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어당과 루쉰


 

 

                                                                                                         발목불인견'이란 말이 있다. 목불인견이 눈앞에 벌어진 상황 따위를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어서 뒷목 잡는 상황이라면, 남 잘되는 꼴을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어서 사사건건 상대방 발목을 잡는 경우를 발목불인견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은 경우를 씨발목불인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요즘 잘한당(자유한국당 약칭)이 하는 짓을 보면 목불인견을 넘어, 발목불인견을 뛰어넘어, 씨발목불인견 수준이라 할 만하다. 어찌나 씨발-스러운지 감탄할 정도이다. 그동안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경상도 대구 유권자들이 어린 손주 재롱을 보고 싶다며 잘한당, 잘한당, 잘한당 _ 하며 어르고 달랬더니 버릇만 나빠졌다. 도리질할 때마다 박장대소하며 은총을 내리시니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되는 표밭이라. 하여 배운 게 도리질이라. 문재인 정부 인사 청문회 내내 도리질'이다. 도리 도리 잼잼 ~  어이쿠, 내 새끼 !  잘한당, 잘한당, 잘한당 ~ 

한 살 남짓한 아이가 도리질해야 예쁘지 예순이 넘은 노인들이 도리질하니 징그럽기 거지없다. 도지사 시절에 유흥업소 종사자의 털을 술잔 위에 띄워 마시고, 입고 있던 빤스를 벗어 술에 담근 후에 술에 쩔은 빤스를 짜서 여러 사람과 돌려 마셨다 하여 이름 붙여진 음모주와 충성주를 제조하신 분이 연일 후보자의 도덕성 운운하니 난감하다.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을 탈탈 털겠다고 단단히 벼르시던데 털털한 분으로 악명 높은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털로 흥한 자는 털로 망할 것이라 믿는다. 또한 자유한국당이 오일팔 정신 운운하며 김이수 헌법재판관 후보를 비토하고 있으니 후(厚)의 두터움과 흑(黑)의 두려움 앞에서 할 말을 잊게 만든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불통, 쇼통, 먹통, 호통이라며 라임을 살린 스웩을 선보였지만 술통과 간통 그리고 사통의 달인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어설픈 라임은 갱스터 랩의 질을 떨어트린다. 지금부터 스웩의 정수를 선보이겠습니다. 우웩 !                   이 모든 저질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역설적이지만 "  후(厚)의 두터움과 흑(黑)의 두려움 " 이다. 정치인에게 있어서 " 두꺼운 낯짝 " 은 때에 따라 필요한 가면이고, " 하드보일드 " 는 정의를 실행하는 가장 빠른 수단이기도 하다. 루신의 <<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 라는 산문은

<< 생활의 발견 >> 이라는 산문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린위탕(임어당)이 중국에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희박하기 때문에 적극 권장해야 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린위탕이 페어플레이란 물에 빠진 개는 때리지 않는 태도'라고 정의하자 루쉰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무리들은 먼저 물 속에 빠뜨리고 이어서 때려주어야 한다. 만일 스스로 물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뒤쫓아가 두들겨 패줘도 무방하다. 그들은 권세에 몹시 아첨하지만 아직도 늑대에 가까울 만큼 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일부 공리론자들은 `보복하지 말라`,`자비로워라`,`악으로써 악에 대항하지 말라`라는 말들을 외쳐댄다. 그 때문에 악인은 구제된다. 그러나 구제된 뒤에도 감쪽같이 속였다고 생각할 뿐 회개 따위는 하지 않는다. 토끼처럼 굴을 파놓고 남에게 아첨도 잘하므로 얼마 안가 세력을 되찾아 전과 마찬가지로 나쁜 짓을 시작한다(루신전집1,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中). 


