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호머의 <라캉 읽기>(은행나무, 2006)을 얼마전에 신간으로 소개한 바 있는데, 저널리뷰로서는 가장 '본격적인' 기사가 눈에 띄어옮겨놓는다. 나는 서론에 해당하는 '왜 라캉인가?'를 지난주에 읽었는데, 바쁜 일들도 있었지만 마저 읽지 않은 것은 복사해놓은 원서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구석에 쌓여있는 복사물과 책더미 어딘가에 있을 텐데 꼭 찾으려고 하면 쉽게 눈에 안 띈다.

 

 

 

 

 

내가 계획한 '라캉 읽기'는 숀 호머의 <라캉 읽기>와에 오질비의 <라캉, 주체 개념의 형성>(동문선, 2002)과  맬컴 보위의 <라캉>(시공사, 1999), 박찬부의 <라캉: 재현과 그 불만>(문학과지성사, 2006) 등을 같이 읽는 것이다. 모두 이전에 완독하지 않았거나 이번에 새로 나온 책들이다. 거기에 러시아에서 나온 빅토르 마진의 <라캉 입문>(2004)을 겹쳐 읽으려는 것이 곧 시작될 겨울의 초입에 잡은 간단한 '라캉 읽기'이다. 혹 동행하시려는 분은 아래의 기사를 읽는 걸로 워밍업을 하시고 뛸 만하다 싶으면  몇 권의 책을 주문해 보시길(물론 읽는/뛰는 건 각자가 하시는 거다).

북데일리(06. 11. 28) 라캉이 해석하면 애드가 앨런 포우도 달라!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자크 라캉(1901-1981). 그는 언어를 이용해 인간의 욕망을 분석하는 이론을 정립했다. ‘프로이트의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는 그의 사상은 문학, 영화학, 여성학을 넘어 법률학, 국제관계까지 적용되고 있다.

라캉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 다가서지 못했던 독자라면 숀 호머의 <라캉읽기>(은행나무. 2006)의 일독을 권한다. “그렇게 어렵다던 라캉이 이렇게 재미있었나?”라는 반문이 든다면 이 책의 묘미를 제대로 느낀 것이 맞다. 책은 완곡한 문투로 라캉을 프로이트와의 관계 속에서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완곡한 문투'라고 했는데, 교과서적인 문투이기도 해서 읽기에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저자 숀 호머는 이 책을 쓴 두 가지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첫째는 라캉의 정신분석에 충실하면서 초보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라캉 입문서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입문서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숀 호머가 철학자나 사상가가 아닌 ‘문화이론가’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라캉의 개념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는 학자들이 지난 수년 간 라캉에 대한 글을 너무나 많이 써왔기 때문에 그들과는 차별적인 개론서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이 책을 썼다. 그만큼 <라캉읽기>는 여타의 라캉입문서와 다르다. 라캉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나 임상적 지침이 아닌 인문과학 분야의 학생들이 라캉을 처음 대면할 때 필요한 개론서에 가깝다.

책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거울단계 등 현대정신분석까지 이어지는 주요 개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각 부분의 결론에서는 이 개념들이 어떻게 문학, 영화, 사회이론에 적용되어 왔는가를 보여주는 예가 제시된다. 듀팽에 관한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에드가 앨런 포우의 단편 <도둑맞은 편지>가 라캉의 이론에 의해 복개되는 과정은 문학과 정신분석학이 만나는 그야말로 ‘새로운’ 텍스트다. 간단히 그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라캉을 어렵게만 느꼈던 독자라면 포우의 소설과 라캉이 어떤 접점을 찾아 나가는지 흥미롭게 들여다 볼 만 한 대목이다(*이 주제에 관한 글들을 집약해놓은 책은 J.P. 멀러 등이 편집한 <도둑맞은 포우(The Purloined Poe)>(1998)이다).

단편소설 <도둑맞은 편지>는 한 장관이 여왕의 편지를 훔치고 처음에 편지를 찾아 수색 한 경찰들은 실패하지만 후에 듀팽은 성공적으로 편지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포우의 반전은 편지가 사실은 숨겨진 적조차 없었으며, 늘 완전히 드러난 상태로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저자 숀 호머는 이를 라캉 식으로 재해석한다. ‘라캉에 의하면’ 이 이야기는 두 장면으로 나뉠 수 있다.

