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이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테스의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밤에 같이 마차를 타고 가다가 테스가 잠든 사이에 벌어진 일도, 장면이 바뀌어 테스가 아이를 낳은 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걸 엔젤에게 이야기 하면 안 되는지도 몰랐고, 테스가 결국 알렉을 죽이게 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이들이 읽기 좋게 이쁘게 된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해 나에게 아주 불친절했던 책이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울었던 기억이 난다. 테스는 엔젤을 사랑하고 엔젤은 테스를 사랑한다. 테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든, 엔젤에게 무슨 일이 있었든 현재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데 왜 엔젤은 떠나야 했을까. 테스는 이미 지치고 힘들어 버티기 힘든 지경인데 말이다. 

오히려 그런 일을 당할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다독여주고 이해해주면 될텐데, 그저 테스는 피해자일 뿐이데 말이다. 결국 테스는 마지막에서야 순간이지만 자신이 원하는대로 선택을 한다. 처음엔 가족에게 나중에는 남자들에게 휘둘리다 스스로 칼을 든 그녀를 보며 어린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그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사랑을 경험하게 한 첫번째 책이다. 그 때 나는 당연히 이 책이 세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만나자마자, 보는 순간 한 눈에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얘네들은 사춘기에 금지된 사랑이라는 거에 더 열정적이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에 줄리엣이 죽은 줄 알고 독약을 마시던 로미오의 비장함과 깨어나 죽은 연인을 보면서 스스로를 찌르는 줄리엣의 비통함이 얼마나 안타깝던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로미오로 나온다고 해서 친구들에게 끌려가 극장에서 본 영화다. 이 영화 보고 벽에 크게 걸 수 있는 포스터를 샀다. 이 그림이 너무 좋았다. 천사와 기사, 이루어질 수 없는 연인이 서로를 눈에 담는 순간이다. 

  

세익스피어 이야기나 나오니까 이 영화도 빠트릴 수 없겠다. 인류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엄청난 작가 세익스피어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 희극으로 썼던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극적 결말로 몰고 가게 한 그 열정적인 사랑.  

마지막에 결국 여왕에 의해 헤어지게 되는 둘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사랑하는 데 왜 헤어져야 할까... 최근 몇 십년 이전까지 사랑이라는 건 왜 천덕꾸러기 취급이나 받아야 했을까.. 

 

이루지 못한 사랑.. 하니까 단박에 떠오르는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 한나와 킵은 사랑하지만, 알마시와 캐서린은.. 불륜이지만 둘의 사랑이 계속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사막에서 홀로 죽어 간 캐서린과 그녀에게 가기 위해 독일에 지도를 팔아버린 알마시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내 심장을 울게 했던 건 이모백과 유수련의 사랑이었다. 서로만을 바라보면서 함께 하지 못한 그들.. 드디어 함께 할 수 있는, 서로를 위해 살 수 있는 순간이 왔는데 이모백은 그녀 앞에서 죽고 만다. 생애 마지막 한 숨을 그녀에게 바치고..    

 

 세스와 메기.. 천사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 천사에겐 감정이 없을텐데 세스는 메기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만질 수 없는 존재,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였던 세스는 메기와 함께 하기 위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계속해서 그녀 주위를 맴돌고,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바라면서도 알아채면 어쩌나 걱정하는 세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내 남은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노랫말처럼 세스는 무한한 생명과 자신이 누리던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

추억만으로 살아가질 수 있을까. 삶을 살기로 결심한 세스가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에서 아프지만 살아갈 수 있다는 그의 결연한 다짐이 느껴졌다. 

