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블랙모어의 <밈>(바다출판사, 2010)은 '10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아놓기도 했는데, 리뷰기사를 미리 참조해보는 것도 좋겠다. 저자의 최근 관심사도 전해주고 있어서 요긴하다.   

한국일보(10. 10. 02) 인간의 자아는 없다, 밈 복제의 기계일 뿐…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는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는 도발적인 주장으로 파란을 일으킨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문화의 진화를 이끈 새로운 복제자로 '밈(mem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밈은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메메(mimeme)'를 생물학적 유전자 '진(gene)'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변형시킨 말이다. 밈은 모방을 통해 전달된다.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밈은 인간을 도구 삼아 문화를 창조하는 복제자다. 



영국 심리학자 수전 블랙모어의 <밈>은 도킨스의 가설을 더 멀리 끌고 나간다. "우리의 자아는 귀중한 영혼이 아니라 들의 집합일 뿐"이고, "인간과 다른 동물종들을 구별짓는 것은 지능이 아니라 우리의 모방 능력"이며, 인간은 '밈 머신'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마음과 자아는 밈들의 상호작용으로 탄생한 것이고, 따라서 본래 자유의지나 자아가 있다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류 역사에서 첫번째 복제자는 유전자다. 밈은 두 번째 복제자로, 250만년 전쯤 전 우리가 서로 모방하기 시작한 순간 탄생했다. 밈은 모방을 통해 끊임없이 복제되면서 세력을 키워간다. 인간이 큰 뇌를 갖게 된 것이나 언어의 발달도 밈이 조종한 결과다. 새 밈을 더 잘 퍼뜨리기 위해 이 유전자에게 자연선택의 압력을 가했고, 밈과 유전자가 이렇게 공진화한 결과 인간이 큰 뇌와 언어를 지닌 특이한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밈 이론에 따르면 문화는 인간이 발전시킨 것이 아니다. 오로지 밈이 자신을 위해서 인간을 도구 삼아 끊임없이 전파, 확산되면서 지금의 문화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인간 문화의 창조적 업적은 모두 밈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현대의 성적 행위를 이끌어가는 것도 밈이라고 주장한다. 섹스는 밈을 마음껏 확산하고 통제하고 조작하게 해주는 기회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타적 행동도 밈으로 설명한다. 밈은 무심하고 이기적이지만, 이타적인 사람은 인기가 있어서 남들에게 많이 모방되기 때문에 결국 그의 밈이 다른 사람의 밈보다 더 멀리 퍼진다는 것이다.

이 책의 원서는 월드와이드웹 초창기인 1999년 나왔다. 따라서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수평적 모방이 대유행하는 요즘 현실은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저자 블랙모어는 최근 웹과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세상의 새로운 에 관심을 쏟고 있다. 유전자, 밈에 이은 이 제 3의 복제자를 그는 '기술적인 밈'이라는 뜻에서 '팀(temeㆍ technological meme)'이라고 부른다.

지난 8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인간이 '밈 머신'에서 '팀 머신'으로 바뀔 가능성을 언급했다. 인터넷을 인간이 설계했으니 인간이 주인인 것 같지만, 실은 기술적 알고리즘이 자기복제와 확산을 거듭하며 인간을 조종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묻고 있다. 그의 다음 책은 아마도 '팀 이론'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아는 망상일 뿐이고 자유의지라는 것은 없으며, 밈이 인간을 도구로 자기를 복제하고 확산할 뿐이라는 이런 주장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오래된 믿음들을 마구 뒤흔든다. 밈 이론은 아직까지 논쟁의 와중에 있는 가설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오미환기자) 

10. 10.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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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에 대한 몇몇 주간지의 소개기사가 지난주와 이번주에 나온다. 몇 곳과 메일이나 전화 인터뷰를 했다. 책 서문에도 적었지만, 그중에서도 <한겨레21>이나 <시사IN>은 좀 각별하다. 책에 실린 서평의 상당수가 그 지면들에 서평기사로 나갔었기 때문이다. <한겨레21>와 <시사IN>의 기사를 챙겨놓는다.     