요약하자면          :         페어플레이는 상대방이 " 페어 " 할 때 가능한 애티튜드이지 " 언페어 " 한 상황에서는 상대에게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루쉰은 “만약 앞으로도 광명이 암흑과 철저하게 싸우지 않고 순직한 사람이 악을 용서하는 것을 관용이라고 잘못 생각하여 고식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오늘날과 같은 혼돈 상태는 영구히 이어질 것이다” 라고 경고한다. 루쉰의 충고는 노무현 정권이 왜 실패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페어 > 가 < 언페어 > 를 개과천선하게 만들 수 있다는 노무현의 환대(혹은 선의)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페어한 상황에서 협치는 정치의 주요 덕목이지만 언페어한 상황에서는 투창와 비수의 정신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정의는 사랑보다는 복수, 용서보다는 청산에 의해 성장하고 완성되었다.  개선될 여지가 없는 족속에게는 몽둥이가 가장 좋다. 정치는 < - 學 > 보다는 < - 術 > 의 영역에 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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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 2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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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 2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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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1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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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6-12 19:33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저는 아임파인생큐 앤드 유입니다..
 

 

 

 

 

 

 

 




바람 잘 날 없는 집



 


                                                                                                         오래 전, 바람이 잘 통하는 < 집 > 에 산 적이 있다. 언덕 위에 지어진, 낡고 볼품없는 이층집이었다. 무엇보다도 마을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지어진 집인데다가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과 앞뒤로 뚫려 있는 넓은 문과 창이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과 일치해서 고열로 펄펄 끓는 삼복 더위에도 늦은 봄 날씨와 같았다.

어렸던 내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풍경 하나는 생생 돌아가는 선풍기 전원을 뽑으려고 했더니 이미 전원이 연결되지 않은 상태여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다. 그러니까 오로지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힘으로 선풍기 프로펠러를 돌아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문과 창을 활짝 연 다음에 선풍기 위치와 방향을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과 일치시키야 했다.  그래서 선풍기를 특정한 자리에 놓고 선풍기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바람이 지나가는 길과 일치시키면 프로펠러는 서서히 돌아가다가 탄력을 받으면 신나게 돌아갔다.

자랑할 만한 살림살이가 없었던 가족에게 그 바람은 유일한 구경거리이자 자랑거리였다. 브라보, 바람이 지나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                                   손님이 집에 오면 가족은 보란 듯이 문과 창문을 활짝 열고 놓고 손님에게 바람을 구경시켰다. 무엇보다도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선풍기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바람과는 차원이 달랐다. 선풍기 바람이 기분 나쁜 촉감을 전달한다면 우리집을 내통하는 바람은 5월 볕 좋은 날에 말린, 바짝 마른 순면 재질의 옷을 입을 때 느끼게 되는 기분 좋은 촉감을 주었다. 이래저래 바람은 자랑할 것 하나 없는 가난한 누대의 최대 자랑거리였다.

그 이후, 이보다 좋은 바람을 만난 적이 없다. 서울은 주거 환경이 과밀되어서 바람길은 전부 막히고 아스팔트 열기와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내는 열기는 대기열을 높일 뿐이다. 서울에서 그 아무리 땅값 비싼 자리에 지어진 집이라 해도 좋은 바람을 구경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적어도 서울이라는 곳에서는. 지난밤에 꿈을 꿨다. 사위가 어두운 밤이라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후덥지근한 날씨로 보아 여름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고 나서야 꿈속의 내가 있는 곳이 그 옛날 살던 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렸을 때 허락 없이 내통했던 그 바람이었다.

