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이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테스의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밤에 같이 마차를 타고 가다가 테스가 잠든 사이에 벌어진 일도, 장면이 바뀌어 테스가 아이를 낳은 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걸 엔젤에게 이야기 하면 안 되는지도 몰랐고, 테스가 결국 알렉을 죽이게 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이들이 읽기 좋게 이쁘게 된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해 나에게 아주 불친절했던 책이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울었던 기억이 난다. 테스는 엔젤을 사랑하고 엔젤은 테스를 사랑한다. 테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든, 엔젤에게 무슨 일이 있었든 현재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데 왜 엔젤은 떠나야 했을까. 테스는 이미 지치고 힘들어 버티기 힘든 지경인데 말이다.
오히려 그런 일을 당할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다독여주고 이해해주면 될텐데, 그저 테스는 피해자일 뿐이데 말이다. 결국 테스는 마지막에서야 순간이지만 자신이 원하는대로 선택을 한다. 처음엔 가족에게 나중에는 남자들에게 휘둘리다 스스로 칼을 든 그녀를 보며 어린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그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사랑을 경험하게 한 첫번째 책이다. 그 때 나는 당연히 이 책이 세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만나자마자, 보는 순간 한 눈에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얘네들은 사춘기에 금지된 사랑이라는 거에 더 열정적이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에 줄리엣이 죽은 줄 알고 독약을 마시던 로미오의 비장함과 깨어나 죽은 연인을 보면서 스스로를 찌르는 줄리엣의 비통함이 얼마나 안타깝던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로미오로 나온다고 해서 친구들에게 끌려가 극장에서 본 영화다. 이 영화 보고 벽에 크게 걸 수 있는 포스터를 샀다. 이 그림이 너무 좋았다. 천사와 기사, 이루어질 수 없는 연인이 서로를 눈에 담는 순간이다.
세익스피어 이야기나 나오니까 이 영화도 빠트릴 수 없겠다. 인류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엄청난 작가 세익스피어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 희극으로 썼던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극적 결말로 몰고 가게 한 그 열정적인 사랑.
마지막에 결국 여왕에 의해 헤어지게 되는 둘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사랑하는 데 왜 헤어져야 할까... 최근 몇 십년 이전까지 사랑이라는 건 왜 천덕꾸러기 취급이나 받아야 했을까..
이루지 못한 사랑.. 하니까 단박에 떠오르는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 한나와 킵은 사랑하지만, 알마시와 캐서린은.. 불륜이지만 둘의 사랑이 계속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사막에서 홀로 죽어 간 캐서린과 그녀에게 가기 위해 독일에 지도를 팔아버린 알마시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내 심장을 울게 했던 건 이모백과 유수련의 사랑이었다. 서로만을 바라보면서 함께 하지 못한 그들.. 드디어 함께 할 수 있는, 서로를 위해 살 수 있는 순간이 왔는데 이모백은 그녀 앞에서 죽고 만다. 생애 마지막 한 숨을 그녀에게 바치고..
세스와 메기.. 천사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 천사에겐 감정이 없을텐데 세스는 메기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만질 수 없는 존재,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였던 세스는 메기와 함께 하기 위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계속해서 그녀 주위를 맴돌고,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바라면서도 알아채면 어쩌나 걱정하는 세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내 남은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노랫말처럼 세스는 무한한 생명과 자신이 누리던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
추억만으로 살아가질 수 있을까. 삶을 살기로 결심한 세스가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에서 아프지만 살아갈 수 있다는 그의 결연한 다짐이 느껴졌다.
어톤먼트.. 이 영화 역시 함께 하지 못한 연인들을 다루고 있다. 겨우 사랑의 감정을 전달했는데 그날 그들은 헤어진다. 그리고 전쟁.. 그들은 사랑을 깨달은 이후 그들이 원하는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세실리아는 계속해서 돌아와, 내게 돌아와줘..라고 속삭이고, 로비는 돌아갈게, 너와 당당하게 사랑하겠어라고 다짐한다.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었던 연인.. 그렇게 바라고 또 바라는데도 들어주는 이 하나 없고 전쟁은 야속하기만 하다.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이라고 하면 이들을 빼 놓을 수는 없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내가 제일 사랑하는 배우 양조위가 열연하는 화양연화. 차우와 리첸의 애절한 사랑. 상대의 불륜 때문에 만나 사랑에 젖어가는 두 사람은 사랑하는 순간을 음미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연습을 한다. 그가 걸어가고, 그녀가 걸어가고, 우울한 음악이 흐르고, 그는 글을 쓰고, 그녀는 그가 받지 못하는 전화로 같이 가고 싶다 말하고, 그는 그녀가 받지 못하는 전화에 같이 가 달라고 말하고..
만남부터 엇갈려서 헤어짐까지 엇갈리는 두 연인의 이야기는 앙코르와트 고성의 작은 구멍에 속삭여진다. 잔인할만큼 깔끔하게 메워지는 구멍을 보면서 차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 사랑이 들어있는 공간을..
"그렇다. 슬프지만, 이렇게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