한겨레21(10. 10. 01) 책을 읽을 자유

인터넷 서평꾼 ‘로쟈’는 <한겨레21>에서 2007년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시작으로 올봄까지 3주에 한 번씩 출판 리뷰를 담당했다. 놀라운 것은 그 기간에 같은 주간지인 <시사IN>과 <경향신문> <교수신문> 등에도 정기적으로 혹은 부정기적으로 리뷰를 썼다는 점이다.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은 포스팅 없이 지나는 날이 별로 없었다. 책은 부지런했던 지난 10년의 기록이다. 로쟈는 책과 저자에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스러운 여러분, 소중한 여러분,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잘해주시는 겁니까.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자격이라도 있습니까?” 책을 읽자는 사람에게 로쟈는 ‘사랑스러운, 소중한 이’다.    

시사IN(10. 10. 02) “넓게 읽은 뒤 깊게 읽어라”

한림대 이현우 교수는 인터넷에서 ‘로쟈’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을 운영했던 그는 당대 최고의 서평 블로거로 꼽혔다. 지난해 <로쟈의 인문학 서재>로 다양한 책 이야기를 묶어낸 그가 <책을 읽을 자유>라는 본격 서평집을 냈다.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쓴 서평을 묶어냈다. 그는 책을 낸 이유를 “사람들이 ‘책을 좀 읽자. 혹은 책을 좀 사자’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서평을 쓸 때 그는 정공법으로 책 내용 자체에 깊이 천착해 글을 쓰기도 했지만, 에둘러 말하기를 통한 허허실실 전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옆길로 새는 것 같지만 기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 주제로 독자들을 인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이번에도 그는 “책읽기 방식 중 관련 책을 함께 읽는 병렬독서 방식을 보여주었지만 미완성이다. 결국 독자가 채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책읽기를 끝없는 판단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좋은 책을 골라 깊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쁜 책을 안 읽는 것, 책의 내용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또한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뷔페에서 맛있다고 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진정 원하고 나에게 정말 필요한 책을 찾아 읽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비유했다.

그에게 책읽기는 깊이 읽을 만한 책을 널리 찾는 과정이었다. 그는 “책읽기는 넓게 읽기와 깊게 읽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과정이다. 넓게 읽으며 자신의 관심 분야를 발견해서 그 책을 깊이 읽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재열기자) 

10. 10. 03. 

P.S. 시사IN에 실린 사진은 아주 오래전 첫 인터뷰때 찍은 것이다. 인터뷰 중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과정'이란 표현까지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하튼 '넓게 읽기'와 '깊게 읽기'는 (당연하지만) 상호배제적인 것이 아니라 병립적인 것이다. 내지는 병행해야 하는 독서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모쪼록 더 깊이 있는독서를 원하는 독자들의 유용한 베이스캠프가 되면 좋겠다"라고 나는 서문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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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10-10-0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로그 바탕과 사진이 잘 어울립니다. 환절기마다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것중에 책읽기만한 것도 없지요.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애인같기도 하구요. '고전를 읽을만 하다'를 자주 듣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오랜 세월동안 읽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현대적 서사적 어풍(語風)으로 말해주면 확 땅기던데요. 노자(?=로쟈)님처럼요.

목동 2010-10-03 22:24   좋아요 0 | URL
외람되지만 아랫분처럼 생각합니다.

자꾸때리다 2010-10-03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로쟈님 박지원 의원과...

로쟈 2010-10-04 16:25   좋아요 0 | URL
^^;

2010-10-04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4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겁게 가라앉은 하늘만큼이나 마음도 가라앉은 주말 오후다. 엊저녁에 마신 맥주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그런 경우는 아주 드문데) 낮잠도 잤다. 저녁의 가족모임에 나가기 전 잠시 자투리 시간에 정신을 좀 가다듬을 요량으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꼽는다. 어느새 10월이군...  

1. 문학 

이달부터 문학분야 추천위원이 신경숙 작가에서 정과리 교수(연세대 국문과)로 바뀌었다. 첫 추천작은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지>(문학과지성사, 2010). 작가의 문학적 이력을 소개하면서 추천자는 이렇게 적는다. "...광주항쟁을 총체적으로 재현한 <봄날>(1997)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이후 임철우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듯이 보였으며, 꽤 오랫동안 침묵에 빠졌다. <등대>와 <백년여관>을 상자했으나 언어 훈련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이 소설 <이별하는 골짜기>를 통해 임철우는 자신의 필력이 결코 소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야가 한층 넓어지고 언어의식이 깊어졌음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임철우란 작가의 존재를 다시금 증명해주는 소설이란 얘기다.   

