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그랩 - 내 정보를 훔치는 빅테크 기업들
울리세스 알리 메히아스.닉 콜드리 지음, 공경희 옮김 / 영림카디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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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이윤의 축적을 통해 존재한다. 이를 위해 투입 요소의 가격을 낮추고 공급을 늘려야 한다. 즉, '자연,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돈, 생명'을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 많이 '추출'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 경제의 한계 안에서는 이것이 지속될 수 없다. 이를 위해 자본은 언제나 '외부'를 필요로 하고, 여기서 '식민지'가 들어온다.

식민주의는 자본주의하에서 늘 완벽하게 작동했다. 식민지의 추출과 수탈은 내 땅이 아닌 멀리 떨어진 남의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무관심 속에서 '안전하게' 이루어진다. 대신 원거리 운송 비용 등으로 인한 수익성의 제약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거리의 제약을 받지 않는 새로운 식민지를 발굴했다. 그것은 바로 '규제 없는 데이터 추출'이다. 그리고 그 식민지에서 우리는 데이터 발전소(發電所)다.



식민주의는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행되었지만, 마지막에는 늘 같은 결과를 낳았다. 토지와 부와 노동력의 강탈. 식민주의는 수 세기에 걸쳐 전개된 과정이며, 그 영향은 계속되고 있다. 식민 지배 국가는 부의 축적으로 혜택을 계속 누리고 있고, 식민지는 빈곤, 폭력, 기회 부족이라는 형태로 그 피해를 계속 안고 있다.

오늘날 식민주의는 데이터라는 새로운 자원에 대해 수탈을 가속하고 있고, 그 자원은 바로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서 추출되고 있다. 데이터 수탈이라는 이 신종 자원 수탈은 식민주의의 특성들을 고스란히 보이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개척과 확장은 데이터화된 삶이라는 가상의 영토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이런 식민지화에서 벗어난 영역이나 활동은 거의 없다. 세계 구석구석 그 기술과 플랫폼이 뻗쳐 있다.

하지만 이 영토 점령은 시작에 불과하다. 일단 식민지가 설립되면, 거기서 지속적인 자원 수탈 시스템이 작동한다. 빅테크는 우리 모두의 삶을 추적한 데이터로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얻는다. 페이스북, 유튜브, 왓츠앱, 인스타그램, 위챗, 틱톡 등에서 추출된 데이터는 빅테크에게 전례없는 부를 창출하고 있다.

역사에서 식민지의 말살은 다양한 형태를 띠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 1억 7천 5백만 명이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미국인들의 손에 죽었다. 인도에서 1억 명이 영국인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아프리카에서 3천 6백만 명이 노예선에 실려 대서양을 건너다가 사망했다. 알제리에서 백만 명이 프랑스인들에게, 인도네시아에서 수십만 명이 네덜란드인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로 집계되지 못한 이들도 수백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말살은 야만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만 있는 게 아니었다. 플랜테이션은 식민지의 자급자족 능력을 말살했고, 강제적인 공산품 공급은 식민지의 산업을 황폐화시켰다. 경제적, 문화적 말살은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지만, 강력한 문명의 전파를 통해 식민지인들의 육체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도 통제할 수 있게 만든다. 과거에는 기독교와 서구 과학이 문명 전파의 토대였다.

이제는 빅테크가 기술과 사업 목적이 섞인 문명 전파를 시행한다. 삶의 편리성, 인간보다 뛰어난 과학과 인공지능. 선택받은 소수에게 이런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유년기 상실, 새로운 노동 착취, 개인 정보의 통제권 상실이라는 악몽이 될 것이다. 문명화라는 선물의 저변에는 새로운 형태의 감시, 프로파일링 기반의 차별, 저임금 노동자들에 대한 심화되는 착취가 도사린다.

식민주의는 세계 자원을 '그저 거기 있으니' 강탈했다. 오늘날 빅테크들은 그저 거기 있으니, 데이터의 형식으로 인간의 삶을 강탈한다. 그리고 그 수탈은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국가와 기업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식민주의는 늘 착취하는 특권층과 착취당하는 노동 대중 사이에 극심한 불평등을 일으켰다. 데이터 식민주의는 새로운 불평등을 조장하고,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포함한 오랜 불평등을 재연하고 심화시킨다. 그리고 식민주의는 늘 약탈을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포장한다.

'역사적 식민주의'와 '데이터 식민주의'라는 용어는 마치 전자가 끝나고 후자가 시작되는 듯한 오해를 부른다. 그렇지 않다. 식민주의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데이터 식민주의는 역사적 식민주의의 단절이 아니라, 그 연장이고 진화이다.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은 식민주의와 함께 등장했다. 저항은 모든 곳에서, 모든 삶에서 일어날 수 있다. 그 모든 저항은 하나의 공통 분모를 갖는 것이 중요하고, 그 최대의 무기는 바로 상상력이다.

데이터 탈식민주의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수탈 모델의 해체를 뜻한다. 삶을 강탈의 영토로 삼아 수익만 추구하는 것을 거부하고, 데이터를 집단의 도구로 전환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기술뿐 아니라 사회, 정치, 규제, 문화, 과학, 교육에 걸쳐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답을 찾아야 한다. 데이터 식민주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은 시스템의 안에서, 시스템에 맞서서, 시스템을 넘어서, 동시에 세 수준에서 일어나야 한다.

