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혹은...

    늘, 혹은 - 조병화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 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 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 노을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목련

      류시화

            목련을 습관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 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

            목련나무 줄기는 뿌리로부터 꽃물을 밀어 올리고

            나는 또 서러운 눈물을 땅에 심었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나는 버릴 수 있었지만

            차마 나를 버리진 못했다

             

            목련이 필 때쯤이면

            내 병은 습관적으로 깊어지고

            꿈에서마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흰 새의 날개들이 나무를 떠나듯

            그렇게 목련의 흰 꽃잎이들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보르헤스의 정원---여자들


              보르헤스의 정원 -- 여자들
              詩:이경림






              양털 카펫이 된 여자가 방안 가득 깔려 있다
              탁자가 도니 여자 앞에 그는 의자가 된 여자를 깔고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옷걸이가 된 여자의 두개골을 덮으며 그의 옷이
              걸려있다 커튼이 된 여자가 주름을 드리우며 쳐 있고
              액자가 된 여자, 알 수 없는 색깔들로 뒤범벅이 된 채
              걸려있다 텔레비젼이 된 여자가 쉬임없이 푸르스름한 말들을
              중얼거리며 켜져 있다 책장이 된 여자 속의 수많은 서책들
              먼지를 쓰고 있다 일제히 갈피가 되어 일렬 횡대로


              그는 천천히 일어서서 침대로 간다 침대가 된 여자
              위에 벌렁 눕는다 베개가 된 여자를 베고 홑이불이 된
              여자를 덮는다 담배가 된 여자에 불을 붙인다
              바알갛게 타는 그녀를 천천히 들이마신다
              연기가 된 여자, 허공에서 맴돌다 흩어진다
              그는 피곤하다는 듯 전등이 된 여자를 끈다


              그의 잠 밖으로 의자가 걸어나온다
              탁자가 걸어 나온다 침대가,
              옷걸이가, 커튼이, 액자가 걸어나온다
              그것들 주섬주섬 한 여자가 된다. 컴퓨터 앞에서, 그 여자
              컴퓨터를 켠다 그자의 잠 밖에서 비로소 말이 되는
              말들이 깜박거린다 그녀, 밤새 열에 들떠 중얼거린다
              의자가, 탁자가, 옷걸이가, 카펫이, 침대가 밤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릴케 현상 >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Jean-Baptiste-Camille Corot]Orpheus Leading Eurydice from the Underworld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베라 우카마 크노오프를 위한 묘비명으로 씀)

           

           

           

                                  제1부

           

           

                    19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구름처럼 변한다고 해도,

           모든 완성자는

           태고의 것으로 돌아가네.

           

           

           변화의 과정 저 너머에

           더 멀리, 더 자유롭게

           그대의 앞선-노래는 존속하네,

           칠현금을 가진 신이여.

           

           

           고통도 인식되지 않으며,

           사랑도 배워지지 않으며,

           죽음 가운데 우리를 멀리하는 것도

           

           

           베일을 벗지 않았네.

           오직 땅 위의 노래만이

           기리며 찬미하네.

           

           

           

           

                    20

           그러나 당신께, 오 주여, 무엇을 바치리오? 말해주오,

           피조물들에게 듣기를 가르친 당신께ㅡ

           어느 봄날에 대한 나의 추억을,

           그 저녁을, 러시아에서의ㅡ, 말 한 마리를......

           

           

           마을로부터 그 백마는 홀로 뛰어왔지요,

           앞 고삐에 말뚝을 매단 채로,

           그 밤 초원에서 혼자 있기 위하여 ;

           말갈기의 곱슬곱슬한 털은 얼마나

           

           

           자부심의 박자에 맞춰 목덜미를 때리던가요,

           질주가, 거칠게 멈추어졌을 때.

           준마의 피의 샘은 얼마나 뛰었던가요.

           

           

           그 말은 광막함을 느꼈답니다, 대단하지요!

           말이 노래부르고 귀기울였으니ㅡ, 당신의 전설권이

           그의 내면에서 완결되었어요.

