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의 정원---여자들


      보르헤스의 정원 -- 여자들
      詩:이경림






      양털 카펫이 된 여자가 방안 가득 깔려 있다
      탁자가 도니 여자 앞에 그는 의자가 된 여자를 깔고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옷걸이가 된 여자의 두개골을 덮으며 그의 옷이
      걸려있다 커튼이 된 여자가 주름을 드리우며 쳐 있고
      액자가 된 여자, 알 수 없는 색깔들로 뒤범벅이 된 채
      걸려있다 텔레비젼이 된 여자가 쉬임없이 푸르스름한 말들을
      중얼거리며 켜져 있다 책장이 된 여자 속의 수많은 서책들
      먼지를 쓰고 있다 일제히 갈피가 되어 일렬 횡대로


      그는 천천히 일어서서 침대로 간다 침대가 된 여자
      위에 벌렁 눕는다 베개가 된 여자를 베고 홑이불이 된
      여자를 덮는다 담배가 된 여자에 불을 붙인다
      바알갛게 타는 그녀를 천천히 들이마신다
      연기가 된 여자, 허공에서 맴돌다 흩어진다
      그는 피곤하다는 듯 전등이 된 여자를 끈다


      그의 잠 밖으로 의자가 걸어나온다
      탁자가 걸어 나온다 침대가,
      옷걸이가, 커튼이, 액자가 걸어나온다
      그것들 주섬주섬 한 여자가 된다. 컴퓨터 앞에서, 그 여자
      컴퓨터를 켠다 그자의 잠 밖에서 비로소 말이 되는
      말들이 깜박거린다 그녀, 밤새 열에 들떠 중얼거린다
      의자가, 탁자가, 옷걸이가, 카펫이, 침대가 밤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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