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멋진 복장으로 신사답게 가겠다
1912년 4월 14일 밤,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 호가 가라앉을 위기에 다다르자 사람들은 갑판 위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구명선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이 전체 승객의 1/2이었다는 점이다. 둘 중 한 명은 구명선에 오를 수 있지만 다른 한 명은 타이타닉 호에 남아 최후를 맞이해야 한다. 탑승 순서는 어린이 다음에 여성 그리고 노인 순으로 이루어졌다.
코로나 정국인 요즘, 내가 거리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의 행렬을 보면서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된 이유는 마스크와 구명선의 유사 관계 때문이다. 코로나 창궐 시대에서의 마스크는 타이타닉 호의 구명선이다. 대한민국의 1일 마스크 생산량이 1000만 장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경제 활동 인구가 2800만 명이라는 점에서, 1명이 마스크 한 장을 구입하면 나머지 2명은 마스크를 구입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방역 마스크에 대한 우선권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취약한 사람에게 먼저 주어져야 한다. 타이타닉 호 선장이 어린이, 여성, 노인 승객 순으로 구명선에 먼저 오를 수 있는 우선권을 인정했듯이 말이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약자를 우선하는 태도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기저 질환이 없고 감기 증상이 없는 신체 건강한 청장년층이라면 방역 마스크를 대구/경북 거주자와 노약자에게 우선 배분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청장년층 세대들은 자신이 가진 정보와 컴퓨터 활용 능력을 총동원해 하루에 수십장씩 마스크를 구매하고 있다. 반면에 전자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코로나 취약 계층은 약국 앞에서 몇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지만 결국에는 허탕을 치기 일쑤다. 디지털 정보 접근성이 취약한 세대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이다.
마스크를 구명선에 빗대 설명하자면 신체 건강한 청장년층이 구명선을 독점하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방역 마스크 구매를 포기함으로써 취약 계층에게 마스크가 돌아갈 기회를 주기 위해 방역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과 디지털 정보 접근성을 활용하여 하루에 수십 장씩 구매하는 사람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민폐'라고 할 수 있을까 ? 철강업자 벤자민 구겐하임은 "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 ! " 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의 1등 객실 승객이었다. 그는 애인과 하인을 구명정에 태운 뒤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선원의 요구도 거절했다.
그는 침몰하는 배 안에서 구명조끼 대신 턱시도를 입고 죽음을 기다렸다. 내가 벤자민 구겐하임과 같은 숭고한 희생을 당신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고작 치사율 0.5%에 불과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공포에 질려서 마스크 판매 쇼핑몰 이곳저곳을 순례하면서 광클하고 있는 젊은 당신이 한심해서, 너무나 한심해서 하는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