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말의 장관 :
여럿이 모여서 속담으로 말 잇기 놀이'를 하면 돌고 돌아 열 순은 돌릴 수 있다. 교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도 속담 열 개 정도 암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시구(詩句)로 말 잇기 놀이를 하면 첫 순부터 막힌다. 나름 교양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라 해도 시 전문은 고사하고 시구 한 문장 암기하는 이도 보기 힘들다. 이상하다, 어차피 짧은 속담 한 문장과 시구 한 문장은 잠언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을 파고들면 속담과 시는 전혀 다른 족속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속담은 "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해서 스무 네 글자 " 를 만들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속담은 문자로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문맹 사회에서 저잣거리 입말로 다듬어진 것이다. 그것은 500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는 동안 퇴고에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결과로 군더더기가 삭제되어 압축미가 일품이다. 속담을 보면 쓸데없는 품사가 붙어있지 않다. 또한 말과 말을 연결할 때 발음상 충돌이 일어나는 현상을 최대한 피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까 간장 공장 공장장 따위의 충돌 현상이 없다는 것이다. 간결하며 외우기 쉽고 발음하기에도 편하다. 그것이 바로 속담이라는 입말(구술성)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반면 시는 文章의 형식(문자성)을 중요시한다. 기표와 기의, 행과 행 사이에 보이지 않는 행간도 읽어내야 하는 내공을 길러야 비로소 시를 이해할 수 있다(속담을 이해하는 데에는 문해력이 필요 없지만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높은 문해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속담의 문학적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속담은 문학보다 뛰어난 문학성을 갖췄다. 매해 쏟아지는 글쓰기 작법서'가 요령이랍시고 알려주는 팁(좋은 글을 쓰는 요령)은 대부분 속담이 5000년 동안 퇴고에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여 완성한 문장 구성과 일맥상통한다. 문장이 길어지면 지저분하다는 지적은 작법서의 단골 레퍼토리가 아니었던가 ! 속담은 쓸데없는 접속사나 품사를 남발하지 않는다. 속담은 저잣거리 입말의 형태로써 문자로 기록되어 다음 세대에 전해지는 것과는 달리 구전에 의하여 전해지다 보니 단순하고 명료할 필요가 있었다. 만연체로 쓰여진 속담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다. 또한 속담은 문자 이전부터 존재했던 말투여서 번역투를 대표하는 문장으로 뽑는" ~의, 적, 성 " 이 없다. 이래저래 속담이 오염되지 않은 문장의 모범인 셈이다. 하지만 속담이 좋은 문장의 모범이라고 해서 좋은 문학의 형태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혹은 소설)가 반드시 좋은 시(혹은 소설)라고 할 수는 없다. 문학과 철학은 본질적으로 下學이 아니라 上學의 영역이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독자는 철학 - 책'이 어렵다고 투덜대는 인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