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만 없어 !
노스페이스 본사 사장이 한국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다. 안녕, 코리안 친구들 ! 우리는 그저 팔 달린 옷을 생산했을 뿐인데 날개 달린 옷처럼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다니 이게 다 여러분 덕DUCK 이야.
한국에서는 등산복이 교복으로 팔리고 있으니 기현상인 셈이다. 누가 보면 대한민국을 오지 중의 오지로 산악 국가로 오인할 만하다. 미쉐린 타이어 패션을 코스프레한 당신, 오지고요 ~ 오죽했으면 미국 본사에서 TF팀을 만들어서 한국의 노스페이스 열풍을 분석했을까 ?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산은 남산으로 해발... 음, 그러니까 그게 음..... 해발...... 260m로, 아... 아닙니다. 회장님. 제가 착각한 것이 아닙니다. 남산은 2600m가 아니라 260m이 맞습니다아. 이 연구 보고서는 회장의 궁금증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켰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등산할 만한 산도 없는 나라에서 이토록 많은 등산복이 팔렸으니 내가 시베리아에서 냉장고를 판 셈이군, 허어... 그 많던 미쉐린 타이어, 그러니까 노스페이스 패딩은 지금 어디 있을까 ? 요즘도 심심치 않게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은 사람을 볼 수 있다. 10대의 불꽃 로망 패션이었던 노스페이스는 이제 60대 노인들이 입고 다닌다. 10대 손자들이 입고 다니지 않으니 60대 노인들이 고가의 패딩을 버리기는 아까워서 대신 입고 다니는 것이다. 아, 옛날이여 ! 그리고 그때의 열풍이 고스란히 재현된 것이 바로 롱패딩 신드롬이다. 노스페이스 패딩이 미쉐린 타이어를 흉내 냈다면 롱패딩은 애벌레를 흉내 냈다.
문제는 유행이 지나면 매우 촌스러워진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유행 따라 옷을 사는 소비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에 유행이 지나면 한때 유행했던 옷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대량 생산된 옷은 대량 폐기될 운명이 될 수밖에 없다. 마치, 헌책방에 가장 많이 깔린 책이 한때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책이듯이 말이다.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내 돈 주고 내가 사서 입는다는 데 당신이 웬 참견이슈 ? 롱패딩을 예로 들어보자. 얼리어답터는 유행을 선도하는 소비자 그룹이다. 이 그룹은 대부분 경제적 사정이 좋다. 이들은 패션 리더로 올해의 패션을 선점하면 그 아래 단계에 있는 소비자도 그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 롱패딩을 입게 된다. 그리고 그해에 유행하는 옷을 살 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는 계급의 아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 엄마, 나만 없어 ! " 부모 입장에서는 무리해서라도 롱패딩을 사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엄마에게 " 엄마, 나만 없어 ! " 라고 말하는 부류는 사정이 나은 경우다. 그 말조차 못하는 아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지만 당신의 소비가 누군가에게는 부담과 억압으로 다가온다. 당신은 가난한 아이들을 소외시키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유행 때문에 쉽게 버려지는 옷을 위해서 오리와 거위들은 살인적인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거위 털 소재 옷은 80%가 살아 있는 거위에서 뽑은 털이다. 깃털을 뽑는 과정에서 짐승의 살갗이 찢어지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살갗이 찢어진 거위는 마취도 없이 꿰매져서 6주 후에 다시 지옥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짐승들은 벌거벗겨진 채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과연 롱패딩 한 벌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짐승은 몇 마리일까 ? 소비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유행따라 옷을 입는 사람은 멋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유행에 편승하는 부류일 뿐이다. 좋은 옷을 오래 입는 것이 윤리적인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