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브라이언 싱어 감독, 휴 잭맨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엑스맨 ㅣ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며칠 전, 길을 걷다가 봄볕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손편지를 써야 겠다는 생각에 우표를 사기 위해 문방구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무작정 초등학교 정문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현실과 마주쳐야 했다. 학교 앞에 문방구'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 주위를 아무리 살펴도 문방구가 보이지 않기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학교 앞 근처에는 문방구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방귀처럼 천천벽력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하며 호들갑을 떨 생각은 없다만 그래도 학교 앞에 문방구가 없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조용필의 << 킬리만자로의 표범 >> 스타일로 허세를 부리자면 " 21세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 시바, 학교 앞에 문방구'가 없다는 소리는 여관에 갔더니 콘돔 없다는 소리와 같구나.

내가 기억하는 학교 앞 풍경은 문방구 가게'가 다닥다닥 붙은 풍경이었다. 어릴 때는 그곳이 작은 우주'요, 화개장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 학습 준비물 무상 지원 제도 > 때문에 아이들이 굳이 문방구를 찾을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복지 차원에서 보면 반길 만한 일이지만 구멍가게나 문방구 가게가 동전 장사 영업이라는 점에서, 다시 말해서 밑바닥 생태계의 최전선'이라는 점에서 사라져가는 문방구는 왠지 씁쓸하다. 성석제 소설 << 순정 >> 을 읽다 보면 동네마다 다양한 동네가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 아아아, 지미랄 것, 너희 똥도 못 처먹는 개새끼들, 다 나와. 너 술도가 나와. 너 농약가게 하는 놈 나와. 너 고무신 장수 나와. 너 기름 팔아처먹는 놈 나오고 떡쳐서 파는 놈, 말고기를 소고기라고 속여 파는 놈 나와. 쌀 배달 하는 놈, 소리사 하는 놈 다 나와. 철공소, 목공소, 철물점, 대장간, 도장집, 문방구, 성냥공장, 엿도가, 고물상 나와라. 우체국, 경찰서, 읍사무소,세무서, 소방서 다 나오란 말이다. 개새끼들아, 나왔으면 일렬로 서. 이놈의 새끼들, 내 마누라하고 재미본 그 대가리들, 잘 놀게 내가 그냥 놔둘 줄 알았냐. 야, 너 흔들거리는 놈, 똑바로 서 ! 내가 땜장이라고 우습게 봤어. 사나이 봉달이를 우습게 봤다 이 말이야. 내가 오늘부터 너희 대가리에 헛구멍난 걸 몽땅 때우겠다 이 말씀이야. 너희 마누라들, 그 구멍도 다 때워버리겠어. 이눔의 새끼들, 똑바로 안 서 ! 차렷, 열중 쉬어, 차렷, 경례 ! " 


ㅡ 성석제, 순정 중


여기서 술도가는 술을 만들어 도매로 파는 집을 말하고, 엿도가는 엿을 만들어 파는 가게를 말하고, 소리사는 레코드 가게'를 말한다. 생각해 보니 옛날 동네 골목 어귀에는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만고만한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그 동네에 사는 아이들도 대부분 철공소 둘째, 대장간 막내, 도장집 딸년, 얼음집 장녀, 솜틀집 언청이 따위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가게들이 모두 멸종된 것이다. 이제 동네 골목을 장악한 것이라고는 토종 물고기를 잡아먹는 프렌차이즈 化된 기업형 " 베쓰 " 나 종교를 가장한 교회 가게'가 전부다. 그나마 중국집이 근근이 버티고 있다. 생태계 다양성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건강한 골목 생태계는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 동네 골목을 떠난 가게는 이마트로 보인다.

문제는 가게 주인이 없는 무인 점포 형태'라는 점이다. 이마트 안에는 만물상을 방불케하는 수많은 상품이 진열되어 있지만 정작 주인'은 " 오너 " 한 명'이 전부다. 쉽게 말해서 " 오너 " 한 명이 가게 수천 개를 운영하는 꼴'이다. 한국 소비자는 그곳에 가서 상품을 구매한다. 대형 마트는 거래 업체를 후려쳐서 싼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하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각종 쿠폰과 마일리지'는 재래시장에서 유통되는 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 중에는 한때 고무신 장수도 있고, 한때 기름 팔아처먹었던 놈도 있고, 한때 솜틀집 언청이도 있고, 한때 엿도가 하던 사람도 있다. 이마트 같은 대형 마트가 편리를 추구하는 소비 패턴의 결과'라고 해도 결국은 자기 꼬리를 야금야금 뜯어먹는 꼴이다.

엿도가 가게를 했던 엿장수가 이마트 가서 엿 먹으니 말이다. 이러다가는 모두 다 엿 먹게 되리라. 영화 << 엑스맨 >> 시리즈'가 재미있는 이유는 1인 영웅 이야기'와는 달리 다양한 초능력을 가진 인물을 다룬다는 데 있다. 천둥 번개와 비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가 있는가 하면, 상대방 손을 잡으면 그 사람 능력을 몽땅 흡수할 수 있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빛보다 빠르다. 이들이 모여서 " 다크한 포스 " 와 싸운다는 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서사 골격'이다. 엑스맨 구성원들은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한다. 힘은 세지만 속도가 떨어지는 엑스맨을 도우는 사람은 번개보다 빠른 엑스맨이고, 마찬가지로 번개보다 빠르지만 힘이 없는 이를 돕는 능력자는 힘이 센 장사'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과잉 에너지를 이용하여 동료를 위험에서 건져낸다.  쉽게 말해서 서로서로 돕는다. 엑스맨 시리즈 속 다양한 캐릭터를 볼 때마다 성석제 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가게 주인'이 생각난다. 어쩌면 울버린, 립타이드, 겜빗, 카일라, 싸이클롭스는 전생에 술도가, 소리사, 철공소, 대장간, 국숫집, 엿도가 주인이었을 것이다. 그들 또한 한 분야의 달인'들이니 말이다. 영화 << 엑스맨 >> 이 가지고 있는 미덕은 차이를 차별로 보지 않고 다양성으로 보는 시선이다. 능력이란 다른 식으로 말하면 " 평균값의 과잉 " 이다. 그리고 < 과잉 > 은 평균값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점에서 < 결핍 > 이기도 하다. 엑스맨이 남들과는 다른 초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능력 때문에 고통받는 이유는 과잉이 결핍으로 작동한 데 있다.

