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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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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애정은 균형을 잃는다

 

 

첫만남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 먼저 손을 씻는다. 아이보리 비누로 깨끗이 씻는다. 청결은 상대에 대한 기본 예의. 그렇다고 장갑을 낄 필요는없다. 다음은 상대 옷을 벗긴다. 벗기고 나서 흐뭇한 마음으로 위아래 구석구석 훑어본다. 지금까지는 서론이다. 중요한 것은 본론이다. 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이다. 가수 남진이 말하지 않았던가. "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 " 손으로 더듬더듬하며 속을 만져본다. 아, 한다. 좋다.  때론 우, 하기도 한다. 겉과 속이 전혀 다른 경우도 있으니까.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마셔셔. 책을 읽기 전에 손을 씻는 행위는 내 오랜 버릇이다. 여기서 < 옷 > 이란 책을 감싼 종이 덮개를 말한다. 종이 덮개와 하드커버 디자인'이 다른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옷을 벗긴다.

 

좋으면 아, 하고 나쁘면 우, 한다. 애, 매한 경우에는 소리 없이 지나간다. 책 만듦새를 확인하는 깐깐한 과정이 끝나면 이제 속을 펼쳐서 종이 재질, 제본 방식, 레이아웃 따위를 살핀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야지 비로소 책을 읽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오랜 습관이다. 다산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쓴 < 다산 정약용 평전 / 민음사 > 은 우선 만듦새'가 매우 만족스럽다. 책을 사철 제본 방식으로 튼튼하게 만든 부분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무선 제본(떡제본)에 비하면 사철 제본은 얼마나 든든하고 " 클래식 " 한가 !  나는 읽던 책을 잠시 뒤로 하고 첫인상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 다산 정약용 평전 >> 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인상에 대한 좋은 호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서 정약용에 대한 약전(略傳) 을 갈무리해서 옮길 생각은 없다. 이 책에 대해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매조지하겠다. 방대한 책 내용을 압축한 결과가 < 제목 > 이다. 책이 몸이라면 제목은 얼굴이다. 관상은 얼굴(겉)을 통해서 속을 꿰뚫는 방식이다. 제목도 마찬가지다. 독자는 제목(겉)을 통해서 내용(속)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제목과 내용이 전혀 다르면 내용이 아무리 알차다고 해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 다산 정약용 평전 >> 은 제목이 잘못되었다. 사전적 의미로 평전은 "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 " 다. < 리영희 평전 > 을 쓴 김삼식이 말을 인용하자면 평전은 시비(是非)를 치우침 없이 다루는 형식'이다.  

 

그런데 이 책은 평전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다. 정약용에 대한 (저자의) 지나친 애정이 균형을 잃었다. 평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전기(傳記)에 가깝다. 저자는 그러한 사실을 의식했는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산에 대한 당대의 평가이건 먼 뒷날의 평가이건, 대체로 다산의 사람됨과 학문에 대해서는 훌륭하다는 칭찬의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잘못되었다거나 좋지 않다는 평가는 평가는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평에 따른 이 책 또한 찬양 위주의 평전이 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여겨 또다시 부끄러움을 면할 길이 없다. 조선 선비들의 공통적인 자세이기도 하지만, 학자들이 다른 학자를 평가할 때는 대체로 후한 점수를 주지 야박한 점수를 주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다산의 경우도 어쩔 수 없이, 잘했다는 평가가 많았고 잘못했다는 평가는 많지 않았다. ( 17쪽)

 

 

결국 저자는 자기 글이 평전이라고 하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평전은 시비(是非), 입장, 논쟁을 골고루 다루어야 하는데, 시(是)는 있으나 비(非)가 생략되어 각각의 입장과 논쟁이 없는 글이 되었다. 그런데도 밀어붙인 꼴이다. 좋은 평전은 열정보다는 냉정이 필요한 분야'이고, 휴머니스트'보다는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이 더 좋은 평전을 쓸 수 있다. 칭송과 편애는 평전의 적'이다. 박석무는 정약용을 지나치게 흠모한 나머지 정약용에게 적대적인 인물에 대해서는 " 몇몇 악인 악당들 ( 70쪽 ) " 이라는 표현을 쓰며 흥분한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면 죽도 밥도 아닌 뒤죽박죽이 된다. 슬픈 노래를 부를 때 가수가 관객보다 먼저 울면, 그 가수는 실력 있는 가수가 아니다. 관객을 울리고 나서 우는 가수가 훌륭한 가객이다.  

 

설령 저자가 보기에 그들이 악당이라고 해도 평전을 쓰는 입장에서는 인물에 대한 감정적 수사를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인물 평가는 작가가 내리는 게 아니라 독자가 판단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뜬금없는 부분도 나온다. 다산은 무등산에 올라 시도 짓고 기행문도 썼다. 아름다운 강산을 본 느낌을 적은 글이다. 당시 17세 소년이 작성한 문장이라고 하기에는 탁월한 글솜씨'다. 박석무는 이 사실을 상기시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등산은 얼마나 훌륭한 역사를 태동시켰던가. 지역 이름보다도 사회 과학적 의미를 지닌 광주, 민중 주체의 역사 발전을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으며 수난과 고난의 아픔을 안아야 했던가. 동학 혁명이 그랬고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그랬고 5.18 민주화 운동이 그랬지 않은가. 무등산이 낳은 역사의 큰 아들 때문에 민주주의의 가치가 살아나지 않았는가. 무등산의 공화로 역사는 바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는 뛰어난 다산의 관찰력 같은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해 준다. (110쪽)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위대하다는 사실에는 120% 동의하지만 다산을 언급하며 위대한 광주를 엮는 방식에는 의문이 든다. 억지로 짜 맞춘 흔적이 역력하다. 정작 뜨거운 감자 가운데 하나였던  정약용의 " 배교 행위 " 에 대해서는 언급이 별로 없다. 다산 정약용이 신유옥사 때 국청 국문에서 천주교를 사교(邪敎)라고 말하며 황사영을 원수라고 고백한 부분에 대해서는 " 죄지은 사람을 숨겨 줄 수 없다는 정의감의 발로(318쪽) " 라고 해석한다. 정약용의 배교 행위'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저자가 그것을 단순하게 " 정의감의 발로 " 라고 말하는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우스개로 " 누가 정약용의 배교에 대해 물으면, 당황하지 말고, 쿨하게 정의감의 발로'라고 말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던진 후, 박수를 짝, 짝, 짝.  끗 !! " 이라고 말하는 뉘앙스'다.

