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길 -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낸시 프레이저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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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돌아왔다. 오늘날 과도한 부채, 불안정한 노동, 위협받는 생계, 퇴보하는 공공 서비스, 무너지는 인프라, 인종화된 폭력, 극단적인 기후 등 혹독하기 이를 데 없는 위기 속에서 수십 년 동안 거의 쓰이지 않았던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곳곳에서 다시 불려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귀환은 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그 위기의 극복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갈망하는지 보여주는 표식이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의 첫 번째 핵심 특징은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다. 다수 대중이 관습적으로 갖고 있던 공유지와 공유 자원을 소수가 사적으로 소유하면서 생계수단과 생산수단을 잃어버린 대다수 민중은 노동시장으로 나오게 되었다.

두 번째 특징은 '자유로운 노동시장'이다, 생산수단에서 분리된 다수 대중이 생계를 위해 내몰린 노동시장은 자유로웠다. 노예가 아닌 계약 노동자이기에 법률적으로 자유웠고, 동시에 생계수단과 생산수단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자유로이 쫓겨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임금 노동밖에 없었다.

세 번째 특징은 '자기' 확장이다. 자본주의는 '자본 축적'이라는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추진력을 갖추었다. 자본가가 행하는 모든 행동의 목적은 자기 자본의 확장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자본의 졸(卒)일 뿐이며, 자본 그 자체가 주체이다. 자본은 끊임없이 자기 확장을 추진한다.

네 번째 특징은 '시장'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시장은 늘 존재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은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생산 요소 마저 시장에서 할당함으로써 이들을 상품으로 변형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의 잉여를 인간의 복지가 아닌 시장의 메커니즘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러나 우리가 물려받은 위기 이론은 경제 측면에만 집중하고, 생산 노동을 둘러싼 투쟁에만 몰입한다. 금융 등의 경제적 위기 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 돌봄 결핍, 공적 권력의 유명무실화 같은 비(非)경제적 현상까지 포괄하는 현재의 다차원적 위기에는 우리가 물려받은 표준적인 자본주의 모델이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 제 1권에서 시장 교환이라는 통상적 시각 이면에 자리한 '생산'이라는 '감춰진 장소', 즉 '착취'로 우리를 이끌었다. 이 책은 이제 착취보다도 더 꽁꽁 감춰진 그 이면으로 우리를 안내하고자 한다. 착취를 가능하게 하고, 자본주의 생산이 이뤄질 수 있게 하는 배경 조건. 자본주의 DNA에 각인된 특징, 그것은 바로 제 살 깎아먹기의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다.

1. 상품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임금 노동은 사회-재생산 활동의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 출산, 가사, 육아, 학교, 정서적 돌봄 같은 '사회적 재생산' 이 없었으면, 상품 생산은 존재할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유급 노동이 남성과 결합되어 노출되어 있는 동안, 무급 재생산 노동은 여성과 결합되어 '사적' 가정의 영역으로 유폐되어 숨겨져 왔고, 자본은 공짜로 그 혜택을 누려왔다. 이것은 사회적 재생산의 제 살 깎아먹기이다.

2. 경제에서 생태로
자본은 생산 투입물의 원천이자, 생산 폐기물의 하수구인 자연 위에서 존재한다. 여기서 자연은 자본울 위한 자원이지만, 회계에서 자연은 제로 비용으로 처리된다. '자연은 스스로 무한히 회복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아무런 수선이나 보충이나 화해도 없이 헐값이나 무상으로 사용한다. 여기에 신자유주의는 '더 많은 자연'을 시장으로 끌어들였다. 이것은 자연의 제 살 깎아먹기이다.

3. 경제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사기업과 시장 교환이라는 자본주의는 법률 시스템이라는 공적 권력의 기반위에서 존재한다. 재산권을 보장하고, 계약 내용을 강제하고, 분쟁을 심판하고, 반자본주의 저항을 진압하고, 화폐를 공급하고, 지구적 패권을 이어가는 등, 점점 더 지구화하는 자본주의 경제는 영토 국가들의 국제 시스템이라는 정치 체제를 기반으로 한다. 이것은정치의 제 살 깎아먹기다.

