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3 - 상, 하>을 리뷰해주세요
밀레니엄 3 - 하 -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완결 밀레니엄 (아르테)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박현용 옮김 / 아르테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리스베트 살란데르. 이 책을 받기 전까지 전혀 듣지도, 알지도 못한 이름. 하지만 이 이름이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게 될 줄은 짐작조차 못했다. 밀레니엄 1, 2를 읽지 못해서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사건은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앞 권들을 읽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아니 이 책을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지 아쉬울 뿐이다. 책을 든 순간부터 덮을 때까지 난 이 이야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덮고 나서도 계속 떠오른다.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이야기가.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국가가 가질 수 있는 권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국가든 기업이든 결국 사람이 이끄는 것일테지만, 언제나 한계를 모르고 질주하던 권력자들은 처참하게 몰락했다. 불에 뛰어든 부나방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옳고 정당한 일'을 위해 남의 인생을 파괴하는 걸 서슴지 않는다. 파괴된 인생을 사는 이들의 고통 따위 그들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의 인생을 오리고 붙여서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끔 온갖 불법적인 행동을 다한다. 심지어 살인까지도. 

그들의 조직이 무너진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숨은 권력 집단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으니까. 진실을 가리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려지지 않는 게 진실이니까.  

사람이 국민들을 위해 조직을 만들었다. 어느샌가 조직은 거대한 생물이 되어 사람을 잡아먹는다. 사람은 없고 '조직의 일원'만 있을 뿐이다. 사람을 위해 만든 조직이 사람을 괴롭히고 있었다. 조직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이용하고, 버린다. 조직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는 조직을 지키기 위함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외친다.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국가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사람보다 국가가 우선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안전하고 풍족하게 살기 위해 국가를 만들었는데, 어느새 권력을 장악하고 그 권력을 휘두르는 집단이 국가가 되었다면 그 국가는 정당성을 잃지 않을까. 지금 '어느'나라처럼.  

이 책이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러시아 첩보원이니 이중 스파이니 국가 비밀조직이니 하는 것들이 아주 흥미진진하게 나오지만, 미카엘 블롬크비스크의 말처럼 여성에 대한 일상적 폭력이야말로 이 책을 꿰뚫는 일관된 주제가 아닐까. 앞 권을 읽지 못해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3권에 나온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살라첸코의 무도함과 잔인함 때문에 고통받은 리스베트와 그녀의 어머니. 결국 리스베트의 어머니는 살라첸코의 거듭된 폭력으로 뇌손상을 입고 죽어버린다. 일상적 폭력에 노출된 리스베트는 어린 시절부터 국가 공권력에 호소했지만 살라첸코가 더 소중하다는 국가의 판단에 오히려 피해자인 그녀가 희생된다. 정신병원에 감금당하고, 후견인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식으로 말이다. 과연 국가가 시민인 그녀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 것일까. 

여기서 언론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국가 비밀조직인 '섹션'의 중상모략으로 언론은 리스베트를 사탄주의적 레즈비언이자 정신분열증 환자로 매도한다. 정보를 선별하여 언론사에 흘리는 '섹션'을 보면서 섬뜩했다. 미디어법으로 한창 시끄러운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아 더 가슴이 철렁했다. 국가와 언론이 힘을 합치면 사람 하나 매도해서 죽음으로 몰고 가는 건 일도 아니다. 

언론사 밀레니엄의 미카엘 블롬크비스크는 양심세력의 대표이자 리스베트의 든든한 후원자이다. 그는 리스베트의 누명을 벗기려 노력하는 동시에 국가 비밀조직인 썩어빠진 '섹션'의 불법적인 행동을 파헤친다. 미카엘이 기자라는 사실은 아주 다행스러운 장치였다. 언론과 국가 조직이 아무리 썩어도 언제나 양심세력은 있기 마련이니까. 미카엘은 적극적으로 비상식과 부조리와 초헌법적 행위들을 파고 들었다.  

