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올드보이 - 아웃케이스 없음
박찬욱 감독, 강혜정 외 출연 / 피터팬픽쳐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친구가 마지막으로 선보인 음식은 딤섬'이었다. 짬뽕으로 승부하기에는 경쟁이 치열해서 고급화 전략'으로 딤섬 요리 기술'을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며 내놓은 것이다. 내가 만두'라고 했더니 그는 화를 냈다. " 그, 그그그그것은 딤섬에 대한 모독이야 ! " 딤섬을 點心'이라고 적는단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이름이 시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 올드보이 > 에서 최민식이 질리도록 먹었던 군만두'는 서비스 메뉴'였을 것이다. 이런저런 추론을 해보면 유지태는 최민식을 사설 감옥'에 보내면서 날마다 밥값을 지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밥값은 사설 감옥 직원들의 공돈으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대신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를 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그러니깐 최민식은 15년 동안 직원들이 점심을 시켜 먹고 남은, 서비스로 나온 만두만 먹다가 속 터져버린 이야기다. 만약에 최민식에게 군만두 대신 딤섬을 點心 으로 내놓았다면 그토록 비극적이지는 않았으리라. 짬뽕이 맵고 자극적이었다면, 김이 모락모락나는 딤섬'은 담백하고 순한 맛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는 자극적인 것을 탐하다가 늙으면 순한 맛에 매료된다.

 

- 보수란 무엇인가, < 짬뽕과 딤섬 > 中

 

 


 

 

 

 

올드보이와 군만두.  

 

 ■ http://myperu.blog.me/20176091371 : 유지태는 스핑크스다

http://myperu.blog.me/20128341708 : 말하는 괄약근과 배설하는 입

 

처음에는 < 올드보이 > 에 대해 " 오이디푸스와 그리스 비극 " 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으나 생각해보니 그런 식의 접근은 이미 신형철을 비롯한 무수한 먹물'들이 신물'나게 지적했을 터, 발화의 힘은 화려한 스펙'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 내가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으로 지적을 해보아야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서 " 올드보이와 군만두 " 에 대한 이야기를 하련다. < 올드보이 > 에서 유지태는 최민식에게 이 비극을 초래한 원인으로 " 당신의 세치 혀 " 를 지목했지만 내가 보기엔 " 군만두 " 때문에 비롯된 비극'이다.  

 

최민식'은 처음부터 군만두'를 먹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유지태가 최민식에게 감금된 기간 동안 육체적 고통'을 주려고 했다면 모텔 인테리어를 그대로 옮긴 감옥에 그를 가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최민식은 감금되어 자유를 잃었을 뿐이지, 나름대로 문화적 혜택을 누린다. 티븨'가 나오고, 수세식 변기와 에어컨이 작동한다. 유지태 입장에서 보면 수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선처'다. 그렇기 때문에 먹는 것 가지고 장난을 쳤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최민식은 왜 군만두만 먹게 된 것일까 ? 속 터지게 말이다.  

 

최민식도 처음에는 다양한 요리'를 제공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칼칼한 짬뽕도 먹고, 쫀득쫀득한 짜장면도 먹었을 것이며, 볶음밥, 유산슬, 팔보채도 먹었을 것이다. 먹고 자고 싸니, 나름 살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억만장자인 유지태가 그깟 밥값이 아깝지는 않았을 터. 아마도 한 끼 식사 비용으로 만 원씩 제공되지 않았을까 ? 문제는 그 돈이 사설 감옥 직원들의 주머니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하자 많은 사설 감옥이므로 마음대로 음식을 시켜 먹을 수는 없으니 특정 식당 하고만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독자들도 다들 아시겠지만 중화요리'라는 것이 단골이 되면,  짜장면 두 개만 시켜도 군만두 서비스'가 제공된다. 하물며 날마다 음식을 주문하는 사설 감옥이라면 ? 

