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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봉만대
봉만대 감독, 봉만대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두 명의 에로 거장 : 틴토 불알스와 봉만대
내가 다니던 회사 영업 이사는 한때 충무로를 주름잡던 감독이었다(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그는 에로 영화'를 감독해서 에로 영화 감독'이라는 달갑지 않은 명함을 얻었다. 당시에는 전두환이 대통령 흉내를 내던 시절이라 에로 영화가 대세를 이루었으니 굶지 않기 위해서는 에로를 만들어야 했다. 그가 만든 영화 << ●● >> 은 그해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시리즈 영화'로 제작되어 6탄까지 선보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으니, 시리즈 영화의 오리지날 1탄 감독으로써 자부심을 느낄 만했다. 이탈리아에는 에로 영화의 거장 " 틴토 불알스 " 감독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에는 " ●●● " 감독이 있었다(편의상 그를 한국의 틴토 불알스'라고 말하겠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세운상가에서만 은밀하게 거래되었던 포르노'를 일반 가정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에로 영화'는 사양길에 접어든다.
굳이 돈 내고 극장 가서 에로 영화'를 볼 필요가 없는 " 참 좋은 세상 " 이 온 것이다. 집에서 불알 만지작거리며 혼자서 은밀하게 음화를 볼 수 있는 재미'는 불특정 다수와 극장에서 에로 영화를 보는 재미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 힘 > 이란 게 그렇다. 힘은 신체 부위'에 따라 다르다. < 용기의 주먹 > 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불끈, 힘이 나지만 < 불굴의 페니스 > 는 아무도 없을 때 불끈, 힘이 난다. 만고 불변이다. 물론 바바리맨 같은 경우는 예외이지만 말이다. 영화 제작 환경이 180도 바뀌자 호스테스 장르 영화에 대한 인기는 한순간에 거품이 꺼졌고 영화판은 해체되었으며 에로 영화 종사자들도 직장을 잃고 떠났다. 결국 밥벌이를 위해 한국의 위대한 에로 거장인 틴토 불알스 감독이 얻은 부업이 내가 다니던 회사 영업 이사'라는 " 푸리란서 " 직함이었다.
내가 가끔 회식자리에서 그가 감독한 흥행 대작 에로 영화'를 거론하며 열을 올리면 그는 항상 난처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이말 저말 뒤섞어서 어름어름 분명치 않게 말하기 일쑤였다. " 그 영화로, 뭐.... 그냥 재미 좀 봤지. 허허. 그건 그렇고 말이야...... " 스스로 에로 영화 감독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화제를 돌려 자신이 만든 영화 가운데 << ●●● >> 이란 영화를 만들 때의 촬영 에피소드'를 힘주어 말하고는 했다. 그 영화를 말할 때에는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그 영화는 영화 << ●● >> 이 흥행 대박을 친 다음에 만든 작품으로 흥행과 제작비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그가 평소에 만들고 싶었던 영화'처럼 보였다. 그 영화가 그에게는 " 불후의 명작 " 인 셈'이었다.
그것은 박찬욱 감독이 << 공동경비구역 >> 으로 흥행 대박을 친 후 흥행과 제작비에서 벗어나 평소 만들고 싶었던 << 복수는 나의 것 >> 을 만들었던 흐름과 비슷한 것이었다. 흔히 " 박수 칠 때 떠나라 ! " 라는 말이 떠돌지만 영화판에서는 박수 칠 만한 영화(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만들고 나면 그 기회를 살려 자신이 평소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떵떵거릴 때 밀어붙여야 한다는 소리이다. 박수 칠 때 떠나면, 그래요...... 병신이다. 물에서 놀던 놈이 뭍에서 놀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한국의 틴토 불알스 감독은 영업 이사를 때려치우고 다시 촬영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필름 카메라 대신 비디오 카메라'로 비디오 영화'를 만든다는 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 핑크 " 가 난무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그곳에서 가족을 먹여살릴 " 쌀 값 " 을 벌어가며 와신상담했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에로 거장 틴토 불알스 감독 약사略史는 여기까지가 끝이다. 그는 공식적으로 2000년까지 영화를 만들었다. 그 이후의 소식은 알 수 없다. 충무로에서 에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애로'를 다룬 영화 << 아티스트 봉만대 >> 를 보는 내내 충무로에서 쫒겨나 몸에 맞지 않는 (영업 이사'라는) 옷을 입은, 초라한 둥근 어깨'로 각인되는 한국의 에로 거장 틴토 불알스 감독이 떠올랐다. 에로 영화'라는 장르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모두 다 좋아하면서 모두 다 좋다고 말하면 안 되는 속내가 바로 성욕'이었으니, 에로 영화 감독과 에로 영화 배우는 영화판의 서얼'이나 다름없었다. 시대는 변했지만 대우는 변하지 않았다. << 아티스트 봉만대 >> 를 관통하는 서정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봉만대 감독은 ART한 핑크 영화'를 찍고 싶지만 제작자가 요구하는 것은 Adult한 공포 에로스 영화'다. 그는 나름의 철학으로 촬영 현장을 장악하고 싶지만 현실은 항상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전임 감독과 후임 감독이 대립하고, 제작자와 감독이 대립하며, 여성 배우와 남성 배우가 또한 대립각을 세운다. 이 영화는 < 8과1/2 > 같은 불후의 명작'을 만들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 69 > 스타일로 끝내야 하는 찌찔한 감독의 자기 반영을 담고 있다. 에피소드가 다소 산만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단점은 있으나 봉만대 감독이 봉만대라는 영화 속 캐릭터를 빌려서 내뱉은 속내는 그동안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한 바를 지적한다. 영화는 벗었다는 이유로 찍힌 여배우들 : 성은, 곽현아, 이파니' 과 처음에는 화려하게 충무로에 " 입뽕 " 했으나
나중에는 흥행에 실패했다고 찍힌 감독과 배우 : 임필성, 여현수 그리고 에로 비디오 감독 출신이라고 충무로에서 서얼 대접을 받는 봉만대 감독이 만들어내는, 자기 디스와 변명이 난무하는 그럴싸한 난장을 " 페이크 다큐 " 형식으로 담아낸다. 페이크 다큐'라는 점에서 이재용 감독이 연출한 << 여배우들 >> 과 유사하지만 우아한 척하는 << 여배우들 >> 보다는 B급스러운 << 아티스트 봉만대 >> 가 더 흥미롭다. 내가 이 영화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