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도서가 많지 않아서 눈길을 돌리게 된 건 해외신간이다. 중앙일보의 '글로벌책읽기'에 마침 하 진의 신간에 대한 소개가 올라왔기에 옮겨온다. 리안이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중국계 영화감독이라면 하 진은 가장 성공한 소설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그의 소설들이 국내에서도 작년부터 적극 소개되고 있다. 해서 'Free Life'(자유인생)가 원제인 이 신간도 어쩌면 내년에는 구경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672쪽 분량이니까 시일은 좀 소요될 듯하다).

중앙일보(07. 12. 14) [글로벌책읽기] 아들놈이 창피하대, 내가 영어 못해서 …

소설 『기다림』으로 명성을 얻은 중국계 소설가 하진이 새 소설을 출간했다. 중국을 배경으로 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번 소설은 중국인 이민자 가족이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미국 유학생 부부인 난우와 핑핑이 천안문 사태 직후 미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3년간 헤어져 있던 아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난우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학원을 그만두고 야간 경비원 등 갖가지 험한 일을 하게 된다. 뭐든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저축을 위해 극도의 내핍 생활을 하는 부부의 유일한 희망은 아들 타오타오의 교육이다. 난우에게는 결혼하기 전에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고 결혼 후에도 그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을 부인 핑핑도 잘 알고 있어서 부부 사이는 자주 삐걱거린다. 하지만 둘 다 중국에서 어렵게 데려온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희생한다.

보스톤 지역에서 뉴욕으로 가서 브루클린에서 조그만 레스토랑을 열고 다시 아틀란타 교외의 쇼핑 몰 한구석에 중국식당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실현되어 가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두꺼운 장편소설은 어떤 면에서 중국인 이민자들의 정착 교본처럼 읽힐 수도 있을 정도로 생활의 세목들을 자상하게 적어놓고 있다. 미숙한 영어 때문에 생기는 일들은 처음에는 코믹하지만 나중에는 가슴을 짓누른다. 그것이 결국 중국문화와 미국문화의 비교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난우가 보기에 미국인들은 근면하지만 돈의 노예이자 교양 없는 속물들이다. 하지만 중국에선 날마다 누군가와 싸워야 살아남을 수 있고 뇌물 없이는 되는 일이 없는데다 정부는 국민들을 어린아이 취급하면서 복종만 강요한다. 난우는 자신의 아들이 그런 폭력적 환경을 견디며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경제적 안정을 이루어가면서도 주인공 난우를 앙앙불락하게 만드는 열망이 있는데 그것은 시인이 되는 것이다. 중국에 있는 옛 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함께 난우를 괴롭히는 시인의 꿈은 이민자가 가지게 되는 이중적 심리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에서 살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영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미국에 온 사람이 영어를 마스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진이 인터뷰에서 한말 그대로 이민 생활의 핵심은 “영어를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을 계속 배울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다. 영어로 시를 쓰겠다는 난우의 생각은 편집자로부터 “시란 언어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라는 충고를 듣기에 이른다.

여기다 불쑥 커버린 아들 타오타오는 부모들의 어설픈 영어를 창피해한다. 십대 아이들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언행일 수도 있는 일이 이민자 부모들에겐 날카로운 아픔이 된다. 자신들의 삶을 희생해가면서 키운 아들이 미국인처럼 행동하면서 부모와 거리를 두려고 할 때, 부부는 위기에 도달한다. 부부 싸움 끝에 핑핑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전화를 집어드는데 누르는 번호가 911인 것은 우스우면서도 슬픈 장면이다.

하진의 전작들이 미국 독자들이 원하는 중국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자신이 미국에 와서 경험한 것을 적은 자전에 가깝다. 미국 숭배와 영어 배우기 열풍에 대한 적절한 비판으로 읽힐 수도 있는 이 소설은 미국 이민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이영준_문학평론가)

07. 12. 15.

