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시선 156
함민복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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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한민국 < 국민 > 입니다. 종종 누군가는 < 시민, 여러분 !> 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 짐꾼 > 혹은 < 지게꾼 > 이라고 부릅니다. 제 직업은 7성급 호텔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지게에 이고 나르는 일을 합니다. 호텔은 절해고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자동차나 케이블카 혹은 헬리콥터를 이용해서 물품을 수송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궂은 일을 우리 같은 늙고 배우지 못한 가난한 짐꾼들이 합니다. 동종업계 사람들은 우리를 < 소금장수 >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여름 산 정상을 향해 짐을 지고 나르고 나면 소금기가 베인 땀이 마르면서 소금 백태가 옷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죠.

 

호텔에 근무하는 호텔리어들은 우리를 < 밀가루부대 > 라는 말로 경멸 섞인 말을 내뱉기도 합니다. 가까이 오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손가락이나 턱으로 내려놓아야 할 곳을 지정해 줄 뿐입니다. 그래도 어쩐답니까. 힘은 들어도 이삿짐 센터에서 하루 일한 품값보다 두 배는 더 받을 수 있으니 죽기살기로 오를 뿐입니다. 마누라 약값이라도 벌기 위해서는 이를 악물어야 합지요. 오늘 제가 절해고도에 위치한 7성급 호텔에 납품해야 할 물품은 생수3000입니다. 한 번 오를 때 평균 물품의 무게는 70KG입니다. 갯수로 따지면 생수 200개 정도죠. 오를 때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답니다. 그래도 남들은 돈 내고 등산을 하는데 저는 돈 받고 등산을 하는 꼴이죠. 허허허.

 

 

- 어느 지게꾼의 편지 中

 


 

 

 

눈물은 왼손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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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시집 <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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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감기처럼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다. 우는 사람‘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따라 울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을 공감’이라고 말한다. 눈물 바이러스 포자‘는 당신의 뇌하수체를 타고 간뇌와 소뇌’를 감염시킨다. 발현 속도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가장 무서운 전염 속도'다. 하지만 인간은 이 무서운 눈물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한 신약을 개발하거나 방역 시스템을 구축하지는 않는다. 눈물’은 많은 면에서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병원균‘이다. 전염성이 강한 눈물이 없었다면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에 공감 할 수 없었을 것이며, < 폭풍의 언덕 > 에 나오는 광기 어린 히스클리프'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감동이란 녀석은 태어나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낯선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눈물,  은 필요하다.


속초에서 나는 여러 죽음‘과 마주쳤다. 모두 가난하고 비루한 죽음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결말이 훤히 보이는 상투적인 드라마와 같아서 그들의 마지막 회’는 해피엔딩이 아닌 해피 엔드'로 끝났다. 가장 슬픈 죽음‘은 공교롭게도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의 부고‘였다. ( 나중에 기억을 더듬었더니 딱 한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 안양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소속을 밝힌 형사‘는 현 거주지를 상기시키며 이 주소‘가 당신이 살고 있는 주소가 맞냐며 물었다. 당시, 나는 전셋집’을 비워둔 채 속초‘에서 살았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그 주소가 현 주소지’였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박**를 아십니까 ?  

- 모릅니다.

- 정말 모르십니까 ?

- 네, 그런데 왜 그러시죠 ?

- 박** 씨‘가 죽었습니다.

- 박** 씨'라 ?!  ......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곰곰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 모르는 사람입니다.

- 박** 씨가 행불처리되기 전‘에 마지막 거주지’가 지금의 당신 주소‘로 되어 있습니다.

  주소 이전을 안 했더군요. 그러니깐, 박** 씨와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혈연 및 동거 관계‘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 네, 그렇습니다.

- 그렇다면 서류상 착오로군요. 잘 알겠습니다.

- 아... 아... 잠시만요 !

- 왜 그러시죠 ?

- 사망 원인‘은 뭔가요 ?

- 아사입니다. 노숙 생활을 했더군요. 아사와 동사가 겹쳤습니다.

  장례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가족과 연락이 되어야 하는데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구멍가게 계단에 앉았다. 바람은 칼처럼 벼린 바람이어서 내 뺨을 때릴 때마다 강한 통증을 동반했다. 비로소 그 사람 이름이 낯익은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가끔씩 내가 살던 주소로 날아오던 재판 관련 서류와 재산 압류‘를 통보하는 서류봉투에서 그 이름을 얼핏 본 기억이 났다. 나는 그 우편물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는 했다. 내가 안양 반지하 셋집'으로 집을 보러 갔을 때에 집은 이미 비워져 있었다. 계약이 이루어진 날에 집주인은 내게 열쇠를 주면서 원래는 월세방이었으나 전 세입자가 말썽을 부려서 전세로 돌린다며 투덜거렸던 기억이 났다.

 

이리저리 조각을 짜맞추니 전 세입자는 이사를 간 것이 아니라 월세가 밀려서 강제로 집을 비운 것이었다. 그 집을 내가 들어가 살게 된 것이었다. 지난 일들을 다시 꼼꼼하게 되짚어보니 나는 그와 마주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주인 몰래 찾아와서 쌓아둔 우편물을 찾아갔다. 철문 앞에 선 그는 형색이 초라한 몰골이었다. 오른손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길래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병원에 있다가 퇴원하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낡은 현관 철문 앞에서 거듭 미안하다는 말을 한 후 밤 고양이'처럼 뒤꿈치'를 들고 사라졌다. 그 어깨가 기억났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늦겨울,  언 수도'가 이른 봄볕에 녹아 느닷없이 녹물을 쏟아내듯이 눈물이 났다. 서류상이었지만, 그래도 그와 나는 동거인'이 아니었던가. 

 

 

그가 살던 방에 박힌 못을 빼고, 그 구멍을 지우기 위해 벽에 그림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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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얼굴 없는 동거인,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부엌이 딸린 싱크대가 놓인 거실에서 따스한 밥을 지었을 한 때. 문득 그가 못질을 했던 안방'이 생각났다. 키를 맞춰 못을 나란히 네다섯 개 박은 모양새로 보아 옷걸이 대용으로 사용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선명한 가난이 보기 싫어서 이사 하자마자 그 못들을 뽑은 적이 있다. 옷걸이 하나 없는 가난한 삶.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볕이 들던 방에서 그는 무엇을 했을까 ? 빠르게 편집된 영상처럼 그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지나쳐갔다. 스치듯이 지나간 것이 전부인 인연이었지만 묘하게도 아주 낯익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날, 속초 동명항 방파제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며 굶어서 죽은 남자'를 생각했다.