이 책의 백미는 리스베트의 변호인 아니카 자니니의 법정 공방이라고 할 수 있다. 폭풍처럼 휘몰아쳐 하권 후반부에 왔을 때 나는 전율했다. 텔레보리안을 시작으로 자니니는 반격했다. 그 깔끔한 반박이라니. 아아.. 진실은 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 책과 같은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식민통치와 분단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가 우리를 난도질하고 있다. 우리는 죄없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한 양민과 친일 매국노 행위를 숨기기에 바쁜 위정자와 먹고 사는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시민과 그래도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야할 곳을 잃고 떠돌고만 있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양심과 상식을 버린 이들 때문에 더 더욱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러나 진정 역사는 심판을 할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제대로 찾아 떠날 것임을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건, 사랑이었네>를 리뷰해주세요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활짝 웃는 얼굴이 아기같은 한비야님, 책 표지가 훤~하다 생각하고 넘겼는데.. 사인과 함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멘트가 자필로 적혀있었다. 기쁘고 또 기쁜 이 마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리라. 기쁜만큼 읽는 속도도 빨라졌고, 급속도로 비야님의 매력에 풍덩 빠지게 되었다.

일기형식으로 적혀있는 이 책은 에세이다. 에세이는 무엇보다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 책은 나부터가 98%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일단 누구나 줄줄 읽어내려갈 수 있도록 편안하고 쉬운 글로 적혀있다. 그리고 한국사람 대부분이 걱정하는 많은 것들(취업, 성공, 성적, 진로 등)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가며 차분히 상담해준다. 마치 옆집 언니가 나의 고민을 들어주는 듯한 느낌이 자꾸 들어 나름 신기했던 부분이다. 

또한 월드비전에서 일할 때 겪었던 많은 일화들이 나에게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물론 간접경험이지만, 구호활동 현장의 모습을 이렇게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니! 해외여행 경험이라곤 중국 다녀온 것밖에 없는 나에게, 이 책은 많은 호기심과 모험심을 불태워줬다. 특히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나라에 대한 것일수록 내 마음은 더욱 불타올랐다. 비야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여성할례에 관한 것, 물 부족 국가에서 겪는 고통, 전쟁으로 인한 폐해 등.. 어떻게든 후원금을 보내고 싶어 당장 내 계좌의 잔고를 확인해보았다 .

이것 외에도 독특한 것이 비야님은 책에서 책을 추천해 주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100권읽기에 도전했던 것이 지금도 남아 1년에 꼭 100권은 읽는다는 비야님. 구호활동에 이리저리 정신이 없는데도 책 읽는 시간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놓고 있다. 추천책 24권 중에는 읽은 것도 있고, 지루해서 읽다 던져버린 것도 있었다. 나는, 어느새, 비야님이 가르쳐 준대로 100권 목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이 정도 실천력이면 성공한 책 아니겠는가. 책도 성공, 나도 성공 일석이조다. 그리고 적지 않은 나이에 또 다시 세상에 풍덩 뛰어든 비야님. 그 도전정신은 이 나라 청년들이 꼭 배워야 할 부분이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끝장날 때까지 도전하는 것. 멋있고 존경스러웠다. 

앞에서 빠뜨린 2%는 바로 종교부분이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가 아닌 나로서는 하느님 이야기와 신의 부름, 신의 대답 부분에서는 약간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모든 종교에 반감이 없고 오히려 다른 종교의 절대자에게서도 깨달음을 구하는 비야님의 모습은 과연 참다운 종교인다웠다.  

이 책은, 내가 미래에 아이를 낳으면 우리아이에게 꼭 추천해 줄 것이다. 지금도 여기저기 추천하고 다니기는 하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쉿, 조용히!>를 리뷰해주세요
쉿, 조용히! - 풋내기 사서의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
스콧 더글러스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2년 남짓, 우연히 발을 들여놓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의 성장기록이라고나 할까. 있었던 일들에 대해 때론 불평도 하고, 때론 감동도 받으면서 풀어놓은 글이다. 겨우 23살에 가슴 빵빵한 여자의 광고를 보다 발견한 사서 보조원 구인 광고. 인생은 때때로 요상한 방법으로 삶을 인도하는가 보다. 