                              그의 모습 : 나는 그것을 바칩니다.

           

           

           

           


           [Albrecht Durer]The Death of Orpheus

           

           

           

           

           

                    21 *

           봄이 다시 돌아왔다. 대지는

           시를 아는 어린이와 같다.

           많은 오 많은 시들을. ...... 오랜 배움의

           고통으로 대지는 그 상을 받는다.

           

           

           대지의 스승은 엄격했다. 우리는 그 노인의

           수염의 흰빛을 좋아했지.

           이제는, 저 초록빛, 저 푸른빛을 뭐라고 하는지

           우리가 물어봐도 된다. 대지는 대답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자유로운 대지여, 그대 행복한 이여, 놀아다오

           이제는 어린이들과 함께. 우리가 그대를 잡겠다.

           즐거운 대지여. 가장 즐거운 어린이가 잡을 수 있으리라.

           

           

           오 스승이 대지에게 가르친, 그 많은 것들,

           그리고 뿌리와 길고 무거운 줄기 속에

           억눌려 있는 것들을, 대지는 노래한다, 노래해!

           

          *이 작은 봄노래는 내가 언젠가 남스페인의 론다에 있는 수녀원에서 어린 수녀들이 아침 미사에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 기묘하게 춤추듯 하는 음악에 대한 '해석'처럼 내게 느껴진다. 그 어린이들은 춤박자에 맞춰 내가 모르는 가사를 트라이앵글과 탬버린 반주로 노래불러주었던 것이다.

           

           

           

           

                    22

           우리는 서둘러 가는 존재.

           그러나 시간의 발걸음,

           그것을 언제나 머무는 것 속의

           하찮은 것으로 여기라.

           

           

           서두는 것은 모두

           곧 지나가버리리라.

           머무는 것이 비로소

           우리에게 가르쳐주리니.

           

           

           소년들이여, 오오 속도 안으로

           용기를 던지지 말라,

           비행 실험에도.

           

           

           모든 것이 차분하다 :

           어둠과 밝음,

           꽃과 책이.

           

           

                    23

           오오, 언젠가 비행이

           더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늘의 고요 속으로

           솟구치지 않게 되면, 스스로 만족하여,

           

           

           번쩍이는 옆모습으로

           바람의 총아노릇을

           할 수 있는 기구러서

           안전하고 날씬하게 흔들어대지 않을 때면,

           

           

           성장하는 기계의

           순수한 '어디로'의 방향이

           소년의 자만심을 능가해버릴 때면, 비로소

           

           

           그때에, 이득으로 어리둥절해져서,

           저 먼 것에 다가간 것이

           존재하리라, 그것은 그가 외롭게 날아 얻은 것이러니.

           

           

           

           

                    24

           우리가 태고의 우정을, 그 위대하고

           결코 구애(求愛)하지 않는 신들을, 우리가 엄격하게

           단련해낸 단단한 강철이 모른다고 해서, 저버리거나,

           아니면 느닷없이 그들을 지도(地圖) 위에서 찾아야 하는가?

           

           

           우리로부터 죽은 자들을 앗아가는 이 힘센

           친구들은 우리의 수레바퀴 어느 곳도 건드리지 않는다.

           우리의 향연(饗宴)은 멀다ㅡ, 우리의 목욕탕들도

           떠나왔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미 오래 전부터 너무 느린 신들의 사자(使者)를

           

           

           우리는 언제나 앞질러 간다. 이제는 더욱 고독하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를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가 가는 길은 아름다운 꼬부랑길이 아니라,

           

           

           곧은 길이다. 오직 보일러 안에서만

           타는 옛 불꽃과 들어올려지는 망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을 뿐. 그러나 우리는 수영하는 사람처럼 힘을 잃어간다.

           

           

           

           

                    25

           그대를 그러나 나는 이제, 그대를 내가 한 송이

           꽃으로 알아왔고 그 이름은 모르지만,

           다시 번 회상하고 신들에게 보이련다, 빼아긴 여인이여,

           억누를 수 없는 외침의 아름다운 놀이 친구여.

