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지 않되 흔드는 법 !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ㅡ 서서비행 148쪽, 금정연



작가의 문장 스타일을 보면서 가끔 작가의 술버릇을 상상하곤 한다. 꺾어 마실까 ? 흔들어서 마실까 ? 아니면 맛있게 말아서 ?? 예를 들어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의 마르셀 프르스트는 술집에 가면 왠지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하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 흔들지 말고 빨대로 저어주세요오오오옹. ” 그러고는 프랑스 조개과자 안주 서비스 없냐고 묻겠지. 홀짝, 홀짝, 홀짝. 참새처럼 칵테일 한 모금에 입술을 적시며 조개과자 반 쪽. 그는 칵테일 한 잔을 마시면서 조개과자에 대해 장장 세 시간에 걸쳐 혼잣말을 할 것이다. 뭐, 조개과자를 앞에 둔 한 남자의 내면 고백이라고나 할까.


반면에 << 보봐리 부인 >> 의 플로베르는 파티 모임에 참석하여 얼음과 각종 과일을 둥둥 띄운, 대형 유리그릇에 담긴 과실주를 커다란 국자로 휘저으며 퍼마실 것 같다. 엄지와 검지로 체리를 건져 올리고는 음, 맛있다해, 맛있다해. 띵호와~ 땅호와 ~ 프랑스 사람이 비단 장수 왕 서방 말투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 글이 사실적 근거는 조또, 아니 1도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의 느낌이 시냅스를 타고 섹시한 등골을 지나 여름 장마철 북상하는 태풍의 이동 경로처럼 빠르게 5번 척추와 6번 척추를 강타한 후 나의 뇌하수체에 삼 파장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 뿐이다. 아, 됐고.


여기 한 사내가 있다. 바의 구석진 곳에 앉은 그는 말이 없다. 바텐더가 묻는다.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사내는 말한다. 소삼맥칠(소주3 맥주7), 젓지 말고 흔들어서 묻지 말고 따블로 !! 이 사내의 이름은 조지 오웰.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 여성. 그에게로 다가간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 챙 넓은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여자가 담배연기를 남자의 얼굴에 냅다 쏟아내며 수작을 건다. “ 어머, 우리 귀여운 말라깽이 영국 아저씨래 오데로 가는 길이실까나 ? ” 사내는 이렇게 대답하리라. “ 위건 부두 가는 길(1936)이오. ” 바텐더는 여자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정보를 흘린다. “ 버마 시절(1934), 경찰 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얼마 전에 그만 뒀디요. 그 후,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1933)을 하시었습네다. ” 여자는 영국 남자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소맥을 젓지 않고 흔들어 마신 남자는 짖지 않고 (꼬리나) 흔드는 푸들은 되고 싶지 않았소 _ 라고 대답한다. 점점, 그 남자가 사용하는 하드보일드한 랭귀지의 조탁 능력과 피 끓는 웜바디에 빨려드는 여자. 여자는 남자에게 정열의 빨간 추파춥스를 던진다. 무림고수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치, 치치치명적 필살기. “ 오늘 저와 뜨밤 어때요? ” 남자는 냉정하다. “ 우린 서로 어울리지 않아(하이스미스 소설 제목) ” 민망한 여자, 신경질적이다. “ 어머, 나 이대 나온 여자야아아악 !!! 겁 없이 까칠하시다. 아니, 까칠해서 겁이 없나. 호호호.” 남자는 술에 취한 듯 혼잣말을 한다. “ 위선 말고 오로지 직선 !! ” 


조지 오웰의 책 세 권(위건 부두로 가는 길, 버마 시절, 나는 왜 쓰는가) 속 문장들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한 그는 이런 모습이었다. 그는 핵심을 에둘러 말하지 않고 서둘러 말하지만 조급하지 않고 여유가 있다. 또한 진지하지만 정색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오웰의 문장은 감성에 젖지 않되 마음을 흔들 줄 안다. 전형적인 내유외강의 문장이다. 앗, 외유내강이었던가. 이런 그가 달달한 칵테일이나 홀짝홀짝 마실 것 같지는 않다. 공업용 알코올이 그대의 오장육부를 녹이더라도 잔을 꺾는 법은 없으리라. 그는 무조건 스트레이트 원 샷 풀 배팅하는 남자. 허억,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으으. 물론 이것은 오로지 나만의 느낌적 느낌의 느낌이다. 느낌..... 아니까 !