그 바람의 세기와 냄새와 소리로 알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과 뭉클한 마음이 겹쳤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았다. 창문 하나 없는 타워팰리스와 그 옛날 살던 집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람과 내통하던 그 낡은 집을 선택할 것이다. 사는 데 있어서 많은 친구는 필요 없다. 좋은 바람은 좋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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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8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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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8 17: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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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9 1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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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0 14: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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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8 17: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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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8 17: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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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6-08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창문도 자기 마음대로 열 수 없는 통유리로 만들어진 타워팰리스보다는 마음껏 환기시킬 수 있는 지금 집이 좋습니다^^: 바람이 부는 곳에 생기가 들어오는 것 같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6-08 17:46   좋아요 1 | URL
바람 잘 들면 환풍기 필요없죠. 좋은 바람이 좋은 냄새를 만들고 웰빙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통유리로 다 막은, 창문 하나 없는 타워팰리스에서 왜 사나 모르겠어요. 바람을 기계로 돌려서 공급한다는 얘기인데.. 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7-06-08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물을 부실하게 지으면 여름에 빗물이 새고, 겨울에 찬바람이 새어 나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이 그렇습니다. 이거 때문에 스트레스 받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08 17:51   좋아요 0 | URL
여름에 빗물 새고
겨울에 바람 새고 .. 최악이네요.. ㅎㅎ

나와같다면 2017-06-09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론 바람으로, 냄새로, 음악으로..
잊고 있던 옛 기억이 훅 올라올때가 있죠.
나도 잊고 있었던, 그러나 몸이 기억하고 있던 추억..

곰곰생각하는발 2017-06-10 14:22   좋아요 0 | URL
좋은 꿈에 자주 나타나는 집인 걸로 보아서는 아마도 이곳에 대한 추억이 많은 것 같다가도
사실.. 이 집에 살 때 딱히 좋은 기억은 별로 없거든요. 아마도 다 좋은 바람 탓일 듯합니다..
 

 

 

 

 

 

 

 

 

 

 

 

 

 

 

 

                                       

 

한 국 인 의   소 울   푸 드   :






한국 문단에게 : 삼계탕 드실라우 ?

 

 

 

 

 

 

 

 

                                                                                                        

 

대한민국은 대대로 농경 사회이다 보니 노동자에게 삼복 더위만큼 " 개 같은 날의 오후 " 는 없을 것이다. 그늘 없는 논밭에서 일하다가 살인 더위에 쓰러지는 사람 많았으니 복날은 흉일이라 여겨 씨 뿌리기, 여행, 혼인, 병 치료 등을 삼가는 풍습이 있었다.

 

복날에는 그늘에서 쉬면서 계삼탕으로 몸보신을 하며 기운을 차렸으니 몸이 편한 날이라.  일종의 폭염주의보에 따른 임시 공휴일인 셈이다. 그때 먹던 계삼탕이 지금의 삼계탕이다(옛날에는 귀하디 귀한 삼보다 계가 앞섰는데 지금은 계보다 삼이 앞섰으니 영양가는 그때보다 높을 것이다). 이 풍습은 지금까지도 유지되어 복날이 되면 삼계탕을 먹는다.  삼계탕 한 그릇에 대략 1000칼로리'라고 하니 대표적인 고열량 음식이다. 여기에 더해서 특식으로 몸보신한다고 전복에 각종 해산물을 넣은 용궁삼계탕 한 그릇이면 한 끼 칼로리가 아닌 하루 칼로리를 섭취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삼복 더위에 삼계탕 특식으로 원기를 회복하려 했던 옛 조상의 지혜에  무릎 탁 치고 아 _ 하게 된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어서 영양 과잉 사회에서 삼계탕으로 몸보신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식생활 습속'인지는 다시 한 번 재고할 문제이다. 현대인이 기운이 없다 _ 라고 말하는 것은 하루 끼니를 걱정하던 시대의 농민이 삼복 더위에 기운이 없다 _ 라고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이다. 현대인의 만성 피로를 영양학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영양 결핍보다는 영양 과잉의 결과'이다.  그렇기에 만성 피로를 고열량 음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된 치료이다.