80년대 작가의 존재증명에 견주에 90년대 작가의 속깊은 얘기도 들어봄직하다. 윤대녕 산문집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푸르메, 2010)이 그것. 나로선 그의 산문집이 소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이야기를 꾸며내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에 자기 생을 소진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윤대녕은 후자 쪽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쓰는 창작형 작가들에 반해서 소진형 작가들은 한 가지 이야기만 반복해서 쓴다.   

그런 소진형 작가로 1970년대 러시아문학의 '레전드' 베네딕트 예로페예프의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을유문화사, 2010)도 빼놓을 수 없겠다(소개는 http://blog.aladin.co.kr/mramor/4160605 참조). 소설은 알코올 중독자인 주인공이 기차여행을 하며 늘어놓는 '성스런' 횡설수설담인데, "보드카가 흥건한 이 고전은, 절대적으로 부패한 사회에서 이곳이 아닌 그곳에 도달하려는 어느 망가진 남자의 시도를 그리고 있다." 작가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보니 눈물겹다...  

2. 역사  

역사분야의 추천자도 바뀌었다. 김기덕 교수(건국대 문화컨텐츠학과)의 추천작은 정수일의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창비, 2010). 추천의 변은 이렇다.  

초원 실크로드는 일찍이 찬란한 초원 문명을 잉태하고 전파시킨 소통의 길이며, 문명 교류의 최초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선구의 길이었다. 더욱이 우리에게 이 길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 민족의 뿌리를 추적해 볼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이다. 민족의 이동, 찬란한 청동기문화, 금관으로 대표되는 황금문화 등이 전부 이 길을 통해 한반도로 전파되었다. 문명교류학의 세계적 권위자 정수일은 연구도 되지 않고 가기도 힘든 이 길을 2년여에 걸쳐 꾸역꾸역 답사하며, 단순한 답사기가 아닌 문명사적 시각에서 초원 실크로드의 흔적과 역사적 교훈, 현재의 과제까지를 잘 제시해 주고 있다. 정말이지 글로벌시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저자에 대한 설명은 군더더기일 테고, 관심있는 독자라면 문명교류학 교과서격인 <문명담론과 문명교류>(살림, 2009), 실크로드 개관이라 할 <실크로드 문명기행>(한겨레출판, 2006) 등도 챙겨놓아야겠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철학분야의 책은 최훈의 <변호사 논증법>(웅진지식하우스, 2010). 부제는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4가지 실전논리'. '네 가지 논증법'에 대한 추천자의 정리는 이렇다.

최훈 교수는 ‘변호사 논증법’이란 다소 생소한 용어를 동원해서 우리에게 논리의 중요성을 주창한다. 변호사는 네 가지 논증법을 사용해서 자신의 고객을 옹호한다. 첫째, 자비로운 해석과 역지사지의 원칙이다.(...)  둘째, 근거제시와 근거확인의 원칙에 따르면, 우리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근거를 찾아내야 한다.(...) 셋째, 입증의 책임과 권리의 원칙이 있다.(...) 넷째, 논점일탈 금지의 원칙에 따르면, 동서문답처럼 상대방의 예리한 질문을 비켜나가는 방법은 부당하다. 최훈 교수는 대화의 이종격투기 현장에서 합리적으로 승리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조련사이다.

'변호사 논증법'이 법정 바깥의 일상생활에도 어떻게 효용이 닿는지는 책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저자의 다른 책을 보건대, 논리학 교양의 대중화를 위해서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데, 지난 4월에도 <라플라스의 악마, 철학을 묻다>(뿌리와이파리, 2010)가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추천된 바 있는데, 같은 저자의 책이 이렇듯 자주 추천되는 것도 드문 일이지 싶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정치/사회 분야의 책은 앤서니 루이스의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간장, 2010)다. '민주시민의 필독서'로 추천하고 있는데,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언론인이자 법학자인 미국인 앤서니 루이스가 미국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발전하고 적용되어 왔는가를 구체적 사례들을, 가령 선동법, 간첩죄, 사생활, 언론의 면책특권, 애국적 히스테리, 성적 표현,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들(나치 옹호와 이슬람 극단주의 등)을 검토하면서 알기 쉽게 집필한 것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옹호하는 자유 못잖게, 사회 이면의 삶을 직접 살아보는 건 어떨까. <암행기자 귄터 발라프의 언더커버 리포트>(프로네시스, 2010)가 그런 책인데, "자신만의 독특한 잠입취재 방식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독일의 대표적 언론인 귄터 발라프의 책. 2007년부터 2년여에 걸쳐 취재한 7건의 르포를 묶은 것으로 40년 암행기자 인생을 살아온 그의 최신작"이라고 소개된다. 덧붙여, 오늘 배송받은 책 가운데 하나로 브루스 액커만 등이 쓴 <분배의 재구성>(나눔의집, 2010)은 기본소득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관심을 갖게 된 주제의 책이라 조만간 읽어보려고 한다.   