하지만 그들은 타자에게는 없는 능력을 보완하면서 서로 돕는다. 타자의 결핍을 채우는 순간 자기 스스로를 괴물 취급했던 과잉은 마술처럼 사라진다. 결핍된 동료와 나누기 때문이다. 동네 골목 상권이 다양한 가게로 채워져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전파사 주인은 국수를 뽑는 가게에서 말랑말랑한 국수를 사고, 국수를 만드는 가게 주인은 고장난 라디오를 전파사에 맡긴다. 내가 국수를 사는 데 지불했던 돈이 다시 자기 호주머니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둘 다 손해보는 일이 아니다. 전파사 주인은 제분 회사에서 생산되는 국수 대신 방부제 없는 탱글탱글한 국수 면발 맛을 볼 수 있고, 국수를 만드는 가게 주인도 고장난 라디오를 저렴한 수리비로 고칠 수 있으니 좋다. 돈이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이마트 사장 금고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동네에서 돌고 돈다.

그렇게 때문에 골목 상권이 십자가와 휴대폰과 카페로만 채워진 골목보다는 다양한 가게'가 들어선 골목이 풍요롭고 재미있다. 울버린만 나오는 엑스맨을 상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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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3-2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손편지는 써서 보내셨나요?
저도 손편지 받고 싶어요.ㅠ

진짜 격세지감이죠?
요즘엔 우표를 어디서 사야하나 싶어요.
우체국 밖엔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우리 땐 학용품 사려고 아침 때 문방구 앞이 바글바글 했는데
학교에서 그런 것도 준비해준다니 일견 부럽기도 하더라구요.
옛날엔 준비물 챙기느라 엄마들이 더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잖아요.

곰발님은 인용문을 어떻게 관리 보관 하십니까?
저는 책을 읽을 땐 줄쳐 가며 읽어도 따로 보관해 두질않아
글 쓸 때 별로 인용할 말이 없어요. OTL

전 성석제가 그다지 웃기는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많은 사람 특히 본인이 웃기는 작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가끔 좀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ㅋㅋ 뭐가 그렇게 웃기다는 건지 원...
하긴, 개콘을 보고도 잘 웃지 않는 제가 더 문제인지도 모르죠. 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3 13:14   좋아요 0 | URL
우표를 살 데가 없어서... 이젠 우체국 가야지만 우표를 살 수 있나 봅니다.
가만 보면 이제 문구점은 학교 앞 보다는 차라리 도시 사무실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상대로 한다기보다는 어른을 상대로 하니
이제는 문방구는 어린이 놀이터가 아니라 어른이 잠시 왔다가는 그런 가게가 되었네요.

뭐. 인용문을 따로 관리하지는 않습니다. 밑줄을 치죠. 제가 기억하는 것은 밑줄친문장이니
인용하고 싶으면 책을 펼칩니다. 찾는데는 1분도 안 걸려요. 위치를 대충 알거든요.
글구 밑줄을 많이 긋는 것도 아니니 몇 초만에 찾기도 하고....


말리 2015-03-23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전자들고 술사오던 술 도가도, 문을 열면 컴컴한 열기가 훅 치밀던 콩나물 도가도, 김모락모락 오르는 두부 판에서 한모 뚝 떼어 주던 두부공장도 모두 좁디좁은 우리동네 안에 다 있었습니다. 자가용 한대도 들어가기 힘든 그 골목에 옹기종기 말이죠. 구루마 휘어지도록 냄비며 솥이며 싣고 와 팔던 그릇 장수 아저씨도 심심찮게 들락거렸죠. ㅎㅎ 너무 옛날 이야긴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3 13:58   좋아요 0 | URL
아,도가가 따로 도매상`이란 뜻이네요... 방금 사전보고 알았습니다. 술도가`가 붙은 낱말인 줄 알았는데... 도가`라는 말 처음 들어봐서요... 하여튼 제 옛기억은 정말 온갖 것들이 다 가게 라는 이름으로 있었다는 점입니다. 기억나는 것은국수집이에요. 젖은 국수 대에 올려서 말리는 풍경이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어머니 말슴으로는 그때 그 국수가 지금 시중에 파는 국수하고는 맛 자체가 틀리다고 하네요.
 

 

 

 

 

 

 

 

 

 

 

 

 

 

 

 

 

 

 


 

 

 

 

 

 

 

아프리카 청춘이다

 

 

 

 

 

중동 순방 후, 대통령 총통 각하 님께서 청년 실업난'을 한방에 해결할 정책으로 중동 이주 정책을 들고 나오셨다. 각하가 전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 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말할 수 있도록). " 이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 니가 가라, 하와이 > 를 변주한 < 니가 가라, 중동 > 라는 반격이 시작됐다. 글 맛을 위해서 억지로 라임을 맞춰 랩 가사처럼 변형해서 " 니가 가라, 시~ 리아 " 로 고치자. 그러니까 시리아'는 중동을 대표하는 상징적 국가'인 셈이다. 오케이 ?  눈에 콩깍지가 쓰이면 애인이 코딱지를 파도 예뻐보이지만, 반대로 모든 게 못마땅하면 숨소리'조차 듣기 싫은 게 사람 마음이니 시리아 가라는 말이 곱게 들릴 리가 없단 말이야.  

 

하지만 저 멘트를 가슴을 활짝 펴고 아무리 곱게 받아들인다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 니가 가라, 하와이 > 와 < 니가 가라, 시리아 > 가 가지고 있는 말풍선의 공통된 서정'은 꼴보기 싫은 놈이 내게 명령을 한다는 점이다. 단박에 " 네가 뭔데 나한테 흥야항야하냐. 네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라고 해서 내가 너를 위해 일하고 절할 줄 알았냐 ? " 라는 반격이 튀어나온다. 영화 << 친구 >> 에서 장동건'은 왜 그토록 하와이 가는 것을 싫어했을까 ? 한국인이 꿈에 그리는 국민 휴양지가 하와이'가 아니었던가 ? 오죽했으면 경상도 변두리 두메산골에 부곡 하와이'라는 짝퉁이 건설되었을까. 한국인은 세계 3대 유명 휴양지 해변 이름은 몰라도 경상도 사투리 같은 와이키키'는 알고 있다. 와이키키, 바로 하와이에 있는 휴양지 해변 이름이다.

■ 흥야항야하다 : 흥이야항이야하다의 준말로 관계도 없는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여 이래라저래라 하다는 뜻의 동사'다. 오타가 아니다.