 

첫 잔은 예의‘를 갖춰 원을 그린 후 바닥에 뿌리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극락정토, 꽃피는 봄이 오는, 일 년 내내 꽃피는 그곳으로 가시라. 문득 그 사내는 왼손잡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빌어먹을 재주도 없고, 사기 쳐서 등골을 빼먹는 말재간'도 없으며, 넉살'조차 없는 사회 부적응자'였던 그는 왼손잡이'였다. 오른손잡이'는 칼을 쥘  때 오른손에 쥐고, 왼손잡이는 칼을 쥘 때 왼손에 쥐는 법. 그러니깐 그가 오른쪽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칼을 왼손에 쥐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날 이후로, 왼손잡이'를 볼 때마다 굶어서 얼어 죽은 사내'를 떠올렸고 그럴 때마다 그 사내 생각에 눈물이 났다. 나는 왼손잡이'를 만나기만 하면 눈물이 찔끔 났다.

 

그때부터 내 몸속에 있는 눈물은 왼손잡이'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나 또한 왼손잡이'가 아니었던가 ! 어쩌면 왼손잡이에게 느끼는 연민은 나를 향한 자기연민'이었을 것이다. 함민복 시인은 터지는 눈물을 삼키며 눈물은 왜 짠가, 라고 묻는다. 내게는 그리 난처한 질문은 아니다. 가난한 몸은 몸 전체가 염전이다. 소금장수의 등골에서는 소금이 베이고, 가난한 시인이 흘리는 눈물은 짠물이다. 칠장이'였던 내 아비의 몸도 짜디짠 염전이었다. 나는 한때 한여름이면 등에 퇴적층'처럼 쌓이던 아비의 소태'를 부끄러워한 적이 있었다. 빛과 소금이라 했던가 ?

 

내 아버지가 책 읽는 선비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 아들아, 좋은 소금을 만드는 것은 어둠이 아니라 빛이란다. 한줌의 소금을 얻기 위해서는 태산 같은 땀을 흘려야 한다. 눈물을 참으면 땀이 되고, 땀은 소금이 된단다. 설탕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으나 소금은 인간에게는 생명과 같은 것. 부자의 몸에서 나는 달큰한 냄새를 부러워 마라. 가난한 소금을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 " 하지만 배움이 부족했던 아비'는 근사하게 말하는 방법을 몰랐다. 이제는 안다. 등골에 퇴적층처럼 쌓인 소태'를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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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orte 2013-07-18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인지 뭔지, 떠나자마자 다시 돌아왔네요. 같이 간 친구의 베프가 수술을 했는데 못 깨어나고 정신도 없는 와중에 친구만 찾는다고 가족한테 연락이와서 바로 돌아와야 했답니다. 에효... 팔자에 방학에 두번 여행가는게 좀 미안스럽다 했더니... 오자마자 첨 읽는 곰발님의 글은 왜이리 슬프답니까. 슬픔을 달고 사시는 사람 같습니다 그려. 세상에 슬픈 사람들이 너무 많은것 같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8 13:15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친구의 친구 분 어서 일어나셨으면 합니다.
뭐, 슬픔이라고 거창하게 말하기엔 뭐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울을 깔고 있는 사람인 것은 맞는 말씀입니다.
하여튼.. 됐고 ! 어서 빨리 자리 털고 일어나 신나게 말 털었으면 하네요.

마립간 2013-07-18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빌어먹을 재주도 없고, 사기 쳐서 등골을 빼먹는 말재간도 없으며, 넉살조차 없지만, 오른손잡이이고 사회 부적응자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8 13:14   좋아요 0 | URL
가장 좋은 경계인의 예입니다. 빌어먹을 재주 없고, 남 등골 빼먹는 말재간 없고, 굳이 넉살 없어도 사회에 잘 적응하며 사는 사람이 바른 삶이죠. 전, 넉살 좋은 사람 보면 일단 거부감부터 좀 듭니다..ㅎㅎ

마립간 2013-07-18 16:12   좋아요 0 | URL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사회부적응이 아니고, 잘 아는 사람이 보기에는 사회부적응이고, 나는 사회부적응이라고 생각하면서 힘들어 하고, 알라딘에도 적응 못하고. 어찌보면 좋은 경계인이라는 것이 형용 모순같기도 하고, 곰곰생각하는발님이 말한 '그 중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8 15:1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니 마립간 님이 왜 알라딘에서 적응을 못하십니까.
마립간 님 글 열심히 애독하는 분 많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07-18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우면서 미우면서도 가슴 아프게 하는 좌파신자유주의~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8 13:17   좋아요 0 | URL
전 좌파신자유주의'를 좀 혐오하는 편입니다.
글구 보니 동명항 포장마차에서 꽤나 울었네요.
노무현 서거 때는 정말 꺼이 꺼이 울었습니다.

마노아 2013-07-18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아사라니, 몹쓸 세상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8 13:17   좋아요 0 | URL
육체적 허기보다는 정신적 허기'가 늘 고통스럽죠...

히히 2013-07-18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머리가 똑똑한게 불효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생님의 간절한 희망을 뒤로 하고 동생의 앞날을 가슴에 품고서
대구 방직공장으로 딸이 갔던 길을
엄마는
돌아오는 그 길에서 한도 없는 눈물을 뿌렸겠지요.
오목오목 디뎌논 발자국을 따라
부디 몸 성하고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라고
질근질근 지르밟고 돌아왔을 엄마는
눈물로 언니의 앞길을 빌고빌었을 겁니다.
그 눈물은 정한수 보다 더 효험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날 부모 가슴을 찢었던 똑똑불효녀에게
녹을 먹는 자가 쉰 명은 넘지 싶네요.
기도발 끝내주죠?

언니는 오빠를 위하여 원한을 퍼부었는지(ㅋㅋㅋㅋㅋ)
6남매 중에서 제일 별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8 15:18   좋아요 0 | URL
댓글의 헤밍웨이 !
히히 님은 댓글의 헤밍웨이 같은 존재이십니다.
어찌나 문장 하나하나가 좋은지 말입니다.
멍청해서 불효를 저지르는 것보다는
똑똑해서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인간은 다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존재란 생각을 합니다.

비로그인 2013-07-18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 ! 난 어릴 적부터 울엄마아빠 일하는 뒷모습 보면서 땀났다 말랐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 어깨 위에 하얗게 내려앉은 소금들을
일상적으로 보며 자라서..결국 땀이 마르면 소금이 된다고.. 일찌기 알았었어.
그런데 그런 엄마아빠의 뒷모습을 내가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는 건 아닌지..
한때는 적당히 잊으려한 적도 있었어. 그런데 자기 부모의 그러한 뒷모습을
뚜렷하게 목격한 자식의 삶은 어느 정도 정해져있단 생각을 해.
그리고 그게 점차 어떤 형태의 신념이 되어가는 거 같아.
좋은 글을, 고마워 ! (몇번 읽어도 감동해~! )

나 이제 잘꺼얌 !!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8 17:36   좋아요 0 | URL
항상 5시면 자는구나.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뀌었군..
작업은 잘 되냐 ?
부모의 소금 소태를 발견하게 되면
무척 심란하지...
신기해. 인간의 몸에서 소금이 나오다니 말이야...