4. 착취에서 수탈로
착취는 자유 계약에 따른 교환으로, 노동자의 '잉여노동시간'을 전유하여 자본을 축적하는 반면, 수탈은 자본가가 타인의 자산을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채 폭력적으로 징발하여 자본을 축적한다. 식량, 소비재 등 수탈로 이루어진 낮은 재생산 비용은 착취받는 임금 노동자가 저임금을 받고도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 즉, 착취는 수탈의 밑받침위에서 높은 이윤을 거둔다.

착취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는 개인과 시민에 해당하여 국가에 의해 보호받고, 자기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 반면 수탈의 대상이 되는 '타자', 즉 동산 노예, 식민지 예속민, 정복당한 '원주민', 부채 노예, '불법 체류자', 유죄 확정 중죄인, 인종분리국가와 그 예속민 등은 부자유하고 종속적인 존재로서, 정치적 보호 바깥에 권리없이 억압된다. 수탈은 인종적이면서 동시에 제국주의적인 억압이며 제 살 깎아먹기의 토대 노릇을 했다.

(저자는 착취와 수탈의 인종적 구분을 이야기하지만, 과거 인천 공항 정규직 논란이나 최근의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를 보면 우리 나라에서 착취와 수탈을 가르는 분할선은 인종이 아니라 정규직 여부 아닐까 싶다. 단지 정규직 여부 만으로 같은 인종을 단절시키는 섬뜩한 분할을 볼 때 어쩌면 K-자본주의의 야만성과 잔인성은 이미 세계를 선도하는 것 아닐까?)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립이 불가능하며, 사회적 재생산과 자연, 정치권력, 수탈에 무임승차해왔다. 하지만 자본의 무한히 축적하려는 '자기' 확장 속성은 자신을 뒷받치고 있는 그 조건들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자기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처럼 자본주의는 자신을 존립할 수 있게 하는 그 조건을 놓고 제살 깎아 먹는 짓을 벌인다.

이렇듯 '비-경제적'인 배경조건에 의존하는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적 시스템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제도화된 사회 질서'이다. 이는 자본주의 전경에서 드러나는 임금노동의 착취가 배후의 젠더 지배, 생태계 악화, 정치적 지배, 인종적,제국주의적 억압과 구조적으로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마르크스적 관점을 페미니즘, 생태주의, 정치이론, 반제국주의, 반인종주의 등 다른 비판적 이론과 연결해야 한다.

자본을 '식인종'으로 보는 저자는 경제가 사회, 자연, 정치와 맺는 관계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요구한다. 그 상상은 투쟁의 잠재력을 해방할 것이고, 반자본주의 투쟁은 노동과 자본의 투쟁만이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 구조적 인종주의, 제국주의, 탈민주주의화, 지구 온난화 같은 쟁점을 포함하는 투쟁이 될 것이다.

이 책 '좌파의 길'은 미국의 정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가 2022년 쓴 책이다. 책의 원래 제목은 <Cannibal Capitalism : How our System is Devouring Democracy, Care, and the Planet – and What We Can Do About It>, AI를 통해 번역을 하면 <식인 자본주의: 우리 시스템은 어떻게 민주주의, 돌봄, 지구를 집어삼키고 있는가 –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다.

마치 낡은 정치 결사의 선언문을 연상시키는 진부한 번역판 제목, '좌파의 길'이 우리의 편견과 고정 관념을 자극하며 시선을 가리지만, 이 책은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지탱하는 기반인 돌봄 노동, 생태계,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제 살 깎아먹기의 포식성과 그 극복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유와 성찰을 담은 책이다.

딱히 자본주의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공부를 한 적 없이, 학창 시절 주워들은 얘기가 전부인 나에게 자본주의란 생산 수단을 독점한 소수의 자본가와 그들에 의해 잉여 노동을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어우러져 착취하고 갈등하고 투쟁하며 '공황'이라는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새드 엔딩의 '경제' 드라마 정도의 느낌이 다였다. 운동권도 아니었고, 노조를 가입한 적도 없고, 생산직 노동을 해 본 적도 없는 나에게는 뭔가 멀고 아스라한 이야기 같았다.