존재 방식을 다시 규정할 때 첫걸음을 디딜 주체는 식민자가 아닌 피식민자다. 빅테크 기업과 정부가 아닌 우리가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그려야 한다.



그래, 대충은 알고 있었다. 우리의 사생활과 개인 정보가 얼마나 무방비하게, 광범위하게, 무차별적으로 수집 되고 있는지. 내 정보는 공개 정보이고, 나는 데이터 소스라는 것 정도는. 이 재미있고 신기한 AI 세상이 뒤로 감추고 있는 오류와 편견과 왜곡 정도는. 그러나 몰랐다. 그것이 '수탈'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수탈의 능력이 얼마나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지를. 내가 데이터 소스를 넘어서 데이터 발전소로 가동되고 있다는 것은.

그냥 어쩔 수 없는 삶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문명 세계'를 살아가는 비용이라고 생각했다. 지문 날인처럼, CCTV처럼 이 사회를 살아가는 비용이라고 생각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걸쳐진 유니폼 정도로 여기며 적응했다. 그리고 그 편리함에 파묻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달랐다. 공저자 중 한 명은 멕시코계 미국인이다. 수 백 년 간 수탈당하고 착취당해온 역사의 DNA 덕분일까? 피식민자의 피 흘린 감수성에 힘입었을까? 저자들은 이 풍요롭고 편리하고 효율적인 세상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여전히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읽는다. 모두가 찬양하는 이 발전된 세상에서 식민주의의 역사성과 구조를 읽는다. 모두가 환호하는 이 창의적인 세상에서 수집되고 수탈당하는 인간을 본다.

그리고 그 시선은 깊고 예리하다.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테크놀로지의 이면을 그들은 본다. 그들의 시선은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많은 이름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모두 저자들과 같은 관점을 갖는 것도 아닐 터이고, 저자들과 같은 생각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저자들의 의견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들 각각의 시선과 관점은 나름의 독특함과 번뜩임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과 생각은 저자들의 관점에 단초를 마련하고, 일단을 제공하고 있다. 저자들은 그 각각의 지혜를 디딤돌삼아 '데이터 식민주의'라는 프레임을 구축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식민지를 보여준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고 파괴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철도를 깔고, 도로를 짓고, 항만을 건설했다. 그걸 누군가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고 이야기한다. 작가 황석영의 표현을 빌면 '도적놈이 남기고 간 사다리'가 우릴 부자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1945년 미군정은 포고령 1호를 통해 자신들이 일본 제국주의를 대신해 38선 이남을 '점령'한다는 것을 선포했다. 2025년 트럼프는 한국에게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이익을 보호하는' 주한미군을 위해 매년 13조원을 내라고 강요한다. 어떤 이들은 그 은혜에 감읍하여, 성조기를 흔들며 거리를 누비고 있다.

이제 우리들 한 명 한 명은 데이터 소스이자, 데이터 발전소로 매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삶에서 추출한 그 데이터를 빅테크 기업들은 우리에게 되팔고 있다. 우리는 이 편리하고 신기한 문명 세상에서 풍요롭고 창의적인 5차 산업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얼마나 환희에 빛나는 시대인가? 

나는 노래하고 싶다. 남인수가 불렀던 그 노래 '감격 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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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새벽 - 다시 쓰는 인류 역사
데이비드 그레이버 외 지음, 김병화 옮김, 이상희 감수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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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반 유럽의 법, 정치 사상가들이 (처음으로) 평등한 자연 상태라는 발상을 다루기 시작한다. 그것은 정부, 문자, 종교, 사유 재산 같은 서로를 구별해주는 중요한 수단들이 없는 사회를 말하는데, 유럽의 선교사들이 아메리카의 선주민들을 만나면서 시작된 변화였다.

당시 유럽은 끊임없이 이득을 추구하는 절대 권력 체제의 사회였다. 반면, 아메리카 선주민들은 적어도 어떤 남녀도 타인에게 예속되지 않는 자율적 삶이 보장되고, 강제적 처벌이 없는 자유로운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평등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는 유럽인들과 자유롭기 때문에 누구나 평등한 아메리카 선주민들은 서로의 사회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이는 유럽 계몽주의 사상으로 이어진다.

아메리카 선주민 사회와 유럽 사회의 핵심적 차이는 부의 차이가 개인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선주민 사회에서는 부를 타인에 대한 권력으로 전환할 명백한 방법이 없는 반면, 유럽 사회는 소유에 대한 권력이 곧바로 인간 존재에 대한 권력으로 바뀔 수 있었다.

1703년에서 1751년 사이에 유럽 사회에 대한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비판은 유럽의 사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유럽의 관습에 처음 노출되었을 때 아메리카인들이 보였던 불쾌감과 혐오감은 수십 가지 언어로 수많은 대화를 거치며 차츰 진화하여, 권위, 건강, 사회적 책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유의 본성에 대한 논의로 발전했다.

