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사악하다.

  

< 멜랑콜리아' > 라는 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온다. " 다가온다 " 라는 동사가 밋밋해서 상황 파악이 안 된다면 " 돌진한다 " 라고 정정하자. 일주일 후면 지구는 행성과 충돌하여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이번에는 " resetting" 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 nothing " 인 상태가 된다.  < 인류 > 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 지구 > 라는 행성 자체가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신이 깜짝 이벤트로 준비한 " 노아의 방주 "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 만약에 당신'이라면 지구 종말 일주일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 ? 죽기 전에 해야 할 것'을 작성해 보자. ① 최고급 호텔'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밤을 보낸다. ② 제비집 요리와 불도장 그리고 거위 간 요리'를 주문한다. ③ 마당에 사과나무를 심는다 ④ 기타 등등......

하지만 이러한 버킷 리스트'는 한갓 희망사항에 불과할 것이 뻔하다. 당신은 최고급 호텔에 투숙할 수도 없고, 제비집 요리'는커녕 그 흔한 닭똥집 요리'조차 구경도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이면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는데 어느 미친 놈이 일터에 나와서 일을 할까 ? 그러므로 통장에 남은 돈을 펑펑 쓰다가 죽겠다는, 웃으면서 코 파며 잇힝 하는 버킷 리스트'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럴 땐, 차라리 무라카미 하루키가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 현명할 지도 모르겠다. 그는 사과나무를 심는 대신 자위'를 할 것이 분명하다. " 미안해, 아야코 양 ! 당신의 섹스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겠어. 난... 조용히 < 심슨가족' > 을 보면서 자위나 하겠어. " 결국 이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딱히 없다. 

지구 멸망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은 < 그날 > 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에 떨며 아름다운 지구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못한 죄책감을 호소하지만 쾌활한 멜랑콜리인 내가 상상하는 < 그날 > 은 꽤나 명랑'하다. 누군가에게 마지막 일주일'은 봄 방학' 같지 않을까 ?  입시 지옥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는 공부할 필요가 없으니 공부를 잘하는 놈이나 못하는 놈이나 달콤한 휴식이 되고, 암 환자들은 신이 내린 결정에 대하여 겉으로는 내색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웃으면서 코 팔 것이다. " 나만 억울하게 죽는 게 아닌 게야.... 히히히 ! "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그리 아쉬울 것 없다. 동일 환경 동일 노동에서 받는 대가'는 정규직의 절반이니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은 21세기 新 홍길동'이다. 서자'다.

희망이 거세된 노동만큼 힘든 것도 없다. 乙은 희망이 없다. 귀신을 잡는 해병대'와 (갑에게) 멱살을 잡힌 乙'의 공통점은 ? 영원하다는 점이다. 한 번 < 해병 > 은 영원한 해병이듯이, 한 번 < 을 > 은 영원한 을'이다. 그리고 뚱뚱한 여성들이여 ! 그날이 다가오면 다이어트'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지구 종말 시계는 44사이즈를 위해서 死死( 죽을 각오로 굶는 )하는 당신을 잠시나마 구원할 것이다.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아...... 좋아 ! 칼로리 제로 다이어트 콜라는 개나 주고 오리지날 코카콜라를 마시자 ! 일주일 후면 모든 것은 사라지나니 비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인류 멸망'을 비극으로 보는 관점은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다. 인류의 멸망은 오히려 지구 생태계에 두 번 다시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폐허가 된 아스팔트에서 고사리가 필 때 지구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많은 사람을 죽이면 전사가 되듯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재난이 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으면 신이 내린 한 수'가 된다. 나라면 < 그날 > 사랑하는 사람과 콘돔이 필요 없는 섹스를 하겠다 ! 지구가 불타 사라지기 전에 먼저 정염에 불타 죽으리라. 젖가슴을 욕심껏 움켜쥐고 거칠게 입 맞추리라. 평소 짝사랑하던 사람을 찾아가 고백을 해도 좋을 것이다. 상대가 거절하면 어떠랴 ! 퇴짜 맞고 돌아오는 길에 분풀이로 종로 3가 8차선 도로에다 똥을 싸도 좋다. 행운이라는 것은 신이 평소에 편애하던 놈들에게 내리는 선물이지만 죽음은  모두에게 내리는 평등이다.

영화 < 멜랑콜리아 > 는 " 그날 " 을 다룬다. 하지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 그날 > 이 아니라 < 그녀 > 에 대한 이야기'다.  행성과 지구 간의 충돌'은 곁가지 서사' 에 불과하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 여성 멜랑콜리와 히스테리'에 대한 보고서 > 이다. 영화는  " 1부 저스틴 "에 대한 이야기와 " 2 부 클레어 " 에 대한 이야기로 나뉜다. 결혼 피로연의 주인공인 저스틴은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다. 신부의 무관심과 무기력은 결국 파혼으로 끝을 맺는다. 그 어느 누구도 멜랑꼴리한 저스틴'(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 ) 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울증'이란 타자에 대한 공격을 멈추는 대신 화살의 촉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형태이다. 자신에 대한 징벌이 우울증'이다.

슬픔을 사람들과 나누면 애도'가 되지만 슬픔을 버리지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 간직하면 우울'이 된다. 그러니깐 우울이란 슬픔을 나누지도 못하고 소화시키지도 못한 체증 상태'다. 목구멍에 걸린 것인 생선 가시가 아니라 멜랑콜리'다. 저스틴'은 내부의 문제에 몰입하다 보니 외부(타자)에게 관심을 두지 못한다. 이 우울증은 타자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이 무관심은 곧 무기력'을 동반한다. 불면과 기면 그리고 체증에 따른 식욕 감퇴와 구토가 이어진다. 프로이트는 마지막까지 여성이라는 성'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가 없어서 쩔쩔맸는데 그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nothing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무책임이 아니다.  그가 보기에 여자는 알 수 없는, 아...... 그런 존재'다. 앞이 캄캄한 구멍'이다.

반면 클레어'는 동생과는 달리 타자와 맺는 사회적 관계를 중요시한다.  화려한 결혼 피로연'은 부르주아인 클레어의 욕망과 겹친다. 그녀는 결혼 피로연'이 성공적으로 치뤄지기를 간절히 원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생을 위한 따스한 배려와 근심 같지만 사실은 부르주아의 과시적 이기와 사려 깊은 욕심'일 뿐이다. 저스틴이 내부의 문제 때문에 " 멜랑꼴리 " 하다면, 클레어는 우울증을 앓는 동생의 모습이 피로연 참석자들에게 들통날까 봐서 " 히스테리 " 에 빠진다. 우울증에 걸려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동생을 이해하지 못하던 클레어'는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할수록 불안에 빠진다. 궁극에 다다를수록 클레어는 이성을 잃고 저스틴은 오히려 차분히 이성을 찾는다.

이 지점에서 저스틴과 클레어는 겹친다. 클레어가 보이는 이상 불안 증세(2부)는 저스틴이 앓던 증후(1부)와 비슷해 보인다. 이처럼 멜랑콜리와 히스테리는 유사해 보이지만 닮은 만큼 다르다. < 멜랑콜리 > 는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원망에 따른 자기 징벌과 포기에 가깝지만 < 히스테리 > 는 욕망하는 대상에 대한 신경질적인 공격과 불완전한 집착에 가깝다. 두 자매는 본질적으로는 유사 형질을 가지고 있지만 계급에서 차이'를 만든다. 그들은 유사한 불안에 시달리지만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잃어도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저스틴과 부와 명예를 잃어버리기엔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부르주아인 클레어'는 무기력하게 종말을 지켜볼 뿐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평등인가 !

나는 극중 저스틴의 대사에 공감한다. 지구는 사악하다. 없어져도 된다.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은 니체의 망치'다. 망치로 지구를 부순다.

 

 

 

 

+

이 영화는 추석 연휴 기간 동안 < 한국 영상 자료원 > 에서 상영하기에 보았는데 필름 영사 방식이 아닌 디지털 영사 방식이었다.  아, 개같은 디지털 영화들 ! 디지털 상영은 작은 모니터를 극장 스크린으로 옮긴 것에 불과해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반감시킨다. 필름 특유의 색감과 스크레치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프레임과 소음을 디지털 영화는 재현이 불가능하다. 디지털 영화가 선명한 화질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필름'은 디지털'이 가지지 못한 영역을 구축한다. 필름 상영은 디지털 상영보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  필름 상영으로 보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유다 2013-12-2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라스폰 트리에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미리 나쁜 일이 다가올 것을 예상하는 사고 때문에 평소보다 더 침착해지는 스타일이라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보니 감독=클레어. 2부 보며 클레어 뭥미?!하다 이해가 좀갔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5 14:01   좋아요 0 | URL
오호, 트리에'가 그런 성향이 있군요. 사실 전 트리에'를 별로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가 확실히 미학적 측면에서는 굉장한 감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 베스트 10 목록 : 21세기여, 조까라 !

 

 

           

 

 

망년회'가 다가오면 술 마시는 것 다음으로 흔한 것이 바로 베스트10 목록'이다. 올해도 2013년 영화 베스트 10 목록을 작성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자면 나는 그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다. 올해 내가 일반 극장에서 본 개봉 영화'는 < 마스터 > 와 < 카운슬러 > 가 전부였다. 그러니깐 1년 동안 멀티플렉스 극장'을 간 경우가 2번이 전부라는 말이다. 한때 밥 먹듯이 영화를 보았고, 한때 영화 때문에 밥을 먹고 살았지만 이제는 영화에 대한 열정을 접었다. 하지만 시네마떼끄'는 자주 다녔던 것 같다. 나는 21세기가 간절히 원했던 조용필'이 아니었기에 21세기 영화를 경멸했던 것 같다. " 21세기여, 조까라 ! " 당신이 그래티비'에 열광하고, 미스터 노바디'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할 때 나는 시네마떼끄에서 50년대 영화'를 보았던 것 같다. 낙원동 그 비루한 저잣거리에서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그 근처 순댓국을 먹고는 했는데 솔직히 고백하면 돼지 비린내 때문에 반만 먹다가 나온 적이 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순댓국을 먹는 행위는 사실 오기에 가까웠다. 축구를 보면서 맥주를 마셔야 일을 끝낸 것 같은 느낌이 들듯이, 낙원동 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면 왠지 5000원짜리 순댓국을 먹으며 낮술을 마셔야 될 것 같은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정성일이 영화에 대해서 주접을 떨 때마다 점점 영화와 멀어졌던 것 같다. 내가 그의 영화 평론집 < 언젠가 영화는.... > 을 읽고 나서 느꼈던 감정은 뻔뻔함'이었다. 영화에 대한 그의 갈망은 내가 보기에는 노망처럼 보였다. 영화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 그럴 일은 없다. 영화는 길고양이 한 마리에거 깨끗한 물 한 모금 주지 못한다. 영화가 수작을 거는 시대는 끝났다. 영화는 딜도'와 다르지 않다. 딜도가 3초의 오르가슴을 위해서 맹렬하게 덜덜덜 떤다면, 영화 또한 클라이막스를 위해 2시간 동안 덜덜 떨 뿐이다. 알딸딸한 기분에 쓴다. 아, 취해서 더는 못 쓰겠다. 그 전에 써두었던 글을 복사하겠다. 1위는 < 마스터 > 이고 2위는 < 카운슬러 > 다. 역순이어도 상관없다. ( 멜랑콜리아는 올해 영상원에서 보았다. ) 4위부터는 알라딘에 작성한 영화 리뷰 중 추천을 많이 받은 순이다.

