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KTX를 타고 지방에 다녀오며 기차에서 잠을 청했더니 자정이 넘어도 맨정신이다. 그렇다고 생산적인 일을 할 만한 두뇌 상태는 아니어서 '이달에 읽을 만한 책'의 리스트나 만들어둔다. 하던 대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추천도서 목록에다가 최근에 나온 관심도서들을 덧붙인다. '읽을 만한 책'이라곤 하지만, 정작 읽을 시간을 내기는 어려운지라 반이상은 '안 읽고 넘어간 책'의 목록으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1. 문학

문학분야의 책은 작가 신경숙이 추천한 김중혁의 <악기의 도서관>(문학동네, 2008)이다. 따로 추천이 아니더라도 지난달에 나온 국내소설 가운데 가장 평이 좋은 작품집이 아닌가 싶다(컬처뉴스의 리뷰는 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1&title_down_code=002&area_code_num=113&article_num=9210 참조). 두번째 단편집인데, 이제 다음 순서는 장편소설이 되는 것인지? 개인적으론 이미 지난달에 '5월에 읽을 만한 책'으로 올려놓았기에 자세한 언급은 피한다(나는 몇 편의 단편을 읽었다). 이 두번째 소설집과 같이 읽을 만한 책은 데뷔작 <환상수족>에 이어서 두번째 시집을 낸 이민하의 <음악처럼 스캔들처럼>(문학과지성사, 2008)이다.

나는 구름! 나는 표범! 나는 나비!
살이 벗겨지도록 일광욕을 하며 기린초의 꿀을 빠는
노란 입술 빨간 종아리
울긋불긋 이름이 많은 나를 부르며 목이 쭉쭉 늘어나는
너를 기린이라 부를래
그러면 너는 흑마술 같은 울음
바늘이 되어 나의 이름에 꾹꾹 文身을 하는
너를 자꾸 통과하며 門身이 되는
나는 죽어서도 구름표범나비
표본실에 묻혀 사각사각 날개를 펴고 접으며
찍을 테면 찍어봐! 포즈를 바꾸며

꿈꾸는 시인의 '스캔들' 모음집? 이 소설집/시집들과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중국문학의 차세대 작가군을 대표하는 소설가"라는 비페이위(1964- )의 소설집 <청의>(문학동네, 2008)와 장편소설 <위미>(문학동네, 2008)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지만 벌써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 루쉰상을 이미 두 차례나 수상한 작가라고 하니까 '명불허전'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미 40대 중반의 작가이긴 하나 중국문학의 차세대 기대주의 작품들을 한국의 젊은 시인/작가들과 겹쳐읽는 것도 유익한 경험이 되겠다.

 

 

 

 

2. 역사

역사분야의 책으로 이덕일 소장이 추천한 책은 '그들이 본 우리' 총서의 첫 번째 책으로 나온 <임진난의 기록>(살림, 2008)이다. "저자 루이스 프로이스는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로서 1563년 일본에 파견되어 임진왜란이 끝나기 한 해 전인 1597년 나가사키에서 사망하는데, 이 책은 그가 집필한 <일본사>의 마지막 열 개 장을 번역한 것"이라 한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선교사의 책답게 천주교 신자였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용감한 장수’라고 우호적으로 서술하는 한편, 경쟁자였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사악한 이교도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일본군이 조선에서 겪은 일을 생생히 전해주면서 귀중한 일차 사료들도 보여주는데,(...) 일본선교사였던 서양인의 시각으로 본 임진왜란은 새로운 시각과 생각거리를 제시해 줄 것이다."

덕분에 기억난 책은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휴머니스트, 2007)이다. "2006년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센터의 주최로 ‘임진왜란: 조일(朝日)전쟁에서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란 주제로 열렸던 국제학술회의의 결과를 담고 있는 책"으로 "익히 한국과 일본의 전쟁이라고 알려진 임진왜란을 전근대 역사에서 한·중·일 삼국이 개입한 거의 유일한 대규모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왜란을 전후로 조선사에 약간 관심을 갖게 되는데,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김찬웅이 엮은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글항아리, 2008)과 이건창의 글을 모은 <조선의 마지막 문장>(글항아리, 2008)이 눈에 띈다. 소재는 다르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과 글에 대한 감각을 살펴볼 수 있겠다.

 

 

 

 

한편, 요즘 이명박의 모습에서 선조를 연상하는 칼럼들이 올라오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론 '선조와 이명박 대통령'(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90465.html),  백성을 버리고 떠난 임금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90651.html)을 참조해볼 수 있다. 선조실록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10>(휴머니스트, 2007)이 별권으로 나와 있다. 이 유약했던 임금에게 당대 최고의 학자들인 퇴계와 율곡이 각각 <성학십도>와 <성학집요>를 지어서 바친 일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만하고 어리석은 임금은 거유들도 구제할 수 없었다. 이 교훈을 이 시대에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인지? 강명관 교수는 이렇게 꼬집는다.

조선의 지배층, 곧 왕과 양반은 평시에 백성들의 생산 위에 풍요를 누렸고, 백성을 제 마음대로 죽이고 살리며 위세를 떨었지만, 다급해지면 자신들의 안위를 챙기느라 백성을 버리고 몰래 피난을 떠났다. 백성이 잡혀가도 속수무책이고 잡혀갔던 백성이 돌아오면 더럽혀졌네, 어떠네 하면서 쫓아내었다. 두 전쟁은 요컨대 양반 지배 체제의 속성을 드러내는 시금석이었던 것이다.

미국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국민의 걱정을 괴담으로 치부하고,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대운하를 계속 파자고 우기는 당신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고 있는데, 국민을 무시하는 권력을 행사하는 당신들은 누구인가? 혹 그 옛날 도성을 버리고 떠난 그분들의 후예는 아니신가. 아니면, 잡혀가는 백성들을 그냥 바라보고, 돌아온 백성들을 더럽다며 내쫓은 그분들의 후예는 아니신가.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추천한 철학분야의 책은 권수현의 <문화철학과 자율성>(철학과현실사, 2008)이다. 외관상으론 딱딱한 철학서 정도인데, 소개는 좀 의외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요즈음, 대중문화연구자들이 아니라 대중들을 위한 문화철학서가 새로 나왔다. <문화철학과 자율성>은 제목의 딱딱한 인상과 달리, 대중문화를 소비하거나 생산하는 일반인들이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하여 대중문화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마련된 책"이라니까. 분량도 150여쪽에 불과해서 그냥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만하다.

책은 주로 대중문화와 관련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문화철학'이란 말에 이끌려 떠올리게 되는 철학자는 문화철학의 원조쯤 되는 에른스트 캇시러이다. 그의 대표작인 <인간이란 무엇인가>(창, 2008)이 최근에 다시 나온 때문이기도 하다. <문화과학의 논리>(길, 2007)도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이다. 20년쯤 전에 서점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게 그의 책들이었는지라 약간의 만감을 느끼게 된다.  

 

 

 

 

4. 정치

손호철 교수가 추천한 정치분야의 책은 이문영 교수의 자서전 <겁 많은 자의 용기>(삼인, 2008)이다. 출간 당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책인데, 간략한 소개는 이렇다. "1970-1980년대 소위 민주교수로 여러 번 감옥을 간 사람 중에 이문영 전 고려대 교수가 있다. 사회참여에 적극적이고 감옥도 자주 간만큼 꽤나 급진적이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겁 많은 사람이고 청교도적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켜야 할 최소의 것들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겁 많은 보수주의자’가 용기를 내서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는 것이다. 이문영의 자서전 <겁 많은 자의 용기>는 여러 면에서 한번쯤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이는 어두웠던 우리의 현대사에 대한 증언으로서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한 양심적인 지식인이 증언하는 한국 현대사 정도가 되겠다. 최근에 읽은 것으로 그런 '양심'을 보여주는 책은 존 터먼의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재인, 2008)이다. 제목 그대로 미국 지식인의 신랄한 자국 비판서인데 저자가 감옥에 갔다는 얘기는 없다. 물론 책의 말미에 실린 '미국이 세계에서 잘하고 있는 일 10가지'는 번역본에서 빠져 있기에 우리에게만 더 과격해보이는 탓도 있다. 하워드 진의 서문대로 "부당한 권리에 이의를 제기하고, 도전하고, 저항하며, 미국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미국의 명예로운 전통이다. 그리고 존 터먼은 바로 그런 전통과 사상에 입각하여 이 책을 썼다. 이런 책을 쓰고 읽고 출판하는 행위야말로 민주주의를 고양하는 일이다." 그러니 오히려 이런 비판서를 부러워해야 할까? '우리가 잘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5. 경제/경영 

