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되지만 모아놓은 마일리지를 가지고 장하준 교수의 <국가의 역할>을 주문하려다가 눈에 띄길래 엉뚱하게(?) 주문한 책이 수잔 와이스만의 <빅토르 세르주 평전>(실천문학사, 2006)이다. '역사인물찾기' 시리즈의 한권으로 나온 책인데, 7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으로까지 출간됐지만 사실 빅토르 세르주(1890-1947)란 인물에 대해서 사전에 입력된 정보는 거의 없다. 러시아사가 전공인 역자의 이름에 눈에 띄길래 '전공관련'인가 싶어서 유심히 읽어보니 어디선가 지나가면서 접해보았을 법한 '비운의 혁명가'이다. 소개에 따르면, "소설가이자 역사가, 한때 아나키스트였던 볼셰비키 당원, 이단아, 좌익반대파의 일원"으로서 "소련사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존재이다." 분명 마지막 멘트는 과장된 것이겠지만 아무튼 흥미를 끄는 것만은 사실이다.

 

찾아보니까 세르주 자신이 쓴 <회고록>도 유명한데, 이번에 그보다 먼저 출간된 것은 수잔 와이스만 교수의 책 'Victor Serge: The Course Is Set on Hope'(Verso, 2001)이다. "2500여 장에 이르는 원고와 1200여 개의 주석을 통해 러시아 혁명의 변질이라는 ‘20세기 변혁운동 최대의 비극’을 빅토르 세르주의 민감한 지성이 언제, 어떻게 감지했는지 그리고 그 비극을 막아보고자 그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상세히 밝혔다."

'20세기 서구 신좌파의 스승'으로 평가받는(다는) 한 인텔리겐치아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는 재작년에 박노자 교수가 칼럼에서 다룬 바 있어서 옮겨놓는다. 유익한 참고자료이다.

 한겨레21(04. 02. 11) 실패한 혁명가’를 읽는다

1980년대의 혁명적인 열성이 ‘아득한 옛날’로 느껴지던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독서계에서는 ‘혁명가 평전’이라는 장르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체 게바라나 호치민, 마오쩌둥, 그리고 박열이나 여운형에 대한 ‘편안히 살게 된 세대’의 새로운 관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제는 경험해보지 못할 듯한 기존 틀들의 전면적인 부정과 신세계 창조의 ‘이질적인 체험’의 매력에 끌린 것인가? 아니면 ‘임금의 목을 쳐보지도 못한’ 채, 기존의 지배층의 권력들을 계속 인정해 지금도 친일파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혁명의 부재’에 대한 참회인가?

물론 혁명과 우리가 멀었고 지금은 더욱 멀어졌다는 사실이 역으로 ‘혁명가 평전’들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렸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원인은, 자본주의적 질서의 기본 틀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누적된 회의가 간접적으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한다. 자본주의적 세계화라는 점점 심해지는 광풍에 대한 반항과 해결법 모색의 에너지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혁명가 평전’의 열풍에 대해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다. 우리에게 가장 유의미한 존재로 다가온 외국의 혁명가인 티토나 레닌, 체 게바라, 호치민, 마오쩌둥 등이 다 결과적으로 새 국가 건설에 ‘성공’한 ‘혁명형 건국 군주’가 아닌가? 체 게바라 같은 경우는 예외라 볼 수 있지만 그에게도 사회주의적 국가 쿠바의 건설이라는 ‘후광’이 있었다. 역사 인물의 위치나 중요성을 생각할 때 꼭 ‘성패’라는 자본주의적 기준을 적용하려는 우리의 순치된 무의식을 문제 삼으려는 것이다.

혁명가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우리를 옥죄고 있는 권력 관계와 ‘낙오자 되기’의 공포, 체제에의 안주 등의 포기, 반란의 행위 그 자체가 아닌가? 반란의 결과가 고생 끝의 죽음뿐이더라도 그 해방적인 순간, 체제의 모든 것을 내던져버리는 그 순간에 얻어지는 ‘참나’ 실존의 체험이 아닌가? 혁명의 진정한 의미는 ‘건국의 성공’보다는 체제의 부속품이 아닌 온전한 인간으로서 ‘나’를 실천해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세속인이 보기에는 ‘실패’한 혁명가라 하더라도 그가 지은 ‘해방적인 체험’이 담긴 시나 소설들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것이다. 삶에서 ‘실패’해도 작품으로 보통사람이 생각하기 어려운 경지에 오른 20세기의 탁월한 ‘세계주의적 혁명가’를 꼽자면,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후 1960년대 후반 이후에 서구 신좌파들의 스승이 된 빅토르 세르주(1890~1947)라는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를 들 수 있다.

우리가 인물을 소개할 때 그 이름 앞에 그가 출생했거나 거주했던 나라 이름을 하나씩 붙이곤 한다. 그러나 궁리를 거듭해도 그의 이름 앞에 붙일 만한 적합한 국명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는 장교의 지위를 버리고 혁명에 몰두했다가 결국 망명을 결행해 벨기에에 정착한 러시아인이고 그의 어머니는 폴란드 귀족 가문 출신이었는데, 벨기에에서 태어난 세르주는 결국 벨기에 국적을 보유하게 됐고 불어와 러시아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했다.

그러나 벨기에에 정착할 생각 없이 19살의 나이에 프랑스로 옮겼다가 그 뒤 스페인을 거쳐 1919년에 새로운 혁명의 러시아에 들어간 세르주를 ‘벨기에 사람’으로 칭하기가 힘들다. 그 뒤 9년 동안 볼셰비키 러시아의 각종 요직을 거치고 초기 코민테른의 대(對)서구 선전 작업에 주동적인 역할을 하다가 1928년에 강화돼가는 스탈린의 독재를 비판한 죄로 공산당에서 출당을 당했고 5년 뒤에는 투옥됐다. 몇년 뒤 몇명의 유명한 서구 지식인들의 끈질긴 구명운동 끝에 풀려나와 다시 벨기에로 가서 소련 체제의 ‘반동성’과 ‘혁명 정신의 말살’을 외쳤던 그는 스탈린주의의 선량한 신민이라는 의미의 ‘소련인’도 아니었다. 세르주는 히틀러의 군대가 서구를 휩쓴 뒤 기적적으로 멕시코로 탈출해 거기에서 소련에 의한 암살로 추측되기도 하는, 의문이 없지 않은 죽음을 당했다. 그의 아들이 멕시코 시민으로서 멕시코의 자랑이라 할 만한 저명한 화가가 됐지만, 창작 작업을 불어로 했던 세르주를 ‘멕시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세계적 방랑자’ 세르주…. 그의 만년 소설의 무대가 자연스럽게 시베리아의 오지에서 스페인의 혁명 현장으로 옮기고 그 주인공들도 온갖 나라 사람들이 뒤섞인 것은 그의 ‘방랑 경력’을 반영하기도 한다. 카를 마르크스나 당시의 혁명 거인 트로츠키(1879~1940) 등의 ‘혁명 선배’들도 국가와 민족 등의 범주로 이해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마찬가지 아니던가?

