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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마이 페어 레이디 : 50주년 기념판
조지 쿠커 감독, 오드리 헵번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16년 3월
평점 :
숙녀와 새
그는 노란 앵무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앵무새인데 말하는 재주는 없다고 했다. 말을 가르칠 요량으로 날마다 앵무새 앞에서 " 토킹 어바웃 " 을 했지만 앵무새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퉁명스럽게 앵무새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말하는 것을 흉내 내는 것이므로 의사 전달 행위라 볼 수 없기에 대화를 나눌 대상은 아니 _ 라고 말하자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나를 찾아와서 이런 고백을 했다 : 형, 처음에는 앵무새에게 말을 가르치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온종일 앵무새에게 넋두리를 늘어놓게 되었어. 대화 상대가 생긴 거지. 내 말을 들어주는. 고맙더군. 처음에는 교화해야 될 대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친구가 되었어. 그 후로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다음해 여름'이었다. 우리는 낮술을 하기 위해 대폿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앵무새는 잘 있어 _ 라고 묻자 그의 얼굴이 먹장구름처럼 어두워졌다. 아차, 싶었지만 늦었다. 그는 대폿집에서 울기 시작했다.
버나드 쇼의 희곡 << 피그말리온 >> 은 시골뜨기 처녀에게 세련된 도시 표준 교양어(말투)를 가르치려다가 사랑에 빠지는 언어학 교수와 여자의 이야기다. 이 희곡은 << 마이 페어 레이디 >> 라는 뮤지컬 영화'라 만들어지기도 했다. 촌구석 시골뜨기 처녀 역을 오드리 햅번이 연기했다. 아우라'란 이런 것이다. 올림머리를 풀어헤쳐 봉두난발을 한다고 해서 수감 중인 503호로 보이는 것은 아니니까. 오드리 햅번은 촌구석 시골뜨기 처녀 역을 하기에는 너무나 우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일라이자 두리틀(오드리 햅번)을 무난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발성법에 있다.
듣기 싫은 새된 목소리가 형광등 백한 개를 깨트렸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앵무새 때문에 울었던 그 친구가 생각난다. 새에게 말을 가르치려다 사랑에 빠진 그와 하층민 여자에게 상류층 말(투)를 가르치려다 사랑에 빠지는 교수가 겹쳐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언어학에서 중요한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 능력이 아닐까.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은 현란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사람보다 우위를 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