 

장동건은 평소에 하와이 가서 놀고 싶었지만 느닷없이 유오성이 가라고 하니깐 갑자기 가기 싫어진 것이다. 박근혜가 시리아 가라는 말에 청년들이 우럭도 아니면서 울컥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박근혜는 유오성이고 대한민국 청년은 장동건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 니가 가라, 시리아 ! " 다. 고운 말을 미운 말로 받아들이는 청년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동안 해온 짓에 대한 자업자득이다. 만약에 유오성이 똑똑한 놈이었다면 < 하와이 가라 > 라는 말 대신 < 니, 하와이 가면 내가 쫒아가서 죽여뿐다 ! > 라고 꾀를 부렸을 것이다. 아마도 장동건은 그날로 유오성 보란 듯이 하와이행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을까 ?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가 1970년대 오일쇼크'를 " 중동붐 " 으로 극복한 사례를 벤치마킹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각하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아니, 어쩌면 하나도 모르는 것 같다.

 

1970년대 대한민국이 중동 건설 사업에서 다른 경쟁업체들에 비해 유리했던 점은 한국 건설 노동자의 값싼 노동력 때문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한국 건설 노동자는 지금의 필리핀 가정부 같은 위치였을 것이다. 품삯이 싸서 입찰 단가를 후려칠 수 있었으니 고용주 입장에서는 한국 건설 노동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민간 부문 노동자 평균 임금은 400달러 수준이다. 여기에 실질 실업률은 15% 내외로 추정되고 있고 실업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자국인화 정책을 추진하여, 75%의 산업인력을 자국인화한다는 목표하에 자국인 고용 의무 비율을 상향 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대한민국 거리가 텅텅 빌 정도로 청년 노동자'를 중동에 보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까 ?   

 

박정희'가 이룩한 경제 정책 가운데 중요한 것이 바로 국제 인력 시장 ㅡ 정책'이다. 그 당시, 중동 건설 붐'이 불어서 웬만한 이웃 서민들은 중동 가서 외화벌이에 동참하고는 했다. 옛날 드라마 << 왕룽일가 >> 에서 배우 최주봉이 연기한 제비족 " 쿠웨이트 박 " 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동 건설 노동자'였기에 가능했다. 작열하는 중동의 태양 아래 머리가 뽀글뽀글해진 쿠웨이트박은 장바구니 든 아줌마를 유혹한다. " 예술 한번 할껴 ? " 월남 파병,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 따위도 국제 인력 시장 ㅡ 정책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쉽게 말해서 일일 노동자를 건설 현장에 파견하고 노동자가 받은 품삯에서 커미션 받아 챙기는 새벽 인력 사무소 역할이었다.  

해외 입양 정책도 그 연장선에 놓여 있었다. 해외 입양인의 글을 엮은 책 <<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 >> 은 입양 정책'이라는 근사한 휴머니즘 뒤에 감추어진 불편한 진실'을 고발한다. 대한민국의 해외 입양 정책은 " 아이를 위해서 가족을 찾는 것 " 이 아니라 " 가족을 위해서 아이를 찾는 것 " 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입양할 의사가 있는 가정이 입양 시 입양 재단에 아이 한 명당 지불해야 되는 수수료는 2만 5천 달러~ 3만 달러, 많게는 3만 5천 달러'가 지불된다. 이렇게 해서 입양 재단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한해 대략 1500만 달러'로 추산된다고 한다. 입양 정책으로 인하여 국가가 돈을 벌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시절, 좁은 땅덩어리에 자원은 없으니 먹고 살기 위해서 < 몸(목숨) > 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지만,  국제 인력 시장을 통한 외화벌이 정책'을 숭고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

내가 영화 << 국제 시장 >> 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유도 바로 그 대목'이다. 이 영화는 국민을 국제 인력 시장'으로 내몰았던 정책을 노스탤지어'라는 이름으로 찬양하고 있다. 그것은 찬양할 덕목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하고 반성해야 할 흑역사'이다. 그 정책을 박근혜 대통령 총통 각하 님께서도 공감한다는 데 절망감이 들었다. 쌀 떨어졌다며 돈 벌어오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술고래 아버지의 주사 같다. 여기저기서 쓴소리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대통령 총통 각하 님께서 그나마 중동을 다녀와서 다행이라고 했다. 아프리카에 갔다면 아프리카 가서 돈 벌어오라고 할 판이니 말이다. 일리있는 말이다. 부잣집 도련님은 유학 가기 위해 " 아메리카 " 로 떠나고, 가난한 청춘은 외화벌이를 위해 " 아프리카 "에 갈 판이다. 시바, 닝기미... 조또.

김난도는 청춘들에게 " 아프니깐 청춘 " 이라는 약을 팔더니 이제는 " 아프리카 청춘 " 이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천국과 지옥은 종이 한 장 차이. 누군가에게는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도 쇠창살 없는 유배지'가 될 수 있다. 코리아는 내가 지키마. 시리아는 네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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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3-22 1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흥야항야하냐... 요 말 입에 짝짝 붙는다. 뭔가 아햏햏스러운 게 태국말 같아서 맘에든다자주 써먹어야 겠다.

[그장소] 2015-03-22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3 09:58   좋아요 1 | URL
흥야항야 재미있는 표현이죠 ? ㅎㅎ

오쌩 2015-03-2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야항야 대박입니다.ㅎ써먹어야하지^^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3 09:58   좋아요 0 | URL
널리널리 퍼트려주십시오.
 
아티스트 봉만대
봉만대 감독, 봉만대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두 명의 에로 거장 : 틴토 불알스와 봉만대

 

 

내가 다니던 회사 영업 이사는 한때 충무로를 주름잡던 감독이었다(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그는 에로 영화'를 감독해서 에로 영화 감독'이라는 달갑지 않은 명함을 얻었다. 당시에는 전두환이 대통령 흉내를 내던 시절이라 에로 영화가 대세를 이루었으니 굶지 않기 위해서는 에로를 만들어야 했다. 그가 만든 영화 << ●● >> 은 그해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시리즈 영화'로 제작되어 6탄까지 선보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으니, 시리즈 영화의 오리지날 1탄 감독으로써 자부심을 느낄 만했다. 이탈리아에는 에로 영화의 거장 " 틴토 불알스 " 감독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에는 " ●●● " 감독이 있었다(편의상 그를 한국의 틴토 불알스'라고 말하겠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세운상가에서만 은밀하게 거래되었던 포르노'를 일반 가정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에로 영화'는 사양길에 접어든다.

