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브라이언 싱어 감독, 휴 잭맨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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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엑스맨 ㅣ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며칠 전, 길을 걷다가 봄볕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손편지를 써야 겠다는 생각에 우표를 사기 위해 문방구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무작정 초등학교 정문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현실과 마주쳐야 했다. 학교 앞에 문방구'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 주위를 아무리 살펴도 문방구가 보이지 않기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학교 앞 근처에는 문방구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방귀처럼 천천벽력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하며 호들갑을 떨 생각은 없다만 그래도 학교 앞에 문방구가 없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조용필의 << 킬리만자로의 표범 >> 스타일로 허세를 부리자면 " 21세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 시바, 학교 앞에 문방구'가 없다는 소리는 여관에 갔더니 콘돔 없다는 소리와 같구나.

내가 기억하는 학교 앞 풍경은 문방구 가게'가 다닥다닥 붙은 풍경이었다. 어릴 때는 그곳이 작은 우주'요, 화개장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 학습 준비물 무상 지원 제도 > 때문에 아이들이 굳이 문방구를 찾을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복지 차원에서 보면 반길 만한 일이지만 구멍가게나 문방구 가게가 동전 장사 영업이라는 점에서, 다시 말해서 밑바닥 생태계의 최전선'이라는 점에서 사라져가는 문방구는 왠지 씁쓸하다. 성석제 소설 << 순정 >> 을 읽다 보면 동네마다 다양한 동네가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 아아아, 지미랄 것, 너희 똥도 못 처먹는 개새끼들, 다 나와. 너 술도가 나와. 너 농약가게 하는 놈 나와. 너 고무신 장수 나와. 너 기름 팔아처먹는 놈 나오고 떡쳐서 파는 놈, 말고기를 소고기라고 속여 파는 놈 나와. 쌀 배달 하는 놈, 소리사 하는 놈 다 나와. 철공소, 목공소, 철물점, 대장간, 도장집, 문방구, 성냥공장, 엿도가, 고물상 나와라. 우체국, 경찰서, 읍사무소,세무서, 소방서 다 나오란 말이다. 개새끼들아, 나왔으면 일렬로 서. 이놈의 새끼들, 내 마누라하고 재미본 그 대가리들, 잘 놀게 내가 그냥 놔둘 줄 알았냐. 야, 너 흔들거리는 놈, 똑바로 서 ! 내가 땜장이라고 우습게 봤어. 사나이 봉달이를 우습게 봤다 이 말이야. 내가 오늘부터 너희 대가리에 헛구멍난 걸 몽땅 때우겠다 이 말씀이야. 너희 마누라들, 그 구멍도 다 때워버리겠어. 이눔의 새끼들, 똑바로 안 서 ! 차렷, 열중 쉬어, 차렷, 경례 ! " 


ㅡ 성석제, 순정 중


여기서 술도가는 술을 만들어 도매로 파는 집을 말하고, 엿도가는 엿을 만들어 파는 가게를 말하고, 소리사는 레코드 가게'를 말한다. 생각해 보니 옛날 동네 골목 어귀에는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만고만한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그 동네에 사는 아이들도 대부분 철공소 둘째, 대장간 막내, 도장집 딸년, 얼음집 장녀, 솜틀집 언청이 따위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가게들이 모두 멸종된 것이다. 이제 동네 골목을 장악한 것이라고는 토종 물고기를 잡아먹는 프렌차이즈 化된 기업형 " 베쓰 " 나 종교를 가장한 교회 가게'가 전부다. 그나마 중국집이 근근이 버티고 있다. 생태계 다양성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건강한 골목 생태계는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 동네 골목을 떠난 가게는 이마트로 보인다.

문제는 가게 주인이 없는 무인 점포 형태'라는 점이다. 이마트 안에는 만물상을 방불케하는 수많은 상품이 진열되어 있지만 정작 주인'은 " 오너 " 한 명'이 전부다. 쉽게 말해서 " 오너 " 한 명이 가게 수천 개를 운영하는 꼴'이다. 한국 소비자는 그곳에 가서 상품을 구매한다. 대형 마트는 거래 업체를 후려쳐서 싼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하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각종 쿠폰과 마일리지'는 재래시장에서 유통되는 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 중에는 한때 고무신 장수도 있고, 한때 기름 팔아처먹었던 놈도 있고, 한때 솜틀집 언청이도 있고, 한때 엿도가 하던 사람도 있다. 이마트 같은 대형 마트가 편리를 추구하는 소비 패턴의 결과'라고 해도 결국은 자기 꼬리를 야금야금 뜯어먹는 꼴이다.