명료한 언어의 적은 위선이라고 강조했던 오웰은 << 나는 왜 쓰는가 >>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중략)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문장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 


20세기 영국 작가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작가는 누구냐고 묻는다면 조지 오웰을 뽑고 싶다. 제국의 개가 되어 불의에 짖지 않고 (꼬리나) 흔드는 일을 거부했던 조지 오웰은 내게 “ 감성에 젖지 않되 마음을 흔드는 방법 ”을 가르쳐준 인물이었다. 그의 가르침을 따라 소맥을 탈 때 (젓가락으로) 젓지 않되 (맥주잔만) 흔들어서 맛있게 주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웽?! 캬, 이 맛에 소맥을 만다. 이게 다 오웰 덕분이다. 


그는 문학사에서 언과 행이 완벽하게 일치했던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평소에는 입 바른 소리를 하던 사람도 정작 자신의 문제로 귀결되면 반갑게 꼬리를 흔들다가도 느닷없이 이빨을 드러내기 마련. 프랑스적인 너무나 프랑스적인 카뮈는 죽을 때까지 알제리의 독립을 반대했다. 제국의 시민이었던 그의 변명이 명불허전이다. 프랑스 제국으로부터의 알제리 식민지 독립이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엄마의 안녕이오, 라고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카뮈에게 실망했다. 엄마가 죽었다, 라는 문장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은 그가 피식민지 국가의 자유보다 우리 엄마 개인의 안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마마보이였다는 사실에 실망한 것이다. 일본 제국의 식민지 시절을 경험했던 한국인으로서 솔직히 카뮈에게 죽빵 한 대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당시, 프랑스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죽은 알제리 사람은 100만 명이 훌쩍 넘었다. 주로 프랑스 군경이 자행한 고문과 집단 학살의 결과였다. 고다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마오이스트라고 부르고 철저하게 사회주의 노선을 주장하며 제 3세계 식민지 국가의 독립과 자유를 외쳤던 그는 정작 베니스 영화제에서 알제리의 독립 투쟁을 그린 걸작 << 알제리 전투 >> 가 상영되자 항의 표시로 그 자리를 박차고 퇴장했다. 영화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메시지인 셈이다. 그들은 결정적 순간에는 제국주의 승냥이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제국주의의 위선을 낱낱이 고발했던 오웰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을 한 것이다. 오웰은 1950년 1월 21일, 눈을 감는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조지 오웰을 추천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 묻지 말고 오웰로 가. 이유는 없어. 오웰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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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2023-01-1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근데 1984읽고 조금 오웰을 다시 생각하고 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23-01-19 11:41   좋아요 0 | URL
오, 반가워요. 기억 님. 1984에 대한 다른 생각이 궁금하네요.

1905 2023-01-20 11:26   좋아요 2 | URL
저도 오디오북으로 1984 다시 들었는데 여성을 묘사하는 부분이 너무 실망해서.. 이게 젊었을 때는 그걸 못 느꼈는데. 첫장면은 솔직히 강간 시도거든요. 범죄고.. 만약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그 다음으로 그건 범죄다라고 인식하는 장면이 나왔다면 1984의 첫장면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었을 건데.. 명백히 범죄자의 마인드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오늘 내려가서 바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3-02-12 07:14   좋아요 0 | URL
헉, 그래요. 전 이 작품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생각이 나지 않넹ㅅ,
그 당시에는 확실히 여성에 대한 인식이 성립되지 않았었죠.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읽어야겠네요.
댓글 늘 늦어 미안해요. 제가 알라딘 방문이 뜸해서요. 건강하시죠 ?

1905 2023-02-12 11:14   좋아요 0 | URL
네~ 건강 한 것 같은데, 이번에 장염 걸려서 엄청 고생했어요. 장염인데 오한과 근육통과 헛구역질때문에… 감기인 줄 알고 오인해서… 아무래도 저 때 여성을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야할 개인으로 보기엔 힘들었을 것 같긴 해요. 유럽이 여성참정권도 늦게 도입돼서.. 우리 나라가 생각보다 근대화나 현대화 과정이 빠른 나라더라고요!! 곰발님도 건강하세요!!! 늦는 답변에는 그렇게 신경쓰지 않어요!!
 
