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는 영화를 만든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 아무리 뛰어난 시나리오'라고 해도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 디워 >보다 좋은 시나리오'라고 할 수는 없다. LA 다저스 중간 계투 요원인 벨리사리오 투수가 형편없는 구질로 구원은커녕 승리'를 날려먹는다고 해도 그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투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메이져리그'에서 선수로 뛸 수 있다는 것은 상위 1% 이내일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영화로 만들어지는 작품은 1%다. " 디워 시나리오 " 도 알고 보면 " 벨리 시나리오 " 같은 상위 1% 실력에 포함되는 메이져리그 선수 급'이다. 사실 문자로 작성된 시나리오'는 재미가 없다. 숙련된 배우의 입말'이 붙어야 생기'가 나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밍숭맹숭하다.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 카운슬러 >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아는 한, 코맥 매카시'보다 대사'를 멋지게 치는 작가는 보지 못했다. 그가 쓴 소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는 서사'는 물론이고 대사'가 숨이 막힐 정도로 뛰어났다. 힙합 정신'으로 말하자면 라임과 플로우'가 좋았다. 호흡이 짧은 대사'는 압축미를 살린 잠언록 같았다. 그는 잔인한 대사'일수록 아름다운 문장을 뽑아내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뛰어난 소설가가 헐리우드에 입성해서 시나리오를 썼다가 망신 당하는 꼴을 수없이 본 사람들은 코맥 매카시가 스릴러 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고 했을 때 걱정을 했지만 나는 그가 성공하리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시나리오를 쓸 때 실패하게 되는 이유는 소설가는 기본적으로 대사보다는 서술에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나리오 대사'를 쓴다고 했으나 사실은 " 서술 형태로 쓰여진 대사 " 를 선보인 것이다. 그러니 배우들이 대사를 칠 때 입에 짝짝 붙기는커녕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도는 것이다. 하지만 코맥 매카시는 소설가이면서도 시나리오 작가'보다 대사를 잘 치는 보기 드문 소설가'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고 했을 때 환호를 보냈다. 어쩌면 이 시나리오 작업은 차기작으로 대사로만 이루어진 소설을 쓰기 위한 워밍업( 준비 작업' )일지도 모른다.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이 이룩한 문학스타일'을 고집한 적이 없다. 하루키가 하루키 스타일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우려먹는다면 코맥 매카시는 매 작품마다 전작과는 다른 형식을 선보였다. < 로드 > 를 읽고 나서 < 핏빛 자오선 > 을 읽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두 거장이 만났다. 코맥 매카시가 시나리오를 쓰고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다. 각 분야에서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는 고집 쎈 두 노인'이 만났으니 수직적 관계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혐업이요, 통섭이지 한쪽이 군림하는 작업 스타일이 될 수는 없다. 이 협업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겠지만 한쪽 기'가 세서 기울어지면 어설픈 결과를 얻게 될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 카운슬러 > 는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나리오 작가인 코매 매카시'만 눈에 띄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파스빈더도 아니고 리들리 스코트도 아닌 코맥 매카시였다. 코맥 매카시에 대한, 코맥 매카시에 의한, 코맥 매카시를 위한 영화'였다. 내 눈엔 당신만 보이더라.
영화가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좋다는 소리'도 아니다. 하지만 나쁘지도 좋지도 않으니 결론은 나쁘다는 소리이다. 오리지날에 대한 각색이 필요한데 리들리 스코트는 우직하게 원작을 따랐다. 그는 코맥 매카시와 작업하면서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를 뛰어넘는 걸작 스릴러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코맥 매카시'가 워낙 강렬하다보니 연출에서 눌린 맛이 난다. 자기 스타일이 분명한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자신이 내야 할 목소리를 죽였다는 것은 감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코맥 매카시에 대한 예의 때문인 것 같다. 리들리 스콧 감독도 코맥 매카시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가 된 듯 싶어 웃음이 났다. 나이가 드니 서로 의지한다고나 할까 ? 하지만 영화 내용은 무시무시하다. 코맥 매카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악인은 사실은 운명을 결정하는 신'에 가깝다. 판사 ( 핏빛 자오선 ) , 시거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 카운슬러 ) 는 악인이 아니라 인간이 행한 악덕을 심판하기 위해 다가오는 검은 상복을 입은 저승사자'와 같다.
