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국민학교 졸업장이 전부'다. 성경책을 필사하는 데 평균 2년이 걸렸다. 초등학생 같은 글씨체'가 부끄러워서 한 글자 한 글자 펜 글씨로 써내려가다 보니 세월이 그리 흘렀다. 그렇게 해서 모인 성경 필사본이 4권이다. 당신이 읽은 유일한 책은 성경책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시장에 가면 물건값을 흥정하지 않는다. 덤을 주면 거절한다. 값을 흥정해야 될 곳은 백화점이지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 가난한 시장 상인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흥정을 하다니.... 오히려 떵떵거리며 큰소리로 흥정해야 될 곳은 백화점이란다. 이 에미'는 못 배웠지만 적어도 그 정도는 안다. " 그 말은 마치 공산당 선언문'에 나오는 노동자여 단결하라, 처럼 들린다. 물론 어머니가 < 자본론 > 을 읽었을 리는 없다.
- 욕 먹을 각오로 쓴다 中
독서란 결국 염치'를 배우는 행위 !
티븨를 거의 보지 않으니 시간이 남는다. 그렇다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지는 않는다.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다. 남는 시간에만 책을 읽으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술 마시고 노래 하고 춤을 추다가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고래 사냥'이나 하러 가니 책 읽을 시간은 당연히 없다. 남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과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말장난 같지만 사실은 굉장한 차이'가 있다. 아침 출근길에 둘 다 전철 안에서 책을 읽는다고 가장을 해 보자. 그래도 차이는 명확하다. 명란'처럼 빡빡한 지옥철'에서 서서 책을 읽기란 불가능하다. 운이 좋아 앉아서 갈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책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남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이다. 반면 일부러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와 한가로운 전철 안에서 책을 읽는 행위는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낸 경우'이다. 이점은 또 있다. 한 시간 일찍 일터에 도착했으니 그 시간 또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한때 직장 생활을 하면서 1년에 200여 권이나 되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출근길이 1시간 40분 정도 걸렸는데 시간에 맞춰 출근길에 오르면 일하기 전부터 지옥철에서 시달려서 이미 떡이 된 상태가 되었다. 왜 그리 먼 곳에 사느냐고 묻지 마라. 시바, 가난해서 전세값이 보다 싼 데로 옮기다 보니 외각 지역'으로 몰린 탓이다. 그래서 아예 2시간 일찍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야, 좋더라 ! 전철 안에서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장소도 없다. 회사에 2시간 일찍 도착했으니 잔무가 없는 이상은 전철에서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결국 아침 출근길에만 4시간 정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이 아닌 자연과학서인 경우는 한 권당 평균 독서 시간이 4시간이니 아침에만 책 한 권'을 읽을 수가 있었다. 여기에 퇴근길에도 책을 읽으면 종합 6시간 ! 여기에 시간을 조금 더 투자하면 소설 한 권'을 읽을 수 있다.
이런 방식을 선택하면 집에서 책을 읽지 않아도 길에서만 하루에 책 한 권은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그때에는 책을 사는 양보다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서 택배가 지연되면 지랄을 떨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은 책을 읽는 속도보다 책을 사는 속도가 빨라서 어느새 읽지 않은 책이 200여 권이나 된다. 한숨만 나온다. 그동안 나는 책을 빨리 읽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내가 터득한 방식'은 이렇다. 자연 과학서는 목차를 꼼꼼히 살핀다. 살핀다기보다는 차라리 외운다. < 목차 > 란 일종의 40자로 요약된 줄거리'다. 책은 대부분 여러 장으로 갈래가 지는데 갈래가 진 장'에는 대부분 소제목이 붙고, 다시 그 소제목 아래 여러 갈래로 나뉜다. 이 제목들은 결국 갈래(들)의 핵심 줄거리'다.