한국 문학에서 남성 작가들이 범하는 오류도 이와 비슷하다.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은 만성 피로의 원인을 잘못된 생활 습관(영양 과잉 식생활)에서 찾지 않고 오히려 영양 결핍에서 찾는다. 그때부터 기이한 식도락 여행이 펼쳐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윤대녕 소설이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는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인한 의욕 상실을 회복하기 위해 식도락 여행을 떠난다. 그에게 " 묘령의 여인 " 캐릭터는 삼복 더위에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먹는 삼계탕이나 영계백숙으로 소비된다. 묘령이라는 단어가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여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계백숙에 가까울 터다.  초면에 실례합니다만, 우리....... 섹스할까요 ?                                

섹스와 삼계탕의 공통점은 버, 벌거숭이라는 점과 뜨, 뜨거워서 땀 흘리며 먹는다는 점이다.  으라차차, 먹고 나니 기운이 불끈 !   젊은 여성을 " 몸보신을 위한 삼계탕 " 으로 취급하는 문학적 애티튜드는 박범신의 << 은교 >> 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진단 결과가 잘못되었으니 치료 방법이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 작년에 한국 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 문단 내 성폭력 " 사건은 한국 문단을 자지우지하는 남성 문단 권력을 여성을 어떤 식으로 인식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싶다. 한국 남성 작가가 쓴 소설을 읽고 영혼이 털리는, 구멍 난 가슴을 치유하는 기적을 경험했던 이가 몇이나 될까 ? 

삼계탕이 소울 푸드였던 시대는 끝났다. 몇 가지 당부드린다. 밥이 보약이라는 하나 마나 한 소리 그만하고, 기운 없다는  신소리도 그만하시라. 또한 땀 뻘뻘 흘리며 삼계탕 먹는 풍경을 현대인의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가는 시원적 여행 따위로 포장하지는 말자. 그냥, 솔직하게 삼계탕이 먹고 싶다고 말하라. 뒤로 호박씨 가는 당신보다는 당당한 찰스 부코스키가 좋다. 한국 남성 작가가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이 꽤나 촌스럽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만사가 귀찮고 피곤하며 매사에 짜증을 자주 내고 기운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한국 남성 작가에게 상계동 영희네 영계백숙 대신 크누트 함순의 << 굶주림 >> 을 추천한다. 이 소설, 끝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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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 17: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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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7-06-0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성 작가들뿐만 아니라 신경숙 같은 여성 작가들이 남성들의 로망에 긴밀히 부응하는 소설을 쓰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풍금이 있던 자리‘나 ˝엄마를 부탁해˝ 같은 소설에서 여성은 남성(또는 가족)의 호명을 받기를 바라거나, 호명(아내 OR 엄마)을 받은 뒤에는 가족(남편)의 버팀목이자 종속 대상으로서만 기능을 하지요.
박범신/윤대녕의 일부 소설에서 여성을 남성의 보충적/하위적 존재로 격하하는 경향도 문제가 있지만, 신경숙 소설처럼 여성이 가족/가장에 종속됨으로써 그들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를 은밀히 용인하고 가부장제 질서에 순응하고 자족하는 경향에도 비판적 메스를 마땅히 들이대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는 박범신 소설과 신경숙 소설은 서로 짝패이자, 서로의 욕구를 채워주는 보충적 대상으로서 기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08 17:3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밤범신이 때리는 시어머니라면 신경숙은 시누이 같다고나 할까요 ?
문단 권력인 남성 작가 혹은 그 이데올리기에 봉사하면서 떡고물 챙기는,
문학을 빙자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사쿠라 문학이야말로 적패죠..

yamoo 2017-06-08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계탕을 한국문단의 문제와 연결시키다뉘!! 역시 곰발님!!!

곰곰생각하는발 2017-06-10 14: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김치찌개에 비유해야 될 것 같습니다..
 
화장 (2disc) - 컬러 & 스페셜 블랙 버전 본편 수록
임권택 감독, 안성기 외 출연 / 스튜디오 A(STUDIO A)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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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 화장 >>,

               철들지 않는 남자의 나이듦을 논할 때

 

                   

 

                                                                                                                                                                                                                                                                                                          감독은 정색을 하고 만들었지만 내가 보기엔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 천년학 >> 이후,  임권택 영화 세계에 " 학을 뗀 " 나는 더 이상 임권택 영화를 보지 않기로 했다.  