 

평전에서 중요한 것은 칭찬이 아닌 논쟁인 데도 말이다. 이 책은 처음 기대와는 달리 실망이 컸다. 책 제목에서 " 평전 " 이라는 낱말을 삭제했다면(이 책이 평전이 아니라면) 좋은 내용이 될 수도 있지만 평전'이라는 형식 틀 안에서 보면 실망스러운 내용이다. 차의 종류에 따라서 차를 담는 용기(容器)도 달라야 한다. 홍차를 커피잔에 따를 수는 없지 않은가 ? 아, 하려다가 우, 하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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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4-05-30 0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읽기를 미뤄 둔 책이 많아 이런(?) 책까지 손이 안가겠지만, 인용해주신 부분들 보니 정말 읽고 싶은 마음이 안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30 09:32   좋아요 0 | URL
이번 기회에 목민심서나 함 읽어봐야겠어요. 호치민이 목민심서를 늘 머리맡에 두고 경전처럼 소중히 여겼다고 하죠 ?

samadhi(眞我) 2014-05-30 13:07   좋아요 0 | URL
그렇답니까. 그 멋진 호치민이. 우리 약용이 형아 대단한 건 알지만. 그런 천재가 또 있을까 싶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31 07:03   좋아요 0 | URL
그렇답니다. 아마 세계 정치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뛰어난 정치인 중 하나가 호치민옹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설은 전설이 알아본다고, 약용 할아버지도 훌륭하지만 그 훌륭함을 아는 호치민옹도 훌륭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5-30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해사옥 때 자신의 이종사촌들이 이종사촌의 어머니 신주를 불사른 게 화근이었죠.
천주교에서 저 문제로 말이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다산 선생이 십자가를 품에 안고 죽고 회개했다고 하나
다산의제자들이 있는 강진군의 후손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런 말을 듣지 못하네요.
제사문화로 본다면 조금 오버인게 아닌가 하나, 어째든 지식인이라면 정약용 선생에 대해
존경심은 당연하나, 박석무 이사장님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보이군요(물론 그런 가치가 있는 분이지만 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30 09:31   좋아요 0 | URL
다산이야말로 한국이 낳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분야를 보면 과연 이 사람 천재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의학에도 정통해서 나중에는 순종이 병 났을 때 어의 비스무리하게 내진하기도 햇으니말이죠.
전 신해사옥 때 정약용의 선택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 전혀 없습니다.
저자는 정의감'이라고 했는데 100% 틀린 말이죠. 그것은 절박함에서 비롯된 선택이지 정의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미화는 오히려 위험합니다. 하여튼... 전 이 책이 굉장히 짜증스러워서 읽는 내내 고역이었습니다.

마립간 2014-05-3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공통점이 또 발견되는군요. 내용에 맞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제 책 평가에서 감점 요인입니다. 최근에 그런 경향이 강화되고 있구요.

수많은 책들 중에서 독자의 눈에 띠려면, 튀는 제목을 가져야 하는 어쩔 수 없은 상황도 이해가 가지만. (그리고 저도 제목에 이끌려 구입한 책이 있으므로 좀 뭐한 입장입니다만,) 이런 책의 내용으로 왜 저런 제목을 가졌을까하는 책들이 (어떤 경우는 제목이 다인 경우도) 종종 눈에 띱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30 09:34   좋아요 0 | URL
제목 중요하죠. 제목과 내용이 180도 다르면 그건 사기죠. 예를 들어 < 엘지 트읜스여 영원하라 ! > 라는 책이 있는데 내용은 온통 < 두산 베어즈 얘기라면 어떻겠습니까 ? ㅎㅎㅎㅎ.



ㅇㅇ 2014-05-31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간 평가단으로 책 받으면 다 읽고 꼭 올려야 합니까? 읽기 싫은 책 읽는 거 만큼 고역도 없는데 읽기 싫은 책 걸리면 만만치 않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31 12:28   좋아요 0 | URL
관심 없는 분야 책에다가 페이지 수가 1000페이지 육박하면,더군다나 재미가 없으면... 이것도 고역입니다. 책을 받았으니 서평은 써야겠지요 사실 4권 중 3권이 제가 고른 책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만... 앞으로가..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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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생각하는 갈대와 생각 없는 꼰대 : 대한민국 정치가 쌍팔년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정직한 청년보다 현명한 노인'이 없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토양에서 뿌리를 내린 아이는 자라서 " 생각하는 갈대 " 가 되고, 어른은 자라서 " 생각 없는 꼰대 " 가 된다. 파스칼은 << 팡세 >> 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 "라고 말했지만 그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생각하는 갈대'라는 문장 대신 생각 없는 꼰대'라고 고쳤을 것이다. 대한민국 꼰대는 철갑을 두른 듯하다. 바람 소리 불변함은 일편단심이다. 그네들에게 꽃 중의 꽃은 오로지 박근혜 꽃'뿐이다. 악의없는 순수한 몰입이 대한민국 정치를 망친다. 양심이 없는 늙은 놈보다는 차라리 싸가지 없는 젊은 놈이 낫다.

 

 

7. 박가분, 일베의 사상 : 박가분은 < 일베의 사상 > 에서 " 일베 " 를 진보 좌파에 대한 반동으로 태어난 세력으로 규정했는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다 보니 마지막에는 단추 하나가 남았다. 단추 모양새가 맹추 같다. 박가분은 일베를 진보 좌파의 거울쌍'이라고 주장한다. <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 사고방식이나 견해가 종래와는 달리 크게 변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다. 하지만 뒤통수 후려치는 반전은 추리소설에나 어울리는 말방귀'이지, 사회학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재주다. 분석 틀을 너무 과도하게 돌렸어요, 뿌잉뿌잉 ! 일베는 진보 좌파에 대한 반동으로 태어난 세력이 아니라 상식에 대한 반동으로 태어난 세력'이다. 그들은 < 젊은 우파 > 가 아니라 < 젊은 서얼 > 이다.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자, 서러움이 특정 소수를 향한 혐오로 바뀐 것이다. 그대 이름은 홍길동이 아니라 홍, 길, 똥' 이다. 박가분은 일베를 통해 우파 메시지를 읽지만 그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울화통이 터지는 의성어'다. 의성어'는 감각의 증후일 뿐 메시지'는 아니다.  

 

 

8. 재벌은 항상 불행하다 ?!  : JTBC 드라마 < 밀애 > 는 1% 상류 사회'가 배경이다. 오혜원(김희애)는 상류사회에 속한 여자'이지만 로열 패밀리'에게 무시받고 사는 존재'다. 평민 출신으로 왕자와 결혼해서 왕족이 되었으나 " 그들만의 리그 " 에 진입하지 못해서 불행한 사고를 겪은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오혜원은 약간 겹친다. 그때, 스무살 청년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그녀는 마흔살이다. " 따블 ! " 이다.  < 밀애 > 를 느와르 장르라고 한다면,  선재(유아인)는 옴므파탈이다. 혜원은 " 이거 모야, 설레자나 ! " 라며 어이없어하지만 심장은 나이트 클럽 스피커만큼 쿵쾅거린다. 그녀는 순애보를 선택하기에는 적당히 속물'이며, 꽤 늙었고, 상당히 똑똑하다. 하지만 결론은 뻔하다. 상류 사회에 편입되는 대신 " 따블 " 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선택한다는 이야기.  와와, 시청자는 오혜원의 선택을 지지한다. 온기 없는 상류사회에서 사느나 차라리 가난하지만 뱃속 편한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상류 사회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드라마는 겉으로는 사랑 없는 치열한 패밀리 전쟁'을 비판적으로 다루지만 속은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을 전시해서 시청자의 욕망을 건드린다. 겉과 속이 다르다. 시청자는 사랑 없는 로열 패밀리 전쟁'을 보며 욕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누리는 화려한 삶이 부럽다. 배부른 돼지보다 굶주린 소크라테스를 선택한다고 해서 뱃속 편할 리 없다. 과도한 욕심은 행복을 야금야금 무너뜨리지만 굶주림은 행복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티븨 드라마 속 재벌은 항상 불행하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정말 그럴까 ?  빈곤과 굶주림이 주는 고통에 비하면 의리 없는 패밀리 전쟁은 애교에 가깝다. 스무살 청년 선재는 왜 자기보다 " 따블 " 인 혜원을 사랑했을까 ? 간단하다, 상류 사회 여자'였기 때문이다. 재벌은 서민이 생각하는 것만큼 불행하지 않다. 이거 모야, 속았자나 !