< 카운슬러 > 는 탐욕이 부른 권선징악'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비참을 다룬다. 운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은 자비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신에게 의지하기 위한 힐링'일 뿐이다. 신은 무자비한 존재도 그렇다고 자비로운 존재도 아니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가여삐여겨 한글을 맹글었지만 신은 인간을 가여삐여기지 않는다. 연민이 배제된 공정함, 그것이야말로 운명이라는 이름의 신'을 규정할 수 있는 정의'다. " 카운슬러 " 라고 불리우는 타락한 변호사가 마약 운반 작전에 개입되는 순간, 운명'은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 이 진행 과정에서 연민과 변명 그리고 탄식과 반성 따위가 만들어내는 휴머니즘은 없다. 그것은 마치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60초 후에 터지는 시계 폭탄과 같다. 누르는 순간 이미 60초 후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
수열은 한치의 오차 범위 없이 진행된다. 1,2,3,4,5...... 그리고는 초침이 60초를 지날 때 예정대로 폭발할 것이다. 종이에 쓰여진 비문은 수정이 가능하지만 심장에 새겨진 비문'은 고칠 수 없다. 잘못 쓴 문장을 고칠 수 없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구겨서 버리고 다시 쓰는 것이다. 영화 속 ○○○○은 무자비하다기보다는 자신이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자'이다. 영화 < 카운슬러 > 는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냉정'을 다룬다. 가차없다.
번외 ㅣ2012년에 개봉한 영화를 2013년 영상원'에서 보았다. 2013년에 본 개봉 영화'가 없어서 4위부터는 알라딘에 쓴 영화에 대한 글로 대체한다. 추천 수'다.
3. 멜랑콜리아 ㅣ 지구는 사악하다.
< 멜랑콜리아' > 라는 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온다. " 다가온다 " 라는 동사가 밋밋해서 상황 파악이 안 된다면 " 돌진한다 " 라고 정정하자. 일주일 후면 지구는 행성과 충돌하여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이번에는 " resetting" 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 nothing " 인 상태가 된다. < 인류 > 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 지구 > 라는 행성 자체가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신이 깜짝 이벤트로 준비한 " 노아의 방주 "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 만약에 당신'이라면 지구 종말 일주일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 ? 죽기 전에 해야 할 것'을 작성해 보자. ① 최고급 호텔'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밤을 보낸다. ② 제비집 요리와 불도장 그리고 거위 간 요리'를 주문한다. ③ 마당에 사과나무를 심는다 ④ 기타 등등......
하지만 이러한 버킷 리스트'는 한갓 희망사항에 불과할 것이 뻔하다. 당신은 최고급 호텔에 투숙할 수도 없고, 제비집 요리'는커녕 그 흔한 닭똥집 요리'조차 구경도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이면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는데 어느 미친 놈이 일터에 나와서 일을 할까 ? 그러므로 통장에 남은 돈을 펑펑 쓰다가 죽겠다는, 웃으면서 코 파며 잇힝 하는 버킷 리스트'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럴 땐, 차라리 무라카미 하루키가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 현명할 지도 모르겠다. 그는 사과나무를 심는 대신 자위'를 할 것이 분명하다. " 미안해, 아야코 양 ! 당신의 섹스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겠어. 난... 조용히 < 심슨가족' > 을 보면서 자위나 하겠어. " 결국 이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딱히 없다.
지구 멸망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은 < 그날 > 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에 떨며 아름다운 지구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못한 죄책감을 호소하지만 쾌활한 멜랑콜리인 내가 상상하는 < 그날 > 은 꽤나 명랑'하다. 누군가에게 마지막 일주일'은 봄 방학' 같지 않을까 ? 입시 지옥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는 공부할 필요가 없으니 공부를 잘하는 놈이나 못하는 놈이나 달콤한 휴식이 되고, 암 환자들은 신이 내린 결정에 대하여 겉으로는 내색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웃으면서 코 팔 것이다. " 나만 억울하게 죽는 게 아닌 게야.... 히히히 ! "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그리 아쉬울 것 없다. 동일 환경 동일 노동에서 받는 대가'는 정규직의 절반이니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은 21세기 新 홍길동'이다. 서자'다.