소년에로학난성 2013-08-26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와 다름없이 여기 계시는 걸 보고 안심!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6 00:26   좋아요 0 | URL
누구신가욤 ? ㅎㅎㅎ

응화 2013-08-3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곰발님의 글도 재밌게 읽곤 하는 알라딘서재 애독자(?)입니다.

글의 제목을 보자마자 '연필은 눈물'이라고 말한 소설 '은교'의 이적요가 떠올랐습니다.
- 의도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ㅎㅎ

지금 흘린 땀이 자산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 사이에 소금을 넣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군요.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댓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꾸벅...;

곰곰생각하는발 2013-08-30 17:32   좋아요 0 | URL
아, 전 은교를 읽지 않았어요.
읽어야 할 터인데 한국 소설 잘 안 읽게 됩니다.
댓글 자주 달아주세요. 꼬박꼬박 덧글 달겠습니다.
 
비성년열전
신해욱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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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조커/광대'는 왕의 노리개로 내시'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 여자 같은 남자를 조롱할 때 흔히 쓰는 말이 내시 같다는 말이다. ) 이성복 시인이 아, 입이 없는 것들이라고 한탄했다면,  나는 " 아, 부, 부부부부부부불알'이 없는 것들 ! " 이라고 외치겠다. 영화 속 조커는 좆이 없는 존재다. 이러한 사실은 상처 입은 입을 보면 답이 나온다. 입을 90도 각도로 틀면 입이 여성 성기'를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 속 조커의 입술이 유난히 강조된 이유는 바로 조커가 여성(성을 간직한 남성)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입술이 폭력적인 아버지에 의해 찢어졌다는 것은 조커가 아버지에 의해 강간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찢어진 입은 강간, 낙태, 임신중절 수술을 연상케한다. 조커는 남성 폭력에 의해 강제로 적출된 낙태아'이다. 지금 그녀는 복수를 하기 위해 배트맨과 싸움을 신청한 것이다. 말 그대로 방망이를 든 사내와 세기의 성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bat는 말 그대로 야구 배트'를 의미하지 않은가 ? 몽둥이란 폭력적 가부장의 대표적 오브제가 아니었던가 ? 라캉은 여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여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 "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자는 0'이다. 그러므로 조커는 여자다. 왜냐하면 카드에서 조커는 숫자 0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심으로 조커'가 승리하기를 바랐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응징하기 위해 나타난 조커 ! 얼마나 멋진가. 남근을 닮은 그 몽둥이'를 부러뜨리기 위해 그녀는 돌아온 것이다. 배트맨은 bat가 아니가 bad다. 그는 나쁜 놈이다.  

 

 

- 배트맨보다 조커에게 경배를, 0에 대한 모든 것 中

http://myperu.blog.me/20163566815

 

 


 

 

 

 

 

 

 

라는 문자를 좋아한다 !

 

非'라는 " 문자의 소리 " 를 좋아한다. 목소리 좋은 남자가 눈꺼풀을 느리게 내렸다가 천천히 올리며 낮은 탁성으로 읊조리는 저음 말이다. 소리뿐만이 아니다. 이 문자가 가진 꼴'도 좋아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리 많은 벌레가 연상된다. 그러니깐 非는 반골적 기질과 하찮은 것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우연일까 ? 非와 같은 문자가 가지고 있는 반골 성향'은 알파벳 b와도 겹친다. 둘 다 < 삐끕 > 이 주는 반골 기질'이 느껴진다. 곰곰생각하는발 식으로 표현하자면 " 뼛속까지 캄캄한 오골계의 생래적 성질머리 " 이다.

 

주류가 가지고 있는 긍정성'을 체질적으로 혐오하는 나의 태도는 非급에 대한, 혹은 b급'을 향한 열광적 지지'로 이어지고는 했다. 영웅'보다는 괴물'을 좋아했다. 배트맨'보다는 조커'에게 끌렸고, 백마보다는 당나귀가 더 근사했다. 괴물이 등장하는 수많은 재난 영화에서 내가 응원했던 것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재난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괴물'은 도시를 파괴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이 잃어버린 휴머니즘을 복원하기 위해 등장하는 < 위악적 선인' > 일 뿐이다. 괴물은 인간을 위해서 죽는다.

 

우리는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괴물과 인간의 사투를 통해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성찰하게 된다. 폐허가 된 도시'는 기념비와 함께 다시 우뚝 솟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함께 손잡고 뛰었던 가족은 다시 뭉칠 것이다. 해피엔딩이다. 괴물 영화가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가족의 재발견이다.  괴물은 인간적인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비록 괴물은 끔찍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가면을 쓰지는 않는다. 그들은 날것 그대로를 보여줄 뿐이다. 괴물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아닐까 ? 가면을 가지지 못하는 존재는 순수한 존재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 非' > 라는 글자가 좋다. < 非 > 는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이며, 긍정성'보다 부정성'에 가치를 두는 문자이다. < 바틀비/허먼 멜빌 > 에서 바틀비가 "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 라는 선언이 바로 非다.  이 문자는 콜린 윌슨이 쓴 < 아웃사이더 > 와도 완벽하게 겹친다. 우리가 흔히 비주류'라고 말할 때의 < 非 ~ > 는 중심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만약에 < 非 > 대신에 < 反 > 이라고 썼다면 과연 < 비주류 > 적인 반골 기질'을 전달할 수 있었을까 ? < 非 > 와 <  b > 만큼 대상을 명확하게 지시하는 문자'도 없다. " 非는 존재 증명'이다 ! "

 

내가 시인 신해욱이 쓴 에세이 < 비성년 열전 > 을 읽은 까닭은 오로지 " 非성년 " 이라는 조어'가 주는 독특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녀가 쓴 (시를 읽어본 적은 있으나) 시집'을 읽은 적도 없을 뿐더러 이 책의 목차를 훑어보지도 않고서 이 책을 산 이유는 전적으로 < 非 > 라는 문자가 주는 강렬함 때문이었다. 신해욱'은 미성년 대신 비성년을 선택한다. 未성년'이  AGE'에 근거한 분류'라면, 非성년'은 EDGE'에 속한 분류다. 그러니깐 미성년'은 성인 이전의 시간'을 의미한다면, 비성년은 중심에서 벗어난 공간인 변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未 는 시간 영역'이고, 非는 공간 영역'이다. 非는 反과 다르고 不과도 다르다.