 

 

 

 

P.S.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하 진의 소설은 대표작 <기다림>을 비롯해서 다섯 권 정도가 번역돼 있다. 디아스포라 문학이란 주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라 <기다림>과 <자유인생> 정도는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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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이번주에는 주머니를 털어갈 만한 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몇 권의 책을 그냥 기억해놓으면 되는 수준이다. 그 중 한 권은 미국의 두 심리학자가 쓴 <거짓말의 진화>(추수밭, 2007)이다. 목차를 보니 진화론은 물론이고 진화심리학과도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원제와 다르게 '진화'란 말이 국역본 제목에 들어간 건 아무래도 '호객'을 위한 것이지 싶다('거짓말'이라고 하면 너무 야박하겠고). 차라리 부제가 더 분명하게 책의 주제를 제시해주는 듯하다. 자기정당화의 심리학(혹은 '발뺌의 심리학', '오리발의 심리학'). 이건 뭐 한국인이라면 거의 매일같이 안팎으로 경험하는 것이겠는지라 '우리 얘기'로 읽어도 되겠다. 내가 읽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7. 12. 14) '자기정당화’의 덫에 걸린 거짓말쟁이들

한국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 바로 검찰 조사를 받으러 들어가는 피의자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모습이다. 특히 정치가나 기업인, 고위 관료 등 특권층에 속하는 인사들일수록 완강하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검찰에서 모든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자신에 대한 혐의가 벗겨질 것이라는 뜻)” 등의 말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나마 나은 경우엔, “어떻든지 간에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정도다. 이 말 역시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지만, 국민적 관심사가 된 만큼 소란을 일으켜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왜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까. 불과 수시간 후면 드러날 거짓말을 왜 줄줄이 늘어놓을까. 국민들의 눈에는 이들의 잘못이 너무나 명백하게 보이는데 왜 정작 당사자들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을까. 책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심리학적인 답을 내놓는다. 바로 ‘자기정당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정당화하는 심리구조를 철저히 파헤치고 있다. 저자들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우선, 죄를 지은 사람이 대중을 설득하는 것(‘나는 그 여자와 섹스를 하지 않았다’,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등)과 자신을 설득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대중을 설득할 때는 자신이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스스로 설득할 때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자기정당화가 공공연한 거짓말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위험하다.

남을 속이기 위한 의식적 거짓말과 자신을 속이기 위한 무의식적 자기정당화 사이에는 매혹적인 회색 영역이 존재한다. 바로 기억이다. 기억은 종종 과거 사건의 윤곽을 흐리게 하고, 범죄성을 호도하며, 진실을 왜곡하는 ‘자기고양 편향(ego-enhancing bias)’에 의해 재단되고 형성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의 자기위주 왜곡이 작용함에 따라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잊거나 왜곡하고, 그 결과 차츰 자신의 거짓말을 믿게 된다.

자기정당화를 추동하는 엔진은 무엇일까. ‘인지부조화’다. 예를 들어, ‘흡연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과 ‘나는 하루 두 갑을 피운다’라는 자각 사이엔 긴장 상태가 형성된다. 흡연자가 이 같은 심리적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법은 금연을 하든지, 아니면 ‘흡연이 긴장 이완이나 비만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구실을 붙여 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 대부분 흡연자들은 후자의 방법으로 자신을 속인다.