 

 

 

1. 마스터 ㅣ 완전'하지 않은 존재는 안전'하지 않은 존재다.  ★★★★

 

< 마스터 / 폴 토마스 앤더스 감독 작품 > 이 불친절한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은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가 큰 몫을 했다. 특히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프레디 퀼'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마른 장작에 불을 지피울 때 타오르는 화려한 불꽃 같은 연기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젖은 장작을 태울 때 스멀스멀 쏟아지는 매케한 연기 같은 연기'를 하는 배우가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로버트 드니로가 선보이는 광기 어린 연기'보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조용히 읊조리는 조용한 연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600와트 출력인 스피커 앞에서 록큰롤'을 듣다가,  나이가 들면 싸구려 6와트짜리 트렌지스터 라디오 모노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듣는 것과 비슷한다.  호아킨 피닉스는 광기 어린 연기와 조용한 연기 사이를 오간다. 

 

축 내린 어깨, 불편한 걸음, 비뚤어진 입'은  흑백 고전 영화 < 노스페라투 ( 1922 年 ) / 무르나우 > 에 나오는 흡혈귀'를 연상시킨다. 그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퇴역 군인이며 흡혈귀'가 된 히스 레저(조커)다. 알콜중독자인 프레디 퀼'이 직접 제조한 마법의 술'은 사실 알코올이 아니라 피'다. 그는 피 같은 술로 허기'를 채우는 뱀파이어'다. 마스터인 랭케스터'가  떠돌이인 프레디 퀼이 주조'한 술(피)를 함께 나눠 마시는 순간 그들은 혈맹으로 맺어진 유사 부자 (父子)이거나 피로 맺은 굳은 맹세를 한 형제가 된다. 가족애와 형제애는 이 영화 전체를 사로잡는 아우라'다. 하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 서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된다. 이 영화에서 가족애는 신과 인간으로 확장이 될 수도 있으며 형제애는 동성애적 코드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영화의 서사가 불친절한 이유이다. 너무 딱 부러지는 줄거리'는 < 촌 > 스럽지 않은가 ?

 

내 개인적 취향을 고려한다면  : 이 영화를 동성애적 코드로 읽으면 랭카스터와 프레디의 관계는 < 도라와 프로이트 >의 관계와 유사하다. 마스터인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프로이트'이고, 환자인 호아킨 피닉스'는 신경쇠약 직전인 도라'를 연기한다. 프레디는 완전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안전하지 않은 존재이다. 마스터는 신앙이라는 힘으로 이 불안정한 존재'를 치유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상담 치료는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환자인 프레디'는 치료 과정에서 마스터인 랭카스터'를 사랑하게 된다. 환자가 품은 대상이 상담자인 랭카스터'에게 전이된 경우이다. 이 상담치료는 중단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도사린다. 이 상담 심리 치료는 환자의 전이와 함께 마스터의 역전이'가 함께 작용했기에 실패한 치료가 된 것이다. 프로이트가 환자(도라)의 전이 때문에 실패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의사인 프로이트의 역전이 때문에 실패했듯이 말이다. 

 

마스터'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랭카스터'는 완전한 인간이다. 그는 창조주이다. 신이며 동시에 작가'이다. 하지만 완벽한 존재인 그는 결국 실패하게 된다. 바위처럼 변하지 않는, 불안정한 존재 앞에서 그는 울먹인다. 그리고는 스스로 깨닫는다.  우리는 둘 다 실패한 존재'다. 이 담담한 실패'를 다룬 마지막 장면을 감독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 변하지 않는다. > 실패를 경험한 者가 나중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을 화려한 변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성공은 변화'가 아니다. < 의지 > 와 < 존재 > 는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 있고, 의지가 약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성공에 대한 의지의 세기'일 뿐이지 존재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조폭 두목이 신을 영접하고 나서 독실한 신앙인으로 변신했다는 서사'를 1%도 믿지 않는다. 본성은 바뀌는 것이 아니다.

 

영화 < 마스터 > 는 " 인간이라는 매우 쓸쓸한 불변성 " 에 대해 말한다. 모든 인간은 가변이 아니라 불변'이다. 실패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낙천적인 사람이다.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라고 말한 " 측은지심 " 은 타자의 실패에 대해 관대한 마음을 가질 때 발생한다. 반면 " 피도 눈물도 없는 " 태도는  실패에 대해 무자비한 마음이다. 영화 마스터'는 < 불변과 실패 > 에 대해서 말한다. 실패한 자가 실패한 자를 위로한다. 문태준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을 훔치면 "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내는 " 것이다. 그것은 같은 존재에 대한 지지'이며, 동시에 낙담이다. 그리고 계급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프레디 퀼은 변하지 않았기에 실패한 피조물이고, 마스터 랭카스터'는 피조물을 변화시키지 못했기에 그 또한 실패한 창조주'다. 인간은 실패한 존재다. 그렇기에 신도 실패한 주체다.

 

 

 

 

2. 카운슬러 ㅣ 연민이 배제된 공정함 !  ★★★

 

 

시나리오'는 영화를 만든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 아무리 뛰어난 시나리오'라고 해도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 디워 >보다 좋은 시나리오'라고 할 수는 없다. LA 다저스 중간 계투 요원인 벨리사리오 투수가 형편없는 구질로 구원은커녕 승리'를 날려먹는다고 해도 그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투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메이져리그'에서 선수로 뛸 수 있다는 것은 상위 1% 이내일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영화로 만들어지는 작품은 1%다. " 디워 시나리오 " 도 알고 보면 " 벨리 시나리오 " 같은 상위 1% 실력에 포함되는 메이져리그 선수 급'이다. 사실 문자로 작성된 시나리오'는 재미가 없다. 숙련된 배우의 입말'이 붙어야 생기'가 나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밍숭맹숭하다.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 카운슬러 >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아는 한, 코맥 매카시'보다 대사'를 멋지게 치는 작가는 보지 못했다. 그가 쓴 소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는 서사'는 물론이고 대사'가 숨이 막힐 정도로 뛰어났다. 힙합 정신'으로 말하자면 라임과 플로우'가 좋았다. 호흡이 짧은 대사'는 압축미를 살린 잠언록 같았다. 그는 잔인한 대사'일수록 아름다운 문장을 뽑아내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뛰어난 소설가가 헐리우드에 입성해서 시나리오를 썼다가 망신 당하는 꼴을 수없이 본 사람들은 코맥 매카시가 스릴러 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고 했을 때 걱정을 했지만 나는 그가 성공하리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시나리오를 쓸 때 실패하게 되는 이유는 소설가는 기본적으로 대사보다는 서술에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나리오 대사'를 쓴다고 했으나 사실은 " 서술 형태로 쓰여진 대사 " 를 선보인 것이다. 그러니 배우들이 대사를 칠 때 입에 짝짝 붙기는커녕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도는 것이다. 하지만 코맥 매카시는 소설가이면서도 시나리오 작가'보다 대사를 잘 치는 보기 드문 소설가'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고 했을 때 환호를 보냈다. 어쩌면 이 시나리오 작업은 차기작으로 대사로만 이루어진 소설을 쓰기 위한 워밍업( 준비 작업' )일지도 모른다.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이 이룩한 문학스타일'을 고집한 적이 없다. 하루키가 하루키 스타일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우려먹는다면 코맥 매카시는 매 작품마다 전작과는 다른 형식을 선보였다. < 로드 > 를 읽고 나서 < 핏빛 자오선 > 을 읽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두 거장이 만났다. 코맥 매카시가 시나리오를 쓰고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다. 각 분야에서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는 고집 쎈 두 노인'이 만났으니 수직적 관계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혐업이요, 통섭이지 한쪽이 군림하는 작업 스타일이 될 수는 없다. 이 협업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겠지만 한쪽 기'가 세서 기울어지면 어설픈 결과를 얻게 될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 카운슬러 > 는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나리오 작가인 코매 매카시'만 눈에 띄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파스빈더도 아니고 리들리 스코트도 아닌 코맥 매카시였다. 코맥 매카시에 대한, 코맥 매카시에 의한, 코맥 매카시를 위한 영화'였다. 내 눈엔 당신만 보이더라.

 

영화가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좋다는 소리'도 아니다. 하지만 나쁘지도 좋지도 않으니 결론은 나쁘다는 소리이다. 오리지날에 대한 각색이 필요한데 리들리 스코트는 우직하게 원작을 따랐다. 그는 코맥 매카시와 작업하면서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를 뛰어넘는 걸작 스릴러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코맥 매카시'가 워낙 강렬하다보니 연출에서 눌린 맛이 난다. 자기 스타일이 분명한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자신이 내야 할 목소리를 죽였다는 것은 감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코맥 매카시에 대한 예의 때문인 것 같다. 리들리 스콧 감독도 코맥 매카시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가 된 듯 싶어 웃음이 났다. 나이가 드니 서로 의지한다고나 할까 ? 하지만 영화 내용은 무시무시하다. 코맥 매카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악인은 사실은 운명을 결정하는 신'에 가깝다. 판사 ( 핏빛 자오선 ) , 시거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 카운슬러 ) 는 악인이 아니라 인간이 행한 악덕을 심판하기 위해 다가오는  검은 상복을 입은 저승사자'와 같다.

 

< 카운슬러 > 는 탐욕이 부른 권선징악'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비참을 다룬다. 운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은 자비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신에게 의지하기 위한 힐링'일 뿐이다. 신은 무자비한 존재도 그렇다고 자비로운 존재도 아니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가여삐여겨 한글을 맹글었지만 신은 인간을 가여삐여기지 않는다. 연민이 배제된 공정함, 그것이야말로 운명이라는 이름의 신'을 규정할 수 있는 정의'다. " 카운슬러 " 라고 불리우는 타락한 변호사가 마약 운반 작전에 개입되는 순간, 운명'은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 이 진행 과정에서 연민과 변명 그리고 탄식과 반성 따위가 만들어내는 휴머니즘은 없다. 그것은 마치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60초 후에 터지는 시계 폭탄과 같다. 누르는 순간 이미 60초 후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 

 

수열은 한치의 오차 범위 없이 진행된다. 1,2,3,4,5...... 그리고는 초침이 60초를 지날 때 예정대로 폭발할 것이다. 종이에 쓰여진 비문은 수정이 가능하지만 심장에 새겨진 비문'은 고칠 수 없다. 잘못 쓴 문장을 고칠 수 없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구겨서 버리고 다시 쓰는 것이다. 영화 속 ○○○○은 무자비하다기보다는 자신이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자'이다. 영화 < 카운슬러 > 는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냉정'을 다룬다. 가차없다.