 

공교롭게도, 정말 공교롭게도, 그녀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한 비성년자'들은 내가 대부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캐릭터들이었다. 바틀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프롤로그는 다시 바틀비에 대한 생각으로 끝을 맺는다. 그녀가 이 에세이'에서 다룬 모든 비성년자들은 또 다른 바틀비'였다. 그녀는 시작부터 미노루 후루야의 치명적 만화인 < 두더지 > 에서 주인공 스미다'를 바틀비의 적자로 호명한다. ( 내가 후류야의 < 두더지 > 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동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동과 동일한 것이었다. 후루야는 도스토예프스키다. )

 

그런가 하면, < 렛 미 인 >에서는 호칸 뱅손'을 적자로 호명한다. 낯선 이름이리라. 그는 흡혈귀인 소녀 이엘리'를 욕망하는 중년의 늙은 남자'이다. 44세, 전직 국어교사, 소아성애에 사로잡힌 사내 말이다. 그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비주류이자 소아성애자라는 측면에서 괴물'이다. 욕망을 채우는 순간 그는 괴물이 된다. 그는 그저 사랑하는 흡혈귀 이엘리'를 위해 피를 공급하는 초라한 사내이다. 호칸 뱅손이 중년의 몸으로 소녀를 사랑하는 운명이라면, 영화 < 오펀 > 에 나오는 주인공 에스더 콜먼은 소녀의 몸을 한 나이 든 여자'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회로부터 < 아이-다움 > 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아이가 아닌 어른인 그녀에게 천진난만'을 강요하는 것'은 결국 비극을 낳는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비성년자들을 호출해서 그들을 위한 변명을 한다. 그리고 그녀의 항변은 정당하다. 非는 강렬하다. 非라는 문자로 커밍아웃된 존재 증명(들)은 허우대 멀쩡한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진다. 이 소수자들은 힘이 없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주체'이다. 내가 구로자와 아키라'보다는 스즈키 세이준에게 열광한 이유도, 미시마 유키오'보다는 다자이 오사무'에게 빠진 이유도 다 그놈의 非급 정서 때문이 아닐까 ?

 

다이안 아버스와 실비아 플라스 그리고 프리다 칼로'에게 빠진 이유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들은 아름다운 얼굴로 유혹하는 존재가 아니라 초라한 어깨로 유혹하는 존재였다. 앞에서 보면 보이지 않으나 뒤에서 보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둥근 어깨가 아니었던가. 내가 사랑했던 여인도 초라한 어깨를 가진 자'였다. 非급 존재증명자'들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그것이 그들이 가진 운명이다. 어쩌다 실패하게 되는 운명이 아니라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은 그 필연성으로 인하여 아우라'를 얻는다. 참혹을 매혹으로 만드는 힘'이다.

 

다이안 아버스는 이런 말을 했다 : 길을 걷다가 누군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 그래서 눈에 띠는 것, 그것은 치명적인 매력이 된다.  치명적인 존재는 아름답다, 동시에 치명적인 존재는 독을 품는다. 인간이 非처럼 생긴 지네'를 두려워하는 것은 지네'가 징그러운 벌레이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아름답기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몸이 경직되고, 호흡이 가빠지고, 눈을 땔 수 없는 현상은 무섭기 때문이 아니라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 아닐까 ? 두려움과 사랑은 동일하다. 이 책 매우 좋다. 난, 틀린 적이 없다. 내 말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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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느와르 2013-07-17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B급 좌파라 노래하는 김규항 때문에 한 발 물러나 C급 (허)무파라 생각하는 일인 여기 있어요.
다이안 아버스, 실비아 플러스, 프리다 칼로도 당연히 내 파라 생각해요.
근데 비는 태희파인데 곰발님도 혹시?

서두에 입이 없는 것들 대신에 외칠 때 아, 불불불불불, 불알이 없는 것들이라고 정정해야 하는 것 아네요.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8:2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그게 더 강렬한데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불알이 없는 것들로 정정하겠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07-1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지라가 있다면 에비라도 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8:43   좋아요 0 | URL
어여, 출근 서두루소 !!! 강철 만애비... ㅎㅎㅎㅎㅎ

드팀전 2013-07-17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보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16:34   좋아요 0 | URL
아, 드팀전 님을 이 자리에서 뵙는군요...ㅎㅎ. 고맙습니다.

히히 2013-07-17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非급 존재증명자'들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그 필연성으로 인하여 아우라'를 얻는다.'
완전 끄덕끄덕.
영화는 보지못하여 몰것고 책에서는 호칸 뱅손이 제일 남습니다.

흔적없이 섞인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만
非에겐 억지라는 누명을 씌우는 세상이므로
결국엔 그들은 숨는꼴이 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16:34   좋아요 0 | URL
뱅손이 영화에서는 거의 존재가치가 없어요. 전 영화로 받을 때, 이 영화 부천영화제에서 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발리우드 인도 영화 다음으로 가장 인기가 좋았던...

전 영화에서는 아버지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소설은 전혀 다르더군요.
영화로도 훌륭하고소설로도 참 훌륭하죠.....

비로그인 2013-07-17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적인 것을 애호하는 너의 마음에 무진장 공감!!
그런데 지극히 B적인 것을 A적인 양 끌어올려내지 않으면
B의 인생은 너무나 찰나,인 거 같아.

영원을 만들기도.. 그렇다고 찰나를 받아들이기도..
참 힘이 들구나..


나 이제 잘꺼얌~!!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20:45   좋아요 0 | URL
그림 그릴 때마다 징징거리더니 이번 작업은 꽤 흡족한가 보다 ?
이러다가 대박나는 거 아니냐.
하튼 6시에 자면 12시에나 일어나겠구만.. 흠흠...
난 b는 그냥 b스럽게 내버려둔 작품이 좋더라고.
b가 a 흉내를 내면 좀 그렇다.
그나마 호가든 맥주가 제일 맛이 좋다. 스팸에 호가든.. 궁합이 꽤 좋아 !
 
고등어 - 개정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며칠 전 : 책장에 꽂힌 공지영의 소설책 두 권을 뽑았다.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과 < 고등어' > 다. 사실 < 우행시 > 는 200페이지 정도 읽다가 던져버렸지만 책 내용'들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책은 헌책방에서 헌책으로 장만했지만 책 상태는 지금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진열장에 꽂아  넣어도 새책으로 오해할 만큼 깨끗하다. 밑줄을 긋지 않은 것'을 보면 기억할 만한 문장이 전혀 없었나 보다.

 

그것은 이 책을 헌책방에 판 책 주인에게도 해당된다. 그는 흔적이 될 만한 밑줄, 접힌 모서리, 메모, 갈피 사이에 끼워진 낙엽이나 네잎 클로버 혹은 편지나 영화표 그리고 영수증따위'로 낡은 책'이라는 기표를 남기지 않았다. 감정적 전이 상태가 없었던 까닭이리라. 그러다가 책 맨 뒷 장'을 펼쳤다. 책 알림 정보'를 살펴보니 초판 167쇄'라는 기록이 인쇄되어 있었다. 167쇄 ?  167쇄?!!!!  아니, 이 책이 167 쇄'나 팔렸다는 말인가 ? 

