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말의 장관 :

 

 

 

                                                                                                      여럿이 모여서 속담으로 말 잇기 놀이'를 하면 돌고 돌아 열 순은 돌릴 수 있다. 교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도 속담 열 개 정도 암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시구(詩句)로 말 잇기 놀이를 하면 첫 순부터 막힌다. 나름 교양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라 해도 시 전문은 고사하고 시구 한 문장 암기하는 이도 보기 힘들다. 이상하다, 어차피 짧은 속담 한 문장과 시구 한 문장은 잠언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을 파고들면 속담과 시는 전혀 다른 족속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속담은 "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해서 스무 네 글자 " 를 만들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속담은 문자로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문맹 사회에서 저잣거리 입말로 다듬어진 것이다. 그것은 500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는 동안 퇴고에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결과로 군더더기가 삭제되어 압축미가 일품이다. 속담을 보면 쓸데없는 품사가 붙어있지 않다. 또한 말과 말을 연결할 때 발음상 충돌이 일어나는 현상을 최대한 피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까 간장 공장 공장장 따위의 충돌 현상이 없다는 것이다. 간결하며 외우기 쉽고 발음하기에도 편하다. 그것이 바로 속담이라는 입말(구술성)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반면 시는 文章의 형식(문자성)을 중요시한다. 기표와 기의, 행과 행 사이에 보이지 않는 행간도 읽어내야 하는  내공을 길러야 비로소 시를 이해할 수 있다(속담을 이해하는 데에는 문해력이 필요 없지만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높은 문해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속담의 문학적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속담은 문학보다 뛰어난 문학성을 갖췄다. 매해 쏟아지는 글쓰기 작법서'가 요령이랍시고 알려주는 팁(좋은 글을 쓰는 요령)은 대부분 속담이 5000년 동안 퇴고에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여 완성한 문장 구성과 일맥상통한다. 문장이 길어지면 지저분하다는 지적은 작법서의 단골 레퍼토리가 아니었던가 ! 속담은 쓸데없는 접속사나 품사를 남발하지 않는다. 속담은 저잣거리 입말의 형태로써 문자로 기록되어 다음 세대에 전해지는 것과는 달리 구전에 의하여 전해지다 보니 단순하고 명료할 필요가 있었다. 만연체로 쓰여진 속담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다. 또한 속담은 문자 이전부터 존재했던 말투여서 번역투를 대표하는 문장으로 뽑는" ~의, 적, 성 " 이 없다. 이래저래 속담이 오염되지 않은 문장의 모범인 셈이다. 하지만 속담이 좋은 문장의 모범이라고 해서 좋은 문학의 형태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혹은 소설)가 반드시 좋은 시(혹은 소설)라고 할 수는 없다. 문학과 철학은 본질적으로 下學이 아니라 上學의 영역이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독자는 철학 - 책'이 어렵다고 투덜대는 인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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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3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4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7-05-24 0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저는 요즈음 나오는 시와 소설을 읽기가 어렵더군요 ㅎㅎㅎ 그래서 요즘은 독서와도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가독성이 높은 책이면 신파나 감상의 늪에 빠진 경우가 많으며, 가독성이 낮은 책이면 저자가 자의식이 너무 비만해서 소통의 여지가 협소해 보이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5-24 14:03   좋아요 1 | URL
어디에서 정체기는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토록 영화를 좋아했는데.. 이젠 좀 시큰둥해지더라고요...
 

 

 

 

 

덤벼라, 문빠 !

 

  

                                                                                                       한때 때묻지 않은 시골 여자를 대표하는 이름이 바로 " 순이 " 였다.  순이는 시골에 거주하면서 남성보다 학력이 낮고 세상물정 모르는, 하지만 마음 착한 시골 처녀를 상징했다. 순이는...... 코리안 뮤즈'였다.