 

 

9. 가난하니깐 행복하다 ?! : 지금 당신은 50년대 할리우드 느와르 영화'를 본다. 한 여자가 탐정 앞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차양 넓은 모자를 썼다. 눈동자는 모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새빨간 입술, 새빨간 입술, 새빨간 입술 !! 여자는 고개를 들어 탐정을 바라본다. 그때 비로소 여자는 얼굴을 온전히 드러낸다. 형광등 백 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 그녀는 탐정을 아, 아아아아아아아압도한다. " 담뱃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 " 탐정은 황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불쌍타, 탐정은 지금 개미지옥에 빠졌다 ! 관객은 사전 정보 없이 탐정 앞에 나타난 여자가 팜므파탈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왜냐하면 관객은 차양 넓은 모자, 킬힐, 담배를 피우는 여자'라는 기호가 팜므파탈을 상징하는 " 뻔한 공식 " 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느와르 장르'는 물신적 기호'를 적극 끌어들여서 관객이 인물을 탐색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효과적으로 줄인다. 자기소개서 시간을 따로 가질 필요가 없으니 화면을 쫀쫀하게 사용할 수 았다. 한국 드라마도 장르 공식에 충실하다. 일일 드라마에서 재벌은 가난을 미화시키기 위해 등장하는 가족드라마형 팜므파탈'이다.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암중모색은 가난하지만 착한 서민의 행복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리고는 시청자에게불행한 재벌과 행복한 거지의 삶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이 말은 500원 가질래, 아니면 10원 가질래 ? 와 똑같은 질문이다. 사람들은 500원 대신 10원을 고른다. 맹추 ! 10원으로는 아주공갈염소똥을 12개밖에 살 수 없어.  티븨 드라마 속 서민은 가난해도 행복하다. 정말 그럴까 ? 가난해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가난해서 불행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없다. 이거 모야, 또 속아짜나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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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손 2014-05-2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바보야~ 밀애,가 아니라 <밀회>야!! 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8 10:18   좋아요 0 | URL
그르네? ㅋㅋㅋㅋㅋㅋ 난 여태컷 밀애'줄 알았어...

곰곰손 2014-05-28 10:2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크하하하하 아미치겠다 ㅋㅋㅋㅋㅋㅋㅋ존나우껴ㅋㅋㅋㅋ
나 요몇일 밤샘하고 눈이 반쯤 감겼었는데 너 글 보고 눈이 번쩍하고 빵터짐 ㅋㅋㅋㅋㅋㅋ
완전 똑똑한 말투로.. ㅋㅋㅋㅋㅋ 계속 밀애,밀애..이래 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8 10:27   좋아요 0 | URL
희애가 주인공이다보니 밀애가 자꾼 입말에 붙는다;

마립간 2014-05-2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 글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 있을 때 하고, 저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대중은 한발짝 앞서는 가는 것만 허용한다. ; ;그런데 문제는 두발짝을 앞섰을 때의 행동입니다. 한 발짝 물러나야 할까요? 아니면 한발짝 더 내딛거나, 최소한 그 자리를 지켜야 할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8 15:54   좋아요 0 | URL
글세요.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떻습니까 ? " 천천히 가 !! "

samadhi(眞我) 2014-05-30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의적 표현. "그네들" 마음에 드네요. 저는 쓸데없이 길게 그네와 일당들 이라고 했는데 ㅋㅋ 이거 좋네요. 곰발님이 의도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각 문단의 기발한 표현에 킬킬킬킬 웃었습니다. 늘 깜딱 놀라지만 어휘가 무척 풍부하시네요. 글을 쓸 때마다 어휘의 한계에 부딪치는데 질투가 솟아납니다.
서울교육감 선거가 한숨 나오네요. 시장 걱정은 없는데 교육감은 머리까만 미쿡인이 될까 두렵네요. 인지도로 투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에 정말 답답합니다. 1번만 달고 나오면 무조건 찍어주는 동네랑 다를 바가 없을테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30 09:39   좋아요 0 | URL
진아 님 예리하시군요. 사람들 그네'라는 단어 자체를 잘 몰라요. 중의적으로 쓴 표현 맞습니다.
박근혜에서의 그네'와 그네와 대명사 그네'가 동음이의어'여서 그네들'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그네들이란 ( 박)그네를 꽃 중의 꽃이라 여기는 그네(당신)들이란 뜻입니다.


요즘은 정치 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오락 프로 몇 번 나와서 인지도 높인다음 새누리당 가면 100%임....

 
호모 Punk 異般 - 레즈비언, 게이, 퀴어 영화비평의 이해
바바라 해머 외 지음, 주진숙 외 엮고 옮김 / 큰사람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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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분명히 보고 있어 !

 

 

이 글은 어제 올린 것을 보완해서 다시 쓴 글이다. 흔히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 장애인을 소수자(minority)라고 지시하는데, 이런 식으로 계통을 분류하는 방식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소수'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인종차별주의는 < 숫자 > 가 아니라 < 권력 > 문제에 속한다.  동성애 사회는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이해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이 말 속에는 이미 자신이 속한 그룹(이성애 사회)를 우월한 위치에 놓고 동성애 문화를 깔보는 기만이 숨겨져 있다. 대가리 수로 계통과 계열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짓은 천박한 우생학'이다. 이 글 제목 < 그들은 분명히 보고 있어 > 는 실라 맥로린의 레즈비언 영화 < 그녀는 분명히 보고 있어 > 에서 따왔다.  

 

 

 

" 너나 잘하세요 ! " 와 " 잘 알지도 못하면서.... " 라는 말은  소크라테스의 " 너 자신을 알라 ! " 라는 격언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옛날에는 < 모르는 게 약(藥)이고 아는 게 병(病) > 인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 모르는 게 약(弱)이고 아는 게 강(强) >인 시대가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 현대사회는 지식사회요, 정보사회'다. 중요한 지식, 정보, 인맥'을 독점하는 자'가 돈과 명예를 얻는다.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자면 : 그동안 나는 책에 대해 많이 아는 흉내를 냈으나 사실 쥐뿔도 아는 게 없다. 책이 관심 분야이기는 하나 전공 분야는 아니다. 아는 척했을 뿐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분야는 포르노'다. 느낌, 아니까 ! 교양인이 소쉬르를 통해 언어학을 배웠다면, 나는 포르노를 통해 언어와 정치와 자세'를 배웠다. 말씀 이전에, 아......  " 태초에 신음소리가 있었어. "

 

어두운 밤, 오르막길에 다다른 여성이 내지르는 교성은 나라마다 달랐다. 서양과 동양은 각각 < ㅗ > 와 < ㅓ > 에 가까웠고, 대한민국은 < ㅏ > 로 통일되었다. 아, 아아. 나는 신음소리만 듣고도 국적을 간파하는 " 감각의 더듬이 " 가 자라기 시작했다. 우우, 이상한 일이다. 다음은 미국 포르노와 일본 AV 를 다룬 글이다. 부분 발췌해서 올린다. 