희망이 거세된 노동만큼 힘든 것도 없다. 乙은 희망이 없다. 귀신을 잡는 해병대'와 (갑에게) 멱살을 잡힌 乙'의 공통점은 ? 영원하다는 점이다. 한 번 < 해병 > 은 영원한 해병이듯이, 한 번 < 을 > 은 영원한 을'이다. 그리고 뚱뚱한 여성들이여 ! 그날이 다가오면 다이어트'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지구 종말 시계는 44사이즈를 위해서 死死( 죽을 각오로 굶는 )하는 당신을 잠시나마 구원할 것이다.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아...... 좋아 ! 칼로리 제로 다이어트 콜라는 개나 주고 오리지날 코카콜라를 마시자 ! 일주일 후면 모든 것은 사라지나니 비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인류 멸망'을 비극으로 보는 관점은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다. 인류의 멸망은 오히려 지구 생태계에 두 번 다시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폐허가 된 아스팔트에서 고사리가 필 때 지구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많은 사람을 죽이면 전사가 되듯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재난이 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으면 신이 내린 한 수'가 된다. 나라면 < 그날 > 사랑하는 사람과 콘돔이 필요 없는 섹스를 하겠다 ! 지구가 불타 사라지기 전에 먼저 정염에 불타 죽으리라. 젖가슴을 욕심껏 움켜쥐고 거칠게 입 맞추리라. 평소 짝사랑하던 사람을 찾아가 고백을 해도 좋을 것이다. 상대가 거절하면 어떠랴 ! 퇴짜 맞고 돌아오는 길에 분풀이로 종로 3가 8차선 도로에다 똥을 싸도 좋다. 행운이라는 것은 신이 평소에 편애하던 놈들에게 내리는 선물이지만 죽음은 모두에게 내리는 평등이다.
영화 < 멜랑콜리아 > 는 " 그날 " 을 다룬다. 하지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 그날 > 이 아니라 < 그녀 > 에 대한 이야기'다. 행성과 지구 간의 충돌'은 곁가지 서사' 에 불과하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 여성 멜랑콜리와 히스테리'에 대한 보고서 > 이다. 영화는 " 1부 저스틴 "에 대한 이야기와 " 2 부 클레어 " 에 대한 이야기로 나뉜다. 결혼 피로연의 주인공인 저스틴은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다. 신부의 무관심과 무기력은 결국 파혼으로 끝을 맺는다. 그 어느 누구도 멜랑꼴리한 저스틴'(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 ) 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울증'이란 타자에 대한 공격을 멈추는 대신 화살의 촉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형태이다. 자신에 대한 징벌이 우울증'이다.
슬픔을 사람들과 나누면 애도'가 되지만 슬픔을 버리지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 간직하면 우울'이 된다. 그러니깐 우울이란 슬픔을 나누지도 못하고 소화시키지도 못한 체증 상태'다. 목구멍에 걸린 것인 생선 가시가 아니라 멜랑콜리'다. 저스틴'은 내부의 문제에 몰입하다 보니 외부(타자)에게 관심을 두지 못한다. 이 우울증은 타자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이 무관심은 곧 무기력'을 동반한다. 불면과 기면 그리고 체증에 따른 식욕 감퇴와 구토가 이어진다. 프로이트는 마지막까지 여성이라는 성'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가 없어서 쩔쩔맸는데 그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nothing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무책임이 아니다. 그가 보기에 여자는 알 수 없는, 아...... 그런 존재'다. 앞이 캄캄한 구멍'이다.
반면 클레어'는 동생과는 달리 타자와 맺는 사회적 관계를 중요시한다. 화려한 결혼 피로연'은 부르주아인 클레어의 욕망과 겹친다. 그녀는 결혼 피로연'이 성공적으로 치뤄지기를 간절히 원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생을 위한 따스한 배려와 근심 같지만 사실은 부르주아의 과시적 이기와 사려 깊은 욕심'일 뿐이다. 저스틴이 내부의 문제 때문에 " 멜랑꼴리 " 하다면, 클레어는 우울증을 앓는 동생의 모습이 피로연 참석자들에게 들통날까 봐서 " 히스테리 " 에 빠진다. 우울증에 걸려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동생을 이해하지 못하던 클레어'는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할수록 불안에 빠진다. 궁극에 다다를수록 클레어는 이성을 잃고 저스틴은 오히려 차분히 이성을 찾는다.
이 지점에서 저스틴과 클레어는 겹친다. 클레어가 보이는 이상 불안 증세(2부)는 저스틴이 앓던 증후(1부)와 비슷해 보인다. 이처럼 멜랑콜리와 히스테리는 유사해 보이지만 닮은 만큼 다르다. < 멜랑콜리 > 는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원망에 따른 자기 징벌과 포기에 가깝지만 < 히스테리 > 는 욕망하는 대상에 대한 신경질적인 공격과 불완전한 집착에 가깝다. 두 자매는 본질적으로는 유사 형질을 가지고 있지만 계급에서 차이'를 만든다. 그들은 유사한 불안에 시달리지만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잃어도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저스틴과 부와 명예를 잃어버리기엔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부르주아인 클레어'는 무기력하게 종말을 지켜볼 뿐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평등인가 !
나는 극중 저스틴의 대사에 공감한다. 지구는 사악하다. 없어져도 된다.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은 니체의 망치'다. 망치로 지구를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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