불알후드의 성적 판타지가 투영된 여성상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의 여인이라기보다는 다루기 쉬운 여자에 대한 상상에 가까웠다. 순이라는 고유명사가 보통명사化를 초월하여 접미사(-순이)로 쓰이기 시작한 때는 시골 여성이 도시로 진출하는 때와 맞물린다. 공순이는 그렇게 해서 탄생한 신조어'였다. 공순이가 " 공장 + 순이 " 가 합성된 합성어로 시골에서 도시로 생활 터전을 옮긴 도시 노동자(여성)에 대한 경멸을 담고 있다면,  빠순이는 " 오빠 + 순이 " 를 합성한 단어로 열 일 제쳐 두고 할 일 없이 운동선수나 연애인'을 쫓아다니는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용어'다.

또한 빠순이는 고급 술집인 서양식 술집(bar)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 - 빠 > 가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 노빠 " 가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을 조롱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으나 그들이 노빠라는 월계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커밍아웃하며 전면에 등장하자 정치 현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노빠는 존재하지만 노빠보다 열 배는 극성스러운1) 박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박근혜를 찍겠다는 박사모는 있지만 박빠는 없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 

​한경오 비판은 바로 그 질문과 맞물리게 된다. 왜냐하면 노빠라는 경멸적 프레임은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경오도 즐겨 사용했던 프레임이었던 반면에 이빠박빠 프레임은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경오도 사용하지 않은 프레임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 - 빠(순이) " 가 되거나 " - 사모(님) " 이 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의문을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여기에 한겨레 21 기자가 페이스북에 < 덤벼라 문빠 > 라는 문장을 남기자 논란은 일빠만빠 확산되었다. 덤벼라 문빠 논란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것은 노무현의 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습니다. "

지금까지 진보 진영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부류는 뉴스 소비자가 아니라 뉴스 생산자'였지만 이제는 이 권력이 시민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정보 접근성, 팩트 파인딩과 체크 따위는 언론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지만 이제는 뉴스 소비자인 시민 사회에서도 쉽게 검증할 수 있는 항목이 되었다. 좋은 예가 오마이뉴스 김정숙 씨 호칭 논란이 대표적이다. 오마이뉴스가 김정숙 여사라고 쓰지 않고 김씨'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호칭에 대한 비난이 거셌는데 오마이뉴스 측은 오랫동안 유지한 신문사 편집 방침'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합리화했지만 곧바로 거짓으로 판명났다.

시민들이 김윤옥 여사라는 호칭을 남발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증거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한경오가 착각하고 있는 지점은 언론 권력이 시민 사회로 넘어가고 있는 과도기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빠가 한경오를 비판하는 부분은 팩트라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다. 이제 시민은 더이상, 그들의 계몽주의 아래에서 움직이는 학력 낮고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순이'가 아니다. 한겨레 안수찬 기자가 호기롭게 덤벼라, 문빠 _ 라고 말하면 주눅드는 시대는 지났다. 시대가 변했다. " 깡순이 " 는 있지만 " 우리 순이 " 는 없다

 

 

 

 

 





 

​                                  

 

1) 노빠는 적어도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가 나라를 팔아먹을 때에는 지지를 철회할 정도의 분별력은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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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5-2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성된 글응 아니어서 다듬ㅇㅇ 어야 할 글이나 쓰던 글이 날아갔던 악몽 때문에 일단 저장부터 하고 본다..

2017-05-22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2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3 1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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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4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4 16: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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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독서중독 - 낮에는 양계장 김씨로, 밤에는 글쓰는 김씨로 살아가는 독서중독자의 즐거운 기록
김우태 지음 / 더블: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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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독서 담론  :

 

 

 

 

 

 

 

 

이 약 한 번, 좝셔봐봐

 

 

 

 