 

 

 

 

번외 ㅣ2012년에 개봉한 영화를 2013년 영상원'에서 보았다. 2013년에 본 개봉 영화'가 없어서 4위부터는 알라딘에 쓴 영화에 대한 글로 대체한다. 추천 수'다.

 

 

 

3. 멜랑콜리아 ㅣ 지구는 사악하다.

  

< 멜랑콜리아' > 라는 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온다. " 다가온다 " 라는 동사가 밋밋해서 상황 파악이 안 된다면 " 돌진한다 " 라고 정정하자. 일주일 후면 지구는 행성과 충돌하여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이번에는 " resetting" 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 nothing " 인 상태가 된다.  < 인류 > 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 지구 > 라는 행성 자체가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신이 깜짝 이벤트로 준비한 " 노아의 방주 "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 만약에 당신'이라면 지구 종말 일주일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 ? 죽기 전에 해야 할 것'을 작성해 보자. ① 최고급 호텔'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밤을 보낸다. ② 제비집 요리와 불도장 그리고 거위 간 요리'를 주문한다. ③ 마당에 사과나무를 심는다 ④ 기타 등등......

하지만 이러한 버킷 리스트'는 한갓 희망사항에 불과할 것이 뻔하다. 당신은 최고급 호텔에 투숙할 수도 없고, 제비집 요리'는커녕 그 흔한 닭똥집 요리'조차 구경도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이면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는데 어느 미친 놈이 일터에 나와서 일을 할까 ? 그러므로 통장에 남은 돈을 펑펑 쓰다가 죽겠다는, 웃으면서 코 파며 잇힝 하는 버킷 리스트'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럴 땐, 차라리 무라카미 하루키가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 현명할 지도 모르겠다. 그는 사과나무를 심는 대신 자위'를 할 것이 분명하다. " 미안해, 아야코 양 ! 당신의 섹스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겠어. 난... 조용히 < 심슨가족' > 을 보면서 자위나 하겠어. " 결국 이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딱히 없다. 

지구 멸망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은 < 그날 > 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에 떨며 아름다운 지구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못한 죄책감을 호소하지만 쾌활한 멜랑콜리인 내가 상상하는 < 그날 > 은 꽤나 명랑'하다. 누군가에게 마지막 일주일'은 봄 방학' 같지 않을까 ?  입시 지옥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는 공부할 필요가 없으니 공부를 잘하는 놈이나 못하는 놈이나 달콤한 휴식이 되고, 암 환자들은 신이 내린 결정에 대하여 겉으로는 내색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웃으면서 코 팔 것이다. " 나만 억울하게 죽는 게 아닌 게야.... 히히히 ! "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그리 아쉬울 것 없다. 동일 환경 동일 노동에서 받는 대가'는 정규직의 절반이니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은 21세기 新 홍길동'이다. 서자'다.

희망이 거세된 노동만큼 힘든 것도 없다. 乙은 희망이 없다. 귀신을 잡는 해병대'와 (갑에게) 멱살을 잡힌 乙'의 공통점은 ? 영원하다는 점이다. 한 번 < 해병 > 은 영원한 해병이듯이, 한 번 < 을 > 은 영원한 을'이다. 그리고 뚱뚱한 여성들이여 ! 그날이 다가오면 다이어트'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지구 종말 시계는 44사이즈를 위해서 死死( 죽을 각오로 굶는 )하는 당신을 잠시나마 구원할 것이다.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아...... 좋아 ! 칼로리 제로 다이어트 콜라는 개나 주고 오리지날 코카콜라를 마시자 ! 일주일 후면 모든 것은 사라지나니 비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인류 멸망'을 비극으로 보는 관점은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다. 인류의 멸망은 오히려 지구 생태계에 두 번 다시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폐허가 된 아스팔트에서 고사리가 필 때 지구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많은 사람을 죽이면 전사가 되듯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재난이 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으면 신이 내린 한 수'가 된다. 나라면 < 그날 > 사랑하는 사람과 콘돔이 필요 없는 섹스를 하겠다 ! 지구가 불타 사라지기 전에 먼저 정염에 불타 죽으리라. 젖가슴을 욕심껏 움켜쥐고 거칠게 입 맞추리라. 평소 짝사랑하던 사람을 찾아가 고백을 해도 좋을 것이다. 상대가 거절하면 어떠랴 ! 퇴짜 맞고 돌아오는 길에 분풀이로 종로 3가 8차선 도로에다 똥을 싸도 좋다. 행운이라는 것은 신이 평소에 편애하던 놈들에게 내리는 선물이지만 죽음은  모두에게 내리는 평등이다.

영화 < 멜랑콜리아 > 는 " 그날 " 을 다룬다. 하지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 그날 > 이 아니라 < 그녀 > 에 대한 이야기'다.  행성과 지구 간의 충돌'은 곁가지 서사' 에 불과하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 여성 멜랑콜리와 히스테리'에 대한 보고서 > 이다. 영화는  " 1부 저스틴 "에 대한 이야기와 " 2 부 클레어 " 에 대한 이야기로 나뉜다. 결혼 피로연의 주인공인 저스틴은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다. 신부의 무관심과 무기력은 결국 파혼으로 끝을 맺는다. 그 어느 누구도 멜랑꼴리한 저스틴'(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 ) 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울증'이란 타자에 대한 공격을 멈추는 대신 화살의 촉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형태이다. 자신에 대한 징벌이 우울증'이다.

슬픔을 사람들과 나누면 애도'가 되지만 슬픔을 버리지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 간직하면 우울'이 된다. 그러니깐 우울이란 슬픔을 나누지도 못하고 소화시키지도 못한 체증 상태'다. 목구멍에 걸린 것인 생선 가시가 아니라 멜랑콜리'다. 저스틴'은 내부의 문제에 몰입하다 보니 외부(타자)에게 관심을 두지 못한다. 이 우울증은 타자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이 무관심은 곧 무기력'을 동반한다. 불면과 기면 그리고 체증에 따른 식욕 감퇴와 구토가 이어진다. 프로이트는 마지막까지 여성이라는 성'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가 없어서 쩔쩔맸는데 그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nothing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무책임이 아니다.  그가 보기에 여자는 알 수 없는, 아...... 그런 존재'다. 앞이 캄캄한 구멍'이다.

반면 클레어'는 동생과는 달리 타자와 맺는 사회적 관계를 중요시한다.  화려한 결혼 피로연'은 부르주아인 클레어의 욕망과 겹친다. 그녀는 결혼 피로연'이 성공적으로 치뤄지기를 간절히 원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생을 위한 따스한 배려와 근심 같지만 사실은 부르주아의 과시적 이기와 사려 깊은 욕심'일 뿐이다. 저스틴이 내부의 문제 때문에 " 멜랑꼴리 " 하다면, 클레어는 우울증을 앓는 동생의 모습이 피로연 참석자들에게 들통날까 봐서 " 히스테리 " 에 빠진다. 우울증에 걸려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동생을 이해하지 못하던 클레어'는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할수록 불안에 빠진다. 궁극에 다다를수록 클레어는 이성을 잃고 저스틴은 오히려 차분히 이성을 찾는다.

이 지점에서 저스틴과 클레어는 겹친다. 클레어가 보이는 이상 불안 증세(2부)는 저스틴이 앓던 증후(1부)와 비슷해 보인다. 이처럼 멜랑콜리와 히스테리는 유사해 보이지만 닮은 만큼 다르다. < 멜랑콜리 > 는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원망에 따른 자기 징벌과 포기에 가깝지만 < 히스테리 > 는 욕망하는 대상에 대한 신경질적인 공격과 불완전한 집착에 가깝다. 두 자매는 본질적으로는 유사 형질을 가지고 있지만 계급에서 차이'를 만든다. 그들은 유사한 불안에 시달리지만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잃어도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저스틴과 부와 명예를 잃어버리기엔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부르주아인 클레어'는 무기력하게 종말을 지켜볼 뿐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평등인가 !

나는 극중 저스틴의 대사에 공감한다. 지구는 사악하다. 없어져도 된다.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은 니체의 망치'다. 망치로 지구를 부순다.

 

4. 남쪽으로 튀어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51795 추천 17회

5.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44796 추천 16회

6. 영화에 대한 딴지와 대꾸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76677 추천 14회

6. 주홍글씨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64845 추천 14회

8. 미저리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54801 추천 13회

9. 록키 호러 픽쳐 쇼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68737 추천 12회

10. 애마부인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56092 추천 10회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2013-12-21 0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1 05:25   좋아요 0 | URL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80986

마침 마스터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네요... 카테고리 영호관을 클릭하면 나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1 05:25   좋아요 0 | URL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80986

마침 마스터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네요... 카테고리 영호관을 클릭하면 나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1 05:25   좋아요 0 | URL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80986

마침 마스터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네요... 카테고리 영호관을 클릭하면 나옵니다...

에피큐리언 2013-12-21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까꿍.
이동진은 열심히 분류해놨던데요.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1 05:26   좋아요 0 | URL
그분이야 직업이니 당연히 해야지요. 전 요즘 영화보는 맛을 잃었습니다.

새벽 2013-12-2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앗, 남쪽으로 튀어,랑 애마부인, 저 글들은 못봤던 글 같은데 읽어봐야겠네요.