예수회 같은 일부는 자유의 원리를 직설적으로 비난했고, 식민지 정착인, 지식인, 본국의 독서 대중은 그것을 도발적이고 매력 있는 사회적 제안이라 보았다. 유럽의 제도에 대한 아메리카인들의 비평은 위력이 너무도 강해 기존의 지적, 사회적 합의를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고의 무기로 선택했고, 위대한 계몽주의 철학자라면 거의 모두가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자유에 대한 논의도 점점 평등에 관한 논의로 변해갔다.

"현재 우리가 가진 자유, 평등, 민주주의의 이상이 서구 전통의 산물이라는 생각은 사실 볼테르 같은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놀랍게 느껴졌을 것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그런 이상들을 선전했던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런 사상이 외국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말했기 때문이다. "(31쪽)

신진 경제학자 A.R.J. 튀르고는 아메리카인들의 비평에 대항하여 사회 진화의 이론을 주장한다. 그는 사회적 진화가 항상 수렵에서 시작하여 목축으로 넘어가고, 그 다음에는 농경으로 갔다가 마지막에는 도시 상업 문명의 단계에 도달한다고 추론했다. 그의 주장은 애덤 스미스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인간 역사에 대한 일반 이론으로 가공되고, 얼마 안가서 유럽 사상가들과 대중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는다.

루소는 야만인들은 철학이 없고, 상상력이 없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어리석은 야만인의 신화'를 퍼뜨렸다.19세기 제국주의자들은 이 전형성을 열렬하게 채택했고, 거기에 다윈 진화론과 우생학같은 '과학적인 정당화'의 외피를 다양하게 추가하였다.

그러나 상상력이 부족한 것은 루소와 유럽 사회였다. 그들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반면 아메리카인들은 자의적인 권력과 지배가 어떤 것인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고, 그것을 피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사회를 설정했다.

아메리카인들에게 개인의 자유와 공산주의 사이에는 모순이 없었다. 공유와 필요로 운영되는 '기본적 공산주의'는 자유의 조건이었다. 굶주린 사람이나 집이 없는 사람은 일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개인적 자유라는 유럽식 개념은 사유재산 개념에 필연적으로 묶여 있다. 이 결합은 고대 로마의 남성 가부장의 권력에서 유래한다. 이 관점에서 자유는 다른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제 1장을 읽었다. 놀라운 얘기다. 60년 가까운 삶을 살아오면서 처음 들은 얘기다. 비슷한 얘기로 미국의 연방제와 민주주의가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제도라는 얘기를 처음 들은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하우데노사우니', 다른 말로 '이로쿼이'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연맹 체제를 보고 배운 것이라고 한다.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이다.

근데 내가 더 놀란 것은 아메리카 선주민 사회는 완전한 자유를 누렸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하기 싫은 것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한다. 설득 외에 강제나 형벌 같은 것은 없었다. 선주민 사회는 그렇게 자유로운 삶을 누렸기에 당연히 누구나 평등할 수 밖에 없었다. 70년대 존 웨인 서부극의 잔인하고 난폭한 '인디안'을 보면 자라온 나에게는 참 충격적인 이야기다.

헐리우드 미국 영웅주의에 물들어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헐리우드 미녀 배우들을 보면서 심미안을 키우고, 서구 중심주의 교육을 받아며 살아온 내가 서구 중심주의 세계관을 극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명박이 '뼛속까지 친미, 친일'이라면, 나는 뼛속까지 친서구, 친백인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태생부터 반골이고, 불공평에 알레르기 가까운 거부감이 있는 삐딱이였기에, 나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고, 비판하면서 나름으로는 서구 중심 주의라는 '세뇌'를, 최소한 논리적, 이성적으로는 극복해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의 의심과 회의와 비판은 '자유, 평등, 박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유, 평등, 박애라는 천부인권은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에서 나왔다고 알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위선과 제국주의 수탈에 기인한 풍요를 기반으로 할 지라도. 근데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자유, 평등, 박애의 뿌리는 아메리카 선주민에게 있다고 한다.

나는 자유와 평등의 구현이라는 민주주의는 실제 운영에 있어서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다고 믿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신비주의 내지는 자연주의는 일종의 악세사리로 여기고 있었다. 마치 자본주의 중산층에게 소비되는 '체 게바라'같은. 그러면서 아메리카 선주민들을 그저 피해자로만 여기고 있었고, 그들의 삶과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이제 나는 그것이 나의 무지와 편견일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여전히 무지하다. '불혹'을 거쳐도 여전히 미혹 하고, '지천명'을 지났어도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고 있고, '이순'을 눈 앞에 두고도 여전히 단단한 고집의 알 속에 갇혀 있다. 날은 저물고 있는데 길은 멀다. 심지어 내가 가는 길이 무슨 길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책은 말한다. '뭔가 지독히 잘못되어버린' 이 세계가,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빠졌는지 알기 위해, '선주민 비평가들의 안내를 받아 인간의 과거에 대한 증거에 새로운 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나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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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 프로메테우스의 꿈과 좌절
테리 이글턴 지음, 박경장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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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크스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는 이제껏 시도된 그 어느 비판보다 가장 면밀하고 엄격하며 포괄적인 자본주의 비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위력을 떨치는 한 마르크스주의도 마찬가지로 자기 본분인 비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보면, 자본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혈기왕성하다. 전 지구적 규모에서 자본은 여느 때보다 더욱 집중되고 약탈적이며, 노동계급은 양적으로 늘어났다.