                                                                                                          일요일 정오, 도서관에 갔다. 빌린 책을 반납만 하고 나오려다 마음이 허전하여 주마간산으로 서고에 갇힌 책을 훑었다. 책등만 구경하고 나오리라. 아, 등짝만 봐도 훈훈한 마음. 그때 눈에 띠는 책을 발견했다. << 소소하게, 독서 중독 >> .  당일, 모 알라디너가 이 책에 대해 언급한 글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연이 있나. 호기심이 생겨서 서서 읽기 시작했다. 1, 3, 5, 7, 9.    띄엄띄엄 열 꼭지 정도 읽다가 책을 덮었다. 저자는 독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하지만 이 책은 독서를 빙자한 자기계발서1)에 불과했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땡중 꼴이다. 그가 독서를 통해서 감탄하는 지점은 " 지적 탐구 " 가 아니라 " 책을 팔아서 성공한 사람 " 에 대한 선망이었다. 독서를 빙자한 자기계발서가 위험한 것은 독서 행위를 만병통치약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이런 상투적 목적어는 저잣거리에서 이 약 한 번 좝쉐봐봐 _ 라고 외치는 장돌뱅이 약장수 멘트와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은 항상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내뱉는다. 독서가 내 삶을 변화시켰어요 !                                    정말 그럴까 ?  삶에 있어서 변곡점이 되는 요소는 독서 말고도 많다. 유감스러운 지적이지만, 책(독서 행위)는 당신의 삶에 있어서 많은 부분, 긍정적 변화(혹은 부정적 변화)를 주지 못한다. 설령, 변화를 주었다고 한들 그 효율성과 효용성은 미미할 뿐이다. 한의학에 의하면  :  사상 체질에 따라 약효가 제각각이듯이 독서 행위가 사람에게 미치는 효능도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게는 독서보다는 여행이, 운동이, 음악이, 덕질 생활이 힐링과 소울로 작용한다.  사막을 경험한 사람은 쉽게 폐허에 대해 말하지 않고, 바다를 본 사람을 강을 보고 경탄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독서에 내공이 깊은 사람은 쉽게 " 독서 중독 " 운운하며 독서 예찬을 하지 않는다. 저자는 책을 통해 얻을 게 많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허세와 엄살이 심하고 지식의 깊이가 얕다. 김병완이나 이지성 같은 자기계발서 위주의 저자를 볼 때마다 깨닫게 되는 것이지만 그들은 지식을 사랑한다기보다는 지식을 상품화해서 얻을 수 있는 이윤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것이 이런 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다 ■ 

 

 

 

 

 

 

 

 

 

 

 

 

​                              

 

1)      자기계발서의 성서이자 수학정석이며 성문영어'라 할 만한 << 시크릿 >> 에서 주장하는 긍정적인 생각과 간절한 마음이 만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주문은 허경영이 내 눈을 봐라 보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리와 다를 것이 없다. 자기계발서는 팔 할이 쓰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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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2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2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3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4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nne 2017-05-24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초 기본 종합 다 지금도 나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5-24 14:17   좋아요 0 | URL
정말 이 양반 책 한 권 써서 떼돈 버는군요..

sonne 2017-05-2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양반 돌아가신 거 아시죠? 송성문씨요.

양손잡이 2017-06-11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다 읽었습니다. 1장 책과 독서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공감이 많이 돼서 재밌었습니다. 사람마다 책읽기 에피소드는 비슷하면서도 달라서 항상 재밌습니다. 이런 류의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 뒤로는 재미없습니다. 전형적인 독서론의 나열이고 저자가 문학류를 기피하기에 피해야 하는 것도 소개하더군요.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 이 책이랑 비슷한 느낌이네요.
알라딘 서재에서도 평이 상당히 좋던데 아마 에피소드에 대한 공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당.

곰곰생각하는발 2017-06-11 21:50   좋아요 0 | URL
저는 이런 글을 왜 굳이 책을 통해 읽어야 하나, 그런 의문이 듭니다. 이런 내용은 그냥 블로그 글감으로는 좋은데 책이라는 범위에는 못 미치지 싶습니다.