<< 달빛 길어올리기 >> 라는 영화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본 영화이지만 강우석의 << 한반도 >> 와 더불어 최악에 가까운 망작'이어서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임권택을 여전히 살아 있는 전설로 떠받드는 정성일 평론가에게 임권택이라는 거장의 신화는 여전히 살아 있는가 _ 라고 묻고 싶다. 의리입니까, 기린입니까 ?  이런 마가린 !                   영화계와 평단이 팔순 노장 감독에 대한 리스펙(트)를 날리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가끔 그들의 과도한 존경을 볼 때마다 지나친 경로 우대 사상이 낳은 불상사가 아닌가 _ 라는 의문이 든다. 나는 임권택 감독이 장인이라는 평가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거장이라는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굳은 맹서를 깨고,    오늘 영화 << 화장 >> 을 다시 본 이유는 B가 링크를 걸어 둔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제목은 <<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나이듦을 논할 때 >> 다.  영화 << 화장 >> 은 임권택 영화는 모두 다 고만고만한 영화여서 앞으로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_ 라는 나의 " 자기 이행적 예언 " 이 단순한 확증 편향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임권택과 안성기의 공통점은 60년 동안 한 우물만 팠는데 실력은 고만고만하다는 점과 국민감독이나 국민배우라는 월계관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로봇 연기의 원조는 장수원이 아니라 안성기다).

김훈의 단편소설 << 화장 >> 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요강처럼 가운데가 뚫린 의자 위에 앉혔습니다. 의자 위에서 아내는 사지를 늘어뜨렸습니다. 아내의 두 다리는 해부할 교실에 걸린 뼈처럼, 그야말로 뼈뿐이었습니다. 늘어진 피부에 검버섯이 피어 있었습니다. 죽음은 가까이 있었지만, 얼마나 가까워야 가까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의자 밑으로 넣어서 비누를 닦아냈습니다. 닦기를 마치고 나자 아내가 똥물을 흘렸습니다. 양은 많지 않았지만, 악취가 찌를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 44쪽 )

임권택은 김훈의 문자화된 언어를 시각적 언어로 번역하여 재현한다.  문제는 " 재현의 윤리성 " 에 있다. 예를 들어 끔찍한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답시고 감독이 재현해 놓은 강간 장면은 윤리적인가, 비윤리적인가 ?   영화 << 화장 >> 에서 감독은 병들고 헐거워진 여성 성기를 리얼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여배우의 성기 노출을 그대로 보여준다1). 내가 보기에 이 장면은,  팔순 노장 감독에게는 정말 미안한 소리이지만,  예술성과는 거리가 먼 " 어그로 " 에 지나지 않는다. 재현에는 윤리적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임권택은 애써 외면한다.

김영옥은 <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나이듦을 논할 때 > 라는 글에서 감독의 폭력성을 신랄한 어조로 비판한다.



     김호정은 현실의 장면에서 그리고 김규리는 오상무의 상상 속 장면에서 이렇게 저렇게 ‘벗은 몸’으로 등장한다. 특히 통상 금기로 되어있는 성기 노출을 감행한 김호정의 여배우로서의 결단은 ‘쉽지 않은 용기’로 여러 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대본에 없던 구성인데, 촬영 도중에 감독이 ‘이래서는 느낌이 살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성기 노출 쪽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어떤 주제를 구현하(고자 했)는가와 무관하게 영화 <화장>은 여성뿐만 아니라 몸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환자들이나 노년들의 인격을 무례하게 모독한다. 실제로 두 번이나 발병한 암 때문에 뇌수술을 받고 통증 때문에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용변을 통제 못하는 환자를 ‘리얼’하게 즉 실제로 돌봤거나 포괄적으로 경험해봤다면 여자배우의 아랫도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러한 존재 상태의 ‘리얼한 감’을 얻는다고 주장하기는 힘들 것이다. 통제 안 된 용변으로 더러워진 환자의 몸을 닦아주는 손놀림 몸놀림은 영화에서 저 남편이 보여준 것과는 매우 다르다. 세부사항 하나하나에서 치밀하게 ‘리얼’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그저 여자/배우/환자의 성기가 보여야 리얼하다고 느끼는 그 ‘감정의 구조’는 얼마나 허구적이며 헛방인가. ( 철들지 않는 남자들이 나이듦을 논할 때, 』 중에서 김영옥 www.ildaro.com  )