부와 권력의 엄청난 불평등, 제국주의 전쟁, 강화된 착취, 점점 더 억압적인 국가 등 자본주의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인간 파괴를 의미할 수 있고, 종말론적 환상은 오늘날 엄연한 현실주의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방화범이 교활하게 활기치고 있다고 해서 소방 활동이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이다. 자본의 끊임없는 재생산은 자본주의가 벗어날 수 없는 경계이다. 자본주의는 거대한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자본주의가 발생시킨 부가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신화는 조금도 달성되지 않았다.


2. 마르크스주의는 도그마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피와 눈물로 구축되었다. 근대 자본주의 국가는 마오쪄둥의 중국이나 스탈린의 소련 못지않게 혐오스러운 노예제와 대량 학살, 폭력과 착취의 역사가 낳은 산물이다. 다만 자본주의는 충분히 오래 살아남아 이런 공포의 많은 부분이 잊혔는데, 스탈린주의나 마오주의는 그렇지 못했을 뿐이다.

마르크스 자신은 경직된 도그마와 군사 테러, 정치 억압과 전제 국가 권력을 비판했다. 사회주의 운동은 냉철한 유물론적 주장이지, 신심에서 우러나온 관념론자의 주장이 아니다. 사회주의는 숙련되고 교육받은 정치적으로 세련된 대중, 번성하는 시민 조직, 발전된 기술, 계몽된 자유주의 전통, 민주주의 습관 등이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스탈린주의는 마르크스 작업의 신뢰를 떨어뜨렸다기보다 그 타당성을 입증한다. 스탈린주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명확한 설명을 원한다면, 마르크스주의로 가야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어떤 물질적 조건에서 발생하고 어떻게 기능하며 어떻게 실패할 수 있는 지를 알아야 한다.


3.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두 개념, 즉 계급투쟁과 생산양식을 한데 묶어 새로 마련한, 장기적인 역사 변화에 대한 이론이자 실천이다. 마르크스는 역사가 어떤 특정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역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엄청난 부도 소유하지 않으며 어떤 전투도 벌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행하고 소유하고 싸우는 것은 인간, 실제 살아 있는 인간이다. '역사'는 마치 별개의 존재인 양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인간의 활동일 뿐이다."


4.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예언자였지 점장이가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가 "현실이 맞추어 가야 할 이상"이라는 생각에 반대한다. 대신 그는 공산주의를 "사물의 현 상태를 폐지하는 현실 운동"으로 보았다.

마르크스의 요점은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가 도래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과 같은 사람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다.

악성 유토피아주의의 한 형태가 실제로 근대에 악영향을 끼쳤지만, 그것의 이름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문화와 경제에 단 하나의 체제를 강요하여 모든 병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광적인 생각으로, 그 이름은 자유 시장 주의다.


5. 마르크스주의는 경제환원론이 아니다.
마르크스에게 역사의 진로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은 계급투쟁이며, 계급은 경제적 요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에게 계급은 사회 구성체이자 공동체이자 정치 현상이다. 계급은 스스로를 계급으로 의식하게 될 때라야 비로소 온전한 계급이 된다.

마르크스에게 노동은 경제적인 것을 넘어 훨씬 많은 것들을 포함한다. 노동은 젠더와 혈연관계와 성(性)을 포함한다. 인간은 의미 있는 동물이므로, 노동은 결코 단순히 기술적이거나 물질적인 사건일 수만은 없다. 노동은 인간이 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6. 마르크스는 기계적 유물론자가 아니었다.
마르크스에게 사람은 자신의 물질적 환경을 변형하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변형하는 생물이다. 그들은 역사나 물질이나 정신에 전당 잡힌 노리개가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만들 능력이 있는 능동적인 자기 결정적 존재였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이 계몽주의 유물론과는 다르게 민주주의적 유물론임을 의미한다.

기계도 생각을 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와는 아주 다른 방식일 것이다. 기계의 물질적 구조는 우리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계는 육체적 욕구가 없으며, 그런 욕구와 긴밀하게 연결된 인간의 정서적 삶이 없다. 인간의 사유는 감각적이고 실제적이며 정서적인 맥락과 분리될 수 없다. 객관적인 세계를 인간 실천의 결과로 사유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은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거나 '신은 없다'같은 우주에 관한 진술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동물이 어떻게 기능하는가에 관한 이론이다.