홍대리.. 이런 독서론을 빙자한 자기계발서의 특징은 어릴 때 내가 책을 얼마나 안 읽는 놈인가를 구구절절하게 읍소하는데 이 책도 그런 전략을 구사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읽으나 마나한 책이었습니다..ㅎㅎㅎ
 

 

 

 

 

 

 

 

 

 

 

 

 

 

 

​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결국에는 고두심 :

 

 

 

로보트 특권 븨

    

 

 

                                                                                                        옛날에는 태권 븨와 마징가 즤'가 싸우면 누구 주먹이 더 세냐 _ 를 놓고 치열한 토론을 펼치곤 했다. < 날아랏, 로봇팔 ! > 이라는 기능이 어느 로보트의 옵션인지 지금은 잊어버렸으나 둘 다 용호쌍박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븨냐 즤냐, 그것이 문제였던 시절.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로보트는 특권은 있으나 책임은 없는 부류였다. 즉, 면책특권자'였던 것이다. 초고층 빌딩이 우후죽순 자란 도시의 대밭을 쑥밭으로 만들어도 그 어느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븨와 즤는 서로 힘자랑하느라 미친 놈처럼 싸웠다. 태권 븨가 주먹으로 63빌딩의 허리를 부러뜨리면 마징가 즤는 경쟁심이 발동하여 월드 타워의 불알을 냅다 걷어차는 것이다.  이렇듯, 도시의 랜드마크와 마천루는 그들의 과시용으로 박살이 나기 일쑤다. 만약에 로보트에게 주어진 면책특권을 박탈한다면 그들은 예전처럼 박력있게 싸우지는 못할 것이다.

 


이봐, 태권 븨 !  조심하게나.  청계 고가도로를 박살냈다가는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공공 기물 파괴로 기소되어 최소 3년형을 받게 될 거라고 !         

 

 면책 특권을 누리는 자와 비슷한 특권을 누리는 자'가 치외법권자'다. 치외 법권은 다른 나라의 영토 안에 있으면서도 그 나라 국내법은 적용받지 않는 특권'이다.  영화 << 다이하드 >> 는 일본인 소유인 " 나카토미 빌딩 " 에서 벌어지는 액션 활극이지만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외법권자가 면책 특권을 이용하여 제3국에서 힘자랑하는 영화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인 소유인 나카토미 빌딩'이라는 공간은 일본 영토에 대한 직유이고 그 영토 안에서 싸우는 맥클레인 형사(브루스 윌리스)는 치외 법권을 이용하여 마음껏 면책 특권을 누리는 미국인에 대한 은유이다. 그는 한 발만 쏴도 될 것을 백 발 쏜다.

​< 그 > 는 일본 영토 내 자산이 파괴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내 나라가 아니요, 내 재산이 아니니까. 그는 식민지로 파견된 제국의 경찰 공무원이다. 맥클레인 형사와 싸우는 악당 - 들도 마찬가지'다(유럽 - 연합'으로 구성된 악당 또한 한 발만 쏴도 될 것을 백 발 쏜다).   그것은 마치 한국을 두고 미국과 소련이 개입했던 제3자 개입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런 식의 나몰랑 전투는 식민지 제국주의(자)의 특징이다. 미국은 언제나 타국을 전쟁터로 삼았지 자국을 전쟁터로 삼은 적이 없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산 네이팜탄이 비처럼 쏟아진 이유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베트남이라는 공간이 자국 영토가 아니라는 데 있다.

만약에 베트남이 자국 영토였다면 발포 명령권자는 미사일 한 방을 발사하는 데 있어서 고심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나중에는 고두심에게 물어봤을 것이다. 무식하게 말해서    :    로보트가 가슴에서 미사일을 쏘고 팔이 날아다니며 눈에서 광선을 쏘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면 박근혜도 로보트다,  눈에서 레이저를 쏘니까또한 혼밥을 즐기다 보니 어느 누구도 그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어쩌면 그는 몰래 식판에 담긴 음식을 변기통에 버리고서는 거울방으로 들어가 꽁무니에서 전깃줄 코드를 길게 뽑아 전원을 연결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의여)인 503호'는 태권 븨처럼, 마징가 븨처럼, 맥클레인처럼 땀 흘려 이룩한 대밭을 죄책감 없이 쑥밭으로 만든다. 후회는 없다. 그것은 내것이 아니니깐 말이다. 박근혜는 제국에서 파견된 식민지 경찰이다. 그에게 대한민국은 조국이라기보다는 식민지1)로, 면책 특권과 치외 법권을 사용하여 이권 사업에 뛰어든 장사꾼에 불과하다. 제국주의자에게 있어서 지나친 남획으로 인하여 식민지 자원이 고갈되는 문제는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1) 조국을 식민지로 인식하는 적반하장은 아버지인 박정희에게서 배운 기술이다.  조선인이었던 박정희는 일본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제국의 경찰이 된다. 박근혜도 마찬가지'다. 부녀는 식민지로 파견된 제국 경찰의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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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5-21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퍼로봇대전 게임 시리즈에서는 로봇과 파일럿의 스펙 양쪽이 다 중요했습니다. 철(의여)인 503호의 경우에도 역시 그랬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5-21 20:16   좋아요 0 | URL
철인503호의 파일럿은 최순실이겠죠 ?