영화와는 달리 원작 소설에서 늙고 비루한 육체에 대한 집요한 묘사는 아내의 몫만은 아니다. 남편 또한 전립선비대증으로 오줌주머니를 차고 다닌다. 소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간호사는 고무장갑 낀 손으로 애무를 해주듯 손을 움직여 내 성기를 키웠다. 고무장갑 낀 간호사의 손 안에서 내 성기는 부풀었다. 성기는 내 몸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낯설었지만, 내 몸이 아닌 내 성기가 나는 참담하게도 수치스러웠다. 간호사가 그 구멍 안으로 긴 도뇨관을 밀어 넣었다. 도뇨관은 한없이 몸 안으로 들어갔다. 요도가 쓰라렸고 방광 안에 갇혀 있던 오줌이 아우성을 쳤다.

적어도 김훈은 늙고 병든 몸뚱아리를 남녀 구별 없이 공정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정직하다 할 수 있지만,  임권택은 여자 배우의 아랫도리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폭로하면서 남자 배우의 아랫도리는 하얀 시트로 가려주는 검열을 통해서 늙고 추레한 남성을 배려한다는 점에서 꽤나 비열한 측면이 있다. 감독은 여성 육체는 벗겨 놓아야 만족을 하고 남성 육체는 덮어 놓아야 안심을 한다. 재현에서 중요한 것은 서사의 핍진성이지 사물의 전시성'이 아니다. 내가 이 영화에서 임권택 감독에게 재현의 윤리적 책임을 묻는 이유이다.


 






​                                                  


 

1)  배우는 대본을 보고 계약을 체결한다. 여성인 경우는 노출 문제에 민감하기 때문에 수위 조절도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임권택은 영화 << 화장 >> 에서 여배우에게 대본에도 없는, 전라 노출 수위를 뛰어넘는 성기 노출을 감행한다. 만약에 감독이 배우에게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노출 순위가 성기 노출이라는 점을 명시했다면, 배우는 쉽게 이 영화에 동참할 수 있었을까 ?  이토록 중요한 문제를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감독의 폭력성과 " 여배우의 쉽지 않는 용기 " 따위로 퉁치는 영화계의 인권 감수성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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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6-07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분노해야 할때 침묵하고, 엄한 곳에서 큰소리 치는 그런 사람이 싫어요..
그 당시 여성가족부나 페미니스트들은 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까요?
거장 임권택 감독이기 때문에..?

곰곰생각하는발 2017-06-07 18:28   좋아요 0 | URL
거장거장 하면서 설레발치는 영화판 보면 좀 가식적이고 역겹죠.
사실, 임권택 영화 후지다는 거 다 알고 있씁니다..

화면 보세요. 연기 스타일 보십시오. 임권택은 그냥 감독이지 거장도 명장도 아니죠..
개인적으로는 형편없는 감독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다맨 2017-06-08 0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권택은 품질이 저렴한 물건을 대량으로 찍어내는ㅡ그리고 그것 말고는 마땅한 재주가 없는ㅡ 공장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업계에서 오래 살아 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름의 대우나 존중을 해줄 필요는 있지만 거장이나 대가로 섣불리 인정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그래도 강우석은 간혹 행운이 따라주면 코믹물 만드는 재주라도 얼마큼 있는 것 같은데 임권택은 뭔가를 만들 줄 아는 솜씨조차도 별로 없는 것 같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6-08 16:15   좋아요 0 | URL
동의, 그냥 기술자 느낌이 날 뿐이지 미학 운운하면 좀 당황하게 됩니다.
또한 영화 자체가 굉장히 후져요. 만듦새도 그렇고 말이죠..
이걸 정말 영화계 사람들은 모르고 있을까요 ? 저는 알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알면서도 차마 말 못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여튼 볼 때마다 짜장을 유발하는 영화여서 얼큰한 짬뽕 한 그릇 먹고 싶더군요..

