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 : 고기를 맛있게 굽는 요령
고사모란 모임이 있다. " 고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을 줄인 말인데 그녀는 이 모임의 원년 멤버였다. 좋은 고기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고기 맛을 보는 친목 모임이란다. 처음에는 맛집 탐방을 핑계로 술이나 마시는 주정뱅이 클럽 모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모임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룰이 있었는데 바로 술이었다. 술을 마시게 되면 고기 맛을 술이 잡아먹게 되어 모임의 성격이 변질된다는 이유에서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그는 고기를 맛있게 굽는 비결로 < 삼세판 > 이라는 키워드를 내걸었다. 고기는 딱 세 번 뒤집어야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질 급한 사람에게 고기 굽는 일을 맡기는 것은 비극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우, 우리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에요. 스테이크는 세 번 뒤집을 때가 가장 맛있거든요. 모든 고기는 세 번 지져야 한다니까요.
그는 고기가 익는 타이밍에 대하여 1시간 내내 설명했지만 혓바닥 고자'에 가까운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밖에 없었다. 6인조 사기꾼이 등장하는 영화 << 꾼, 2017 >> 을 보는 내내 고사모 회원인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저씨, 판을 너무 자주 뒤집으면 고기 맛이 떨어져요. 판을 너무 자주 뒤집으면... 판아안을 너무무무 자주 뒤집으면.... 고기 마아아아앗이 떠떠떠떠... 떨어져요. 이 영화를 연출한 장창원 감독은 성질이 급한 나머지 반전이랍시고 불판에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익지도 않은 생고기를 열불나게 뒤집고, 뒤집고, 뒤집고, 뒤집는다.
쉽게 말해서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노리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이 반전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매력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망작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홀아비 냄새가 진동했다. 4D 영화였다면 밤꽃 향기 작렬했으리라. 허점을 찾자면 끝이 없으니 첫 번째 허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을 내자.
천장에는 CCTV가 주렁주렁 달렸다
춘자(나나), 고석동(배성우), 김과장(김세하)은 사기꾼 짝패가 되어서 보석상에서 고가의 보석을 훔친다. 춘자가 주인 몰래 보석을 훔치는 장면에서 고석동의 보이스 오프가 들려온다. " 어이, 이봐. 춘자야 !!! " 뒤돌아보면 형사인 척하는 짝패 고석동과 김과장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하면 이 장면이 얼마나 허투루 마투루 휘뚜루 마뚜루 지어진 각본이라는 사실을 쉽게 깨닫게 된다. 과연 CCTV 없는 보석상이 있을까 ? 천장에 박힌 알전구를 보라. 보석상 주인 입장에서 보면 형사 놀이가 사기극이라는 사실을 금세 간파할 것이고 제일 먼저 CCTV를 확인하는 것은 기본.
더군다나 주인은 춘자라는 사기꾼 본명을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춘자, 얼마나 귀에 쏙쏙 박히는 이름인가(차라리 사기꾼 춘자 이름을 류여혜라고 했다면 수긍했을 것이다, 한 번 들으면 쉽게 기억하기 힘든 이름이니까). 얼굴도 공개되었겠다, 이름도 밝혀졌으니 형사들이 이들을 찾는 것은 쉬운 일. 사기꾼이 등장하는 영화를 수없이 봤지만 사기칠 때 서로 본명 부르며 사기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허술한 잡범들이 고도의 사기극이랍시고 사기를 치고 있으니 관객인 나로서는 사기 당한 느낌이 든다. 또한 각본이 엉터리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 시나리오를 보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연출부도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의 스포일러를 공개했다고 투덜거릴 필요는 없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글을 읽었다면 당신은 나 때문에 시간과 돈을 번 것이다. 이런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과 똑같다. 명심할 것, 성질 급한 사람에게는 고기 굽는 일을 맡기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