 

이번에는 < 고등어 > 를 꺼냈다. 매우 오래된 책'이다. 내가 공지영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 였다. 풀빛에서 출판되었었나 ?! 그때부터 나는 으르렁거리는 안티'가 되었다. " 지랄 같은 소설이군. 대한민국의 화염병 가운데 70%는 모두 소설 속 주인공이 던진 것처럼 말하네.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 땅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아니라 최루탄 속 사랑'이잖아 ?  러브스토리이면서 왜 투쟁을 이야기하지 ? " 나는 공지영이 이토록 유명한 소설가'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예상을 깨고 신경숙과 함께 최고의 작가'가 됐다. 아니, 가장 많은 책을 파는 작가'가 됐다.

 

고등어'를 살펴본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사 놓고 읽지 않은 책'이 워낙 많기에 이 책'도 사 놓았을 뿐 읽지 않은 것이다. 중구난방으로 이 책 저 책 읽다 보니깐 산 책을 다시 산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종종 읽지도 않은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고, 읽었으면서도 읽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내가 이 책을 읽었는가 읽지 않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흔적이다. 노란 색연필로 그은 밑줄, 연필이 눌린 자국, 메모, 모서리가 접힌 자국, 각종 영수중, 서표'를 통해 유무를 판단하고는 했다. 일단 책 맨 뒷 페이지'를 살펴보았다. 맙소사 ! 95년 초판 57쇄 ?  초판 1쇄'가 94년 6월인데 1년만에 60쇄에 도달한 것이다. 미치겠군 !  

 

그런데 서른 페이지 정도 읽다가 노란 색연필'로 그어진 문장을 발견했다. 노란색 밑줄이 그어졌다는 사실은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증거다. 그런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라도 몇 분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잃어버렸던 장면들이 다 복기되는데 이 소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다가 만 소설일까 ?  맨 뒷 부분을 살피는데 노란 밑줄이 다시 발견된다. 끝까지 읽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런데 단 한 줄도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경우가 가능할까 ? 이렇게 표백된 기억'이 가능할까 ? 불가능하다.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깐 말이다. 대충 내용을 살펴보니 80년대 운동권 세대'에 대한 스케치다. 이번에는 불륜을 건드렸나 보다. 피식 웃음이 났다. " 여전히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사랑'을 이야기하는구나. " 책 맨 뒷장을 살피니 다음과 같은 메모가 있다.

 

TO. 곰곰생각하는발

 

피로 맺은 우정, 죽음까지도 함께 하리라.

 

김은호 ( 011 - #### -#### )

 

FROM. ○○○

 

피로 맺은 우정이라.........  사인' 부분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휘갈겨쓴 상태라 이름을 알 수는 없었다. 누구일까 ? 내가 아는 사람이 분명할 터인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이 책의 주인이었던 사람은 왜 느닷없이 김은호'라는 사람과 그 사람 연락처를 남긴 것일까 ? 나는 이 사람에 대해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여튼 날이 밝으면 김은호'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아직까지 011 - 로 시작하는 핸드폰 번호'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전화해 볼련다.

 

" 김은호 씨 ?  011-739 -0*** 번 김은호 씨 ?  제가 공지영의 고등어라는 책을 가지고 있는데 맨 뒷 장에 선생님 이름과 전화번호'가 있더군요.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혹시 누구인가요 ?  아... 화내지는 마십시요. 제가 기억을 잃어버렸거든요. 그래서 그 기억을 찾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찾아뵙고 말씀 나누고 싶습니다. 필체와 사인을 보여드릴 테니 기억나시는 분이 계시면 말씀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어제까지의 : 에필로그 

 

1. 김은호 씨'와 통화를 한 후 그를 찾아갔다.

2. 책 뒷 장에 쓰여진 필체를 김은호 씨'에게 보여줬다.

3. 김은호'는 사인을 자세히 보더니  " 박명욱 "이라는 자를 지목했다.

4. 나는 박영욱을 찾아갔다.

5. 그는 3일 전 의문의 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6. 그의 부인을 찾아갔다.

7. 부인의 이름은 김은혜'다.

8. 김은혜'는 남편이 공지영 팬 사인회에서 얻은 책이라고 말했다.

9. 나는 공지영을 찾아갔다.

10. 공지영을 만났다.

11. " 돌아가는 꼴 " 을 이야기하며 공지영 씨에게 사실 확인'을 부탁했다.

12. 공지영 씨'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 책을 어떻게 아시지요 ?  고등어'는 지금 제가 집필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씨 !  출판된 적이 없는 책이라구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이란 말입니다. 도대체 당신 누구야 ? 아, 아아... 그러고 보니......  나,  당신... 누군지 알 것 같아요. 그때 팬 사인회'에서 실수로 내 옷에 커피를 쏟았던......   "

  

갑자기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 전...  저는..  다만....  그러니깐.... .....      달콤쌉싸래한 씀바귀입니다. " 뒷걸음질친다. 돌부리에 걸린 것일까 ? 휘청, 넘어진다. 박영욱, 박영욱, 박영욱이라....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기는 하다. 내가 박영욱이었던가 ?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주머니 속 손수건을 꺼내다가 구겨진 종이뭉치를 꺼낸다. 펼쳐보니 정신과 처방전이다. 박영욱이란 이름이 박혀 있다.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들린다. " 브라보 ! 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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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7-16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페루애님 이런 넌픽션과 픽션이 가미된 글이 참 좋아요. :)

공지영 책은 읽은 적이 없고... 우행시는 영화를 봤습니다.
인공적인 기조며 너무 관객의 감정선을 직접적으로 촌스럽게 건드리던 영화 자체가 별로 와닿지 않았고..
아니 그보다 불만이 참 많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은데.. 암튼 소설 자체도 별로인가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3:12   좋아요 0 | URL
공지영이 후졌다기보다는 서로의 취향이 맞지 않은 듯합니다.
전 공지영 식 문장에 꽤 마음에 안 들어요. ㅎㅎㅎㅎㅎ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내 취향의 기준에 의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단 거지
공지영 문장이 후지다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너무 내가 내 기준으로만 보는구나. 이런 거...
늙나 봅니다. 팔팔할 때는 대립각도 많이 새웠는데 이젠 그게 싫어져요...

그리고.. 영화, 송해성 감독의 그 영화. 아 정말 보다가 나오고 싶었습니다.
파이란을 만든 감독이라고는 매치가 잘 안 되었어요.

히히 2013-07-17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각을 접기는 하나 밑줄긋기는 아직 아깝습니다요.

'이별로 돌아오지 않는 사랑, 죽음까지 함께 하리라.'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16:35   좋아요 0 | URL
밑줄은 못 긋는군요...ㅎㅎ. 노란색연필 추천합니다. 제가 수많은 색의 색연필을 사용해 보았으나
노란색은 좋습니다.
 
