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보다는 도스토옙스키가 한 수 위다 :
곤혹스러운 질문
아이에게는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_ 라는 질문이 가장 곤혹스럽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쉬운 질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더 좋았다. 비록 술에 취하면 문어 다리가 되어서 일보전진하고 삼보후퇴하는 양반이었지만, 나는 아버지의 서정을 좋아했다.
뺑끼(페인트)로 작업복은 언제나 알록달록했지만 늘상 헌팅캡을 쓰고 다니셨던, 나름 구한말 경성 모던보이 패션 스타일을 유지하셨던 분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물에 빠졌는데( 둘 중 한 사람은 물에 빠져 죽는다)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_ 라는 질문도 내게는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보험을 많이 든 사람보다는 보험을 적게 든 사람을 먼저 구하겠다. 사이코패스처럼 보이겠지만 어느 선택을 하든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아버지를 구하면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이 시달리고, 어머니를 구하면 아버지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니 차라리 그럴 바에는 실리를 찾는 게 우선이다.
그렇다면 진짜, 진짜, 진짜루 어려운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이 질문은 마이클 샌델 교수가 << 정의란 무엇인가 >> 에서 소개한 질문이다. 그 유명한 " 트롤리 딜레마 " 다. 내용은 이렇다.
당신은 기차를 운전하는 철도 노동자다. 그런데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서 속도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철로를 따라 달리면 철길을 수리 중인 인부 다섯 명(ABCDE)이 죽는다. 반면에 철로를 변경하여 샛길로 빠지면 인부 한 명(F)만 죽는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트롤리 딜레마
대부분은 인부 한 명을 희생시켜서 인부 다섯 명을 살리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샌델은 결과론적 도덕 원칙과 정언적 도덕 원칙을 구분해서 설명하던데, 내가 보기에는 웃기는 짬뽕이다. 내가 기차를 운전하는 운전자라면 철로를 변경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이 부여한 다섯 인부의 정해진 운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이 내린 각본에 반기를 들고 샛길로 빠진다면 아무 죄 없는, 신이 내린 각본대로라면 80세까지 정정한 삶을 살아야 할 인부 F가 그들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질문은 나에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작 나한테는 곤혹스러운 질문은 이런 질문이다. 이명박이 더 개새끼냐, 박근혜가 더 개새끼냐.
이 질문은 정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공식보다 어려워서 울면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둘 다 개새끼라고 말하면 안 되나요? 같은 이유로 히치콕의 최고 걸작은 무엇인가 _ 라는 질문도 곤혹스럽다. << 현기증 >> 을 뽑자니 << 이창 >> 도 좋고, <<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 >> 도 좋고, << 사이코 >> 도 좋고, << 오명 >> 도 좋고, << 레베카 >> 도 좋다. 그리고 개인적 취향을 고려하면 << 열차 속의 낯선 자들 >> 이라는 영화도 너무 좋다. << 열차 속의 낯선 자들 >> 은 내가 최근에 발견한 위대한 걸작이다. 어디 그뿐인가. 오리지널 취향만 가지고 보자면 말년의 걸작 << 프렌지 >> 는 뭐..... 정말 걸작이다.
선택이 어려운 경우'이다. 같은 이유도 도스토옙스키의 최고 걸작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도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짬뽕을 주문하는 순간 짜장면이 먹고 싶듯이 << 죄와 벌 >> 을 선택하는 순간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 << 악령 >> 이, << 백치 >>가, << 가난한 사람들 >> 이, << 지하생활자의 수기 >> 가 떠오른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가 더 뛰어난가 아니면 헤밍웨이가 더 뛰어난가에 대한 질문은 매우 쉽다. 실력만 놓고 보자면 도스토옙스키가 한 수 위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시간에 쫓겨서 대부분의 작품을 초고인 상태로 내보냈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초고를 부끄러워했다.
도스토옙스키가 천재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헤밍웨이는 세상의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말했는데, 적어도 도스토옙스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쓰레기가 이 정도의 완성도를 보인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초고를 수십 번 고친 헤밍웨이 소설과 초고인 상태인 도스토옙스키 소설이 같은 레벨어서" 선택이 불가능함 " 이라는 결정을 내린다면 답은 하나다. 결론 : 헤밍웨이보다는 도스토옙스키가 한 수 위다.
덧대기 ㅣ 다음은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안되는 동영상 하나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