정운찬 교수가 뽑은 경제/경영서는 <중소기업, 인재가 희망이다>(삼성경제연구소, 2008). 나로선 손에 들 일이 전혀 없는 책이긴 한데, 요점은 이렇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이 거듭 강조하는 것처럼 중소·벤처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재 발굴 및 육성, 시스템 경영 및 성과주의의 정착, 학습하는 조직문화의 구축 등이 절실히 요구된다. 책의 뒷부분에는 수많은 성과주의 인사 및 인적자원 개발 성공사례가 풍부히 실려 책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래도 최근에 눈길이 경제학 책은 데이비드 워시의 <지식경제학 미스터리>(김영사, 2008)이다. '지식경영'이란 말보다는 드물게 접하는 용어여서 '지식경제학'이란 게 무엇인가 싶은데,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핀 공장' 이론의 딜레마를 해결하고, 창발적 아이디어의 힘이 인류의 경제적 진보를 이끈다는 폴 로머의 '신성장 이론'을 탄생의 뿌리로 삼은 책. 신성장 이론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애덤 스미스와 앨프리드 마셜,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비롯해 경제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기라성 같은 석학들의 이론을 총망라하여 300년 경제학 이론의 총체적인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경제학이론사로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겠다. 사실 원제는 '지식과 국가의 부(Knowledge and the Wealth of Nations)이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바로 연상하게 되는. 그러다 보니 얼마전에 김수행 교수의 <국부론> 번역 개정판이 나왔다는 사실도 생각난다(기억에 내가 갖고 있던 건 동아출판사판이었다). 찾아보니 도미니크 포레이의 <지식경제학>(한울, 2004)도 소개된 적이 있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 책은 김누리의 <기부향기는 매콤한 페퍼로드를 타고>(아르케, 2008)이다. 평소 별로 기부를 하지 않는 나로선 눈길이 갈 만한 책이 아니지만 소개글 정도는 읽어본다. "<기부향기는...>는 우리 사회복지기관 실무자가 미국 비영리 모금단체를 단기 방문한 경험을 기록한 탐방기로서, 자선 행위가 기부활동을 통해 미국인의 일상사에 제도화되어가는 방식을 알기 쉽게 소개한 책이다. 돈은 제 발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매개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저자는 미국의 모금단체들이 다양한 이벤트나 출장방문에 이르기까지 기부자 확보나 관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열정과 공력을 투여하고 있는가를 일기 형식으로 생생히 기술한다." <미국을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과 같이 읽어볼 수도 있겠다. 

호기심에 '사회복지'를 검색해보니 사회복지사 자격증 관련서와 사회복지학 교재들만 잔뜩 뜬다. 차라리 '복지국가'가 사정이 좀 나은데, 번역서들로  프랑수아 메랭의 <복지국가>(한길사, 2000), 니클라스 루만의 <복지국가의 정치이론>(일신사, 2001), 그리고 폴 피어슨의 <복지국가는 해체되는가>(성균관대출판부, 2006) 등이 눈에 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복지 모델을 소개하는 책들도 여럿 나와 있다.  



 

 




7. 과학

장경애 과학동아 편집장이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존 타일러 보너의 <크기의 과학>(이끌리오, 2008)이다. 나도 서점에서 보고 재미있겠다 싶었던 책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생태 및 진화생물학 명예 교수인 저자는 크기는 형태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생명체의 기능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크기의 차이가 자연선택의 중요한 원인이고 크기가 변한 뒤에 구조 변화가 일어나므로 크기가 진화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정도의 요지라면 예전에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 <다윈 이후>(범양사, 1988)에서도 읽은 바 있지만 이 책에서는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은행나무, 2008), 그리고 켄 앨더의 <만물의 척도>(사이언스북스, 2008) 등도 챙겨둘 만하다. 전자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분자생물학의 화두를 가볍고 경쾌한 문장으로 풀었다는 책이고, 후자는 "현대 사회에서 국제 표준 단위계인 미터법의 탄생에 얽힌 우여곡절"을 다룬 책. 우리도 이 미터법에 따른다고 '평'이니 '자'니 하는 걸 다 날려먹은 바 있기에 관심이 좀 가는 책이다.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한달 먼저 찾아온 납량물이다. 백문임의 <월하의 여곡성>(책세상, 2008). 부제는 '여귀로 읽는 한국 공포영화사'. "지난 40여 년간 만들어진 여귀 공포영화를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심리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분석하고 나아가서는 아시아의 공포영화가 갖는 공통점, 그리고 서양의 공포영화가 우리의 차이점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고 있는 이 책은 단연코 여름 밤 읽을거리로 안성맞춤"이라는 것이 추천이 이유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김소영 교수의 <근대성의 유령들>(씨앗을뿌리는사람, 2000)이 먼저 떠오르는데, 한국영화사를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다시 읽고자 하는 시도들이다. 한국영화와 관련해서는 두어 달 전인가부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FIlm Story 총서'를 펴내기 시작했는데, 그 중 정종화의 <한국영화사: 한권으로 읽는 영화 100년>과 김한상의 <조국근대화를 유람하기> 등을 같이 읽어볼 만하다. 특히 후자는 영화 <팔도강산> 시리즈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박정희 시대의 근대화 드라이브가 영화라는 매체를 어떻게 활용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추천한 교양서는 나도 여러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 마거릿 미드의 전기 <루스 베네딕트>(연암서가, 2008)이다(첵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2057513 참조). 덕분에 전기들로 교양분야의 책을 미리 채워보자면, 미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분야에서 선구적이었던 여성 마리 퀴리의 평전 <퀴리 가문>(지식의숲, 2008)을 들 수 있겠다. 제목대로, 마리 퀴리의 평전이 아니라 '퀴리 가문'의 편전이다. 여섯 차례나 노벨상을 수상한 명문가인 만큼 자녀교육에 관심이 있는 부모들도 손에 들어봄 직하다. 더불어 과학자 제임스 맥스웰에 대한 전기 <모든 것을 바꾼 사람>(지식의숲, 2008)도 눈에 띈다. 물리 교과서에서나 접한 이름이긴 한데,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의 토대가 되어 20세기 물리학의 놀라운 성취를 이끌어낸 밑거름이 되었다"고 하는 그 맥스웰이다. 

사정상 한권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물론 이들 과학자들의 전기보다는 박상익 교수의 <밀턴 평전>(푸른역사, 2008)를 집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실낙원>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영문학사상 최고의 서사시인이자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시인이라는 세간의 일반적 평가 외에도 시력 상실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와 국왕파의 온갖 위협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공화정에 대한 꿈을 견지한 이상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세세하게 짚어주는 전기라고 한다(자세한 리뷰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90727.html 참조).

 

 

 

 

밀턴은 <실낙원>의 저자이면서 <아레오파기티카>(소나무, 1999)의 저자이기도 하다. 역시나 박상익 교수에 의해서 옮겨진 바 있는 이 책은 '언론 자유의 경전'으로 불린다고 한다. 책의 의의에 대해서는 챙겨두도록 하자.

존 밀턴은 근대 최초로 ‘표현의 자유’를 주창한 사람이었다. 후대에 ‘언론 자유의 경전’으로 불리게 된 <아레오파기티카>가 그의 자유 사상 정신을 응집해 보여준 책이다. 밀턴은 이 소책자를 청교도 혁명이 한창이던 1644년에 발표했다. 집필의 계기가 된 것은 당시 혁명의회의 다수파였던 장로파가 주도한 ‘출판허가법’ 제정이었다. 출판허가법은 청교도 혁명으로 폐기했던 출판 검열제를 부활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밀턴은 왕당파와 국교파에 대항해 함께 싸웠던 장로파가 혁명 정신을 배반하고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해 사상을 억압하자 이들에 맞서 자유 정신을 방어했다. 그리하여 <아레오파기티카>는 출판의 자유, 다시 말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명시적으로 옹호한 최초의 저작이 되었다.

이 책에서 밀턴은 책을 생명과 진리의 담지자라고 강조했다. “사람을 죽이는 자는 신의 형상인 이성적 창조물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책을 파괴하는 자는 이성 그 자체를 죽이는 것이며,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신의 형상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는 사전 검열이 사상의 자유 시장을 봉쇄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진리와 거짓으로 하여금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십시오.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진리의 논박이야말로 (거짓에 대한) 최선의 억압이며 가장 확실한 억압입니다.” “진리가 전능한 신 다음으로 강하다는 것을 모르는 자가 누구입니까. 진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책도 필요 없고 전략도 필요 없으며 검열제 또한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오류가 진리의 힘에 맞서 싸울 때 사용하는 수단이며 방책입니다. 진리에게 자유로운 공간을 제공해주십시오. 진리는 묶여 있을 때는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밀턴은 이 팸플릿에서 “나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그런 자유를 나에게 달라”고 호소했다. 또 <아레오파기티카>를 출간하면서 표지에 이런 경구를 실었다. “국가에 대해서 건전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고 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칭송을 받을 때, 그리고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할 의지도 없는 사람이 침묵을 지킬 수 있을 때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아레오파기티카>를 우리말로 옮긴 박상익 교수는 이 도저한 자유 정신을 담은 저작에 대해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라고 평가한다.(고명섭 기자)



 

 

 

10. 아동

 

보통 아동물 대신에 평전류를 고르곤 했지만 '교양'쪽에서 미리 다룬 탓에 이번에는 그냥 추천도서를 따라가보도록 한다. 엄혜숙, 이상교 두 아동문학가가 추천한 책은 권정생의 <랑랑별 때때롱>(보리, 2008)이다. 지난달 1주기를 맞이하여 선생의 책들이 여러 권 출간됐는데, 그때 나온 '판타지' 동화다(http://blog.aladin.co.kr/mramor/2076051 참조). 나는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 2008)만 일단 구입했었는데, 나머지 책들도 여유를 보아 일독해볼 참이다. <랑랑별 때때롱>은 아이에게 읽히고...

