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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참 대단하다고 되뇌었다.
느낀 바는 많았지만, 굳이 감상을 너저분하게 나열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고결하고 어마한 작품.

위대한 작가. 진짜 어른.

좋은 번역을 남겨주신 고 박형규 선생님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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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나를 붙잡던 상념들

한때는 이끌리는 정당에 가입하기도 하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던 나였다. 얼굴이 자주 붉어질만큼 부끄럼이 많은 편이지만 사람 만나기를 즐겼었고, 혁명가의 자질을 갖추진 못 했지만 나름으로 구축한 사고들로 세상을 요목조목 따져묻기를 즐기기도 했다. 그리곤 꽃이 피기를 바라며 똥이든 된장이든 가리지 않고 양분을 빨아들이려 하던 날들을 이어가는 와중에 벼락처럼 맞닥뜨렸던 여러 정치적 사건들. 그중에서도, 한때 마음 속 어느 한 켠 정도는 내어줄 수 있을만큼 좋아했던 누군가의 죽음들. 그들의 죽음 뒤 먼발치에 서서 나는 그렇담 그들이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 만큼의 양심 앞에 떳떳한가에 대해 오래토록 생각하며 살았다.

무엇이, 누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았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얄밉게도 시간은 그들의 죽음과는 별개로 사람 가리지 않고 동등하게, 가차없이 흘렀고 고백컨대 그 안의 나 역시나 약삭빠르게도 가끔 찾아오는 다행을 만나 아직도 나는 어찌할 바 모르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렇다고 내가 늘 비관에만 잠겨 살았냐고 스스로 따져 묻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일상에서 접하는 사소한 꺼리들과 사람들로부터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 운이 좋게도 오래전부터 마음과 생각을 나눌 반려자를 만나 혼자였더라면 헤어나오지 못 했을 늪으로부터 간간이 벗어날 수 있었다. 복잡다단한 세상으로부터 물든 내가 뱉어대는 투정은 요즘 방구석에서나 째잘대는 게 다이지만 그런 나를 받아주는 이 사람이 참 고맙다. 내가 느끼기엔 누구보다 평범하고 누구보다 평범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충분한 이 사람에게 언제까지든, 언제까지나, 좋은 애인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3.12.19 또 한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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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떠올릴 때, 그의 글을 읽을 때 드는 인상은 복잡하다. <야콥 폰 군텐>에서의 화자는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수기, 함순의 굶주림, 루쉰의 아Q를 떠올리게 만들다가도 현대성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것들이 깃들어 있는 듯 보인다. 현대 중에서도 특히나 요즘같이 이성적이고도 과학적인 사고방식, Yes정신이 저물고서 등장한 No정신이 보편화된 시기에서의 현대인이 지닐 법한 정신이 두드러진다. 공감이 가다가도 뭐지 싶은 문장이 불쑥 튀어나오고, 낮은 시선이 보이다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에 대한 경멸감이 숨겨진 게 보인다. 의도한 구성인지, 무의식으로 쓴 글인지는 알 수 없다. 추측으로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한편으론 낭만과 순종으로 가득했던 유년기를 지나 여러 경로를 통해 지독한 사회를 직시하게 됐고, 몸소 부딪히면서 진짜 삶을 맛본 청년이 생의 기로에 서서 갖기 마련인 솔직한 심정으로 비쳐 보이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의 삶은 굴곡으로 가득했고 마지막마저 극적이다. 아프리카로 떠난 랭보를 떠올리게 하듯 하인학교에 작별을 고한 주인공을 그렸었던 발저는, 끝내 세상이 견디기 어려워 제 발로 찾아간 정신병원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날 산책 도중 맞이한 눈 위에서의 죽음은 한 편의 동화 같다. 그는 아주 솔직했던 것 같고,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느낀 그는 부자가 되고 싶었었고, 가난을 혐오하다가도 그것을 긍정했고, 하인처럼 살았지만 스스로를 귀족처럼 대했었고, 사람을 싫어하고 좋아하기를 반복했고, 신을 의심하다가도 존중했고, 자연을 찬미하면서도 도시를 사랑했다. 여느 누구와도 다를 바 없이. 어쩌면 여기에 그의 위대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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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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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삼십 평생껏 교회라곤 발붙여 본 적 없는 사람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근래 들어선 이십대 초중반 때의 객기 어린 시선으로 느끼고 생각하던 신에 대한 관념이 다르게 다가오는 와중이다. 그러다 우연히 북플을 통해 권정생 선생님의 책을 접했고 예전의 나 같았으면 ‘하느님‘이라는 단어 자체만 보고서 지레 질린 마음으로 찾지도 않았을법한 제목 ‘우리들의 하느님‘이라는 산문집을 도서관에서 빌리게 됐다. 책제목의 편집과정이 영 석연치 않게 느껴지긴 했지만 한 꼭지 한 꼭지 읽어갈 때마다 우리나라에, 아니 세월을 통틀어 이런 분이 계셨던가 하는 심정이 일었다.

