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포기하지 마세요!"는 며칠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살림, 2008)의 메시지라고 한다. 책의 띠지에 그렇게 씌어 있다. 좋은 말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강의'도 분명 들을 만한 좋은 내용들로 채워져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책의 이면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무려 6억 이상의 선인세를 지불한 책이기에 그렇다. 아래 칼럼에서 소설가 박상우씨가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금액이면 국내 필자 200-300명의 선인세와 맞먹는다. '번역서 1권 vs 국내필자 213명'이란 표현이 그래서 가능해진다. 간단히 말해서, 출판사로선 그 213명이 쓸 책보다는 이 한 권의 책이 더 가치가 있다고,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 <시크릿>(살림Biz, 2007)의 교훈일까?

경향신문(08. 07. 31) [문화로 읽는 세상]‘번역서 1권과 국내필자 213명’

최근 번역 출간된 ‘마지막 강의’라는 책의 선인세가 64만달러(약 6억4000만원)라는 소식을 접했다. 지금까지 최고가를 기록한 책이 20만달러였다니 3배가 넘는 놀라운 기록 경신이다. 선인세를 그렇게 많이 지불했다는 건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삼았다는 뜻이므로 광고비 또한 비례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국내 10여개의 대형 출판사가 경쟁을 벌였다는 후문이니 가격이 올라간 것도 무리는 아닐 터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출판시장이 10배 이상 큰 일본에서도 선인세가 10만달러를 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64만달러는 무모한 경쟁의 결과인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

그렇게 파이를 키워 놓으면 향후 외국 출판사들이 제시하는 기본 금액의 출발선이 달라질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자본의 위력을 마음껏 과시할 수 있는 대형 출판사들만 살아남고 피땀 흘려 좋은 책을 출간하고자 하는 중소 출판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출판사가 출판사를 죽이고, 출판사가 출판시장을 죽인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좋은 책과 좋은 출판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좋은 편집자와 좋은 필자가 많아져야 한다. 그것을 위한 아낌없는 투자는 전적으로 출판인의 몫이다.

출판에 대한 소신과 열정이 없다면 자칫 출판사업은 한탕주의에 대한 환상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런 환상 속에서 명멸한 출판사들을 나는 지난 20년 동안 숱하게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런 출판사들은 지금도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런 명멸의 이면에서 소리·소문 없이 좋은 책을 꾸준히 양산해내는 소금 같은 출판사들도 나는 알고 있다. 출판인이 누구인지 일면식도 없지만 나는 그들에게 참으로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6억4000만원의 선인세는 국내 필자들의 질을 더욱 저하시킬 것이다. 블록버스터급 책이 아니면 출판을 하지 않으려는 출판 마인드가 자잘한 국내 필자들의 책에 관심을 기울일 턱이 없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책 한 권 출간하고자 하는 필자들은 더욱 선정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너도 나도 책을 쓰고자 덤비는 세상이니 더욱 심각한 질적 저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등단 작가는 작가가 됐음에도 소설집 한 권 출간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소설집은커녕 소설에 대한 자질을 검증받을 만한 발표 지면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사라지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평균적인 계약 관행을 예상수치로 삼아 300만원씩 선인세를 지급할 경우, 6억4000만원이면 국내 필자 213명과 계약을 할 수 있다. 번역서 한 권과 국내 필자 213명, 이것이 아마도 우리 출판 마인드의 현주소일 것이다. 안을 존중하지 않으면 밖에서도 대접받지 못하니 번역물 선인세가 100만달러를 돌파할 날도 그리 머지않은 일인 듯싶다.(박상우|소설가)

08. 07. 31.

P.S. 바야흐르 대한민국 1%가 승승장구하고 있다. 어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도 강남 땅값을 걱정해주던 '교육감' 후보가 결국엔 당선됐다(저조한 투표율이 이미 예견케 한 결과이다. 선거결과에 대한 분석은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807/h2008073102454922020.htm 참조). 해서, '촛불의 중간평가' 운운하던 이들은 '입방정'을 탓하게 됐다(촛불은 '다수'가 아니었다!). 나는 다른 결과를 예상하진 않았지만(서울시민이 아니어서 나는 투표권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 '최악의 결과'에 환멸과 분노를 느낀다. 나는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정말 능력만 된다면 이민가고 싶다). '리치스탄(부자동네)'에 대한 선망과 함께 모든 아빠는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로 나뉜다고 주입시키는 교육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한다면 기적 같은 일이다(언제부턴가 '글로벌 인재 양성'이란 문구가 각 시군 교육청의 교육목표가 돼버렸다. 좀 환멸스럽지 않은가?).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고? 컴퓨터공학 교수였던 랜디 포시는 이런 교훈을 남겼다고 한다('이게 다예요'라고 덧붙였을 법하다).