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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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객관화라는 환상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던져보자. " 사실적 ㅡ " 와 " 사실 ㅡ " 은 동일한 말일까 ?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둘러 결론을 말하자면 " 사실적 표현 ㅡ " 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표현(유사성)을 했다는 뜻이지, 사실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학생 A는 저녁 7시까지 공부하고 나서 8시에 술집에서 소주를 급하게 병나발 분 후 식당 종업원과 싸운다. 그리고 9시에 집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두고 " 학생 A는 저녁 7시까지 도서관에 남아 공부했다. 그는 9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 라고 했을 때 이 문장은 사실적인가 아니면 사실인가 ? 


사실을 나열하는 것과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는 것은 같은 듯하지만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혼동한다. 책(이나 영화) 읽고 나서 잘난 척하기로 유명한 내가 1년 전에 에니 아르노의 << 단순한 열정 >> 이라는 책을 읽고도 그동안 안 읽은 척했던 이유는 이 소설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이웃들이 이 소설을 극찬했던 터라 똥물을 붓고 싶지 않았던 것. 그래서 뒤늦게 느닷없이 고백한다. " 난 이 책, 존나 구렸어.... " 


이 소설을 소개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앵무새처럼 똑같은 멘트를 친다. " 에니 아르노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 " 다시 말해서 에니 아르노는 " 사실적 ㅡ " 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제거하고 " 사실 " 만을 적시하는 작가라는 것이다. 요즘 한국 문학에서 유행하는 오토 픽션1)의 대가라는 것. 오, 마이, 갓. 지저스, 크리스마스, 이브다야.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사실 그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 단순한 열정 >> 은 자전 소설이 아니라 자전적 소설인 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감정에 100% 솔직할 수 없다. 완벽한 자기객관화란 허상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종류의 오토 픽션에 대하여 시큰둥한 편이다. 일단, 재미가 없다. 자기 스스로를 굉장히 솔직하다고 믿고 있는(착각하고 있는) 작가에게 조금 질리기도 한다. 이 작품은 에세이로써는 훌륭할지는 모르지만 문학으로써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나 이렇게 솔직한 사람이야, 라고 자랑하는 작가보다는 차라리 내 구라에 속았지롱, 이라고 말하는 스티븐 킹이 낫다. 소설의 궁극적 재미는 뻥이다.







1) 내가 모 이웃에게 남긴 댓글 : 라면을 끓였다고 했을 때 보통 그것을 " 자신이 만든 요리 " 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식품 공장에서 만든 상품에 불과하니까요. 스프를 넣고 면발을 익혔다고 해서(그것은 요리가 아니라 단순히 음식에 불과합니다) 내가 만든 요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사실이라는 재료 몇 개를 정직하게 이어붙였다고 해서 그것이 문학적 문장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면이 요리가 되려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 고유의 레시피가 요리에 반영이 되어야만 합니다. 라면을 끓일 때 콩나물도 넣고, 전복도 넣고, 재료를 넣는 순서도 독창적이어야 아무개표 요리가 되죠. 저는 이 과정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이라는 재료(면발, 스프)에 덧대어 콩나물,전복, 조미료 첨가, 불의 세기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적재적소에 적용할 때 좋욘 문학적 문장이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오토 픽션이라는 게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토 픽션 주장하면서 트위터에서 쓰던 글 무단으로 인용해서 작품이랍시고 내놓는 작가들 보면 아 이 인간들은 라면을 끓이고는 " 아, 나 오늘 집에서 열심히 라면 요리를 만들어서 먹었어. "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웃기더라고요. 작가라면 적어도 음식과 요리의 차이는 분별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렵니다. 멍청아, 그것은 너의 요리가 아니라 농심에서 만든 신라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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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4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4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시 한 번 헤어질 결심















페니스를 라틴어로 팔루스'라고 합니다. 팔루스는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가죽 인공물입니다. 고대 연극에서 팔루스라는 장식 도구를 착용한 등장인물은 권력자라는 뜻입니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절대반지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죠. 여러분, 제가 누굽니까. 대한민국 제1호 범성론자로서 팔루스 감별사 아닙니까 ? 영화 << 헤어질 결심 >> 예고편에 등장하는 산 정상을 보았을 때 느낌이 오더군요. 아, 저, 저저저것은 팔루스로구나. 