늘 그래왔겠지만 요즘도 국내외로 세상이 소란스럽기만 하다. 이런 나날들 속에서 선생님의 삶, 사상, 유언 이후 남은 사람들의 행보를 되새김질해 본다. 선생님의 모든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선생님의 삶과 사상은 지금 같은 시기에 더없이 소중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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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삶을 돌아보던 그는 우리네 인생과 닮은 탁월한 비유 하나를 들려주는데 설명하기 까다로워 본문 중 일부를 그대로 발췌해 옮긴다.

˝ 동양의 옛 우화 중에 스텝에서 맹수와 마주친 나그네 이야기가 있다. 나그네는 맹수를 피하기 위해 오래전 말라버린 우물로 뛰어들었는데, 우물 바닥에는 그를 단숨에 집어삼키려는 듯 용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불행한 나그네는 밖으로 나가 맹수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싶지도 않고 우물 바닥으로 내려가 용에게 잡아먹히고 싶지도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우물 벽 틈에 난 덤불 잔가지에 매달려 버텼다. 차츰 손의 힘이 빠지자 그는 양쪽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으리라 느꼈다. 그래도 악착같이 매달려 있었는데, 어디선가 검은 쥐와 흰 쥐가 기어오더니 그가 매달린 덤불 가지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가지가 뚝 부러져 용의 아가리로 떨어질 것 같았다. 나그네는 죽음을 피하지 못 하겠다고 체념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 덤불의 잎에 꿀이 몇 방울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혓바닥을 내밀어 핥았다. ˝ 34p

‘안수정등‘이라 불리는 설화에 대한 단상

절박한 상황에서의 꿀 몇 방울은 당장에 견뎌낼 힘을 준다. 하지만 벌들의 것인 벌집을 가지려 들 순 없다. 무엇보다 시급한 건, 매달린 가지를 갉아대는 쥐들을 내몰지 않고서는 용에게 먹히고 말 운명. 그런 쥐들에게 악의란 없을지도 모른다. 시기의 차이일 뿐, 생명이 아닌 죽음으로 내모는 그 쥐들, 사자, 용에게는 어쩌면 표정이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신‘이라고도 불릴만한 무언가에서 비롯된 자기명령에 복종하고 그에 따라 제 삶의 몫을 다할 뿐일지도. 혹시라도 그들이 화난 표정을 지어보이는 와중이라면 탈출은 더 쉽지 않을 것이다. 밖을 나선다 한들 언젠가는 대면할 수밖에 없는 사자. 나서든 나서지 못하든 물을 찾기 위해서라면 주기적으로 우물 안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팔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하는 의지가 남아있고 체력이 뒷받침된다면, 끝내 우물 밖으로 나와 새삶을 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건네줄지도 모르겠다. 기약 없지만, 사랑의 힘을 믿는 누군가였으면. 역으로 내가 그런 사람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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