저도 ***님께 설문 메일을 받았는데... 저야 케이블, VOD로 지난 영화만 챙겨보는 처지이니...
저 역시 앙케이트에 응하질 못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1 12:02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아마 언젠가 읽으신 글일 겁니다.
저도 극장은 못 가고 케이블에서만 가끔 보는지라 참여하고 싶지만
참여할 수가 없네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자칼의 날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93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석인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총 맞은 것'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책 가운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은 하서 출판사에서 < 세계 추리 문학 전집 > 으로 나온 " 재코올의 날 " 이다. 발행일이 1974년이다. 당시 정가가 1700원인데, 나는 이 책을 2500원 주고 샀다. 물론 세로쓰기'다. 하지만 구닥다리'라고 해서 모양새나 만듦새가 볼품없을 거란 생각은 착각에 가깝다. 튼튼한 사철방식으로 만들어진 양장본은 클래식한 맛이 있다. 더군다나 황변 현상으로 인해 누렇게 변색된 종이가 바스라질까 봐서 조심스럽게 넘기다 보면 < 장미의 이름 > 에 나오는 눈먼 호르헤 수사'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착각이 드는 이유는 종이 재질이 꽤나 거칠어서 점자로 된 책을 읽는 기분이 나기 때문이다. 손끝에서 나무의 섬유질이 느껴질 정도'이다. 이 느낌이 좋다 ! 오래된 책이 가을 벼처럼 누렇게 변색이 되는 이유는 산성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요즘 사용되는 종이는 중성지'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중성지로 만들어진 요즘 책'은 기생오라비처럼 창백해서 광원이 직사광일 경우 눈부셔서 잘 보이지 않는다. 닝기미, 어찌나 미끄러운지 종이를 넘기다가 손가락이 미끄러질 판이다. 이미지 컷이 삽입된 사진이나 미술 관련 책이 아니라면 중성지'보다는 산성지'가 낫다. 종이 위에 손끝을 올릴 때 느껴지는 담백하면서도 건조한 촉감은 애교는 없으나 속정이 깊은 애인 같다. 더군다나 책장을 넘길 때 중성지처럼 붙지 않고 쉽게 낱낱이 떨어져서 침을 묻히거나 종이를 구겨서 넘길 필요가 없다. 또 하나의 장점은 종이 표면이 고양이 혓바닥처럼 까끌까끌해서 색연필로 밑줄을 긋고 나면 깊이 스며들어 색이 진하다. 중성지에 그어진 밑줄이 수채화 물감으로 그은 획 같다면, 산성지에 그어진 밑줄은 유화 물감으로 그은 획 같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산성지의 수명이 500년이라는 점이다. 이 책이 1974년에 발행되었으니 적어도 2400년까지는 그 모양새를 유지한다고 보면 된다. 이래저래 중성지보다는 산성지'가 책을 만드는 데 더 적합한 종이가 아닐까 싶다. 시작부터 입바람을 불어제쳐서 " 들어가기 말풍선 " 을 크게 한 감이 있다. 내 허파'가 큰 탓이다.

 

새마을 운동이 한참이던 1970년대에는 외래어 표기법이 " 쟈칼 " 이 아닌 " 재코올 " 인 모양이다. 20세기 표기법'은 묘하게 중절모와 클래식한 양복으로 멋을 낸 모던보이적 감수성을 전달한다. 개인적 취향을 고백하자면 이탈리아'보다는 이딸리아'라고 표기할 때 더 그 시대적 감수성이 묻어난다. 그래서 조용필만 간절히 원했던 21세기의 지랄같은 편애와 표기법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창비의 표기법을 지지한다. (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다 /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 ) " 21세기여 ! 시바, 조용필만 좋아하지 말고 나도 좀 좋아해 달라 !!! " 재코올 씨'는 킬러'다.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으니 프로패셔널 킬러'다. 중국 거상 왕서방도, 이탈리아 마리아치 안토니오 반들반들도, 한국 무도인 마루치, 아루치 그리고 똘이 장군의 암살도 모두 재코올 씨 솜씨'다.

 

조용필이 < 킬리만자로의 표범 > 에서 주장했듯이 고독한 사냥꾼은 혼자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직업이다. 눈 덮인 산 정상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킬러는 표범처럼 혼자'다. 오다 가다 다 만나면 텔레토비'이듯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먹잇감을 노리는 놈은 하이에나'다.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 바닥에 나뒹구는 머리가 쌓일수록 재코올 씨'에 대한 명성은 명성을 넘어 전설이 되었다. 그에게 불가능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위기가 닥친다. 불란서 대통령 샤를 드골'을 암살하라는 제의였다. 그는 한동안 망설인다. 다들 아시겠지만 대통령 암살은 바람난 남편을 암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 ! 그렇다고 이 제안을 거부하면 재코올 씨가 그동안 쌓은 전설적 스펙'에 오점을 남기게 되는 것 ! 그는 곰곰 생각하다가 이 제안을 수락한다. 돈에 욕심이 났기보다는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이 위험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한다. BBC 기자로서 로이터 해외 특파원을 지냈던 프레더릭 포사이스'는 그 특유의 기자질을 발휘해서 재코올 씨가 대통령 암살을 준비하는 과정을 르포 형식으로 자세하게 다룬다. 이 소설은 재코올 씨가 작업을 하기 전에 치뤄야 할 온갖 준비(잔무)를 집요하게 다룬다. 기자 정신이 발휘된 대목이다. 일반적인 스릴러 소설은 전설적인 킬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꾀죄죄한 잔무'를 생략해 버리는데 프레더릭 포사이스는 오히려 꾀죄죄한 잔무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내가 무릎을 탁 하며 아, 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독자는 재코올 씨의 꾀죄죄한 잔무를 통해서 그도 먹기 살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잡다한 잔무에 시달리는, 나와 비슷한 샐러리맨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어느새 시도 때도 없이 시가나 피워대는 드골의 안위보다는 재코올 씨의 성실함에 빠져든다.

 

읽다 보면 재코올 씨에게 하트 빵빵'을 날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무모한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 물론 그는 실패한다. 이미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드골이 암살당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성실한 재코올 씨가 실패할 것이란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독자가 알고 싶은 것은 이 실패가 얼마나 성공에 근접했는가 이다. 재코올은 성공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간발의 차이로 실패한다. 드골이 그 무수한 무공훈장을 가슴에 달았다면, 성실한 재코올 씨'는 르베르 경감이 쏜 MAT 49형 자동 카아빈 총에서 발사한 9밀리 탄이 재코올의 가슴에 훈장처럼 박혔다. 아,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어느새 그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던 것이다. 이 소설은 대통령 암살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주제는 불가능한 것에 대한 두려움 없는 도전'이다. 범죄 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스포츠 서사이며 이루어질 수 없는, 아.... 르베르 경감과의 사랑'이다.  

 

그는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정상에서 고독하게 죽는 것을 선택했다. 오고 가다 다 만나게 되는,  텔레토비 꿈동산에서의 지루한 일상'보다는 간절히 원했으나 늘 어긋났다가 마주치게 되는 킬리만자로 산 정상에서의 운명적 만남을 원한 것이다. 오우삼 감독이 만든 < 첩혈쌍웅 > 은 피 튀기는 대결을 다루고 있지만 " 남성적 혈맹이라는 우정을 가장한 동성애적 관계 " 를 은연 중에 전파하듯이, 재코올 씨와 르베르 경감 또한 동성애적 코드가 이 작품에 스며든다. 그것은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기댄다. 그들은 꼭 만나야 한다. < 재코올의 날 > 은 그들이 서로 만난다는 전제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서사 진행 방식이다. 예상대로 대통령을 암살해야 하는 킬러 재코올과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경감 르베르는 만난다. 편지 왕래'로만 알고 지내다가 드디어 만나게 되는, 그런 만남처럼 말이다. 하지만 잘못된 만남만큼 애끓는 통증'은 없는 법이다. 그들 앞에는 짧은 만남 끝에 긴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르미에르 2013-12-20 0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때는 유럽이 "구라파" 였죠 -_-;
구라를 잘치는 나라들이 모여서 그랬나?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05:17   좋아요 0 | URL
옛날에는 프랑스를 불란서'라고 하고,
베를린을 백림'이라고 했죠. 동백림사건은 동백나무 숲 사건이 아니라
동베를린사건'이라는 거... ㅎㅎ

르미에르 2013-12-2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행여나 이번 앨범 잘 되면 같이 영화나 한편 만들어요.
초 절정 상업적인 걸로다가...

그리고;;;

한곡 더 있어요 가사 쓰실거...;;

메인요리.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10:20   좋아요 0 | URL
정중히 사양합니다. 나중에 음악 공부 좀 하고 그때 가서
좋은 가사 쓰도록 하겠습니다. 멋모를 때에나 덤볐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더군요...

유구일턴 2013-12-2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다시보면 오히려 밀레니엄 시리즈의 3부작이 더 흥미진진합니다.

포사이드의 명작은 역시 퍼시발 모자이크죠
인생은 모자이크 짜맞추기같은 끈기와 흥미진진함에 그묘미가 있는것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11:05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까 ? 전 소설도 좋고 영화도 좋았어요. 브루스 윌르스가 연기한 자칼은 정말 끔찍한 영화였지만
프레드 진네만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어째 자문료는 구하셨습니까 ?
의사는 진료비 30초당 얼마를 받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 이번에 책 내셨잖아요 ? 제목 좀 알려주십시요.

노이에자이트 2013-12-21 14:20   좋아요 0 | URL
아...퍼시팔 모자이크의 작가는 로버트 러들럼이죠.본 아이덴티티를 쓴 그 남자...

르미에르 2013-12-20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ㅠㅠ
아쉽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1 07:04   좋아요 0 | URL
이번 앨범 대박날 겁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2-2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칼이 신분 위장을 위해 전문가 찾아가는 장면이 자세했죠.마음만 먹으면 실제 범죄에도 응용할 수 있게 아주 세밀히 묘사했더군요.실제로 육영수 여사 암살범으로 체포된 문세광의 애독서였다고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1 16:25   좋아요 0 | URL
아마 저자가 기자이다보니 리얼한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철저하게 자료 조사를 했다고 하더군요.
확실히 스럴러 소설이 가지고 있는 허술한 리얼리티를 이 작품에서는 볼 수가 없더라고요...
광장한 작품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국민학교 졸업장이 전부'다. 성경책을 필사하는 데 평균 2년이 걸렸다. 초등학생 같은 글씨체'가 부끄러워서 한 글자 한 글자 펜 글씨로 써내려가다 보니 세월이 그리 흘렀다. 그렇게 해서 모인 성경 필사본이 4권이다. 당신이 읽은 유일한 책은 성경책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시장에 가면 물건값을 흥정하지 않는다. 덤을 주면 거절한다.  값을 흥정해야 될 곳은 백화점이지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 가난한 시장 상인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흥정을 하다니....  오히려 떵떵거리며 큰소리로 흥정해야 될 곳은 백화점이란다. 이 에미'는 못 배웠지만 적어도 그 정도는 안다. " 그 말은 마치 공산당 선언문'에 나오는 노동자여 단결하라, 처럼 들린다. 물론 어머니가 < 자본론 > 을 읽었을 리는 없다. 

 

- 욕 먹을 각오로 쓴다 中

 

 

 

 


 

 

 

 

 

독서란 결국 염치'를 배우는 행위 !