7. 마르크스주의는 계급 강박증이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계급은 어떻게 느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다. 특정한 생산양식 안에서 어디에 위치하는가(노예, 자영농, 소작인, 자본가, 금융업자, 노동력 판매자, 소자본 소유자)의 문제인 것이다. 계급은 자신의 구성을 늘 바꾼다. 그렇다고 계급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최고 경영자가 스니커즈에 청바지를 쿨하게 차려입는 동안, 10억 명 넘는 사람들이 매일 굶주린다. 슬럼 거주민들은 전 세계 도시 인구의 3분의 1에 이르고, 도시 빈곤층은 적어도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들은 고전적인 의미의 노동계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생산 과정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계급의 사망은 너무나 과장된 것이다. 계급이 죽었다고 확신하고서, 대신 문화와 정체성, 인종과 성으로 눈을 돌린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런 문제들은 예전에도 늘 그랬듯이 사회계급과 뒤얽혀 있다.


8. 마르크스주의는 폭력 혁명을 옹호하지 않는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그 규모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량 학살자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범죄는 어떠한가? 자본주의의 역사는 전 지구적 전쟁과 식민주의 착취와 집단 학살과 기근의 이야기다. 왜곡된 마르크스주의 해석이 스탈린주의 국가를 낳았다면, 자본주의의 극단적 변이는 파시즘 국가를 낳았다. 자본주의의 끔찍한 역사에 비하면, 쿠바 혁명 같은 사건은 티 파티에 불과하다.

혁명은 탈주 기차가 아니라 비상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의 경우, 이는 조직된 노동 계급이 다양한 동맹과 더불어 부르주아로부터 권력을 탈취하는 것을 말한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폭넓은 계급이다. 혁명은 소규모 반란 집단이 아닌 다수의 행동이다. 사회주의 혁명은 민주주의 혁영일 수밖에 없다. 비민주적인 소수는 지배계급이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의회민주주의에 의구심을 갖는데, 그것이 민주적이서가 아니라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아서이다. 의회는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권력을 영구적으로 위임하라고 설득하면서도, 통제권은 거의 주지 않는다. 혁명은 사람들이 대중적인 위원회와 회의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에 관한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으로, 현재 취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훨씬 민주적이다.


9. 마르크스주의는 국가를 믿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국가에 대해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나 그가 완강히 반대한 것은 중앙 행정부라는 의미의 국가가 아니었다. 마르크스가 더 이상 보지 않기를 희망했던 것은 폭력의 도구로서의 국가이다. 사라져야 할 것은 지배적 사회계급의 통치를 떠받드는 권력이다. 국립공원과 운전면허 시험센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민 주권에 대한 진심 어린 신봉자였다. 그는 민주주의를 너무 소중히 여겼기에 의회에만 맡겨 둘 수가 없었다. 민주주의는 지역적으로, 대중적으로 모든 시민 사회 기관에 두루 퍼져야 했다. 마르크스가 인정했던 국가는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정부가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다스리는 지배였다.

마르크스가 파리 코뮨에 대해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바로 인민민주주의를 말한다. 프랑스 혁명가 오귀스트 블랑키가 평민을 대표하는 지배라는 의미로 만들어 낸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말을, 마르크스 자신은 평민들에 의한 통치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10. 마르크스주의는 급진적 운동에 기여했다.
"공산주의는 서로 다른 형식의 지배와 착취(계급, 젠더, 식민주의)가 갖는 상호 연관성과 이들 모두를 철폐하는 것이 각각의 성공적 해방의 실현을 위한 근본적 토대임을 인식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정파 프로그램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여성의 권리를 꾸준히 옹호하면서도, 세계 반식민주의 운동도 가장 열렬히 지지했다. 이와 같이 마르크스 주의는 근대 시기의 세 가지 가장 위대한 정치투쟁(식민주의에 대한 저항, 여성 해방, 파시즘에 대한 싸움)의 선두에 섰다.

마르크스가 인간의 이름으로 자연을 약탈한 또 다른 계몽적 합리주의자라는 비난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는 미래 세대의 복지가 걸려 있는 자연적인 지구의 조건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경제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연주의자요 유물론자로서 마르크스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임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생물임을 망각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결론>
마르크스는 개인에 대해선 열렬히 신뢰했고 추상적 독단에 대해선 깊은 불신을 품었다. 그가 보기를 희망했던 것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었다. 그가 생각한 훌륭한 삶의 모델이란 예술적 자기표현이라는 생각에 토대를 둔 삶이었다.

마르크스는 물질적 생산을 물신화하지 않았다. 그의 이상은 여가이지 노동이 아니었다. 그가 경제적인 것에 그토록 지칠 줄 모르게 주목했던 이유는, 그것이 인류에게 끼치는 힘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의 유물론은 확고한 도덕적, 정신적 신념과 온전히 양립 가능하다.

그는 사회주의가 자유와 시민권과 물질적 번영이라는 중간계급의 위대한 유산의 계승자라고 보았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그의 견해는 놀랄 만큼 시대를 앞서갔다. 마르크스 작업이 잉태한 정치 운동보다 여성 해방, 세계 평화, 파시즘에 대한 저항, 식민지 자유 투쟁에 대해 더 확고하게 옹호한 투사도 없었다.

이토록 희화화된 사상가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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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마르크스는 직접 민주주의자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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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 디플롯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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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전쟁이 한창 진행중인 어느 날, 르완다군에 포위되어 식량이 바닥난 콩고의 수도 킨샤샤의 육군사무소를 백인 여성 '클로딘 안드레'가 급히 찾는다.
"장군을 만나고 싶어 왔습니다."
"지금 바쁘십니다."
"기다리죠."