08. 06. 01.

 

 

 

 

P.S. 자유 독서가 직업이 아닌 이상 나열한 책들을 다 읽어볼 도리는 없다. 하지만 제목과 목차만 확인해두더라도 나름대로 '공부'다. '이달의 읽을 만한 책'들을 달마다 계속 늘어놓는 이유이다. 그런 취지로 '이달의 고전'까지 골라본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서해문집, 2005)이다. 어느 책이 정본 번역서인지는 확인해보지 못했는데, 여하튼 여러 종의 책들이 나와 있다. 주경철 교수의 번역본(을유문화사, 2007)이 가장 최근에 나온 듯하다.

 

 

 

 

이 유토피아란 주제를 놓고 같이 읽을 만한 책은 <미래의 기억, 유토피아>(서해문집, 2007) 외에, 최근에 나온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 <혁명의 시간>(교양인, 2008) 등이다. 6월에는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이 2008년 오늘 우리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우리가 배울 것은 '죽은 개'의 교훈이 아니라 '살아있는 정신'의 현실성이다.

20세기 미국과 소련(러시아)에서의 '대중 유토피아의 소멸'을 다룬 수잔 벅 모스의 <꿈의 세계와 파국>(경성대출판부, 2008)은 그러한 '현실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데 유익한 참조점이다. 시간이 된다면 '킹콩과 소비에트 궁전' 등에 대해서 6월에는 페이퍼를 써보고 싶다.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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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다 2008-06-02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벅 모스의 책이 드디어 출간됐군요. 원서나 번역서나 가격이 비슷하네요.^^ 번역서 표지가 아주 구리구리 하네요. 경성대 출판부는 표지나 본문 디자인에 신경을 아예 안쓰는 듯 합니다. 책값은 엄청 비싸면서 말이죠. 내용만 좋으면 된다는 것인지... 시국이 어수선합니다. 2MB 정부의 앞날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많이들 예상했었는데 그 우려를 가볍게 뛰어넘습니다. 대단한 내공이죠?^^ 그나저나 기말이 코 앞이네요. 성적 낼 거 생각하니 걱정이 앞섭니다.^^

로쟈 2008-06-02 22:37   좋아요 0 | URL
네, 무겁고 비쌉니다.^^; 기말이 와도 일들은 여전하니 어깨가 가볍지 않네요.--;
 

한겨레의 '우리시대 지식논쟁'은 지난주부터 '지젝 신드롬의 허와 실'을 다루고 있다. 두번째 주자로 나선 박정수씨는 그의 철학을 한마디로 '실천 없는 철학'이라 요약하고 있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90673.html). 이전의 비판(http://blog.aladin.co.kr/mramor/989000)보다 새로워 보이는 것은 지젝을 포이어바흐와 동치시키는 대목이다. "객관적 실재처럼 보이는 것을 주체의 창안물로 되돌려놓는 것, 이것이 지젝의 사유방법이다"라고 정리하고 있으니까. 더불어 그를 홉스주의자, 자유를 두려워하는 히스테리 환자,  헤겔 우파적인 국가주의 철학자로 새롭게 규정한다(하긴 지젝은 헤겔을 '숭고한 히스테리 환자'라 불렀다). 그러면서 그가 어떤 삶의 형식을 욕망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기대보다는 부드러운 비판이다('관념론자 지젝'을 창안하고 있는 정도이다). 보다 신랄한 비판이 필요한 독자라면 이안 파커의 <지젝>(도서출판b, 2008)을 참조하셔야겠다. 

우리시대 지식논쟁 / ② 실천 없는 철학

이현우씨는 지난주 이 지면에서 “나는 이 ‘괴물’의 광기와 열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헤겔과 라캉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슬라보예 지젝이 여러 면에서 ‘괴물’ 같은 철학자라 해도 그의 사유가 “우리 시대의 이념적 지형을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두 번째 논자로 나선 박정수씨는 그 기여의 실체에 의문을 표시한다. “이데올로기적 현실의 비실재성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세계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를 바꾸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안하는 실천”이라고 말한다. 지젝의 ‘결여’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는 게 박정수씨의 생각이다. 다음주에는 이성민씨가 지젝에 대한 또다른 견해를 밝힌다.(안수찬 기자)

한겨레(08. 05. 31) 현실 비판할 뿐 대안찾기엔 침묵

“‘우리는 어떻게 이 일상의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가’라고 묻지 말고 차라리 ‘이 일상의 현실이 그토록 확고하게 실존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이 한 문장 속에 지젝의 비판 철학이 지닌 가치와 한계가 담겨 있다.

지젝은 헤겔주의자이며, 정치적으로 좌파이다. 헤겔 좌파로서 지젝은 물신주의적 믿음 위에 세워진 현실의 ‘근거 없음’을 폭로하는 데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지만 정작 어떻게 그 이데올로기적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 않는다. 모든 철학이 일상의 현실은 생각만큼 확고하게 실존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불교의 연기론은 만물이 서로 의존하여 발생하기에 고정된 실체는 없다고 가르치고, 플라톤은 현실이 이데아의 물질적 복사본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젝은 신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믿는 주체(인간)의 상상적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포이어바흐의 방법을 따른다. 객관적 실재처럼 보이는 것을 주체의 창안물로 되돌려놓는 것, 이것이 지젝의 사유방법이다.

신경증 환자의 실재인 ‘외상’도 마찬가지다. 외상이 신경증의 원인이 되는 것은 그것을 객관적 실재로 믿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은 무의식 속에서 객체화된 외상을 주체 자신의 창조물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객관성의 형식으로 환자를 괴롭히던 외상이 주체 자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환자는 치유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고백처럼 외상의 환상성을 깨달아도 신경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리비도의 체질을 바꾸거나 대안적인 인간관계를 찾지 못하는 한, 증상은 괴롭지만 살아갈 의미이기도 하다. 신이 인간의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도 교회가 사회적으로 유용하다면 신앙생활은 지속되고,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도 다른 민족과 더불어 살 의사와 능력이 없으면 민족주의는 지속된다. 화폐의 물신적 힘은 그것에 대한 믿음에서 생긴다는 걸 알아도 대안적인 교환 방법을 찾지 못하면 화폐 물신주의는 계속되며, 자본의 잉여가치가 노동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도 자본 권력을 대체할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를 구성할 욕망과 능력이 없으면 자본가에게 좀더 많은 지분을 요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래서 이데올로기적 현실의 비실재성을 비판하는 것으로는 세계를 바꿀 수 없다.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를 비판하면서 말했던 것처럼 세계를 바꾸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안하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 실천은 자유로운 연합체를 구성하는 욕망들과 그 욕망들을 결합하는 프로그램에 의해 가능하다. 신ㆍ민족ㆍ자본이라는 초월적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의 욕망이 구성하는 공통적(commune) 삶의 형식, 그것이 마르크스가 기획한 코뮨주의다. 그런 코뮨적 욕망은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삶을 위해 노예가 되는 사회를 당연하다거나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환상 숭배자들에게만 안 보일 뿐 우리의 삶 속에 실재적으로 잠재해 있다.

지젝은 ‘인간’의 조건 속에서 이런 코뮨적 삶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에게 인간은 상징적 질서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상징적 질서는 인간을 자연(사물, 신체)과 분리시키고, 남자와 여자로 분리시키고, 낱낱이 떨어진 개별 인간들로 분리시킨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미지의 타자로 존재하는 상징적 질서 속에서 “인간의 욕망, 그것은 타자의 욕망이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적 시장경제야말로 인간의 욕망에 충실한 삶의 형식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에서 인간의 욕망은 자유롭다고 한다. 아무도 타자의 욕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타자의 욕망은 배려의 대상일 뿐 아니라 유일한 가치척도이다. 시장에서는 아무도 ‘참아라’거나 ‘즐겨라’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다만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라’고 할 뿐이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함으로써 우리는 자유롭고 평등한 가치척도를 갖게 된다고 한다. 이런 시장 민주주의적인 가치척도를 위해 딱 하나 금지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타자의 욕망을 배려하지도 않고, 타자의 욕망을 척도로 삼지도 않는 것이다. 그런 ‘이기적’인 욕망에 대해서는 마땅히 ‘다수’의 이름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의 욕망을 저주하는 것,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적 시장 경제가 대중을 일반적 노예로 만드는 방법이다.