 

 

           

                               

티븨를 거의 보지 않으니 시간이 남는다. 그렇다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지는 않는다.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다. 남는 시간에만 책을 읽으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술 마시고 노래 하고 춤을 추다가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고래 사냥'이나 하러 가니 책 읽을 시간은 당연히 없다. 남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과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말장난 같지만 사실은 굉장한 차이'가 있다. 아침 출근길에 둘 다 전철 안에서 책을 읽는다고 가장을 해 보자. 그래도 차이는 명확하다. 명란'처럼 빡빡한 지옥철'에서 서서 책을 읽기란 불가능하다. 운이 좋아 앉아서 갈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책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남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이다. 반면 일부러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와 한가로운 전철 안에서 책을 읽는 행위는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낸 경우'이다. 이점은 또 있다. 한 시간 일찍 일터에 도착했으니 그 시간 또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한때 직장 생활을 하면서 1년에 200여 권이나 되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출근길이 1시간 40분 정도 걸렸는데 시간에 맞춰 출근길에 오르면 일하기 전부터 지옥철에서 시달려서 이미 떡이 된 상태가 되었다. 왜 그리 먼 곳에 사느냐고 묻지 마라. 시바, 가난해서 전세값이 보다 싼 데로 옮기다 보니 외각 지역'으로 몰린 탓이다. 그래서 아예 2시간 일찍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야, 좋더라 ! 전철 안에서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장소도 없다. 회사에 2시간 일찍 도착했으니 잔무가 없는 이상은 전철에서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결국 아침 출근길에만 4시간 정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이 아닌 자연과학서인 경우는 한 권당 평균 독서 시간이 4시간이니 아침에만 책 한 권'을 읽을 수가 있었다. 여기에 퇴근길에도 책을 읽으면 종합 6시간 ! 여기에 시간을 조금 더 투자하면 소설 한 권'을 읽을 수 있다.  

 

이런 방식을 선택하면 집에서 책을 읽지 않아도 길에서만 하루에 책 한 권은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그때에는 책을 사는 양보다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서 택배가 지연되면 지랄을 떨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은 책을 읽는 속도보다 책을 사는 속도가 빨라서 어느새 읽지 않은 책이 200여 권이나 된다. 한숨만 나온다. 그동안 나는 책을 빨리 읽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내가 터득한 방식'은 이렇다. 자연 과학서는 목차를 꼼꼼히 살핀다. 살핀다기보다는 차라리 외운다. < 목차 > 란 일종의 40자로 요약된 줄거리'다. 책은 대부분 여러 장으로 갈래가 지는데 갈래가 진 장'에는 대부분 소제목이 붙고, 다시 그 소제목 아래 여러 갈래로 나뉜다. 이 제목들은 결국 갈래(들)의 핵심 줄거리'다.

 

■ 예를 들어 < 이기적 유전자 > 챕터 9장의 제목은 " 암수의 다툼 " 이다. 페이지 229 페이지 ~ 268페이지'까지'가 암수의 다툼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 암수의 다툼 " 이란 장 아래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1. 배우자간의 대립 2. 성의 전략 3. 이기적인 배우자 4. 남성다운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 5. 핸디캡 원리 6. 두 성간의 차이'가 있다. 소제목 카테고리인 " 이기적인 배우자 " 는 총 13페이지에 걸쳐 있는데 이 작은 카테고리의 주제는 이기적인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작은 카테고리에서 명심해야 될 부분은 이기적인 배우자를 증명하는 1페이지 정도 분량의 글이다. 이런 식으로 핵심을 파악하면 총 6페이지 분량의 핵심이 만들어지고 이 핵심의 본질을 기억하면 암수가 어떻게 다툼을 벌이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 책을 읽지 않고도 대강 알 수 있다. 그러므로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다 ( 피에르 바야르 ) "

 

줄거리'를 파악하면 불필요한 곁가지'를 치는데 유리하다. 곁가지는 듬성듬성 읽어도 된다. 독서가 반드시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리는 게 낫다. 반면 뿌리'를 찾으면 집중해서 읽는다. 사실 저자는 뿌리 글'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곁가지 글'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에 뿌리 글 가지고만 글을 쓰면 논문 분량은 될 수 있지만 책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책을 쓰는 사람은 곁가지를 만든다. 곁가지 글을 생략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차이는 곁가지 글'에 있다. 다만, 곁가지 글에 홀랑 마음을 빼앗기면 정작 뿌리 글'은 놓치는 수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독서 습관이 아닌가 싶다. 이 나쁜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목차를 외우는 것이 좋다. ( 외우기 힘들면 종이로 만든 1회용 서표로 목차를 적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참고로 해도 된다. ) 이렇게 하면 책 읽는 속도가 2배로 빨라질 뿐만 아니라 핵심을 놓치는 일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이 방식이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문학과 철학의 공통점은 느리게 사유하는 방식이다. 느림을 공유한 것이 문학과 철학이니 이 분야의 책을 읽을 때에도 느리게 읽어야 한다. 방법은 없다. 그냥 느리게 읽어야 한다. 이런 책은 길에서 읽지 말고 집중이 잘 되는 도서관이나 집 책상 위에서 읽어야 한다. 은은한 30촉 알전구 스탠드를 켜놓고 말이다. 그리고 책을 고를 때에는 서지 정보를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예를 들어서 뇌과학'에 대한 책을 10권 정도 읽을 결심을 하고 책을 사기로 했다고 치자. 아무 정보도 없는데 무엇을 고를 것인가 ? 그럴 때에는 무조건 서지정보 란에 기록된 출간 년도'를  보는 게 빠르다. 뇌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영역이다. 어제의 주장은 오늘에 와서는 틀린 정보가 된다. 문학은 고전일수록 좋지만, 과학은 최근에 나온 정보일수록 좋다. 최신 유행하는 소비 트랜드를 공부한답시고 80년대에 나온 책을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 " 잊는다는 행위 " 에 대해 배신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한때 나는 소설을 읽는 행위가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소설을 읽지 않았다. 왜냐하면 읽고 나면 대부분 세세한 줄거리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 폭풍의 언덕 > 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히스클리프는 사랑에 눈이 멀어서 거친 남자가 되었다는 것만 기억하지 자세히는 모른다. 이 정도 빈약한 기억'이라면 차라리 알라딘 검색창에 < 폭풍의 언덕 > 을 친 후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 정보를 그때 그때 활용하는 게 낫다. 그런데 이러한 투정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에 가깝다. 인간의 뇌'란 참으로 오묘해서 우리는 줄거리를 잊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뇌 속에 있는, 단풍나무로 만든 거대한 서랍장 속에 줄거리가 차곡차곡 들어가 있다. 이 독서 정보들은 나중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호출된다. 당신이 무심결에 작성한 페이퍼에도, 시 나부랭이도, 소설 습작 나부랭이에도 필사되어 있다. 다만 우리는 모를 뿐이다. 현학적으로 읊조리는 게 아니다.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어서 그렇다.

 

나는 평소 < 갈라파고스 > 에 대한 머릿속 상상을 끄집어내서 낙서처럼 페이퍼에 작성하는 버릇이 있는데, 상상 속 인물 하나로 인디언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더스틴 호프만이 인디언으로 나왔던 < 작은 거인 > 이 생각났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작지만 위대한 인물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래서 작지만 위대한 영혼'이라는 말을 압축해서 " 리틀 빅 혼 " 이라는 늙은 인디언 이름을 지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이름은 실제로 있는 이름이었다. 스티븐 킹의 <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 를 읽다가 " 리틀 빅 혼 전투 " 라는 문장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농담 안 보태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머릿속에서 지은 이름인데 어떻게 스티븐 킹이 자기 것인양 뻔뻔하게 인용한 것일까 ? 이유는 뻔하다. 나는 " 리틀 빅 혼 " 이라는 문장을 어디서 읽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답은 미국 인디언 멸망사를 다룬 <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라는 책에 있었다. 이 책에서 " 리틀 빅 혼 " 이라는 문장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문장에 노란 색연필로 밑줄을 그었다는 것도 함께 ! 이 책을 읽은 지가 2006년(책을 사면 반드시 책 뒷장에 책을 산 년도'를 표시하는데 2006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 이니 어언 7년이 지났지만 잊지 않고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불현듯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니깐 어차리 읽고 나면 다 잊을 내용이라면 책을 읽지 말고 그때 그때 줄거리 요약을 읽으면 된다는 주장은 엉터리'라 할 수 있다.  뇌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 모 시인과 카피레프트'를 두고 대판 싸운 적이 있다. 시인이 주장하는 바는 개인 블로그에 시를 인용하려거든 저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내 주장은 좆같은 소리 하지 말라는 주장이었다.

 

저작권 운운하길래 한마디했다. 당신이 쓴 시는 당신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 수많은 책에 기록된 문장에서 나온 것이라고. 그러니깐 그것은 창작이 아니라 필사 행위'라고 ! 한글이라는 공공재로 글을 쓰는 주제에 어디서 감히 재산권을 운운하는 것일까 ? 그러는 당신은 왜 공공재인 한글로 시를 썼는가, 혹시 당신이 만든 문장 가운데 그 옛날 읽었던 누군가의 문장을 무의식적으로 필사한 것인 아니었을까 ? 그 이후 그 시인의 시는 읽지 않는다. 원래부터 존나 후진 시만 쓰는 시인이었다. 삼천포로 빠진 느낌이 드는데 하여튼 잘 잊어야 잘 읽을 수 있다. 독서의 기본은 잊기 위해 읽는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인 문장들은 반드시 재활용된다.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창작은 필사의 결과'이다.

 

내가 < 1년에 독서 200권 읽기 >라는 목표를 내다버린 이유는 책 많이 있는다고 염치'나 양심' 따위를 배우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멀리 볼 필요 없다. 나를 보면 답은 나온다. 나는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는 편에 속한다. 에세이 써서 밥 먹고 사는 어느 문인'은 수필에서 콩나물 흥정을 하는 시장 풍경을 보며 한국의 정을 느낀다고 썼다. 읽다가 책을 덮었다. 백화점에만 가면 체면 때문에 흥정도 못하고 비싼 콩나물이나 사는 주제에 늙고 추레한 시장 할머니에게는 만만하다고 반말 찍찍거리며 악착같이 콩나물 한줌 더 빼오는 행위는 미덕이 아니라 미더덕'이다. < 검소 > 와 < 알뜰 > 이라는 단어'를 혼동하면 안 된다. 검소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미덕이지만, 알뜰'은 반드시 검소'와 뜻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비'를 아끼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 행위'가 강제로 덤을 요구해서 얻는 짓이라면 미덕이 될 수는 없다. 검소는 염치 있는 소비 행위이고, 알뜰은 염치 없어도 가능한 소비 행위'이다.