syo 2017-05-21 20:2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그리고 요정이라는 개념도 있었습니다. 파일럿처럼 능력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정신커맨드˝라고 해서 특수 기술을 구사할 수 있게 해주는 보조캐릭터였지요. 이를테면 ˝개헌˝이랄지, ˝반공˝이나 ˝계엄˝이랄지.....

곰곰생각하는발 2017-05-21 20:25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철인503호의 커맨더는 최태민이겠죠 ? 아니구나,,,,,, 청문회에서 모릅니다, 라고 말했던 그 기춘 영감탱이겠군요..

syo 2017-05-21 20:28   좋아요 0 | URL
저는 아버지를 생각했지만, 곰발님의 말씀도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5-21 21:03   좋아요 0 | URL
아, 박정희가 있었군요.. 항간에는 아비와 딸이 사이가 안 좋았다는 설도 있더군요..

2017-05-22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도 속지 않는 것을 걔는 항상 속는다   :

 

 

 

 

 

 

 

 

 

봉달씨와 문재인

 

 

 

 

 

 

 

 

                                                                                          봉달씨(골든 리트리버, 7살)가 혈기왕성했던 2살 무렵, 가족들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마당에서 흙길 밟던 놈이 안방으로 난입한 적이 있다. " 버, 버버버버버벌레다 ! "  덜덜 떠는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벽이었다.

벽에는 성인 엄지손가락만한 타란툴라가 붙어 있었다. 이웃집에서 애완동물로 키우던 놈이 우리를 빠져나와 우리에게 온 모양이었다. 우리에게 오지 말고 우리로 돌아가                       가족들이 포장마차에서 파는 오돌뼈처럼 오돌오돌 떨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봉달씨가 타란툴라를 냅다 삼킨 것이다. 자기 깐에는 위험에 빠진 가족을 지키겠다는 심산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란툴라를 삼킨 개는 돌발 변수'였다.  어 ?! 어어.. 삼키면 안되는데 !  짧은 침묵이 흘렀다. 5초, 4초, 3초, 2초, 1초...... 뽜이아 ~                 봉달씨가 괴로운 듯 머리를 휘젓더니 입에서 거미를 뱉어냈다.

왕거미가 입안에서 개를 문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몸에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외상형 스트레스 장애는 남았던 모양이다. 타란툴라 난입 사건 이후, 주인이 벌레라는 말을 입에서 꺼내는 순간 봉달씨는 털을 곧추세우고는 벽을 쳐다본다 (가끔은 흥분이 도를 넘을 때가 있어서 민망하게도 고추를 세우는 일도 있었다).  그때의, 입안에서 알싸하게 느껴졌던, 고통이 떠오르는 듯 !  어흥, 삐뚤어질 테다. 나와라, 시밤바들아.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은 심각한 표정으로 봉달씨에게 " 벌레, 어딨어 ? " 라고 묻고는 이내 웃을 준비를 하느라 입을 씰룩거린다. 

