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평 - 퇴짜 맞은 명저들
빌 헨더슨, 앙드레 버나드 지음, 최재봉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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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   문 학 의   팔   할 은  :





 


플로베르는 작가도 아니다 !



  

                                                                                                                                                                                                                                                                                            민머리에 풍성한 백발 수염, (나이 든) 그는 얼핏 보면 찰스 다윈'을 닮았다. 뭐, 어디까지나 내 직관에 기댄 인상 비평에 지나지 않지만 풍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비슷한 면이 있다.

그도 인간을 원숭이 취급하는 부류였으니까.  그는 교사 생활을 하며 틈틈이 완성한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보냈지만 번번이 퇴짜를 받다가 스물세 번째로 방문한 출판사'에서 가까스로 합격점을 받는다. 이 소설을 출간한 출판사의 문학적 안목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이 원고를 처음 검토한 출판사 직원은 와사비 같은 20자평을 남긴다. 그 직원은 좋은 문학을 보는 자신의 안목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출판사는 그 점을 높이 샀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가 보낸 편지 위에 짤없고 칼 같이 냉정한 의견을 첨부하길 좋아했다(고).  이 맛에 문학을 있어요. 호호호.                        그녀가 남긴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

식민지에 원자폭탄이 폭발해서 뉴기니 근처 정글 지대에 한 무리 아이들이 상륙한다는 허황되고 지루한 판타지.  별 볼 일 없고 따분함. 요령부득         

하지만 출판사 직원 중에 갓 입사한 젊은 편집자'가 의욕적으로 이 작품을 밀자, 출판사 대표는 젊은 직원의 사기를 꺾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출간을 하기로 결정한다. 일종의 직원 복리 후생 지원 차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 소설 원고는 마침내 빛을 보게 되어 << 파리 대왕 >>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월리엄 골딩, 그가 처음 문학에 입봉한 나이가 42세'였으니 늦깎이 데뷔인 셈이다. 이 소설에 대한 뉴요커(誌)의 반응은 냉담했다. ...... 불쾌하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소설은 훗날 월리엄 골딩에게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명예를 안겨주었다. 이 작품에 대해 별 볼 일 없다며 요령부득이라고 악평을 쏟아냈던 그 출판사 직원은 지난 일을 생각하며 별 볼 일 있는 밤마다 이불킥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위대한 걸작이 빛을 보지 못했다면 스티븐 킹의 가상 마을 캐슬록1)이 배경이 된 작품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 벌교 " 없는 << 태백산맥 >> 을 상상할 수 없듯이, " 캐슬록 " 없는 스티븐 킹 소설 또한 상상할 수 없는 로컬리티'이다. 이처럼 고전(古典)은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하는 시기(신간)일 때  평단의 세계에서 고전(苦戰)하는 경우가 많다.  악평 중에서도 인상에 남는 " 헬 오브 악평 " 은 르 피가로(誌)'가  플로베르의 << 마담 보봐리 >> 에 쏟아낸 평일 것이다. 플로베르 씨는 작가도 아니다 !                이 뾰족한 말풍선'은 꼭 너는 인간도 아니다  _  라는 뉘앙스처럼 들려서 생각할 때마다 낄낄거리게 된다. 이런 맛에 악평을 읽는다.

고전 혹은 앞으로 고전이 될 명저'에 쏟아진 악평이라고 해서, 나는 그 악평을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일리 있는 악평도 꽤 많다. 예를 들면 : 한 출판사가 어느 작가에게 보낸 출간 거절 편지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되뇌었던 불평이다. 친애하는 동료여, 제가 아둔패기라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주인공이 잠들기 전에 침대 위에서 뒤척이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 서른 페이지나 필요한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변학도라면 이 문장(침대 위에서 뒤척이는...)에서 남녀가 응응 하는 상상을 떠올리겠지만 문학도라면 어느 정도 눈치를 챌 수도 있다.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에 대한 악평이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잡는 악평은 바이런 경이 제임스 호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뒷담화'이다.