■ 예를 들어 < 이기적 유전자 > 챕터 9장의 제목은 " 암수의 다툼 " 이다. 페이지 229 페이지 ~ 268페이지'까지'가 암수의 다툼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 암수의 다툼 " 이란 장 아래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1. 배우자간의 대립 2. 성의 전략 3. 이기적인 배우자 4. 남성다운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 5. 핸디캡 원리 6. 두 성간의 차이'가 있다. 소제목 카테고리인 " 이기적인 배우자 " 는 총 13페이지에 걸쳐 있는데 이 작은 카테고리의 주제는 이기적인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작은 카테고리에서 명심해야 될 부분은 이기적인 배우자를 증명하는 1페이지 정도 분량의 글이다. 이런 식으로 핵심을 파악하면 총 6페이지 분량의 핵심이 만들어지고 이 핵심의 본질을 기억하면 암수가 어떻게 다툼을 벌이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 책을 읽지 않고도 대강 알 수 있다. 그러므로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다 ( 피에르 바야르 ) "
줄거리'를 파악하면 불필요한 곁가지'를 치는데 유리하다. 곁가지는 듬성듬성 읽어도 된다. 독서가 반드시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리는 게 낫다. 반면 뿌리'를 찾으면 집중해서 읽는다. 사실 저자는 뿌리 글'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곁가지 글'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에 뿌리 글 가지고만 글을 쓰면 논문 분량은 될 수 있지만 책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책을 쓰는 사람은 곁가지를 만든다. 곁가지 글을 생략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차이는 곁가지 글'에 있다. 다만, 곁가지 글에 홀랑 마음을 빼앗기면 정작 뿌리 글'은 놓치는 수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독서 습관이 아닌가 싶다. 이 나쁜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목차를 외우는 것이 좋다. ( 외우기 힘들면 종이로 만든 1회용 서표로 목차를 적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참고로 해도 된다. ) 이렇게 하면 책 읽는 속도가 2배로 빨라질 뿐만 아니라 핵심을 놓치는 일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이 방식이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문학과 철학의 공통점은 느리게 사유하는 방식이다. 느림을 공유한 것이 문학과 철학이니 이 분야의 책을 읽을 때에도 느리게 읽어야 한다. 방법은 없다. 그냥 느리게 읽어야 한다. 이런 책은 길에서 읽지 말고 집중이 잘 되는 도서관이나 집 책상 위에서 읽어야 한다. 은은한 30촉 알전구 스탠드를 켜놓고 말이다. 그리고 책을 고를 때에는 서지 정보를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예를 들어서 뇌과학'에 대한 책을 10권 정도 읽을 결심을 하고 책을 사기로 했다고 치자. 아무 정보도 없는데 무엇을 고를 것인가 ? 그럴 때에는 무조건 서지정보 란에 기록된 출간 년도'를 보는 게 빠르다. 뇌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영역이다. 어제의 주장은 오늘에 와서는 틀린 정보가 된다. 문학은 고전일수록 좋지만, 과학은 최근에 나온 정보일수록 좋다. 최신 유행하는 소비 트랜드를 공부한답시고 80년대에 나온 책을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 " 잊는다는 행위 " 에 대해 배신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한때 나는 소설을 읽는 행위가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소설을 읽지 않았다. 왜냐하면 읽고 나면 대부분 세세한 줄거리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 폭풍의 언덕 > 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히스클리프는 사랑에 눈이 멀어서 거친 남자가 되었다는 것만 기억하지 자세히는 모른다. 이 정도 빈약한 기억'이라면 차라리 알라딘 검색창에 < 폭풍의 언덕 > 을 친 후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 정보를 그때 그때 활용하는 게 낫다. 그런데 이러한 투정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에 가깝다. 인간의 뇌'란 참으로 오묘해서 우리는 줄거리를 잊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뇌 속에 있는, 단풍나무로 만든 거대한 서랍장 속에 줄거리가 차곡차곡 들어가 있다. 이 독서 정보들은 나중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호출된다. 당신이 무심결에 작성한 페이퍼에도, 시 나부랭이도, 소설 습작 나부랭이에도 필사되어 있다. 다만 우리는 모를 뿐이다. 현학적으로 읊조리는 게 아니다.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어서 그렇다.