이 돈 내고 극장 가서 에로 영화'를 볼 필요가 없는  " 참 좋은 세상 " 이 온 것이다. 집에서 불알 만지작거리며 혼자서 은밀하게 음화를 볼 수 있는 재미'는 불특정 다수와 극장에서 에로 영화를 보는 재미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 힘 > 이란 게 그렇다. 힘은 신체 부위'에 따라 다르다. < 용기의 주먹 > 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불끈, 힘이 나지만 < 불굴의 페니스 > 는 아무도 없을 때 불끈, 힘이 난다. 만고 불변이다. 물론 바바리맨 같은 경우는 예외이지만 말이다. 영화 제작 환경이 180도 바뀌자 호스테스 장르 영화에 대한 인기는 한순간에 거품이 꺼졌고 영화판은 해체되었으며 에로 영화 종사자들도 직장을 잃고 떠났다. 결국 밥벌이를 위해 한국의 위대한 에로 거장인 틴토 불알스 감독이 얻은 부업이 내가 다니던 회사 영업 이사'라는 " 푸리란서 " 직함이었다.

내가 가끔 회식자리에서 그가 감독한 흥행 대작 에로 영화'를 거론하며 열을 올리면 그는 항상 난처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이말 저말 뒤섞어서 어름어름 분명치 않게 말하기 일쑤였다. " 그 영화로, 뭐.... 그냥 재미 좀 봤지. 허허. 그건 그렇고 말이야......  " 스스로 에로 영화 감독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화제를 돌려 자신이 만든 영화 가운데 << ●●● >> 이란 영화를 만들 때의 촬영 에피소드'를 힘주어 말하고는 했다. 그 영화를 말할 때에는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그 영화는 영화 << ●● >> 이 흥행 대박을 친 다음에 만든 작품으로 흥행과 제작비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그가 평소에 만들고 싶었던 영화'처럼 보였다. 그 영화가 그에게는 " 불후의 명작 " 인 셈'이었다.

그것은 박찬욱 감독이 << 공동경비구역 >> 으로 흥행 대박을 친 후 흥행과 제작비에서 벗어나 평소 만들고 싶었던 << 복수는 나의 것 >> 을 만들었던 흐름과 비슷한 것이었다. 흔히 " 박수 칠 때 떠나라 ! " 라는 말이 떠돌지만 영화판에서는 박수 칠 만한 영화(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만들고 나면 그 기회를 살려 자신이 평소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떵떵거릴 때 밀어붙여야 한다는 소리이다. 박수 칠 때 떠나면, 그래요......  병신이다. 물에서 놀던 놈이 뭍에서 놀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한국의 틴토 불알스 감독은 영업 이사를 때려치우고 다시 촬영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필름 카메라 대신 비디오 카메라'로 비디오 영화'를 만든다는 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 핑크 " 가 난무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그곳에서  가족을 먹여살릴 " 쌀 값 " 을 벌어가며 와신상담했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에로 거장 틴토 불알스 감독 약사略史는 여기까지가 끝이다. 그는 공식적으로 2000년까지 영화를 만들었다. 그 이후의 소식은 알 수 없다. 충무로에서 에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애로'를 다룬 영화 << 아티스트 봉만대 >> 를 보는 내내 충무로에서 쫒겨나 몸에 맞지 않는 (영업 이사'라는) 옷을 입은, 초라한 둥근 어깨'로 각인되는 한국의 에로 거장 틴토 불알스 감독이 떠올랐다. 에로 영화'라는 장르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모두 다 좋아하면서 모두 다 좋다고 말하면 안 되는 속내가 바로 성욕'이었으니, 에로 영화 감독과 에로 영화 배우는 영화판의 서얼'이나 다름없었다. 시대는 변했지만 대우는 변하지 않았다. << 아티스트 봉만대 >> 를 관통하는 서정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봉만대 감독은 ART한 핑크 영화'를 찍고 싶지만 제작자가 요구하는 것은 Adult한 공포 에로스 영화'다. 그는 나름의 철학으로 촬영 현장을 장악하고 싶지만 현실은 항상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전임 감독과 후임 감독이 대립하고, 제작자와 감독이 대립하며, 여성 배우와 남성 배우가 또한 대립각을 세운다. 이 영화는 < 8과1/2 > 같은 불후의 명작'을 만들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 69 > 스타일로 끝내야 하는 찌찔한 감독의 자기 반영을 담고 있다. 에피소드가 다소 산만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단점은 있으나 봉만대 감독이 봉만대라는 영화 속 캐릭터를 빌려서 내뱉은 속내는 그동안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한 바를 지적한다. 영화는 벗었다는 이유로 찍힌 여배우들 : 성은, 곽현아, 이파니' 과 처음에는 화려하게 충무로에 " 입뽕 " 했으나

나중에는 흥행에 실패했다고 찍힌 감독과 배우 : 임필성, 여현수    그리고 에로 비디오 감독 출신이라고 충무로에서 서얼 대접을 받는 봉만대 감독이 만들어내는, 자기 디스와 변명이 난무하는 그럴싸한 난장을 " 페이크 다큐 " 형식으로 담아낸다. 페이크 다큐'라는 점에서 이재용 감독이 연출한 << 여배우들 >> 과 유사하지만 우아한 척하는 << 여배우들 >> 보다는 B급스러운 << 아티스트 봉만대 >> 가 더 흥미롭다.  내가 이 영화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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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3-2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글은 언제나 재밌네요.
요즘 봉만대 감독이 심심찮게 tv에 얼굴을 비치고 있는 것 같던데
에로 감독은 음탕할 거란 생각이 있잖아요.
그런데 의외로 소탈하고 수수해서 이 사람이 에로 감독 맞나 싶더군요. 물론 그 속이야 알 수는 없지만.ㅋ
저 <아티스트 봉만대>를 ip tv에서 볼 뻔했는데 그 전에 그 사람 영화를 반쯤 보다 말았죠.
에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
근데 곰발님 글 읽으니까 왠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뭐 딴 얘기이긴 하지만 진짜 일 좀 하려면 왜 그렇게 잡음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소소하게 무료 공연하려고 하는 건데 이것조차 시작도 하기 전에
시각이 달라 대립하고 있으니 원.ㅠ

그런데 이탈리아 감독의 이름이 진짜 그래요? 거참...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1 15:13   좋아요 0 | URL
틴토 브라스`입니다. 제 식대로 발음하면 틴토 불알스`입니다. ㅎㅎㅎㅎ

에로 현장이 그렇게 에로스럽지 않습니다. 뭐, 저도 본 적은 없지만
그냥 일의 현장일 뿐이지 뭐 별다를 것 있겠습니까.
저도 옛날에 누드 사진 찍을 때 한번 회비 내고 참여한 적 있는데
흥분되기는커녕, 흥분될 시간 자체가 없어서 그런 생각 자체를 못하겠더군요.
회비냈으니 좋은 화면 뽑으려고 눈 똥그렇게 뜨고 막 설치고 다니면
음탕한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아요. 에로 영화판도 그렇지 않을까요 ?