 

셰익스피어의 명성은 황당할 정도로 지나치게 높아져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바닥으로 떨어질 거예요. 제 말을 믿어도 좋습니다. 그에게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어요. 아예 없습니다. 그는 옛날 소설들에서 얼개를 가져와서는 그 이야기들을 극적인 틀에 맞출 뿐이에요. 그가 들이는 노력이라고는 당신과 내가 그의 희곡을 다시 산문적인 이야기로 바꿀 때 드는 정도에 지나지 않아요.

 

바이런의 길고 길고 길고 긴 불평을 르 피가로 스타일로 압축하자면 셰익스피어는 작가도 아니다, 시바.                   격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바이런 씨와 내 악평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의 명성이 바닥으로 떨어질 날은 오지 않을 모양새'다, 앞으로 영원히 !   그런데 좋은 문학을 나쁘게 평가하는 악평보다 나쁜 영향을 끼치는 쪽은 오히려 나쁜 문학을 좋게 평가하는 호평'이다. 한국 문학을 망친 것은 악평보다는 주례사 비평이나 정실 비평이 아니었던가. 끼리끼리 모여서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도토리 키재기 놀이에 열중하고 있으니 한국 문학이 발전할 리가 없다.

짜고 치는 고스톱에서 노름 돈을 독차지하는 쪽은 서로 짜고 치는 타짜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한국 문학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밖으로는 꿋꿋하게 악평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한국 문학의 팔 할은 쓰레기다. 너무 심했나 ? 고쳐 쓴다, 한국 문학의 육 할은 쓰레기'다 


 





                        

1)   스티븐 킹이 기회가 될 때마다 독자에게 추천하는 책이 바로 << 파리대왕 >> 이다. 영국 출판사에서 출간된 월리엄 골딩 100주년 기념판의 추천사'를 스티븐 킹이 썼다.  킹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가상 마을 캐슬록'은 소년 잭의 요새 이름 캐슬록에서 비롯되었다. 미저리, 스탠 바이 미, 캐슬록의 비밀, 쿠조, 미스트, 쇼생크 탈출, 그것 등은 모두 가상의 마을 캐슬록과 연관이 있다. 캐슬록은 스티븐 킹 세계관을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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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28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핵재밌겠다, 저 책....

곰곰생각하는발 2017-08-28 11:06   좋아요 0 | URL
어느 책 말씀인가요 ? 악평 아니면 파리대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둘 다 핵잼입니다..

syo 2017-08-28 11:44   좋아요 0 | URL
악평이요. 그거 읽고 더 열심히 악평하고 다녀야겠어요. 작품을 잘못 본 건 등신같지만 일단 악평을 하기로 맘 먹었다면 탈탈 털어야지 싶은....

곰곰생각하는발 2017-08-28 11:46   좋아요 0 | URL
ㅎㅎ 재미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악평을 좋아하거든요. 별 다섯 착한 서평 남발하는 블로거보다는 차라리 별 하나 남발하는 블로거 글이 더 재미있더군요..

책한엄마 2017-08-28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악평도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저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래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7-08-28 11:19   좋아요 1 | URL
서평도 착한 서평보다는 칼칼한 서평이 눈에 쏙 들어오죠.. ㅎㅎㅎㅎㅎ

2017-08-28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8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7-08-2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은 다른 얘기입니다만 김신용 시인도 최승호 시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1988년에 김신용 시인은 마로니에 공원 근처에서 보도블럭 까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인사동의 어느 대폿집에서 김선유라는 시인에게 자신이 일하면서 썼던 시들을 보여주었고, 김선유는 크게 고무되어 그당시 ˝현대시사상˝이라는 시잡지를 창간 준비하던 최승호 시인에게도 보여줍니다. 최승호 시인은 김신용 시인을 직접 만나서 작품의 게재 동의를 구하고는 창간호에 김신용의 시들을 싣게 됩니다. 바로 이 작품들이 곰곰발님께서도 무척이나 좋아하시는 양동시편 연작이지요. 그의 나이 44세 때의 일입니다.
김신용 시인도 자신의 작품들을 (윌리엄 골딩처럼) 여러 출판사나 신문에 투고를 했을 것이고 아마도 호평을 듣지는 못했을 듯합니다. 그는 26세 때부터 시를 썼다고 하던데 스무 해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글을 활자화했지요. 만일 최승호나 김선유가 없었다면, 그가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8-28 15:38   좋아요 0 | URL
아, 네에.. 저도 그 내용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나네요. 어디서 들었더라 ? 술자리에서 수다맨 님이 저에게 말씀하셨었나 ? 아마.. 그런 것 같기도. 잘지내시고 계시죠 ?

