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 그리고 1987 : 희망을 위해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했던 고문 피해자에게 무엇이 제일 힘들었는가 _ 라고 물었을 때 고문 피해자의 대답은 내 상상을 벗어났다.
- 남영동 대공분실 : 한때 후암동에 거처를 두다 보니 오고가다 보게 되는 건물이 바로 이 건물이었다. 지금은 경찰성 인권센터'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그 전에는 간판이 아예 없어서 처음에는 천주교와 관련된 교육 기관인 줄 알았다. 건축 외양이 훌륭하고 건설자재가 고급이어서 이곳이 고문실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외딴 곳이 아니라 주민들이 모여사는 동네 주거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고문실은 5층이다. 공교롭게도 창문이 가장 많은 층이다. 나는 김수근의 후예들이 김수근 대표 건축물로 < 공간 > 사옥을 뽑는 데에 동의한다. 공간 사옥의 미학적 가치는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빛나는 공간 사옥의 쌍생아는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사실을 숨기면 안된다. 이 사실을 외면한다면 공간 사옥의 미학적 가치도 없다. 그는 권력에 봉사하기 위해서 공포라는 예술적 장치를 이용했던 사람이다.
나는 그가 공포와 폭력의 강도를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것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니까. 그런데 그는 고문 가해자가 몽둥이를 내려놓고 나서 느닷없이 친형이나 친언니처럼 굴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공포와 폭력으로 윽박지르던 자가 신파에 호소할 때, 그래서 저토록 무시무시한 괴물도 사실은 선량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고문보다 힘들었다는 것이다. 고문 가해자가 사나운 짐승이 아니라 선량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고문 피해자는 잠시 동안 희망을 갖는다고 한다. 나의 진심을 다해서 사정을 이야기하면 어쩌면 들어줄지도 몰라. 고문 피해자가 고문을 당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희망이었던 것이다.
희망을 갖는 순간 마음이 흔들립디다. 공포보다 무서운 것은 희망이었어요. 희망이 없을 때는 견딜 만하지요. 그냥 죽으면 그만이라는 식이지만, 어느 순간 희망이 생기면 살아야 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놀라운 점은 고문 가해자가 고문 피해자에게 친형이나 친언니처럼 대하는 태도가 고문 기술 교본의 정석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거친 바람보다 따스한 햇볕이 지나가는 사람의 모자를 벗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영화 << 남영동, 1985 >> 를 보았을 때 내 눈에 박힌 것은 창문이었다.
배우 이경영과 김의성 사이에서 밝게 빛나는 기형적인 쪽창을 보면서 나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 김수근이 떠올랐다. 그는 왜 한뼘 크기의 쪽창을 만들었을까 ? 이 쪽창은 고문실뿐만 아니라 화장실 그리고 나선형 철제 계단에도 배치되어 있다. 의도가 깔린 계산인 셈이다. 다시 한 번 묻자. 김수근은 왜 대공분실 곳곳에 쪽창을 설치했을까. 환기를 위해서 ? 아니다. 희망을 위해서다. 이 창문은 한뼘 크기이기 때문에 탈출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애초에 탈출이라는 희망을 갖지 못하도록 만든 기형적인 창틀인 셈이다. 하지만 역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 창문은 희망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 목적이 아니라 반대로 수감자에게 작은 희망을 심어주도록 설계한 잔인한 수작이다. 이 작은 희망으로 인해 더 많은 거짓말을, 더 많은 희생자를, 더 굳건한 권력을 ! 또한 이 창문은 세상과의 고립을 극대화한다.
밤 고문보다 힘든 것은 낮 고문이라고 한다. 벌건 대낮에 이토록 잔인한 고문이 펼쳐지지만 창문 밖의 세상은 찬란하고 따스하다는 사실이 고문자의 고립감을 더욱 강화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 아무도 없는 고문실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다면 어디에다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까 ? 아마도 저 한뼘 크기의 창문일 것이다. 이곳과 저곳의 경계. 저 밝은 곳에 두고 온 선한 자들의 세계. 그것은 일종의 희망이다. 살아서 저기 너머 밝은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일 것이다. 그래서 김수근은 곳곳에 희망이라는 쪽창을 만든다. 잔인한 설계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을 연봉 1억이라고 소개하는 블로거가 있었다. 외제차를 몰고 취미로 고가의 피규어를 모은다고 자랑하는 친구였는데, 나는 그 친구가 올린 사진 한 장을 보고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사진 배경 뒤로는 천장 바로 아래 쪽창이 보였다. 이런 창틀 구조는 그 집이 반지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반은 지상이고 반은 지하인 공간이다 보니 볕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쪽창을 높이 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주거 환경의 빈곤을 경험했던 터라 그의 거짓말이 슬픔으로 다가왔다.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실에서 사망한 박종철도 같은 심정이리라. 참...... 신기한 일이다. 창문은 슬프다.
A 남영동 대공분실 5층에는 다른 층에 비해 훨씬 좁은 19개의 창문이 있다. 팔 하나를 겨우 내밀 정도인 이 창문들은 ‘고문실’이라는 용도를 은폐하고 투신자살을 방지하는 동시에 건물 입면 비례를 감안한 미적 측면까지 고려한 설계의 결과물이다. 고문실 출입문들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어 어쩌다 문이 열려도 반대쪽을 들여다볼 수 없다. 방문은 안에서는 열 수 없고 밖에서만 열어줄 수 있게 되어 있다. 고문실 벽에는 소리를 흡수하는 타공판이 부착되어 있는데, 고급 자재가 아닌 목재를 사용한 탓에 고주파수의 비명소리가 벽을 타고 옆방으로 전달된다. 대공분실에 끌려온 ‘피의자’는 눈이 가려진 채, 자기가 가는 곳이 몇 층인지 알 수 없는 나선형 계단을 통해, 암흑 속에서 울리는 발소리와 욕설을 들으며, 엄청난 공포감 속에서 고문실로 들어선다. 이토록 용의주도한 설계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이다. “이곳은 음각과 양각의 비례로 계획된 입면, 접힌 모서리, 벽감으로 만든 출입구, 잘 분리된 동선, 심리적 고통을 배가시키는 나선형 계단, 고문을 은폐하기 위해 특별히 계획된 19개의 창문, 고문에 효율적인 공간 구성과 집기 디자인과 마감재로 만들어진, 현대 건축물 중에서 가장 악의적인 공간을 품고 있는 공간입니다.”
-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책소개 글 중에서
B 반지하 방에서도 살았고 옥탑 방에서도 살았다. 반지하 방은 방의 절반에 지하에 있다 보니 창문 크기가 작았다. 그렇다면 옥탑 방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니 창문이 클까 ? 옥탑 방의 창문도 크기가 작다. 왜냐하면 방풍 역할을 하는 구조가 없기에 옥탑은 한겨울에는 시베리아 벌판이기에 창문 크기를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작은 창문을 소유한다. 안양 충훈부 반지하 방에서 살 때, 나는 유독 창문을 자주 보았다. 그 쪽창은 지하생활자에게는 박하사탕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어쩌면 박종철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 저 너머의 따스한 세상을 꿈꾸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