 

 

 

 

가능성 : AV적 리얼리즘

 

미국은 포르노를 서부극처럼 찍는다. 미국 포르노는 배우들의 압도적인 육체를 풍경처럼 전시한다. 미국 포르노의 단 한 가지 특징을 꼽으라면 놀라울 정도로 과시적인 크기에의 집착일 것이다. 달리 말해, 미국 포르노는 와이드 사이즈 화면비가 어울리는 유일한 포르노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프리츠 랑은 2.35:1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는 뱀과 장례식을 찍을 때 유용하다고 말했지만 미국 포르노라면 한 가지 덧붙일 것이다. 미국 포르노는 위압적인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가슴과 둔부의 크기를 과시하듯 전시한다. 허문영 평론가는 미국의 서부극(과 소수의 SF)의 위대한 성취 중 하나로 “서사로 정돈되지 않는 리비도를 풍경이 끌어안으며, 서사적 기획과 긴장하는 시각적 기획의 전통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서부극에서 리비도를 뿜어내며 서사를 끌어안고 있는 대전제로서의 풍경은 미국 포르노에서 배우들의 거대한 육체로 치환된다. 미국 포르노가 서사적 기획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미국 포르노는 서사적 상황 구축을 헐겁게 만드는 대신 차라리 표면의 코스프레에 관심을 둔다. 어떻게든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플롯을 귀찮다고 여기며 등장인물들의 표면적 지표로 상황 설명이 해결된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학교 안에서의 섹스를 다룰 때, 일본은 어떻게든 섹스가 벌어지는 상황 설정을 지루할 정도로 길게 설명하지만 서구의 포르노는 인물들이 교복을 입고 나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풍경화 된 인물들의 거대한 육체를 보여주는 것이 에로스의 측면에서 서사적 기획보다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한 시각적 효과가 서사적 기획을 앞서 나간다는 것이 미국영화의 형식적 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서구의 포르노 중에서는 정반대의 전통도 존재한다. 이는 포르노를 예술영화처럼 찍는 것이다. 이 전통은 예술영화가 포르노에 영향을 준 것인지, 포르노가 예술영화에 영향을 준 것인지 모호하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힘들다. 이러한 종류의 포르노들은 대개 눈부시게 아름다운(‘예쁜’이나 ‘귀여운’이 아닌) 배우들과 광고에 가까운 영상과 음악, 그리고 멋진 대자연의 풍경을 배경으로 삼는다는(미국 포르노에서는 배우들의 육체가 풍경의 대체재 역할을 수행하므로 풍경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중구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포르노들은 이상할 정도로 에로스를 숨기려 들고 그 자체(주로 배우들의 몸)를 미학화하려 한다.

 

이 때의 포르노는 충만한 자연의 풍경들을 서사적 기획 안으로 끌고 들어오지 않고 배경으로 남겨둘 뿐이다. 그로 인해 이 종류의 포르노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미지(자연 풍경과 배우들의 몸)에도 불구하고 숏의 길이가 가장 짧고 그만큼 숏의 사이즈가 가장 많으며 러닝타임도 매우 짧다. 말하자면 압도적인 물성의 이미지 앞에서 핵심(섹스)을 회피하려 들거나 이를 숨기기 위해 여러 곁가지들을 끌고 들어온다는 인상이 강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 스타일의 포르노를 보고 섹슈얼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반면 일본의 포르노(일본 AV가 아니다. AV에 대해선 뒤에서 더 질문하겠다.)는 이상할 정도로 구멍에 집착한다. 일본 포르노를 보면서 가장 의아해지는 대목은 여성의 항문이나 외음부 등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잡아내는 장면들이 나올 때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 포르노는 상황의 은밀함을 강조하기 위해 섹스가 벌이지는 앞뒤 상황의 서사적 기획을 중시하고 그 기획의 전통을 발전시켜 온 바 있다. 일본 포르노는 점점 더 상황과 공간을 축소시키고 제약을 넓힘으로써 역설적으로 은밀함을 서사 안에 녹여내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굳이 남편이 자고 있는 옆에서 섹스를 하고 굳이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는 식으로. 그런데 구멍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잡는 장면들은 전혀 은밀한 느낌을 불러내지 않는다. 이는 이상한 도착증의 기운이 감돌뿐이다. 일본은 축소 지향적 태도를 기반으로 포르노의 서사적 기획을 발전시켜 왔다. 그 서사적 기획의 결과물로서의 섹스가 진행될 때, 이와 같은 구멍에의 집착이 느닷없이 등장할 때 그 축소 지향적 기획의 그로테스크한 이면이 난입하는 것은 아닐까.

 

[출처] 가능성: AV적 리얼리즘|작성자 *******

 

 

 

글쓴이는 " 미국 포르노는 길이(페니스)에 집착하고 일본 AV는 깊이(구멍)에 집착 " 한다고 지적한다. 책만 읽는 알라딘 선비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세운상가 뒷골목에서 논 사람이라면 이 지적이 타당하다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미국산 클래식 포르노는 남근 길이에 촛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글쓴이가 미국 포르노를 서부극에 비유한 이유는 < 남근 = 권총 > 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남근이 우람할수록 그는 성능 좋은 권총을 가진 총잡이'이자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을 맡는다. 총잡이'이자 소방수인 배우는 불타는 건물 대신 (성적 불만으로 가득한) 뜨거운 여성 육체'를 진압한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 소방 호스'에서 쏟아내는 끈끈한 액체를 뒤집어쓰고 나서야 뜨거웠던 여성 육체는 차갑게 식는다. 남자는 여자를 뒤로 하고 떠난다.

 

반면 일본 AV는 남근을 최대한 프레임 밖으로 내쫒고 그 자리를 여성 성기'가 차지한다. 일본 AV는 애초에 남성 성기에 대해 관심이 없다. 미국 총잡이가 권총을 전시한다면 일본 사무라이는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 미국 포르노는 남자와 여자가 거의 동시에 빤스를 벗지만 일본 AV는 여자가 빤스를 벗고 나서 (한참 지나서야) 남자가 빤스를 내린다. 그것은 억지로 끌려나온다. 그렇다면 미국 포르노는 남근 중심 영화이고, 일본 AV는 여성 성기 중심 영화'라고 말할 수 있나 ? 포르노를 소비하는 주체는 모두 남성이지만 접근법이 다른 이유는 뭘까 ? 미국 포르노가 남근 중심인 이유는 포르노를 보는 관람 주체가 남성이기에 가능하다. 미국 남성 관객은 거대한 남근을 가진 포르노 배우를 자신과 동일화해서 1인칭 시점으로 포맷한다.

 

반면 일본 남성 관객은 제 3자가 개입될 때 흥분한다. 그래서 일본 AV 속 상황은 " 굳이 남편이 자고 있는 옆에서 섹스를 하고 굳이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는 식으로 " 전개된다. 이 상황극은 < 누군가가 반드시 보고 있다 > 는 환상을 제공한다. 은밀한 공간에 타자'가 개입하는 순간 판타지는 작동한다. 여기서 제3자(타자)가 장면을 훔쳐보든, 잠을 자든, 마네킹이 되든, 그것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바바리맨'은 누군가가 보고 있다고 느낄 때 절정을 느끼는 부류다. 그는 바바리'만 입고 발바리처럼 거리를 쏘다닌다. 중요한 것은 내 남근이 아니라 내 남근을 목격하는 제3자의 눈'이다. < 호모, 펑크, 이단 > 은 주류 영화는 물론이고 비주류에 속하는 동성애 영화, 포르노 영화 등을 통해 성정치학을 다룬다.