이처럼 인지부조화 상태를 해소하려는 욕구는 강렬하다. 부조화 상태에서는 불편함과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실험 결과 부조화 상태에 있을 때 뇌의 추론 영역은 거의 정지되며, 조화가 회복됐을 때는 뇌의 정서 회로가 밝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메커니즘은 마음을 일단 결정하고 나면 바꾸기가 어렵다는 관찰을 뒷받침하는 신경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더욱이 되돌이킬 수 없는 행위를 했을 때는 자기가 옳았다는 확신이 더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사람들은 상당히 긍정적인 자기개념을 갖고 있어서 자신을 유능하고, 도덕적이며, 똑똑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부조화를 줄이려는 노력은 긍정적인 자아상을 보존하도록 설계돼 있다. 자기확신이 강하고 유명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가능성이 더 낮은 것이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 역시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정당화의 메커니즘을 따른다. 단, 이들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자신을 속인다. 예를 들어, 자신의 능력을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평소의 생각과 다르게 성공을 거뒀을 때 ‘아냐, 이건 우연일 뿐이야’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다시 한국사회로 돌아와보자. 매일매일의 뉴스거리가 흘러넘치는 한국사회에서는 왜 그토록 많은 공직자들이 비리를 저지를까. 자신이 평생에 걸쳐 쌓아온 명예와 경력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짓을 어쩌면 그토록 무모하게 저지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저자들은 ‘피라미드의 비유’를 든다. 처음엔 피라미드의 정상에 서 있던 인물도 한쪽 사면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결국 맨 밑바닥까지 추락한다는 것.

누구나 처음부터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초기엔 ‘업자와 식사를 같이 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한다. 업계의 현안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니 같이 밥 먹으며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럼 골프는? 서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엔 더욱 좋지 않은가.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해외 골프관광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결국, 처음 공직에 발을 들여놓을 당시엔 ‘비리 공직자’로 여겼던 인물과 닮은 꼴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책은, 미국사회에서의 풍부한 사례들, 즉 거짓말과 말 바꾸기를 밥 먹듯이 하는 대통령을 비롯해 과학자, 의사, 성직자, 사법기관에서 외도를 한 남편의 행동까지 구체적인 실례를 들며 자기정당화의 심리구조를 철저히 파헤친다. 마지막 장에서 이 같은 자기 기만의 유혹을 떨치고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용기 있는 인물의 사례까지 보여준다. 자기정당화의 덫이 얼마나 깊고 끈질긴지를 책을 통해 충분히 느낀 뒤에 이처럼 용기 있는 유명인들의 고백사례를 보면 새삼 이들이 달라 보인다. 책의 날개에서 경고하고 있듯이, 어느 누구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시는 예전처럼 그렇게 속 편하게 책임을 회피하지 못할 것’이다.(김영번기자)

07. 12. 15.

P.S. 알라딘에는 이 책의 원제가 병기돼 있지 않아서 몇 번 더 손품을 팔아야 하는데, 부제까지 더하면 원제는 좀 길다. 'Mistakes were made (but not by ME): Why we justify foolish beliefs, bad decisions, and hurtful acts'(2007) 올봄에 나온 책이고 분량은 304쪽. 공저자의 한 사람인 엘리엇 에런슨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100인’의 한 사람으로도 꼽힌 적이 있는 저명한 심리학자이고 <사회심리학>이란 교재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국내에도 번역돼 있다기에 찾아보니 <사회심리학>(탐구당, 1990)이라고 소개되었다. 당연히 애런슨이 공저한 'Social Psychology'(2006, 6판)를 옮긴 것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라 애런슨의 단독 저서인 'The Social Animal'(2007, 10판)을 옮긴 것이고 원래는 <현대사회심리학개설: 사회적 동물>(탐구당, 1981)이라고 번역되었다가 <사회심리학>이라고 개정돼 나온 것이다. 5판을 옮긴 것이라고 하는데, 원서가 현재 10판까지 나왔으니 좀더 보완해서 개정판을 내야 할 듯싶다(교재용 책은 물론 많이 찍은 책들이 좋은 책이다), 라고 적고 다시 살펴보니 <사회심리학>(탐구당, 2002)이라는 최신판도 있다. 이건 8판을 옮긴 것인데 국역본의 경우 분량은 오히려 줄었다. 책의 판형이 바뀐 게 아니라면 군더더기들을 덜어낸 모양이다.   

