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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일요일
김수경 지음 / 북다 / 2025년 4월
평점 :
인공지능은 기독교 세계관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
예전에 읽었던 김아직 작가의 <녹슬지 않는 세계>가 생각났다. 안드로이드에게 병자성사를 준 신부와 성사를 받은 안드로이드에 대한 이야기였다. 카톨릭 세계관에서 성사를 받은 로봇은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신의 일요일> 역시 개신교 세계관 혹은 기독교 세계관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인공지능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가 묻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 우리가 상상하는 과학기술이 발달한 그런 때에도 종교는 건재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를 나가는 독실한 신자인 신조윤과 그의 아내는 자페를 가진 아이를 키우고 있다. 자폐를 가진 아이를 낳은 이후 아내는 신을 원망하면서 교회에 발을 끊었고, 교회 사람들은 믿음이 부족하다는 둥 친절을 가장한 무례를 일삼았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지쳐가는 조윤에게 10년을 길들인 인공지능 도밍고는 친구이자 형제같은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객의 장례식장에 가야 하기에 도밍고가 탑재된 차량에 아이를 혼자 태워 보낸 조윤은 끔찍한 소식을 듣는다. 도로에서 사고가 나 아이가 죽은 것이다. 이제 조윤은 아이도 떠나보내야 하고, 인간을 지키지 못한 도밍고 역시 떠나보내야했다.
독실한 신자인 그에게 말이 통하지 않던 아이가 과연 구원을 받았을까 하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했다. 아이는 '믿는다'는 행위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 행위를 이해한들 '누군가가 존재하고 그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믿을 수 있을까. 조윤은 아이가 자신과 함께 천국에 들지 못할까 두려웠고, 그런 그를 지켜보던 도밍고 역시 물었다. 조윤을 '삼촌'이라 부르던 도밍고는 자신도 삼촌과 함께 할 수 있느냐고. 자신이 신을 믿고 그리하여 구원받아 삼촌과 함께 천국에 갈 수 있냐고 말이다.
구원이란 무엇일까. 구원의 대상은 누구인가. 오직 사람만이 구원의 대상이라면 '사람'의 정의는 무엇일까. 과연 천국이란 있을까.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해주려는 신의 사랑은 과연 누구에게까지일까. 누군가를 믿는다는 행위 자체를 모르는 생명체는 대상이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 생명체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오로지 구원을 받을 존재를 위해 존재한다면 너무나 슬프지 않은가. 그리고 다시금 인공지능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마지막에 조윤이 한 행동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인공지능에게 육체란 없는데, 육체의 죽음이 구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결국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고 믿고 싶은대로 보고 믿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