눈부신 붉은 머리의 백인 여자가 기다린다는 전갈을 들은 장군은 호기심을 누를 수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부인?"
"당신네 병사들이 공원의 나무를 베고 있어요."
"그래서요?"
"저는 보노보 12마리를 보살피고 있어요.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인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어딘가 살 곳이 필요합니다. 보노보는 오직 콩고에만 사는 콩고의 자랑거리입니다. 이 공원은 보노보를 위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폭탄이 건물 근처에 떨어져 담장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석고 조각이 떨어졌다. 안드레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네 병사들에게 벌목을 중단하라고 말해주세요."
"부인, 지금 가셔야 합니다. 여긴 안전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폭탄이 떨어졌다.
"이 보노보들에게는 보호가 필요합니다."
장군이 말했다. "지시 내리겠습니다."
안드레는 잠자코 서 있었다. 또 다른 폭탄.
"당신을 이 공원의 관리자로 임명합니다! 병사들에게도 전달될 겁니다. 자, 이제 그만요, 부인, 부탁입니다!"

안드레는 보노보 63마리 이외에도 회색앵무, 갈라고, 개, 고양이, 큰흰코원숭이를 돌보았고, 킨샤샤 일대에 10개의 '친절클럽'을 열어 어린이들에게 동물에게도 생각과 감정이 있으며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가르쳤다.

안드레가 보호소 방문자들을 상대로 강연하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일어나 항의했다.
"콩고에선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어요. 이 보노보들이 아이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고 있는게 맞는 건가요?"
"저는 아이들에게 동물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어린이들이 서로에게도 친절해집니다."

심리학자 고든 호드슨과 크리스토퍼 돈트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더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민자나 흑인이나 소수 민족 등 사람 외집단을 동물로 '비인간화'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반면에 동물과 사람이 더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민자를 덜 '비인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몇십 년 사이에 서구 산업화 세계에서는 사람과 개의 거리감이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반려견에게 아낌없이 쏟는 사랑을 그저 현대인이 누리는 또 하나의 사치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랑은 훨씬 더 오래된 것이다.

세계에서 평등주의가 가장 잘 실천되고 있는 마르투 부족민이 보여주는 사람과 개의 사랑은 매우 인상적이다. 마르투족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다른 선주민들이 그러하듯이 땅과 그곳에 사는 모든 동물들과 총체적이고 심오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한 마르투족 사람은 인류학자 더그 버드에게 "야생개 딩고들이 우리의 어머니입니다"하고 말한다.

이 말은 은유가 아니다. 어른들이 수렵과 채집을 위해 멀리 야외로 나가면, 딩고들은 자기 새끼들에게 해주는 것처럼 먹은 것을 게워냈다. 아이들은 단백질이 풍부한 이 곤죽을 불에 구워 먹으면서 허기를 달랬다. 오스트레일리아 오지에서는 수천 년 동안 개가 사람 가족의 일부로 살아왔다. 놀랍도록 평등한 이 사회에서 딩고는 가족이었다. 사람과 개의 관계에서 걔를 일가족에서 몰아내게 된 것은 산업화였을 것이다.

유럽의 혈통견들은 놀랍게도 아주 최근에 교배된 품종이다. 빅토리아 시대 이후 사람들이 개의 품종을 교배하면서 개의 외모가 중요해졌고, 개는 사고파는 상품이 되었다. 이로써 개 품종의 우열이라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유럽의 혈통견은 신분과 계급제에 병적으로 집착하던 문화의 산물이었으며, 이 집착에서 나온 것이 우생학 운동이었다.

조사 결과, 개 품종들 사이에 뚜렷한 우열이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사람 집단 간에도 뚜렷한 위계가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르투족처럼 더 평등한 사회의 사람들은 개를 가족의 일원으로 더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다. 개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 집단의 인종을 대하는 태도에도 반영된다. 개에 대한 사회지배 성향이 높을수록 '열등한' 집단에 속하는 타인을 동물로 바라보기 쉽다.

우리는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적자는 신체적 최강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적자란 당장의 '국소적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을 말한다. 자연의 세계에는 우월이 없다. 살아남는 것이 '적자'이다. 그리고 인간은 '다정함'으로 적자가 되었다.

인간은 왜 이렇게 정이 많은 존재가 되었을까? 그 답을 '가축화'에서 찾는 연구자가 늘고 있다. 가축화란 인간의 목적에 맞도록 야생 식물이나 동물을 길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가축이 되었고, 가장 높은 수준의 가축화를 이룬 종이다. 애착과 접촉, 호기심과 놀이, 공감과 협력은 인간성의 본질이 되었다. 우리는 협력이 가져올 혜택을 신중하게 고려할 줄 알았다.