5. 경제/경영 

경제/경영 분야도 추천자가 바뀌었다. 박원암 교수(홍익대 경제학부)가 추천한 책은 니얼 퍼거슨의 <금융의 지배>(민음사, 2010). 한번쯤 추천될 거 같았던 책이다. 소개는 이렇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 때, 세계 금융의 역사를 한 눈에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과 니얼 퍼거슨 교수가 <돈의 부상: 세계의 금융 역사>란 제목으로 출간한 책을 민음사가 <금융의 지배>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하였다. 저자는 역사적 사건과 사료를 인용하며 세계 금융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역사학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금융의 역사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하겠다.

절판된 책이지만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3세기 동안의 세계를 움직인 돈과 권력의 역사를 다룬 퍼거슨의 <현금의 지배>(김영사, 2002)도 나란히 읽어봄직하다. 금융 가문의 흥망을 다룬 <세계를 움직인 돈의 힘>(현암사, 2010)도 같은 분야의 책으로 눈길을 줄 만하다. 금융 왕조는 보통의 은행가 가문과 달리 권력과 공생하여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행사한 가문을 말한다. "스물한 개 금융 가문의 성공과 실패 이야기를 돈과 권력의 결탁에 초점을 맞추어 들려준다"고.    

6. 과학 

장경애 과학동아 경영기획실장이 추천한 책은 <이덕환의 사이언스 토크토크>(프로네시스, 2010). 과학책 번역가로도 유명한 이덕환 교수가 지난 6년간 디지털 타임스지에 연재한 과학칼럼을 모은 책이라 한다.  

저자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문제를 합리적으로 파악하고 이웃과 소통하고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과학적 인성을 길러 주는 것이 과학교육의 목표이며 이러한 과학적 인성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소재가 바로 뉴스라고 말한다. (...) 다양한 뉴스 속에 등장하는 과학적 개념과 오류를 집어낸다.

개인적으론 수전 블랙모어의 <밈>(바다출판사, 2010)이 이달에 읽을 과학책이다. 원제는 '유전자 기계'를 염두에 둔 '밈 기계'이고, 10년쯤 전에 나온 책이다. '문화 복제자'를 뜻하는 '밈'은 리처드 도킨스의 신조어이며 출처에 대해선 <이기적 유전자>를 참조할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서문이 붙어 있는 책의 원서를 나는 아주 오래전에 도서관에서 대출했던 기억이 있다(물론 구경만 하고 반납했지만). 그사이에 밈에 관한 새로운 책이 더 나오진 않았는지 이 책이 소개됐다. 개정판이 나올 만하지 않나 싶다.   

7. 예술 

예술분야의 추천자도 바뀌었다. 이주은 교수(성신여대 교육대학원)가 추천한 책은 김순배의 <클래식을 좋아하세요?>(갤리온, 2010). 클래식 음악 안내서는 드물지 않은데, 공감할 수 없는 음악도 사랑할 수는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눈길을 끈다.  

상대방을 샅샅이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할 수 있듯이, 음악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도 반드시 공감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굳이 억지스럽게 교감을 끌어내고자 애쓰지 않아도 음악은 얼마든지 ‘설득력’ 있게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주변의 삶과 연관시켜 선별한, 음악 감상을 위한 무겁지 않은 안내서로서 지나치게 지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센티멘탈한 감성에 치우치지도 않은 읽어봄직한 책이다.

