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벽에 부딪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동, 서양을 가리지 않고, 시대를 뛰어넘는 이 느낌...
바로 '여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세라고나 할까.
온갖 놈팽이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어린 여자는 언제나 '순결'해야 한다는 그 끔찍한 올가미.
종족 번식이 어디 남자 유전자에만 콱 박혀 있는가?
알퐁스 도데의 '별'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건 당연한거지 아름다운 게 아니라.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보면, 욕정이 망쳐놓은 인생이 도대체 몇이던가.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고, 일제가 조선인, 중국인 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행위들은 모두 비판의 여지가 없는데, 어째서 성노예로 끌려가신 분들은 그렇게 모욕받아야 하는가. 나라가, 그 대단하신 위정자들이 그녀들을 지켜주지 못해놓고서는.
딩링의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도 전전이 무슨 잘못인가..
'성'과 관련되면, 어째서 피해자의 잘못을 이야기 하는걸까?
'로미오와 줄리엣'에게도 그런 잣대를 들이대보시지.
춘향이는 왜, 이몽룡에게 순정을 바쳤는데 욕 안 해?
'파우스트'에서 그레첸은 파우스트 한 사람만을 사랑했지만 손가락질 받았고,
'돈키호테'에 나오는 그 무수한 이야기들 속 여자들... 그녀들은 사랑에 빠져 애인과 도망쳤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사람들의 멸시와 수군거림이었다. 목동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 레안드라는 자신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화자는 젊은이가 그토록 자제했다는 게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남자는 참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만 성에 있어서만큼은 본능이 우선한다니, 이 무슨 멍멍이 소리인지. 그 뿐인가, 사랑을 받아주면 받아줬다고 난리, 안 받아주면 안 받아줬다고 난리.. 마르셀라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서 목동이 되었더니 그리소스토모의 사랑을 안 받아줬다고 온갖 비난을 퍼부었지. 당연한 일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해야 했고...
'햄릿'에서도 햄릿은 오필리어에게 수녀원에나 가라고 소리친다. 한참 어리고 어여쁜 소녀를 꼬드길 때는 별이나 태양, 진실을 의심한다해도 자신의 사랑은 의심하지 말라고 큰소리 쳐놓고 아무 설명 없이 그녀를 모욕했지.
헨리 제임스의 '데이지 밀러'에서도 윈터본은 데이지를 좋아하면서도 주변의 소문과 그녀의 자유분방한 행동을 보고 그녀가 방탕하다고 믿고 상처를 준다.
그 외에도 무슨 책을 읽든 언제나 성 결정권이 남자에게 부여된 특권인 듯 해서 참 불편하다.
옛날에는 그랬어..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그래서 '천일야화'가 참 좋다.
나름 복수라고나 할까.
마신이 상자에 꽁꽁 싸매서 바다 깊숙이 숨겨두어도, 그녀는 마신이 잠들 때면 다른 남자들을 유혹한다. 마신 엿 먹이려고. 힘이 약해 마신에게서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그녀 나름대로 복수하면서 기회를 엿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