그러나 트로츠키와 세르주는 서로 다른 점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게 멕시코에서 암살당했을 때 임종의 순간에 “그럼에도 공산당은 궁극적으로 옳은 것이고 그 역사적 정당성을 잃지 않았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간 철저한 공산주의자 트로츠키와 달리, 세르주의 정치적 지향이나 세계관은 무슨 ‘주의’로 범주화할 수 없었다. 벨기에에서 사회민주당의 청년조직에서 활약하다 체제에 안주해갔던 사민주의자들의 ‘개량주의’에 염증을 느껴 파리에서 아나키스트 신문의 편집자가 된 세르주는 ‘테러활동 고무·찬양’ 등의 죄목으로 프랑스에서 옥고를 치르고 스페인에서 아나키스트 반란의 주도자가 됐지만, 그는 수많은 남유럽 아나키스트들의 목적을 결여한 ‘폭력을 위한 폭력’을 시종일관 비판해왔다.

사민당의 간부도 아나키스트도 못 된 세르주는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지만 그와 소련 정권의 관계도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러시아의 1917년 혁명의 근본 성격을 진정한 의미의 혁명으로 규정한 그였지만, 중앙집권을 거부한 아나키스트나 폭력을 규탄한 멘셰비키 등 기타 소수의 혁명 정당에 대한 새 정권의 비밀경찰(체카, KGB의 전신)의 살인적 탄압이나, 곡물의 강제 공출에 저항하는 농민들의 총살 또한 그의 자유주의적·인본주의적 신념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련 체제의 근대적 폭력성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던 세르주는 레닌의 서거(1924) 전까지 그나마 공산당의 도덕성이나 “노동자 대표자로서의 성격”에 대한 믿음으로 버텨왔다.

그러나 그 뒤 트로츠키와 함께 신생국가의 관료화와 ‘혁명성 상실’을 비판하기 시작한 그와 스탈린 체제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괴리가 생겼다. 그렇다면 그가 트로츠키파였는가? ‘트로츠키주의’는 스탈린주의자들이 그에게 붙인 딱지였지만 실제로 그와 트로츠키 사이의 견해 차이는 컸다. 트로츠키를 늘 깊이 존경하던 세르주가, 트로츠키 저서들을 불어로 번역하는 등 소수파로서 트로츠키파의 목소리가 유럽인들에게 들리게끔 만반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인본주의적 혁명가였던 세르주는 혁명의 과정에서 반대파에 대한 조직적인 폭력이 불가피하다는 트로츠키의 ‘과도기적 국가 폭력 긍정론’에 찬성하지 않았다.  

정치보다 글쓰기를 더 즐긴 세르주는 <러시아 혁명의 첫해>(1930)나 <혁명의 운명>(1937) 같은 역사·정치적 저작과 <혁명가의 회고록>(1945)이라는 나중에 서구 신좌파의 필독서가 된 자신의 역사적 증언의 모음을 펴냈지만, 필자가 좋아하는 것은 주로 1930년대 러시아의 암흑기를 소재로 한 그의 뛰어난 소설들이다.

<긴 황혼>(1946), <툴라예프 동지의 사건>(1948년 사후 출판)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스탈린 독재 체제의 완비라는 역사적 대사건을 안고 발버둥치는 각계각층의 역사 주인공들이다. ‘정의 상실’에 끝없는 분노를 느껴 거만한 ‘공산당 귀족’을 죽여버린 열성파의 젊은 공산주의자, 시베리아의 배고픈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스탈린과의 ‘이론 투쟁’을 쉬지 않는 트로츠키파의 ‘강철의 혁명가’, 권력과 부에 도취되면서도 숙청의 공포로 하룻밤도 편히 자지 못하는 스탈린주의의 ‘고위층 충견’들…. 역사의 마차에 깔리는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들을 세르주 이상으로 극명하게 잘 보여준 작가를 광풍의 20세기에도 찾아보기가 힘들 것이다.

“해방을 위한 투쟁 속에서 당연히 온갖 오류들을 다 범하게 돼 있다. 그러나 자신 한 몸의 영달을 위해 사는 것보다 더 무서운 오류는 없으니 그래도 투쟁하는 게 더 낫다.”(<혁명가의 회고록>) 한 세기의 비극을 함께 안고 살았던 그의 인생의 값진 결론인 셈이다.(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06. 11. 29.

P.S. 페이퍼의 제목으로 단 '반체제 맑스주의'란 표현은 그에 관한 한 영어문건에서 따온 것이다. 빅토르 세르주 아카이브(http://www.marxists.org/archive/serge/index.htm)에서 그의 저작목록과 이런저런 자료들을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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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처럼 2006-11-30 08:44   좋아요 0 | URL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퍼 갈게요.

로쟈 2006-11-30 09:00   좋아요 0 | URL
첫문장이 비문이어서 다시 수정했습니다. 오타는 또 없는지 모르겠지만...
 

숀 호머의 <라캉 읽기>(은행나무, 2006)을 얼마전에 신간으로 소개한 바 있는데, 저널리뷰로서는 가장 '본격적인' 기사가 눈에 띄어옮겨놓는다. 나는 서론에 해당하는 '왜 라캉인가?'를 지난주에 읽었는데, 바쁜 일들도 있었지만 마저 읽지 않은 것은 복사해놓은 원서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구석에 쌓여있는 복사물과 책더미 어딘가에 있을 텐데 꼭 찾으려고 하면 쉽게 눈에 안 띈다.