 

무엇보다도 로빈 우드의 논문이 두 편( 게이 영화비평가의 책임, 살기를 띤 게이들 : 히치콕의 동성애혐오즘 ) 아니 수록된 점은 무엇보다도 반갑다. 미국 클래식 포르노는 주로 백인 남성과 백인 여성,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혹은 백인 남성과 아시아 여성'으로 이루어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배치'는 용납하지만,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이 한 조가 되는 포르노는 적다는 점이다. 그것은 주요 관객인 남성들이 백인 여자와 동양 여자'를 선호한다는 뜻이다. 포르노 속 흑인'은 무대 주인공이기보다는 우람한 페니스'만을 위한 까메오 출연에 불과하다.  포르노에서 흑인 남성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우람한 페니스에 있다. 흑인 혁명 사상가 프란츠 파농은 < 검은 피부, 하얀 가면 > 이라는 책에서 " 흑인은 가려진 채 페니스로 전환된다. 그가 바로 페니스인 것이다. " 라고 말한다.

 

백인 남성이 등장하는 포르노는 소방 호스에서 끈끈한 액체를 쏟을 때 백인 남성 얼굴을 확대해서 보여주지만 흑인 남성이 등장하는 포르노'에서는 사정하는 흑인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여성의 몸 위로 분출하는 거대한 소방 호스에서 쏟아내는 아찔한 수압을 보여줄 뿐이다. 검은 소방 호스에서 쏟아지는 수압을 감안하면 불타는 유전도 단번에 끌 수 있는 힘이다. 게이 포르노는 더욱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주의적'이다. 주로 백인 남성과 백인 남성 혹은 백인 남성과 동양 남성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백인 남성과 흑인 남성이 짝패를 이루는 동성애 영화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검은 소방 호스에 비해 하얀 소방 호스는 마치 꾀죄죄죄죄한 수족관 속 개불처럼 보인다. 백인이 보기에 검은 소방 호스는 자기 것보다 스펙타클'하다.

 

그래서 게이 포르노는 백인 남성과 동양 남성이 짝패인 경우가 많다. 하얀 소방 호스가 뿜어내는 수압에 비해 동양인이 가지고 있는 소방 호스는 달동네 꼭대기 집 수도꼭지에서 새어 나오는 수압에 불과하다. 그래서 남자 역할은 백인이고 여자 역할'은 동양인이 맡는다. 그러니깐 동양 남자'는 깔리고 서양 남자'는 자그마한 동양인 엉덩이를 큰 손으로 잡으며 로데오 경기에 열중한다. 워, 워워워. 깔린 동양 남자'는 백인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어느새 카우보이가 되어 서부 시대를 재현한다. 백인은 마초이고, 동양 남자'는 계집애'다. 이 판타지는 결국 백인 남성이 동양 남자'를 강간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거꾸로 동양 남자가 백인 남성'을 강간하는 판타지'는 실현 불가능한 것인가 ? 그런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런 포르노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 노멀한 "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할리우드 주류 시스템에서 동양 남성과 백인 여성이 사랑을 나누는 영화는 없는가 ? 그런 것 같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런 할리우드 주류 영화는 없다. 한류 스타 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 닌자 어세션 >은 이종교잡에 대한 할리우드 백인 중심 사회의 거부 반응’을 드러낸다. 한류 스타 비'는 평범한 흑인여성’과 맺어진다. 끼리끼리 놀라는 메시지'다. 백인 마초 영웅이 흑인이나 아시아 여성과 정사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는 많지만 반대로 흑인이나 아시아 남성이 백인 여성과 섹스하는 할리우드 주류 영화는 거의 없다. 영화 < 킹콩 > 은 백인 주류 사회가 얼마나 색깔에 민감한지를 제대로 보여준 블록버스터'다.

 

" 킹콩 " 은 흑인 노예, 쿤타킨테'다.  흑인 노예인 킹콩이 백인 여성을 욕망하는 순간, 백인 사회'는 킹콩을 불온한 존재로 인식한다. 킹콩이 반기를 들고 남근처럼 우뚝 솟은 엠파이어 빌딩 ( Empire : 제국, 제왕의 영토, 제왕의 주권, 황제의 통치, 절대 지배권'이란 뜻이다 ) 를 짓밟자 킹콩은 가차없이 제거된다. 왕좌'를 노리는 놈은 배,배배배배배신, 배반형이다. 동네 바보 형은 용서할 수 있어도 배반형'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백인 남성은 마음대로 흑인 여성이나 동양 여성을 가질 수 있지만, 흑인 남성과 동양 남성은 백인 여성을 욕망하는 순간 불온한 주체가 된다. 이 영화는 괴수영화가 아니라 노골적인 인종차별 영화'다.  영화 < 헐크 > 도 마찬가지'다. 하얀 피부는 용서할 수 있지만 녹색 피부는 용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영화도 인종차별 영화'다. 이 정도면 " 잰더 트러블 " 이 아니라 " 컬러 트러블 " 이다.

 

" 포르노적이다 " 라는 표현이 경멸을 내포하고 있다면 할리우드 주류 영화( 모두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또한 포르노적'이다. 진중권이 지적했듯이 현대인은 문자를 읽는 능력을 탁월하지만 이미지를 읽는 능력은 부족하다. 이미지는 강력한 어퍼컷 한 방'이 아닌 가벼운 잽-전략'을 구사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 할리우드 주류 영화는 가벼운 잽처럼 대중을 야금야금 세뇌시킨다. 문자 해독력도 중요하지만 이미지 해독력도 중요하다. 이미지'를 대할 때에는 < 무엇을 보느냐 > 가 아니라 < 어떻게 읽느냐 > 가 중요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대중은 알게 모르게 나쁜 교육에 동참한다. 포르노를 지지할 생각은 없다. 같은 이유로 할리우드 주류 아카데미 영화를 지지할 생각도 없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요, 도토리 키재기,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쿤타킨테 같은 두툼한 입술을 오므라이스처럼 오므리며 나는 말하련다. " 너나 잘하세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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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4-05-27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르노 속 인종차별이라. 이럴 땐 사투리로 "되차" 라고 해줍니다. 지들이 우월한 줄 아는 것들이 뭔들 안그럴까 싶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7 12:56   좋아요 0 | URL
되차 ?! 대차다, 라는 사투리인가요 ? 진아 님 오랜만입니다..... 이민 가신 줄 알았씁니다.

samadhi(眞我) 2014-05-27 22:59   좋아요 0 | URL
네 사투리죠. 고등학교 때 윤리선생님이 이 말을 즐겨쓰셨죠. 이 말 할 때마다 우린 웃었지요. 가랑잎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웃음나는 여고생들이었으니.
대차다 가 아니고요. 제 생각엔 어원이 대차대조표에서 나온 것 같아요. 딱 맞아 떨어진다. 과연. 이럴 때 쓰는 표현입니다.
이 끔찍한 나라를 뜨고는 싶지만 능력이 안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8 04:25   좋아요 0 | URL
갈라파고스로 갑시다 ! 거북이 버스 타고 핀치 새를 비행기삼아 물고기나 잡자고요.