첫 장면에서는 왕과 장관이 자리한 상태에서 편지가 여왕에게 전달되고 여왕은 개봉되지 않은 편지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탁자 위에 놓아둔다. 장관은 즉시 그것이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성질의 편지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탁자에 놓인 편지를 집어 드는데 여왕은 그 중요성을 왕에게 알리지 않고서는 편지의 반환을 요구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경찰은 비밀리에 편지를 찾아 수색하지만 실패한다. 그들은 장관이 편지를 숨겼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반면 장관 역시 편지를 벽로 선반에 달려있는 편지꽂이에 드러나도록 놓아두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장면에서 우리는 첫 번째 장면의 반복을 보게 된다. 이번에는 장관이 편지를 갖고 있고 경찰이 바로 코앞에 있는 편지를 보지 못하는 위치를 점유한다. 듀팽은 공개적으로 벽로 선반 아래에 달려 있는 위장된 편지의 가치를 알아본다.

라캉의 독해는 두 가지 중심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첫 번째는 라캉이 볼 때 이야기의 진정한 주체의 역할을 하는 ‘편지의 익명성’ 이며, 두 번째는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주체들 사이의 관계들의 양상이다. 라캉에 의하면 이야기 안의 다양한 주체 위치들은 세 가지 특정 형태의 ‘시선’ 또는 ‘응시’에 의해 정의된다. 첫 번째 시선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시선인데 다시 말하면 첫 번 째 장면에서 왕의 위치고, 두 번째 장면에서는 경찰이 점유하는 위치다. 포우의 복선과 반전이 새롭게 해석되는 과정을 통해 라캉의 개념에 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통로가 열린다. 문화이론가가 쓴 라캉입문서가 갖는 또 다른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라캉이후’에서는 현대의 텍스트와 영화분석, 정치, 사회이론에서 라캉이 차용되어 온 다양한 방식에 대해 논하고 있으며 라캉의 그래프, ‘수학소들’ 그의 ‘네 가지 담론’은 문학과 문화학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차용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루지 않았다. 저자 숀 호머는 <문제는 정치경제학이란 말입니다! 지젝의 마르크스주의에 관하여>(2001)에서 지젝의 이론적 모순을 비판한 바 있으며 그리스 시티칼리지 미디어학부 학과장을 맡고 있다.(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06. 11. 28.

 

 

 

 

P.S. 마지막 문단에서 언급되고 있는 지젝 비판 문건은 책이 아니라 논문이며 우리말로 번역돼 있고 언젠가 옮겨놓은 바 있다. 이 리뷰기사에서 정리하고 있는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라캉의 세미나는 호머의 책 88-94쪽에서 다루어지고 있는데, 중요한 세미나이긴 하지만 이에 대해 다룬다고 해서 "문화이론가가 쓴 라캉입문서가 갖는 또 다른 차별점"이라고 추켜세우는 것은 다소 과장된 것이다(기자는 아마도 책을 절반 정도 읽고 리뷰를 쓴 듯하다). 

이 세미나는 저자 자신이 '라캉에 대한 개론서들' 가운데 제일 먼저 꼽고 있는 벤베뉴토/케네디의 'The Works of Jacques Lacan'(1986)에서 보다 자세하게 이미 분석/정리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다른 입문서들에서도 어느 정도 언급된다). 이 책은 이전에 라캉 입문서들을 나열하면서 소개한 적이 있는데, 국내에는 <라깡의 정신분석 입문>(하나의학사, 1999)으로 번역돼 있는 책이다. 숀 호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독자가 이전에 라캉에 대한 어떤 책도 읽은 적이 없다면 이 책은 다른 입문서들보다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254쪽)

숀 호머가 두번째로 추천하고 있는 책은 딜런 에반스가 편집한 <라깡 정신분석 사전>(인간사랑, 1998)이다. "이 사전은 라캉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필독서이다."(가급적 원서도 구해서 같이 읽는 게 좋겠다.) 그리고 세번째 책은 브루스 핑크의 <라캉적 주체(The Lacanian Subject)>(1995). 이 책의 한 장이 <성관계는 없다>(도서출판b, 2005)에 번역돼 있는데, 완역본은 아마도 내년쯤에 나오는 듯하다.

그리고 네번째 책은 대니 노버스가 편집한 <라캉 정신분석의 핵심개념들(Key Concepts of Lacanian Psychoanalysis)>(1998)인데, 기억에는 <라깡정신분석의 핵심용어>(하나의학사, 2003)가 그 번역서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A Compendium of Lacanian terms'이란 책의 번역이다.  노버스의 책으론 <라깡과 프로이트의 임상정신분석>(하나의학사, 2002)이 소개돼 있다.