 

 

어톤먼트.. 이 영화 역시 함께 하지 못한 연인들을 다루고 있다. 겨우 사랑의 감정을 전달했는데 그날 그들은 헤어진다. 그리고 전쟁.. 그들은 사랑을 깨달은 이후 그들이 원하는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세실리아는 계속해서 돌아와, 내게 돌아와줘..라고 속삭이고, 로비는 돌아갈게, 너와 당당하게 사랑하겠어라고 다짐한다.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었던 연인.. 그렇게 바라고 또 바라는데도 들어주는 이 하나 없고 전쟁은 야속하기만 하다.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이라고 하면 이들을 빼 놓을 수는 없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내가 제일 사랑하는 배우 양조위가 열연하는 화양연화. 차우와 리첸의 애절한 사랑. 상대의 불륜 때문에 만나 사랑에 젖어가는 두 사람은 사랑하는 순간을 음미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연습을 한다. 그가 걸어가고, 그녀가 걸어가고, 우울한 음악이 흐르고, 그는 글을 쓰고, 그녀는 그가 받지 못하는 전화로 같이 가고 싶다 말하고, 그는 그녀가 받지 못하는 전화에 같이 가 달라고 말하고.. 

만남부터 엇갈려서 헤어짐까지 엇갈리는 두 연인의 이야기는 앙코르와트 고성의 작은 구멍에 속삭여진다. 잔인할만큼 깔끔하게 메워지는 구멍을 보면서 차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 사랑이 들어있는 공간을.. 

"그렇다. 슬프지만, 이렇게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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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1-07-0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앙, 추천. ㅠㅠ

꼬마요정 2011-07-07 18:36   좋아요 0 | URL
저도 으앙..
앗, 영화 하나 빠트렸네요.. 시티 오브 엔젤... 흠..ㅠㅠ

꼬마요정 2011-07-08 12:48   좋아요 0 | URL
추천 감사해요~^^

후애(厚愛) 2011-07-08 0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 ㅋㅋ
잘 지내시죠?

꼬마요정 2011-07-08 12:47   좋아요 0 | URL
넵! 후애님도 잘 지내시죠?
추천 감사해요~^*^

다락방 2011-07-08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추천했는데 아직까지 테스를 보지 못했다는 게 부끄러워요.. orz

꼬마요정 2011-07-08 12:48   좋아요 0 | URL
추천 감사해요~~^^
테스 안 보셨다고 부끄러우실 것까지야..^^;;
보면 정말 답답하고 짜증나고.. 알렉은 진짜 나쁜 놈이지만 엔젤도 나빠요. 불쌍한 테스..ㅜㅜ

블루데이지 2011-07-08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개하신 작품중에 시티오브엔젤만 못봤네요~~ 주인공들이 지극히 개인적으로 비호감이어서..요~위의 모든 작품들 되감기 해서보면 답은 나오는데...
이루지 못하기때문에 더 아름다운걸까요? 아름다운거 맞나?ㅋㅋ

꼬마요정 2011-07-08 16:38   좋아요 0 | URL
시티오브엔젤 책도 있으니까 보셔도 될 듯.. 정말 눈물 났어요ㅜㅜ
이 작품들에서 이들의 사랑이 기억에 남는 건 연인들이 슬픈 사랑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해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떠난 이나 남은 이나 모두 그 사랑을 간직한 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떠난 이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잖아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1-09-07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테스 어릴 때 읽었는데요. 상황은 안타까운데 작가 문체가 약간 건조(?)해서 그런지 크게 동정심도 안생기고 동요가 없드라구요. 사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작품을 보면서 저는 그냥 멍하게 있었답니다. 심지어 화양연화는 이해를 못했어요.

아, 그래도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아름다운 영화라 생각했답니다.

이상하게 비극적인 연인들의 결말에 눈물이 안 납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전 너무 메마른 사람인 것 같아요...흑ㅠ


꼬마요정 2011-09-08 22:09   좋아요 0 | URL
아~ 반갑습니다.^^

감정이란 건 사람마다 다 다르고 느끼는 것도 다 다르니까요.. 문제가 아니라 그저 개인 차이가 아닐까요..^^;

저는 정말 슬프고 가슴 아프게 봤지만, 제 친구들이나 동생은 화양연화보고 자더라구요ㅜㅜ 전 울고 있는데 말이죠..ㅜㅜ
 

2007년 대선 결과는 민주사회의 퇴보, 도덕불감증, 민주세력의 한계, 경제이기주의, 한탕주의 등 단어가 나열되었다면.. 

2010년 지방 선거는 일종의 쾌거로 기록되지 않을까... 

역사는 흐르고... 