 

 

 

 

 

내가 계획한 '라캉 읽기'는 숀 호머의 <라캉 읽기>와에 오질비의 <라캉, 주체 개념의 형성>(동문선, 2002)과  맬컴 보위의 <라캉>(시공사, 1999), 박찬부의 <라캉: 재현과 그 불만>(문학과지성사, 2006) 등을 같이 읽는 것이다. 모두 이전에 완독하지 않았거나 이번에 새로 나온 책들이다. 거기에 러시아에서 나온 빅토르 마진의 <라캉 입문>(2004)을 겹쳐 읽으려는 것이 곧 시작될 겨울의 초입에 잡은 간단한 '라캉 읽기'이다. 혹 동행하시려는 분은 아래의 기사를 읽는 걸로 워밍업을 하시고 뛸 만하다 싶으면  몇 권의 책을 주문해 보시길(물론 읽는/뛰는 건 각자가 하시는 거다).

북데일리(06. 11. 28) 라캉이 해석하면 애드가 앨런 포우도 달라!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자크 라캉(1901-1981). 그는 언어를 이용해 인간의 욕망을 분석하는 이론을 정립했다. ‘프로이트의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는 그의 사상은 문학, 영화학, 여성학을 넘어 법률학, 국제관계까지 적용되고 있다.

라캉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 다가서지 못했던 독자라면 숀 호머의 <라캉읽기>(은행나무. 2006)의 일독을 권한다. “그렇게 어렵다던 라캉이 이렇게 재미있었나?”라는 반문이 든다면 이 책의 묘미를 제대로 느낀 것이 맞다. 책은 완곡한 문투로 라캉을 프로이트와의 관계 속에서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완곡한 문투'라고 했는데, 교과서적인 문투이기도 해서 읽기에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저자 숀 호머는 이 책을 쓴 두 가지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첫째는 라캉의 정신분석에 충실하면서 초보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라캉 입문서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입문서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숀 호머가 철학자나 사상가가 아닌 ‘문화이론가’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라캉의 개념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는 학자들이 지난 수년 간 라캉에 대한 글을 너무나 많이 써왔기 때문에 그들과는 차별적인 개론서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이 책을 썼다. 그만큼 <라캉읽기>는 여타의 라캉입문서와 다르다. 라캉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나 임상적 지침이 아닌 인문과학 분야의 학생들이 라캉을 처음 대면할 때 필요한 개론서에 가깝다.

책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거울단계 등 현대정신분석까지 이어지는 주요 개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각 부분의 결론에서는 이 개념들이 어떻게 문학, 영화, 사회이론에 적용되어 왔는가를 보여주는 예가 제시된다. 듀팽에 관한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에드가 앨런 포우의 단편 <도둑맞은 편지>가 라캉의 이론에 의해 복개되는 과정은 문학과 정신분석학이 만나는 그야말로 ‘새로운’ 텍스트다. 간단히 그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라캉을 어렵게만 느꼈던 독자라면 포우의 소설과 라캉이 어떤 접점을 찾아 나가는지 흥미롭게 들여다 볼 만 한 대목이다(*이 주제에 관한 글들을 집약해놓은 책은 J.P. 멀러 등이 편집한 <도둑맞은 포우(The Purloined Poe)>(1998)이다).

단편소설 <도둑맞은 편지>는 한 장관이 여왕의 편지를 훔치고 처음에 편지를 찾아 수색 한 경찰들은 실패하지만 후에 듀팽은 성공적으로 편지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포우의 반전은 편지가 사실은 숨겨진 적조차 없었으며, 늘 완전히 드러난 상태로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저자 숀 호머는 이를 라캉 식으로 재해석한다. ‘라캉에 의하면’ 이 이야기는 두 장면으로 나뉠 수 있다.

첫 장면에서는 왕과 장관이 자리한 상태에서 편지가 여왕에게 전달되고 여왕은 개봉되지 않은 편지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탁자 위에 놓아둔다. 장관은 즉시 그것이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성질의 편지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탁자에 놓인 편지를 집어 드는데 여왕은 그 중요성을 왕에게 알리지 않고서는 편지의 반환을 요구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경찰은 비밀리에 편지를 찾아 수색하지만 실패한다. 그들은 장관이 편지를 숨겼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반면 장관 역시 편지를 벽로 선반에 달려있는 편지꽂이에 드러나도록 놓아두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장면에서 우리는 첫 번째 장면의 반복을 보게 된다. 이번에는 장관이 편지를 갖고 있고 경찰이 바로 코앞에 있는 편지를 보지 못하는 위치를 점유한다. 듀팽은 공개적으로 벽로 선반 아래에 달려 있는 위장된 편지의 가치를 알아본다.

라캉의 독해는 두 가지 중심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첫 번째는 라캉이 볼 때 이야기의 진정한 주체의 역할을 하는 ‘편지의 익명성’ 이며, 두 번째는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주체들 사이의 관계들의 양상이다. 라캉에 의하면 이야기 안의 다양한 주체 위치들은 세 가지 특정 형태의 ‘시선’ 또는 ‘응시’에 의해 정의된다. 첫 번째 시선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시선인데 다시 말하면 첫 번 째 장면에서 왕의 위치고, 두 번째 장면에서는 경찰이 점유하는 위치다. 포우의 복선과 반전이 새롭게 해석되는 과정을 통해 라캉의 개념에 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통로가 열린다. 문화이론가가 쓴 라캉입문서가 갖는 또 다른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라캉이후’에서는 현대의 텍스트와 영화분석, 정치, 사회이론에서 라캉이 차용되어 온 다양한 방식에 대해 논하고 있으며 라캉의 그래프, ‘수학소들’ 그의 ‘네 가지 담론’은 문학과 문화학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차용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루지 않았다. 저자 숀 호머는 <문제는 정치경제학이란 말입니다! 지젝의 마르크스주의에 관하여>(2001)에서 지젝의 이론적 모순을 비판한 바 있으며 그리스 시티칼리지 미디어학부 학과장을 맡고 있다.(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06. 11. 28.