엿도가 가게를 했던 엿장수가 이마트 가서 엿 먹으니 말이다. 이러다가는 모두 다 엿 먹게 되리라. 영화 << 엑스맨 >> 시리즈'가 재미있는 이유는 1인 영웅 이야기'와는 달리 다양한 초능력을 가진 인물을 다룬다는 데 있다. 천둥 번개와 비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가 있는가 하면, 상대방 손을 잡으면 그 사람 능력을 몽땅 흡수할 수 있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빛보다 빠르다. 이들이 모여서 " 다크한 포스 " 와 싸운다는 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서사 골격'이다. 엑스맨 구성원들은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한다. 힘은 세지만 속도가 떨어지는 엑스맨을 도우는 사람은 번개보다 빠른 엑스맨이고, 마찬가지로 번개보다 빠르지만 힘이 없는 이를 돕는 능력자는 힘이 센 장사'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과잉 에너지를 이용하여 동료를 위험에서 건져낸다.  쉽게 말해서 서로서로 돕는다. 엑스맨 시리즈 속 다양한 캐릭터를 볼 때마다 성석제 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가게 주인'이 생각난다. 어쩌면 울버린, 립타이드, 겜빗, 카일라, 싸이클롭스는 전생에 술도가, 소리사, 철공소, 대장간, 국숫집, 엿도가 주인이었을 것이다. 그들 또한 한 분야의 달인'들이니 말이다. 영화 << 엑스맨 >> 이 가지고 있는 미덕은 차이를 차별로 보지 않고 다양성으로 보는 시선이다. 능력이란 다른 식으로 말하면 " 평균값의 과잉 " 이다. 그리고 < 과잉 > 은 평균값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점에서 < 결핍 > 이기도 하다. 엑스맨이 남들과는 다른 초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능력 때문에 고통받는 이유는 과잉이 결핍으로 작동한 데 있다.

하지만 그들은 타자에게는 없는 능력을 보완하면서 서로 돕는다. 타자의 결핍을 채우는 순간 자기 스스로를 괴물 취급했던 과잉은 마술처럼 사라진다. 결핍된 동료와 나누기 때문이다. 동네 골목 상권이 다양한 가게로 채워져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전파사 주인은 국수를 뽑는 가게에서 말랑말랑한 국수를 사고, 국수를 만드는 가게 주인은 고장난 라디오를 전파사에 맡긴다. 내가 국수를 사는 데 지불했던 돈이 다시 자기 호주머니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둘 다 손해보는 일이 아니다. 전파사 주인은 제분 회사에서 생산되는 국수 대신 방부제 없는 탱글탱글한 국수 면발 맛을 볼 수 있고, 국수를 만드는 가게 주인도 고장난 라디오를 저렴한 수리비로 고칠 수 있으니 좋다. 돈이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이마트 사장 금고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동네에서 돌고 돈다.

그렇게 때문에 골목 상권이 십자가와 휴대폰과 카페로만 채워진 골목보다는 다양한 가게'가 들어선 골목이 풍요롭고 재미있다. 울버린만 나오는 엑스맨을 상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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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3-2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손편지는 써서 보내셨나요?
저도 손편지 받고 싶어요.ㅠ

진짜 격세지감이죠?
요즘엔 우표를 어디서 사야하나 싶어요.
우체국 밖엔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우리 땐 학용품 사려고 아침 때 문방구 앞이 바글바글 했는데
학교에서 그런 것도 준비해준다니 일견 부럽기도 하더라구요.
옛날엔 준비물 챙기느라 엄마들이 더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잖아요.

곰발님은 인용문을 어떻게 관리 보관 하십니까?
저는 책을 읽을 땐 줄쳐 가며 읽어도 따로 보관해 두질않아
글 쓸 때 별로 인용할 말이 없어요. OTL

전 성석제가 그다지 웃기는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많은 사람 특히 본인이 웃기는 작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가끔 좀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ㅋㅋ 뭐가 그렇게 웃기다는 건지 원...
하긴, 개콘을 보고도 잘 웃지 않는 제가 더 문제인지도 모르죠. 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3 13:14   좋아요 0 | URL
우표를 살 데가 없어서... 이젠 우체국 가야지만 우표를 살 수 있나 봅니다.
가만 보면 이제 문구점은 학교 앞 보다는 차라리 도시 사무실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상대로 한다기보다는 어른을 상대로 하니
이제는 문방구는 어린이 놀이터가 아니라 어른이 잠시 왔다가는 그런 가게가 되었네요.

뭐. 인용문을 따로 관리하지는 않습니다. 밑줄을 치죠. 제가 기억하는 것은 밑줄친문장이니
인용하고 싶으면 책을 펼칩니다. 찾는데는 1분도 안 걸려요. 위치를 대충 알거든요.
글구 밑줄을 많이 긋는 것도 아니니 몇 초만에 찾기도 하고....


말리 2015-03-23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전자들고 술사오던 술 도가도, 문을 열면 컴컴한 열기가 훅 치밀던 콩나물 도가도, 김모락모락 오르는 두부 판에서 한모 뚝 떼어 주던 두부공장도 모두 좁디좁은 우리동네 안에 다 있었습니다. 자가용 한대도 들어가기 힘든 그 골목에 옹기종기 말이죠. 구루마 휘어지도록 냄비며 솥이며 싣고 와 팔던 그릇 장수 아저씨도 심심찮게 들락거렸죠. ㅎㅎ 너무 옛날 이야긴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3 13:58   좋아요 0 | URL
아,도가가 따로 도매상`이란 뜻이네요... 방금 사전보고 알았습니다. 술도가`가 붙은 낱말인 줄 알았는데... 도가`라는 말 처음 들어봐서요... 하여튼 제 옛기억은 정말 온갖 것들이 다 가게 라는 이름으로 있었다는 점입니다. 기억나는 것은국수집이에요. 젖은 국수 대에 올려서 말리는 풍경이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어머니 말슴으로는 그때 그 국수가 지금 시중에 파는 국수하고는 맛 자체가 틀리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