 

 

 

 

 

그리고 저자가 끝으로 추천하고 있는 책은 루디네스코의 전기이다. 이미 많이 언급된 책이라 중언부언이 될 듯한데, "오백 페이지라는 분량 때문에(*물론 국역본의 분량은 더 된다) 조금은 기가 질리지만 읽기에 수월하며, 라캉의 출판물들의 역사에 대한 풍성한 정보와 다양한 정신분석학회들의 정보를 싣고 있는 포괄적인 부록은 상당히 도움이 된다. 교조적 라캉주의자들은 이 책을 싫어한다."

한번 소개한 적이 있지만 루디네스코가 편집한 <정신분석대사전>(백의, 2005)도 번역돼 있다. 천오백 페이지가 넘는 책이라 이야말로 엄두가 나지 않는 책이지만. 그리고 루디네스코의 <자크 라캉>이 과장이 심하다는 비판은 다리안 리더의 <라캉>(김영사, 2002)에서도 읽을 수 있다(저자는 '교조적 라캉주의자'인가?). 만화책이기도 하지만 리더의 책은 올해 3판이 새로 출간되었을 정도로 입문서로서는 가장 대중적이다. 해서, 생초보 독자라면 숀 호머보다도 먼저 집어들 만하다...

그리고 2007년에 내가 제일 처음 집어들 책은 근간예정인 지젝의 <라캉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이다. 2007년의 라인업으로 예정돼 있는 지젝의 책들과 그 연구서만 하더라도 현재 예닐곱 권이 된다. 젠장, 지젝만 읽기에도 일년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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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6-11-29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깡 공부 1주년을 기념하며 션 호머의 책을 번역하며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이 번역되었다길래 얼른 사서 비교해보니 역시 제 번역보다는 좋더군요^^;
그런데 위의 데니 노부스 편집의 <라캉 정신분석의 핵심개념들(Key Concepts of Lacanian Psychoanalysis)>(1998)의 번역은, 김종주가 번역한 <라깡정신분석의 핵심용어>(하나의학사, 2003)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확인해 볼 길이 없어 확신할 수 없지만, 제가 대학도서관에서 본 김종주 번역의 책은 호주의 정신분석학계 쪽에서 만든 정신분석용어집이었습니다. 호주에서 공부하는 자기 딸과 같이 번역을 했다고 쓸데없이 주절거려 놓은 것이 기억납니다.
도서관에 이 책의 원서는 없고 번역본만 있어서 번역상태는 확인해보진 못했습니다.
고로 사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나면 한번 확인해보시길...

로쟈 2006-11-29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긴가민가하긴 합니다(제에게 책이 있는지도 긴가민가). 제목이 'Key'고 시작했던 듯한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적었는데, 확인해보니까 A Compendium of Lacanian terms을 옮긴 책이네요. 지적해주셔서 감사.^^

수유 2006-11-2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호머의 책을 앞부분 이제 읽고 있는데요, 소개된 책들은 오질비와 박찬부 교수외에는 다 있는것 같고 저도 함 읽어봐야겠습니다. 학생들 독서퀴즈대회때 포의 도둑맞은 편지가 대상 서적이 되었었지요. 우리 아이들 수준에 라캉까지야 설명이 못미치구요..저도 잘 모르지만서두..^^
아무튼 책들은 늘 있습니다요^^ 고요히

기인 2006-11-29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에 '편이꽂이'라는 오타 발견했습니다. ^^ 말실수처럼 자판실수도 무언가를 지시하는 걸까요? ㅎㅎ
제가 읽은 라깡 관련 책들 중에는 브루스 핑크, <라깡과 정신의학>이 제일 그나마 쉬웠습니다.~ 시공사 총서류 같은 것은 안 읽어봐서 ^^;

기인 2006-11-29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아갑니다.^^ 라깡에게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과연?;;; )

로쟈 2006-11-2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는 제가 낸 게 아니라 김기자의 것인데요, 암튼 수정했습니다...

Ritournelle 2006-11-2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행이 끝난 다음에 제목이 확~ 바껴 버렸네요. ㅋ. 담아갈께요.

깽돌이 2006-11-30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캉 읽기' 오늘 샀는데 쉽게 쓴거 같습니다.전 그보다 책이 싸고,크기도 아담하고....들고다니기 편하고 좋네요.내용보다 이런 문고판스러운 책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6-12-01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가격도 문고판스러우면 더욱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