우리는 지금도 계속 역사 속에서 살고 있다. 

 

조선왕 독살사건 리뷰를 쓸 때 그 책을 통해 정치 잘 하는 사람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겪었다. 정치란 그런 것인가 보다..라고 체념하기도 했는데, 변화가 보이는 걸 보니 정치보다 역사의 움직임이 더 크긴 한가보다. 언제 변하나, 우리는 변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어도.. 생각해보면 우리는 불과 60여년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왕정과 식민통치를 겪은 뒤 바로 찾아 온 자유의 불꽃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주춤했지만 꺼지지 않았고, 계속해서 불타올랐다. 독재에 맞서. 그리고 이제는 거대자본에 맞서는 걸 보면 서구 사회가 몇 백년에 걸쳐 이룩한 것들을 아주 빠르게 습득하는 듯하다. 학습효과나 과학기술의 발전 등의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강의 기적이 경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구나. 

다시금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것들 견해가 틀렸다는 걸 느낀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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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6-10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런 현상에 대해서 강준만 교수님은 압축 성장의 부작용이라고 하셨죠. 한국인에 대해 무척이나 파고드셨는데 '빨리 빨리'라는 한국인의 이데올로기가 그런 작용을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완전 공감하빈다. 제가 유일하게 읽는 정치쪽 지식인이에요. ^^

꼬마요정 2011-06-11 02:36   좋아요 0 | URL
저도 강준만 교수님 좋아해요. 대학생 때 읽었던 오버하는 사회가 좀 인상깊었거든요.. 근데 10년이 지나니까 그 책 내용 가물가물하네요. 생각난 길에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우리 가족은 5명이다. 다들 잘 넘어지고, 어디 잘 부딪히고 한다. 특히 엄마와 나, 여동생 세 명은 지인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분명 구덩이가 있는 것도, 돌부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턱턱 걸려 넘어진다. 이젠 아무도 걱정해주지 않는다. 단지 체념의 미소만 던질 뿐.

시작은 엄마였다. 엄마는 단지 파란불 신호가 들어 온 횡단보도를 건너고 계셨을 뿐이었다. 어디선가 쿠당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저만치 가시던 엄마가 사라졌다. 거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어느새 넘어진 엄마가 눈 깜짝할 새 일어나시더니 내 손을 꽉 잡으셨다. 난 내 생애 그렇게 빨리 걸어본 적은 없었다. 아니 나는 뛰고 있었다. 엄마는 사람의 속도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집이 보이는 골목길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늦추시다가 겸연쩍은 웃음을 날리셨다. 엄마 청바지 오른쪽 무릎이 찢어져 괴물 아가리마냥 쩍 벌어져 있는 거다. 엄마와 나 둘이서 정말 신나게 웃었다. 청바지가 찢어질 정도로 심하게 넘어졌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와 그곳을 벗어났을까. 소위 쪽팔림은 육체의 고통을 초월하는 법이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한참을 두고두고 얘깃거리로 웃을 수 있었는데, 얼마 뒤 여동생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다. 그렇게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이미 내린 비로 거리는 젖어있었다. 동생은 친구와 함께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우산 하나에 키가 큰 친구는 동생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다. 둘은 재잘거리며 기분 좋게 오고 있었다. 그저 짧은 순간이었다고 했다. 친구의 손이 허공에 떴다. 분명 동생의 어깨에 얹고 있었는데 동생이 사라진 거였다. 놀란 친구는 얼어붙었고, 동생은 길 한가운데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그 때 역시 둘은 미친 듯한 속도로 집에 도착했다. 동생이 입고 있던 청바지의 엉덩이 부분은 만화에 나온 것 마냥 너덜너덜한 구멍이 나 있었다. 그날 역시 우리 가족은 정말 화기애애했다. 동생은 아플 텐데도 뭐가 신나는 지 계속 웃었다. 엄마의 일화는 어느새 저만치 사라지고 없었다.

