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한글과 달아 문자와 서로 사맛디 아니한 세계
내가 사는 동네는 인천 남구 문학동이다(문학 야구장 근처).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부터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발터 벤야민처럼, 혹은 보들레르'처럼 동네 거리를 어슬렁거리면서 빈집을 구경하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아케이드에 관심을 가졌고 나는 폐허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 다르다. 이제부터, 나는 " 거리 - 산책자 " 가 되어 폐허가 된 빈집( 철거 대상 ) 을 구경할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뉴타운 리빌딩 지역 : 누군가가 재건축 동네'라고 말하는 대신 뉴타운 리빌딩'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랄은 풍년이구나, 했다. 뉴타운 리빌딩'이란 작명도 일종의 보그 병신체'다. 이곳은 현재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80년대 풍경이어서 이 대규모 재건축 풍경은 의아하다. 집 없는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은 8차선 도로가 가로놓여 있어서 같은 동네이지만 전혀 다른 동네처럼 보인다.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자면 : 맞은편 동네'가 사람이 살지 않는 철거 지역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사 온 지 이제 겨우 열흘 남짓이었으니 " 문학동 " 돌아가는 꼴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밤에 개를 끌고 산책을 다니면서 맞은편 문학동 : 행정 구역상 같은 동네이지만 8차선 도로'가 가르질러서 왕래는 거의 없는 동네다. 한배에서 낳지만 서로 배다른 사이처럼 지내는 형제처럼 을 흘깃 보았으나 이상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건물을 부순 흔적이 전혀 없었을 뿐더러 그 흔한 현수막( 불법 철거를 규탄한다 따위의 )이나 중장비를 구경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조용한 건넛마을'처럼 보였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것은 며칠이 지나서였다. 밤 산책을 나섰다가 이상한 풍경을 목격했다. 수천 가구가 살 법한, 규모가 꽤 큰 건넛마을'인데 불 켜진 집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주민을 본 적도 없었다. 궁금하여 건널목을 건너 동네 초입이 진입하니 그 동네는 재건축 지역으로 주민들은 모두 다른 동네로 이주 한 상태였다. 동네 전체가 빈집이 된 풍경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호기심이 발동할 수밖에 ! 겉은 번지르르했지만 속은 폐허인 동네. 시간 날 때마다 개를 끌고 다니며 빈집 탐험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밤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낮과 밤은 다른 것. 밤은 낮과는 달리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리라. 하지만 용기가 필요했다. 밤에 철거 지역을 어슬렁거린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깨진 창문 이론 " 을 적용하자면 창문이 깨진 건물은 수천에 이르렀으니, 이곳이 우범지대인 것은 확실하다. 내가 밤 산책에서 구비한 보호 장비'는 < 개 > 였다. 봉달 씨는 훌륭한 보디가드'다. " 사나운 이빨 " 보다 안전한 호신 도구는 없으니까. 나는 휴대용 랜턴에 의지해서 빈집에 잠입했다. 등골이 오싹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타자'가 야구를 배울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 공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 라고 한다. 150km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에 대한 공포를 지울수록 좋은 타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빈집 탐험가'가 갖추어야 할 태도도 마찬가지 아닐까 ? 내가 이 < 짓 > 을 하며 배워야 할 것은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차차 극복되었다. 하지만 진짜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내가 어느 빈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개가 평소와는 달리 힘없이 낑낑거리길래 랜턴을 켜자 창백한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신이었다. 그녀는 나를 의식하지 않은 채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바지에 똥을 쌀 정도로 무서웠으나 " 귀신과 사또의 서사 " 을 익히 알고 있던 나는 눈을 감지 않기로 했다. 눈을 감는 순간 죽는다. 이럴 때는 귀를 열어야 한다. 내가 말했다. " 누구냐, 넌...... 너의 눈은 메두사 언니처럼 카리스마 작렬하는 눈깔이나 그 눈빛에 처연함이 있어 나를 애달프게 하누나. 누이여, 당신의 슬픈 사연을 나에게 말해다오. " 궁시렁거리던 귀신은 내 말을 듣고는 서서히 다가왔다. 내가 말했다. " 나는 기록하는 자이오. 억울한 일이 있다면 말하시오. 내가 블로그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방문객 수가 꽤 많다오.
당신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필사즉생(必死卽生)하는 마음으로 필사 筆寫 하여 한마디도 놓지지 않고 전해드리리다. 피눈물 흘리지 마오, 나의 슬픈 누이여. " 내 말에 그녀는 애달게 울기 시작했다. 봉달 씨(리트리버 5년생)도 함께 울기 시작했다. 우, 우우우우. 슬픔의 하울링.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녀가 원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또 : 귀신 이야기에서 훌륭한 사또는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는 점에서 소통의 아이콘이다 가 아니었다. 그녀가 노린 것은 소통이 아니라 생간이었다. 그녀는 구미호였던 것이다. 그동안 내 간은 간땡이가 부어서 풍미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나는 순대 부속으로 나오는 간을 날마다 조공으로 바치겠다고 애원했으나 소용없었다. " 간은 생간'이 제맛이제 ! "
구미호는 내 가슴을 열어 간을 꺼내 먹었다. 그녀는 이미 간땡이가 부은 사내의 풍미를 아는 몸이 되었다. 그 무르익음을 가장 먼저 기뻐한 건 그녀였다. 내가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구미호와 귀신은 서로 다른 것이냐고 묻자, 구미호는 피칠갑을 한 주둥이로 이렇게 말했다. " 두 족속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지만 계통 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발생학적 유사성으로 보나 부분적 발생학적 유사성을 따지더라도 두 족속이 같다고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 " 고 말했다. 말이야 똥이야 ?! 단순하게 귀신과 구미호는 다르다, 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한여름에 늘어진 엿가락 모양으로 늘릴 필요가 있을까 ? 언제부터 이 나라말이 나랏말싸미 한글에 달아 문자와 서로 사맛디 아니하게 되었을까.
" 심쎈 아으 나지 말곡 말 잘헌 아으 나라 힘센 아이 낳지 말고 말 잘하는 아이 낳아라 " 라고는 하지만 말꼬리 늘려서 그럴싸한 지식인 흉내를 내는 게 꼴도 보기 싫었다. 애초부터 문학동에 사는 구미호는 주민과의 소통보다는 쇠간(소간), 쇠간보다는 사람의 생간을 원했다. 내 끈질긴 추궁에 구미호는 두리뭉실 대답했다. " 다른 것을 같다고 말할 수 없다. " 아, 했다. 죽어가는 마당에 우, 한들 무엇하리. 사또와 구미호는 서로 궁합이 맞는 훌륭한 짝패가 아니다.
덧대기
간(肝) 하면 떠오르는 아이콘은 차두리와 토끼'다. 차두리는 웃자고 한 소리이니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자. 토끼'는 사람뿐만 아니라 들짐승이라면 모두 좋아한다. 하지만 토끼 고기를 차지하는 부류는 먹이사슬 구조에서 상층부를 차지하는 무리'다. 동물나라'에서 사자는 토끼 고기'를 독점한다. 사자가 없다면 늑대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만약에 정글에 사자와 늑대마저 없다라고 가정한다면 여우나 삵이 토끼의 간을 차지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우마저 없다면 ?! 그때는 토끼가 토끼를 잡아먹는다. 누구나 다 권력의 독점을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이 누리는 권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토끼는 약한 존재가 아니라 호랑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약한 존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