 

추락 사고가 발생한 산 정상을 보십시오. 누가 봐도 딱딱한 남근상(팔루스)이죠. 저는 우뚝 솟은 바위산 정상의 갈라진 틈을 보고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오모모. 박찬욱 감독, 참 에로틱하게 디테일 허시다. 거시기하죠. 실제로 저 장소가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귀두봉이라고 부를 겁니다. 팔루스의 정상에서 여자가 남자를 떨어뜨려서 죽인 행위는 상징적 거세를 뜻합니다. 제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몇 번이나 소개한 적이 있는데 남성 성기를 거세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여성을 " 바기나 덴타타 " 라고 합니다. " 이빨 달린 질 " 이란 뜻이에요. 여성 성기에 이빨이 달려서 남성이 삽입하는 순간, 뜨아 !!!!!!!!!! 


그런 점에서 여자 서래는 바기나 덴타타 괴물입니다. 그녀는 이빨 달린 여성 성기 요괴죠. 원래, 요괴라는 것이 굉장히 아름다운 괴물이에요. 대표적인 바기나 덴타타 괴물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모두 아는 괴물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 괴물 세이런입니다. 안개 자욱한 바다에서 사람 귀를 홀리는 노래가 들려옵니다. 뱃사람들은 그 소리에 홀려 뱃머리를 돌려 소리의 근원을 찾아가다가 난파하죠. 설화 속 바기나 덴타타는 주로 축축한 늪의 검은 동굴에 삽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검은 동굴과 축축한 늪이라는 표현에서 감 잡으셨을 겁니다. 그래요, 여성 자궁의 은유죠. 


이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상징적 장소를 보여줍니다. 산과 바다죠. 설명했다시피 산은 팔루스의 지정학적 장소이고 바다는 바기나 덴타타의 지정학적 장소입니다. 저의 과도한 해석이 아닙니다. 두 가지 버전의 영화 포스터를 보십시오. 박해일의 뒷 배경은 산이고 탕웨이의 뒷 배경은 바다입니다. 뭐, 이 정도면 빼도 박도 못한 감독의 결심인 셈입니다. 



종합하면  :  이 영화는 팔루스 vs 바기나 덴타타의 빅 매치인 겁니다. 킹콩 vs 공룡의 대결 같은 것이죠. 제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국어사전은 남성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남성 언어'의 결정체라고 말이죠. 한국어 사전만 해도 그렇습니다. 유교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서열입니다. 모든 단어는 여성보다 남성이 앞자리를 차지합니다. 사전에 남녀라는 단어는 있지만 여남이라는 단어는 없죠. 심지어 Ladies and gentlemen 을 번역하면 숙녀 신사 여러분이 아니라 신사 숙녀 여러분으로 번역이 됩니다. 하지만 딱 한 번, 여자가 남성보다 상위 포지션을 차지할 때가 있습니다. 


궁금하시죠 ? 두구두구두구두구,,,,,,, 욕 할 때 순차의 역차가 발생합니다. 그 단어가 바로 " 연놈 " 이라는 낱말입니다. 사전에서 " 놈년 " 이라는 단어 보셨습니까 ? 단어가 욕으로 사용될 때에는 여자가 남성보다 앞섭니다. 조상 어르신의 꼼꼼한 꼼수에 혀를 차게 되죠. 꼼꼼허시다. 사전이야말로 남근중심주의적 시각이 반영된 결정체입니다. 철학사를 공부하다 보면 남성은 이성(로고스)을 상징하고 여성은 감정(파토스)를 대표했습니다. 로고스는 이성과 함께 언어로 발화된 말이라는 뜻으로 로고스는 파토스보다 우월합니다. 이것을 로고스 중심주의라고 합니다. 남근중심주의와 로고스 중심주의는 모두 남성성의 우월을 강조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남근중심주의와 로고스중심주의를 합쳐서 " 팔루스로고스중심주의(남근이성중심주의) " 라는 개념을 고안하고서는 사냥개처럼 남근이성중심주의(팔루스로고스중심주의)를 비판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자 주인공 서래는 남근이성중심주의 시각에 반대하는 여성 괴물이므로 바기나파토스중심주의의 주체라고 할 수 있죠. 서래西來, 서쪽(중국)에서 온 여자는 국어사전의 체계를 비틀어버립니다. 서래가 발화하는 " 마침내 ㅡ " 의 뜻은 국어사전의 그 뜻과는 미묘하게 다르고,  발화된 마침내를 받아들이는 형사들은 서래가 사용한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해 합니다. 서래는 그 모습을 보면 재미있다는 듯 웃습니다. 저는 이 행위를 남근이성중심주의의 결정체인 국어사전의 체계를 파괴하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제가 언젠가 그런 주장을 했었죠 ? 페미니즘의 시작은 국어사전에 기록된 남성중심주의 언어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은 여성학보다는 언어학에 가깝다고 말이죠.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그것을 자살이라고 생각했지만 제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서래는 바다에 익사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던 집으로 컴백홈 한 겁니다. 