나 역시 만만찮게 바지를 찢어먹었다. 하필 학교에서 마치 아무 돌이나 가져다 박아놓은 듯한 험한 돌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게 뭐람. 머리 찧어 죽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위험했지만, 아무 상처 없이 살아남았다. 다만 바지가 걸려 쭉 찢어진 게 안타깝다고나 할까. 보통은 여자애가 넘어지거나 떨어지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 남자가 두 손으로 안전하게 받아주는데, 나는 굴러 떨어질 때 웬 남정네의 발을 느꼈다. 너무 급해 발로 나를 받아줬다는 게 아닌가. 친구들은 내가 다치지나 않았는지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이 너무 우스꽝스러워 깔깔거리며 웃기 바빴다. 어찌나 어이가 없는지 나 역시 웃음만 나왔다. 굴러서 어지럽고 바지는 찢어졌고 웬 남자의 발에 걸리고... 다행히 밑단이 뜯어지고 무릎 부분이 찢어져서 급하게 옷을 사야하는 일은 없었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친구들은 이야기한다. 너네 가족 너무 웃기다고, 찢어진 청바지 전시회라도 하라고, 그 사연들을 시처럼 적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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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8-06-04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쪽팔림은 고통보다 강하다... 크크
저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꽤 되지요.
애써 안 아픈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러나 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흐흐.

꼬마요정 2008-06-05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우리 가족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그 걸음의 빠르기란.. 음.. 정말 놀라울 따름이죠~

pjy 2009-04-13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 웃었습니다ㅋㅋ; 전 올라가는 에스칼레이터에서 걸려서! 장군님포즈로 무릎을 꿇었지만 본인의 안위에 더 신경쓰는 철면으로 무릎만 아팠답니다^^; 무딘 감성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자리에서 매우 애석하게 무릎을 애통해 했는데..회사동료가 보면서 웃었다고 나중에 얘기해줄땐 민망하긴했지요~~

꼬마요정 2009-04-1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릎은 괜찮으세요??^^;; 중앙일보에서 소재를 주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짧은 글을 모으더라구요.. 언제나 선택되지는 못했지만, 알라딘에 올리면 그래도 즐겁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어 기쁘답니다.^^

참, 제 이니셜도 pjy랍니다.^^
 

                                  가난, 벗어나야 할 굴레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어쩌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왜 가난은 극복하기 어려운걸까. 모두가 가난하지 않은 세상은 정말 이룰 수 없는 꿈인 걸까.

공선옥의 소설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에서 ‘나’의 가난은 곧 ‘가족’의 가난이다.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들도 가난하다. 남편은 이 소설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을 버리고 떠난 무책임한 인간인 그는 이미 ‘나’의 과거 속 인물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가난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모두 갖춘 셈이다. 친정이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남편은 없다, 아이들을 키우기엔 살 곳이 없으니 아이들은 보호시설에 맡겨두고 홀로 서울에서 공장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단기적인, 그것도 눈앞의 일만 생각하게 되었다는 체념과도 같은 그 말은 그녀의 인생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분명 그녀는 가난을 벗어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기차 안에서 만난 털북숭이를 따라갔더라면, 혹은 아이들을 고아원에 버린 채 혼자인 양 서울에서 돈을 번다면.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가난’이란 짐이 따라붙기 이전에 ‘애기엄마’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정체성이 가진 무게를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지고 간다. 그렇다면 그녀는, 아니 그녀로 대표되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까. 가진 것 없이, 제비새끼마냥 보채는 아이들과 함께.