 

■ 국가 판공비로 자기 식구들과 모여서 스테이크나 썰었던 사실이 발각되어 낙마한 모 대법관 후보 가족 입장에서 보면 이 행위는 알뜰한 소비에 속하지 않을까 ? (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 스테이크 썰었으니 말이다. )

 

책 안 읽은 속물과 책 많이 읽은 먹물 사이에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다. 그 사실이 늘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교과서 말고는 책을 평생 딱 한 권 읽으신 어머니'는 < 공산당 선언문 > 을 읽은 적은 없으나 노동자여, 단결하라 ! 라는 뜻은 알고 계시다. 시장 가면 흥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가난한 사람이 파는 물건인데 염치없이 흥정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덤을 주면 손사래를 친다. 책에서 염치를 배우지 못한다면 안 읽는 게 낫다. 독서란 결국 염치를 배우는 행위이다.

 

 

 

+

그나저나 술을 적당히 마셨더니 오타와 비문이 많은데 알아서 읽으시길....  내일 다듬어야 겠다. 역시 술을 코가 비뚤어지게 마셔야 한다.

 


댓글(3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수다맨 2013-12-19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상업적인 목적이라면 독자가 시나 소설을 자유로이 인용해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 저작권법 자체가 애매한 게 많습니다. 일테면 논문이나 평론에서 시/소설을 인용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신문이나 주간지 같은 곳에 실리는 칼럼이나 에세이에서 누군가의 시/소설을 인용하려면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더군요. 하여튼 이 저작권법 규정이 되게 미묘하고 모호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9 03:58   좋아요 0 | URL
이게 코에 걸면 코걸이이고 귀에 걸명 피어싱입니다.
이제는 평론이나 아니면 그냥 일반 책에 인용할 때에도 반드시 저작권료를 내야 합니다.
시 한 줄에 얼마 두 줄 얼마 전문 인용시 얼마.. 이렇게 말이죠.
아마 이진경 씨인가요 ? 그 사람이 책에 시 몇 줄 인용했다가 저작권 내라고 해서 성질나서 접었다는 기사를 본 적 있습니다. 전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시인이란 작자가 그냥 개인 블로거가 시 좋다고 시인 이름 밝히고 올린 걸 가지고
지랄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ㅏ.

rendevous 2013-12-19 0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원-서울 왕복하다 보면 거의 3시간 정도 되다 보니 저도 지하철 독서를 많이 하고, 나름 찬양하는 편인데-지옥철에서 책 읽으면 책 읽기가 힘든 것보다 책의 크기, 책을 들기 위해 취해야하는 포즈(최대한 팔을 몸으로 붙여야 하는데 어느 정도 뻗어야 하는...) 등 때문에 나 하나 책보겠다고 민폐 끼친다는 느낌이 더 강하더라고요 ;; 그래서 그럴 때를 대비해 살림지식총서/ 아주 작은 책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묘수를 생각해냈답니다 ^^(문지 시집보다 작은!)

그런데 안경점에 가보니 약간 난시가 있다고... 아무래도 흔들리는 지하철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술은 안 마셨지만 새벽 4시에 쓰다 보니 비문 투성이.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9 04:3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 일찍 나오세요. 새벽 6시에 출발하면 됨...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됩니다.
새벽 6시 전철 안에서 책을 읽으면무지막지하게 잘 읽힘....
이게 처음에만 힘들지 그냥 밤 9시에 잠을 자서 4,5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면 참 편합니다.
저는 술 마시는 날을 제외하면 보통 8,9시에 잠을 자서 <집에 오자마자 저녁 먹고 바로 잠 ... > 새벽 3시에 일어납니다. 지금은 리듬이 완전히 깨졌지만 말이죠..

Forgettable. 2013-12-19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취해서 글은 못읽었고 ㅋㅋ 같이 깨있어서 기분 좋음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9 07:20   좋아요 0 | URL
아, 눙물.... 그래도 코가 비뚤어지게 마셨으니 어디입니까.
전 시바, 재수없는 것들하고 마셔서 소주 한 병도 다 안 마셔서 멀뚱멀뚱입니다.
내가 술안주로 돼지껍데기 먹자고 했더니 껍데기는 서비스로 나오니 소금구이나 먹자고 해서
그리 먹었는데 시바... 끝끝내 안 나오더만요....
어제도 소금구이 먹었는데 이틀 연속 먹으려니 이거... 영.. 땡기지 않았음...
옆사람이 마침 김밥 한 줄 가지고 있길래 그거만 먹었습니다.


+

그나저나 아까 포 님 덧글은 제가 임의로 삭제했습니다.


마립간 2013-12-19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처럼 곰곰발님의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저는 자연과학책을 꼼꼼히 읽습니다. 자연과학의 원리로 부터 철학을 추출하려 하거든요. 소설책을 포함한 문학책은 대충 읽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머리속 어딘가에 (아마 무의식이겠죠.) 남아 있으리라 기대만 합니다.

저도 전철에서 책을 읽습니다. 1년에 4번 정도는 내려야할 정거장을 놓치고 이 정도의 실수는 선방했다고 생각합니다.

의문 ; 독서를 하면 염치를 배울까요?

내년 신년 계획은 책 10권을 읽는 것이 목표입니다. 책을 100권씩 읽다보니 무게 있는 책을 읽지 않아서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9 08:23   좋아요 0 | URL
아, 마립간 님이시군요. 생각해 보니 문학을 대충 읽어도 될 거 같네요. 어차피 잊을 테니 말이죠. ㅎㅎㅎ.
하여튼 저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철학, 문학을 모두 1 : 1 : 1 : 1 의 비율로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하루 소설 읽으면 다음은 과학서.. 이런 식으로 일부러 고릅니다.
전 독서를 삼치'라고 생각합니다.

염치, 수치, 가치'를 아는 것 ! 독서를 해서 삼치를 얻는 사람도 있고 삼치를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요.
김수영 시인은 독서를 통해 삼치를 배운 인간이고, 서정주는 독서를 통해 삼치를 배우지 못한 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소 2013-12-19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드제목은 '책을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인데, 클릭해서 들어오니 '독서란 결국 염치를 배우는 행위'라고 쓰여있네요. 후자가 훨씬 좋네요. 탁월! 가끔 곰곰발님이 제목 쓰시는 거 보면 어디 학원이라도 다니시나 싶은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전 블로그에 글 쓸때 젤 힘든게 제목정하기라 가끔은 무제라고 쓰거든요.

폰으로 쓰다보니 잘못해서 글이 올라가서 수정 ㅋㅋㅋ

이 글에서 가장 좋은건 댓글에 있네요. 삼치! 음, 삼치를 배워야겠습니다. 꽁치, 참치, 멸치 말고 삼치~ (저급한 언어유희네요-_-;)

독서를 위해 시간을 낸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세상에!! 맨날 책읽을 시간 없다고 짜증만 부렸는데, 시간을 내면 되는 거였다니.. 도를 깨친 듯 깨닳으며 오늘은 시간을 내서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오늘도 공감 꾹!^^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9 10:00   좋아요 0 | URL
삼치 좋아하시는군요... ㅋㅋㅋㅋㅋㅋ. 삼치 맛있죠. 비린내도 잘 안나고.. 사실 전 생선 안 좋아합니다. 물고기를 좋아하는 거지 말입니다.

염치, 수치, 가치 = 삼치'를 배우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염치는 내가 할 행동에 대한 잘못된 것에 대한 부끄러운 감정인 반면
수치는 내가 한 행동도 포함되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부끄러워 할 수 있는 감정이죠. 예를 들면 이라크 전 파병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게 좋은 예가 될 터이고 말이죠. 그리고

가치'는 말 그대로 어떤 대상에 대한 올바란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이 삼치만 알면 김수영 같은 선비가 되는 거죠. 그나마 한 가지만 알아도 좋은 놈 소리 듣습니다.
노무현의 정치는 잘못한 부분이 많지만 적어도 염치를 아는 정치가였습니다.
반면 이명박은 염치도 없고,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모른다는 것에 대한 수치도 못 느낀 각하셨죠. 삼치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대다난 분임...




엄동 2013-12-19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술이 안깨서 곰발님글임에도 정독"은 못함.
점심 후 재독하겠음.

어제 마지막으로 갔던 순대국집에서
점심 약속이 또 잡혔네요

쥔장이 순대귀신붙은줄 알겠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00:41   좋아요 0 | URL
음... 새벽 늦게까지 순대국집에서 마신 술
다음날 점심 먹오러 다시 오는 여자...
뭔가 쿨하고 멋진데요... ㅋㅋㅋㅋㅋㅋㅋ
순대는 잘 잡수셨습니까 ?

엄동 2013-12-20 09:3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그러믄요
쫄깃하고 속꽉찬 그것을 제가 을마나 좋아하는데요

아 금요일이네요
한주 내내 송년회속에서 허우적댄 듯
주말엔 또 주말송년회가 있지요

오라는데 다 가는것도 올해까지만 해야겠어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10:22   좋아요 0 | URL
전 왜 이번 주에 다 몰렸나 했더니 진짜 알짜베기는 좋아하는 사람과 소중한 사람과 보내는 게 본격적으로 다음주 아닙니까... 전 그냥 망년회 함 해야지, 이 소리에 안 할 수도 없고 찌끄러기들 모아서 바쁜 날 피해서 잔뜩 한 거 같아요. 꿀꿀함니다..

엄동 2013-12-20 13:0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찌끄러기들마저도 아쉬운 순간은 오더라구요
살다보면 .

그런거죠 왜.
연말 자리까지 안가버리면
정말 끊어질거 같은 맘에 반은 의무로 가는 자리들.

근데유
언젠가 곰발님이 한 말마따나
인간관계를 줄여나갈줄 아는게 어른일테니
슬 정리하려구요. 늦었찌 싶기도 하지만.

막상 끊으면 또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14:25   좋아요 0 | URL
심플한 관계가 좋죠. 한국인은 지나치게 관계 의존적입니다.
그건 혼자 생활하는 것을 배우지 못해서 그래요.
밥을 먹어도 혼자 먹으면 슬픈 것 같고,
영화도 혼자 보면 그렇고, 쇼핑도 혼자 하면 슬프고....
소로우의 삶을 터득하면 그렇게 사람에 목 매달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적당히 외로움을 알아야 아름다운 고독을 얻게 되는 법.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인간은 고독을 아는 자죠.
여자건 남자건 말입니다. 고독한 인간이 멋져보이잖아요.
딱 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멋진 개나 고양이 한 마리'만 있으면
됩니다. 그것 이외의 관계는 다 불필요하지 싷습니다..

여울 2013-12-1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치와 '잊어버려도 남는 것이다'란 독서의 사치?를 가져갑니다. 좋은 독서되시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00:42   좋아요 0 | URL
여울마당 님이시군요. 올리시는 글 늘 틈틈이 읽고 있씁니다...
삼치가 사실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나를 비롯해서
왜 글케 못 하는지 모르겠어요..

