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집
오래 전, 바람이 잘 통하는 < 집 > 에 산 적이 있다. 언덕 위에 지어진, 낡고 볼품없는 이층집이었다. 무엇보다도 마을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지어진 집인데다가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과 앞뒤로 뚫려 있는 넓은 문과 창이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과 일치해서 고열로 펄펄 끓는 삼복 더위에도 늦은 봄 날씨와 같았다.
어렸던 내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풍경 하나는 생생 돌아가는 선풍기 전원을 뽑으려고 했더니 이미 전원이 연결되지 않은 상태여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다. 그러니까 오로지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힘으로 선풍기 프로펠러를 돌아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문과 창을 활짝 연 다음에 선풍기 위치와 방향을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과 일치시키야 했다. 그래서 선풍기를 특정한 자리에 놓고 선풍기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바람이 지나가는 길과 일치시키면 프로펠러는 서서히 돌아가다가 탄력을 받으면 신나게 돌아갔다.
자랑할 만한 살림살이가 없었던 가족에게 그 바람은 유일한 구경거리이자 자랑거리였다. 브라보, 바람이 지나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 손님이 집에 오면 가족은 보란 듯이 문과 창문을 활짝 열고 놓고 손님에게 바람을 구경시켰다. 무엇보다도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선풍기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바람과는 차원이 달랐다. 선풍기 바람이 기분 나쁜 촉감을 전달한다면 우리집을 내통하는 바람은 5월 볕 좋은 날에 말린, 바짝 마른 순면 재질의 옷을 입을 때 느끼게 되는 기분 좋은 촉감을 주었다. 이래저래 바람은 자랑할 것 하나 없는 가난한 누대의 최대 자랑거리였다.
그 이후, 이보다 좋은 바람을 만난 적이 없다. 서울은 주거 환경이 과밀되어서 바람길은 전부 막히고 아스팔트 열기와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내는 열기는 대기열을 높일 뿐이다. 서울에서 그 아무리 땅값 비싼 자리에 지어진 집이라 해도 좋은 바람을 구경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적어도 서울이라는 곳에서는. 지난밤에 꿈을 꿨다. 사위가 어두운 밤이라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후덥지근한 날씨로 보아 여름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고 나서야 꿈속의 내가 있는 곳이 그 옛날 살던 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렸을 때 허락 없이 내통했던 그 바람이었다.
그 바람의 세기와 냄새와 소리로 알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과 뭉클한 마음이 겹쳤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았다. 창문 하나 없는 타워팰리스와 그 옛날 살던 집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람과 내통하던 그 낡은 집을 선택할 것이다. 사는 데 있어서 많은 친구는 필요 없다. 좋은 바람은 좋은 친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