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괴물 - 할인행사
봉준호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어수선 52호



어마어마한 암컷


  

좁고 긴 공간을 병적으로 좋아해요. < 플란다스의 개 >에서 임상수 감독님이 직접 출연하셨던 화장실 장면의 경우, 폭이 좁고 긴 화장실을 찾아내라고 스태프들을 못살게 군 적도 있었어요.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프로이트 책에 보면 좁고 긴 공간을 선호하는 것은 성적인 욕구불만 때문이라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봉준호

 

 


최동훈 영화의 장점은 생생한 입말에 있다. << 범죄의 재구성 >> 과 << 타짜 >> 를 거치면서 배우들이 영화 속에다 쏟아내는 오고가는 말풍선은 밑바닥 현장음처럼 생생해서 대사를 " 보는 맛 " 이 있다. 영화 << 도둑들 >> 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 범죄 사기단'에서 한 미모를 담당하는 예니콜 전지현은 새로 합류한 팹시 김혜수'를 보며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 씹던껌 김해숙이 " 우아 " 한 김혜수의 변치 않는 미모를 칭찬하자 전지현은 " 부아 " 가 치밀어서 이렇게 말한다. " 어~마어마한 쌍년 같은데 ? " 하지만 관객은 " 어마어마한 쌍년 " 이라는 부정'이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명제를 끌어오자면 강한 부정은 곧 강한 긍정을 의미하는 법. 예니콜 전지현은 팹시 김혜수가 이 팀을 이끌어 갈 여왕벌'이 될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안다. 이 바닥, 다 감으로 통한다. 느낌 아니까.

내가 봉준호의 << 괴물 >> 을 이야기하면서 말머리를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 도둑들 >> 로 시작해서 염치가 없긴 하다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 괴물 >> 속 이름 없는 괴물'이야말로 " 어~마어마한 암컷 " 이기 때문이다. 물건은 물건을 알아보는 법.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 영화 초반부터 몸통을 드러낸 채 등장해서 한강 둔치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자 나는 속으로 외쳤다. " 어~마어마한 쌍년 같은데 ? " 이 거친 육담은 내 나름대로의 특급 칭찬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괴수 영화 장르'가 흔히 사용하는 진부한 코드 진행을 전복한다. 감질나게 캄캄한 밤에 꼬리를 살짝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끄트머리에 가서 몸통 전체를 보여주는 게 지금까지의 괴수 영화 장르가 가지고 있는 뻔한 코드 진행 방식이었는 데 반해, 봉준호는 처음부터 백주 대낮에 몸통을 보여주고 시작한다. 이러한 장치는 따분한 것은 못 견디는 관객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장르 관습에 젖은 게으른 관객 뒤통수를 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영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괴물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화 속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다. 괴물은 개성 강한 신 스틸러(SCENE STEALER)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괴수 영화 장르'가 가지고 있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  괴물은 친구의 로맨스를 위해서 골목길에서 불량하게 껌을 씹으며 여자 앞에서 호기를 부리다가 친구에게 얻어터지는 역할을 담당하는 불량배와 같다. 봉준호 감독은 모험, 액션, 스릴러, 블랙 코미디, SF, 판타지 같은 온갖 장르를 끌어당겨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족 드라마'를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눈물샘을 자극해서 관객 호주머니를 노리는 통속 가족 이데올로기'보다는 정치적 함의를 내포한 풍자극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가족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가족 드라마'와는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둔 영화에 가깝다. 굳이 정의를 하자면 이 영화는 < 가족 ㅡ 드라마 > 보다는 차라리 < 식구ㅡ드라마 > 에 가깝다.

 

" 가족 " 이 수직적 서열을 강조하는 피라미드형 가계도'라면 " 식구 " 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 가족 家族 > 이 같은 핏줄에 의해서만 가족 구성원이 될 자격이 부여되는 구성체'라면, < 식구 食口 > 는 한집에 같이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말해주듯이 식구는 같은 핏줄이 아니더라도 함께 살면서 밥을 나눠 먹으면 자격 조건을 갖출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족은 " 피 " 에 방점을 찍고 식구는 " 밥 " 에 방점을 찍는다. 그렇기에 < 식구 > 는 < 가족 > 이라는 단어보다 타자에 대해 친화적이며 개방적이다. 봉준호 영화는 대부분 주인공이 타자의 보호자 역할을 맡는다. << 플란다스의 개 >> 에서는 현남(배두나 분)이 독거노인을 병원에 입원시키면서 보호자가 되고, << 살인의 추억 >> 에서도 박두만 형사(송강호 분)는 고아인 용구(김뢰하 분)의 수술동의서에 보호자로 기재된다.