애런슨의 책은 <사회심리학> 외에도 공저 한권이 더 번역돼 있는데, <누군가 나를 설득하고 있다>(커뮤니케이션북스, 2007)가 그것이고, <프로파간다시대의 설득전략>(커뮤니케이션북스, 2005)의 재판이다. 원제는 '프로파간다의 시대'(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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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2-15 14:28   좋아요 0 | URL
심리학적으로 설명은 되어도 용서는 안되는게 그들의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긴 부정부패 금품수수로 구속된다 치더라도 금방 사면되서 나오며 별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부유하게 사는게 그들이니까. 어쩌면 X밟았다 생각할지도 몰라요.
자기합리화는 곧 도덕불감증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로쟈 2007-12-15 23:33   좋아요 0 | URL
자기정당화의 심리학뿐만 아니라 사회학도 그래서 필요합니다. "그 정도는 개얀타"는 대중적 정서의 문제도 걸려 있고요...
 

얼마전 '한국의 인문서 번역현실과 그 적들'이란 글을 창비주간논평에 실으며, 현 번역문화와 번역의 컨텍스트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1739728). 아는 바대로, 우리 출판/독서 문화에서 번역서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고려하면 현재의 번역문화는 아직 척박한 수준이다. 번역과 번역자에 대한 대우가 열악하고, 때문에 양산되는 번역서의 질 또한 기대에 못 미칠 때가 많다(저작권이 있는 책의 경우 번역서가 나오는 게 더 고역일 때도 있다. 한국어로는 제대로 읽을 수가 없게 돼 버리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널리 확산되는 게 일단은 개선의 첫발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마침 관련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로쟈란 이름도 언급돼 있어서 모른 체할 수도 없고).    

한국일보(07. 12. 14) "번역물 옥석 가리자" 번역비평 '회초리' 들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표하는 <2006년도 출판통계>에 따르면 작년에 나온 신간 중 23%가 번역서다. 그 비율이 7% 수준인 미국과 비교할 것도 없이 한국은 번역서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이런 현실에 발맞춰 번역물의 옥석을 가리는 번역비평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특히 학계를 중심으로 기존 번역서의 수준을 평가하는 보고서가 잇따르고, 번역비평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지가 발간되는 등 번역비평의 체계를 갖추는 작업이 한창이다.

■ 번역비평의 체계화
한국번역비평학회(학회장 황현산 고려대 교수)는 지난달 연간 학회지 <번역비평> 창간호를 냈다. 첫 번역비평 전문지다. 황현산 교수는 창간사에서 “이 학회지를 통해 깊이 있는 번역론을 개발하고 번역 평가의 방법과 기준을 모색하는 한편 번역 현장의 체험에 귀 기울이고 그 결실을 비평할 것이며, 번역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과 처방들을 위해서도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썼다.

이 잡지는 ‘번역비평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의 특집과 함께 <한국 현대시의 러시아어 번역의 문제> <도스토옙스키 한국어 번역의 문제점> 등의 평론을 실은 ‘번역비평’, 서구 번역이론을 소개하는 ‘번역이론 연구와 소개’, ‘신간 번역서평’ 코너 등으로 구성됐다. 번역가이자 출판평론가 표정훈씨, <번역은 반역인가>의 저자 박상익 교수 등이 기고한 번역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코너도 마련했다.

영미문학연구회(학회장 김명환 서울대 교수)는 영미 고전문학 71개 작품의 국내 번역서들을 비교 평가하고 재작년과 올해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창비 발행ㆍ전2권)란 보고서를 발간했다. 번역서의 41%가 표절본이고, 추천할 만한 번역본은 8%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 결과는 국내 번역 수준의 척박함을 보여주는 통계로 자주 인용된다. 이 학회는 96년 창간한 반년간지 <안과밖>에서 영미문학 번역 실태를 점검하는 고정란을 꾸려오고 있다.

교수신문은 2005년부터 2년간 동서양 대표 고전 번역본에 대한 분석글을 연재해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생각의나무 발행ㆍ전2권)로 묶었다. 일부 소장학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수준 있는 번역비평에 나서기도 한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balmas’라는 필명으로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의 저작 번역본을 집중 검토하는 진태원씨, ‘로쟈’가 필명인 러시아문학 전문가 이현우씨가 대표적이다.