마립간 2014-05-27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의 주제와 연관 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TV에서 방영했는데 어린 저에게 꽤 충격이였죠. 이 영화가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것도. (국내 첫 TV 방영 연도가 검색이 안 되고, 2014년 방송으로 나오네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890

마립간 2014-05-27 09:11   좋아요 0 | URL
주연 배우를 보니 이 영화도 생각나는군요.
밤의 열기 속으로 In The Heat Of The Night, 1967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7 12:57   좋아요 0 | URL
지금도 보면 이 영화 당시로써는 무진장 파격이고 지금도 파격에 가깝습니다. 아마, 60년대가 미국 영화 황금기여서 그럴 겁니다. 이시기 헐리우드는 모든 금기를 영화로 만들고는 했죠. 80년 레이건이 장악하면서 미국은 급 보수의 길을 걷습니다. 미국영화는 60년대가 황금기였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5-28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을 좋아하는 애들이 미국애들이죠
거대한 페니스에 정액이 슝슝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8 10:18   좋아요 0 | URL
물총이죠.. ㅋㅋ

손님 2015-02-01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할리우드 불편한 시선 킹콩 비 이종교잡에 관한 내용은 책에 적혀져있던 것인가요? 그 책 제목 알고있다면 가르쳐줄수 잇는지?

곰곰생각하는발 2015-02-01 20:59   좋아요 0 | URL
그냥 제 생각입니다.
 
고종석의 문장 ㅣ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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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도 갈닦으면 바늘이 된다 !

 

 

 

글쓰기 관련 책은 내용이 모두 고만고만하다. 일단, 저자는 글을 잘 쓰고 싶은 독자에게 용기를 주면서 말문을 연다.  " 독자 여러분, 좋은 글은 재능이 아닌 훈련에 달렸답니다. 뿌잉뿌잉 ~ "  다음은 글쓰기 책에 대한 독자 반응 패턴이다. ① 독자는 괄약근 꽉 조이며 두 주먹 불끈 쥔다. ② 밑줄 그으며 읽는다. ③ 책을 덮는다. 우우, 이상한 일이다. ④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우심방 좌심실에서 잡초처럼 자란다 ! ⑤ 이런 기분이라면 메이저리그 도루왕 리키 핸더슨처럼 김훈과 장 그르니에의 미문을 훔치는 일은 시간 문제이리라.  ⑥ 시험 삼아 서평 하나 작성해 볼까 ? 목줄을 풀자마자 사나운 손은 득달같이 모니터 앞으로 뛰어간다.  " 하나, 둘, 셋.... 아,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아아. " 덕담을 곁들여 넉넉하게 별 다섯 개 넣어주리라 ! ⑦ 그런데 모니터 속 커서(cursor)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동력 없는 땟목처럼 전진할 줄 모른다. 여기까지가 낙담 - 용기 - 좌절'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어떻게 아냐고 ?!  묻지 마라,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고종석 문장은 절밥 상차림'처럼 간소하다.  오신채( 번역투 문장 구조, 쓸데없는 겹말, 부적절한 조사 사용, 형용사, 부사, 접속사 과잉 )를 경계해 솎아내다 보니 문장이 독하지 않고 짜지 않다.  그런데 지나치게 자기 절제를 해서 개성이 약하다는 느낌도 든다. 기자 생활을 오래 하면서 글 속에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한 탓이리라. 결국 개성 강한 문체'란 변칙의 결과'다. 문장 구조를 강조하면 화려한 수사가 죽고, 수사를 강조하면 구조가 허약해진다. 적절한 분배가 필요하다. 한국어를 정확하게 사용한다는 평을 듣는 고종석이 작년에 숭실대학교 진리관에서 한 글쓰기 강연'을 책으로 묶어서 내놓았다. < 고종석의 문장 > 은 정확한 문장을 쓰기 위한 길라잡이 책'이다. 절대 고수가 입말로 전해주니 귀에 착착 붙는다.

 

고종석도 글을 잘 쓰고 싶은 독자에게 용기를 심어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 독자 여러분, 좋은 글은 재능이 아닌 훈련에 달렸답니다. 뿌잉뿌잉 ~ " 시작은 고만고만한 글쓰기 실용서와 다르지 않다.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문장 강화 훈련은 다른 글쓰기 교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종석이 말하는 정확한 문장 쓰기 요령은 다음과 같다. 출판사에서 요약한 내용을 옮긴다.


○ 접속부사를 빼면 문장에 힘이 생긴다.
○ ‘-적的’과 ‘의’는 뺄 수 있으면 빼는 게 좋다.
○ 복수 표현 ‘들’을 남용하지 마라.
○ ‘~ㅁ/음으로써’는 ‘~아/어’로 고치는 것이 좋다.
○ ‘~하는 이유는 ~ 때문이다’는 명백한 오문이다.
○ 단위를 나타내는 불완전명사는 뒤로 빼라.
○ 주어/목적어와 서술어 사이의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다.

 

이 책에서 정작 흥미로운 부분은 문장론'보다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언급이다. 전작인 < 말들의 풍경 > 과 < 감염된 언어 > 에서 자주 언급했던 내용이지만 다시 한 번 새겨들으니 통쾌한 맛이 있다. 고유어'만이 한글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언어 민족주의자'를 보고 있으면 까닭모를 거부감이 든다. 그들은 한자가 배제된 토박이말만으로 된 문장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억지를 부린다. 고종석은 " 한자어는 명백한 한국어 " 라고 말한 후, ' 나는 한자어를 절대 안 쓰겠다 ' 라고 말하는 건 아주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한다. 단어를 고를 때 얌전한 결 무늬 단어'를 주로 사용하는 고종석 입에서 " 아주 바보 같은 짓 " 이라는 표현은 수위가 꽤 놓은 비난'이다. 내가 고종석이었다면 저잣거리 입말로 " 똥 싸고 자빠졌네 ! " 라고 큰소리쳤을 것이다.

 

한글 순혈주의'는 자칫 잘못하면 에고'에 빠질 위험이 있다. 한글은 한자어(중국제 한자어, 일본제 한자어)와 섞여서 오염되었다기보다는 한국어 어휘는 한자어와 섞여서 풍부해졌다. 언어는 순혈보다는 혼혈 과정에서 어휘가 풍부해지는 경향이 있다. 좋은 예가 영어'다.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글 순혈주의자가 보기에 영어는 오염된 언어'에 가깝다. 뿌리말에는 프랑스-라틴계 에서 비롯된 말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고종석은 " 게르만계 단어들에 대응하는 프랑스-라틴 계통의 유의어들이 영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듯, 고유어에 대응하는 한자어 유의어들은 한국어를 풍부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솎아내야 할 찌꺼기가 아니라 품어 안아야 할 자산 (164쪽) " 이라고 말한다. < 섞다 > 와 < 썩다 > 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인간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독일 역사에서 위험한 민족주의가 대두될 때마다 기승을 부린 것은 < 결실의 모임 > , < 성실한 잣나무 협회 > , < 독일 애호협회 > , < 페그네시아 꽃 모임 > , < 엘베강 백조 교단 > 같은 결속체'였는데, 이들은 모두 언어협회였다. 언어협회는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가 스며든 독일어를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어마저도 게르만 순수 혈통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이 언어 순화에 엄격한 이유도 민족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한글 순혈주의자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자면 : 인간/人間 이라는 한자어 낱말 대신 사람'이라는 고유어로 대체해야 보기 좋은 문장이 된다. 그런데 < 사람 > 과 < 인간 > 은 비슷한 말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동일한 늬앙스는 아니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문장을 그대로 끌어들이자면 < A문장 : 섞다와 썩다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인간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와

 

< B문장 : 섞다와 썩다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 는 비슷하지만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 인간 > 이라는 낱말은 < 사람 > 이라는 낱말에 비해 보다 공격적이다. < 인간 > 과 < 인간들 > 도 뉘앙스가 각각 다르다. 인간은 집단성에 초점을 둔 반면 인간들은 개개인을 강조한 말이다. 그렇기에 지적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 그런 인간은 새겨들어야 한다 " 는 말보다는 " 그런 인간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 가 보다 강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찬가지로 < 값 > 과 < 가격 / 價格 > 은 비슷한 말이지만 똑같은 말은 아니다. 덩치값을 덩치가격'이라고 대체할 수는 없다. 언어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감염되는 운명을 가졌다. 유통되지 않는 언어는 사라진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 이링공 뎌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 라고 말할 수는 없다.