물론 지젝은 ‘너무나 인간적인’ 이 시장경제를 반대하고 그것을 넘어선 세계 질서를 언급한다. 인간의 조건에서는 불가능한 이 기획은 인간 속에 있는 ‘괴물’을 승인하면서 시작된다. 홉스가 말한 ‘국가’라는 괴물. 지젝은 프로이트의 문명론에 내재한 홉스주의를 충실히 반복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 문명은 ‘법’과 ‘초자아’를 필연적으로 요청한다. 욕망을 억압하는 법과 억압을 욕망하는 초자아가 없으면 인간 무리는 욕망의 충족을 향한 만인의 전쟁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지젝 역시 상징적 질서 속에서 만인은 만인에 대해 미지의 타자이며, 평화로운 이웃들의 이면에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이 욕망의 시장 체제를 초극하는 유일한 방법은 보편적 주체 형식으로서의 국가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모든 작은 타자들을 하나의 총체적 집합으로 통합하는 예외적 큰타자, 곧 헤겔의 입헌군주와 모든 작은 괴물들의 욕망을 중화시키는 보편적 욕망의 괴물, 곧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결합한 글로벌한 국가체제(제국)를 수립하자는 것이다.(솔직히, 지젝의 기획이 정말 이걸까 의심했는데, 이현우씨의 독해에 따르면 그렇다.)

헤겔의 입헌군주가 정말 ‘텅 빈’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는 상징적 존재로만 남아 있을까? 프롤레타리아 국가기구의 관료집단들이 정말 ‘비계급’으로서의 보편계급을 대변할까? ‘지젝의’ 레닌주의에 따라붙을 이런 의문들은 사실 본질적인 게 아니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젝의 말처럼, 미래를 예견하는 실천은 가짜 행위다. 실천의 근거는 과거의 경험이나 미래의 예견에서 찾을 수 없다. 혁명의 실천은 전대미답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유일한 근거는 그로 인해 창조되는 세계가 좋은 세계라는 자기 확신뿐이다. 지젝은 정말 그걸 확신하고 있을까?

지젝은 ‘자유’를 원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 같다. 히스테리 환자처럼 타자의 규정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지만(그래서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라고 물어보게 만들지만) 그런 만큼 자유를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자유는 불가능한 몸짓이다!) 그래서 텅 빈 상징으로 존재하는 주인에 의존할 때만 자유롭다는 결론에 도달한 게 아닐까. 주인의 욕망을 저주하는 시장의 노예가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은 단 하나의 상징적 주인 밑에서 보편적 노예가 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릴 때 지젝은 더는 지배적 현실의 환상성을 비판하는 헤겔 좌파가 아니라, 유일한 지배자의 환상으로 수립된 현실을 추구하는 헤겔 우파의 자리에 선다. 그것도 좋다. 좌파든 우파든 중요한 건 자리가 아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삶을 창안하고 싶은가, 어떤 삶의 형식을 욕망하는가? 지젝의 흥미진진한 비판의 뒷맛으로 그가 욕망하는 삶을 느끼고 싶다. 무리인가?(박정수 수유+너머 연구원)

08. 05. 30.

P.S. 이번에 나온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은 지젝에 관한 최적의 입문서이다. 무엇보다도 가독성이 좋은 번역 덕분에 지젝의 '레닌주의'와 '레닌주의적 실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우회 없이 이해할 수 있다. '실천'의 의미에 대해서도 지젝은 제2부의 서두에서 밝혀놓고 있다. 그는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11번째 테제를 뒤집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고 말한다: "오늘날 첫번째 과제는 행동하고 싶은 유혹, 직접 개입하여 사태를 변화시키고 싶은 유혹(이렇게 되면 막다른 골목에, 즉 '전 지구화된 자본주의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가?'하는 맥 빠지는 불가능성에 이를 수밖에 없다)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헤게모니를 쥔 이데올로기 좌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268쪽) 지젝이 곧바로 인용하는바,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했다.

"나로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모르겠다'라는 말만이 진실한 답변일 경우가 매우 많다. 나는 있는 것을 엄격하게 분석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사람들은 나를 책망한다. 당신이 비판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더 낫게 만들지 말해줄 의무도 있는 것 아니냐. 내 생각에 이것은 논란의 여지 없는 부르주아적 편견이다. 역사에서는 순수하게 이론적인 목표만을 추구한 작업이 의식을 바꾸고, 그럼으로써 사회적 현실까지 바꾼 사례가 아주 많다."

마르크스도 바로 그러한 사례가 아닌가? 지젝이 하고자 하는 일은 그러한 '분석'이고 '의문의 제기'이다. 그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까지 말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도르노에 따르면) 부르주아적 편견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지젝은 '전부'가 아니고 '메시아'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젝에 대한 신앙이 아니다. 다만 그와 함께 현실의 좌표를 다시 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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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5-30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로쟈님때문에 이 책을 또 사야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2008-05-30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2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려했던 바대로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이 고시됐다(http://www.hani.co.kr/arti/politics/administration/290555.html). 한심하고도 어이없는 일인데, 현정부의 대국민 인식이 어떤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반발이 더 거세지면 농림부 장관의 사퇴 정도를 복안으로 내놓을 거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지지자들의 반응을 좀 듣고 싶다. 답답한 마음에 이런저런 뉴스기사들을 읽어보다가 마치 5공으로 회귀하려는 듯한, 현정부의 퇴행적 언론관을 폭로하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경향신문의 정리기사와 한겨레21의 원기사를 모두 옮겨놓는다. '멍청한 대중'들이 필독할 필요가 있다('대중지성'이란 말이 무색하다). 

경향신문(08. 05. 30) "멍청한 대중은 비판적 사유가 부족하므로…"

"절대 표 안나게 유학과 연수, 정보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한 주요 기자와 프로듀서, 작가, 행정직의 관리가 필요하다" "멍청한 대중은 비판적 사유가 부족하므로 몇가지 기술을 걸면 의외로 쉽게 꼬드길 수 있다"

국민을 '멍청한 대중'이라고 하는 등 상식이하의 표현과 졸렬한 '홍보조언'이 들어있는 이 문구들은 쇠고기 재협상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가 높던 지난 5월초 문화관광체육부 홍보담당자 대상 교육자료에서 나온 것이다. 이 문건 하나만 봐도 국민을 섬기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신뢰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홍보 문건 내용 대로라면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자성은 '몇가지 기술'이 부족해 '멍청한 대중'이 꼬임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앞으로 "내가 먼저 소통 하겠다"는 다짐도 몇가지 기술을 구사해 '멍청한 대중'을 꼬드겨 보겠다는 술수처럼 해석된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최근 입수해 보도한 이 문건을 보면 정부가 출범한지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들이 왜 그리 힘들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이명박 정부는 말로는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섬기려는 마음가짐이 애초부터 없었지않았느냐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다.



즉 대통령 스스로 국민의 우려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경제만 살리면 만사가 해결되는 양 미국과 일본을 돌며 CEO 행세를 하고 다녔다는 비판이다. 많은 네티즌들은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CEO인 대통령은 주주인 국민들이 5년동안 고용한 전문경영인이지 오너가 아니다" "전문경영인은 주주인 국민이 언제든지 해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올리며 대통령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시도에 진정성을 갖고 소통하기는 커녕 인터넷 공간을 부정적 여론 확산의 진원지로 규정하고 문화부 홍보지원국에 '인터넷 조기대응반'이라는 이름의 비공식 조직을 꾸려 오히려 네티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니터 하고 있었다. 실제로 '한겨레21'이 입수해 보도한 '인터넷 여론 형성 과정-독도 괴담 사례' 문건에는 '독도괴담'이 어떻게 유포되는지, 네이버 다음 엠파스 등 주요 포털에서 독도 관련 뉴스가 어디에 어떻게 배치되는지 등이 정리돼 있다.

뿐만 아니다. 문건에 따르면 "유학과 연수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기자와 프로듀서 등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조선일보 27일자 1면 머리는 '사흘째 도로 점거'라는 제목으로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주말에 이어 월요일인 26일 집회에서도 '이명박 탄핵'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를 외치며 불법적으로 차로를 점거한 '반정부 시위' 성격을 뚜렷이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사설에서는 "실제로 경찰에 연행된 사람들 다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고 한다"며 "그러나 그보다는 그동안 쇠고기 수입반대와는 관련 없었던 집단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집회가 불법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후설을 제기한 정부의 입맛에 딱 맞는 기사다.