 

<< 괴물 >> 에서 강두(송강호 분)가 고아인 사내아이의 보호자'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봉준호 감독은 그 사실을 분명히 한다. 손녀이자 딸이며 조카인 13살 현서를 괴물로부터 되찾기 위해 뭉친 가족'이 하루 종일 한강 철교를 수색한 후 일터인 한강 매점에 모여 잠시 허기진 끼니'를 때우는 판타지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때 홀연히 현서가 나타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함께 밥을 먹는다. 이때 가족은 아무 말 없이 현서의 끼니를 챙긴다. 아빠는 삶은 달걀을 현서 입에 넣어주고, 할아버지도 만두를 집어서 현서에게 말없이 건낸다.

 

 

 

 

 

또한 삼촌도 자신이 먹던 천하장사 소세지'를 현서 입에 넣어주고 그 옆에 있던 고모는 물을 건낸다. 여기에는 조건이 없다. 그들은 끼니를 나눌 뿐이다. 이 판타지 장면은 감독이 말하고 싶은 모든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서가 판타지'라는 공간을 빌려서 식구 틈에 끼어서 그들과 함께 먹는 음식'이 현서가 굶주린 사내아이'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물었을 때 아이가 대답했던 목록들이라는 점이다 (아이는 바나나 우유, 천하장사 소세지, 삶은 계란, 핫도그, 메추리알, 통닭, 컵라면 따위'를 상상한다). 그렇기에 이 판타지 장면은 현서와 가족이 꾸는 판타지가 아니라 굶주린 사내아이의 판타지에 가깝다. 현서와 세주(사내아이)의 대화에서 현서가 매점을 한다고 말하자 세주가 " 와, 그럼 누나는 맨날맨날 (컵라면) 먹겠네. " 라고 부러운 듯이 말한다.  


이에 현서는 " 원래 짱깨집 애들이 짜장면 더 안 먹어. " 라고 대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말은 곧 현서가 매점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나타낸다. 이 판타지는 세주의 욕망이 현서에게 전이된 현상으로, 현서를 지우고 그 자리에 세주'가 놓이게 될 것이란 사실을 은연 중에 암시'한 대목이다. 봉준호 감독은 가족의 의미'보다는 식구의 의미'를 묻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가족 드라마'라는 단순한 얼개'에 얽매이지 않는다. 보다 복잡하고 섬세하며 깊고 풍부하다. 영화 << 괴물 >> 은 " 이빨 달린 질 " 이라는 뜻을 지닌 < 바기나 덴타타 > 신화를 적극 끌여들여서 무시무시한 초법적 어머니로서의 여성성'을 탐구한다.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좁고 긴 공간을 병적으로 집착하는 원인도 초법적 모성'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무의식이다.

 

봉준호가 << 설국 열차 >> 를 영화화를 결심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폭주하는 기차는 여성 성기 내부를 닮았다. 더군다나 열차의 리더'는 여성이 아니었던가 ? 영화 << 괴물 >> 에서 괴물의 신체 부위 가운데 유독 입'을 강조한 비주얼도 여성 성기'를 연상케 한다. 영화 말미'에 송강호가 괴물이 삼킨 딸을 빼낼 때 보여주는 입속 생김새는 완벽하게 여성 질'을 닮았다.

 

ㅡ 괴물과의 사투에서 강두(송강호 분)는 괴물이 삼킨 어린 딸의 팔을 잡고 입속에서 빼낸다. 이때 괴물의 입속은 여성 성기를 닮았다


그렇기에 현서가 괴물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은 마치 출산 장면처럼 묘사된다. 현서는 자궁으로부터 분리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은유가 바로 한강 철교 다리'이다. 괴물이 새끼 여성 성기 괴물이라면 한강 철교 다리 내부는 어미 여성 성기 괴물'이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철교 다리 내부이다. 이름 없는 괴물이 다리와 다리 사이에 숨는다는 점 ( 혹은 다리 속에 은신처가 있다는 점 ) 은 철교 다리'가 거대한 자궁'이라는 은유로 읽힐 수 있다. 과잉 해석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다리( bridge ) 를 다리 ( leg )로 해석하면 재미있다. 이러한 " 바꿔치기(치환) " 는 명백한 의도를 숨기기 위한 위장'에 해당된다. 봉준호 감독이 << 괴물 >> 후속작으로 << 마더 >> 를 연출했다는 점은 그 사실을 분명히 한다. << 괴물 >> 과 << 마더 >> 는 모두 어긋난 여성성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프로이트는 아이가 가지는 거세 공포증이 아버지의 권위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공포 영화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공포 주체'는 남성성보다는 무시무시한 자궁'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자궁은 공포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페니스는 공포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느 누가 우람한 페니스를 보며 공포에 떠는가 ! 누누이 하는 소리지만 << 엑소시스트 >> , << 캐리 >>, << 에이리언 시리즈 >> 따위는 기괴한 자궁과 관련이 있다. << 엑소시스트 >> 는 산모와 태아가 분리되지 않으려는 " 코라 " 상태를 다루고 << 캐리 >>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퀸-에이리언'이다. 덧대어 드라큘라 또한 기괴한 자궁과 관련이 깊다. 드라큘라가 주로 물어뜯는 목 neck이 자궁경부 (neck of the uterus) 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흡혈귀가 흡혈을 할 때 쫙 벌린 입은 " 바기나 덴타타 " 다.