김신용, 탁월하죠. 한국 문학 특유의 문창과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뭔가... 이 사람의 세계야말로 순문학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죠. 오히려 문단에서 순문학이라고 추켜세우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잡탕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전 묘하게 김신용과 손창섭이 겹쳐집니다..

2017-08-29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30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긁적 2017-09-1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딴건 몰라도 파리대왕에 대한 출판사 직원의 코멘트는 맞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첨언하자면, 그리고 글쓴이의 마지막 대목을 흉내내어 한마디 (진실을) 남기자면, ˝노벨문학상의 구할은 쓰레기다.˝
 
[블루레이] 마이 페어 레이디 : 50주년 기념판
조지 쿠커 감독, 오드리 헵번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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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녀와 새


 


                                    그는 노란 앵무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앵무새인데 말하는 재주는 없다고 했다. 말을 가르칠 요량으로 날마다 앵무새 앞에서 " 토킹 어바웃 " 을 했지만 앵무새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퉁명스럽게 앵무새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말하는 것을 흉내 내는 것이므로 의사 전달 행위라 볼 수 없기에 대화를 나눌 대상은 아니 _ 라고 말하자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나를 찾아와서 이런 고백을 했다 : 형, 처음에는 앵무새에게 말을 가르치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온종일 앵무새에게 넋두리를 늘어놓게 되었어. 대화 상대가 생긴 거지. 내 말을 들어주는. 고맙더군. 처음에는 교화해야 될 대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친구가 되었어. 그 후로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다음해 여름'이었다. 우리는 낮술을 하기 위해 대폿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앵무새는 잘 있어 _ 라고 묻자 그의 얼굴이 먹장구름처럼 어두워졌다. 아차, 싶었지만 늦었다. 그는 대폿집에서 울기 시작했다.

 

나드 쇼의 희곡 << 피그말리온 >> 은 시골뜨기 처녀에게 세련된 도시 표준 교양어(말투)를 가르치려다가 사랑에 빠지는 언어학 교수와 여자의 이야기다. 이 희곡은 << 마이 페어 레이디 >> 라는 뮤지컬 영화'라 만들어지기도 했다. 촌구석 시골뜨기 처녀 역을 오드리 햅번이 연기했다. 아우라'란 이런 것이다. 올림머리를 풀어헤쳐 봉두난발을 한다고 해서 수감 중인 503호로 보이는 것은 아니니까. 오드리 햅번은 촌구석 시골뜨기 처녀 역을 하기에는 너무나 우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일라이자 두리틀(오드리 햅번)을 무난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발성법에 있다.

듣기 싫은 새된 목소리가 형광등 백한 개를 깨트렸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앵무새 때문에 울었던 그 친구가 생각난다. 새에게 말을 가르치려다 사랑에 빠진 그와 하층민 여자에게 상류층 말(투)를 가르치려다 사랑에 빠지는 교수가 겹쳐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언어학에서 중요한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 능력이 아닐까.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은 현란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사람보다 우위를 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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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kim 2017-08-24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 두기만 하고 언제나 읽게될지 님의 글을 보니 버나드 쇼의 묘비명‘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가 생각 나네요.좋아하는 작가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8-27 11:48   좋아요 0 | URL
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은근히 뮤지컬 영화를 좋아합니다.. ㅎㅎ 버나드 쇼 원작과 영화는 마지막 해석이 전혀 다르죠. 개인적으로는 쇼 원작의 결말이 좋더군요..