나는 평소 < 갈라파고스 > 에 대한 머릿속 상상을 끄집어내서 낙서처럼 페이퍼에 작성하는 버릇이 있는데, 상상 속 인물 하나로 인디언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더스틴 호프만이 인디언으로 나왔던 < 작은 거인 > 이 생각났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작지만 위대한 인물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래서 작지만 위대한 영혼'이라는 말을 압축해서 " 리틀 빅 혼 " 이라는 늙은 인디언 이름을 지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이름은 실제로 있는 이름이었다. 스티븐 킹의 <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 를 읽다가 " 리틀 빅 혼 전투 " 라는 문장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농담 안 보태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머릿속에서 지은 이름인데 어떻게 스티븐 킹이 자기 것인양 뻔뻔하게 인용한 것일까 ? 이유는 뻔하다. 나는 " 리틀 빅 혼 " 이라는 문장을 어디서 읽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답은 미국 인디언 멸망사를 다룬 <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라는 책에 있었다. 이 책에서 " 리틀 빅 혼 " 이라는 문장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문장에 노란 색연필로 밑줄을 그었다는 것도 함께 ! 이 책을 읽은 지가 2006년(책을 사면 반드시 책 뒷장에 책을 산 년도'를 표시하는데 2006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 이니 어언 7년이 지났지만 잊지 않고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불현듯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니깐 어차리 읽고 나면 다 잊을 내용이라면 책을 읽지 말고 그때 그때 줄거리 요약을 읽으면 된다는 주장은 엉터리'라 할 수 있다. 뇌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 모 시인과 카피레프트'를 두고 대판 싸운 적이 있다. 시인이 주장하는 바는 개인 블로그에 시를 인용하려거든 저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내 주장은 좆같은 소리 하지 말라는 주장이었다.
저작권 운운하길래 한마디했다. 당신이 쓴 시는 당신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 수많은 책에 기록된 문장에서 나온 것이라고. 그러니깐 그것은 창작이 아니라 필사 행위'라고 ! 한글이라는 공공재로 글을 쓰는 주제에 어디서 감히 재산권을 운운하는 것일까 ? 그러는 당신은 왜 공공재인 한글로 시를 썼는가, 혹시 당신이 만든 문장 가운데 그 옛날 읽었던 누군가의 문장을 무의식적으로 필사한 것인 아니었을까 ? 그 이후 그 시인의 시는 읽지 않는다. 원래부터 존나 후진 시만 쓰는 시인이었다. 삼천포로 빠진 느낌이 드는데 하여튼 잘 잊어야 잘 읽을 수 있다. 독서의 기본은 잊기 위해 읽는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인 문장들은 반드시 재활용된다.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창작은 필사의 결과'이다.
내가 < 1년에 독서 200권 읽기 >라는 목표를 내다버린 이유는 책 많이 있는다고 염치'나 양심' 따위를 배우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멀리 볼 필요 없다. 나를 보면 답은 나온다. 나는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는 편에 속한다. 에세이 써서 밥 먹고 사는 어느 문인'은 수필에서 콩나물 흥정을 하는 시장 풍경을 보며 한국의 정을 느낀다고 썼다. 읽다가 책을 덮었다. 백화점에만 가면 체면 때문에 흥정도 못하고 비싼 콩나물이나 사는 주제에 늙고 추레한 시장 할머니에게는 만만하다고 반말 찍찍거리며 악착같이 콩나물 한줌 더 빼오는 행위는 미덕이 아니라 미더덕'이다. < 검소 > 와 < 알뜰 > 이라는 단어'를 혼동하면 안 된다. 검소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미덕이지만, 알뜰'은 반드시 검소'와 뜻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비'를 아끼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 행위'가 강제로 덤을 요구해서 얻는 짓이라면 미덕이 될 수는 없다. 검소는 염치 있는 소비 행위이고, 알뜰은 염치 없어도 가능한 소비 행위'이다.
■ 국가 판공비로 자기 식구들과 모여서 스테이크나 썰었던 사실이 발각되어 낙마한 모 대법관 후보 가족 입장에서 보면 이 행위는 알뜰한 소비에 속하지 않을까 ? (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 스테이크 썰었으니 말이다. )
책 안 읽은 속물과 책 많이 읽은 먹물 사이에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다. 그 사실이 늘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교과서 말고는 책을 평생 딱 한 권 읽으신 어머니'는 < 공산당 선언문 > 을 읽은 적은 없으나 노동자여, 단결하라 ! 라는 뜻은 알고 계시다. 시장 가면 흥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가난한 사람이 파는 물건인데 염치없이 흥정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덤을 주면 손사래를 친다. 책에서 염치를 배우지 못한다면 안 읽는 게 낫다. 독서란 결국 염치를 배우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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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술을 적당히 마셨더니 오타와 비문이 많은데 알아서 읽으시길.... 내일 다듬어야 겠다. 역시 술을 코가 비뚤어지게 마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