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청춘이다

 

 

 

 

 

중동 순방 후, 대통령 총통 각하 님께서 청년 실업난'을 한방에 해결할 정책으로 중동 이주 정책을 들고 나오셨다. 각하가 전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 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말할 수 있도록). " 이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 니가 가라, 하와이 > 를 변주한 < 니가 가라, 중동 > 라는 반격이 시작됐다. 글 맛을 위해서 억지로 라임을 맞춰 랩 가사처럼 변형해서 " 니가 가라, 시~ 리아 " 로 고치자. 그러니까 시리아'는 중동을 대표하는 상징적 국가'인 셈이다. 오케이 ?  눈에 콩깍지가 쓰이면 애인이 코딱지를 파도 예뻐보이지만, 반대로 모든 게 못마땅하면 숨소리'조차 듣기 싫은 게 사람 마음이니 시리아 가라는 말이 곱게 들릴 리가 없단 말이야.  

 

하지만 저 멘트를 가슴을 활짝 펴고 아무리 곱게 받아들인다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 니가 가라, 하와이 > 와 < 니가 가라, 시리아 > 가 가지고 있는 말풍선의 공통된 서정'은 꼴보기 싫은 놈이 내게 명령을 한다는 점이다. 단박에 " 네가 뭔데 나한테 흥야항야하냐. 네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라고 해서 내가 너를 위해 일하고 절할 줄 알았냐 ? " 라는 반격이 튀어나온다. 영화 << 친구 >> 에서 장동건'은 왜 그토록 하와이 가는 것을 싫어했을까 ? 한국인이 꿈에 그리는 국민 휴양지가 하와이'가 아니었던가 ? 오죽했으면 경상도 변두리 두메산골에 부곡 하와이'라는 짝퉁이 건설되었을까. 한국인은 세계 3대 유명 휴양지 해변 이름은 몰라도 경상도 사투리 같은 와이키키'는 알고 있다. 와이키키, 바로 하와이에 있는 휴양지 해변 이름이다.

■ 흥야항야하다 : 흥이야항이야하다의 준말로 관계도 없는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여 이래라저래라 하다는 뜻의 동사'다. 오타가 아니다.

 

장동건은 평소에 하와이 가서 놀고 싶었지만 느닷없이 유오성이 가라고 하니깐 갑자기 가기 싫어진 것이다. 박근혜가 시리아 가라는 말에 청년들이 우럭도 아니면서 울컥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박근혜는 유오성이고 대한민국 청년은 장동건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 니가 가라, 시리아 ! " 다. 고운 말을 미운 말로 받아들이는 청년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동안 해온 짓에 대한 자업자득이다. 만약에 유오성이 똑똑한 놈이었다면 < 하와이 가라 > 라는 말 대신 < 니, 하와이 가면 내가 쫒아가서 죽여뿐다 ! > 라고 꾀를 부렸을 것이다. 아마도 장동건은 그날로 유오성 보란 듯이 하와이행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을까 ?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가 1970년대 오일쇼크'를 " 중동붐 " 으로 극복한 사례를 벤치마킹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각하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아니, 어쩌면 하나도 모르는 것 같다.

 

1970년대 대한민국이 중동 건설 사업에서 다른 경쟁업체들에 비해 유리했던 점은 한국 건설 노동자의 값싼 노동력 때문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한국 건설 노동자는 지금의 필리핀 가정부 같은 위치였을 것이다. 품삯이 싸서 입찰 단가를 후려칠 수 있었으니 고용주 입장에서는 한국 건설 노동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민간 부문 노동자 평균 임금은 400달러 수준이다. 여기에 실질 실업률은 15% 내외로 추정되고 있고 실업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자국인화 정책을 추진하여, 75%의 산업인력을 자국인화한다는 목표하에 자국인 고용 의무 비율을 상향 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대한민국 거리가 텅텅 빌 정도로 청년 노동자'를 중동에 보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까 ?   

 

박정희'가 이룩한 경제 정책 가운데 중요한 것이 바로 국제 인력 시장 ㅡ 정책'이다. 그 당시, 중동 건설 붐'이 불어서 웬만한 이웃 서민들은 중동 가서 외화벌이에 동참하고는 했다. 옛날 드라마 << 왕룽일가 >> 에서 배우 최주봉이 연기한 제비족 " 쿠웨이트 박 " 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동 건설 노동자'였기에 가능했다. 작열하는 중동의 태양 아래 머리가 뽀글뽀글해진 쿠웨이트박은 장바구니 든 아줌마를 유혹한다. " 예술 한번 할껴 ? " 월남 파병,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 따위도 국제 인력 시장 ㅡ 정책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쉽게 말해서 일일 노동자를 건설 현장에 파견하고 노동자가 받은 품삯에서 커미션 받아 챙기는 새벽 인력 사무소 역할이었다.  

해외 입양 정책도 그 연장선에 놓여 있었다. 해외 입양인의 글을 엮은 책 <<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 >> 은 입양 정책'이라는 근사한 휴머니즘 뒤에 감추어진 불편한 진실'을 고발한다. 대한민국의 해외 입양 정책은 " 아이를 위해서 가족을 찾는 것 " 이 아니라 " 가족을 위해서 아이를 찾는 것 " 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입양할 의사가 있는 가정이 입양 시 입양 재단에 아이 한 명당 지불해야 되는 수수료는 2만 5천 달러~ 3만 달러, 많게는 3만 5천 달러'가 지불된다. 이렇게 해서 입양 재단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한해 대략 1500만 달러'로 추산된다고 한다. 입양 정책으로 인하여 국가가 돈을 벌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시절, 좁은 땅덩어리에 자원은 없으니 먹고 살기 위해서 < 몸(목숨) > 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지만,  국제 인력 시장을 통한 외화벌이 정책'을 숭고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

내가 영화 << 국제 시장 >> 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유도 바로 그 대목'이다. 이 영화는 국민을 국제 인력 시장'으로 내몰았던 정책을 노스탤지어'라는 이름으로 찬양하고 있다. 그것은 찬양할 덕목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하고 반성해야 할 흑역사'이다. 그 정책을 박근혜 대통령 총통 각하 님께서도 공감한다는 데 절망감이 들었다. 쌀 떨어졌다며 돈 벌어오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술고래 아버지의 주사 같다. 여기저기서 쓴소리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대통령 총통 각하 님께서 그나마 중동을 다녀와서 다행이라고 했다. 아프리카에 갔다면 아프리카 가서 돈 벌어오라고 할 판이니 말이다. 일리있는 말이다. 부잣집 도련님은 유학 가기 위해 " 아메리카 " 로 떠나고, 가난한 청춘은 외화벌이를 위해 " 아프리카 "에 갈 판이다. 시바, 닝기미... 조또.

김난도는 청춘들에게 " 아프니깐 청춘 " 이라는 약을 팔더니 이제는 " 아프리카 청춘 " 이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천국과 지옥은 종이 한 장 차이. 누군가에게는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도 쇠창살 없는 유배지'가 될 수 있다. 코리아는 내가 지키마. 시리아는 네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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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3-22 1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흥야항야하냐... 요 말 입에 짝짝 붙는다. 뭔가 아햏햏스러운 게 태국말 같아서 맘에든다자주 써먹어야 겠다.

[그장소] 2015-03-22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3 09:58   좋아요 1 | URL
흥야항야 재미있는 표현이죠 ? ㅎㅎ

오쌩 2015-03-2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야항야 대박입니다.ㅎ써먹어야하지^^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3 09:58   좋아요 0 | URL
널리널리 퍼트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