말했잖아요. 서래는 서쪽에서 온 바기나 덴타타 바다 괴물이라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 한바탕, 신나게 놀고 가요. 여러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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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2-07-20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곰발 님 글 올만에 봅니다.
헤어질 결심, 얼릉 봐야하는데, 아직까지 못봤다는...근데, 저 포스터 배경이 참으로 심오한 상징을 가졌구료~
가만 보니, 사진이 아닌 그림같기도 합니다..어쨌거나 반갑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2-07-20 15:31   좋아요 0 | URL
오, 야무 님. 방가방가 ~ 야무 님이야말로 얼릉 돌아오십셔.

포스트잇 2022-07-20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엔딩해석이 기가 막힙니다^^ 그러네요.
컴백홈이네요.

그리고, ‘연놈‘에서 빵 터졌습니다. ㅋㅋ 아니, 그런 건 어떻게 찾으신답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22-07-20 15:33   좋아요 1 | URL
전 화장실 수건함에 수건 대신 국어사전이 있어요. 화장실 갈 때마다 국어사전을 펼쳐서 한 꼭지 읽는데 연놈이라는 단어가 있더라고요. 전 이게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조선인 2022-07-20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영화 꼭 봐야겠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2-07-21 15:17   좋아요 0 | URL
평점 높은 걸 보니 이견은 없을 듯합니다.

감은빛 2022-11-2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고 나서 제목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어요.
나중에 다시 한번 더 봐야 제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랜만에 이 서재에 놀러와보네요.
잘 읽었습니다. ^^

마음의 꿈 2023-07-1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지못했던 시각으로 해석한 ‘헤어질 결심‘ 공감이 가는 해석입니다. 감사^^

마음의 꿈 2023-07-1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헤어질 결심 인가?...잽을 한번 날려 봤지만 아직은 공존할 수 없는 현실이라 일단 한발작 물러설수 밖에 없는...
 
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밀레니얼 춘 향 전  :  90년생은 없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 숙종. 전라도 남원 마을에 월매라는 기생이 살았는디. 늦은 나이에 딸 춘향을 낳았어라. 월매가 보기에 춘향이 월매나 예뻤드래요. 세월이 흘러 춘향 나이 열여섯 나던 해. 남원 사또 아들 몽룡이 하는 짓이 방자하여 이름이 방자인 방자를 데리고 꽃 구경 하다가 아, 글쎄 그만 ~ 얼쑤. 꽃 중의 꽃을 만났어라. 그 이름 춘향이렷다. 


둘은 첫눈에 하트가 뿅뿅하고 버터가 러브하니 지금 이 소리는 심장 박동 소리인가, 대포 터지는 소리인가 ? 몽룡과 춘향 커플은 그 시대의 새파란 젊은이답게 시대에 불온하고 발칙하였으니 업고 놀고 누워 놀고 덮고 노니 날마다 눈 뜨면 섹스라. 스포츠에도 능통하니 승마와 레슬링은 기본이렷다. 몽룡이 말하길 : 오늘도 너와 나 홀딱 벗고 사랑질이나 좀 해보자꾸나. 춘향 백일홍 붉어 말하길, 아이 잡성스러워라. 나는 부끄러워 그리 못 벗겠소 _ 하며 옷고름 풀어헤치니 몽룡의 모든 피가 아래로 남하하는지라. 추, 추추추춘향아. 너,너너너너너너만 보면 후끈 달아오르는구나. 


춘향전 판소리 이야기다. 두 사람은 관혼상제의 예를 갖추는 것이 목숨보다 중요했던 유교사회에 그 모든 혼례를 생략하고 물 한 그릇 올리고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파격이라 할 만하다. 몽룡과 춘향의 러브스토리는 한국인이라면 모를 리 없다. 조선시대 청춘남녀 상열지사를 통해서 그 시대의 세대 분석을 하자면 몽룡과 춘향은 "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 " 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몽룡과 춘향은 누구보다도 자기 감정에 정직하다. 또한 몽룡이 어렸을 때부터 방석집을 드나들며 주색에 빠졌다는 점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젊은이이기도 하다. 