 

때가 되면 번성하다가 때가 되면 사라지는 것이 종(種)의 운명이듯, 옛말도 때 되면 번성하다가 때 되면 사라진다. 그게 순리'다. 절필을 선언했던 고종석이 이 책에서 자주 했던 말은 " 간결하게 써라 " 이다. 맞는 말이다. 군더더기는 솎아야 한다. 무쇠를 갈닦으면 바늘이 된다. 그 옛날 선인장 가시'는 잎이었다. 펜이 칼보다 강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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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 2014-05-25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보고싶어집니당~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5 03:02   좋아요 0 | URL
괜츈습니다. 전작들에서 이미 다 한 말이지만 종합적으로 볼 수 있고
잘못된 문장을 바로 고치는 코너도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글쓰기 책 가운데 꽤좋습니다

에피큐리언 2014-05-25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磨斧作針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5 03:01   좋아요 0 | URL
음................................

작과 침'이라는 한자 밖에 모르지만
침을 만든다, 라고 하는 걸 보니.. 요한자 쇠를 갈아 바늘을 만드느다는 뜻이군요 ?

에피큐리언 2014-05-26 02:0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마부작침. 이번 글에 딱 맞는 고사성어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6 13:28   좋아요 0 | URL
마부작침이라... 찾아보니 도끼를 갈닦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이군요.
글쿤요. 딱입니다 !

수다맨 2014-05-25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이 언젠가 평론가들도 비문을 많이 쓴다며 지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정확한 문장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정과리와 백낙청 정도 밖에 없다고 했죠.
고종석의 정치적 견해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문장을 쓰는 테크닉과 언어를 보는 감식안은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5 03:03   좋아요 0 | URL
전 고종석 문장이 개성이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문장을 바로 쓴다는 면에서는 명징한 맛이 있어 조습니다. 원래 좀 요리에 오신채 듬뿍 넣어야 자극적이잖아요. 갱성적 문체는 결국 오신체를 넣어줘어어야 사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마립간 2014-05-26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상 대화에서 가끔 영어단어가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직업적인 일 분야에서는 더욱 영어가 흔하게 사용됩니다. (제 직업의 기반이 서양에서 유래하여 영어책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저는 외국어나 외래어가 어떤 언어를 풍부하게 만든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사람과 인간의 어감에 차이가 있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한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외국어/외래어를 유입되는 문제보다 적절한 고유 한글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죠. 전 세계적으로도 고유어들이 사라지고, 이에 대한 평가는 언어 다양성 소실과 언어로 나타나는 문화의 소실이죠. ; 한국 고유어 중심 주의는 그런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905983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6 13:24   좋아요 0 | URL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 직업이면 선망 직업군이겠네요. 후후...

소수 언어는 멸종 위기에 있습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보존해야 하듯이 소수 언어도 그리 해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부분은 소수 언어가 언어가 아니라 오래된 낡은 낱말입니다.
가지를 쳐야 할 필요는 없으나 낡은 단어가 사라진다고 해서 굳이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한글순혈주의자들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으로 보기 때문에.....

마립간 2014-05-26 13:58   좋아요 0 | URL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 선망받던 직업군이었습니다. 이미 지식노동자의 세상도 저물고 있기 때문에 ... 구조 조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단 망하면 별 차이 없습니다.)

저와 제 딸을 보더라도 사용하는 단어가 조금씩 다릅니다. 언어는 변화하게 마련입니다.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지만, 한국어의 순수성 유지보다 민족/한국어의 정체성 유지가 관심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는 우리 나라는 문자가 있고, 역사가 있어 소멸되는 언어와 문화와 달리 봐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런가 의심하고 있죠.

순혈은 진화론적으로도 (단일 클론이니)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제가 한글순혈주의(자)라고 느꼈던 상황(사람)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고유어를 통한 다양성 유지로 보았다는 것이 곰곰발님과 저의 가치판단의 차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7 00:57   좋아요 0 | URL
넵... 저도 고유어를 통한 다양성 유지'가 맞다고 봅니다.
전 얼, 겨레, 넋... 이런 말 자주 쓰면서 민족주의자 행세하는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순혈에 대한 욕망은 위험하니깐 말이죠. 같은 이유로 전 언어는 오염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오염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시대에 따른 변화 정도겠지요.
옛말을 지킨다고 아르셩... 디리 얄라리 얄리.... 이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잖ㅅㅂ습니까..ㅎㅎㅎ.



+

참... 찰스 세이프의 < 무의 수학, 무한의 수학 > 이라는 책 읽어 보셨습니까 ? 수학에 관심이 있으시니 읽어보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이게 꽤 재미있습니다. 마침 50% 세일하더군요...

samadhi(眞我) 2014-05-27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순혈주의에 가까운 편이예요. 물론 한자어의 필요성은 인정해(사실은 한자를 좋아하기까지 하지요) 급수시험을 준비할 정도니까요. 그럼에도 범람하는 외래어의 유입(유입보다는 무분별한 사용)으로 우리말이 사라지게 될까 겁나고 그게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비난하거나 조소하고 싶을 때 가끔 외쿡어를 일부러 쓰기도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7 13:02   좋아요 0 | URL
저도 되도록이면 한글을 쓰려고 합니다. 대신 일반적으로 한글처럼 쓰이는 한자어를 저는 한자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무조건 한글로만 써야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그 사람이 진아 님 댓글 보면 딴지 걸 겁니다. < 편 > 이라는 말도 한자어고, 필요성, 인정, 급수, 시험, 정도, 범람, 외래어, 유입 등등등... 이런 것까지 딴지를 걸면 정말 답이 업습니다.

samadhi(眞我) 2014-05-27 23:02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사람들이 걸고 넘어질 걸 예상하고 일부러 한자어를 넣었습니다. ㅋㅋ 한자어가 정말 딱 그 느낌을 나타낼 때도 많은데 말이죠. 그리고 저는 감사와 죄송은 잘 쓰지 않습니다. 고맙다. 미안하다. 를 쓰는데 인식의 잘못으로 한글을 쓰면 낮춤말로 여기는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때 참 안타깝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8 04:28   좋아요 0 | URL
유의어와 동의어를 혼동하면 안 되는데 사람들이 유의어를 동의어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각 문장마다 딱 맞는 단어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 맞춤이 반드시 한자어도 아니고 한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때는 한글이 들어가고 어느 때는 한자가 들어가고... 알맞게 쓰면 되는데 그게 좀 부족한 거 같습니다. ^^

엄동 2014-05-27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은 책이군요!

늘 생각은 합니다.