음 클래식도 좋지만, 내가 요즘 즐겨듣는 노래는 이문세다. 7080세대가 아니랄까봐 요샌 '40대를 위한 노래 40곡' 이런 컨셉에 눈길이 간다. 가장 자주 듣는 건 '가로수 그날 아래 서면'과 '그녀의 웃음소리뿐'.

 

8. 교양 

교양 분야의 추천자도 철학자 탁석산으로 바뀌었다. 추천도서는 오세정, 조현우의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이숲, 2010). 일단 재밌단다. 

이 책은 재미있다. 골치 아픈 문제까지 나아가지 않고 우리의 고전과 지금의 대중문화 사이를 오가면서 우리의 지평을 넓혀준다. 예를 들어보자. 선과 악의 문제는 아주 오래된 것이다. 왜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는가? 이런 문제는 철학적 문제이거나 종교적 문제일 것이다. 이 책은 악의 문제를 이런 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에 과거의 영웅소설의 독자들이나 현재의 우리가 왜 영웅이 악의 화신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이야기를 만들고 즐기는가를 묻고 있다.

요즘 '한국고전문학전집'(문학동네)도 나오고 있는 판이니 우리 고전을 읽기 위한 여건도 상당히 좋아졌다. 개인적으론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구운몽>을 다시 읽고픈 생각도 있다. <구운몽도>(문학동네, 2010)도 곁들여서. 꿈인가.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책은 서명숙의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북하우스, 2010)이다. '제주올레길'이란 말을 나는 작년엔가 처음 들었는데, 저자는 바로 그 '제주올레 이사장'이다.  

놀멍 쉬멍(놀며 쉬며) 걷는 길, 꼬닥꼬닥(느릿느릿 천천히) 걷는 길 '제주올레길'. 대한민국에 '올레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장본인, 걷는 길 내는 여자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전하는 제주올레를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 제주올레를 사랑한 올레꾼들 이야기, 날마다 올레스럽게 진화 중인 제주올레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다.

제주올레길과 많이 견주어지는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해서도 많은 책이 나와 있는데, 최신작은 작가 세스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민음사, 2010)이다. 여행문학의 '걸작'이라는 게 어떤 것인가 엿봐도 좋겠다. 이런 책들은 사실, 직접 그 길을 걸으며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법일 텐데...  

10. 책을 읽을 자유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책을 읽을 자유'다. 자신의 책을 추천하는 건 팔불출에 해당할지 모르지만, 실상 대부분 발표한 서평들을 모은 책이니 지나치게 겸손을 부리는 것도 오만이다. 게다가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은 어떤 안내 표지판이자 이정표일 뿐이다. 간혹 가이드 몫까지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책을 통과하여 계속 꼬닥꼬닥 걸어가시길 바란다. '고전을 설명하는 고전'으로 소개되는 클리프턴 패디먼의 <평생독서계획>(연암서가, 2010)도 그렇다. 우리의 독서 여정은 평생의 여정이다. 거기에 덧붙여, 폴란드의 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 <위대한 질문>(열린책들, 2010)도 가방에 끼워넣고 싶다. 부제는 '의문문으로 읽은 서양철학사'. 그 질문은 '우리는 왜 악행을 저지르는가?'에서 '어째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있는가?'를 거쳐 '물질은 악한가?'까지 두루 걸쳐 있다. 철학사는 곧 철학적 질문의 역사라는 걸 깨닫게 된다. 

10. 10. 02.  

P.S. 10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쇼펜하우어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을유문화사, 2009)이다. 후기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읽다 보니 자주 쇼펜하우어와 마주치게 되는데, 좀 부담스런 독자라면 <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 읽기>(시아, 2009)로 대신해도 좋겠다. 일종의 '다이제스트 쇼펜하우어'다. 그리고 '우리시대의 쇼펜하우어'라고 부름직한 존 그레이의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이후, 2010)도 쇼펜하우어 이상으로 우리의 기운을 빼놓는다. 때론 인간과 삶에 대한 낙담과 절망이 거품 같은 희망보다 우리에게 요긴하다. 날씨가 쌀쌀해진다고 하니 낙엽이 질 날도 곧 닥쳐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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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딘 2010-10-02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 덕분에 좋은 책을 많이 접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아지면 당연히 그 날은 책에 대한 과소비가 있는 동시에 그 여파로 지갑이 다이어트 해야 하는 날이다. 로쟈는 나로 하여금 책에 대한 소비를 중독시킨 것과 아울러 내 기억속의 사어인 러시아어를 일깨우게 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닐진대 로쟈는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으려나? 출장을 앞 둔 토요일 저녁 시답지 않은 글로 로쟈에 대한 부러움을 토해 내본다.