그러나 수십 년 간 현실의 경제적 삶을 살아오면서 느끼고 부딪히는 많은 불편함과 어려움과 억울함과 괴로움은 자본주의라는 것에 대한 많은 의문과 질문과 회의와 비판을 품게 만들었다. 현실 소시민의 삶을 살아오면서 어떤 이론이나 사상과 상관없이 막연하게 쌓아온 이러한 우리의 직관에 저자는 역사적이고 체계적인 틀을 제공해준다. 우리의 의심과 불만이 막연한 불평불만이 아니라 삶과 세상에 대한 예리하고 날카로운 통찰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이번에 두 번째 읽었다. 2023년 처음 읽었는데, 당시 이 책을 읽고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라는 책을 바로 이어 읽었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또한 이 책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세계를 저렴한 값으로 '추출'하여 유지해왔고, 그로 인해 기후 위기나 극단적 불평등 같은 현재의 위기가 발생했음을 설파하는 책이다. 현대는 인류세가 아니라 '자본세의 시대라고 주장하며, 현대 위기의 근원에 자본주의를 자리매김한 책이다.

이 책과 비슷한 관점을 취하면서도,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그 추출 대상을 보다 상세하게 명시한다. 즉,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의 일곱 가지를 말하는데, 결국은 이 책의 '돌봄 노동, 생태계, 민주주의'를 보다 세분화해서 이야기하는 셈이다. 또한 낸시 프레이저의 주장이 보다 추상적인 차원에서 이론을 고찰하는 데 비해,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역사를 통해서 보다 명백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슷한 관점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서로 다른 특징의 두 책을 읽은 것은 나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오다가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경제 투쟁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구성하는 사회 제도라는 자본주의 이론은 내 막연한 직관과 의문에 갈증을 해소해주고 풍부한 양분을 제공해주는 풍요롭고 맛있는 만찬이 되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밥과 음식 뿐만 아니라 지식 또한 (그리고 사랑까지) 계속 섭취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훌륭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경제라는 한정된 틀에 갇힌 시스템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문명 전체를 포괄하는 사납고 난폭하고 걸신들린 사회 제도라는 확장된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기 극복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경제를 넘어서는 자본주의에 맞서 경제를 넘어서는 확장된 사회주의를 말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 길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확장된 인식은 오히려 새로운 의문을 던진다.

수년 만에 책을 다시 읽는 지금도 여전히 나는 답을 모른다. 아니, 답은커녕 질문이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은 과연 답을 찾는 것일까? 책 속에 답이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오히려 질문을 찾는 행동일 것이다. 올바른 질문을 하기 위해 책을 읽고 사유하는 것이리라. 답은 책이 아니라 삶에 있다. 살아가며 올바른 답을 쓰기 위해 책에서 올바른 질문을 찾는 것이리라.

'좌파의 길'이라는 길거리 전단지를 연상케 하는 어색한 제목과 '식인 자본주의'라는 거칠고 험한 부제는 이 책을 멀고 어렵게 느껴지게 만든다. 마치 사회 운동가나 노조 활동가나 강단 이론가 같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오히려 우리 평범한 생활인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우리 소시민들이 알아야 할 세상이다.