우리 집 근처에도 도서관이 하나 있다. 도서관에서 더 들어가면 화장터인데, 그렇다고 으스스하다거나 무섭지 않다. 큰 도로도 있고, 학교도 있고, 크게 번화하지도 않으면서 조용하지도 않은 그런 곳. 물론 더 가까운 곳에 학교 도서관이 있지만, 왠지 이 책과 어울리는 도서관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는 곳이어야 할 것 같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있고, 주로 교복을 입은 중, 고등학생들이 소란스럽게 하는 곳. 안경을 쓴 사서는 그런 애들을 무심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러고보니 왜 사서들은 안경을 쓰고 있을까. 이제껏 내가 가 본 도서관은 우리집 옆에 있는 도서관과 학교 도서관 뿐이지만, 그곳의 여자 사서는 꼭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나도 한 때 사서라는 직업을 동경했다. 건물 전체에 가득한 책 속에 파묻혀 일하는 건 아주 황홀한 일일거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직업이 되어버리면 즐거움은 줄어드는 것인가. 책 초반에 나오듯이 늘 책과 함께 하는 사서이기에 오히려 쉬는 시간에는 책과 관련없는 일을 한다고.. 

내가 가진 사서에 대한 이미지도 저자와 같았다. 모든 걸 다 알고 있고, 근엄하고, 조금은 무섭다고나 할까. 조용한 도서관에 약간의 소음이라도 내면 그 근엄한 얼굴을 들고 눈빛 한 번 쏘면 어찌나 간이 콩닥거리던지.. 이 책을 읽고 사서에 대한 내 편견(?)은 와르르 무너졌지만, 어릴 적 그 눈빛 만큼은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사실, 그렇게 재미나고 신나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었다. 하루 하루 비슷한 일상 속에서 저자는 정말 아무 목적 없이 그저 있어보이고 싶었을 뿐이었고, 나는 딱히 저자의 글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씩 몰입 되었다. 음, 주로 이상한 사람들과 무서운 십대 이야기이긴 했지만. (훈훈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왠지 자극적인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는 듯.) 저자의 연애 이야기도 좀 더 넣었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보고, 여기나 거기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총기소지가 불법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심심할 때, 도서관이 그리울 때 꺼내보기 좋은 책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각주 읽는 재미도 제법 괜찮다는 말도 하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9-07-15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저도 읽을 예정입니다..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꿈이 만화방 주인-> 도서관 관장-> 과학자-> 기타 등등으로
바뀌곤 했거든요. 하하


꼬마요정 2009-07-15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술술 읽힙니다. 일상다반사라고나 할까요..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이 일, 저 일들을 적어놓았는데, 사실 거기도 별 거 아니더라구요~히힛
사람 사는데는 다 똑같나봐요~~^^
 
<도가니>를 리뷰해주세요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분무기에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무진의 안개는 지독했다. 마치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려고 안개의 장막을 치는 듯 했다. 자애학원. 그 곳의 소름끼치도록 처참한 행위를 감추려고 하듯이. 

강인호는 평범한 사람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그가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양심을 외쳤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불의를 보면 정의를 외치게 되는걸까. 그는 처음부터 뜻을 품고 정의를 외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적당히 자기합리화를 하고, 적당히 먹고 살려고 하고, 적당히 적당히... 먹고 살기 바빴던 그는 어지간한 죄라면 차라리 눈을 감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저지르기엔 너무나 참혹하고 저열한 범죄 앞에서 눈을 감기엔 그는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가진 자들의 침묵. 그것은 자애학원의 그들이 저지른 죄 만큼이나 더러웠다. 방금 옷을 벗은 황변호사는 판사 시절 청렴했다 하나 결국 가장 양심적이고 상식적이어야 할 사건에서 침묵했다. 자애학원의 그들은 아예 짐승들이며, 장경사는 눈 먼 양심을 갖고 있는 하이에나에 불과했다. 최수희나 시청 관계자들, 영광제일교회 사람들, 무진여고 출신 산부인과 의사 등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 건지도 모르는 저능아들이었다. 그런 저능아들이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던 수많은 아이들을 유린했다. 치욕적인 방법으로. 같은 인간이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잔인하게. 

