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속지 않는 것을 걔는 항상 속는다 :
봉달씨와 문재인
봉달씨(골든 리트리버, 7살)가 혈기왕성했던 2살 무렵, 가족들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마당에서 흙길 밟던 놈이 안방으로 난입한 적이 있다. " 버, 버버버버버벌레다 ! " 덜덜 떠는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벽이었다.
벽에는 성인 엄지손가락만한 타란툴라가 붙어 있었다. 이웃집에서 애완동물로 키우던 놈이 우리를 빠져나와 우리에게 온 모양이었다. 우리에게 오지 말고 우리로 돌아가 가족들이 포장마차에서 파는 오돌뼈처럼 오돌오돌 떨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봉달씨가 타란툴라를 냅다 삼킨 것이다. 자기 깐에는 위험에 빠진 가족을 지키겠다는 심산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란툴라를 삼킨 개는 돌발 변수'였다. 어 ?! 어어.. 삼키면 안되는데 ! 짧은 침묵이 흘렀다. 5초, 4초, 3초, 2초, 1초...... 뽜이아 ~ 봉달씨가 괴로운 듯 머리를 휘젓더니 입에서 거미를 뱉어냈다.
왕거미가 입안에서 개를 문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몸에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외상형 스트레스 장애는 남았던 모양이다. 타란툴라 난입 사건 이후, 주인이 벌레라는 말을 입에서 꺼내는 순간 봉달씨는 털을 곧추세우고는 벽을 쳐다본다 (가끔은 흥분이 도를 넘을 때가 있어서 민망하게도 고추를 세우는 일도 있었다). 그때의, 입안에서 알싸하게 느껴졌던, 고통이 떠오르는 듯 ! 어흥, 삐뚤어질 테다. 나와라, 시밤바들아.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은 심각한 표정으로 봉달씨에게 " 벌레, 어딨어 ? " 라고 묻고는 이내 웃을 준비를 하느라 입을 씰룩거린다.
그것도 모른 채 봉달씨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집안 구석구석, 벽을 훑는다. 지난해, 탄핵 정국이 지속되자 봉달씨에게 벌레와 박근혜는 동일어'가 되었다. 티븨에 박근혜가 나올 때마다 " 벌레 같* ** " 라고 습관처럼 내뱉었더니, 텔레비전에 박근혜가 나오면 털을 곤두세우며 안절부절 못한다. 증오의 언어를 가르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개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짐승은 언어 자체보다는 그 언어를 내뱉는 주인의 감정을 읽는데 능수능란하다. 5년 전, 봉달씨가 체득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두려움이 깃든 감정과 생강보다 고약한 통증이었으리라.
이제 7살이 된 봉달씨는 학습능력이 향상되어 사람 말귀를 귀신 같이 알아듣는 놈이 되었다. 주인이 개줄을 손에 쥐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개줄은 곧 산책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는 교묘한 방법으로 봉달씨를 골탕먹인다. 덩치가 크다 보니 방에서 꽃길 걷겠다는 개를 내쫓을 때에는 완력보다는 개줄이 효과적이다. 나는 개줄을 손에 쥔 채 트렁크 팬티를 걸친 엉덩이를 흔들며 소리친다. 봉달씨, 우리 신나게 흙길 한 번 달려봅시다아아아 ! 농부의 모자를 벗겨내는 데에는 사나운 바람보다는 뜨거운 태양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봉달씨는 개줄을 보고도 반응하지 않았다. 산책에 필요한 준비물은 비단 개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트렁크 팬티만 입고 산책을 나가는 주인은 없을 테니까. 봉달씨는 주인이 웃옷 입고, 바지 입고, 양말 신고, 개줄 잡을 때 비로소 꼬리를 흔들며 거실로 나온다. 주인양반, 우리 진짜루 흙길 한 번 신나게 달려봅시다아아아아 !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절차를 무시한 행위는 개도 거들떠도 안본다는 사실을 ! 그러니까 보통의 상식이란 절차를 바르게 지킬 때 통한다. 트렁크 팬티만 입은 채 개줄을 흔드는 것은 절차를 무시한 몰상식인 것이다.
봉달씨가 터득한 것은 개줄이 곧 산책을 의미한다는 것이 아니라 산책을 할 때 지켜야 할 순서, 과정, 절차'였던 것이다. 내가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통해서 절실히 깨달은 것은 " 상식(정상)과 절차(과정)의 아름다움 " 이다. 그가 식판을 들고 줄을 서거나 사인을 해달라는 아이를 기다려주는 행위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보통의 것으로 상식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 문재인이 실천한 < 상식 > 을 언론이 < 파격 > 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 그동안 박근혜가 실천한 < 몰상식 > 이 < 상식 > 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었던 개 같은 시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결국 민주주의 사회란 절차와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과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절차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불법이며 보기 흉하다. 모든 법이 절차법에 속하는 이유이다. 박근혜가 저지른 짓은 트렁크 팬티만 입은 채 개줄을 흔드는 주인의 몰골이다. 그게 형광등 백 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의 정체'다. 개도 속지 않는 것을 어떤 인간은 항상 속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