★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주세요. 감사할수록 삶은 위대해집니다. ★ 준비하세요.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온답니다. ★ 가장 좋은 금은 쓰레기통의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러니 찾아내세요. ★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벽은 깨라고 있는 것. ★ 꿈을 꿀 수 있다면 이룰 수도 있다. ★ 당신이 뭔가를 망쳤다면 사과하세요. 사과는 끝이 아니라 다시 할 수 있는 시작입니다. ★ 완전히 악한 사람은 없어요. 모두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세요. ★ 가장 어려운 일은 듣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전해주는 말을 소중히 여기세요. 거기에 해답이 있답니다. ★ 그리고 매일같이 내일을 두려워하며 살지 마세요.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세요. ★ 누군가 당신을 위해 했던 일을 당신도 다른 이들을 위해 하세요. ★ 당신 스스로 당신의 꿈을 허락하세요. 당신 아이들의 꿈에도 불을 지피세요.

내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지침은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가 아니라 "가장 좋은 금은 쓰레기통의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러니 찾아내세요."이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일이지 않을까? 거기, 줄 서시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열매 2008-07-31 16:59   좋아요 0 | URL
'살림'출판사의 살림이 제대로 될런지 살짜쿵 의문이 드는군요^^? 양귀자씨 책 팔아 이렇게 오바를 해도 되는 것인지...<마지막강의>가 마지막 출판이 되는 건 아니길 바래봅니다. 그 마지막 강의가 무슨 알짜배기 강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리고 영원히 모를 가능성이 높지만, 그 마지막 강의를 책으로 들으신 분들께 그 책 가격만큼의 댓가가 있길 바랍니다.

로쟈 2008-07-31 15:3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고전'하지 않을까 싶네요. 잘 돼도 문제입니다. 선인세가 더 치솟아오를 테니까. 한국에서만...

qualia 2008-07-31 04:00   좋아요 0 | URL
천박한 대한민국 인종들, 정말 좌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촛불이 타올라도, 이 개한민국의 “개민”들은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반복되는 역사가 증명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경고하건대, 촛불의 힘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오판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가장 강력한 적은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위신, 주권, 살림살이(경제), 정신을 하나둘씩 말아먹어 가고 있는 이명박 정권인가? 수구꼴통 친외세의 주구 조중동인가? 경복궁을 자금성 화장실쯤으로 깔보는 기고만장 짱께들인가? 독도를 빌미로 야금야금 재침략을 노리는 노회하고 야비한 쪽발이들인가? 그 누구도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적은 바로 “우리 국민들” 자체입니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상투적인 말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남한 사회의 주류는 바로 『시크릿』 따위를 열독하는 일반 국민들입니다. 『시크릿』에 따위에 감동하는 그들의 (집단적) 심성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남한 사회의 “시대 조류”입니다. 이 일견 평범해 보이는 시대 조류가 (저는 이것이 지극히 괴이하고 변태적이라 판단하는데요) 이명박 같은 천하의 범죄꾼을 일국의 대통령으로, 강남 땅값 걱정 후보를 서울시 교육감으로 뽑은 주범입니다.

이런 심성이 고착화돼 가는 남한 국민들, 이 심성들이 만들어내는 남한 사회의 변태적 시대 조류 따위가 『마지막 강의』 선인세 64만 달러 지불 같은, 제 살 뜯어먹는 밥통 같은 짓을 자연스럽게 저지르도록 만든 것입니다. (타의 추종 불허, 국제적인 “봉” 짓을 대한민국은 참으로 잘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짓을 지식계, 혹은 지식산업계의 출판사들이 앞장서서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좌절하게 만듭니다.)