[블루레이] 올드보이 - 아웃케이스 없음
박찬욱 감독, 강혜정 외 출연 / 피터팬픽쳐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친구가 마지막으로 선보인 음식은 딤섬'이었다. 짬뽕으로 승부하기에는 경쟁이 치열해서 고급화 전략'으로 딤섬 요리 기술'을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며 내놓은 것이다. 내가 만두'라고 했더니 그는 화를 냈다. " 그, 그그그그것은 딤섬에 대한 모독이야 ! " 딤섬을 點心'이라고 적는단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이름이 시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 올드보이 > 에서 최민식이 질리도록 먹었던 군만두'는 서비스 메뉴'였을 것이다. 이런저런 추론을 해보면 유지태는 최민식을 사설 감옥'에 보내면서 날마다 밥값을 지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밥값은 사설 감옥 직원들의 공돈으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대신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를 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그러니깐 최민식은 15년 동안 직원들이 점심을 시켜 먹고 남은, 서비스로 나온 만두만 먹다가 속 터져버린 이야기다. 만약에 최민식에게 군만두 대신 딤섬을 點心 으로 내놓았다면 그토록 비극적이지는 않았으리라. 짬뽕이 맵고 자극적이었다면, 김이 모락모락나는 딤섬'은 담백하고 순한 맛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는 자극적인 것을 탐하다가 늙으면 순한 맛에 매료된다.

 

- 보수란 무엇인가, < 짬뽕과 딤섬 > 中

 

 


 

 

 

 

올드보이와 군만두.  

 

 ■ http://myperu.blog.me/20176091371 : 유지태는 스핑크스다

http://myperu.blog.me/20128341708 : 말하는 괄약근과 배설하는 입

 

처음에는 < 올드보이 > 에 대해 " 오이디푸스와 그리스 비극 " 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으나 생각해보니 그런 식의 접근은 이미 신형철을 비롯한 무수한 먹물'들이 신물'나게 지적했을 터, 발화의 힘은 화려한 스펙'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 내가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으로 지적을 해보아야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서 " 올드보이와 군만두 " 에 대한 이야기를 하련다. < 올드보이 > 에서 유지태는 최민식에게 이 비극을 초래한 원인으로 " 당신의 세치 혀 " 를 지목했지만 내가 보기엔 " 군만두 " 때문에 비롯된 비극'이다.  

 

최민식'은 처음부터 군만두'를 먹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유지태가 최민식에게 감금된 기간 동안 육체적 고통'을 주려고 했다면 모텔 인테리어를 그대로 옮긴 감옥에 그를 가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최민식은 감금되어 자유를 잃었을 뿐이지, 나름대로 문화적 혜택을 누린다. 티븨'가 나오고, 수세식 변기와 에어컨이 작동한다. 유지태 입장에서 보면 수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선처'다. 그렇기 때문에 먹는 것 가지고 장난을 쳤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최민식은 왜 군만두만 먹게 된 것일까 ? 속 터지게 말이다.  

 

최민식도 처음에는 다양한 요리'를 제공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칼칼한 짬뽕도 먹고, 쫀득쫀득한 짜장면도 먹었을 것이며, 볶음밥, 유산슬, 팔보채도 먹었을 것이다. 먹고 자고 싸니, 나름 살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억만장자인 유지태가 그깟 밥값이 아깝지는 않았을 터. 아마도 한 끼 식사 비용으로 만 원씩 제공되지 않았을까 ? 문제는 그 돈이 사설 감옥 직원들의 주머니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하자 많은 사설 감옥이므로 마음대로 음식을 시켜 먹을 수는 없으니 특정 식당 하고만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독자들도 다들 아시겠지만 중화요리'라는 것이 단골이 되면,  짜장면 두 개만 시켜도 군만두 서비스'가 제공된다. 하물며 날마다 음식을 주문하는 사설 감옥이라면 ? 

 

사실 감옥 직원들은 최민식에게 제공되는 식사 비용'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고서는 서비스로 나오는 군만두'를 주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최민식은 군만두만 먹는다. ( 앞으로는 미래 가정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묘사하겠다. ) 신물나게 한 가지 음식만 먹어본 자만이 안다. 그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고통을 선사한다. 더군다나 느끼한 군만두가 아니었던가.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다가 그는 폭발한다. 음식 주입구에 대고 고함을 지른다. " 야, 이 개새끼들앙 ! 나도... 칼칼한 짬뽕 먹고 싶다. 나박나박 썬 호박 넣고 끓인, 조개로 맛을 낸 된장찌개 먹고 싶다. 으, 으으으으. 짭짤하게 간이 벤 갈치조림 먹고 싶다. 씨발새끼들아 ! "  

 

그는 복수를 다짐한다. 황당한 설정 같지만 정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성이 배제된 획일성'은 인간을 피폐시키기에 충분하다. 듣기 좋은 말도 여러 번 하면 짜증이 나듯이, 군만두도 삼시 세 끼'를 삼 년 동안 먹어보라. 그 아무리 성인군자라 해도 입에서 개새끼'라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포르노 배우였던 에나벨 청'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그녀가 기획한 섹스 이벤트 ( 10시간 동안 300명의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 ) 는 자기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강제로 진행되는 획일성'은 결국 고통과 피로'만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처음에는 좋았다. 섹스광답게 그녀는 남성의 불기둥에 환희를 느꼈다. 하지만 처음의 환희는 사라지고 끝에 가서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만 남는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  괄약근'은 민감한 피부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남자라면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좋은 비유를 하나 대련다. 10시간 동안 똥만 싼다고 생각해 보라. 속에서 불 난다.  

 

입도 괄약근과 마찬가지로 매우 연약한 피부 조직'이다. 에나벨 청이 10시간 동안 쉬지 않고 섹스만 했다면, 최민식은 최소 10년 동안 쉬지 않고 입속에 군만두를 넣었다. 고통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는 먹으면서 복수를 다짐한다. 나를 가두고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인 놈을 찾아나서기로 말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 오이디푸스와 그리스 비극 " 따위'를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박찬욱은 이 영화의 메시지로 획일화된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를 날린 것은 아니었을까 ? 

 

대한민국 사회'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이다. 학창시절은 지옥과 같다. 개인의 은밀한 욕망은 성적'이라는 거대한 군만두'로 인하여 포기해야 한다. 짬뽕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지만, 이러한 은밀한 입맛(욕망)은 발설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은 오로지 군만두(성적)만 먹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앉으나 서나 군만두 생각이다. 학창 시절을 벗어나 조직 생활을 한다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직이라는 커다란 군만두를 위해 충성을 바쳐야 한다. 다양성은 존중되지 않는 것이다. 좌파적 상상은 빨갱이'가 되고, 동성애는 전염병 취급을 한다. 여성들은 집에 가서 밥이나 해야 하는 존재로 찍힌다. 같은 이유로 십대와 여성이 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는 순간 싼 년이 되거나 싼 놈이 된다. 오로지 군만두만 먹으라고 하는 사회. 이런 사회, 거침없이 돌을 던져도 된다 ! 