그 정점은 암행어사 출두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암행어사가 된 몽룡은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변사또에게 수청 들기를 거부한 춘향에게 농을 건다. 재미는 못 참지롱. 또한 복잡한 혼례 절차를 생략하고 그들 만의 간소한 혼인을 치룬 점으로 보아 이들 커플은 허례허식을 타파한 젊은이이다. 그 시대의 문학이 당대의 세태와 세대 특징을 반영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조선시대 젊은이들은 놀기(재미) 좋아하고, 복잡한 허례허식을 싫어하며(간단), 자기 감정에 솔직한(정직)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비단 조선시대 젊은이들 만의 특징일까 ? 


세월이 흘러흘러, 21세기 대한민국. 임홍택은 << 90년생이 온다 >> 라는 책을 통해서 밀레니얼 세대만이 가지고 있는, 그 전 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세대 특성을 발견한다. 그가 이 책에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90년생의 특징은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원들에게 이 책을 선물했고, 티븨 앞에 선 문화평론가나 서평가들은 90년생을 신인류의 탄생으로 묘사했다. 두둥 ~ 지금까지 이런 세대는 없었다 ! 이것은 지구인인가,  외계인인가. 


90년생은 이 책의 예리한 통찰에 맞짱구를 치며 호들갑을 떨었고 꼰대들은 지못미를 외치며 꼰대 탈출을 외쳤다. 저자의 분석이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다면 몽룡과 춘향 또한 밀레니얼 세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몽룡과 춘향 커플은 시대를 앞선 인물일까, 아니면 밀레니얼 세대가 지나치게 레트로 지향적 세대일까 ?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은 엉터리라는 점이다. 세대의 보편성을 세대의 특이점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마치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만큼이나 멍청하고, 멍청하고, 멍청하며, 또 멍청한 일이다. 니체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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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는 왜 록의 뺨을 때렸나 ?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유명 코미디언 크리스 록은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를 상대로 농담을 던진다. 카메라는 이미 크리스 록이 제이다를 향해 농담을 던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크리스가 입을 떼자마자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윌 스미스 부부를 향한다. 그리고는 모두 다 알고 있다시피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뚜벅. 뚜벅. 뚜벅. 뚜벅 그리고 불꽃 싸다구. 윌 스미스가 크리스 록의 뺨을 풀스윙으로 후려친 것이다. 와우. 가십 천국인 할리우드에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꽃 싸다구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갔다. 


한국인의 반응은 대체로 피해자가 맞을 짓을 했다와 가해자가 때릴 만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인이 윌 스미스 편에 선 이유는 가족주의다. " 가족을 건드리는 것은 못 참지 ㅡ "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생각도 ?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윌 스미스를 응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글은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윌 스미스를 옹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윌 스미스, 이 새끼. 너무 좆같다. " 종종 페미니즘 관점에서 크리스 록의 살인 조크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핑계로 윌 스미스를 옹호하는 것이다. 


윌 스미스는 가족을 대표하는 남편이자 여성을 지켜야 하는 남자라는 것이다. 놀라운 해석이다. 오히려 이러한 해석은 페미니즘적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제에 대한 열렬한 옹호처럼 보인다. 가족을 대표하는 사람이 왜 반드시 윌 스미스여야 할까 ?  제이다의 인물 파워(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토크쇼 진행자다) 역시 남편 못지 않은 데 말이다. 크리스 록의 조크에 화가 났다면 따귀를 때릴 사람은 제이다이지 윌 스미스가 아니라는 말이다. 윌 스미스는 제이다와 그 어떤 상의도 없이 그녀를 대변한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자신의 아내는 의사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란 것처럼. 