yamoo 2017-06-08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화장>은 정말 괜찮던데요....이 영화는 졸작인가 봅니다~
한국 영화 안 본지가 넘 오래되서뤼,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네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10 14:24   좋아요 0 | URL
영화는... 망작입니다. 심각한데도 안성기 연기를 보고 있으면 코미디영화 연출을 하고 있는 듯한..
연기톤도 너무 구닥다리여서 신기할 정도입니다..
 
임권택 감독 컬렉션 - 서편제 + 아제아제 바라아제 + 태백산맥 + 축제 + 춘향뎐
임권택 감독, 조승우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임권택, 작심하고 깐다



                                                                                                       한국 영화계에는 임권택이라는 까방권이 존재한다.  목소리가 허스키한 시베리아 바람이 전한 말에 의하면 영화계 내부 강령에는 임권택 까는 놈은 적패로 규정한다 _ 는 무시무시한 문장이 적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임권택 영화를 까서 왕따 당하는 영화인을 아직까지 본 적은 없어서 이 내부 방침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다. 웃자고 스웨그 좀 떨었다, 됐고 !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 나는 임권택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임권택 영화를 찬양할 때 흔히 마주하게 되는 한국적이어서 세계적인 영화라는 하마평을 들을 때마다 멍청아, 한국적인 것은 그냥 한국적1)인 것이야 _ 라는 개미평으로 응수하고는 한다. 정성일 같은 평론가가 임권택 영화를 거론하면서 인본주의를 거론할 때마다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엔 임권택 영화는 인권 감수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 서편제 >> 를 예로 들어보자.

아버지의 사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딸에게 독약을 먹이는(눈을 멀게 하는) 범죄 행위를 단순하게 예술혼의 승화 따위로 설명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이러한 행위는 자식을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에게 종속된 개체로 여길 때 발생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만 유독 두드러지는 가족 동반 자살도 같은 맥락이다. 이 영화를 사양길에 접어든,    판소리를 고수하려는 아버지의 빛나는 예술혼 따위로 포장해서는 안된다. 송화(오정해)는 가부장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소모되는 건전지에 불과하다. 관객은 눈먼 송화에 대해 연민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지만 아무도 가해자인 아버지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감독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연민을 느끼도록 영화적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임권택의 낮은 잰더 감수성은 영화 << 길소뜸 >> 제작 비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전라 노출 연기를 해야 했던 어린 배우 이상아의 나이는 고작 14살이었다. 어린 배우가 전라 노출 연기를 거부하자 임권택이 한 말은 꽤나 의외였다. " 너 돈 많니 ? " 즉, 돈 많으면 지금까지 찍은 제작비를 다 물어내라는 협박인 것이다(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법 준수를 외치는 파업 노동자에게 파업에 따른 손배액 청구로 상대방을 윽박지르는 싸장님 마인드와 유사하다). 자신의 예술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딸에게 독약을 먹이는 소리꾼 아버지와 자기 영화의 예술적 완성도를

위하여 14살 어린 소녀에게 전라 노출 연기를 강요하는 임권택이 겹치는 대목이다. 임권택의 낮은 잰더 감수성은 << 하류 인생 >> 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 영화에서는 부부 강간 장면(따귀를 때리고, 옷을 찢는..)이 나오는데 화면이 전환되면 아내는 만족스러운 듯 남편 품에 안겨서 방실방실 웃는다. 이 황당한 장면 전환을 두고 비판하는 평론가를 본 적이 없다. 심지어 톤앤매너의 불균질을 지적하는 이조차 없었다. 남성 중심 사고'가 낳은 폐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남성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은 삼복에 더위 먹은 늙은 남자가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먹는 삼계탕 정도로 취급한다. 내가 임권택과 윤대녕을 싸잡아서 비판하는 대목이다.