근데 그때 말씀하신 시극 올리시는 겁니까 ?

2015-03-21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1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1 1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5-03-21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 읽고 나서 유튜브로 영화를 봤는데,
와 정말 좋네요.
무엇보다 감독과 배우들이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 다른 한편으로 희화화도 시도한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저 역시 이 영화를 보고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여배우들˝이란 영화는 봉만대 영화에 비하면 곰곰발님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습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2 07:40   좋아요 0 | URL
뭐,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고 굳이 여배우들 잡설을 영화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튼. 이 영화는 저예산 투자 비용 대비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5-03-2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케이블 영화 채널에 틴토 브라스의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요즘 심의 규정이 강화되어서 무삭제로 보기가 힘들어졌어요. 19금 영화는 베드신, 신체 부위 노출 장면까지 아예 삭제된 채 나오더군요. 틴토 브라스의 모넬라 1, 2편을 케이블 영화 채널로 본 적이 있어요. 제가 다녔던 중학교가 남중이었는데 2박 3일 소풍을 가면서 머문 숙소에서 친구들과 몰래 모넬라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2 07:41   좋아요 0 | URL
아니 19금 영화에서 신체 부위 노출 장면을 삭제하면 도대체 뭘 보라는 말일까요 ?
ㅎㅎㅎ.

모넬라 좋았죠. 꽤 근사한 영화였습니다. 그 여주인공이 참 매력적이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오후라는 이름의 여자


 

 

ㅡ 엽편소설

 

 

 

ㅡ 다이안 아버스


내가 사진에 대해 " 관심 " 을 가지기 시작한 때는 시간을 거슬러 도서관에서 우연히 다이안 아버스'라는 여성 사진 작가'를 발견하면서부터였다. 보는 순간, 꽂혔다 ! 이 애틋한 관심'은 롤랑바르트가 << 카메라 루시다 >> 에서 언술한 스투디움'보다는 푼크툼'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 스투디움 > 과 < 푼크툼 > 을 쉽게 풀어서 내 식대로 말하자면 < 스투디움 > 은 "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끌림 " 이고 < 푼크툼 > 은 " 아무나 공감할 수 없는 찌름 " 이다. 스투디움이 집단적 기억을 공유한 자장'이라면 푼크툼은 개인적 기억에 의지한다. 다시 오소리 깻잎 입말사전 스타일로 말하자면 스투디움은 활엽수이고 푼크툼은 침엽수'이다. 프루스트의 <<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에서 " 마들렌 과자 " 는 푼크툼에 해당된다. 

만약에 소설 속 화자인 마르셀이 마들렌 과자를 먹고 나서 " 마디꾸나 ! " 라는 감탄으로 품평을 끝냈다면 마들렌 과자'는 단순히 스투디움으로 작동했을 텐데, 섬세한 감성을 간직한 마르셀은 단순하게 " 그래, 바로 이 맛이야 ! " 라고 끝내지 않는다. 그는 < 입 > 으로 맛을 보고 < 머리 > 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린다. 이 기억은 집단적 공유가 아닌 사적 체험에서 비롯된 서사'다. 그러니까 마들렌 과자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기계 장치의 입구'에 해당되는 셈이다. 내게 있어서 다이안 아버스 사진은 < 끌림 > 이 아니라 < 찌름 > 에 해당된다. 그 옛날,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사진을 배울 요량으로 대학로에 위치한 사진 학원을 등록한 적이 있었는데,  이왕 배울 거라면 사진 이론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배우자는 마음으로 취업 사진 분과'보다는 입시 사진 분과'에 등록했었다. 

당시 이 학원은 스파르르르르르타 식 교육으로 유명해서 기수가 정해져 있었다. 한 기수 높은 사람에게는 나이 불문하고 선배 대우를 해야 했다. 이를 어기면 하극상'으로 간주했다. 학원 복도에서 한 기수 높은 선배를 만나면 유치원생이 하는 배꼽 인사를 해야 했다. " 안냐세여 ~ " 지금 생각해 보면 원장은 참...... 좆같은 꼰대 새끼'였던 것 같다. 돈은 돈대로 내면서 욕은 욕대로 먹었으니 말이다.  이 학원은 매달 첫째 주 월요일에 사진 품평회를 열였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고욕이었다. 작업한 사진 가운데 마음에 드는 사진 3점을 골라서 작품 제목과 함께 의도를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필름 종류, 필름 감도, 셔터 속도, 조리개 값, 렌즈 종류 따위를 공개해야 한다. 품평회는 지루하고 따분했다. 사진 대부분은 원숭이가 발로 찍은 작품이었다. 

문제는 내가 찍은 사진이 원숭이가 발로 찍은 사진'보다 나을 게 없다는 데 있었다. 나는 내 미적 감각을 신뢰했지만     평소, 사람들에게 " 예술하세요 ? " 라는 소릴 꽤 많이 듣곤 했다. 예술가 행세를 하는 것 같아 민망해서 어정쩡하게 " 예, 술 좀 합니다 ! " 라는 식으로 넘어가고는 했다          이 신뢰'가 모래 위에 지어진 집보다 허술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해 준 품평회'였다. 크게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절망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내 실력이나 다른 녀석들 실력이나 모두 대동소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독 두 사람이 내 눈에 거슬렸다. 그들은 " 대동소이 " 라는 표준 군집'으로부터 벗어난 존재였으니 " 군계일학 " 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군계이학'이라고 표현해야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질투심을 느낀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여자'였다. 땅바닥에 떨어진 솔방울 하나를 사진에 담더라도 그들이 찍으면 뭔가 달랐다. 나는 그들이 품평회 때 설명한 필름 종류, 조리개 값, 셔터 속도로 맞춘 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피사체를 찍어도 봤지만 결과물은 여전히 원숭이가 발로 찍은 사진보다 나을 게 없었다. 암실에서 필름 현상을 할 때마다 " 닝기미, 조또... 시바 " 라는 소리가 수천 번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도대체 이 실력 차'가 나는 원인은 뭘까 ? 돌이켜 보면, 내가 흥미를 가진 사진 작가는 대부분 여성 작가'였다. 다이안 아버스, 신디 셔먼, 낸 골딘'이 그들이었다. 그 옛날, 스파르르르르르타 식으로 사진을 가르쳤던 학원 품평회에서도 내가 원숭이가 발로 찍은 사진'이라고 판단했던 사진들은 대부분 남자 학원생들이 찍은 작품이었고,