 

 

 

 

P.S. 마지막 문단에서 언급되고 있는 지젝 비판 문건은 책이 아니라 논문이며 우리말로 번역돼 있고 언젠가 옮겨놓은 바 있다. 이 리뷰기사에서 정리하고 있는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라캉의 세미나는 호머의 책 88-94쪽에서 다루어지고 있는데, 중요한 세미나이긴 하지만 이에 대해 다룬다고 해서 "문화이론가가 쓴 라캉입문서가 갖는 또 다른 차별점"이라고 추켜세우는 것은 다소 과장된 것이다(기자는 아마도 책을 절반 정도 읽고 리뷰를 쓴 듯하다). 

이 세미나는 저자 자신이 '라캉에 대한 개론서들' 가운데 제일 먼저 꼽고 있는 벤베뉴토/케네디의 'The Works of Jacques Lacan'(1986)에서 보다 자세하게 이미 분석/정리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다른 입문서들에서도 어느 정도 언급된다). 이 책은 이전에 라캉 입문서들을 나열하면서 소개한 적이 있는데, 국내에는 <라깡의 정신분석 입문>(하나의학사, 1999)으로 번역돼 있는 책이다. 숀 호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독자가 이전에 라캉에 대한 어떤 책도 읽은 적이 없다면 이 책은 다른 입문서들보다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254쪽)

숀 호머가 두번째로 추천하고 있는 책은 딜런 에반스가 편집한 <라깡 정신분석 사전>(인간사랑, 1998)이다. "이 사전은 라캉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필독서이다."(가급적 원서도 구해서 같이 읽는 게 좋겠다.) 그리고 세번째 책은 브루스 핑크의 <라캉적 주체(The Lacanian Subject)>(1995). 이 책의 한 장이 <성관계는 없다>(도서출판b, 2005)에 번역돼 있는데, 완역본은 아마도 내년쯤에 나오는 듯하다.

그리고 네번째 책은 대니 노버스가 편집한 <라캉 정신분석의 핵심개념들(Key Concepts of Lacanian Psychoanalysis)>(1998)인데, 기억에는 <라깡정신분석의 핵심용어>(하나의학사, 2003)가 그 번역서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A Compendium of Lacanian terms'이란 책의 번역이다.  노버스의 책으론 <라깡과 프로이트의 임상정신분석>(하나의학사, 2002)이 소개돼 있다.

 

 

 

 

 

그리고 저자가 끝으로 추천하고 있는 책은 루디네스코의 전기이다. 이미 많이 언급된 책이라 중언부언이 될 듯한데, "오백 페이지라는 분량 때문에(*물론 국역본의 분량은 더 된다) 조금은 기가 질리지만 읽기에 수월하며, 라캉의 출판물들의 역사에 대한 풍성한 정보와 다양한 정신분석학회들의 정보를 싣고 있는 포괄적인 부록은 상당히 도움이 된다. 교조적 라캉주의자들은 이 책을 싫어한다."

한번 소개한 적이 있지만 루디네스코가 편집한 <정신분석대사전>(백의, 2005)도 번역돼 있다. 천오백 페이지가 넘는 책이라 이야말로 엄두가 나지 않는 책이지만. 그리고 루디네스코의 <자크 라캉>이 과장이 심하다는 비판은 다리안 리더의 <라캉>(김영사, 2002)에서도 읽을 수 있다(저자는 '교조적 라캉주의자'인가?). 만화책이기도 하지만 리더의 책은 올해 3판이 새로 출간되었을 정도로 입문서로서는 가장 대중적이다. 해서, 생초보 독자라면 숀 호머보다도 먼저 집어들 만하다...

그리고 2007년에 내가 제일 처음 집어들 책은 근간예정인 지젝의 <라캉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이다. 2007년의 라인업으로 예정돼 있는 지젝의 책들과 그 연구서만 하더라도 현재 예닐곱 권이 된다. 젠장, 지젝만 읽기에도 일년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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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6-11-29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깡 공부 1주년을 기념하며 션 호머의 책을 번역하며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이 번역되었다길래 얼른 사서 비교해보니 역시 제 번역보다는 좋더군요^^;
그런데 위의 데니 노부스 편집의 <라캉 정신분석의 핵심개념들(Key Concepts of Lacanian Psychoanalysis)>(1998)의 번역은, 김종주가 번역한 <라깡정신분석의 핵심용어>(하나의학사, 2003)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확인해 볼 길이 없어 확신할 수 없지만, 제가 대학도서관에서 본 김종주 번역의 책은 호주의 정신분석학계 쪽에서 만든 정신분석용어집이었습니다. 호주에서 공부하는 자기 딸과 같이 번역을 했다고 쓸데없이 주절거려 놓은 것이 기억납니다.
도서관에 이 책의 원서는 없고 번역본만 있어서 번역상태는 확인해보진 못했습니다.
고로 사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나면 한번 확인해보시길...

로쟈 2006-11-29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긴가민가하긴 합니다(제에게 책이 있는지도 긴가민가). 제목이 'Key'고 시작했던 듯한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적었는데, 확인해보니까 A Compendium of Lacanian terms을 옮긴 책이네요. 지적해주셔서 감사.^^

수유 2006-11-2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호머의 책을 앞부분 이제 읽고 있는데요, 소개된 책들은 오질비와 박찬부 교수외에는 다 있는것 같고 저도 함 읽어봐야겠습니다. 학생들 독서퀴즈대회때 포의 도둑맞은 편지가 대상 서적이 되었었지요. 우리 아이들 수준에 라캉까지야 설명이 못미치구요..저도 잘 모르지만서두..^^
아무튼 책들은 늘 있습니다요^^ 고요히

기인 2006-11-29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에 '편이꽂이'라는 오타 발견했습니다. ^^ 말실수처럼 자판실수도 무언가를 지시하는 걸까요? ㅎㅎ
제가 읽은 라깡 관련 책들 중에는 브루스 핑크, <라깡과 정신의학>이 제일 그나마 쉬웠습니다.~ 시공사 총서류 같은 것은 안 읽어봐서 ^^;

기인 2006-11-29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아갑니다.^^ 라깡에게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과연?;;; )

로쟈 2006-11-2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는 제가 낸 게 아니라 김기자의 것인데요, 암튼 수정했습니다...

Ritournelle 2006-11-2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행이 끝난 다음에 제목이 확~ 바껴 버렸네요. ㅋ. 담아갈께요.