로쟈 2010-10-03 08:43   좋아요 0 | URL
법적 '책임'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2010-10-03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3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동 2010-10-03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그림이나 열매보다 풍성하고 알차고 차분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10-10-03 08: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영국의 문화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키워드>(민음사, 2010)는 두 주쯤 전에 나온 책인데, 이번주에 리뷰기사들이 올라오고 있다. 문화연구를 위한 요긴한, 필수적인 기본어휘 사전이다. 기본교양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줄 만한 책.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두 주 전에 구입해놓고 아직 펼쳐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 기사다.   

한겨레(10. 10. 02) 같은 말 쓰는데 왜 말이 안 통하는 걸까? 

영국의 문화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1921~1988·사진)는 현대적 의미의 ‘문화 연구’를 창시한 사람으로 불린다. 문화라는 다소 모호한 분야를 연구와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 평생 천착했다. 마르크스주의 영향을 짙게 받았고 젊은 시절 한때 공산당에도 가입했던 그는 케임브리지대학 재직 시절에 스튜어트 홀, 테리 이글턴 같은, 나중에 자신을 이어 문화 연구·문화 비평의 대표자가 될 제자들을 길러냈다. 이번에 처음 번역된 <키워드>(1976)는 <문화와 사회>(1958), <기나긴 혁명>(1961)과 함께 그의 대표작이다



웨일스 지방의 철도노동자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스는 케임브리지대학에 진학한 뒤 2차대전 중에 징집됐다가 전쟁이 끝난 뒤 복학했다. 그가 군대에 있었던 기간은 4년 반이었는데, 이 공백을 거쳐 대학에 돌아온 뒤 적잖은 혼란을 겪었다.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는데, 전쟁 전의 케임브리지 분위기와 제대 후 대학 분위기가 아주 달랐던 것이다. 윌리엄스가 받은 것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왜 같은 말을 쓰는데 서로 다른 말을 쓰는 것 같이 느껴지는 걸까? 이 의문 속에서 윌리엄스가 포착한 것이 문화였다. 문화가 바뀌었던 것이다! 그는 그 문화 현상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변화하는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10여년의 연구 끝에 나온 결과물이 <문화와 사회>였다. 여기서 윌리엄스는 1780년부터 1950년까지 문화 변화의 역사적 지도를 그려냈다. 윌리엄스는 문화 연구를 좀더 진척시켜 3년 뒤 다시 <기나긴 혁명>을 펴냈는데, 여기서 ‘기나긴 혁명’이라는 모순어법으로 그가 지목한 것이 ‘문화혁명’이었다. 그가 보기에 근대 세계는 민주주의 혁명, 산업혁명 외에 제3의 혁명을 일으켰는데, 그것이 바로 문화혁명이다. 문화혁명은 수백년의 장구한 시기에 걸쳐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기나긴 혁명의 과정 속에 살고 있으며, (…) 그것은 인간과 제도를 변혁시키는 진정한 혁명이다.”

<키워드>는 완결되기까지 30년이 걸린 저작이다. 윌리엄스는 <문화와 사회>를 완성한 뒤, ‘문화’라는 단어를 포함해 핵심 어휘들을 설명하는 어휘집을 부록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편집 과정에서 부록이 빠지고 말았다. 윌리엄스는 그 후 20년 동안 더 많은 용례를 수집하고 자료를 축적했다. 그리하여 어휘 130개를 추려 정리한 결과가 이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문화와 사회의 어휘집’인데, “사회적·문화적 논의의 핵심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어휘들이 어디에서 기원해 어떤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그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에는 문학·미학·표상·무의식·자유주의 같은 비교적 논란이 적은 어휘도 있지만, 계급·민주주의·평등 같은, 사회적 갈등을 안고 있는 어휘도 있다. 윌리엄스가 특히 주목하는 것이 이렇게 해석의 진폭이 큰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들은 사전을 찾아본다고 해서 의미가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이런 말들은 개인의 신념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 말의 용법과 역사를 잘 이해하지 않으면 편견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경우는 대개 이런 어휘들을 구사할 때다. 불통의 원인이 되는 말들을 역사적으로 살핌으로써 소통의 장을 마련해보겠다는 뜻이 이 어휘집에 담긴 셈이다.