내 삶의 곤란과 불편과 궁핍과 어려움은 오직 나의 어리석음이나 나의 게으름이나 나의 잘못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인간 사회와 제도 속에서 살아가면서 만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위기는 우리의 외로운 삶을 더욱 곤란하게 만든다. 우리는 무인도에 혼자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미로 속에 갇혀 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그 속에서 자신만을 자책하면서 혼자 고민하고 혼자 머리 싸매는 것은 좋은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좀 더 넓은 눈으로, 좀 더 깊은 시선으로 세상과 나를 바라봐야 한다. 세상 속의 나를 깨닫고, 나와 결합되어 있는 세상을 봐야 한다. 쿠키 속에 박혀 있는 초코칩처럼. 그 속에서 다른 초코칩들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길은 어디 있는가? 이 책은 그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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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민이 쓴 미국사 - 만남과 충돌, 교류와 공존의 500년사
네드 블랙호크 지음, 최재인 옮김 / 책과함께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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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져온 진실에 눈을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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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사 1 - 지중해세계의 철학 세계철학사 1
이정우 지음 / 길(도서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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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의 서술에서 그 출발점에 놓인 물음은 '철학이란 무엇일까?'이다. 우리는 그 물음에 대해 '철학(philosophia)'이라는 말과 개념을 만들어낸 그리스 자연철학자들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이들이 만들어놓은 개념들은 지금까지도 모든 학문의 기초 개념들로서 사용되고 있다. 하나의 개념이 탄생할 때는 늘 어떤 대립성이 작동한다. 대립, 갈등, 부정, 모순의 장에서 무엇인가가 탄생한다. 철학의 탄생에도 이런 대립성들이 작동했다.

지중해세계의 철학은 신화와의 대립의식, 허무주의와의 대립의식, 그리고 '동방'과의 대립의식을 통해서 태어났다. 이런 탄생설화는 이후 다양한 곡절을 거치면서 점차 현재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그 여운은 사라지지 않고 어떤 측면에서는 오늘날의 서구 철학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21세기의 서구 철학도 여전히 지중헤세계 철학의 탄생설화와 무관할 수는 없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단순히 '드러나' 있는 것을 자신이 '아는' 것으로 변환하려는 노력이다. 자신에게 드러난 현상들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인식 장치들인 감각, 의식, 언어, 기구, 대화 등을 동원해 그것들의 선험적 조건들 즉 가능조건들을 들여다보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식 주체는 대상과의 뒤섞임으로부터 스스로를 점점 구분해보는 것이다.

특정한 인식 장치들로 세계의 특정한 대상/영역/차원을 인식하는 것을 각각의 개별 과학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각종 인식들이 맺는 총체적 관계, 더 정확히는 현시점에 이르기까지 인식이 겪어온 과정 전반에서 그 가능조건들을 읽어내는 것은 철학/사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의 역사 초창기에는 이런 식의 구분, 즉 개별적인 인식의 성취들과 그 종합적 구조, 전반적인 과정에 대한 메타적 사유 사이의 구분이 뚜렷할 수 없었다. 따라서 철학의 역사는 사유하는 주체가 점차 대자적(對自的)으로 화해가면서 사유의 폭을 넓혀온 역사라 할 것이다.

아직 인식을 위한 정교한 기구들이나 수학적 언어들, 사회적 제도들 등이 존재하지 않았던 사유의 여명기에 철학자들은 자연적 지각작용과 일상 언어를 통해 사유했다. 이들은 인식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들이지만, 이 조건들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 변화해왔다. 따라서 철학의 탄생이 고대 그리스에서 이루어졌다면 그 탄생 조건의 인식론적 측면은 당대 그리스인들의 지각과 일상 언어였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파악된 철학의 초기 조건들은 인도의 초기 조건들 및 동북아의 초기 조건들과는 당연히 현저하게 다르다. 고(苦)로부터 해방되어 해탈에 이르려 한 인도의 전통, 난세를 치세로 바꾸려 한 동북아의 전통, 그리고 허무에서 해방되어 영원을 향하려 한 그리스의 전통은 철학의 매우 상이한 세 전통을 형성한다.

철학에 대한 이해는 추상적인 보편성에서가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인 역사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만일 철학적 보편성이 있다면 그것은 이런 역사적 구체성'들'에서 출발해 그것을 성실하게 '접합'해가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이 책 '세계철학사'는 이렇게 특수성/역사성에서 출발해 보편성/철학성을 지향해가는 한 관점을 제시하기 위한 시도이다.

'세계철학사1'은 철학자 소운 이정우가 지은 4권의 세계 철학사 시리즈 제 1권으로, 고대 그리스부터 이슬람과 스콜라 철학을 거쳐 근대에 이르는 지중해세게의 철학을 다뤘다. 4권 전체를 합치면 3천 쪽이 넘는 대작이고, 1권만 해도 872쪽이 넘는다. 철학 이야기를 하는 벽돌책,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럼에도 이 책은 꽤 재미있다.

