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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2disc)
이창동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각본 없는 드라마
논픽션 서사가 픽션을 압도할 때 우리는 흔히 " 각본 없는 드라마 "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문장은 쌍팔련도 구닥다리 표현이어서 요샛말로 번역하자면 이거, 실화냐 ? _ 정도 되겠다, 이런 느낌. 잉글랜드 쾌남아 로빈후드와 대결해도 이길 것 같은 구한말 조선 시스터후드 박근혜와 최순실의 " 근친 레즈비언 퀴어 떼강도 강탈 모의극 " 이 좋은 예이다.
그것은 애새끼들이 작당하고 국고를 터는, 졸라 스빽따끌하며 폴리띡하고 다크한 청와대발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이거, 실화냐 ? 현실에서 " 각본 없는 드라마 " 란 일상의 통념과 보통의 상식 그리고 통계에 근거한 평균값을 뛰어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9회말 2아웃, 완봉승을 눈앞에 둔 투수에게 8번 스윙맨'이 때린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처럼 말이다. 이처럼 드라마는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 희소성 " 에 기반을 둔다는 점에서 판타지에 가깝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명연이 돋보이는 최가박당 드라마가 명품인 이유는 ' 논픽션의 픽션化 ' 에 있다.
" 각본 없는 드라마 " 가 예측-불가능한 서사라면, " 각본 대로 진행 " 되는 서사 코드'는 예상-가능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것이 각본 대로 진행되는 서사의 구조'이다. 당연히 예상 가능한 서사는 몰입감과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예측-불가능성이 명품을 만든다. 영화 << 스타워즈 >> 가 명품'인 이유는 다스베이더와 루크가 부자 관계라는 데 있다. 내가 네 애비다, 이눔아 _ 라고 고백할 때,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양키 포데기 신파극은 빛을 발한다. 바로 이런 것이 막장의 품격'이다. 그런데 예측불가능성은 스릴러나 추리 장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영화 << 밀양 >> 이 걸작인 이유는 신애(전도연)의 동선과 행위가 예측 가능한 범위를 넘어 예측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신애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 폭탄 같은 캐릭터'다. 관객은 움직이는 시한 폭탄이 언제 터질 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게 된다. 우리는 신애가 울증일 때도 불안하지만 조증일 때도 불안하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이 캐릭터는 각본 대로 흘러간다기보다는 신의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신애는 창조주가 짜놓은 운명에서 벗어나 있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배우 전도연은 감독 이창동이 짜놓은 각본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켄 로치는 " 내용이 스타일을 결정해야 한다. 카메라와 스타일은 기록하는 대상과 사태보다 중요해져서는 안 된다. " 고 일갈한 적이 있는데, 영화 << 밀양 >> 에서 카메라는 대상보다 앞서 나아가지 않는다. 심지어 신애 곁을 지키는 송강호(종찬 역) 또한 조연으로 머문다. 송강호라는 이 위대한 배우가 액션과 리액션에서 벗어나 밀양의 풍경이 될 때, 이 겸손한 배려에 감동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롯이 신애라는 한 인물에 집중할 수 있다. 씨네21의 남다은 기자가 남긴 20자평처럼 이 영화는 " 판타지 없이도, 구원의 가능성 없이도,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 " 을 묵묵히 보여준다.
이 영화야말로 진정한 각본 없는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