읽어야했다. 이 연애감정이 날 행복하게 했고, 날 너무나 뒤흔들었고, 지금 읽으면 유리와 라라의 사랑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이 없다.. 책이 없어?

 

친정에 두고 온 것이다.. 아.. 그제서야 기억이 떠올랐다.

 

울 집 통통이가... 내 책에... 몹쓸 짓을 한 것을...

 

그래서 난 결단을 내렸다.

 

장바구니에 <닥터 지바고>를 담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도 책을 살 수 있구나..라는 걸 배웠다.

 

<하백의 신부>랑 <닥터 지바고>랑 무슨 상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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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16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을 만한 <의사 지바고> 번역본이 없군요. 박형규 역(열린책들), 안정효 역(고려원)은 절판됐고, 남은 건 동서문화사뿐입니다. 열린책들 번역본이 별로라는 평이 있던데, 개역판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꼬마요정 2017-08-16 17: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늘 번역이 고민입니다. 어느 번역자의 책을 사야하는지.. 하도 옛날에 읽어서 범우사 번역은 생각도 안납니다. ㅎㅎ 동서문화사에서 올 초에 새로 냈던데, 오탈자나 이런 거 좀 솎아냈는지 궁금하네요. 일단 빨리 읽고 싶어요~~ ㅎㅎㅎ 혁명이나 가슴 아픈 현실 가운데서도 꽃 피운,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한 몸 불사른 그 사랑을요. 그런데 왜 저한테 이런 이미지로 남아 있을까요.. 이 책이...

다락방 2017-08-1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닥터 지바고에 그런 장면이 나온단 말예요? 몸이 닿을때마다 사랑을 나누는? 오오... 완전 제 스타일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런데 읽을만한 게 없다고요? (시무룩)

꼬마요정 2017-08-16 22:38   좋아요 0 | URL
후훗 다락방님 좋아하실 장면이네요 ㅎㅎ 물론 유리의 그 방관자적 태도가 답답할지도 몰라요. 제가 동서문화사 꺼 읽고 번역 괜찮은지 알려드릴게요 ㅎㅎ

페크pek0501 2017-08-1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왼쪽 책 닥터지바고를 사 놓고 못 읽었어요. 하지만 영화로 오래전에 봤고
최근에 팟캐스트로 들어서 내용은 대충 알고 있지요. 꼭 정독하리라 마음먹습니다. 지금...

꼬마요정 2018-02-04 18:58   좋아요 0 | URL
넵 재미있습니다. 저는 아직 영화를 못 봐서 유리와 라라의 이미지가 제 맘대로랍니다. 영화 보신 분들은 인상이 굉장히 강렬하게 남았나 보더라구요. 마치 안나 카레니나가 소피 마르소인 것처럼요. 라라를 소피 마르소가 했어도 잘 어울렸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