그것은 이 책이 단편적인 철학 지식을 나열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 본인이 말하듯이 이 책은 '철학'사인 동시에 철학 '사' 책이다. '철학을 다루지만 어디까지나 역사적 지평에서 다루며, 역사에 속하지만 어디까지나 철학의 역사이다'. 세계 속에서 철학이 어떻게 태어났고, 철학이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고, 세계의 변화가 철학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세계와 철학의 되먹임의 순환을 보여준다.

그렇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완결성이다. 실제 세계가 어떻든 최소한 이 책에서는 세계와 철학이 서로 연결된 기승전결의 맥락과 논리와 인과를 갖추고 있다. 세계와 철학은 같이 어울려서 그 시작과 전개와 현재를 같이 하고 있다. 그렇기에 세밀하고 복잡한 철학의 단편들을 미처 이해하지 못할 지라도 세계와 철학이 어우러진 변화와 인과율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흐름에 몸을 푹 담그게 된다.

이 세계철학사 1권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여전히 스토아 학파와 스콜라 철학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안타까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순간 순간 찾아오는 두통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재미있게 읽었다. 감이불취. 비록 가지지 못했지만 나는 느꼈다. 세계와 철학의 어우러짐을.

이제 겨우 1권을 읽었다. 1권을 다시 읽을 지, 2권으로 넘어갈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깊은 사유는 내가 나무를 보지 못할지라도 숲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숲을 걷다 보면 언젠가는 나무를 구분하게 되리라. 스토아 학파든 스콜라 철학이든 아니면 다른 나무든. 그때까지 나는 바람을 느끼며 세계철학사의 숲을 천천히 걸어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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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서양
니샤 맥 스위니 지음, 이재훈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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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은 어떤 지리적 위치나 문화적 공동체를 가리키는 낱말이다. 이 낱말을 정의하는 한 가지 구체적인 요소는 공통의 기원과 역사를 가지고 있고 문화유산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근대적 국민 국가라는 개념이다. 서양의 기원 신화를 찾아 서양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근대화된 대서양 연안 국가들에서부터 계몽주의 시기 유럽을 거치고 찬란한 르네상스와 암흑의 중세를 지나 마침내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기 세계에 다다른다.

그러나 플라톤에서 나토에 이르는 단일하고 온전한 연속체로서 서양사를 구성하려는 서양사의 판본은 사실에 근거하기 보다는 이념에 의해 추동된 것이다. <서양 문명>으로 알려진 이 거대 서사의 판본은 영화와 텔레비전, 도서관, 건축물 등 우리 일상에 널리 퍼져 있다. 우리는 <서양 문명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기독교 교회로부터 계승되어 르네상스, 과학 혁명, 계몽주의를 거쳐 왔다>는 식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어 왔고, 서양의 출생지로서 고대 그리스-로마가 특히 강조되곤 한다.

그러나 이 거대 서사는 사실과 다르다. 근대 서양은 고전기 고대라는 명백하고 단순한 기원을 갖고 있지 않다. 또한 중세 기독교 세계-르네상스-계몽주의 시기-근대로 이어지는 단순한 선형적 발전 과정을 거치지도 않았다. 이 거대 서사는 한 세기 전부터 그 결점이 노출되었고 현재 그것을 반박하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오늘날 모든 진지한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서양>과 <비서양> 사이의 문화 교류가 있었고, 근대 서양의 문화적 DNA의 상당 부분이 비유럽인 및 비백인 선조들에게서 폭넓게 빌려온 것임을 인지하고 있다.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 서사는 토대가 되는 사실관계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그 서사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백인종의 지배 체제와 더불어 서양의 확장 및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고전기 아테네를 민주정의 등불로 여기는 발상, 고대 로마가 유럽다움의 근본이라는 생각, 십자군이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 문명의 충돌이었다는 신화 등 임시변통으로 그때 그때의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수많은 미시 서사가 상호 연결과 끼워 맞추기를 통해서 이 거대한 서사를 구성하고 있다.