" 어랏, 이것 봐라 ? " 라며 관심을 보인 사진은 여자 학원생들이 찍은 쪽이 많았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니 이 글을 읽고 나서 성차별이라며 페니스를 발기할 필요는 없다. 사진에는 남녀 간 시선 차이'가 존재한다. 남자가 찍은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반면, 여자가 찍은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공감 능력이 돋보인다. 이처럼 동일 피사체, 동일 조건에서 사진을 찍는다 해도 사진은 다 다르다. 그 차이를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있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분별은 가능하다. 얼마 전, 장사가 안 되서 생선 가게'를 접고 유품관리사'로 전향했다. 말이 좋아 유품관리사'이지 풀어 설명하자면 시신 처리반'에서 일한다. 고독사 해서 시체가 썩거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 일반인들이 청소를 꺼릴 때, 

이 일을 유품관리사'가 맡아서 한다. 시신은 국가에서 처리하지만 시신이 남긴 흔적은 고수란히 내가 해야 할 몫이다. 우리는 이 죽음의 흔적을 " 데쓰 블러 " 라고 불렀다. 어제 특수 청소'를 한 곳은 13평짜리 원룸이었다. 사인은 고독사'였다. 파출소 김 순경에게 연락이 와서 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자신의 관할 구역에서 벌어진, 특수 청소가 필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연락을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는 일정 금액을 소개비 면목으로 김 순경에게 지불해야 했다. 시신이 누워 있던 침대는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데쓰 블러'는 다른 사람에 비해 크기가 작았다. 죽은 사람이 갸날픈 몸매'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시신이 남긴 데쓰 블러'를 닦고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남긴 사진첩을 보게 되었다.

시신뿐만 아니라 유품을 정리하는 것도 유품관리사'가 해야 될 몫이었다. 대부분은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이었지만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은 은밀한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원룸 세입자로 보이는 20대 여성이 벌거벗은 채 방 안에서 혼자 웃고 있었다. 침대에는 사랑을 나눈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침대 시트는 흐트러져 있었고 여기저기 속옷이 녈려 있었다. 그 시트 위에 벌거벗은 몸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여성 또한 흐트러진 시트처럼 머리카락이 헝크러져 있었다. 대번에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사진 속에는 찍힌 대상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은 여성과 찍힌 여성이 서로 연인 사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작업 관례상 옷은 대부분 소각되지만 사진은 유족에게 건내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진첩을 유족에게 인계하지 않기로 했다. 유족이 원하는 것은 사진이나 일기 따위가 아니라 돈이 될 만한 금붙이'였다. 힘든 하루였다. 집에 오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꿈속에서 나는 작명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 여인이 근심에 가득 찬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지만 딱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이 없어서 이내 포기했다. 여자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개명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성(姓)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여성은 오 씨'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 오후 " 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 성이 오'이고, 이름이 후'입니다. 오후라고 급히 말하지 마시고 오와 후 사이에 쉼표를 넣어서 발음해 보십시오. 후, 라고 할 때에는 말랑말랑해진 풍선껌을 불듯이 말입니다. "

여성은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여자는 이내 숨을 얕게 들이마셨다가 작게 속삭였다. " 오.... 후. 오, 후...... " 그녀는 후를 발음할 때 날숨을 쉬었다.

꿈에서 깼다. 오후라는 이름, 꽤 근사하다고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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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1 0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3-2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얼마만이십니까? 왜 그동안 안 나타나셨습니까? ㅎ
좆같은 꼰대 새끼`ㅋㅋㅋㅋㅋㅋ

어쩐지 예전에 보았던 쎌카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전 그림 잘 그리는 사람 보다 사진 잘 찍는 사람이 부럽더라구요.
그런데 전 내가 내 사진 보는 게 어색해서 사진 찍는 거 아주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데 입니다.ㅠ

유품관리사 일을 하시는군요.
그 일 쉽지 않을텐데 이 일을 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예전에 시나리오 학원 다닐 때 같은 반 남자 아이 하나가 크리너가 나오는 스릴러물을
쓰고 있다면서 얘기해 주는데 시나리오 내용은 생각 안 나고 그런 직업도 있었구나
새삼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1 05:30   좋아요 0 | URL
뭐. 저도 좀 바쁜 척을해야 사람들궁굼해하지 않겠습니까 ?

하튼... 그 학원 원장 새끼는 정말 좆같은 꼰대 새끼`였어요.
학원이 꽤 큰 사진학원이었는데 돈 벌려고 혈안이 되었던 녀석이었습니다.
사진과 지망하는 학생들 포트폴리오 대신 작성하고 돈 받고 그랬죠. 뭐
사실 그때 ( 지금은 모르겠으나 ) 사진과 지망생들 포트폴리오는 거의 다 학원 선생들이 작성하고는 했죠.

청소를 시작하니 마음이 편합니다.
청소가 제 천직인 것 같아요. 만족스러운 삶입니다.
 
[블루레이] 괴물 - 할인행사
봉준호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어수선 52호



어마어마한 암컷


  

좁고 긴 공간을 병적으로 좋아해요. < 플란다스의 개 >에서 임상수 감독님이 직접 출연하셨던 화장실 장면의 경우, 폭이 좁고 긴 화장실을 찾아내라고 스태프들을 못살게 군 적도 있었어요.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프로이트 책에 보면 좁고 긴 공간을 선호하는 것은 성적인 욕구불만 때문이라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봉준호

 

 


최동훈 영화의 장점은 생생한 입말에 있다. << 범죄의 재구성 >> 과 << 타짜 >> 를 거치면서 배우들이 영화 속에다 쏟아내는 오고가는 말풍선은 밑바닥 현장음처럼 생생해서 대사를 " 보는 맛 " 이 있다. 영화 << 도둑들 >> 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 범죄 사기단'에서 한 미모를 담당하는 예니콜 전지현은 새로 합류한 팹시 김혜수'를 보며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 씹던껌 김해숙이 " 우아 " 한 김혜수의 변치 않는 미모를 칭찬하자 전지현은 " 부아 " 가 치밀어서 이렇게 말한다. " 어~마어마한 쌍년 같은데 ? " 하지만 관객은 " 어마어마한 쌍년 " 이라는 부정'이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명제를 끌어오자면 강한 부정은 곧 강한 긍정을 의미하는 법. 예니콜 전지현은 팹시 김혜수가 이 팀을 이끌어 갈 여왕벌'이 될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안다. 이 바닥, 다 감으로 통한다. 느낌 아니까.