깽돌이 2006-11-30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캉 읽기' 오늘 샀는데 쉽게 쓴거 같습니다.전 그보다 책이 싸고,크기도 아담하고....들고다니기 편하고 좋네요.내용보다 이런 문고판스러운 책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6-12-01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가격도 문고판스러우면 더욱 좋겠죠.^^
 

오랜만에 창비주간논평 한 꼭지를 옮겨온다. 문인들의 '연봉' 얘기를 다룬 보기 드문 논평인데, 필자는 소설가 백가흠씨이다. 이 글이 눈길은 끈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엊저녁에 <현대문학>(12월호)에 실린 특집 '문학과 돈'의 글들을 읽었던 것. 연말정산의 시즌이 곧 돌아오기도 하지만 세밑이 되면 한해동안의 궁상스런 살림살이에 대해서 되돌아보게도 되는데, 궁상으로 치면 여느 직업 부럽지 않은 시인/소설가들의 경우엔 감회가 더할지 모르겠다(비정규직 대학강사들의 처지가 그럭저럭 동병상련이 될 만하다). 손으로 꼽을 만한 극히 일부 소설가를 제외하면 전업시인/작가로서 중산층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부업이 불가피한 이유이고 상금이 걸린 문학상들에 목매달기도 하는 이유이다. 당장에 대안을 떠올리기 어려우므로 대략 그런 속사정만을 챙겨두고자 한다.

 

창비주간논평(06. 11. 28) 내 연봉은 포도나무 한그루

가을이 이렇게 가버리다니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개나리가 마음을 들볶은 게 꼭 일주일 전만 같은데, 목련은 피었는지 모르게 빗방울에 후드득 떨어진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낙엽 다 지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쓸쓸하게 매달려 있는 감 때문에 저는 어찌할 바 몰라 방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지요.


그래서 선배 시인 한분을 꼬여내 북한산에 올랐습니다. 늦은 단풍이나 볼까 하고 말입니다. 비온 뒤라 날씨도 좋고 공기도 맑아서 아침부터 마음을 가만히 둘 길 없었는데요. 막상 산에 오르니 기대했던 거와는 달리 낙엽도 거의 진 뒤라 풍경은 시시하기만 했습니다. 대신 멋진 집들을 구경했습니다. 빨간 벽돌, 십 미터도 넘어 보이는 담으로 둘러싸인 예쁜 집들을 말입니다. 사실 예쁜지 어떤지는 잘 몰라요, 집이 보여야 집 구경을 하지요. 실은 멋지고 높은 담 구경을 했다고 해야 맞겠네요.

 

서둘러 내려와선 두부와 막걸리를 먹었어요. 고추전도 먹었구요. 산에 갔다 왔는데도 집에 돌아오는 길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산이 제 것 같지 않아서였던 것도 같아요. 취해서 속으로 중얼거렸지요. 여기다 집을 사야겠는데, 그래야 저 산을 가질 수 있을 텐데. 집으로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 쓰다 만 소설들이 저를 애처롭게 쳐다보는데요. 술 취한 눈으로 저는 소설에게 말했지요. 니가 잘 씌어져야 거기에 집을 짓지. 소설아, 소설아 집 좀 지어줘라. 분명 거기까진 기억이 났었는데, 깨어보니 한낮이었습니다. 집을 짓고 북한산을 갖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지요.


누구나 연말이 되면 새해에 바라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서둘러 정하곤 하는데요. 몇년 전 망년회가 생각납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여자친구도 없는 떨거지 친구들과의 망년회 자리였는데요. 케이크에 소원을 빌고, 촛불을 끄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진지해서 저도 그에 버금가는 무엇인가를 정해야만 했었는데요. 새해에 바라는 소원, 생각하자마자 금방 떠올랐어요. 제 차례가 되자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새해에는 연봉이 육백만 넘었으면 좋겠다구요. 전혀 웃기지 않는 얘기였음에도 사람들이 웃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웃었지요. 말하고 나니 조금 웃기는 것도 같았습니다.


며칠 후 선생님 댁에 신년인사하러 갔는데 술이 두잔 세잔 돌자 누군가 또 묻는 거예요. 새해에 바라는 소원이 뭐냐구요. 저는 똑같이 연봉이 육백만원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요. 그 시절 진짜 소원이었으니까요. 한명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 웃었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소설가 이기호가 가흠아, 연봉 육백이면 한달에 오십만원 벌어야 하는데 그거 힘들다, 했어요. 정말 힘든 표정을 지었어요, 이기호 형이요. 그래서 제가 그니까 소원이지 형, 했습니다. 실은 속으로 그때 부러웠거든요. 연봉 육백만원을 이미 이룩했던 기호 형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때문에 온나라가 떠들썩하지요. 정치권, 매스컴 할 거 없이 무슨 호재라도 만난 것처럼 떠드는 것이 정말 큰일이 난 것은 분명해 보이기도 한데요. 집값이 오르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저는 웬 호들갑들인가 싶더라구요. 평균임금을 받는 사람이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44년이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그때도 저는 그러건 말건 했었는데요, 평균임금을 벌게 되니 이젠 집을 갖고 싶은 거예요. 몇년 전만 해도 연봉 육백만원을 간절히 원했던 제가 말입니다. 왠지 집이 있으면 장가도 잘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구요. 그런 생각이 드니 느닷없이 가로수들이 부러워지는 거예요. 니들은 무슨 복이 있어 이렇게 비싼 도로가에 한평씩 집을 지었냐 싶은 거예요. 가로수들이 부러워지니까 신경질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어느날은 집앞에 늘어선 가로수들마다 한대씩 발길질을 한 적도 있어요.


하나 또 예전에 정말 몰랐던 일 하나가 있는데요. 바로 마당이에요. 시골에서 자란 저는 당연히 마당이 있어야 집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서울에서는 마당을 갖는 일이 큰 호사임을 깨닫게 된 거예요. 원래 간사하잖아요, 사람마음. 제가 세들어 사는 집에 감나무, 자두나무가 서 있는 꽤 넓은 마당이 있는데, 언젠가부터 제가 감나무, 자두나무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바꿔 말하면 제 욕심이 얼마나 물질적으로 비대해졌나를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땅을 딛고 서 있는 모든 것과 경쟁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경쟁심이 집값을 올리는 것이더라구요. 제가 집값 상승의 주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감나무보다 잘살아보려고 정말이지 애썼거든요.