 

영화 << 괴물 >> 에서 괴물이 " 살아 숨쉬는 유기체적 기괴한 자궁 " 이라면 철교 다리 내부는 " 내부가 텅빈 공간空間으로써 " 작동한다. 이 영화는 온갖 장르를 끌여들여서 다양한 메시지를 섞지만 신기하게도 겉도는 느낌이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봉준호'라는 감독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조율 감각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감독들이 흥행성과 작품성이 모두 충족되기를 바라지만 흥행성과 작품성 모두를 성공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군다나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오락 영화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봉준호는 보란듯이 성공했다. 송강호는 딸을 잃은 대신 아들을 얻는다. 다시 말해서 가족을 잃는 대신 식구를 얻었다. 한 핏줄에서 태어난 가족은 아니지만 한집에서 끼니를 함께 나눈다는 점에서 그들은 이제 식구'다.


 

 

 

이 영화는 모성에 의탁하지 않은 채    영화 속에서 강두 아버지와 강두 모두 부인이 없다       식구라는 대안 가족'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급진성을 확보한, 기똥차게 잘 만든 좌파 오락 영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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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이래저래 < 밥 > 과 인연이 깊은 배우이다. " 먹방 " 연기의 달인은 하정우가 아니라 송강호'다. 그는 << 살인의 추억 >> 과 << 변호인 >> 에서도 " 밥의 철학 " 에 대해 말한다. 밥은 먹고 다니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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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3-1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준호의 가족-식구 분석 곰곰발님의 독특한 해석 재밌습니다. 허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봉준호의 모든 영화에서 반 서구열강 의식의 투영, 배제를 통한 결과 도출이, 큰 틀에서는 제 식구, 제 가족 챙기기 대결구도라고 보니까요. 대안가족은 항상 소외된 자들끼리만 만들어지죠. 대안가족을 긍정성으로 보시는 분도 있겠지만 제겐 그래서 봉준호 영화에 화해를 읽을 수는 없더군요. 물론 모두가 행복한 평화~ 극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재미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겠죠; 또한 모든 극은 갈등의 소산이며 그 해소는 창작자의 자유일테고, 봉준호의 좌파적 정치 자유, 권력에 대한 투쟁...부정할만 한 것은 아니지만 관객으로서 봉준호의 그런 도식과 인식에 저는 질려가고 있습니다..

매번 쓰신 글의 주 논점을 살짝 비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같아 죄송스럽긴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2 18:06   좋아요 0 | URL
뭐 영화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엄연히 수용자의 몫이니 생각이 다르다고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5000만 한국인이 모두 < 괴물 > 을 칭찬한다면 그것은 프로파간다 영화`가 되겠죠.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은 의외로 그 영화가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봉준호의 모든 영화에서 반서구열강 의식이 투영된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가 없군요. 반서구열광의식이라기보다는 쩨쩨한 수컷에 대한 비판으로 읽혀집니다. < 마더 > 에서도 미제국주의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 정신으로 보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 ㅎㅎㅎ < 살인의 추억 > 도 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보다는 자기 새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대한민국 찌질한 수컷에 대한 반성으로 읽힙니다.

AgalmA 2015-03-12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모든은 역시 조심히 써야해요...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마더...뺄 게 더 많네요ㅎ 봉준호씨에게 제게 기대만큼 쌓인 게 많았나 봅니다;

수다맨 2015-03-14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의 추억˝이 자기 새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찌질에 대한 수컷이란 해석이 재밌네요.
예전에 곰곰발님 쓰신 글이 생각나는데, 형사들(김상경, 송강호)이 미국에서 유전자 검사 결과만 목 빠지게 기다리죠. 여기서 곰곰발님이 미국은 아버지, 즉 대타자라고 정의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버지의 윤허(?!)만을 기다리는 무력한 아들에 다름 아니라고 쓰셨던 게 인상 깊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4 06:45   좋아요 0 | URL
네, 기억하시는군요.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안에서는 큰소리 치면서 밖에서 나가면 굽신거리는 못난 아비 ? 찌질한 수컷에 대한 분노 같은 게 느껴집니다. < 괴물 > 도 보면 국가`라는 찌질한 아버지는 백성`이라는 자식(변희봉 가족)을 돌보지 않잖아요. 그저 미국이라는 거대 남근 앞에서 굽신거리는 찌질한 아버지`죠. 결국은 사회적 약자들이 뭉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이죠.. 뭐.. 그런 내용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