최근 한국산업기술연구원의 김이태 박사는 대운하에 대한 양심선언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고, 이어서 쇠고기 협상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의 한 공무원이 한-미 쇠고기 졸속 협상을 비판하며, 재협상을 촉구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쯤 되면 왜곡보도를 일삼고 있는 조중동 기자들 중 한두 명이라도 양심선언 대열에 동참할수도 있지 않을까?(엄호동 | 경향신문 미디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한겨레21(08. 05. 26) “부정적 여론 진원지, 적극적 관리 필요”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입만 열면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불통’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생각하는 소통은 국민의 말을 듣고 자신의 뜻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정부의 말만 듣고 따르라는 ‘일방통행’ 같다. 이런 방식의 소통을 생각하는 정부에게 국민은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순치의 대상일 뿐이다. 순치의 수단은 두려움와 회유다. 이른바 공안 정치다.

<한겨레21>은 청와대와 정부가 언론과 인터넷 포털을 순치시키기 위해 마련한 ‘채찍과 당근’이 담긴 문건을 입수했다. 국민들이 서로 불신하게 만드는 경찰의 공안 시스템이 부활하는 현장도 잡았다. 이른바 김경준씨 기획입국설 수사를 통해 정부와 검찰이 정치권을 향해 겨누고 있는,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의 방향도 점검해봤다. 이번 취재를 통해, 민주정부 10년을 거치고도 정부 각 기관에 ‘공안의 DNA’가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국민에게는 민주정부 10년의 경험을 통해 ‘자유의 DNA’가 심어져 있음도 알 수 있었다. ‘공안의 부활’을 예단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편집자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으로 국민 여론이 크게 악화됐던 5월9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와 정부 부처 대변인들이 연 언론 대책회의 내용이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한겨레21>이 5월23일 입수한 ‘부처 대변인회의 참고자료’를 보면, 당시 회의에서는 신문과 방송, 인터넷은 물론 지역신문에 대한 ‘관리 방안’이 논의됐으며, 이를 위해 정부 광고의 집행, 언론·정부 공동(협찬) 행사 운영, 가판 모니터링 강화 등의 방법이 거론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민심 이반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 핵심 관계자들이 모여 사태의 원인을 언론 탓으로 돌리고 ‘언론 길들이기’ 수단을 논의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문제의 회의 내용 일부를 보도한 <경향신문>(5월17일치)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며 언론중재를 신청했지만, 관련 사실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문서가 확인됨에 따라 정부에 대한 비난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논조 안 맞으면 광고 주지 말자”
문건에 따르면, 당시 ‘부처 대변인회의’ 참석자는 모두 22명이었다. 주요 인사는 청와대 박흥신 언론1비서관과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조원동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장, 김규옥 기획재정부 대변인 등이다. 이 밖에도 거의 모든 부처의 대변인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날 회의는 신재민 차관의 모두 발언으로 시작해 조원동 국정운영실장의 언론 대응 방안 발언으로 이어졌다. 핵심 주제는 언론사의 논조에 따른 정부 광고 운영 방안이었다. 쉽게 말해 정부를 비판하는 특정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정부 광고를 집행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거론된 것이다.

이에 대해 <경향신문>은 한 참석자의 말을 빌려 “회의 모두에 조원동 국정운영실장이 일부 언론의 쇠고기 관련 보도가 적대적인 만큼 이에 상응하는 정부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참석자는 “<경향신문> 논조와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파문 관련 해명 광고 내용이 너무 다른 만큼 과연 이런 신문에 광고를 줄 필요가 있느냐를 놓고 고민도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경향신문> 보도가 논란이 되자 문화부에서는 “각 부처 대변인회의는 격주마다 열리는 정례회의로, 정부 광고와 관련한 얘기를 할 성질의 회의가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이마저도 거짓말이었다. 이날 회의자료를 보면, 정부 광고 운영 방안은 표지에도 ‘주요 논의사항’으로 소개돼 있다. 자료 3~4쪽을 보면, 조원동 실장이 관련 논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부처 협조사항 논의’라는 항목으로 △언론·정부 공동(협찬)행사 활성화 △특정 언론 대상 정부 광고 및 기고 금지 조치 해제 이후, 운영상 문제점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언론광고 집행 여부를 특정 언론사와의 관계 속에서만 파악하려는 천박한 인식에서 비롯된 행태라는 지적이다. 즉, 정부 광고는 정부가 최대한 많은 국민에게 알려야 할 내용이 발생할 때 집행하는 것이다. 특정 언론사의 논조나 규모와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 이른바 비판 언론의 독자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정부 광고를 통해 정부 입장을 전달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신재민 차관이 발표한 다른 언론대책 내용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쇠고기 논란과 관련해 신 차관의 ‘말씀자료’에는 “부정적 여론 확산의 진원지(방송·인터넷)에 대한 각 부처의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겠음”이라고 적시돼 있다. 이어 “학생·주부 등 정서적 민감 계층의 동요가 많은 점을 감안해 교과부·보건복지가족부 등에서는 교육 현장 및 주부 대상 프로그램 등을 활용한 정확한 정보제공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도 관련 뉴스 배치 확인
정부의 부실한 쇠고기 협상에서 비롯된 비판적 여론을 방송과 인터넷 탓으로 돌리고 이에 대한 적극적 ‘관리’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언론통제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국세청이 5월초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이같은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기업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는 대개 5년마다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음은 지난 2004년 세무조사를 받았다. 다음은 이례적으로 4년만에, 그것도 대단히 미묘한 시기에, 세무조사를 통보받은 것이다. 또다른 포털사이트인 야후 역시 지난 4월말 세무조사를 통보받았다.

포털사이트에 대한 전격적인 세무조사 통보가 눈에 보이는 압박요인이라면, ‘포털 검열’ 의혹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더욱 심각하다. 신 차관은 5월9일 회의에서 광우병 파동 등을 예로 들며 ‘언론보도 관련, 조기경보 체계 가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1차적으로 문화부 홍보지원국에서 인터넷상의 각 부처 관련 사항을 모니터링하고 해당 부처에 신속히 통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발언이 나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5월14일께 문화부 홍보지원국에 ‘인터넷 조기대응반’이라는 이름의 비공식 조직이 꾸려진 것으로 확인됐다.

“부정적 여론 확산의 진원지(방송·인터넷)에 대한 각 부처의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겠음”이라는 대목과 관련해 주목해볼 만한 정부 보고서도 있다. 정부의 언론 대책회의가 열린 직후 외교통상부가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 여론 형성 과정-독도 괴담 사례’ 등의 문서다.
5월19일 일본 문부성이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명기할 방침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이명박 대통령의 대일 외교에 대한 비난 여론이 또 한 번 들끓었다. 해당 보고서는 이를 계기로 작성됐다. <한겨레21>이 입수한 보고서 내용을 보면, 정부는 정당한 비판 여론에 관심을 두는 대신 이른바 ‘독도 괴담’이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독도 괴담이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지식인 게시판을 통해 형성되고 유통되는 것으로 보고 ‘이명박 독도 포기?’(2008년 5월3일) 등 7개의 지식인 게시물을 예로 들었다. 보고서는 괴담의 유포 경위에 대해서는 “괴담 유포 시점이 광우병 문제가 논란이 된 시기와 맞물려 있어 정치적으로 악의적인 의도를 갖고 유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네이버와 다음, 엠파스 등 주요 포털에서 독도 관련 뉴스가 어디에 어떻게 배치되는지에 대해 확인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독도 관련 토론방은 물론 카페와 블로그의 주소, 심지어는 댓글 동향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어놓았다.

포털에 “비판 댓글 ‘블라인드’ 처리하라”
문제는 보고되는 내용 대부분이 ‘쪽발이, 왜놈 등 극단적 반일 표현과 극일 주장이 속출’ ‘이명박이 화근이야 등 대통령에 대한 비이성적 비난이 다수’ ‘비논리적, 무조건적 독설 및 비방 다수’ 등으로 인터넷 여론을 일방적으로 폄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정부의 부주의 결과 사태가 악화되었다는 등 합리적 비난에 대해서도 일부 소개하고는 있지만 양적으로 적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파동 등에 대해 끊임없이 ‘괴담’ 탓을 하는가 하면, 포털에 대한 댓글 삭제 압력까지 행사하는 배경이 이같은 보고서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부는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 비판 댓글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해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다음 등에 따르면 5월3일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네트워크윤리팀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광우병 관련 글이 올라오고 카페가 만들어지는 등 심상치 않다”고 말한 뒤 이 대통령 비판 댓글을 ‘블라인드’ 처리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라인드는 삭제의 한 방법이다.

5월9일 언론 대책회의에서는 얼마 전 불거졌던 혁신도시 논란에 대해서도 다뤄졌다. 정부는 혁신도시 논란을 “지역 이기주의에 근거한 지역언론의 정부 정책 비판”으로 매도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특히 영남권·충청권 지역언론이) 혁신도시 등 지역균형 발전 추진에 대한 정부 신뢰성에 강한 의문과 함께 부정적 여론을 중점 부각”하고 있으며, “쇠고기 수입과 조류독감에 대해서는 비판 언론에 버금가는 수준의 비판적 시각을 집중 전파”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쯤 되면 모든 게 언론 탓이라는 식이다.