8만 년 전에 일어난 사람의 자기가축화로 폭발적 인구 증가와 기술 혁명이 동시에 일어났다. 친화력이 여러 집단의 혁신가들을 하나로 연결함으로써 기술혁명을 추동한 것이다. 자기가축화가 우리 종에게 준 막강한 능력으로 우리는 세계를 제패했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 같은 다른 사람 종들은 하나하나 멸종되어 사라졌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호모 사피엔스 종이 지닌 최고의 미덕과 강점을 잘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안에 내재된 최악의 본성도 설명해준다. 우리는 탁월한 친화력과 극악무도한 잔인성을 같이 갖게 되었다.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친화력이 강화된 우리 종에게 새로운 형태의 공격성이 생겨났다. 우리가 더 강렬하게 사랑하게 된 이들이 위협 받을 때 사람은 더 큰 폭력성을 드러낸다. 우리가 위협 받는다고 느낄 때, 다정함, 협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종 고유의 신경 메커니즘이 닫힌다. 이때 우리는 연결감, 공감, 연민을 느끼지 않게 되고, 타인을 '비인간화'하게 된다.

비인간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인원화를 통해 우리는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유인원으로 부르거나 유인원에 비유하면 사람들 심리에 도덕적 배제가 발생하며, 이렇게 유인화의 표적이 된 개인이나 집단은 인권을 지켜줄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된다. 편견보다 유인원화가 현재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 간 격차를 더 잘 설명해 주는 것이다.

흑인에 대한 유인원 비유로 유럽 사회는 노예 무역에 대한 반감과 상류층 지식인의 도덕적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었다. 유인원 비유는 노예 무역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고, 그 대상이 아프리카 인으로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19세기에는 아일랜드 인이, 세계 대전 전에는 독일인, 중국인, 프로이센인, 유대인이 유인원 소리를 들었고, 2차 대전 시기에는 일본인들을 원숭이라고 불렀다.

<인류진화도>는 진화가 선형적으로 발전하고, 그 정점에 선 존재가 사람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놓았지만, 강력한 비인간화의 척도를 보여준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 절반이 다른 민족 집단은 미국인보다 사람으로 덜 느껴진다고 답했다. 특히, 무슬림이 미국인보다 10점 낮은 점수를 받아 가장 비인간화되었다. 무슬림을 비인간화한 사람들은 가장 높은 비율로 중동에서 고문과 드론 공격 모두 허용할 것을 주장했다.

우리 종이 다른 사람 종들을 정복할 무기를 생각해낸 이래로 우리는 지능을 과하게 강조해왔다. 우리는 지능을 토대로 확고한 구분선을 긋고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잔인한 고통을 가해왔다.

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평등한 사상이다. 인간이 구석기 시대를 지배하는 강력한 포식자이던 시기에 개는 송곳니 매서운 육식동물에서 개로 진화했다. 개는 그들 종의 강력한 성공 무기였던 두려움과 공격성을 사용하는 대신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 만한 공통 기반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나로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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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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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덮었다. 어머니가 생각나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여러 번 눈물이 차 올랐다. 책을 읽는 내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이 떠올랐고, 책을 덮는 마지막까지도 나는 돌아가신 두 분을 생각했다.

아버지가 병상에 누운 후 돌아가실 때까지, 그 후 10년 뒤 어머니도 돌아가실 때까지, 십 수 년의 시간을 나는 왔다 갔다 하면서 부모님의 곁을 지켰다. 그러면서 나는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죽음 또한 삶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기에 죽음은 휴식이었고, 삶의 마무리였다. 마지막 기간의 처연하고 고통스러운 삶에 휴식을 주는 자비의 손길이었다. 나는 슬픔과 아픔 속에서도 평안을 얻었고, 마음속으로 어머니의 평화와 안식을 기원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에서 계셨다. 형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고,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매일 부모님 집으로 출퇴근을 했다. 늙은 부모님을 돌보는 일은 매우 힘이 들고 지치는 일이었다. 형도 나도 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포기했던 많은 것들에 비해,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작았다.

그러나 마지막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나름 편안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매우 많이 힘들어했다. 특히, 죽기 며칠 간은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 우리는 그저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암울한 절망감 속에서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죽음은 나의 문제가 되었다. 나는 많은 순간들을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게 되었다. 미국의 현직 외과 의사가 지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버지와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했던 그 힘든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그 힘들고 괴로웠던 죽음의 시간은 우리 가족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똑같다는 것을. 누군가 태어나는 것은 만인이 평등하다고 했지만, 죽음 또한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난 내가 돈이 많았다면, 아니면 인맥이라도 많았다면, 아니면 의사 가족이라도 있었으면 부모님을 좀 더 편안하게 해드릴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괜한 자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돈이 많은 사람도, 심지어 노인 전문 의사도 죽음 앞에서는 똑같이 고통스러웠고, 똑같이 무기력했다. 요양원에 수용되어 '휠체어에 묶인 채 긴장병 환자처럼 어린애 취급을 받으며 지내'다가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그 과정에서 자유와 삶의 가치는 찾을 수가 없었다.