 


예전에 시인 박형준 형과 치악산에 오른 적이 있는데요. 제가 등단한 지 얼마 안됐을 무렵이었는데요. 작가가 되고 일년을 살았는데,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등단한 지 십년쯤 지난 형에게 치악산을 오르며 물었어요. 정말 궁금하더라구요. 어떻게 먹고 사는지 말이에요. 형 연봉은 얼마나 돼요? 박형준 시인이 껄껄 웃더니 내 연봉은 포도나무 한그루쯤 될까 몰라 했습니다. 문학하는 사람에게 연봉은 마음속에 포도나무 한그루 정도 있으면 된다는 말이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저는 가로수가 부러우니 제가 시인이 되지 못한 이유가 분명 있기는 있는 것이겠지요?

 

06. 11. 28.

 

 

P.S. '연봉 육백만원' 달성에 보탬이 돼보려고 해도 백가흠의 책으로 나와있는 건 달랑 <귀뚜라미가 온다>(문학동네, 2005)란 소설집 한권이 전부이다. 어느 자리에선가 이 제목의 흠을 꼬집기도 했는데, 사실 '귀뚜라미가 온다' 같은 건 시집의 제목으로나 어울리는 것 아닌가?('귀뚜라미'로 어떻게 먹고 살겠는가?) 차라리 데뷔작의 제목을 따서 <광어>라고 했다면 훨씬 더 묵직해보였을 것이다('광어'는 빼어난 단편이다). 어쨌거나 연말 분위기이기도 하니까 우리의 불우한 작가들을 돕는 의미에서라도 소설집 한두 권씩은 사두시길 바란다. 뭐, 샛노란 게 빛깔도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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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1-28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도나무 한 그루정도면 현실은 궁상맞은 삶이군요.
하지만 그의 영혼도 가난할거라는 상상은 하지 않으렵니다.
여우는 포도를 무지 좋아하지만 여우의 연봉은 염소 한 마리나 될까 싶다는
말씀을 드리고 저 노란 표지를 보관함에 풍덩 빠뜨리고 갑니다.
별총총, 로쟈님도 총총, 여우도 총총, 우리 모두 반짝 총총

로쟈 2006-11-28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이왕이면 감나무, 자두나무도 되고 싶은 거지요. (영혼이 부유한) 작가들이라도 딸린 식구들은 어쩔 수 없으니...

기인 2006-11-28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현'공식'연봉은 200만원 정도 되고, 장래 희망은 시인/소설가 이며, 아마 비정규 대학강사를 하게 될 저, 퍼 갑니다. ^^;

비로그인 2006-11-28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나서는 다음달 책 살때 백가흠 소설가의 책을 꼭 구입해야 될 것 같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krinein 2006-11-28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재미있게 읽고, 네이버 블로그로 퍼갔습니다.

biosculp 2006-11-2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도나무 한구루라는 제목에 감나무가 떠오르더군요.
감 주산지 중의 하나인 상주에 오래된 감나무 같은경우 나무 하나에서 4000개 이상의 감이 열리더군요. 트럭으로 하나.
감나무 하나면 연봉600은 족히 넘어갈것 같군요.
하여간 요즘 집값과 연결해보면 씁쓸해지고요.

다크아이즈 2006-11-2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 연봉은 마이너스 통장입니다. '포도나무 한 그루'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시인이기 때문에 가능한거지요?

로쟈 2006-11-29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르신 분들도 계신데, 다들 내년에는 '부자되세요!'란 말씀은 못드리겠고, 포도나무라도 한 600그루 정도 키우시킬 기원합니다...

라주미힌 2006-12-01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금이 피어나는 나무 한그루만 가졌어도.. 쩝.
 

경향신문(06. 11. 27) 마광수교수 “내 주제는 영원히 性이다”

마광수 연세대 교수(55·국문학)가 다시 성 논쟁의 무대에 올랐다. 개인 홈페이지에 음란물을 올린 혐의로 지난 24일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것. 대법원에서 음란물 확정 판결을 받은 소설 ‘즐거운 사라’의 본문과 남녀 성기가 노출된 사진 등을 올린 데 대한 조치다.

마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요즘 인터넷 사이트에 별 게 다 있는데…날 표적 삼아 ‘본때’를 보여주자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즐거운 사라’ 사건 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진전된 게 없다. 문화 민주화가 되려면 멀었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25, 26일 이틀간 전화로 이뤄졌다. 대면 인터뷰는 “그럴 형편이 안 된다”는 그의 거부로 성사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음란이란 법조항이 분명한 것도 아니고 해석도 검열기관마다 제각각”이라며 “마광수를 잡는 것이 음란을 잡는 것인 줄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시정명령 통보도 없이 곧바로 경찰이 수사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경찰은 마교수의 홈페이지가 별도의 성인인증 절차가 없어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유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마교수는 이에 대해 실제로 드나드는 이용자들은 대부분 20대 이상 성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작가처럼 독자와의 대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요청에 따라 홈페이지를 개설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정성들여 홈페이지를 관리해왔다. 자신의 시나 소설, 수필 작품은 물론 평론, 그림들까지 올렸다.

마교수는 “홈페이지에 다른 글도 많은데 전체는 보지 않고 부분만으로 문제 삼은 것이 ‘즐거운 사라’ 때와 똑같다”고 말했다. “당시 판사도 ‘10년 후에는 무죄’라고 말했다. 그걸 보고 ‘엿장수 맘대로식 재판이구나’ 생각했다”며 “재판은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의 조사 방침을 듣고 밤새워 ‘오해받을 만한 사진들’을 지운 것도 이 때문이다. 더이상 구설수에 오르기 싫다고 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 그는 “학교(재직 문제)가 제일 걱정”이라고 했다. 당장 아주대가 27일 예정된 특강을 취소하겠다고 연락했다고 한다. 연세대측으로부터는 아직 반응이 없다. 하지만 불안하다고 했다. ‘즐거운 사라’로 해직된 후 몇년간 휴직과 복직을 되풀이한 기억 때문이다. 동료 교수들과의 관계도 껄끄러운 듯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건은 외설이 아니라 ‘문화 민주화’를 향한 싸움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패지수가 가장 낮은 스웨덴, 노르웨이 등은 이미 1960년대에 성개방을 하지 않았느냐”면서 “한국이 말로만 문화강국, OECD 진입했다고 자랑하는데 검열제도가 버젓이 살아있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 민주화가 되려면 검열제도가 철폐돼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경찰도 음란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마교수는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논란을 불러일으키며 92년 10월 검찰에 구속됐다. 그해 12월 1심 재판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교수직을 잃었다. 95년 대법원은 ‘즐거운 사라’에 대해 음란물로 확정판결했다.