이렇게 사용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지는 단어 중 하나가 ‘이데올로기’(ideology)다. 1796년 ‘정신의 철학’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신조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 이 단어의 시작이다.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널리 보급한 사람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나폴레옹은 민주주의 옹호자들을 “인민에게 주권 행사의 능력이 없는데도 그들을 주권자의 자리로 끌어올리려 현혹하는 무리”라고 비난하면서 이들의 주장을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이렇게 하여 ‘공론’(空論)이란 뜻의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퍼졌는데, 그 경멸적인 의미를 받아 쓴 진보주의자들이 마르크스·엥겔스였다. 두 사람은 <독일 이데올로기>(1845~1847)에서 독일 급진파 사상들이 역사의 실제 과정으로부터 괴리됐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를 썼다. 현실을 거꾸로 이해하는 허위의식이라는 뜻이었다. 이 경우 이데올로기의 반대어는 ‘과학’이다.

마르크스는 다른 곳, 이를테면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에서는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물질적 과정에 대응하는 관념 체계라는 다소 중립적인 의미로 쓰기도 했는데, 이런 용법은 특히 뒷세대 레닌의 저작에서 두드러졌다. 레닌은 이데올로기를 계급적 토대와 조응하는 관념 체계로 이해해,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경우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보다 더 올바르고 진보적이고 진실하다. 윌리엄스는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이렇게 두 가지로 쓰이고 있지만, 대개의 경우엔 나폴레옹적 의미로 통용된다고 말한다. 자유주의 진영에서 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의미의 이데올로기는 나폴레옹 시대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모욕하는 말이다.”(고명섭 기자) 

10. 10. 02.   

P.S.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책은 다수 번역돼 있다. 주저로 거명된 <문화와 사회>(이화여대출판부, 1988)까지 포함해서. 이미 절판된 지 오래인 것이 흠이다. 국내에 가장 먼저 소개된 건 <이념과 문학>(문학과지성사, 1982)인 듯싶은데, 원제는 <마르크스주의와 문학>이다. '마르크스주의'란 말을 서명에 쓸 수 없었던 시대상의 반영이다. 이 책은 다른 역자에 의해 <문학과 문학이론>(경문사, 2003)으로 번역됐다가 원래의 제목을 찾아 <마르크스주의와 문학>(지만지, 2009)으로 다시 나왔다. <키워드>도 나온 김에 엊그제 구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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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내 2010-10-02 17:44   좋아요 0 | URL
음..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저서는 어휘의 정의에 대한 분석인가요?
아니면 기호 - 언어학적 접근인가요?

로쟈 2010-10-03 08:45   좋아요 0 | URL
키워드들의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풀이한 사전이에요.
 

<공간(SPACE)>(515호)에 실린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편집자의 제안에 따라 <어둠의 도시> 시리즈를 다루기로 했는데, 그래픽노블은 아무래도 좀 생소하고 도시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이야기와 주제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주로 다룬 건 <우르비캉드의 광기>(세미콜론, 2010)이다.

 

공간(10년 10월호) 어둠의 도시들 

프랑수아 스퀴텐이 그림을 그리고 브누아 페테르스가 글을 쓴 그래픽 노블 <어둠의 도시들> 시리즈는 가상의 행성에 있는 가상의 도시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연작만화다. 1983년에 처음 선보인 이후 이제까지 스무 권 가까운 책이 출간됐는데, 국내에 일차로 소개된 건 <기울어진 아이>, <보이지 않는 국경선>, <우르비캉드의 광기>, <한 남자의 그림자> 네 권이다. 이 가상의 행성은 지구와 닮은 풍광을 보여주며,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 비슷한 문명을 건설하고 산다. 다만 기이한 현상이 한 가지씩 등장하는데, 그것이 말하자면 이 연작을 이끄는 ‘어둠’이자 수수께끼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떠올리게 하는 이 어둠의 도시들 가운데 개인적으론 우르비캉드 이야기를 가장 밀착해서 읽었다. 판타지이긴 해도 가장 ‘현실감’ 있는 판타지였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도시건축가 유겐 로빅이고, 이야기는 로빅의 시점에서 기술되는 일기 형식이다. 우르비캉드란 도시는 원래 제멋대로 생긴 판잣집들 사이로 국적불명의 현대적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흉측한 상태였지만 로빅의 계획에 따라 새롭게 정비 및 재개발된다. 그는 널찍하고 기하학적으로 잘 구획된 거리와 건물들, 그리고 장엄한 정원들을 설계해 다른 도시들의 경탄을 자아낼 만한 수준으로 탈바꿈시킨다. 하지만 대칭과 연속성을 기준으로 삼은 그의 계획은 절반만 실현되는데, 도시의 남북을 연결할 제3대교 건설을 상급 결정위원회에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도시의 두 연안이 합의에 따라 분리돼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통로가 생기면 새로운 틈새를 만들어질 것이며, 그것은 다시 새로운 통제체제를 필요로 하게 될 거라는 것이 반대의 정치적 이유였다.    