정부의 언론 탓은 이날 회의에서 신문 가판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청와대에서 참석한 박흥신 언론1비서관 등은 ‘청와대 홍보 관련 지시사항 전달’을 통해 가판 모니터링 강화 및 신속 대응체계를 논의했다. 정부의 가판 신문 구독은 언론사에 대한 로비와 압력 행사의 창구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 때문에 참여정부 시절부터 폐지됐던 악습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지난 정부에서 가판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많은 언론사들이 이에 화답한 것은 가판이 오랫동안 정부 의도대로 신문 논조를 조작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활용됐기 때문”이라며 “가판 모니터링으로도 모자라 신속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은 언론 보도가 독자들에게 전달되기 전에 청와대가 입맛에 맞게 내용을 바꾸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신문 가판 점검도 강화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프레스 프렌들리’라는 희한한 말까지 써가며 언론과의 건강한 관계를 강조했다. 하지만 취임 100일이 지나기도 전에 언론 환경이 5공화국 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인터넷 댓글에 정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한국방송> 정연주 사장에 대한 정부의 퇴진 압력도 도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조직이나 마찬가지인 뉴라이트전국연합과 극우 단체인 국민행동본부 등 일부 보수단체가 감사원에 제기한 특별감사 청구는 단 7일 만에 뚝딱 통과됐다. 전윤철 감사원장이 외풍으로 인해 정해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감사원을 떠나자 곧바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비판 언론에 대해서는 ‘광고’ ‘관리’ 등의 용어까지 남발하고 있는 현 정부의 언론관은 전속력으로 추락하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과 닮았다. 5월9일 여의도 한 언론사 건물에서 열린 정부의 언론 대책회의 내용은 현 정부의 언론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최성진기자)

문화부 홍보지원국 교육 자료 입수

‘외롭고 가난한’ 네티즌 대응방안은 ‘세뇌와 조작’
“(인터넷) 게시판은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의 한풀이 공간.”
“멍청한 대중은 비판적 사유가 부족. 잘 꾸며서 재미있게 꼬드기면 바로 세뇌 가능.”
“어차피 몇 푼 주면 말 듣는 애들에게 왜 퍼주고 신경쓰는가.”

인터넷 ‘악플’이 아니다. 하지만 악플 수준의 현상 진단과 대책이 오간 이 자리는 이명박 정부가 5월 초 홍보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가 집담회였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던 시점에 마련됐다. 문화부 홍보지원국 소속 공무원 12명이 참가한 이날 정책 커뮤니케이션 교육에는 68쪽짜리 ‘공공갈등과 정책 커뮤니케이션의 역할’ 자료가 활용됐다. <한겨레21>이 입수한 해당 문건의 내용은 홍보담당 공무원 교육용이라고 보기에는 위험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우선 이 자료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반 현상을 언론의 선정주의 탓으로 돌린다. 정부 정책이나 의사소통 능력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은 채, 특히 방송이 감성적 선동의 온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중매체는 기본적으로 감성에 민감하다. 신문의 상대적 위축과 방송의 부상 속에서 <미디어오늘> 출신 방송쟁이가 <조선(일보)> 데스크만큼 괴롭힐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식한 놈이 편하게 방송하는 법이 대충 한 방향으로 몰아서 우기는 것이다. 신강균, 손석희, 김미화 등 대충 질러대서 뜨고 나면 그만이다.”

포털 사이트 등 인터넷 공간을 기본적으로 ‘저급 선동의 공간’이라고 정의한 뒤 젊은 층은 아무 생각도 없고 비판적 이성의 밑천도 바닥이라고 폄하한 대목도 문제다. “이해찬 세대의 문제는 그야말로 아무 생각도 없고 원칙도 없다는 것이다. 학력이 떨어지니 직업전선에 더욱 급급하고, 하다 안 되면 언제든 허공에 주먹질할 것이다. 최루탄 3발이면 금방 엉엉 울 애들이지만 막상 헤게모니를 가진 집단이 부리기엔 아주 유리하다.”

황당한 대응방안도 나왔다. 핵심 키워드는 ‘세뇌’와 ‘조작’이다. “다양해진 미디어를 꼼꼼하게 접하고 이해해야 한다. (인터넷) 게시판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한풀이 공간이지만 정성스런 답변에 감동하기도 한다. 멍청한 대중은 비판적 사유가 부족하므로 몇 가지 기술을 걸면 의외로 쉽게 꼬드길 수 있다. 붉은 악마처럼 그럴듯한 감성적 레토릭과 애국적 장엄함을 섞으면 더욱 확실하다.”

이날 교육에서는 마지막으로 언론 대책과 관련해 “절대 표 안 나게 유학과 연수, 정보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한 주요 기자와 프로듀서, 작가, 행정직의 관리가 필요하다”며 “소프트 매체에 대한 조용한 (취재) 아이템 제공과 지원도 효과적”이라고 끝맺고 있다. 이에 대해 문화부 관계자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해당 교육은 문화부 공식 행사가 아니라 홍보지원국 소속 12명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부모임 같은 것”이라며 “(문제의) 교육 내용을 문화부가 그대로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여러 의견 가운데 하나로 참고하겠다는 정도”라고 말했다. 

최시중·이동관·신재민

빅 브러더스 3인방
언론 환경을 5공화국 시절로 되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정부 인사는 최시중·이동관·신재민 등 3인방(사진 왼쪽부터)이다. 이 세 명의 ‘빅 브러더스’는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대선 직전까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을 지냈다.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이상득 국회부의장 등과 함께 이 대통령의 ‘복심’이자 그림자로 불린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역시 선대위에서 각각 메시지팀장, 공보상황실장을 맡았다. <동아일보> 출신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공영방송인 한국방송 장악을 위해 도를 넘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방송 때문이며 그 원인 중 하나가 한국방송 정연주 사장”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출입기자를 ‘마크’하고 있다. 이 대변인이 대통령의 입으로 나선 직후 청와대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의 ‘엠바고’와 ‘오프더레코드’ 요청이 속출하고 있다. 엠바고는 조건부 보도제한, 오프더레코드는 보도금지다. 이 대변인은 지난 4월 말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 보도를 막기 위해 <국민일보> 편집국장에게 직접 압력을 넣은 사실도 있다. 문제가 터지자 청와대 내부에서도 ‘이 대변인이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높았다. 그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때마침 터진 미국산 쇠고기 파동 덕분이었다. 여론의 관심이 쇠고기로 옮겨가며 그대로 눌러앉은 것이다. 최 위원장과 이 대변인은 둘 다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심각한 도덕적 결함을 안고 있다. 이 대변인은 <동아일보>에서 논설위원까지 지냈다.

현 정부의 미디어정책을 관장하는 신재민 차관은 특히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압박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논란이 확산된 직후 그는 “포털도 언론중재법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등의 언급을 했다. 최근 문화부 안에 ‘인터넷 조기대응반’이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든 것도 신 차관이다. 그는 <조선일보> 부국장 출신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3인방이 언론탄압의 전면에 나선 것에 대해 시민사회와 언론계의 우려는 높아지고 있다. 18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는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비뚤어진 언론관을 가진 사람들이 요직에 앉아 있는 한 이명박 정부는 끊임없는 언론통제 논란으로 국민의 분노를 키울 것”이라며 “정부의 대언론 관계를 파행으로 이끈 최시중 방통위원장, 이동관 대변인, 신재민 차관은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08.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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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30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5-30 23:30   좋아요 0 | URL
^^

수유 2008-05-30 20:59   좋아요 0 | URL
이 글 가져갑니다. 한심한 잡담과 넋두리만 쏟아놓는 형편없는 블로그지만, 그리고 정치적인 글들은 배제하려 했지만..광화문에 나가는 대신.. 옮겨놓으려 합니다

로쟈 2008-05-30 23:30   좋아요 0 | URL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스틸 사진 몇 점을 오랜만에 보는군요.^^

2008-06-01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녁 귀가길에 읽은 아침신문의 기사를 옮겨놓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문과 관란하여 미 축산협회의 '한국의 FTA' 보고서 문건을 분석하고 있는 기사다.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최대 수입국이 될 거라는 보고서의 전망에는 '판타스틱한' 협상 결과로 인하여 잔뜩 고무돼 있는, 미국 축산업자들의 부푼 기대가 그대로 담겨있는 듯하다. 지난 대선때 이명박 당선을 위해 미 축산협회가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라도 행사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한국 정부가 대다수 국민의사보다는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는지?..