 

군만두가 짜장면 두 개를 시키면 나오는 싸구려 음식으로 추락할 때, 중국 만두인 딤섬'은 예술이 되었다. 웨인 왕 감독은 영화 < 딤섬 > 에서 딤섬을 인생에 비유한다. 만약에 만두나 딤섬'이 다 같은 만두 아니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웨인 왕이나 왕가위에게 따귀를 맞을 것이다. 과연 한쪽은 싸구려 서비스 음식이 되고 다른 한쪽은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 중화요리 주방장인 내 친구 말에 의하면 < 다양성 > 이다. 딤섬은 종류가 무려 2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딤섬에 대한 기사를 인용하면 이렇다.  

 

딤섬은 재료, 모양, 조리 방법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작고 투명한 것은 ‘교’, 껍질이 두툼하고 푹푹한 건 ‘파오’, 통만두처럼 윗부분이 뚫려 속이 보이는 것은 ‘마이’다. ‘바오(包)’는 ‘감싼다’는 뜻으로 피가 두툼하고 대체로 둥글게 빚어 감싼 형태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왕만두를 생각하면 된다. 마트나 편의점에 판매하는 고기 만두 모양의 ‘지아오(餃)’는 속이 비칠 정도로 피가 얇고 끝마무리를 맞물려 다문 형태다. 마지막으로 윗부분이 꽃봉오리처럼 활짝 열려 있거나, 윗부분은 닫혔으나 갖가지 색상의 재료를 얹은 ‘마이(賣)’가 있다. 특히 통통한 새우를 속이 보이는 얇은 찹쌀 피로 빚은 ‘하가우’는 한입 베어 물면 쫀득한 피와 고소한 새우의 맛이 일품이다. 딤섬은 간단하게 먹는 음식이다. 

- 매일 경제 

 

 이 다양성은 딤섬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만약에 최민식에게 군만두가 아니라 딤섬을 제공했다면 끝까지 치닫는 비극'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어쩌면 그는 사설 감옥 안에서 딤섬에 대한 글을 쓰다가 보편적 진리'를 깨닫고 유지태를 용서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는 쪽지를 남기고는 그곳을 탈출했을 수도 있다. " 재워 주고, 먹여 줘서 고맙수다 !  "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인간은 위너도 없고 루저도 없다. 실패가 모두 매력 없는 것도 아니다. 같은 이유로 승리'가 아름다운 것만도 아니다. 군만두로 시작된 이야기가 너무 멀리 왔다. 다음엔 물만두 이야기다.

 

 

- 이미지 출처, 안나 쉐프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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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7-15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군만두만 강요되는 사회.. 거기서 군소리 없이 군만두만 잘 처묵처묵 하는 애들이 일등이 되고..
그러고 보니 영화속 저 상황, 장면이 일종의 구조적 은유였네요.
(앗, 너무 거창한가요. 하하 ;;)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23:24   좋아요 0 | URL
거창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군소리 없이 군만두를 먹는다라. 요런 라임 선호합니다.

iforte 2013-07-16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옹,,, 역쉬.... 군만두를 또 이렇게 연결시키다니.... 님 쫌 짱인듯. ㅎㅎ 간만에 애들 용어 좀 써봤습니다.
오늘 오후부터 여행갑니다. 지금 막 짐챙기다가 쉬는 중입니다. 며칠동안 사진찍으러다닐 생각에 엄청 기분 업입니다. 돌아와서 좋은 사진 좀 건지면 자랑시키러 제일먼저 곰발님한테 들르도록 하지요. 그동안 안녕히, 잘, 지내시길!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6 03:06   좋아요 0 | URL
잘 다녀오십시요. 워낙 사진 감각이 탁월하셔서 항상 기대가 됩니다.
지금 한참 여행 중이시겠군요.
느낌 좋은 사진 많이 찍어오세요. 제프 다이어의 책 좋더군요 !
제프 다이어의 사진 에세이에 삽입될 사진 하나 얼릉 찍어오세요..

만화애니비평 2013-07-16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만두는 점심시간 중국집에서 볶음밥 시킬 때 종종 나오죠. 오늘 중국집에서 점심 먹어야 겠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3:13   좋아요 0 | URL
점심은 항상 저의 글에서 힌트를 얻으시는군요 !

마노아 2013-07-16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를 기대하면서, 그 사이에 나는 작가다도 올려주세요. 쓰다가 마는 건 줬다가 빼앗는 거예요. 나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3:1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알겠습니다. 작가다, 시리즈를 다시 시작하도록 합죠..

히히 2013-07-17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박찬욱감독이 '세치 혀'에 주제를 둘 때 상당히 놀랐는데
곰...발님이 다양성에 무게를 실으니 기똥차게 맛나네요.

여중생 딸은 아직 공부 관련 학원은 간적없고
차라리 외식을 즐기는 우리 세모녀입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예체능이라는 똥고집으로
음악, 미술에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만,
성적이 바닥을 치면 만두가 그립겠지요?

"야,이 개새끼들앙! 짬짜면이 안되면 수면이라도 먹어보자."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16:3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히히 님 재미있습니다.
예체능'이 사실 그 세대들에게는 전부죠.
이걸 우리는 개무시한다는 게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두 권의 책 ; 그린 마일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내 주량은 소주 2병'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1병'이라고 말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술자리'를 마쳤을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소주 1병'을 마시고 난  취기'가 가장 기분 좋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지면 나는 언제나 버릇처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 밀리언달러베이비 " 를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병실'에 누워 있는 제자'를 찾아가서 몰래 안락사 시키는 장면이다. 감독은 스승이 반신불수인 제자의 병실을 찾아와 제자가 간절히 요구했던 소원대로 안락사'를 시키는 장면을 매우 빠르게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값싼 신파는 존재하지 않는다. 망설임 없는 신속한 처리'는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된 확고한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숨죽이며 흐느껴우는 신파'를 버리는 대신 신뢰'라는 키워드를 건져 올린다. 감정의 과잉'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동안 나눈 눈인사'와 짧은 고해, 그리고 늙은 복서가 어두운 복도를 성급히 빠져나가는 어두운 어깨'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 종종 " 실망한다. 왜냐하면 이 장면이야말로 눈물을 쏘옥 빼버릴 만한 클라이막스'가 아니었던가 ? 로미오가 줄리엣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장면이 아니었던가 ?   하지만 감독은 욕심을 버리고 건조하게 마무리한다. 늙은 감독이 이 장면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신파'가 아니라 신뢰'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술 기운에 흥이 난 나는 지난번에도 했던 말을 뻔뻔하게도 처음 하는 소리처럼 또 다시 늘어놓는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치켜뜬다.