겨울호랑이 2017-08-24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글을 읽다보니 ‘호흡‘에서는 먼저 숨을 내쉰 후 들이마시는 것과 반대로 의사소통에서는 ‘듣기‘가 ‘말하기‘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함을 알게 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8-27 11:47   좋아요 1 | URL
겨호 님도 말하기보다는 듣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셨을 것 같습니다.. ^^

2017-08-25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7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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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등짝의 재발견





                                          영화에서 배우는 독백이 아닌 이상, 대화 상대를 앞(혹은 옆,뒤)에 두고 대화를 나눈다. 감독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설정을 관객에게 사전에 알리기 위해 두 사람이 한 화면에 잡히는 각도로 촬영된 화면을  제일 앞에 배치한다. 등장 인물을 한 화면에 모두 담기 위해서 카메라는 어쩔 수 없이 피사체-들'로부터 뒤로 물러나야 한다.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을, 세 사람보다는 네 사람을 한 화면에 모두 담으려고 할 때 카메라는 점점 더 뒤로 빠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 마스터 숏 " 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마스터 숏은 한 화면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주로 배치된다. 그런데 " 마스터 숏 " 은 배우의 섬세한 표정 연기를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예를 들면   :   학교 졸업식 단체 사진'을 생각하면 된다. 단체 사진은 개개인의 풍부한 표정을 담을 수 없다. 단체 사진 속 피사체가 대부분 무표정하다. 굳이 감정을 드러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졸업식 단체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 쪽수 " 를 증명하는 것이지 개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영화에서 마스터 숏을 시작과 끝에 배치하는 이유는 카메라가 자유롭게 피사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다. 만약에 마스터 숏을 배치하지 않는다면 관객은 " 영화적 상황 " 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연출한 << 현기증 >> 의 한 장면을 보자.

 


관객은 마스터 숏이 있기에 c와 d 장면에서 대화를 나누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d는 남자가 프레임 밖에 위치하고  있지만,  여자는 남자 배우의 리액션을 어느 정도 가정하고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며 액션을 선보인다. 좋은 배우는 액션(단독 숏에서의 연기)뿐만 아니라 리액션에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훌륭한 배우는 오버 더 숄더 숏(b)에서 등짝만 보여주기에 낯짝을 보여줄 필요가 없는 장면에서도 성실한 낯짝으로 상대 배우의 연기를 도운다. 영화 << 밀양 >> 에서의 송강호 연기가 대표적이다. 그는 배우란 낯짝뿐만 아니라 등짝도 메소드 연기를 해야 된다는 사실을 몸소 실천한 배우'다.

 

미셀 투르니에의 사진 에세이 << 뒷모습 >> 은 " 등짝의 재발견 " 에 대한 에세이'다. 타인의 어깨 너머에서 바라보게 되는 등은 텅 빈 기표에 가까운, 우리에게 백지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미셀 투르니에는 뒷쪽이 진실이다 _ 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 좋은 배우는 성실한 등을 보여주듯이 정직한 사람의 뒷모습에는 비릿한 비열함이 없다. 많은 말을 쏟아내는 얼굴보다는 많은 감정이 읽히는 등짝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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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23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이 며칠만 안 보이셔도 허전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8-23 11:5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2017-08-23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3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7-08-23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셸 투르니에의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기만 하고 결국 못 다 읽고
반납했네요. 다시 한 번 빌려다
읽어 볼까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8-23 20:16   좋아요 0 | URL
글이 별로 없어서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도 좋고
글도 좋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8-23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보이지 않는 공헌도가 높다고 평가받았던 박지성 선수가 생각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8-23 20:16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박지성이 훌륭한 이유는 공과 상관없이 분주하게 움직여서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점이라고 하더군요..

무해한모리군 2017-08-23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이나 기억이 가물한데 곰곰생각하는발님 글로 다시 만나니 좋으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8-23 20:17   좋아요 0 | URL
확실히 읽은 책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는 것은 그것을 오래 기억하기에 가장 좋은 방식이더군요..
 
