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골방생활자'다
대한민국에서 << 군대 >> 는 사람 되어서 나오는 곳이다. 그렇다면 군대 가기 전에는 짐승이었다는 소리일까 ? 한국인이 곰의 후예'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면 논리 비약이 아닐까 싶다 " 정신 나간 놈 " 은 군대 가면 " 잃어버린 정신 " 을 찾을 수 있다. 쓸데없이 전봇대에 모든 것 다 용서하마. 엄마가 몸져누웠다. 하루하루 눈물로 베개를 적신다, 이눔아 ! - 라는 전단지를 붙일 필요 없어요. 이처럼 정신 나간 놈을 정신 차린 놈으로 개조하니, 군대는 분실물 신고 센터인 셈이다. " 알려드립니다, 알려드립니다. 캐비닛 플랫 B NO. 138 관물함에 당신이 잃어버린 정신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 " 삐리릿. 웃기는 짬뽕, 지랄은 풍년. 군대에서 축구공 찬 이야기보다 군대 가야 사람 된다는 소리'가 더 짜증난다.
군대 무용론을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한민국은 분단 국가 이전에 휴전국이니까. 종전(終戰)이 아닌 교전(交戰) 중 휴전(休戰)이니 군대 무용론'은 위험하다. 전쟁(戰)이라는 무서운 단어 앞에 낭만적인 휴(休)가 붙어 있으니, 이것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무기( 戈 창 과 ) 들고 싸우는 전쟁터가 있는가 하면 한켠에서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놀고 있는 장면(休)도 연출된다. 대한민국은 교전인 듯 교전 아닌 교전국이요, 휴전인 듯 휴전 아닌 휴전국이다. 안다, 안다고. 누가 그걸 모르냐고 !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정신 나간 놈 > 이 군대를 간다고 < 정신 차린 놈 > 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앙 간증을 믿지 않는다. << 신앙 간증 >> 은 정신 나간 놈이 신을 만나 잃어버린 정신을 찾는다는 서사'가 골격이다. 헌 사람이 새사람이 되었다는 소리인데, 문제는 < 우리 아이가 이렇게 변했어요 > 가 아니라 기간이다. 누구나 다 새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 결심의 지속 " 이 문제'다. 삼 일도 못 버티는 게 바로 인간의 정신'인데, 무슨 수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새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사람은 본성에 충실하다. 그렇기에 근성이 무서운 것이다. " 딱 한 잔 ! " 과 " 딱 한 대 ! " 가 금주가와 금연가의 딱딱한 결심을 한순간에 변두리 횟집 수족관 속 개불처럼 헐렁하게 만든다. 결심은 길고 지루하며 고통스럽지만 결심을 허무는, 다시 본성으로 되돌아오는 근성은 짧고 쏴아아아~ 하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소주 한 잔의 맛과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스모크한 불맛이 모든 것을 원상태로 되돌린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야 사람이 된다는 말도 거짓말에 가깝다. 법 없이도 살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법 없이도 살 만한 제도가 법 없이도 살 만한 사람을 만들 뿐이다. 내가 신경숙 소설을 시간 날 때마다 까대는 이유는 신경숙 소설 속 인물은 법 없이는 살 수 없는 잘못된 제도 앞에서 법 없이도 살 만한 사람'이 등장한다는 데 있다. 제도적 모순은 외면한 채, 혼자서 착한 척을 한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다. 선량한 시민은 없다. 보스니아 내전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보스나이 내전 피해자의 증언에 의하면 엄마가 보는 앞에서 딸이 강간 당하고, 딸이 보는 앞에서 엄마가 윤간을 당했다고 한다.
가해자는 이웃이었다. 그들은 보스니아 내전이 벌어지기 전에는 교수였고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도덕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유리잔인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당신은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정신 나간 놈'이 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을 반전이라고 해야 하나 ? 당신은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나간 놈이 된 것이다. 정신은 방구석 골방생활자'이다. 잘.... 안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