 

사실 감옥 직원들은 최민식에게 제공되는 식사 비용'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고서는 서비스로 나오는 군만두'를 주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최민식은 군만두만 먹는다. ( 앞으로는 미래 가정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묘사하겠다. ) 신물나게 한 가지 음식만 먹어본 자만이 안다. 그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고통을 선사한다. 더군다나 느끼한 군만두가 아니었던가.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다가 그는 폭발한다. 음식 주입구에 대고 고함을 지른다. " 야, 이 개새끼들앙 ! 나도... 칼칼한 짬뽕 먹고 싶다. 나박나박 썬 호박 넣고 끓인, 조개로 맛을 낸 된장찌개 먹고 싶다. 으, 으으으으. 짭짤하게 간이 벤 갈치조림 먹고 싶다. 씨발새끼들아 ! "  

 

그는 복수를 다짐한다. 황당한 설정 같지만 정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성이 배제된 획일성'은 인간을 피폐시키기에 충분하다. 듣기 좋은 말도 여러 번 하면 짜증이 나듯이, 군만두도 삼시 세 끼'를 삼 년 동안 먹어보라. 그 아무리 성인군자라 해도 입에서 개새끼'라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포르노 배우였던 에나벨 청'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그녀가 기획한 섹스 이벤트 ( 10시간 동안 300명의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 ) 는 자기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강제로 진행되는 획일성'은 결국 고통과 피로'만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처음에는 좋았다. 섹스광답게 그녀는 남성의 불기둥에 환희를 느꼈다. 하지만 처음의 환희는 사라지고 끝에 가서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만 남는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  괄약근'은 민감한 피부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남자라면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좋은 비유를 하나 대련다. 10시간 동안 똥만 싼다고 생각해 보라. 속에서 불 난다.  

 

입도 괄약근과 마찬가지로 매우 연약한 피부 조직'이다. 에나벨 청이 10시간 동안 쉬지 않고 섹스만 했다면, 최민식은 최소 10년 동안 쉬지 않고 입속에 군만두를 넣었다. 고통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는 먹으면서 복수를 다짐한다. 나를 가두고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인 놈을 찾아나서기로 말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 오이디푸스와 그리스 비극 " 따위'를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박찬욱은 이 영화의 메시지로 획일화된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를 날린 것은 아니었을까 ? 

 

대한민국 사회'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이다. 학창시절은 지옥과 같다. 개인의 은밀한 욕망은 성적'이라는 거대한 군만두'로 인하여 포기해야 한다. 짬뽕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지만, 이러한 은밀한 입맛(욕망)은 발설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은 오로지 군만두(성적)만 먹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앉으나 서나 군만두 생각이다. 학창 시절을 벗어나 조직 생활을 한다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직이라는 커다란 군만두를 위해 충성을 바쳐야 한다. 다양성은 존중되지 않는 것이다. 좌파적 상상은 빨갱이'가 되고, 동성애는 전염병 취급을 한다. 여성들은 집에 가서 밥이나 해야 하는 존재로 찍힌다. 같은 이유로 십대와 여성이 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는 순간 싼 년이 되거나 싼 놈이 된다. 오로지 군만두만 먹으라고 하는 사회. 이런 사회, 거침없이 돌을 던져도 된다 ! 

 

군만두가 짜장면 두 개를 시키면 나오는 싸구려 음식으로 추락할 때, 중국 만두인 딤섬'은 예술이 되었다. 웨인 왕 감독은 영화 < 딤섬 > 에서 딤섬을 인생에 비유한다. 만약에 만두나 딤섬'이 다 같은 만두 아니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웨인 왕이나 왕가위에게 따귀를 맞을 것이다. 과연 한쪽은 싸구려 서비스 음식이 되고 다른 한쪽은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 중화요리 주방장인 내 친구 말에 의하면 < 다양성 > 이다. 딤섬은 종류가 무려 2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딤섬에 대한 기사를 인용하면 이렇다.  