정치화된 역사 재상상하기는 매우 일반적인 관습이고, 역사 그 자체가 쓰인 기간만큼이나 오래 행해졌다. 기원전 6세기 에게해를 장악하려 시도하던 아테네인들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에게해의 섬들이 아테네의 것임을 암시하는 글귀를 삽입한다. 1923년 근대 국민 국가 수립을 선언한 튀르키에는 고고학 프로그램을 통해 아나톨리아 지역과 튀르키에인을 연관지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전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단일성을 주장했다. 시진핑은 2차 세계 대전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있다.

모든 역사는 정치적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역사가 서술되는 유일한 방식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쓴 역사가 나쁜 게 아니라, 사실과 다르게 쓴 역사가 나쁜 역사다. 그것이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 서사가 지닌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 또 다른 문제는 오늘날 자유주의, 사회적 관용, 민주주의 등의 이념 대신 백인종의 우월성이나 제국주의를 서양 정체성의 핵심으로 만들기 위해 그 서사가 이용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실과 맞지 않을 뿐더러 이념적으로도 뒤처진 그 거대 서사를 치워버려야 한다. 그것은 서양사에 대한 정확한 설명도, 서양 정체성에 적절한 이념적 토대도 제공하지 못하는 잘못된 기원 신화이다.


여성이면서 혼혈인 영국의 역사학자 '니샤 맥 스위니'는 역사학자로서 서양이라는 서사에 담겨 있는 인종과 성과 계급에 근거한 차별 체제를 해체할 책임을 느낀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현실의 고대 세계가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 서사에 의해 알려진 것보다 얼마나 다양하고 흥미롭고 다채로운지를 밝혀내고 전파하고 싶어한다.


그를 위해 저자는 이 책에서 열네 명의 인물을 소개한다. '헤로도토스'에서 '베이컨'을 거쳐 '캐리 람'에 이르는 각각의 인물을 통해 서양사를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게 풀어내기 위한 서사의 토대를 그려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들은 주관적이면서도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가장 정확하게, 그리고 가장 흥미롭게 고대 세계를 연구하는 방법은 헤로도토스가 그러했듯이 그 현란한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서양은 서양 문명에 대한 낡은 서사를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서양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더욱 근접한 새로운 거대 서사를 설정해야 한다. 이 새로운 서사는 인종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이고 배제적인 서양이 아니라 자유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이며 민주적인 서양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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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의 무법자 - 대항해 시대의 선원과 해적 그리고 잡색 부대 아우또노미아총서 77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 갈무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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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심해 범선과 그 뱃사람들은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들은 은과 향신료 그리고 설탕과 같은 상품을 먼 거리에 수송하면서 세계 시장과 국제 경제를 형성했고, 상인과 정착인 그리고 제국 건설자를 아프리카, 아시아 및 아메리카로 옮기면서 전 세계의 정치 질서를 변화시켰다. 심해 범선의 선원은 이렇게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의 부흥 그리고 골치 아픈 우리 시대의 근대화와 같은 중대한 변화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선원은 한 번도 역사서에서 마땅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세대들이 알고 있던 바다의 위대한 인물들과 국가적 영광의 역사가 일반 선원과 그들의 투쟁 연대기 앞에 도전 받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선원은 역사의 변두리에서 보다 중심적 위치로 이동하며 그들의 노동이 단지 세계를 연결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게 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결정적인 역사적 과정들이 해상에서 펄쳐졌다는 점, 그리고 거기에 있던 뱃사람들이 역사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이른바 '대항해시대' 동안 유럽 북부의 심해 범선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중요한 기계였다. 이 유럽 권력의 전 세계적인 도구는 약탈과 정복 그리고 결국 오늘날까지 이어진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지배라는 엄청난 일을 가능하게 했다. 이 함선은 유럽의 제국주의 지배력이 전 세계의 바다에 미치도록 했고, 전 세계적 자본의 축적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함선이 없으면 세계 시장도 없었다. 그리고 물론 함선은 선원의 집단 노동이 있었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었다. 선원들은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 아시아를 확장된 하나의 세계로 통합했다.