내가 봉준호의 << 괴물 >> 을 이야기하면서 말머리를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 도둑들 >> 로 시작해서 염치가 없긴 하다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 괴물 >> 속 이름 없는 괴물'이야말로 " 어~마어마한 암컷 " 이기 때문이다. 물건은 물건을 알아보는 법.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 영화 초반부터 몸통을 드러낸 채 등장해서 한강 둔치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자 나는 속으로 외쳤다. " 어~마어마한 쌍년 같은데 ? " 이 거친 육담은 내 나름대로의 특급 칭찬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괴수 영화 장르'가 흔히 사용하는 진부한 코드 진행을 전복한다. 감질나게 캄캄한 밤에 꼬리를 살짝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끄트머리에 가서 몸통 전체를 보여주는 게 지금까지의 괴수 영화 장르가 가지고 있는 뻔한 코드 진행 방식이었는 데 반해, 봉준호는 처음부터 백주 대낮에 몸통을 보여주고 시작한다. 이러한 장치는 따분한 것은 못 견디는 관객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장르 관습에 젖은 게으른 관객 뒤통수를 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영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괴물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화 속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다. 괴물은 개성 강한 신 스틸러(SCENE STEALER)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괴수 영화 장르'가 가지고 있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  괴물은 친구의 로맨스를 위해서 골목길에서 불량하게 껌을 씹으며 여자 앞에서 호기를 부리다가 친구에게 얻어터지는 역할을 담당하는 불량배와 같다. 봉준호 감독은 모험, 액션, 스릴러, 블랙 코미디, SF, 판타지 같은 온갖 장르를 끌어당겨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족 드라마'를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눈물샘을 자극해서 관객 호주머니를 노리는 통속 가족 이데올로기'보다는 정치적 함의를 내포한 풍자극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가족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가족 드라마'와는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둔 영화에 가깝다. 굳이 정의를 하자면 이 영화는 < 가족 ㅡ 드라마 > 보다는 차라리 < 식구ㅡ드라마 > 에 가깝다.

 

" 가족 " 이 수직적 서열을 강조하는 피라미드형 가계도'라면 " 식구 " 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 가족 家族 > 이 같은 핏줄에 의해서만 가족 구성원이 될 자격이 부여되는 구성체'라면, < 식구 食口 > 는 한집에 같이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말해주듯이 식구는 같은 핏줄이 아니더라도 함께 살면서 밥을 나눠 먹으면 자격 조건을 갖출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족은 " 피 " 에 방점을 찍고 식구는 " 밥 " 에 방점을 찍는다. 그렇기에 < 식구 > 는 < 가족 > 이라는 단어보다 타자에 대해 친화적이며 개방적이다. 봉준호 영화는 대부분 주인공이 타자의 보호자 역할을 맡는다. << 플란다스의 개 >> 에서는 현남(배두나 분)이 독거노인을 병원에 입원시키면서 보호자가 되고, << 살인의 추억 >> 에서도 박두만 형사(송강호 분)는 고아인 용구(김뢰하 분)의 수술동의서에 보호자로 기재된다.

 

<< 괴물 >> 에서 강두(송강호 분)가 고아인 사내아이의 보호자'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봉준호 감독은 그 사실을 분명히 한다. 손녀이자 딸이며 조카인 13살 현서를 괴물로부터 되찾기 위해 뭉친 가족'이 하루 종일 한강 철교를 수색한 후 일터인 한강 매점에 모여 잠시 허기진 끼니'를 때우는 판타지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때 홀연히 현서가 나타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함께 밥을 먹는다. 이때 가족은 아무 말 없이 현서의 끼니를 챙긴다. 아빠는 삶은 달걀을 현서 입에 넣어주고, 할아버지도 만두를 집어서 현서에게 말없이 건낸다.

 

 

 

 

 

또한 삼촌도 자신이 먹던 천하장사 소세지'를 현서 입에 넣어주고 그 옆에 있던 고모는 물을 건낸다. 여기에는 조건이 없다. 그들은 끼니를 나눌 뿐이다. 이 판타지 장면은 감독이 말하고 싶은 모든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서가 판타지'라는 공간을 빌려서 식구 틈에 끼어서 그들과 함께 먹는 음식'이 현서가 굶주린 사내아이'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물었을 때 아이가 대답했던 목록들이라는 점이다 (아이는 바나나 우유, 천하장사 소세지, 삶은 계란, 핫도그, 메추리알, 통닭, 컵라면 따위'를 상상한다). 그렇기에 이 판타지 장면은 현서와 가족이 꾸는 판타지가 아니라 굶주린 사내아이의 판타지에 가깝다. 현서와 세주(사내아이)의 대화에서 현서가 매점을 한다고 말하자 세주가 " 와, 그럼 누나는 맨날맨날 (컵라면) 먹겠네. " 라고 부러운 듯이 말한다.  


이에 현서는 " 원래 짱깨집 애들이 짜장면 더 안 먹어. " 라고 대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말은 곧 현서가 매점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나타낸다. 이 판타지는 세주의 욕망이 현서에게 전이된 현상으로, 현서를 지우고 그 자리에 세주'가 놓이게 될 것이란 사실을 은연 중에 암시'한 대목이다. 봉준호 감독은 가족의 의미'보다는 식구의 의미'를 묻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가족 드라마'라는 단순한 얼개'에 얽매이지 않는다. 보다 복잡하고 섬세하며 깊고 풍부하다. 영화 << 괴물 >> 은 " 이빨 달린 질 " 이라는 뜻을 지닌 < 바기나 덴타타 > 신화를 적극 끌여들여서 무시무시한 초법적 어머니로서의 여성성'을 탐구한다.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좁고 긴 공간을 병적으로 집착하는 원인도 초법적 모성'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무의식이다.

 

봉준호가 << 설국 열차 >> 를 영화화를 결심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폭주하는 기차는 여성 성기 내부를 닮았다. 더군다나 열차의 리더'는 여성이 아니었던가 ? 영화 << 괴물 >> 에서 괴물의 신체 부위 가운데 유독 입'을 강조한 비주얼도 여성 성기'를 연상케 한다. 영화 말미'에 송강호가 괴물이 삼킨 딸을 빼낼 때 보여주는 입속 생김새는 완벽하게 여성 질'을 닮았다.