토드 2013-12-19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을 읽으니 독서가 하고 싶어 지네요 ㅎㅎㅎ 요즘에 책을 읽지 않아요.. 점점 바보같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어요.. ㅠ 역시 티비를 끊어야..!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00:43   좋아요 0 | URL
토드 님, 혹시 네이버에서 활동하셨던 그 토드 님 아닙니까 ? 반갑습니다.
티븨 끊는 거 정말 간단해서 그냥 티븨 버리세요.
정말 중요한 것은 다시 보기'를 해서 컴으로 보면 됨요...

엄동 2013-12-19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심. bb
저도 먼옛날
일산에서 역삼까지 다닐때 (출근시간 약1시간반)
앉아서 펼친책은 몇페이지 못넘기고
고개 떨구며 잠들기 일쑤였는데 말이죠 ㅎ

마자요
덜컹이는 지하철에서 쉭쉭넘기며 읽을 책이 있는 반면
방문닫고 둘둘둘 커피한잔 타놓고 음미하며 읽을 책이 있죠

서지정보에도 동감합니다만.
최근의 일이죠
매력쩐다는 야구에 함 빠져볼 생각으로
급하게 구매한 책(아싸 반값~)이
야구읽어주는남자"였죠
사놓고 보니, 파트원 소제목에
'미리보는 2012 프로야구'가 뙇! ;;

다소님의 댓글에 덧댓한
"염치, 수치, 가치 = 삼치'를 배우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라는 건
잊기 싫어 메모합니다.
살아가며 어떤 방식으로든 호출해야할 문장인듯하여.


오늘은
스크롤올려 한문단 한문단 읽으며 댓글 달았음!
이렇게 성실한 곰발님 팬임. 칭찬해주셈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00:46   좋아요 0 | URL
전 집에 오면 그냥 저녁 먹고 잤습니다. 9시에 자면 새벽 3,4에 깨어나요. 그 시간이 전 좋더라고요....
죠용하고 말이죠...
제가 책 살 때 제일 먼저 보는게 출간년도입니다.
최신 과학이나 트랜드 서적 같은 경우에 말이죠...
오늘은 참 잘했어요. 도장 5개 선물하겠습니다.
알라딘에 가셔서 곰곰발이 줬다고 하고서 5만 원 현금으로 달라고 하

시면 따귀 맞습니다..ㅎㅎ

rtour 2013-12-19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난 생선 좋아합니다. 오늘도 송년회 중인가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00:52   좋아요 0 | URL
혹시 ? 심부름센터 직원 붙였습니깡 ? ㅎㅎㅎㅎ
연신네에 가면 오불'이라고 오징어불고기 50년 한 집이 있어요.
그곳에서 한 잔 했습니다. ( 맥주 ) 애새끼들이 연말 특집에는 애인이나 가족들이랑 놀려고
이런 날은 일부러 저를 부르네요..크리스마스날은 아무도 부르는 사람이 없어요..

kaka 2014-01-2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연과학서를 네시간안에 읽을 수 있다는게 신기하네요. 저는 왠만한 전문적인 소양을 갖추지 않았다면 그정도로 빠르게 읽기는 힘들던데... 만약 그 정도의 전문적인 소양을 갖췄다면 그 책을 읽을 필요가 없거나 이미 읽었을거구요. 저도 아무것도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읽는 잡스런 종이뭉치 같은 경우는 하나에 삼사십분정도면 다 읽긴 합니다만..
자연과학서/혹은 철학족으로 조금 빠지는 심리학서 같은 경우는 수식과 개념이 많아서 대개 한페이지를 읽고 이해하고, 대충이라도 해당 내용의 논리적인 오류를 검증하는데 한시간씩 걸리거나 그나마 그도 못해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다빈한데. 그 이해를 하는 과정에서 거처야할 모델화, 시뮬레이션을 하는데도 저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말이죠.

여튼 대단하시네요. 그걸 한번읽어보고 다 아실 정도의 내공이시면 보통이 아니신 듯. 게다가 원서를 읽으시는게 아니시라면 우리나라 번역본은 제대로 된게 하나도 없는 개판이라 읽는데 짜증이 나실만도 한데(특정 용어같은 경우, 단어 자체나 혹은 문맥을 기준으로 추론해서 도출한 개념을 중간중간 사전을 찾아서 영어로 바꾼뒤에 위키페디아에서 검색해서 확인해 봐야 하는 경우도 있고)..

인용하신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도 비전공자에게는 그리 만만한 내용이 아닐텐데 말이죠...
그 인용 문구에 있는 핸디캡 이론의 개념과 그에 대해 도킨스씨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이미 읽기도 전에 목차만 봐서 알 정도면 도대체 어느정도의 내공이 있어야 되는지 궁금하네요.

제 일천한 능력으로 봤을 때, 글쓴이님은 거의 예언가 수준으로 보이네요.
부럽네요. 머리가 많이 좋으신듯.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4 10:54   좋아요 0 | URL
졸라 미안하군요 빨리 읽어서...
보아하니 우리나라 번역본이 개판이라고 하는 걸 보니 존나 원서만 읽으시나 봅니다. 오, 서양물 에비앙 좀 드셨나 봐요 ? ㅎㅎㅎㅎㅎㅎㅎㅎ 졸라 부러워...
영어 좀 하시는듯 ?!
부럽네요. 머리가 졸라 좋으신듯. 대가리가 좀 크면 아이큐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뙇 !!!!!

kaka 2014-01-24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남에게 자랑할 수준의 영어실력은 못됩니다. 일본어라면 좀 자랑 할 만하지만요. 그래도 참고로 할 만한 수준은 됩니다.

kaka 2014-01-24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상하네요. 책을 좀 읽으셨다는 분이라면 우리나라 자연과학 교양/전공서적이 얼마나 개판으로 번역됐는지 아실만도 한데.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4 11:2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죄송합니다 ! 뙇

pSyCHe 2014-04-04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모로 많은 울림을 주는 글입니다.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염치가 돌아오는 기분이네요.ㅜ
 
달은 어디에 있나 1
김신용 지음 / 천년의시작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내 친구는 아리랑치기범'이었다. 저녁에는 술을 마셨고, 밤에는 벽돌을 들었다. 주변엔 온통 앵벌이들뿐이었다. 러미날 먹고 환각 상태에서 지하철을 탔다. 문어처럼 흐느적거리며 바닥을 기어다니면 벌이가 쏠쏠했다. 누가 더 문어 연기를 잘하느냐에 따라서 그날 벌이'가 정해졌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문어 새끼'이라고 조롱하고는 했다. 러미날은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했다. 뼈가 녹았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 적십자 구호 단체'였다. 잡히면 그들은 다리를 자르거나 팔을 자르거나 했으니깐 말이다. 그래서 앵벌이들은 경찰보다 적십자를 무서워했다. 내가 아는 앵벌이'는 종종 말하고는 했다. " 형, 우리 행불되진 말자 ! " 그들은 거리에서 쓸쓸히 죽어가는 것을 행불이라고 했다. 행불이란 " 행방(행적)불분명 "의 약자였다. 거리에서 죽은 노숙자들은 대부분 행불 처리' 되었다. 경찰은 사건 기록지에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대신 < 행불 > 이라고 적었다. 행불되지 말자고 말했던 그 친구는 동료 칼에 찔려 죽었고 그의 단짝 떠벌이 친구는 적십자에 끌려가서 다리가 잘렸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났다.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 다리 하나 없으니 장사가 더 잘 돼 !!! "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늙고 병든 창녀들이 모이고, 그 창녀의 아이들이 자라고, 러미널을 먹고 쓰러지고.......  김신용의 시'는 그런 양동의 풍경을 시로 썼다. 그것은 나만이 알 수 있는 사인'이었다. 우리는 남대문 지게꾼을 소금장수'라고 부르거나 밀가루 부대'라고 놀렸다. 한여름 땀을 흘리고 나면 등짝에는 땀이 마르고 난 허연 백태 같은 소금기'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소태를 보며 깨달았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  아니다. 통증이다. 저기... 소금장수 지나간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09094 저기 소금 장수 지나간다 中

 

 

 


 

 

 

 

 

김신용 : 매혈은 해도 매문'은 하지 않겠다 !

 

 

           

내가 머문 곳은 후암동과 양동 사이'였다. 일종의 공동경비구역이요, 화개장터'였다. 한쪽은 시장이 있어 서민들이 바글바글거렸지만 바로 건너편은 창녀촌과 앵벌이와 돼지엄마들이 살았다. 당시 나는 " 퍼펙트 월드 " 라는 비디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다 쓰러져가는 4층짜리 건물을 소유한 여주인의 아들이 비디오방을 꾸려나갔다. 장사는 잘됐다. 비디오방 객실만 40개가 넘었으니 주위에서는 꽤 큰 규모였다. 주로 근처 학원에 다니는 재수생들과 고시생들이 단골이었다. 그리고 또 한 집단, 앵벌이'들이 일을 나가기 전에 찾는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그들은 영화를 보면서 러미널이라는 감기약을 10~20 정도 삼켰다. 들어갈 때는 멀쩡했지만 나올 때는 문어처럼 흐느적흐느적거리기 일쑤였다. 러미널이라는 감기약을 다량 복용하면 환각 증세가 나타난다. 침을 흘리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지를 못한다.

 

그들은 바로 그 상태에서 일터로 향한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가까스로 서울역 계단을 내려가거나 기어서 스며들어간다. 그러니깐 당신들이 손가락질하며 " 앉은뱅이 흉내 " 를 낸다는 지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실제로 앵벌이들은 약 기운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니 말이다. 알약을 많이 삼킬수록 돈벌이는 좋았다. 사람들은 보다 더 끔찍한 빈곤에 동정을 보내니깐 말이다. 학처럼 고고하게 구걸을 하는 놈보다는 지렁이가 되어서 당신이 뱉은 바닥을 길 때 돈벌이가 좋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맨정신으로는 쪽팔리니깐 일하기 전에 알약을 먹는 것이다. ( 추측이 아니다. 왜 알약을 삼키냐는 내 질문에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들도 이런 짓 하는 거 쪽팔리다고, 그래서 약을 먹는다고..... ) 적어도 앉은뱅이 시늉을 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하지만 이 러미널은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과대 복용할 경우, 뼈가 녹아서 절단을 해야 만했다. 아이들이 제일 두려워했던 것은 경찰이 아니라 적십자'였다.