위원회와의 갈등으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로빅의 책상에 어느 날 작업장에서 발견됐다는 특이한 정육면체 구조물이 놓인다. 한 변의 길이가 15cm 가량이고 속은 빈 단순한 육면체였다. 그런데 이 육면체가 그의 책상에서 자연적인 생장을 시작해 도시 공간 전체로 확장해나간다. 이것이 우르비캉드 이야기의 핵심 모티브이자 수수께끼다. 로빅은 구조물에 ‘로빅의 네트워크’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자가 생성하는 이 네트워크는 곧 도시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며, 그것을 제거하지 못하자 위원회, 곧 통치 권력은 무력화된다. 구조물은 북부 연안까지 뻗어나가서 도시의 남북이 연결되고 주민들은 서로 만나기 시작한다. 육면체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은 직접 교류하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서로 집을 맞바꾸기도 한다.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물 때문에 새로운 생활양식과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이 네트워크 구조물이 구름 저편으로 사라지기 시작하고 폐허만을 흔적으로 남겨놓는다. 구조물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거나 간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돌아올 날짜를 계산하여 발표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위원회의 새로운 권력자가 된 친구 토마스는 로빅을 찾아와 네트워크를 대신할 거대한 건축물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한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진 자가 생성 구조물을 인공적으로 다시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로빅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자들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됐으며, 그 계획은 우리가 겪은 그 놀라운 현상의 조잡하고 보기 흉한 아류를 낳고 말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런 상황에서 유겐 로빅의 일기는 아무런 설명 없이 중단된다. 이것이 우르비캉드 이야기의 전말이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전부는 아니다. 당혹스러울 수 있는 독자들을 위해 ‘구조물에 얽힌 전설’이 부록으로 이어지며 흥미를 보탠다. 과연 우르비캉드 이야기의 핵심인 구조물은 어떤 의미일까? 열 가지 이상의 해석이 제시된다. ‘비인간화된 도시에 자연이 승리하는 예’라거나 ‘실패한 대역사(大役事) 프로젝트’를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고, ‘무정부적인 전복의 움직임’을 암시한다는 정치적 해석도 있다. 천재적인 도시건축가가 사랑한 여인으로부터 버림받자 미쳐버렸다는 관점도 있고, 구조물은 신이나 악마라는 종교적 해석도 있다. 전화의 관점에서 ‘구조물은 통신망’이라는 해석도 억지스럽지만은 않다.  

이 다양한 해석에 대한 허구적 저자의 평은 모든 해석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 이야기의 진정한 교훈은 “인간은 내내 어둠 속에서, 무지함 속에서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간단하지만 무한한 결론을 향해 열려 있는 이 구조물은 신들이 어둠의 도시에 사는 인간들에게 보낸 신비한 물체일 수 있으며, 그와 견주어볼 때 인간은 한없이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이야기의 결말에 관한 가장 유력한 가설과 함께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심각한 천재지변이 우르비캉드를 덮치는 바람에 어둠의 도시들 가운데 가장 높은 콧대를 자랑하던 이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지도상에서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그 가설의 내용이다. 인류 문명에 대한 우화로도 읽힌다

10. 10. 02.  

P.S. <어둠의 도시들> 시리즈에서 내가 읽은 건 1차분으로 나온 <기울어진 아이>와 <보이지 않은 국경선>까지인데, 이후에 <한 남자의 그림자>가 더 보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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