진짜 문제는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죽는 것은 무너지는 것이다. 삶이 죽음을 향해 무너져가는 그 시간 동안, 누구도 고통을 피할 수 없고, 누구도 존엄을 지킬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좌절했고, 다시 다짐을 했다. 내 죽음은 내가 결정하자. 그러나 책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는 죽어가는 방법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책은 말한다. 현재 요양 체계의 문제점은 요양 시설이 당사자가 아니라 자식들을 위해 운영된다는 점이라는 것을. 부모님의 안전에만 몰입해 있는 자식들에 맞춰진 운영을 하면서 당사자의 사생활과 자유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우리가 직면하는 한계와 역경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서 자율성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핵심적 가치다. 그러나 우리는 가치와 목적이 있는 삶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 우리는 삶이 기울어 가는 마지막 단계에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의료 전문가들에게 맡겨 버렸다.

늙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의학과 의학이 만들어 낸 기관들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관점 자체가 부재한다. 의학은 마음과 영혼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신체적인 건강을 복구하는 데 집중한다. 인간의 욕구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 기술적인 전문성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들에게 우리 운명을 맡기는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현재 역사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의학과 수용소같은 시설에 자율권을 넘겨야 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요양원 혹은 양로원에서 시들어 가다가 병원에서 죽어가는 길을 대체하는 방법이 늘고 있고, 그 기회를 붙잡으려는 사람이 수백 만 명이다. '어시스티드 리빙' 아파트, ‘에덴 올터너티브’ 프로그램, '그린 하우스' 프로그램 등은 요양원을 혁신하려는 새로운 시도이다. 늙어서도 삶을 의미 있게 살도록 만들려는 새로운 개념이다 .

그래서 노인들을 그냥 안전하게만 돌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그들은 생활하는 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자율성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임무가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사람들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선택의 범위를 넓혀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의료계 종사자들은 사람들의 건강과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주된 임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이상의 일을 해내야 한다. 바로 환자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죽어 가는 환자를 돌보는 문제에 이런 사고방식을 도입한 것이 바로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떠오른 완화치료 분야다.

호스피스 케어는 생명 연장에 목적을 두고 있는 일반적인 의료 행위와 우선 순위가 다르다. 호스피스 케어는 간호사, 의사, 성직자, 사회복지사 등을 동원해서 치명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현재의 삶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호스피스 케어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다시 한 번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했을 때 나는 호스피스 병원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것이 주로 종교 시설에서 운영하고, 들어가려면 몇 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만 주워듣고 호스피스 병원을 알아볼 생각도 못했다. 가정 방문 호스피스 케어 같은 것은 아예 알지도 못했다. 좀 더 신경 써서 알아봤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질병과 죽음 앞에 무지하고 미숙하고 무성의했다. 아버지가 병상에 눕고 돌아가실 때까지 많은 시행 착오를 겪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많은 시간 동안 회한에 시달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개월 후 어느 날,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갑자기 울음을 쏟아냈다. 뱃속 깊은 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고, 나는 기어코 서럽게 울어대고 말았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리 신경 쓰고 조심했지만, 그래도 부족하고 무지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병원에 입원했다가 간병인만 옆에 두고 돌아가셨다. 나는 어머니 시신 앞에서 주저 앉고 말았다. 십 년의 시간을 옆에 있었는데 마지막 돌아가시는 순간 옆을 지키지 못한 것이 너무 억울했다. 가족도 없이 혼자 떠난 어머니가 너무 안타까웠고, 너무 미안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수발하면서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에게도 자주 짜증을 냈다. 그러나 그 힘들고 부끄러웠던 시간은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위로의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 요양보호사에게 잘 돌봐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자식들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너무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부끄러웠고 슬펐다.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아무 것도 준 게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구나. 그러면서도 위안이 되었다. 그래도 어머니가 외롭지 않았구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개월 후인가 퍼뜩 깨달았다. 나는 어머니를 돌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 입장이었다는 것을. 어머니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머니가 어떤 마음인지 깊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그저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때도 나는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자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꾸 마음을 할퀴었고, 부족했던 순간들이 자꾸 생각났다. 그때마다 나를 달래주고,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었다. 나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내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다. 그 부대낌이 삶이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함께 하는 것. 어머니도 나도 섭섭함과 미안함과 안타까움과 고마움을 공유했다.

그 시간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를 달래주었다. '그래도 나 열심히 했잖아. 기를 쓰고 했잖아. 이제 와서 자책할 필요는 없어' 죽어가는 어머니를 돌보았던 그 힘들고 우울했던 시간이 이제는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 되었다.

책은 죽음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사실 그 이야기들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관한 이야기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사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죽는 순간까지 어떻게 삶의 의미를 가져가고, 어떻게 내 삶의 자유를 지키고, 어떻게 삶의 존엄성을 지켜갈 것 인지에 관한 질문과 고민이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기억을 떠올렸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용기가 있다. 바로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 문제는 어떤 것이 현명한 길인지 알기 어려운 때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나는 내 죽음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면서도 두려웠다. 막상 그 때가 되었을 때, 나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미련을 버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 마다 나는 다짐해왔다. '이깟 삶에 무슨 미련 따위가 남았을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련하자.'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이깟 삶, 미련 없이 떠날 게 아니라 이 삶, 여한 없이 떠나야 한다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만 다짐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죽는 순간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내 삶의 주인은 나이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고민하고 걱정할 것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을.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니,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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