 

적십자에 끌려가면 뼈를 절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그들이 그렇게 말했으니깐 말이다. 약을 과다 복용해서 위험한 순간이 오거든 적십자를 부르지 말고 그냥 경찰을 불러달라고, 그런 말을 한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 양동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창녀의 아이들이었다. 벽돌로 취객의 머리를 내리쳐서 돈을 훔치는 녀석들'이었다. 그들은 그 행위를 " 아리랑치기 " 라고 했다. 지금은 잊었지만 양동의 아이들과 앵벌이들이 쓰는 말은 대부분이 은어'였다. 내가 지금도 기억하는 은어 중 하나는 " 행불 " 이었다. 아이들은 자주 우리 행불되지 말자, 행불되지 말자 를 말하고는 했다. 그것은 일종의 다짐이었다. 내가 웃으면서 행복과 불행을 줄여서 < 행불 > 이냐고 물었을 때 키 크고 눈 선한 녀석은 우스면서 " 행방불명 " 을 줄여서 행불'이라고 가르쳐주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은 죽으면 사망 처리가 되지만 앵벌이들은 죽으면 행불 처리'가 된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던, 그 쓸쓸한 목소리를 아직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 친구의 말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키 크고 눈 선했던 녀석은 동료 앵벌이와 싸우다가 칼에 찔려 죽었다. 그 사실을 키 작고 명랑한 " 나불이 " 란 별명을 가진 친구가 알려주었다. 나불이가 말했다. " 그 새끼, 행불되었어.... " 내가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무릎 아래 절단된 상태였다. 내가 그를 끌고 국밥집에 가서 설렁탕을 사주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묻자 나불이'는 신이 나서 나불대기 시작했다. 나는 잘려나간 나불이의 무릎 아래'를 보고 왜 그들이 적십자를 두려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적십자의 잘못이 아니다. 자르지 않으면 다리 전체를 잘라야 할 판이니 말이다. 김신용의 < 달은 어디에 있는가 > 를 읽다가 " 행불 " 이란 단어와 만났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 고백록이란 생각이 들었다. ( 장정일과의 대화에서 김신용은 실제와 허구의 비율이 90 대 10'이라고 말한다. )

 

불현듯, 지난 일들이 생각났다. 소설가가 앵벌이처럼 바닥을 기어다니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은어였다. 소설 속에는 그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은어들이 쏟아졌다. 그러니깐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 김신용이 쓴 자전적 일기'였다. 서울역 양동 바닥에서 뒹굴던 창녀의 자식들과 앵벌이들이 사용하던 잊혀진 언어'를 다시 듣는 것은 끔찍했다. 장정일의 지적처럼 이 소설은 " 전무후무한 소설 " 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장 쥬네 같은 작가'는 김신용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나는 김연수나 편혜영 같은 문장에 질려버렸다. 그들은 빈곤한 리얼리티를 감추기 위해서 화려한 수사로 문장을 써내려갔다. 그것은 붕어의 비린내를 감추기 위해서 독한 양념을 과다하게 넣은 붕어찜 요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연수의 글은 감성은 넘치는데 고통은 전무했고, 편혜영의 글은 기괴함은 넘치지만 정작 공포는 없었다.

 

 편혜영이 쏟아내는 상징은 지나치게 문학적이어서 뻔뻔했다. < 재와 빨강 > 에서 보여준 그로테스크한 세상은 이미 모더니즘 소설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우려먹은 소재가 아니었던가 ? 그리고 공지영은 정의를 말하기 위해서 신파를 끌어들였고, 신경숙은 엄마를 이야기하면서 엄마라는 존재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 빌어먹을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엄마가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다. 엄마의 케어'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케어'다. 그것은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으니 세상 탓하지 말고 내 탓을 하라는 혜민의 뻔뻔한 지적질과 다르지 않았다. 한국 현대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아버지 때문에 고통스럽고 불안하다며 징징거리는 서사'는 그 어떤 리얼리티'도 획득하지 못한 공염불처럼 보여서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헛헛했다. 그들은 진실을 말한다기보다는 그저 평론가의 입맛에 맞는 문장을 선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 달은 어디에 있는가 > 은 소비에트 문학의 주류였던 " 일인칭 수기 양식 " 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문학보다는 르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읽다 보면 도스토예프시키의 영향이 보인다. 또한 밑바닥 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장 주네'가 읽힌다. 소설은 16살 소년이 쪼록 ( 매혈 ) 으로 시작해서 지게꾼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소년원, 재활원, 갱생원, 교도소를 거치는 과정이 생생하다. 그는 자신이 체득한 고름으로 별다른 수사 없이 담담하게 고백한다. 기술보다는 기록에 충실한 문장이다. 메타 픽션이 유행하는 이 시대에 너무 고리타분한 리얼리즘 타령인가 ?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드는 의문은 이토록 훌륭한 소설이 왜 문단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었는가, 라는 생각이었다. 편혜영이나 천운영이 말하는 현대인의 불안에 대해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 문단'은 왜 정작 이 뛰어난 작품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가 말이다. 

 

문단과 거리를 두면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경고일까 ? 문단 돌아가는 꼴을 보면 헛구역질이 나온다. 평론가의 주례사 비평이 홍수가 된 지는 이미 오래'이다. 특정 작품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하는 평론가는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평론가가 멍석을 깔고 마음껏 놀 수 있는 지면은 몇몇 문예지가 전부인데 이 문예지를 끼고 도는 것이 대부분 대형 출판사들이니 자신이 팔고 있는 책이나 소설가에 대해 스크래치를 가하는 놈은 괘씸죄'가 적용되어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결국은 무쇠도 베던 날카롭던 칼은 무디어져서 종이 하나라도 벨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그때 비로소 멍석은 열린다. 문예지에 돈줄을 대는 대형출판사가 밥줄로 평론가를 길들이는 방식이다. 그때부터 카랑카랑하던 평론가는 주례사 비평을 남발하기 시작한다. 형편없는 작품에 대해서 놀라서 다시 본다, 라는 쪽팔린 100자 평만 쏟아내면서 말이다.

 

평론가는 대형 출판사 꼬리를 물어야 떡고물이 생긴다. 그리고 뜨고 싶은 소설가나 시인'은 문예지 편집위원 꼬리를 물기 위해 달달한 문장을 선보인다. 소설 < 달은 어디에 있는가 > 는 철저하게 문단으로부터 소외된 작품이지만 이 작품을 잊으면 안 된다. 어쩌면 김신용이라는 작가는 후대에 가장 뛰어났던 작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플롯이 정교하지 못한가 ? 주제가 지나치게 반복적이어서 지루한가 ? 커다란 서사와 문장의 서술이 서로 엇박자를 내서 불협화음을 냈는가 ? 그따위 평론가 흉내는 집어쳐라. 김신용은 매혈을 해서 하루하루를 견디는, 배고픈 삶을 살았지만 적어도 매문을 해서 등 따스웁고 배부른 삶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rtour 2013-12-18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보겠음.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8 03:36   좋아요 0 | URL
제 기준에는 탁월한 걸작입니다.

새벽 2013-12-18 04:2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이 분이 즐인님..? :) rtour는 불어 '회귀' 약자일까요..

새벽 2013-12-18 0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미 생각 좀 있는 시인들 사이에선 정말 시 쓸줄 아는 시인으로 흠모 대상이라고도 하던데.. 저도 이 책 읽고 싶네요.

참, 후암동 쪽이면 그때 대성학원이 아니라 정일학원이 있었죠. (읭? ^^;)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8 05:02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 정일학원이었나요 ? 헤헤 잘 모르겠음.. 아, 맞다. 정일학원이군요....옛날에 그 자리가 대성학원이었지만... 오 새벽 님 잘아시는군요...

수다맨 2013-12-18 0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내 등에서 한고조가 푸드덕 나래치며 날아올랐던가?" 라는 마지막 문장이 생각납니다.
이문열의 '금시조'가 예술혼을 드러내는 다소 작위적인 상징이라면, 김신용의 '한고조'는 피와 눈물, 부랑과 허무의 느낌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상징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김신용 선생이 전보다는 안정적으로 사시더라구요. 늦게나마 결혼도 하셨고(정관수술을 두 번 해서 아이를 못 낳으시죠), 이제는 편안한 노년을 보내시는 것 같더군요. 아, 그리고 수의 만드는 일은 중국산 수의가 하도 들어오는 바람에 결국엔 접었다고 하시네요-_-;;;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8 05:05   좋아요 0 | URL
수의 만드시는 일은 접으셨군요. 이제 슬슬 문단에서도 김신용에 대해 입질이 오는 것 같습니다. 제가 평론집은 많이 안 읽어보았지만 김신용에 대한 언급은 거의 본 적이 없어요. 한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 정도 퀄리티'면 문단에서 호들갑을 떨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만...

푸르푸르 2013-12-18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신용시인은 이미 등단할 때부터 한국의 장주네로 통하며 많이 회자되고 기대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제가 그 바닥을 어슬렁거리던 10 몇년 전에는 이곳 저곳에서 자주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다만 그런 평론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이 땅에 주례사비평과 잘 보이기 위해 잘 나가는 작가들을 언급하는 비평외에 작가를 발굴하는 비평(사실 김신용시인에 대해서라면 발굴도 아니지만)은 찾아보기 힘든 까닭 아닐까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8 09:33   좋아요 0 | URL
비평가의 몫은 발굴 아닌가요 ? 남들 다 평한 값에 똑같은 말을 얹어서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잖습니까.
하여튼 김신용이란 작가가 작가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졌군요. 흠흠..

엄동 2013-12-1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괴하거나 멍한,
혹은 떨리는 눈빛을 가진"이 아닌
눈 선 했 던 녀석"이라니.

아
징하게 처절하고 암흑같은 밑바닥 인생에
한줄 지우개질을 한 듯 한 느낌임.

저도 읽어보겠음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8 12:37   좋아요 0 | URL
앵벌이들이 대부분 굉장히 순합니다.
순하니깐 앵벌이 하는 겁니다.
그 녀석은 고등학교 중퇴했던 녀석인데 밴드부에서 나팔을 불었다고 하더라고요...
앵벌이 중엔 권투선수도 있었습니다. 아마츄어 권투 선수..

즐인 2013-12-18 17:2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음..순하지 않음 양아치나 조폭 똘마니라도 되었을 듯도 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9 00:34   좋아요 0 | URL
주먹질 좀 했으면 벌써부터 조직에 몸 담았을 겁니다. ㅎㅎㅎ.
싸움 못해서 앵벌이하는 겁니다. 하여튼 제가 만난 앵벌이들은
하나같이 싸움을 못했음...

만화애니비평 2013-12-18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덕세계의 비평세계는 너무 무궁무진하게 놀 수 있지만, 같이 놀 사람이 없어요...오덕오덕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9 00:3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맞는 말임. 뭘.. 맞장구를 치고 싶어도 알아야 맞짱구를 칠 거 아닙니까...

유다 2013-12-25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보니 꼭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장 주네도 좋아하고, 김연수/김중혁 부류를 싫어하는지라.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5 13:59   좋아요 0 | URL
사실 소설로만 보면 그닥 좋다고는 할 수 없스니다. 하지만 날것이 주는 거친 면이 있어요.
지금은 김연수 같은 너무 달달한 소설이 대우받으니 상대적으로 이런 소설이 소중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