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벼라, 문빠 !
한때 때묻지 않은 시골 여자를 대표하는 이름이 바로 " 순이 " 였다. 순이는 시골에 거주하면서 남성보다 학력이 낮고 세상물정 모르는, 하지만 마음 착한 시골 처녀를 상징했다. 순이는...... 코리안 뮤즈'였다.
불알후드의 성적 판타지가 투영된 여성상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의 여인이라기보다는 다루기 쉬운 여자에 대한 상상에 가까웠다. 순이라는 고유명사가 보통명사化를 초월하여 접미사(-순이)로 쓰이기 시작한 때는 시골 여성이 도시로 진출하는 때와 맞물린다. 공순이는 그렇게 해서 탄생한 신조어'였다. 공순이가 " 공장 + 순이 " 가 합성된 합성어로 시골에서 도시로 생활 터전을 옮긴 도시 노동자(여성)에 대한 경멸을 담고 있다면, 빠순이는 " 오빠 + 순이 " 를 합성한 단어로 열 일 제쳐 두고 할 일 없이 운동선수나 연애인'을 쫓아다니는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용어'다.
또한 빠순이는 고급 술집인 서양식 술집(bar)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 - 빠 > 가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 노빠 " 가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을 조롱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으나 그들이 노빠라는 월계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커밍아웃하며 전면에 등장하자 정치 현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노빠는 존재하지만 노빠보다 열 배는 극성스러운1) 박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박근혜를 찍겠다는 박사모는 있지만 박빠는 없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
한경오 비판은 바로 그 질문과 맞물리게 된다. 왜냐하면 노빠라는 경멸적 프레임은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경오도 즐겨 사용했던 프레임이었던 반면에 이빠박빠 프레임은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경오도 사용하지 않은 프레임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 - 빠(순이) " 가 되거나 " - 사모(님) " 이 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의문을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여기에 한겨레 21 기자가 페이스북에 < 덤벼라 문빠 > 라는 문장을 남기자 논란은 일빠만빠 확산되었다. 덤벼라 문빠 논란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것은 노무현의 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습니다. "
지금까지 진보 진영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부류는 뉴스 소비자가 아니라 뉴스 생산자'였지만 이제는 이 권력이 시민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정보 접근성, 팩트 파인딩과 체크 따위는 언론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지만 이제는 뉴스 소비자인 시민 사회에서도 쉽게 검증할 수 있는 항목이 되었다. 좋은 예가 오마이뉴스 김정숙 씨 호칭 논란이 대표적이다. 오마이뉴스가 김정숙 여사라고 쓰지 않고 김씨'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호칭에 대한 비난이 거셌는데 오마이뉴스 측은 오랫동안 유지한 신문사 편집 방침'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합리화했지만 곧바로 거짓으로 판명났다.
시민들이 김윤옥 여사라는 호칭을 남발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증거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한경오가 착각하고 있는 지점은 언론 권력이 시민 사회로 넘어가고 있는 과도기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빠가 한경오를 비판하는 부분은 팩트라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다. 이제 시민은 더이상, 그들의 계몽주의 아래에서 움직이는 학력 낮고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순이'가 아니다. 한겨레 안수찬 기자가 호기롭게 덤벼라, 문빠 _ 라고 말하면 주눅드는 시대는 지났다. 시대가 변했다. " 깡순이 " 는 있지만 " 우리 순이 " 는 없다 ■
1) 노빠는 적어도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가 나라를 팔아먹을 때에는 지지를 철회할 정도의 분별력은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