예로부터 가난은 있어왔다. 하지만 예전의 가난은 모두가 가난하였기에, 가난이 가난일 뿐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요즘은 다르다. 가난은 개인의 무능력으로 평가되고 반드시 빠져나와야 할 굴레가 되어 버렸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시대, 그러나 그 가난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다. 소설 속에서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 ‘노동’이 중요한 열쇠가 되지 않을까.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고, 정년이 점점 짧아지는, 노동할 권리를 온전히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노동은 조금이나마 가난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는 말처럼 노동을 통해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면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 ‘나’는 오늘 아이들을 보러간다는 이유로 일자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고용불안정이 가난을 부추기는 요인이라면 이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되지 않을까. 정당한 노동과 정당한 대가, 안정적인 일자리. 이것이 갖추어진 삶이야말로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삶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가난한 자들로부터 이 세 가지를 앗아갔다. 그리하여 그들은 막노동판에서, 공장에서 일용직으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간다.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모으고, 아끼고 하는 식의 개개인이 잘 살려고 하는 몸부림만으로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할 수 있는 일이, 들어오는 돈이 불안정한 데 어떻게 벌고, 아끼고, 모으고 할 수 있는가. 개인이 어떻게 발버둥 치든 스스로의 힘으로 가난에서 빠져나오기는 너무 힘이 든다. 그러니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앞서 정부가, 사회가, 가진 자들이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빌 게이츠는 자신의 모교 하버드 대학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이른바 ‘창조적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기술개발이나 시장의 힘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가진 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만큼 없는 자들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연설은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어쩌면 몰락해버린 사회주의를 대신하여 우리의 대안이 될 지도 모른다.

소설 속 ‘나’역시 가난한 사람들의 또 다른 대안일지도 모른다. 가난을 이유로 번번이 일어나는 가족의 해체가 가슴 아픈 일들을 많이 만드는 세상에서 가족을 끝까지 지키는 일은 가난하지만 버릴 수 없는 자존심이기도 하다.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짊어지기로 한 책임을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번복하여 버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가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한 여성의 모습이다. 그리고 가난에만 책임을 전가시키지 않는 꿋꿋한 모습이다. 가난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을 정당화시켜 주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는 몸짓인 것이다. 체념이 곳곳에 드러나지만, 그래도 그녀는 끝까지 가난에 함몰되지 않았다. 사회보장제도로 가난이 어느 정도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그녀와 같은 꿋꿋함과 책임감이 없다면 가난은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쇠사슬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와 개인, 모두가 함께 풀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인 가난. 어느 사회에서도 풀지 못했던 이 숙제를 우리 사회가 가진 힘으로 풀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아직 졸업 못한 선배가 시험기간에 내야 한다며 써달라고 해서 피자 한 판 얻어먹기로 하고 써 준 창작 글짓기 ^^ 피자 먹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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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아프의 독서문답(꼬마-, 테츠, HE, 마노아, 네꼬, 백년-, santa-)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 언제나 그렇듯 몸은 평안하지만, 마음은 불편합니다. ㅠㅠ

 

독서 좋아하시는지요?

- 요즘말로 완소 독서!!

그 이유를 물어 보아도 되겠지요?

- 어릴 때는 그저 책 읽는 게 즐거웠습니다. 내가 모르던 삶의 조각들이 신기하기만 했거든요. 그러나 이제는 이 책읽기라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가를 느낍니다. 어느 새 주위를 둘러보니 책 한 자 읽지 않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저는 축복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나요?

3년 정도 평균 잡았을 때 한 달에 6권 정도 읽네요..

주로 읽는 책은 어떤 것인가요?

-  주로 역사책이랑 경제관련책이랑 만화책이랑 로맨스 소설을 읽습니다. 인문서적에 상당히 많이 치중해 있는 편이구요. 아무리 읽어도 읽어도 갈증이 채워지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이래서는 다른 분야에는 발도 못 들여놓고 세상 하직하는 건 아닌가 합니다.

당신은 책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 밥. 밥 안 먹으면 못 살아요. 그렇다고 빵 먹으면 되잖아,라고 한다면 때려줄겁니다.^^;;

당신은 독서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밥 먹는 거죠.내 정신을 살찌우는 주식입니다. 다이어트 생각은 없네요...

한국은 독서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어릴 때부터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집 만을 바라보고 살아 온 우리들입니다. 책 읽는 건 등수를 매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띄게 잘 살 수 있게 되거나 하지도 않거든요. 그러니 책읽기가 등한시 되는 거죠. 그런데 그건 정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 아니겠어요..   

 

책을 하나만 추천 하시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북해의 별. 김혜린 님의 만화입니다.  


그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제 어린 시절을 뒤흔들어놓은 책이니까요. 오랜 시간 이어 온 하나의 체제가 오랜 시간 이어 갈 다른 체제로 바뀌는 순간을 그린 만화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온갖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들어있지요. 게다가 주인공이 가진 불굴의 의지는 정말 배우고 싶은 점입니다. 저는 유리핀을 보면서 역사,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고, 그와 더불어 결단력은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있는 성품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만화책도 책이라고 여기시나요?

