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벗어나야 할 굴레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어쩌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왜 가난은 극복하기 어려운걸까. 모두가 가난하지 않은 세상은 정말 이룰 수 없는 꿈인 걸까.

공선옥의 소설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에서 ‘나’의 가난은 곧 ‘가족’의 가난이다.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들도 가난하다. 남편은 이 소설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을 버리고 떠난 무책임한 인간인 그는 이미 ‘나’의 과거 속 인물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가난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모두 갖춘 셈이다. 친정이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남편은 없다, 아이들을 키우기엔 살 곳이 없으니 아이들은 보호시설에 맡겨두고 홀로 서울에서 공장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단기적인, 그것도 눈앞의 일만 생각하게 되었다는 체념과도 같은 그 말은 그녀의 인생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분명 그녀는 가난을 벗어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기차 안에서 만난 털북숭이를 따라갔더라면, 혹은 아이들을 고아원에 버린 채 혼자인 양 서울에서 돈을 번다면.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가난’이란 짐이 따라붙기 이전에 ‘애기엄마’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정체성이 가진 무게를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지고 간다. 그렇다면 그녀는, 아니 그녀로 대표되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까. 가진 것 없이, 제비새끼마냥 보채는 아이들과 함께.

예로부터 가난은 있어왔다. 하지만 예전의 가난은 모두가 가난하였기에, 가난이 가난일 뿐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요즘은 다르다. 가난은 개인의 무능력으로 평가되고 반드시 빠져나와야 할 굴레가 되어 버렸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시대, 그러나 그 가난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다. 소설 속에서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 ‘노동’이 중요한 열쇠가 되지 않을까.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고, 정년이 점점 짧아지는, 노동할 권리를 온전히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노동은 조금이나마 가난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는 말처럼 노동을 통해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면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 ‘나’는 오늘 아이들을 보러간다는 이유로 일자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고용불안정이 가난을 부추기는 요인이라면 이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되지 않을까. 정당한 노동과 정당한 대가, 안정적인 일자리. 이것이 갖추어진 삶이야말로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삶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가난한 자들로부터 이 세 가지를 앗아갔다. 그리하여 그들은 막노동판에서, 공장에서 일용직으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간다.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모으고, 아끼고 하는 식의 개개인이 잘 살려고 하는 몸부림만으로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할 수 있는 일이, 들어오는 돈이 불안정한 데 어떻게 벌고, 아끼고, 모으고 할 수 있는가. 개인이 어떻게 발버둥 치든 스스로의 힘으로 가난에서 빠져나오기는 너무 힘이 든다. 그러니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앞서 정부가, 사회가, 가진 자들이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빌 게이츠는 자신의 모교 하버드 대학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이른바 ‘창조적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기술개발이나 시장의 힘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가진 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만큼 없는 자들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연설은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어쩌면 몰락해버린 사회주의를 대신하여 우리의 대안이 될 지도 모른다.

소설 속 ‘나’역시 가난한 사람들의 또 다른 대안일지도 모른다. 가난을 이유로 번번이 일어나는 가족의 해체가 가슴 아픈 일들을 많이 만드는 세상에서 가족을 끝까지 지키는 일은 가난하지만 버릴 수 없는 자존심이기도 하다.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짊어지기로 한 책임을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번복하여 버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가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한 여성의 모습이다. 그리고 가난에만 책임을 전가시키지 않는 꿋꿋한 모습이다. 가난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을 정당화시켜 주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는 몸짓인 것이다. 체념이 곳곳에 드러나지만, 그래도 그녀는 끝까지 가난에 함몰되지 않았다. 사회보장제도로 가난이 어느 정도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그녀와 같은 꿋꿋함과 책임감이 없다면 가난은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쇠사슬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와 개인, 모두가 함께 풀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인 가난. 어느 사회에서도 풀지 못했던 이 숙제를 우리 사회가 가진 힘으로 풀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아직 졸업 못한 선배가 시험기간에 내야 한다며 써달라고 해서 피자 한 판 얻어먹기로 하고 써 준 창작 글짓기 ^^ 피자 먹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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