■ 새로운 비평기준 모색
번역비평이 단순한 오역 지적을 넘어 진일보한 평가 잣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번역의 기본 원칙으로 여겨져온, 원전의 자구(字句)를 충실히 옮겨야 한다는 ‘충실성’과 번역하는 언어권의 독자가 읽기 편하도록 해야 한다는 ‘가독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불어권 문학 번역가인 정혜용 서울대 교수는 <번역비평>에 기고한 ‘번역문학 비평을 위하여’라는 글을 통해 “번역비평이라면 당연히 번역가의 번역관, 번역물의 번역 논리를 그 핵심에 둬야 한다”며 “그것이 충실성과 가독성 규범으로 포착될 수 없다는 점에서 두 잣대는 궁극적으로 폐기돼야할 비평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밋밋한 직역 대신 생생한 의역을 택했던 번역 경험을 소개하면서 “번역자는 특정 표현의 작품 내 기능에 대한 분석과 그 단어가 상징하는 작가의 언어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충실성 규범을 저버릴 수 있다”고 썼다.

영미문학 번역가 왕은철 전북대 교수는 <안과밖> 2007년 하반기호에서 “번역가는 원문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기계적으로 바꾸는 ‘하인’이 아니라 비판적 안목으로 텍스트를 해석하고 비평하고 창작하는 자”로 규정했다. 왕 교수는 “비평가가 번역가의 기준과 원칙을 고려하지 않으면 공정한 비평은커녕 번역가를 ‘혼내는’ 형태의 비평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면서 영미문학연구회의 고전 번역 평가의 문제점을 에둘러 지적했다.

■ 현장 번역가 ‘볼멘 소리’도
학계 중심의 번역비평 본격화에 현장 번역가들은 “열악한 번역 현장을 도외시한 채 일방적 평가 잣대를 들이대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표정훈씨는 <번역비평>에 실은 글에서 부실한 번역을 양산하는 환경을 조목조목 짚었다. 전업 번역가로 생계를 꾸리기 힘들 만큼 번역료가 박하고, 대학 도서관의 외부인 통제로 참고 자료 이용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표씨의 지적이다. 아울러 그는 번역서의 질적 수준을 평가할 서평 시스템의 부재, 분야별 번역 작업의 기반이 될 기초 고전의 번역 미비, 번역을 경시하는 연구자 평가 정책을 비판했다. 일본문학 번역가 김남주씨는 “번역가의 언어 선별은 병아리 감별사의 작업을 닮았다”며 경험을 통해 획득되는 직관에서 좋은 번역이 나온다는 입장을 표했다.

이현우씨는 이달 인터넷 ‘주간창비논평’에 기고한 글에서 장기적 안목의 번역 문화 개선을 주문했다. 이씨는 한국고전번역원, 한국키케로학회 등이 40~50년을 잡고 번역 작업을 진행 중임을 상기시키면서 “대학원생에게 번역 과제로 제출받은 원고를 짜깁기해 교수 이름으로 출판하는 관행부터 타파하는 등 번역 텍스트를 둘러싼 현실적 조건, 즉 번역의 컨텍스트를 탈바꿈해야 한다”고 썼다.(이훈성기자)

07.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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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12-14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이현우씨였구나요~~~^^ 창비논평 잘 읽었어요

로쟈 2007-12-14 14:44   좋아요 0 | URL
닉네임을 바꾸든지 본명을 바꾸든지 해야겠어요, 이젠...

수유 2007-12-14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명이 낯설어요..그참..

2007-12-14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15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ta 2007-12-15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을 "소장학자"라고 부르니 왠지 좀 거리감이.. "소장학자"라는 보통명사보다는 "로쟈"님이라는 고유명사가 훨씬 좋네요.^^

로쟈 2007-12-15 23:32   좋아요 0 | URL
요즘은 그냥 40대까지를 '소장학자'라고 부르는 것 같더군요. '로쟈'란 닉네임이 공식직함으로 사용하기는 아직 어려우니까요.^^;

펠릭스 2009-10-13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전번역과 중역에는 차이가 있을 것같은데요?
렬국은 최종 번역자의 능력이 문제일까요?
 