그의 전공은 ‘윤동주 연구’. 음란물과 관련된 필화 사건의 주인공, 혹은 비타협적 프리섹스주의자 교수라는 일반적 인식과는 사뭇 다르다. 79년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연구와 저술 활동도 활발하다. 올해도 ‘삐딱하게 보기’ 등 윤동주 작품 이론서를 펴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뭐다 하며 몸의 담론이 유행하는데 외국 학자들이 이야기하면 박수 쳐주면서 내가 하면 ‘죄인’ 취급이나 하는데 이게 바로 사대주의”라고 지적했다. 이어 “나도 문화적으로 기여한 사람이다. 네일아트, 페티시즘, 피어싱은 이미 20년 전에 내가 이야기했던 것들”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한국 소설로는 유일하게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이 ‘즐거운 사라’였다”며 “‘한류’ ‘한류’ 하면서 난리인데 잡아가지 말고 오히려 상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이 몸 담론의 ‘국산품’을 만들었다고 주장한 그는 “89년에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책을 냈을 때 학교에서 징계를 받았다”며 “하지만 요즘 ‘야하다’는 말은 칭찬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또 “영원히 내 주제는 성”이라며 “문화 민주화를 위해 불합리를 타파하고 억압된 본능을 바로세우는 계몽자의 입장에 설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90년 합의이혼한 마교수는 현재 서울 동부이촌동의 집에서 86세의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이번에도 병든 어머니에게 심려를 끼쳤다고 전했다. ‘적당히 좀 살아라’는 야단을 들었다는 것. 마교수도 건강에 문제가 있다. 우울증과 당뇨를 앓고 있다. 올해는 위궤양으로 입원까지 했다. 하지만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

마교수는 글쓰기 외에 그림 그리는 것도 즐긴다. 한때 미대 진학을 꿈꿨을 정도로 실력도 탄탄한 편이다. 지난해와 올해 화가 이목일씨 등과 함께 전시회를 했다. 내년 1월 중순에 또다시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

마교수는 이번 사건으로 고민하는 게 또 있다. 당초 이달 말 출간할 예정이던 소설 ‘유혹’을 어떻게 할 것인가다. 이 소설 역시 음란물로 낙인찍힐까 두려운 것이다. ‘성인 등급 신청’도 검토 중이다. 지난해 모 일간지에 연재하던 소설이 네 번 경고 끝에 중단된 이후 “더욱 겁을 먹게 됐다.” ‘억압된 본능을 바로세우겠다’는 투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김유진 기자)

경향신문(06. 11. 25) 마광수 음란물게재 혐의 입건…‘괴로운 사라’

즐거운 사라’로 유명한 연세대 국문과 마광수 교수(55)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음란물을 게재한 혐의(정보통신망법 등 위반)로 24일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마교수는 지난해 5월부터 자신의 홈페이지를 개설해 음란소설 ‘즐거운 사라’의 본문을 비롯해 남녀의 성기가 노출된 나체사진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마교수는 외설 논란을 일으킨 ‘즐거운 사라’ 파동끝에 1992년 10월 검찰에 구속됐으며 그해 12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교수직을 잃었다. ‘즐거운 사라’는 95년 6월 대법원에서 음란물 확정 판결이 나왔다.

마교수는 경찰 조사에서 “10년이 훨씬 지났기 때문에 그때와 지금의 법 기준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음란의 기준이란 것이 애매하지 않느냐. 일본 번역서들은 별 게 다 들어와서 심의를 모두 통과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는 또 “우리 사회는 성에 대해 ‘모르는 게 약이다’는 식으로 대처하는데 이제는 성도 ‘아는 것이 힘이다’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홈페이지에는 선정적인 수필 등 음란물이 담겨 있는데 미성년인증 절차없이 누구나 접속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도 추가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마교수 홈페이지는 현재 폐쇄된 상태다.

마교수는 98년 3월 사면·복권되면서 연세대에 복직했다. 그는 최근 시집 ‘야하디 얄라숑’, 에세이집 ‘마광쉬즘’ 등을 펴내는 등 작품활동을 재개했다.(김유진·임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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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11-27 17:57   좋아요 0 | URL
참... 저 분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저런 문학가도 한 명 쯤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10년이 훨씬 넘게 지나도 이 모양 이 꼴인지... 시쳇말로 '안습'입니다 진짜 -_-a

로쟈 2006-11-27 22:19   좋아요 0 | URL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 인터뷰 기사의 말미에 붙은 멘트대로 투사라기보다는 약골 지식인일 따름인데...
 

엊그제 프랑스의 영화배우 필립 느와레(1930-2006)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우리에겐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로 너무도 잘 알려져 있고 친숙한 배우. <일 포스티노>에서의 파블로 네루다 역도 그만의 배역이었다. 부고를 전하는 기사들중에 '알프레도 아저씨께 부치는 편지' 형식의 기사가 눈에 띄어 옮겨놓고 추모의 마음을 대신한다. 나이 들수록 장례식에 갈일이 많아진다더니 요즘은 부쩍 부고기사들이 눈에 자주 들어온다.

뉴스엔(06. 11. 24) '시네마천국’ 알프레도 아저씨께 부치는 편지

영화 '시네마천국'의 영사기사 알프레도 역의 명배우 필립 느와레가 24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세상과 이별했다. 외신들은 그의 타계를 추모 속에 타전했다(*위키피디아에는 23일이라고 나온다).



1930년 프랑스 노드빌레에서 태어나 1955년 영화와 첫 인연을 맺은 그는 그로부터 정확히 33년 뒤 세계 영화사에 명작으로 남은 영화 '시네마 천국'을 탄생시켰다. 영화 속에서 소년 토토와 세대를 초월하는 우정을 나눈 그의 연기는 전 세계인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안겨줬다. 이제 천국에서 잠들 '영원한 알프레도'에게 '영원한 소년 토토'가 가상의 추모 편지를 보냈다.