           

           

           처음엔 무희였지, 갑자기, 온몸에 머뭇거림 가득하여,

           멈추더니, 마치 그녀의 젊음을 광석 안으로 부어넣은 듯 ;

           슬퍼하며, 그리고 귀기울이며ㅡ, 거기, 드높은 능력자들로부터

           음악이 그녀의 달라진 심장 속으로 내려왔었다.

           

           

           병(病)이 다가왔었다. 이미 그림자에 사로잡혀,

           검은 피가 밀려왔다, 그러나, 의심도 잠시뿐인 듯,

           피는 그의 자연스런 봄 안으로 타고 올라왔었다.

           

           

           언제나 다시, 어둠과 추락으로 끊기기는 했어도,

           피는 이승의 빛으로 반짝였다. 마침내 무섭게 두근대다가

           암담하게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26

           당신은 그러나, 신이시여, 당신은, 마지막 순간에도 소리를 울리는 분,

           업신여김받은 주신(酒神)의 무녀(巫女)들이 떼거리로 덮쳤을 때,

           그들의 외침 소리를 당신은 질서로 눌러버렸지요, 아름다운 당신이시여,

           파괴자들로부터 당신의 위안의 연주가 솟아올랐어요.

           

           

           당신의 머리와 칠현금을 부수려는 자는 아무도 없었지요.

           아무리 그들이 애쓰고 미친 듯 날뛰었어도, 그리고 그들이

           당신의 심자을 향하여 던진 그 모든 날카로운 돌들도,

           당신한테서는 부드러운 존재가 되어 귀를 기울였어요.

           

           

           마침내 복수심에 쫓긴 그들이 당신을 때려눕혔을 때에도,

           당신의 울림은 아직도 사자(獅子)들과 바위속에 머물렀어요,

           나무들과 새들의 내면에도. 그곳에서 당신은 지금도 노래해요.

           

           

           오오 당신, 잃어버린 신이시여! 그대는 끝없는 발자취!

           오직 그대를 마지막 적의(敵意)가 찢어발겨 흩어놓았기에,

           이제 우리는 듣는 자들이며 자연의 입이리요.

           

           

           

             릴케  / 안문영 옮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털짱 2004-09-30 0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힘들 때마다 님의 서재에 있는 귀한 글들로 흩어지는 마음을 붙잡았던 적이 적지 않습니다. 잠시 인사드리러 들렀습니다. 저는 오늘도 반야심경을 한번 썼습니다. 역시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직원들이 출근할 것입니다. 그 전에 보고서를 끝내기를 바랍니다. 요정님, 제가 생각해봤는데 님은 정말 요정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제 털에 원기를 불어넣어주셨으니까요.^^

          꼬마요정 2004-09-30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짱님두... ^^;; 제가 부끄럽잖아요.. 그래도 기뻐요... 제가 꾸미는 서재가 님께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
          늘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시다보면, 언젠가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같이 노력해요~~~^^ 글구 보고서도 얼른 끝내시길...^^

          털짱 2004-09-30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주말에나 다 끝날까요? 아, 저도 이젠 집에 들어가고 싶어요.ㅜ_ㅜ

          꼬마요정 2004-09-30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을 거 잘 챙겨드시면서 하세요... 아무리 그래도 건강이 최고지요~~^^
          힘 내세요~ 잘 끝내실 수 있을거에요~^^*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 詩 조병화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너는 먼 별 창 안에 밤을 재우고 나는 풀벌레 곁에 밤을 빌린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잔다 너의 날은 내일에 있고 나의 날은 어제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세월이다 문 닫은 먼 자리, 가린 자리 너의 생각 밖에 내가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있다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털짱 2004-09-26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안에 살던 너를 놔준다..
          그래야 내가 산다.
          내 안에 살던 네가 떠나야 내가 산다.

          꼬마요정 2004-09-27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