밀양 (2disc)
이창동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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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없는 드라마



 


                                                                                                   논픽션 서사가 픽션을 압도할 때 우리는 흔히 " 각본 없는 드라마 "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문장은 쌍팔련도 구닥다리 표현이어서 요샛말로 번역하자면 이거, 실화냐 ?  _ 정도 되겠다, 이런 느낌. 잉글랜드 쾌남아 로빈후드와 대결해도 이길 것 같은 구한말 조선 시스터후드 박근혜와 최순실의 " 근친 레즈비언 퀴어 떼강도 강탈 모의극 " 이 좋은 예이다.

그것은 애새끼들이 작당하고 국고를 터는, 졸라 스빽따끌하며 폴리띡하고 다크한 청와대발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이거, 실화냐 ?                         현실에서 " 각본 없는 드라마 " 란 일상의 통념과 보통의 상식 그리고 통계에 근거한 평균값을 뛰어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9회말 2아웃, 완봉승을 눈앞에 둔 투수에게 8번 스윙맨'이 때린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처럼 말이다. 이처럼 드라마는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 희소성 " 에 기반을 둔다는 점에서 판타지에 가깝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명연이 돋보이는 최가박당 드라마가 명품인 이유는 ' 논픽션의 픽션化 ' 에 있다.

 

" 각본 없는 드라마 " 가 예측-불가능한 서사라면,  " 각본 대로 진행 " 되는 서사 코드'는 예상-가능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것이 각본 대로 진행되는 서사의 구조'이다.   당연히 예상 가능한 서사는 몰입감과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예측-불가능성이 명품을 만든다.  영화 << 스타워즈 >> 가 명품'인 이유는 다스베이더와 루크가 부자 관계라는 데 있다.  내가 네 애비다, 이눔아  _ 라고 고백할 때,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양키 포데기 신파극은 빛을 발한다.  바로 이런 것이 막장의 품격'이다.  그런데 예측불가능성은 스릴러나 추리 장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영화 << 밀양 >> 이 걸작인 이유는 신애(전도연)의 동선과 행위가 예측 가능한 범위를 넘어 예측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신애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 폭탄 같은 캐릭터'다. 관객은 움직이는 시한 폭탄이 언제 터질 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게 된다.  우리는 신애가 울증일 때도 불안하지만 조증일 때도 불안하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이 캐릭터는 각본 대로 흘러간다기보다는 신의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신애는 창조주가 짜놓은 운명에서 벗어나 있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배우 전도연은 감독 이창동이 짜놓은 각본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켄 로치는 " 내용이 스타일을 결정해야 한다. 카메라와 스타일은 기록하는 대상과 사태보다 중요해져서는 안 된다. " 고 일갈한 적이 있는데, 영화 << 밀양 >> 에서 카메라는 대상보다 앞서 나아가지 않는다. 심지어 신애 곁을 지키는 송강호(종찬 역) 또한 조연으로 머문다. 송강호라는 이 위대한 배우가 액션과 리액션에서 벗어나 밀양의 풍경이 될 때, 이 겸손한 배려에 감동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롯이 신애라는 한 인물에 집중할 수 있다. 씨네21의 남다은 기자가 남긴 20자평처럼 이 영화는 " 판타지 없이도, 구원의 가능성 없이도,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 " 을 묵묵히 보여준다.

이 영화야말로 진정한 각본 없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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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7-08-18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청준 소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밀양의 원작인 ‘벌레 이야기‘는 예전에 읽었던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확실히 명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광주항쟁 이후‘, ‘권위주의 정권의 형식적 소멸 이후‘의 정서와 풍경을 다루었던 여러 작품군들 중에서 밀양에 견줄 만한 관념의 깊이를 보여주는 작품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최근에 호평을 받고 있는 ˝택시운전사˝조차도 그날의 참상을 다시 한번 환기해냈다는 점에서는 상찬을 받을 만하지만, 기존의 광주 소재 작품들에서 얼마나 진전된 시각과 인식을 보여주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제가 보기에는 ˝택시운전사˝조차도 기존 작품들의 전형성과 평범성, 안이한 관점에서 계속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좀 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8-19 06:16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영화를 올해 2번 보았는데, 그 전에는 서사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연기에 관심이 가더군요.
전도연과 송강호, 두 연기만으로도 탁월한 영화입니다.