그것도 모른 채 봉달씨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집안 구석구석, 벽을 훑는다.  지난해,  탄핵 정국이 지속되자 봉달씨에게 벌레와 박근혜는 동일어'가 되었다.  티븨에 박근혜가 나올 때마다 " 벌레 같* ** " 라고 습관처럼 내뱉었더니, 텔레비전에 박근혜가 나오면 털을 곤두세우며 안절부절 못한다.   증오의 언어를 가르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개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짐승은 언어 자체보다는 그 언어를 내뱉는 주인의 감정을 읽는데 능수능란하다.  5년 전, 봉달씨가 체득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두려움이 깃든 감정과 생강보다 고약한 통증이었으리라.

이제 7살이 된 봉달씨는 학습능력이 향상되어 사람 말귀를 귀신 같이 알아듣는 놈이 되었다.  주인이 개줄을 손에 쥐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개줄은 곧 산책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는 교묘한 방법으로 봉달씨를 골탕먹인다. 덩치가 크다 보니 방에서 꽃길 걷겠다는 개를 내쫓을 때에는 완력보다는 개줄이 효과적이다. 나는 개줄을 손에 쥔 채 트렁크 팬티를 걸친 엉덩이를 흔들며 소리친다. 봉달씨, 우리 신나게 흙길 한 번 달려봅시다아아아 !              농부의 모자를 벗겨내는 데에는 사나운 바람보다는 뜨거운 태양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봉달씨는 개줄을 보고도 반응하지 않았다. 산책에 필요한 준비물은 비단 개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트렁크 팬티만 입고 산책을 나가는 주인은 없을 테니까. 봉달씨는 주인이 웃옷 입고, 바지 입고, 양말 신고, 개줄 잡을 때 비로소 꼬리를 흔들며 거실로 나온다. 주인양반, 우리 진짜루 흙길 한 번 신나게 달려봅시다아아아아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절차를 무시한 행위는 개도 거들떠도 안본다는 사실을 !  그러니까 보통의 상식이란 절차를 바르게 지킬 때 통한다. 트렁크 팬티만 입은 채 개줄을 흔드는 것은 절차를 무시한 몰상식인 것이다.

봉달씨가 터득한 것은 개줄이 곧 산책을 의미한다는 것이 아니라 산책을 할 때 지켜야 할 순서, 과정, 절차'였던 것이다. 내가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통해서 절실히 깨달은 것은 " 상식(정상)과 절차(과정)의 아름다움 " 이다. 그가 식판을 들고 줄을 서거나 사인을 해달라는 아이를 기다려주는 행위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보통의 것으로 상식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  문재인이 실천한 < 상식 > 을 언론이 < 파격 > 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 그동안 박근혜가 실천한 < 몰상식 > 이 < 상식 > 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었던 개 같은 시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결국 민주주의 사회란 절차와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과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절차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불법이며 보기 흉하다. 모든 법이 절차법에 속하는 이유이다. 박근혜가 저지른 짓은 트렁크 팬티만 입은 채 개줄을 흔드는 주인의 몰골이다. 그게 형광등 백 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의 정체'다. 개도 속지 않는 것을 어떤 인간은 항상 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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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05-20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 명문이구나! 감탄하고 갑니다. 비로소 절차와 상식이 통하는 시대가 될려나요? 조국, 김상조와 더불어 서울지검장에 윤석렬 임명하는거 보고 속이 다 후련해지더군요. 앞으로의 인사도 기대만발입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05-20 16:02   좋아요 1 | URL
다른 나라였으면 상식이 되었을 것을 파격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문재인 디스가 아닙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썩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문재인의 열흘을 통해서 ˝ 보통의 상식 ˝ 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마립간 2017-05-22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용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보수주의의) 한 사람이지만, 예외를 긍정하는 사건도 있ㅅ브니다.

절차를 중요시하지 않으면서도 긍정적인 사건으로, 1929년 ‘광주학생 항일운동‘을 들 수 있겠군요,

여성들이 보기에는 여학생을 놓고 조선의 남학생과 일본의 남학생의 가부장제에 입각한 패권주의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곰곰생각하는발 2017-05-22 21:18   좋아요 0 | URL
블랙스완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