 

ㅡ 괴물과의 사투에서 강두(송강호 분)는 괴물이 삼킨 어린 딸의 팔을 잡고 입속에서 빼낸다. 이때 괴물의 입속은 여성 성기를 닮았다


그렇기에 현서가 괴물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은 마치 출산 장면처럼 묘사된다. 현서는 자궁으로부터 분리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은유가 바로 한강 철교 다리'이다. 괴물이 새끼 여성 성기 괴물이라면 한강 철교 다리 내부는 어미 여성 성기 괴물'이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철교 다리 내부이다. 이름 없는 괴물이 다리와 다리 사이에 숨는다는 점 ( 혹은 다리 속에 은신처가 있다는 점 ) 은 철교 다리'가 거대한 자궁'이라는 은유로 읽힐 수 있다. 과잉 해석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다리( bridge ) 를 다리 ( leg )로 해석하면 재미있다. 이러한 " 바꿔치기(치환) " 는 명백한 의도를 숨기기 위한 위장'에 해당된다. 봉준호 감독이 << 괴물 >> 후속작으로 << 마더 >> 를 연출했다는 점은 그 사실을 분명히 한다. << 괴물 >> 과 << 마더 >> 는 모두 어긋난 여성성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프로이트는 아이가 가지는 거세 공포증이 아버지의 권위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공포 영화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공포 주체'는 남성성보다는 무시무시한 자궁'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자궁은 공포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페니스는 공포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느 누가 우람한 페니스를 보며 공포에 떠는가 ! 누누이 하는 소리지만 << 엑소시스트 >> , << 캐리 >>, << 에이리언 시리즈 >> 따위는 기괴한 자궁과 관련이 있다. << 엑소시스트 >> 는 산모와 태아가 분리되지 않으려는 " 코라 " 상태를 다루고 << 캐리 >>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퀸-에이리언'이다. 덧대어 드라큘라 또한 기괴한 자궁과 관련이 깊다. 드라큘라가 주로 물어뜯는 목 neck이 자궁경부 (neck of the uterus) 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흡혈귀가 흡혈을 할 때 쫙 벌린 입은 " 바기나 덴타타 " 다.

 

영화 << 괴물 >> 에서 괴물이 " 살아 숨쉬는 유기체적 기괴한 자궁 " 이라면 철교 다리 내부는 " 내부가 텅빈 공간空間으로써 " 작동한다. 이 영화는 온갖 장르를 끌여들여서 다양한 메시지를 섞지만 신기하게도 겉도는 느낌이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봉준호'라는 감독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조율 감각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감독들이 흥행성과 작품성이 모두 충족되기를 바라지만 흥행성과 작품성 모두를 성공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군다나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오락 영화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봉준호는 보란듯이 성공했다. 송강호는 딸을 잃은 대신 아들을 얻는다. 다시 말해서 가족을 잃는 대신 식구를 얻었다. 한 핏줄에서 태어난 가족은 아니지만 한집에서 끼니를 함께 나눈다는 점에서 그들은 이제 식구'다.


 

 

 

이 영화는 모성에 의탁하지 않은 채    영화 속에서 강두 아버지와 강두 모두 부인이 없다       식구라는 대안 가족'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급진성을 확보한, 기똥차게 잘 만든 좌파 오락 영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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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이래저래 < 밥 > 과 인연이 깊은 배우이다. " 먹방 " 연기의 달인은 하정우가 아니라 송강호'다. 그는 << 살인의 추억 >> 과 << 변호인 >> 에서도 " 밥의 철학 " 에 대해 말한다. 밥은 먹고 다니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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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3-1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준호의 가족-식구 분석 곰곰발님의 독특한 해석 재밌습니다. 허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봉준호의 모든 영화에서 반 서구열강 의식의 투영, 배제를 통한 결과 도출이, 큰 틀에서는 제 식구, 제 가족 챙기기 대결구도라고 보니까요. 대안가족은 항상 소외된 자들끼리만 만들어지죠. 대안가족을 긍정성으로 보시는 분도 있겠지만 제겐 그래서 봉준호 영화에 화해를 읽을 수는 없더군요. 물론 모두가 행복한 평화~ 극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재미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겠죠; 또한 모든 극은 갈등의 소산이며 그 해소는 창작자의 자유일테고, 봉준호의 좌파적 정치 자유, 권력에 대한 투쟁...부정할만 한 것은 아니지만 관객으로서 봉준호의 그런 도식과 인식에 저는 질려가고 있습니다..

매번 쓰신 글의 주 논점을 살짝 비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같아 죄송스럽긴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2 18:06   좋아요 0 | URL
뭐 영화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엄연히 수용자의 몫이니 생각이 다르다고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5000만 한국인이 모두 < 괴물 > 을 칭찬한다면 그것은 프로파간다 영화`가 되겠죠.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은 의외로 그 영화가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봉준호의 모든 영화에서 반서구열강 의식이 투영된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가 없군요. 반서구열광의식이라기보다는 쩨쩨한 수컷에 대한 비판으로 읽혀집니다. < 마더 > 에서도 미제국주의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 정신으로 보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 ㅎㅎㅎ < 살인의 추억 > 도 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보다는 자기 새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대한민국 찌질한 수컷에 대한 반성으로 읽힙니다.

AgalmA 2015-03-12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모든은 역시 조심히 써야해요...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마더...뺄 게 더 많네요ㅎ 봉준호씨에게 제게 기대만큼 쌓인 게 많았나 봅니다;

수다맨 2015-03-14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의 추억˝이 자기 새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찌질에 대한 수컷이란 해석이 재밌네요.
예전에 곰곰발님 쓰신 글이 생각나는데, 형사들(김상경, 송강호)이 미국에서 유전자 검사 결과만 목 빠지게 기다리죠. 여기서 곰곰발님이 미국은 아버지, 즉 대타자라고 정의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버지의 윤허(?!)만을 기다리는 무력한 아들에 다름 아니라고 쓰셨던 게 인상 깊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4 06:45   좋아요 0 | URL
네, 기억하시는군요.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안에서는 큰소리 치면서 밖에서 나가면 굽신거리는 못난 아비 ? 찌질한 수컷에 대한 분노 같은 게 느껴집니다. < 괴물 > 도 보면 국가`라는 찌질한 아버지는 백성`이라는 자식(변희봉 가족)을 돌보지 않잖아요. 그저 미국이라는 거대 남근 앞에서 굽신거리는 찌질한 아버지`죠. 결국은 사회적 약자들이 뭉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이죠.. 뭐.. 그런 내용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