내가 이 사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윌 스미스의 남성성 과시'였다. 그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무대에서 "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남자 " 를 연기한 것이다. 그는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리고는 스스로 자신이 멋져보였을 것이다. 이 초유의 사태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카메라맨이다. 카메라맨은 크리스 록이 무대에 오르면 제이다를 향해 농담을 던질 것이란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  그가 제이다를 향해 입을 떼자마자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카메라는 미리 제이다의 반응을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크리스 록의 즉흥적 농담이 아니라 미리 대본에 의해 정해진 발화라는 것을 말해준다.  크리스의 선 넘은 농담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따귀를 맞을 정도로 해악하다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용인한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더 나쁜 놈들이다. 가족주의의 핵심은 가부장제'이다. 그리고 그 가부장제의 핵심은 폭력적인 아버지'다. 폭력적인 아버지 없이는 가부장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권위적인 가부장제 없이는 가족주의도 없다. 한국인이 윌 스미스를 지지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가족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가부장제의 오랜 폭압에 길들여져 있어서 아버지의 폭력에 대하여 관대하다. 골때리는 지점이다. 아버지의 폭력을 증오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폭력이야말로 우리 가족을 지키는 힘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이중적 태도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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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22-04-03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의 글은 늘 시원시원합니다. 저도 이 소란을 보며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더 반갑게 읽었습니다.

잘 지내시죠? 일 없이 걷고 뛰어도 좋은 일요일 오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래요.

곰곰생각하는발 2022-04-07 14:17   좋아요 1 | URL
아, 초원 님.. ㅎㅎ 잘 지내고 있습니다. 초원 님도 무탈하시지요 ? 댓글이 늦었네요. 자주 오는 편은 아니어서....

. 2022-04-23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 잘 보내고 계십니까? 갑자기 옛 생각에 그리워서 글 남기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여.

고라니 2022-06-02 16: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습니다. 곰발님 의견도 일리가 있지만 제 생각에는 코미디/농담에 대한 수용 문화의 차이가 더 큰 거 같은데요. 미국도 마초적이고 가족주의적인 면이 있는건 한국 이상이기도 하고.. 미국에선 아무래도 농담의 수위에 대해 더 관용적이죠. 우리나라에선 부모 욕(싸우다가도 엄마욕 한 쪽이 무조건 잘못)이 엄청 큰 잘못이지만 your mama 조크가 미국에선 흔하거처럼요. 그리고 미국에서는 싸우스 파크나 패밀리 가이 같은 쇼가 무려 TV에서 방송하고 수십년째 장수하는데 이건 한국에선 없는 일이니까요.. 일례를 들면 패밀리 가이에선 졸업 무도회에 여학생이 무도회장 쓰레기통에 버린 신생아가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노래하는 조크가 있고 싸우스 파크에서는 카트맨이 자기를 괴롭히던 애의 부모를 죽여서 믹서기로 갈아서 요리한 다음에 속이고 먹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걸 한국에서 (특히 tv에서) 시도했다간 그야말로 엄청난 스캔들이 되겠죠.. 방송이 되지도 않겠지만. 하지만 미국에선 저런 쇼가 그냥 평범하게 tv에 나올뿐만 아니라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 때문에.. 코미디에서 가능한 수위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훨씬 관용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저렇게 코미디에 관용적인 미국 사회에서 겨우 대머리 조크로 뺨을 때린건 심한 무리수죠..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에서는 가족은 안 건드는게 상례고 농담의 수위에 훨씬 엄격하니까 미국 코미디 문화에 익숙지 않아서 좀 엇나간 반응을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2-06-01 11:18   좋아요 1 | URL
고라니 님, 댓글 읽다 보니 미국 청소년들은 크면 부모를 욕하면서 집을 떠나고 한국 청소년들은 크면 부모에게 붙어서 집에 안주한다는 뭐 그런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그러한 성향이 이번 사태의 반응이 상대적으로다르게 나타난 것 같네요. 아마도 개인주의와 가족주의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미국 스탠딩 코미디 보면...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도 있고.. ㅎㅎㅎㅎ 뭐, 그렇습니다.

고라니 2022-06-02 17:02   좋아요 1 | URL
네 그렇기도 하죠 ㅎㅎ 우리나라에선 결혼 안 한 성인 자녀가 부모랑 같이 사는게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닌데, 미국에서는 basement dweller라고 심하게 조롱 당하니까요. 근데 미국이나 유럽도 주택 문제가 심각해서 점점 용인되는 분위기인거 같긴 합니다.. ㅎㅎ
제목을 다시 보고 생각난 건데, 처음에 ‘스미스가 록의 뺨을 때렸다‘는게 그룹 The smiths가 록음악의 뺨을 때렸다는 얘긴 줄 알고 들어왔었네요. ㅎㅎ 글 재밌게 읽고 있으니 바쁘셔도 가끔씩 써주시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