 

" 그렇지. 감독은 그 장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된 신뢰에 대한 질문을 던진 거야.  눈물을 보이지 말 것, 세련된 영화들은 슬픈 장면에서는 일부러 눈물을 보이지는 않아. 채플린을 보라고 ! 울컥 하는 장면에서 채플린은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아. 수줍은 얼굴을 보일 뿐이잖아. 이 영화도 마찬가지야. 죽음을 동정하는 순간 늙은 복서와 젊은 복서가 맺은 우정은 빛을 잃는다고 감독은 생각한 거야. 사랑으로 비춰지기'를 우려했던 감독의 뜻이지. 눈물이 넘치면 추해지고, 웃음이 지나치면 무례해지는 것과 같아. 감정이란 아슬아슬하게 경계 위에 있을 때'가 절절한 법이지. " 

 

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기분 좋게 취하다가 주량을 넘기면 추해지는 것처럼. 스티븐 킹이 쓴 < 그린마일'> 에서 " 비터벅 사형 장면 " 부분을 읽으면, 나는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느낀 그 담백한 장면들이 생각난다. 스티븐 킹'은 이 장면에서 호들갑스러운 연출을 자제하고 부드럽지만 깔끔한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이끈다. 

 

추장은 목사가 잔잔한 물가에 눕는다는 내용의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울기 시작했다. 우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들이 우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울지 않으면 슬슬 걱정이 된다. 

 - 그린 마일

 

스티븐 킹'은 과감하게 "나는 그들이 우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울지 않으면 슬슬 걱정이 된다. " 라고 1인칭 고백체'를 통해 회상한다. 얼핏 읽으면 반인륜적인 표현으로도 보이지만 그 속내는 추장에 대한 화자의 연민'이다. 킹은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소설 속 상황을 알기 쉽도록 표현할까'에 목숨을 거는 작가 같다. 그는 그린마일'에서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앞서는 성질 급한 남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독자를 웃긴다.

 

남자의 손은 겨우 절반만 길들인 동물과 같다. 대체로 온순하게 지내다가도 이따금 이탈해서 처음 보는 대상을 덮어놓고 무는 것이다.

 

이 정도면 완벽에 가깝지 않을까 ?  앞뒤 안 가리고 툭 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남자의 주먹을 사나운 개의 주둥이'로 묘사하다니 말이다.  나는 이 문장에 줄을 긋고 한참동안 웃었다. 오, 킹 아저씨 ! 오, 귀여운 킹 아저씨 !! 볼수록 정이 가는 선생님이다. 사형수를 다룬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나는 종종 < 그린 마일 > 을 공지영이 쓴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과 비교하고는 한다. 결론은 스티븐 킹'이 얼마나 우아한가를 새삼 다시 느낀다. 다음은 공지영의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에 나오는 사형수 윤수의 고백이다. 그의 목소리는 장마철에 물 먹은 습자지 같다.

 

이곳 구치소에 들어와서 저는 처음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았고,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인자로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제 육체적 생명은 더 연장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제 영혼은 언제까지나 구더기 들끓는 시궁창을 헤매었을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 만남을 설레며 준비하는 것, 인간과 인간이 진짜 대화를 나눈다는 것, 누군가를 기도한다는 것, 서로 가식 없이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전쟁터로 향하기 전 군인들을 앞에 놓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장군의 연설문 같다. 사형수와의 사랑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설정하기 위해서 공지영은 구질구질하게 온갖 신파를 끌어들인다. 인간'이라는 단어만 무려 네 번 나온다. 인간, 영혼, 인간, 대화, 인간과 인간, 생명, 가식, 기도, 만남. 눈물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수사와 단어'가 동원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꼭 이런 물폭탄 장치'로 독자를 울리는 것이 클라이막스'를 위한 최선의 방식이었을까 ? 우아하게, 킹 할아버지처럼 우아하게, 소설가'라면 감정의 과잉을 적당히 숨겨야 하는 미덕을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

 

공지영의 이 소설을 읽으면 60년대 한국 반공 영화'가 떠오른다. 적이 쏜 총에 맞아 최후를 맞는 주인공의 모습이 스친다. 총 맞고, 쓰러지고, 죽으면 되는 5초 분량의 장면'을 10분씩 끌고가는 그 신파 말이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죽을 듯 죽을 듯 죽지 않는 주인공의 질긴 생명력'을 보면 짜증이 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스티븐 킹'처럼 간결하지만 강렬하게 끌고갈 재주는 없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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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7-1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작가다 공지영 편을 해설해 주신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화이트 하우스 다운을 봤는데 주인공만 비켜가는 총알들과 허무하게 추락하는 블랙 호크 등이 어이 없었어요. 좀 공정하기만 했어도 시원한 액션영화될 뻔 했는데 말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13:20   좋아요 0 | URL
나는 작가다, 가 별로 인기가 없는 거 같아요.. 으하하하...
전 사실 드라마도 거으 안봅니다. 왜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잖아요. 나머지는 다 들러리고 말이고
난 이게 도통 집중이 안 됩니다. 뭐 총알이 빗겨나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말이죠..후후...

히히 2013-07-1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계속 '엄마를 부탁해'가 생각날까요?
공지영은 독자를 여성에 두는 듯 하고 25세전으로 한정하는 것 같아요.
화자가 말하는 것인지 작가가 말하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않을 때
사실감이 살아있는 맛을 보기도 하지만
상상의 쾌감을 뭉게는 경우도 있습니다.
독자의 감정까지 어루만질 이유는 없습니다.
그 자극을 찾아 수많은 책을 기웃거립니다. 저는요 충분히 자립적입니다.
'봉순이언니'는 좋았습니다.

추가로
작가가 원하는 눈물과 독자의 것과는 핀트가 맞지않습니다.
35세 즈음에 [능소화]를 읽다가 엉뚱한 문장에서 눈물이 터져
가을밤을 적신 기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 처럼 서로 어여삐 사랑할까요?"
원이 엄마에게 남편이 자주 고백했다는 이 말에
뻥 터졌습니다.
당시 남편과의 사이가 삐격거렸기 때문입니다.
허나 지금 다시 이 책을 든다면 당연한듯이 넘길 문장입니다.
신파는 우리의 여건이 만드는 것이지
작가의 몫으로 돌리기엔 다분히 억지가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20:08   좋아요 0 | URL
보편적 신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보편적 신파에 울잖아요.
예를 들면 시어머니가 갑자기 나타나 애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빵 터지죠. 눈물이...
그런데 롤랑 바르트적 신파'도 있어요. ( 요건 제가 히히 님 글 읽고 방금 지어낸 거임 )
푼크툼이라고 하잫아요. 사적 찌름'으로 인한 사적 신파인 거죠.
아마 히히 님이 능소화에서 울었다는 것은 사적 신파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신파는 보편적인 것과 사적인 신파로 나눌 수도 있다고 봐요.
이 지점에서 작가는 대부분 보편적 신파에 매달리겠죠.
제가 아마 밀리언 달러의 그장면을 보고 가슴이 찡했던 이유는
개인적 사연이 있어서 일 겁니다. 이게 겹칠 때 터지거든요.

봉순이 언니는 함 읽어보도록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