난해하지 않게 말하고

간결하게 쓰자고.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7 20:46   좋아요 0 | URL
이 책 글쓰기에 꽤 도움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엄동 님 오랜만이네요.
어디 여행 다녀오셨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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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 다 빈치와 최후의 만찬 / 저자, 로스 킹 > 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역사/예술 논픽션'이다. 책소개 글을 읽으니 저자는 픽션과 논픽션 분야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한 모양이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마네를 다룬 < 파리의 심판 > , 미켈란젤로를 다룬 <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 그리고 산타마리아 피오레 성당 돔을 설계한 브루넬레스키 이야기 < 브루넬레스키의 돔 > 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이쪽 분야(예술 논픽션)에서는 솜씨가 꽤 좋은 모양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알라딘 검색창에 두 거장 이름을 검색하면 실감할 수 있다. 다 빈치'라는 이름으로 걸린 상품은 대략 700회 정도이고, 미켈란젤로는 600회 정도'이다. 역사와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글쟁이'라면 도전할 만한 글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프로이트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에 흥미를 갖고 논문 두 편을 썼다는 점이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년의 기억 / 1910 > 과 <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 1914 > 라는 논문이다.



독수리 내리다

 

다 빈치'는 놀랍게도 젖먹이 때 일어난 기이한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내용은 독수리 한 마리가 내려와 꽁지로 다 빈치 입을 강제로 연 후 꽁지를 입 안으로 쑤셔넣었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그런 소리 하면 " 뻥 치시네 ! " 라며 웃어넘기겠지만 명색이 레. 오. 나. 르. 도. 다. 빈. 치'가 아닌가 !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이'도 있는데 젖먹이 때 일을 기억하지 말란 법은 없다. 우우, 이 기억이 사실이라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치기어린 허세 정도로 흘려보냈을 이야기지만 프로이트는 독수리 환상에 흥미를 가졌다. 그는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유년의 기억 / 1910 > 이라는 논문에서 " 독수리 환상 " 을 분석하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동성애자'라고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꽁지라는 단어인 " coda " 가 남성 성기'를 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론은 뻔하다. 독수리 환상은 동성 간 펠라티오 환상'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터무니없는 추측은 아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꼴이겠지만, 당시 피렌체는 동성애'로 유명한 도시였다. 14세기 독일에서는 플로렌처(Florenzer)라는 말이 남색'이라는 뜻을 가진 속어로 통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구나 다 빈치는 독신자'였다. 프로이트는 여러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다 빈치'를 (돈에 관심이 많은) 항문성애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서 돈에 욕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인, 철없는 예술가'라는 것이다. 아아,  위대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프로이트에 의해 하,하하하항문에로티스트'가 되었다. 주먹 불끈 쥔 독자도 있으리라.  황당한 추론 전개 과정이지만 미워하지는 말자. " 창조적 설레발 " 이라고 해두자. 



우거지상

 

​<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 / 1914 > 이라는 논문은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유년의 기억 > 과는 다르게 창조적 설레발(과잉 해석) 대신 합리적 분석 틀 안에서 자기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이 양반, 관심 영역이 참으로 방대하다. 미켈란젤로는 모세가 하느님 말씀을 새긴 율법 판을 들고 시나이 산을 내려오다가 백성이 황금 송아지를 섬기는 꼴에 격노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어서 격노한 모세가 율법 판을 땅에 내던졌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 미켈란젤로가 만든 모세 조각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분노하는 모세'도 아니고 그렇다고 슬픔에 잠긴 모세도 아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모세 상에서 분노와 고통과 경멸이 뒤섞인 모습을 보고, 다른 이는 내적 동요를 가까스로 자제하는 평화로운 모세를 본다.

 

조각상은 하나인데 해석은 분분하다. 모세 얼굴 표정은 < 아 > 도 아니고 < 어 > 도 아닌, < 애 > 매모호한 구석이 있다. 프로이트는 모세 표정 읽기'에 집중하는 대신 사건이 발생한 전후 맥락에 주목했다. 그는 율법 판이 놓인 형태를 통해서 모세 상은 분노 상태가 지난 후'라고 판단했다.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조각을 짜맞추면 : 모세 상은 분을 삭인 후 모습이다. 분노 감정은 서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대신 슬픔, 허탈, 참담 따위는 수면 위로 오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성서 속 이야기와는 상반된다. 왜냐하면 성격 급한 모세는 황금 송아지 숭배 장면을 보자마자 율법 판을 내동댕이쳤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그 사실을 얼렁뚱땅 모른 척 넘어갈 리는 없다. " 그(미켈란젤로)는 부서진 율법 판의 모티프에 수정을 가해서, 모세가 화를 이기지 못해 율법 판들을 부순 것으로 묘사하지 않았으며 반대로 율법 판들이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해서 자신의 분노를 삭이는 모세를 묘사했던 것이다. ( 예술과 정신분석, 프로이트 전집17 154쪽 ) " 프로이트가 보기에 미켈란젤로는 성서 속 모세 이야기를 리메이크하되 모세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싶어 했던 예술가였다.

 

 

 

 

모듈성

 

진화생물학자이자 고생물하자이며 탁월한 에세이스트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 모짜르트와 모듈성 > 이라는 글에서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한다. 굴드가 보기에 모세는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산에서 목격한 일에 대한 열정과 격정, 일탈한 백설들에 대한 분노,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깊은 슬픔, 하나의 얼굴에 풍성한 감정들이 조합되었다는 점 때문에 그 조각상은 그토록 숭고해 보인다 ( 여덟마리 새끼 돼지, 364쪽) " 굴드는 복잡한 모세 얼굴에서 모듈성에 관한 명료한 통찰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 나는 이 조각상을 여러 차례 보면서 매번 그 힘을 느꼈지만, 어떻게 미켈란젤로가 한 얼굴에 그토록 많은 것을 담아냈는지 통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가장 최근의 여행에서 문득, 해답의 단서를 찾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켈란젤로는 모듈성 원리를 이해했다.

 

조각상의 얼굴에서 한 특징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를 가리면 한 가지 감정만 보였다. 눈썹이 하나의 메시지를 말하고, 코가 다른 것을 말하고, 입술이 또 다른 것을 말했다. 풍성한 얼굴은 여러 감정 모듈로 분해되지만 전체를 보면 깜짝 놀랄 결과가 나온다. 365쪽 " 무슨 말인가 하면 미켈란젤로는 눈썹은 분노할 때, 입술은 슬픈 감정일 때, 눈은 낙담할 때 표정을 각각 새겼다는 점이다. 굴드의 지적이 맞다면 대성당을 방문한 여행객은 자신이 어느 지점에 촛점을 맞춰 보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표정을 읽는다. 눈썹을 보면 화난 표정 같지만 입술 형태를 보면 슬픔에 잠긴 표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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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5-2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naver.com/ilsnkb/20192053918 (EBS 다큐프라임 동과서 요약)

서양의 사고 ; 대성당을 방문한 여행객은 자신이 어느 지점에 촛점을 맞춰 보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표정을 읽는다. - 로 쉽게 설명되는데,

동양의 사고로 보면 열정과 격정, 분노, 슬픈 감정, 낙담의 감정이 뒤섞인 부조화로 볼 것이냐, 풍성한 감정들이 조합되어 숭고로 판단하느냐에 평가가 달라지겠네요. 전자가 아니고 후자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24 15:49   좋아요 0 | URL
재미있군요. 링크 찾아서 보았습니다. 다큐프라임 참... 좋은 프로입니다.
동서가 이렇게 차이가 명확하다니 놀랍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