전 세계의 함선 운용에는 해상 프롤레타리아가 필요했고, 생산수단이 없던 선원들은 생계를 위해서 손을 쓰는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세계를 항해하는 선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지배계급은 노동을 상품으로 간주하는 법을 배웠고 국제 시장에서 뱃사람들의 노동력을 사고 팔았다. 또한, 세계의 물과 땅을 지배하던 유럽의 지배자들은 노동력을 상품으로 간주하는 또 다른 중요한 방법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대형 범선은 노예선의 모습으로 다시 한번 그 과정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수천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을 대서양 건너편에 운송하며 아메리카 노예사회의 싹을 틔운 노예선은 아메리카의 농장을 위해 아프리카인 무리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노동력 대량 생산 공장의 모습은 선원이라는 노동자들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예의 자리는 젖은 맨바닥인데 비해, 선원의 자리는 해먹이란 점이 다를 뿐, 대량 수송을 위한 최소 공간의 배치라는 점에서는 노예나 선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노예와 자유노동 모두를 포함하는 근대 자본주의의 계급 관계는 이처럼 배를 통해 마련되었다.


유럽의 지배자들이 대서양을 넘나드는 자본주의 경제를 조직하면서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들 국가와 주변 세계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창출했다. 농업 노동자들은 기술 노동자에 연결되어 있어야 했고 이들은 다시 부두 노동자와 선원에게 연결되었다. 자본주의 경제의 확장과 함께 이러한 연결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본의 생산력에 의해 함께 모인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계획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1768년 런던에서 선원들은 그들 사이의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했다. 그들은 임금 삭감 이후 함선과 함선을 옮겨 다니며 돛을 내려버렸고(strike their sails) 세계에서 가장 큰 함대의 발을 묶었다. 이렇게 '파업'이 탄생했고 이와 같은 저항은 전세계 노동자들 사이에 급속히 퍼졌다.  탈주, 선상 반란, 해적질, 노예 봉기, 도시 시위 그리고 폭동, 거기에 혁명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형태의 저항이 새로운 형태의 협력 속에서 나타났다. 축적을 위한 대서양 상업 네트워크는 자주적 활동과 전복 행위의 네트워크가 되었고, 위로부터의 자본주의와 제국 조직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저항을 불러온 것이다.


이 책 '대서양의 무법자'는 미국의 역사가인 '마커스 레디커'가 쓴,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평등과 정의를 위해 싸웠음에도' 하향식 역사에서 제외된 사람의 기록을 바로 잡고 싶어한다. 저자는 과거를 돌아보는 연대를 보여주고 그들과 함께 "동반"하는 역사를 원한다.


낡은 역사를 넘어서기 위해 저자는 대서양의 위로부터의 역사를 주름잡는 제독과 선장과 장군들의 이야기가 아닌, 대서양의 무법자 이야기를 펼친다. 많은 이들에게 영웅인 영국의 넬슨 제독이 자메이카이 소설가에게는 해상 범죄자인 것처럼, 많은 이들에게 범죄자였을 해적은 또 다른 많은 이들에게는 영웅이었다. 이는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의 문제이다.


그렇게 저자는 아래로부터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세계 지식의 생산자이자 전달자 이면서도 열악한 노동환경과 차별적 계급에 신음하고 반발하는 선원, 탈주 선원과 탈주 노예가 모여서 구성한 탈주자 공동체와 해적, 아메리카 혁명의 기반을 지속적으로 쌓아 올린 잡색(다인종) 부대, 차라리 죽기 위해 저항한 노예선의 아프리카인들, 백인 중간계급과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의 노예 폐지 운동을 연결시켜준 아미스타드호 선상 반란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책은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영국과 미국의 세세한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맥락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낯선 이름들과 사건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의 사회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잘 와닿지가 않는 소소한 은유들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위로부터의 역사만 익숙하고,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낯선 독자에게는 어두운 바다에서 작은 불빛을 밝혀주는 등대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지표가 있다고, 그 방향으로 오라고. 나에게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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