 

딤섬은 재료, 모양, 조리 방법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작고 투명한 것은 ‘교’, 껍질이 두툼하고 푹푹한 건 ‘파오’, 통만두처럼 윗부분이 뚫려 속이 보이는 것은 ‘마이’다. ‘바오(包)’는 ‘감싼다’는 뜻으로 피가 두툼하고 대체로 둥글게 빚어 감싼 형태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왕만두를 생각하면 된다. 마트나 편의점에 판매하는 고기 만두 모양의 ‘지아오(餃)’는 속이 비칠 정도로 피가 얇고 끝마무리를 맞물려 다문 형태다. 마지막으로 윗부분이 꽃봉오리처럼 활짝 열려 있거나, 윗부분은 닫혔으나 갖가지 색상의 재료를 얹은 ‘마이(賣)’가 있다. 특히 통통한 새우를 속이 보이는 얇은 찹쌀 피로 빚은 ‘하가우’는 한입 베어 물면 쫀득한 피와 고소한 새우의 맛이 일품이다. 딤섬은 간단하게 먹는 음식이다. 

- 매일 경제 

 

 이 다양성은 딤섬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만약에 최민식에게 군만두가 아니라 딤섬을 제공했다면 끝까지 치닫는 비극'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어쩌면 그는 사설 감옥 안에서 딤섬에 대한 글을 쓰다가 보편적 진리'를 깨닫고 유지태를 용서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는 쪽지를 남기고는 그곳을 탈출했을 수도 있다. " 재워 주고, 먹여 줘서 고맙수다 !  "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인간은 위너도 없고 루저도 없다. 실패가 모두 매력 없는 것도 아니다. 같은 이유로 승리'가 아름다운 것만도 아니다. 군만두로 시작된 이야기가 너무 멀리 왔다. 다음엔 물만두 이야기다.

 

 

- 이미지 출처, 안나 쉐프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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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7-15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군만두만 강요되는 사회.. 거기서 군소리 없이 군만두만 잘 처묵처묵 하는 애들이 일등이 되고..
그러고 보니 영화속 저 상황, 장면이 일종의 구조적 은유였네요.
(앗, 너무 거창한가요. 하하 ;;)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23:24   좋아요 0 | URL
거창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군소리 없이 군만두를 먹는다라. 요런 라임 선호합니다.

iforte 2013-07-16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옹,,, 역쉬.... 군만두를 또 이렇게 연결시키다니.... 님 쫌 짱인듯. ㅎㅎ 간만에 애들 용어 좀 써봤습니다.
오늘 오후부터 여행갑니다. 지금 막 짐챙기다가 쉬는 중입니다. 며칠동안 사진찍으러다닐 생각에 엄청 기분 업입니다. 돌아와서 좋은 사진 좀 건지면 자랑시키러 제일먼저 곰발님한테 들르도록 하지요. 그동안 안녕히, 잘, 지내시길!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6 03:06   좋아요 0 | URL
잘 다녀오십시요. 워낙 사진 감각이 탁월하셔서 항상 기대가 됩니다.
지금 한참 여행 중이시겠군요.
느낌 좋은 사진 많이 찍어오세요. 제프 다이어의 책 좋더군요 !
제프 다이어의 사진 에세이에 삽입될 사진 하나 얼릉 찍어오세요..

만화애니비평 2013-07-16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만두는 점심시간 중국집에서 볶음밥 시킬 때 종종 나오죠. 오늘 중국집에서 점심 먹어야 겠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3:13   좋아요 0 | URL
점심은 항상 저의 글에서 힌트를 얻으시는군요 !

마노아 2013-07-16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를 기대하면서, 그 사이에 나는 작가다도 올려주세요. 쓰다가 마는 건 줬다가 빼앗는 거예요. 나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3:1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알겠습니다. 작가다, 시리즈를 다시 시작하도록 합죠..

히히 2013-07-17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박찬욱감독이 '세치 혀'에 주제를 둘 때 상당히 놀랐는데
곰...발님이 다양성에 무게를 실으니 기똥차게 맛나네요.

여중생 딸은 아직 공부 관련 학원은 간적없고
차라리 외식을 즐기는 우리 세모녀입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예체능이라는 똥고집으로
음악, 미술에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만,
성적이 바닥을 치면 만두가 그립겠지요?

"야,이 개새끼들앙! 짬짜면이 안되면 수면이라도 먹어보자."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16:3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히히 님 재미있습니다.
예체능'이 사실 그 세대들에게는 전부죠.
이걸 우리는 개무시한다는 게 통탄스러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