- 질문에 답이 있네요. 만화'책'이지, 만화'그림', 만화'님' 머.. 그렇게 부르지 않잖아요. 요즘은 세계문집도 만화로 나오고 이러던데요.. 삼국지도 만화로 나오고.. 유명 애니메이션은 모두 만화책이 원작 아니던가요. 누군가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만화는 어떤 지식인이 건성으로 끄적거린 에세이 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비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 비문학 위주입니다. 왠지 소설은 잘 안 읽히네요.. 요즘은 좋아하던 로맨스 소설도 잘 안 읽혀서 고민..^^;;

 

판타지와 무협지는 "소비문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신이나 사상을 '소비'한다고 표현하지는 않죠. 오만과 편견이 가득한 분류법이네요. 마치 음악에서 클래식 이외의 곡들은 모두 비하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지... (요즘은 안 그렇지만 예전엔 그랬잖아요..)

당신은 한 번이라도 책의 작가가 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 그런 기회가 온다면 틀림없이 잡을 겁니다.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때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 너무 너무 좋아하다가도 부끄러워지지 않을까요. 어쩌면 서점에서 저 혼자 사재기 할지도 모르죠..^^;;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김혜린, 슈테판 츠바이크, 강경옥, 장하준, 김상봉, 이덕일 

좋아하는 작가에게 한 말씀 하시죠?

- 김혜린님.. 아라크노아 완결 지어주세요~~ 강경옥님.. 퍼플하트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합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님이 쓰신 인물들을 저승에서 직접 만나보니 어떤가요? 뭔가 알려야 할 또 다른 이야기라도 있나요?

이제 이 문답의 바톤을 넘기실 분들을 선택하세요. 5명 이상, 단 "아무나"는 안됩니다.

치카님, 302moon님, 세실님, 모1님, 책읽는 나무님, 자명한 산책님...

(알라딘엘 자주 못 오다 최근에 자주 와서인지 좀 어색하네요.. 이 분들 안 쓰신 거 맞죠? 특히 치카님은 여러 번 써 달라고 청탁 받으셨는데 외면하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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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7-05-0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만화'님'..머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는!! 멋져요! ㅋ
대답은...? 여기서 답하면 클나요~ (옥상으로 질질질...이 될지도. 그래서! 역시)
외면모드... ( '')

네꼬 2007-05-08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정님은 "작가와의 대화"를 하면 눈이 마구 빛날 분이시네요. (^^) 표정이 그려져요.

마늘빵 2007-05-08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에 저 '김상봉' 넣었다가 뺐는데, 이유는 아직 그분의 책을 많이 읽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철학자 김상봉 말씀하시는거 맞죠? :)

물만두 2007-05-08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소 독서라고 하셔서 새로 나온 책 제목인가 했어요^^

꼬마요정 2007-05-08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물만두님한테 아직도 안 끌려가셨네요~~ 조만간 이 문답 페이퍼 올라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네꼬님/ 작가와의 대화... 일단 마태우스님이랑 먼저...^^
아프님/ 네. 전 김상봉님 책 '호모 에티쿠스'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 반했다죠. 그 뒤로 몇 권 더 찾아읽었는데, 특히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랑 나르시스의 꿈이 좋아서요..^^ 저도 많이 읽지 않았어요. 하지만 단 한 권이라도 제게 깊은 인상을 주신 분이라면 좋아하는 작가 반열에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요..^^ 물론 제 생각~^^
물만두님/ 완소 독서.. 입에 착 달라붙더라구요~~^^

302moon 2007-05-20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제야 발견. 여지없는 뒷북이네요. 이런. ^^;

꼬마요정 2007-05-21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이라도 쓰심이.. ^^

릴케 현상 2009-06-12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전 강경옥 좋아해요. '별빛속에'를 읽고 푹 빠져서...현재진행형이나 19세의 나레이션 너무 좋아했죠.

꼬마요정 2009-06-1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소장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