+

택시운전사.. 음 저는 안 봐서 아직 잘 모르겠군요.. 개인적으로
장훈 감독에 대한 기대치가 전혀 없는 1인이라..

2017-08-21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3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악    인    열    전     :



 




옴므 파탈


 

                                                                                                       담배 연기로 자욱한, 재즈 음악이 흐르는 술집. 고독한 탐정이 홀로 도라지 위스키 한 잔을 들이키며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생각한다. 그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그는 맨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맨드라미를 사랑한다. 탐정의 눈꺼풀이 물에 젖은 휴지처럼 무겁게 내려앉을 무렵, 문을 열고 한 여자가 등장한다. 또각,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 느와르 영화에서 귀뚜라미를 사랑하는 고독한 탐정의 옆자리는 항상 비어 있는 법. 여자는 항상 그 자리에 앉는다. 와와, 형광등 백한 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 !    탐정은 여우에 홀린 듯 넋을 놓고 쳐다보지만 미녀는.......  생깐다, 사내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여자는 주문한다. " 도라지 위스키에 계란 반숙 동동 ! " 허스키한 목소리. 얼굴은 챙 넓은 모자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살짝 미소를 보인 것도 같다. 이때 여자는 가방을 열어 담배 케이스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문다. 느와르 영화에서 미녀는 담배는 가지고 다니지만 라이터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 법. 탐정이 불을 건넨다. 불빛 교환은 곧 눈빛 교환으로 이어진다. 관객은 이 여자가 " 팜므 파탈 " 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 여자는 탐정을 유혹하고 곤경에 빠트릴 것이다. 그것은 느와르라는 장르'가 관객에게 사전에 미리 약속한 코드'이다. 그렇기에 당신이 그 여자의 정체를 미리 알아차렸다며 으스대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팜므파탈의 정체를 관객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탐정만 모를 때 느와르라는 장르는 제대로 굴러간다. 얼핏 보기에는 시작부터 패를 보여주고 시작하는 코드 전략이 흥미를 반감시킬 것 같지만, 사실 장르 영화에서 " 익숙한 코드 " 는 등장 인물을 소개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압축해서 바로 본론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전략'이다. 악당 전문 배우들이 항상 악당으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굳이 악당을 자세히 설명하느라 영화 진행을 지연시키다 보면 스토리 진행이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팜므 파탈이나 옴므 파탈을 소개하는 시간을 절약하면 주요 배역을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데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느와르 영화에서 팜므 파탈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보자마자 첫눈에 그 정체를 알 수 있듯이, 나는 이명박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상종 못할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가 살아온 약사를 훑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다. 숱 없는 머리카락을 동백 기름으로 빗어넘긴 헤어스타일에서 품어져 나오는 악의 기운은 다크했고, 찢어진 눈깔과 앵두 같은 입술에서 탐욕의 스멜을 맡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안개 자욱한 술집 문을 열고 등장할 때부터 탐정의 빈 자리에 앉아서 도라지 위스키에 계란 반숙 동동 _ 이라고 말하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는 유혹하듯이 담배를 입에 물리라. 모르면 등신이지. 그래서 그가 대중을 향해 시베리아 허스키한 목소리로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_ 라고 히죽거릴 때,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조까 !                               우리는 흔히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정의가 반드시 한 번 승리할 때 불의는 반드시 아홉 번 승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단 한번의 정의가 이명박의 목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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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16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때가 무르익었군요. 내 생이 끝나기 전에 이런 판을 볼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503의 업적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8-19 05:51   좋아요 0 | URL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이명박근혜가 엄청난 기여를 했죠..ㅎㅎ

꼬마요정 2017-08-16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명박도 빨리 503처럼 숫자를 받아야 할텐데 말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08-19 05:50   좋아요 0 | URL
이명박 깜빵 가면 504번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7-08-16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9 0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6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9 0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