알프레도 아저씨!

벌써 30년이 지났어요.

아저씨가 영사기에 걸던 필름의 한 자락을 만지작러리던 시절, 잘려나간 필름을 보고 싶어 그렇게도 아저씨를 귀찮게 했던 시절.

제게 '고향에 절대 돌아와서는 안된다'고 하며 등을 떠밀어내시던 아저씨의 따스한 손길이 아직도 가슴 한 구석에 온전히 남아 있는데, 결국 아저씨는 떠나셨습니다.

매일 같이 편집된 장면을 보여 달라고 졸랐던 제가 어느새 영화를 밥벌이로 삼은 영화감독이 됐다는 걸 믿으시겠어요?

아저씨!

30년 만에 찾은 고향인데 우리의 추억이 담긴 시네마천국은 그 흔적 조차 남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라진 극장의 추억은 아저씨와 제 가슴 속 저 밑바닥에 따스한 우정이 되어 지금, 제 눈 앞에 서 있어요.

영화가 추억의 자락을 그토록 길게 남길 수 있다는 걸 아저씨는 제게 가르쳐 주셨지요.

한 편의 영화에 인생사가 모두 담겨졌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영화보다 빠르네요.

아저씨가 저를 떠나보내실 때 해주신 말씀이 아직까지 생생한 거 아세요?

'사랑이 별거냐'고. '작은 땅 안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멀리 떠나 좋은 영화감독이 되라'던 그 말씀. 솔직히 그 때는 조금 아니, 많이 섭섭했어요.

아저씨로 인해 저는 추억을 알고 사랑을 배웠습니다.

아저씨가 제게 우정이 뭔지, 영화가 뭔지 또 인생이 뭔지 알게 해주셨듯 저도 영화를 통해 관객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려고요.

제게 가장 처음으로 영화라는 근사한 놀이감을 던져주신 아저씨를 기리며….

아저씨의 영원한 친구 토토 실바토레가. (고홍주 기자)

06. 11. 26.

 

 

 

 

P.S. 필립 느와레가 영화에 데뷔한 건 1955/1956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26살의 청년 느와레도 물론 있었던 것이다. 1976년과 1990년, 두 차례 세자르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니까 프랑스에서도 배우로서 입지를 굳힌 건 중년에 와서이다. 물론 그가 전세계적 명성을 얻은 건 <시네마천국>(1988/1989)과 <일포스티노>(1994) 덕분이었다. 이 두 영화를 빼고 내가 기억하는 느와레의 모습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파트리스 르콩트의 코미디 영화 <탱고>(1993). "바람기 심한 폴은 자신의 바람기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있다는 상상으로 미칠 지경이 된다. 결국 판사인 삼촌 렐레강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렐레강은 몇 년 전 아내와 정부를 살해하고도 교묘하게 풀려난 뱅상을 협박, 폴의 아내 마리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함께 마리를 찾아 떠난다. 하지만 아내를 죽이러가는 와중에도 폴은 자신의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 여자 저 여자를 기웃거린다."란 줄거리에서 렐레강 역할이 느와레의 몫이었다.

그리고 내가 극장에서 제일 처음 본 느와레의 영화 <마이 뉴 파트너>(1984). 프랑스판 <투캅스>인데, 안성기 역을 느와레가 맡았다고 보면 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파리의 으슥한 밤거리. 귀가길에서 시민 주머니를 털어 도망가던 두 명의 도둑이 있다. 경찰의 추적에 몰린 이들은 순간적으로 꾀를 내어 한 명만 잡히기로 한다. 그러자 두 명 중 한 명이 자기 동료를 붙잡는다. 알고 보니 이들은 모두 경찰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경찰인 르네는 천연덕스럽게 같이 강도를 하던 동료를 체포한다." 여기서 르네 역을 맡은 이가 느와레이다(영상기사 알프레도의 전직이 경찰이었던 것). 



"만년 말단 형사인 르네는 자신의 구역에 있는 상인들에게 비리를 미끼로 돈을 뜯어내는 '타락한' 경찰이다. 르네는 한마디로 직권 남용죄에 걸려도 여러번 걸린 형사. 지저분한 파리 교외에서 몸부딪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교묘하게 용돈을 울궈낸다. 노름꾼에게 돈을 걸면 억지로라도 따게 되어 있고 안경 노점상에서 안경을 사면 오히려 더 얹어서 거슬러 준다. 레스토랑은 물론 꽁자. 그러던 어느날 경마에 단단히 미친 그는 현행범이 눈앞에 있는데도 잡기는 커녕 경찰 사이렌을 올리며 마감 직전에 경마장에 가서 마권을 사게 된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이 감방에 보낸 동료 대신 경찰학교를 졸업한 젊은 형사 프랑소와가 파트너로 배치된다." 대략 <투캅스>의 '원조'가 되는 영화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공통점은 두 영화 모두에서 티에리 레르미트(1952- )가 느와레의 단짝으로 나오는 것. 레르미트는 프랑스 영화에 등장하는 빈도수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배우인데, 아마도 프랑스의 현역 남자배우 베스트5에 들어갈 만한 배우이다. 그의 영화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로맨틱 커플>(1992). 원제는 '엉뚱한 사람'을 가리키는 <얼룩말>인데, 알렉상드르 자르댕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소설은 <아내처럼 멋진 드라마는 없다>(까치글방, 1994)로 번역돼 있다. 자르댕의 소설들은 역시나 소피 마르소 주연으로 영화화된 <팡팡>(문학사상사, 1990) 외에 몇 권 더 소개돼 있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소설들과 함께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 둘을 같은 카테고리의 작가로 분류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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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E 2006-11-2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네마 천국의 OST 저는 요즘 매일 틀어놓고 있습니다. 질리지 않아요.

비연 2006-11-26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슬프네요....

nada 2006-11-26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의 캐릭터로만 바이오그래피를 써 보는 것도 재밌겠는데요. 영상 기사의 전직이 경찰.^^

stella.K 2006-11-2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는데...<시네마 천국>은 참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가 있어서 더욱 빛나지 않았을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로쟈 2006-11-2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라기보다는 아예 영화속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던 양반인데요 어느덧 나이들이 그리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