(너무나 슬픈 사건이지만) 금강산 피격 사건을 싱가포르 아세안 안보 포럼(ARF)에 가져가서, 일종의 민족의 집안 싸움을, 민족끼리 해결할 집안 문제를, 국제 마당에 나가 제 민족 못난 꼴을 멍청하게 이리저리 떠벌리고, ㄱ망신 흠씬 당하고, 이런 따위 쓸개 빠진, 민족 의식이라곤 전혀 없는, 자학적이고, 국제적 반푼이를 자처하는, 너무나 무뇌아적인 이명박 정권은, 그러나 또다시 남한을 집권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남한 국민들 과반수 이상이 『시크릿』 따위의 독자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촛불이 아무리 수십만, 수백만 타올라도, 남한 사회의 시대 조류, 남한 국민들의 심성을 희망적으로 돌려 놓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판해선 안 됩니다.

qualia 2008-07-31 04:40   좋아요 0 | URL
말이 너무 거칠고 천박해서 죄송합니다. 감정이 치밀어서 좀 입이 걸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로쟈 2008-07-31 15:36   좋아요 0 | URL
'천박한 대한민국 인종들' 안에 qualia님이나 저도 포함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nada 2008-07-31 08:32   좋아요 0 | URL
정말 요즘 이 나라가 너무 우울하네요. 교육감 선거도 결국 그렇게 되고.
애 낳을 생각은 원래도 안 했지만, 이런 세상을 아이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공포스러울 정도예요.
사회적인 연대로 뭔가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런 개인적 선택뿐이라는 게 답답해요.
우리 현실이 정말로 저 쓰레기통하고 다를 바 없어 보이네요.

로쟈 2008-07-31 15:35   좋아요 0 | URL
우울 모드하고 꽃양배추님은 안 어울리시는데요. 힘 내시길.^^

가을산 2008-07-31 10:44   좋아요 0 | URL
랜디의 '마지막 강의'는 작년에 인터넷에서 히트친 동영상 '마지막 강의'를 바탕으로 쓰인 책 같네요. 저도 그 영상 봤는데 재미있고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는 괜찮은 강연이었어요. 그런 꿈의 실현이 가능한 시스템이 부럽기도 했구요. 인세 내면서 책 사보기보다는 동영상을 보는 것을 더 추천합니다.
http://kr.youtube.com/results?search_query=randy+pausch+%EC%9E%90%EB%A7%89&search_type=&aq=f

로쟈 2008-07-31 15:36   좋아요 0 | URL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만으로도 충분히 괜찮고 감동적입니다.^^;

유리우스 2008-07-31 10:34   좋아요 0 | URL
저도 이민가고파요...-_- 더군다나 '서울시'교육감의 권한이 사실상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는.

로쟈 2008-07-31 15:37   좋아요 0 | URL
정작 이민가도 좋을 만한 이들은 남아서 민폐들을 끼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2:19   좋아요 0 | URL
댓글들이 슬프네...

로쟈 2008-07-31 15:38   좋아요 0 | URL
좀 과장하면, 1848년 게르첸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6:12   좋아요 0 | URL
투표의 힘이 무섭군요.다 도둑놈이야! 투표같은 거 안 해! 이런 사고방식이 이런 결과를 낳았죠.투표 안 한 이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깊이 생각해야겠네요.부작위의 책임이란 것도 있으니까요.

로쟈 2008-08-02 20:16   좋아요 0 | URL
정치적 냉소주의도 그것이 가능한 최소한의 '토대'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냉소주의자들은 그걸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6:32   좋아요 0 | URL
이쳥준 씨도 불귀의 객이 되었군요.장흥의 쌍벽중 이제 한승원 씨만 남았네요.

로쟈 2008-08-02 20:17   좋아요 0 | URL
한승원 선생도 기사에서 언급되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2 20:58   좋아요 0 | URL
이청준 씨 고향이 장흥군 회진면인데 거기 천관산은 아래의 골짜기에는 물이 콸콸 쏟아지고 정상에서 보는 바다경치가 일품이라 경상도에서도 많이 등산 와요.전라도 특유의 요리도 괜찮고...근데 서울 경기 지방에서 오기엔 너무 멀겠네요.광주에서도 좀 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