무진은 작은 대한민국이었다. 자애학원의 성폭력 사건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연줄과 인맥의 승리. 경제만 살리면 전과 14범일지라도 대통령을 해 먹을 수 있는 부조리. 작가 공지영은 현실적인 결말로 우리 사회의 부적절함과 불의를 폭로했다. 정의를 위해 싸우던 강인호는 오히려 나쁜 놈으로 몰렸다. 정작 진짜 큰 죄인은 웃고 있는데, 그 죄를 고발한 사람이 예전에 지었던 죄로 인해 진짜 죄인보다 더 나쁜 죄인이 되어버렸다.  

역시나 등장하는 빨갱이라는 단어. 노동자의 권리, 농인들의 권리,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유를 외치면 빨갱이가 되는거다. 전교조라서 빨갱이가 되고, 옛제자와의 관계로 인해 성범죄자가 되어 버린 강인호. 무진의 안개가 진실은 가려버린 듯, 그렇게 자애학원의 그들의 죄에서 강인호의 죄로 옮겨가는 것이 끔찍하게 현실적이어서 소름이 돋았다. 

돈보다 소중한 건 없는걸까. 자신들이 구축한 성에 갇혀 그들의 성이 아닌 성의 그들이 되어버린 기득권층..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이미 그들이 만든 카르텔 속의 나사일 뿐이다. 새장을 부수지 않으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다. 벌써 날개는 퇴화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지방이 잔뜩 끼인 뱃살 때문에 더 이상 날 수 없을지도. 아니면 나는 법을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진의 안개는 그렇게 지독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세의 사랑>을 리뷰해주세요
헤세의 사랑 -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헤르만 헤세 : 사랑, 예술 그리고 인생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켈스 엮음, 이재원 옮김 / 그책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무척 난감했다. 헤르만 헤세.. 그는 유명한 사람이고, 나는 그의 책을 단 세권 밖에 읽지 못했다. 간간이 내가 읽었던 책의 구절이 나올때면 마음이 편했으나, 읽지 않았던 작품의 문구나 사적인 편지의 글귀가 나올 때면 불편했다. 이 작은 책, 한 페이지에 나온 한 두 문장으로 뭔가를 알 수 있을까.. 내가 판단을 내리기에는 모자라지 않을까.. 잔뜩 소심해져서 문장 하나 하나 단어 하나 하나 읽어내렸다. 

그러나 내 생각은 기우였다. 헤세는 줄기차게 외쳤다.  

사랑하자. 사랑은 행복이다. 사랑은 영혼의 울림이다. 사랑은 현명한 욕망이다. 사랑은 타락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다. 사랑은 예술이다. 사랑은 창조다. 사랑은 유머다. 사랑은 음악이다. 

헤르만 헤세는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신에 대한 사랑이든, 남녀 간의 사랑이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든 상관없었다. 오로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사랑이야말로 지고지순의 진리라고 믿었다. 헤세는 사랑 그 자체로서의 사랑을 믿었던 거다. 

헤세는 결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삶을 대가로 줘야한다 생각한 것 같다. 그런 그는 3번이나 결혼했다. 그 결혼 생활을 통해 얻은 결론이 그렇다면 좀 아쉽다. 결혼을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삶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동반자이자 지지자를 얻는다고 말하고 싶을 뿐.  

가장 감명깊게 읽은 구절.. 내 가슴을 때리던 글귀는 이거였다. 마음이 짠해지면서 아련해지는 건 왜인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생기 넘치고 발랄했던 시기가 다른 사람의 기억 속 어딘가에 여전히 계속 살아있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일은 언제나 행복입니다. 

                                                         - 에르나 프랭켈에게 보낸 편지, 1961년 1월 

 
   

헤세의 책 중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은 『지와 사랑』이다. 내가 읽은 책의 제목은 이거고, 원제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이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어떤 감정에 전율이 일었다. 그 땐 그랬다.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그 때만의 감정. 다시금 그 때의 감정을 상기시키며 조용히 책장을 덮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