자신이 한 행동이 " 가해 " 이지만 " 가해 " 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임권택만은 아니다. 이창동 감독의 << 오아시스 >> 도 남성 중심 사고가 낳은 끔찍한 폐허'다. 자신(문소리)을 강간한 남성(설경구)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다룬 영화인데, 만약에 이 영화를 남성이 아닌 여성이 감독했다면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서사일까 ? 이창동은 남성의 사랑에 대해서는 너그럽지만 여성의 공포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이 영화는 예술을 빙자한 강간 판타지에 불과하다. 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란 말이 있다. 훌륭한 영화는 전세대 아버지와의 단절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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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면 삭힌 홍어는 지구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 될 것이다. 한국적이라는 평가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과잉 해석을 지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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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6-06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서편제 보면서 딸 눈을 멀게 하는 것에 경악했습니다. 자기가 똥물을 먹든 자기 눈을 찌르든 그거야 자기 예술혼이고 딸 인생을 왜 그렇게 조종하는지요.. 소름끼치게 끔찍했어요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7-06-06 17:16   좋아요 1 | URL
저는 그게 끔찍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좀 나이가 들고 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니 정말 끔찍하더군요. ˝ 아니 왜 자기 욕망을 위해 딸에게 독약을 먹이지 ? 이렇게 나쁜 놈도 있나 ? ˝

2017-06-06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7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3시 2017-06-06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영화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끔찍하네요
저런 사고방식을 가진 늙은 감독들이 만든 영화를 보면서 감동하는 사람도 많았겠지요

˝ 훌륭한 영화는 전세대 아버지와의 단절에서 나온다.˝

오늘도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06-07 10:25   좋아요 0 | URL
배우고 가긴요.. ㅋㅋ
제 취향이 달라서인지 전 이 분의 색감부터 연기톤, 프레임 설정 따위가 너무 옛날 톤이어서
따분한 생각이 듭니다. 뭐든 만들면 블랙코미디예요..

포스트잇 2017-06-0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운 현상이죠.
임 감독은 그냥 있으려해도 옆에서 밑받침에 자꾸 풍선바람 넣는 사람들이 나쁜거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06-07 10:24   좋아요 0 | URL
풍선에 바람 넣는 꼴이죠. 아마 다들 이제는 임권택 영화가 낡고 후지다는 것을 다들 알 겁니다. 이걸 굳이 살아 있는 신화, 거장의 숨결 운운하며 빨아준다는 게 합당한지 의문입니다... 적당한 예의는 좋으나 그게 지나치면 거짓 숭배가 되죠..

yamoo 2017-06-08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국영화를 어느 정도 보고, 임권택 영화를 거의 다 봤다면, 아마도 곰발님하고 같은 지점을 거론했을 겁니다. 서편제보고 저도 이건 가정 폭력의 극단인데...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어쨌거나 저는 임권택 영화는 재미가 없어 못보겠더이다. 홍상수 영화도 마찬가지구요.. 그나마 재밌게 본 감독이 봉준호 정도..

어제 ‘나는 부정한다‘ 봤는데...정말 잘 만든 영화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한국영화 때문에 울나라에서 망한 작품인데, 이런 영화가 한국 영화 때문에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플뿐입니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6-10 14:23   좋아요 0 | URL
앗, 야무 님. 반갑습니다. 무탈하시지요 ? 알라딘계의 유일한 패션 블로거였는데... 주옥같은 패션이 눈에 아른거리는군요... 얼른 화려하게 무대 위로 등장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