경향신문(08. 05. 28) 美축산협 보고서 “한국시장 10억弗 최대 수입국될것”

미국 축산협회(NCBA)가 한·미 쇠고기협상 타결로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이 10억달러(약 1조원)를 웃돌게 돼 멕시코와 일본을 제치고 미국의 최대 쇠고기 수입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미 축산협회는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미국의 쇠고기 통상 역사상 가장 크고 중요한 양자 무역협정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미 축산협회로서는 한·미 FTA를 발판으로 한국의 쇠고기 시장을 완전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27일 경향신문이 단독입수한 미 축산협회의 ‘한국의 FTA’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의 쇠고기 시장 잠재가치를 10억달러 이상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미 축산협회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그레그 더드가 지난달 18일 한·미 쇠고기협상이 타결된 직후 작성한 것이다. 더드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쇠고기 시장은 10억달러 이상의 잠재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멕시코와 일본을 제치고) 미국산 쇠고기의 ‘최대 고객’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축산협회가 한국을 미국산 쇠고기의 제1위 수입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은 현재 미국산 쇠고기 수입국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게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허용한 데다 미국에서 단체 급식이 금지된 선진회수육(AMR)을 포함해 거의 모든 부위를 제한없이 수입하게 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또 “미 축산협회는 한·미 FTA의 선결과제로 △한국 쇠고기 시장 완전개방 △미국산 쇠고기 제품에 대한 관세 철폐 △위생협정(SPSS) 문제의 해결 등을 제시해왔다”며 “한국으로 쇠고기 수출이 재개되면 미 의회 지도자들에게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한·미 FTA가 비준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미 FTA를 통해 쇠고기 수입관세(현행 40%)를 15년에 걸쳐 철폐하도록 했고, 한·미 쇠고기협상에서 한국의 까다로운 검역절차와 월령·부위제한을 폐지시킨 만큼 미국 축산업자의 이익을 보장하는 한·미 FTA가 조기에 비준되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강진구기자)

경향신문(08. 05. 28) 美 각본대로 ‘최대 황금시장’ 내줬다

미국 축산협회(NCBA)가 멕시코와 일본을 제치고 한국이 자국산 쇠고기 1위 수입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축산업자들은 일본과 멕시코는 당분간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 어려운 만큼 한국이 자국산 쇠고기의 최대 소비처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낸 것이다. 특히 2003년 광우병 발생으로 우리나라에 쇠고기를 수출할 수 없었던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미 쇠고기협상을 통해 한국의 쇠고기 시장을 완전 장악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드러난 미국의 쇠고기시장 장악 의도=27일 경향신문이 단독입수한 미 축산협회의 ‘한국의 FTA’ 보고서는 미 축산업자들의 양면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 없이는 FTA도 없다”며 한·미 FTA 체결의 훼방꾼 노릇을 하던 미 축산업자들은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뒤에는 기존 입장을 180도 바꿔 한·미 FTA 조기비준을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이다. 미 축산협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그레그 더드는 보고서를 통해 “한·미 FTA 비준을 위해 의회를 압박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미 FTA를 ‘축산협회의 5대 시장 접근계획’ 중의 하나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미국은 2003년 광우병 발생으로 한국으로의 쇠고기 수출 길이 막히자 30개월 미만 뼈 없는 쇠고기의 한국 수출→국 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 획득→ 한·미 FTA 비준조건으로 한국에 쇠고기 시장 전면개방 압박→한국의 까다로운 위생검역 절차 무력화→한·미 FTA 비준을 통한 관세 철폐 등의 치밀한 각본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미국 측의 의도를 간파하기는커녕 한·미 FTA체결에만 급급한 나머지 한·미 쇠고기 협상을 통해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허용, 도축장 승인권 및 취소권 이양 등 검역주권을 미국에 넘겨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 미국산 쇠고기 최대 수입국 되나=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기 전 각 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2003년 기준)을 보면 일본이 13억9126만달러로 가장 많았고, 멕시코(8억7435만달러), 한국(8억1457만달러) 등의 순이었다. 그러나 미 축산협회는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로 한국으로 자국산 쇠고기를 10억달러 이상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의 최대 소비처가 될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미 축산협회가 한국을 자국산 쇠고기의 최대 수입국으로 지목한 것은 멕시코와 일본으로는 당분간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출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미국 내에서는 거의 소비되지 않는 30개월 이상 쇠고기와 내장 등 부산물을 수입하는 유일한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강진구기자)

08. 05. 29.

P.S. 미국 축산협회(목축협회)의 로비 관련기사는 '미국 목축협회 한우협회 누르고 한국 정부 움직이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4),  "미 ‘2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출’ 뜻 있었다”(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290322.html)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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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세곰 2008-05-29 02:10   좋아요 0 | URL
치킨집 하는 사람입니다.
불경기라 먹고 살기도 힘들었습니다.
자식만 아니면 과히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AI 때문에 이젠 밥 세끼 챙겨 먹기도 힘듭니다.
내라는 세금 빚을 내서라도 꼬박꼬박 냈습니다.
그러는 당신들~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그 세금으로 무슨짓거리를 했습니까?
배고픈 설움을 아십니까?
하루하루 살얼음 걷는 심정을 아십니까?
대출이자에 숨조차 맘껏 못 쉬는 국민들의 심정을 아십니까?

국민들 미쳐서 죽으라고 미국소까지 들여오신다구요..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게 대통령입니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배후세력을 찾으시고,, 빨갱이를 찾으십니까?

살고싶습니다.
최소한 미쳐서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만하십시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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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국회 홈피에서 탄핵 서명할 때 제 앞 어디에 있던 글의 내용입니다.

이런 글, 민정수석실이란 곳에선 들여다나 볼까요...
보면 뭐합니까? 기러기아빠들이 너무 많아서 어륀지 몰입교육하겠다고 하고,
골프장 피 낮추는데 골몰한다는 그들에게 이 글이 무슨 내용인지 감이나 올까 싶습니다...


로쟈 2008-05-29 08:33   좋아요 0 | URL
오늘 뉴스에도 나오지만 미 축산협회장조차도 예기치 않은 협상결과였다고 자평하더군요. 이 정부는 '머리'도 없을 뿐더러 민의에 대한 '감'도 전혀 없는 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29 23:39   좋아요 0 | URL
이러다가 6월4일 재보궐 선거에서 또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이기면(영남권은 그런다 쳐도)정말...아...

로쟈 2008-05-29 23:41   좋아요 0 | URL
국민의식이 가축 수준인 게 되는 것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5-30 00:30   좋아요 0 | URL
가축들 의식수준을 무시하는 발언 아닌가요?

로쟈 2008-05-30 23:28   좋아요 0 | URL
'가축보다 못한 수준'으로 정정합니다.^^
 

유리 로트만의 <기호계>(문학과지성사, 2008)의 출간 소식은 지난달에 다룬 바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2036014). 최근 출간된 계간 <문학과사회>(2008년 여름호)에 그 서평을 실은 바 있는데, 혹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있을까 해서 여기에 옮겨놓는다.

 

이것이 로트만의 문화기호학이다!

‘세계는 물질이다’와 ‘세계는 말[馬]이다’란 두 문장의 차이는 무엇일까? 문장 구성상 유사한 이 두 문장을 언어학자라면 동일하게 다룰지 모르지만 문화기호학자는 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지적한다. 먼저, 논리적 의미에서 동일한 계사 ‘-이다’의 의미작용이 다르다. 첫번째 경우에는 부분과 전체라는 ‘상응’을 의미하지만(세계⊂물질) 두번째 경우에는 직접적인 동일시를 뜻하기 때문이다(세계=말). 그리고 빈사(賓辭)에도 차이가 있다. 첫번째 문장의 경우에 ‘물질’과 ‘말’은 논리적으로 다른 층위에 속한다. ‘물질’이 메타언어라면 ‘말’은 대상-언어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경우가 메타언어를 지향하는 묘사적 기술(記述)이라면 두번째 경우는 메타텍스트를 지향하는 신화적 기술이다. 이 두 기술 유형은 각각 ‘비신화적 유형’과 ‘신화적 유형’으로 구분된다. 비신화적 유형이 어떤 식으로든 ‘번역’과 관계있다면, 신화적 유형은 ‘동일시’와 관련된다. 비신화적 텍스트가 제공하는 것은 번역을 통한 새로운 정보이지만, 신화적 텍스트가 다루는 것은 대상의 ‘변형’에 대한 이해이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단일언어적 의식과 복수언어적 의식 사이의 대립으로 수렴된다. 물론 신화적 기술을 낳는 단일언어적 의식이 신화적 의식이다.  

이상은 러시아의 세계적인 인문학 지성이자 문화기호학의 창시자 유리 로트만(1922~1993)이 동료 보리스 우스펜스키와 함께 쓴 「신화-이름-문화」(1973)의 서두를 간추린 것이다. 개인적으로 대학원 시절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그의 논문 가운데 하나인데 문화기호학 관련 논문들을 모은 『기호계』가 이번에 번역됨으로써 이제 한국어로도 읽을 수 있게 됐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번역을 통해서 ‘러시아어 로트만’이라는 단일언어적, 신화적 의식 세계가 ‘한국어 로트만’이라는 복수언어적, 비신화적(탈신화적!) 의식 세계로 전환된 것이다. 이것을 로트만 텍스트의 ‘비신화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러한 비신화화, 혹은 탈신화화가 처음은 아니다. 이젠 ‘전설’이 되었지만, 로트만의 초기 문학이론 저작인 『예술 텍스트의 구조』(1970)와 『시 텍스트의 분석』(1972)이 각각 『예술 텍스트의 구조』(고려원, 1991)과(와) 『시 텍스트의 분석: 시의 구조』(가나, 1987)로 일찌감치 소개된 바 있다. ‘최초’라는 의의는 갖지만 영역본에서 중역한 것이며 적지 않은 오류들이 걸러지지 않은 것이 흠이다. 이어서 로트만의 주요 논문 몇 편이 우스펜스키, 리하초프의 논문들과 함께 『러시아 기호학의 이해』(민음사, 1993)란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러시아어문학 전공자들의 공역이었고 마침 로트만이 세상을 떠난 해에 출간되었다. 이후에 추가된 것은 편역서 『시간과 공간의 기호학』(열린책들, 1996) 외에 『영화기호학』(민음사, 1994), 그리고 로트만의 영화기호학이 포함된 편역서 『영화, 형식과 기호』(열린책들, 1995)와 유리 치비얀과의 공저 『스크린과의 대화』(우물이있는집, 2005) 등이지만 로트만 이론의 ‘중심’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예외적인 책이라면 로트만 문화기호학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화기호학』(문예출판사, 1998)을 들 수 있는데,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가 서문을 쓴 영어본 로트만 선집 『정신의 우주 Universe of Mind』(1990)를 옮긴 것이다. 주요 이론적 저작으로 『기호계』는 이 책과 나란히 읽을 필요가 있다. 사실 3부로 이루어진 『문화기호학』의 2부의 제목이 ‘세미오스피어 semiosphere,’ 곧 ‘기호계’이기도 하다. 게다가 『기호계』의 대본이 된 러시아어판 『기호계』(2000)는 이미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던 『문화와 폭발』(1992), 『사유하는 세계들 속에서』(1996)와 함께 로트만의 이론적 작업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로트만 사후에 편집 출간된 『사유하는 세계들 속에서』는 그보다 먼저 나온 영어본 『정신의 우주』의 대본이다. 즉 『문화기호학』과 『기호계』는 모두 704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편집돼 있는 러시아어판 『기호계』에 같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Ю. М. Лотман Семиосфера

이 러시아어판 『기호계』는 아직 영어로 완역돼 있지 않으며 불어본 또한 150쪽의 얇은 선집이다. 따라서 한국어본 『기호계』 번역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시도이며, 1968년부터 1992년까지 로트만이 발표한 논문 12편이 연대순으로 배열돼 있기 때문에 그의 이론적 사유가 어떻게 전개 혹은 진화되어가는가를 일별해볼 수 있는 유익한 자료이다(개인적인 바람을 덧붙이자면, 로트만의 유작 『문화와 폭발』도 소개되면 좋겠다).

『기호계』에 대한 서평의 자리에서 로트만 번역사 혹은 수용사에 대해 되짚어본 것은 이를 지켜본 개인적인 감회와 더불어 이제 비로소 그의 문화연구와 문화기호학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을 피력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한편으론 로트만의 문화이론이 ‘번역이론’이라고도 불릴 수 있을 만큼 번역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번역은 물론 단순히 두 자연어 사이의 번역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신화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로트만이 보기에 텍스트로서의 신화는 특정한 의식 현상으로서의 신화, 곧 신화적 의식을 텍스트로 ‘번역’ 한 것이다.

단일언어적 세계로서의 신화적 의식은 모든 사물을 완전한 전체로 간주하기 때문에 신화적 의식의 세계에서 모든 기호는 고유명사화 된다. 예컨대, ‘이반은 헤라클레스이다’와 ‘이반-헤라클레스’란 두 문장에서 전자의 ‘헤라클레스’가 보통명사로서 이반이란 인물의 속성을 지시한다면, 후자의 경우에는 이반의 부분적 자질이 아닌 전체를 명명 과정을 통해서 특징짓는다. 그러한 것이 신화적 의식의 세계이며 이것은 유아적 의식의 세계에서 잘 나타난다. 아이들이 “나라고 부르지 마, 나만 나야. 너는 너고”라는 식으로 인칭대명사나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독점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처럼 신화적 의식과 사유는 의식의 개체 발생적 차원에서 먼저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신화적 의식이나 논리적 사고에 의해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문제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졌던 로트만은 신화적/비신화적 의식의 문제를 인간의 사고에서 ‘좌반구적 원칙’과 ‘우반구적 원칙’의 대립과 공존에 견준다. 이것은 ‘아이의 의식 ↔ 어른의 의식’ ‘신화적 의식 ↔ 역사적 의식’ ‘도상적 사유 ↔ 문자적 사유’ ‘행위 ↔ 서사’ ‘시 ↔ 산문’ 등의 다양한 대립체계로 변주될 수 있으며, 분절적-비연속적 언어와 비분절적-연속적 언어, 디지털적 사고와 아날로그적 사고의 대립은 로트만의 문화기호학을 가로지르는 기본항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항들은 보편적인 문화모델을 제시하고 문화에 대한 모든 연구를 문화기호학이란 단일한 학문으로 수렴하려는 로트만의 학문적 기획에 디딤돌로 사용된다.

로트만의 학문적 야심은 가장 먼저 씌어진 「문화를 유형학적으로 기술하기 위한 메타언어에 관하여」에서부터 잘 드러나지만 문화를 역사주의적, 상대주의적 시각 대신에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기술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그는 문화 텍스트들의 다양성을 구조적으로 조직화된 하나의 단일한 체계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가 정의하는 문화 텍스트란 해당 문화의 입장에서 파악된 현실의 가장 추상화된 모델이며, 곧 해당 문화의 세계상(世界像)이다. 그런데 세계 질서의 구성 자체가 모종의 공간적 구조를 기초로 하여 인식되는 것처럼 이 세계상은 반드시 공간적 특징을 띠게 된다. 여기서 공간적 모델은 일종의 메타언어로 기능하며, 세계상의 공간적 구조는 언어로 된 텍스트처럼 기능하게 된다. 가장 단순하게 말해서, ‘여기 ↔ 저기’ ‘내부 ↔ 외부’ ‘우리 ↔ 그들’ 같은 대립쌍이 메타언어로 도출된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은 문화 대 비문화, 정보 대 무질서(엔트로피), 문화 대 자연, 조직화 대 비조직화 등의 대립으로 변주된다.

문화의 역동적 메커니즘은 문화 대 비문화 사이의 대립과 긴장에 그 토대를 두는데, 흥미로운 점은 문화가 자신의 경계를 확장하는 과정은 다른 한편으로 비문화의 영역 또한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로트만에 따르면, 모든 지리적 공간을 문화화함으로써 문화의 공간적 확장을 다 써버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문화가 한편으로는 무의식의 영역에, 다른 한편으로는 우주에 대립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문화의 역동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적 해명이 로트만 문화기호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제 『기호계』를 통해서 우리는 생명계 속에서 인간만의 특권적 영역인 기호의 우주, 곧 기호계를 탐사할 수 있는 이론적 시각과 개념적 도구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로트만의 작업은 그간에 주로 미시적이고 지엽적인 연구주제들로 채워졌던 국내의 문화연구의 시야를 보다 거시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으로, 더 나아가 ‘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시켜줄 것이다.

08.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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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9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9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털세곰 2008-05-29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 시텍스트 분석은 표지를 스캔하셨나보네요... 그 어느곳에서도 보기 힘든 표지인데^^
저렇게 보니 또 감회가 새롭습니다. 십수년전 나를 절망케했던 그 얄팍한 책...

로쟈 2008-05-29 08:31   좋아요 0 | URL
스캔 같은 거 할줄 모르구요, 이미지들은 그냥 찾아보면 있습니다.^^;

yoonta 2008-05-2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메타언어(비신화적언어)와 대상언어(신화적 언어)도 그 근본에서는 양자모두 언어라는 측면에서 동일성이 있다면 그리고 그 언어자체가 이미 언어가 아닌 것을 언어로 표현/동일시 하는 것이므로 분석/신화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기 이전에 이미 양자는 '신화적 변형'에 기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로쟈 2008-05-29 21:23   좋아요 0 | URL
로트만의 구분은 신화적 언와 비신화적 언어의 이분법이 아니라 신화적 의식과 비신화적 의식의 이분법입니다. 말씀대로 신화는 그러한 신화적 의식을 '번역'한 것이고요...

yoonta 2008-05-29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그렇다면 의식과 언어는 또 어떻게 다른 것인지 혹은 언어화되기 이전의 의식이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야 되겠네요.

여튼 로쟈님덕분에 여러가지 배웁니다..^^

로쟈 2008-05-29 23:53   좋아요 0 | URL
말을 배우기 전의 어린아이들은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그건 아닐 터이므로 언어와 의식은 동일한 것은 아니죠. 단적으로 의식은 연속적인 데 반해서 언어는 분절적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