며칠전 배송받은 책은 영국의 저명한 극작가 톰 스토퍼드의 <유토피아의 해안>(2007)이다. 연초에 '어느 혁명가의 생애'(http://blog.aladin.co.kr/mramor/1033616)란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제1부 '항해(Voyage)', 제2부 '난파(Shipwreck)', 제3부 '구조(Salvage)'로 돼 있고, 전체 공연은 휴식 시간을 포함 12시간이 걸린다는 대작이다. 3부작을 모두 묶은 책은 지난 1월에 나왔지만 저렴한 페이퍼백이 지난 가을에야 나왔고 기다림 끝에 드디어 손에 넣게 되었다.

작년 가을의 기사를 다시 옮기면, "이 작품의 배경은 19세기 제정러시아시대. 유럽이 혁명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1833년부터 1866년까지의 30여년 간에 러시아 지식인들이 겪은 대립과 갈등, 좌절, 투쟁, 사랑, 꿈을 그린 것이다.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은 급진적 무정부주의자 바쿠닌, 작가 투르게네프, 문학비평가 벨린스키, 혁명적 사상가 알렉산더 헤르젠 등이다."

국내에도 번역/소개되면 좋겠다 싶지만 이런 데 눈독을 들이는 출판사는 드물어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게다가 한국 독자들이 희곡은 또 잘 안 읽는다). 나야 물론 전공과 관련된 책이기도 하고 강의용 참고서이기도 해서 아무런 망설임도 가질 수가 없지만.

책머리에 실린 감사의 말을 잠시 읽어보니 스토퍼드는 이 '러시아 지성사'를 쓰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이로 두 사람을 꼽고 있다. <러시아의 사상가들>의 저자 이사야 벌린과 <낭만적 망명가들>의 저자 E. H. 카이다. 벌린의 책은 늦어도 내년에는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카의 책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의 전기 <미하일 바쿠닌>은 곧 새로 번역돼 나오는 걸로 아는데, 이왕이면 이 책도 마저 소개되면 좋겠다(*찾아보니 <낭만의 망명객>(까치, 1980)으로 소개됐었다. 손을 봐서 재출간하면 좋겠다).

거기에 더 보태자면 스토퍼드가 가장 먼저 감사를 표하고 있는 에일린 켈리의 연구서 <또다른 해안을 향하여(Toward Another Shore)>(1998)과 <피안에서의 견해들(Views from the Other Shore)>. <유토피아의 해안>이란 작품명을 들었을 때 제일 처음 떠올린 책들이기도 한데, 실제로 스토퍼드가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문'역이었던 셈이다. 내년 1학기에는 겸사겸사 이 책들과 씨름하면서 '유토피아의 해안'을 좀 거닐어 봐야겠다...

07.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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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신문들의 문화면은 대부분 고(故) 김광석 추모공연 관련소식을 싣고 있다. 내달 6일이 그의 12주기가 되는 날이라고 한다. 그날 추모공연도 열리고 대학로에는 추모비도 세워진다고. 90년대 초반 어디서건 들을 수 있었던 게 그의 노래들이었으므로 지나간 시절을 잠시 돌이켜보게 하지만 특별한 감상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그의 절창들이 주로 '실연'을 노래하는데 젊은 시절, 나는 연애나 실연은 좀 하찮게 여겼다). 내가 기억하는 건 '동물원'이고(그는 '노찾사'로 데뷔했다), '김광석'이란 이름은 대학 동기가 노래부르는 자리에서마다 불러제끼는 바람에 각인되었다(지금도 '김광석' 하면 그 친구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젠 '텔미'를 따라부를 수 있는 처지도 아니어서(그 안무를 따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다시금 그 시절의 노래들을 가끔씩 듣는다. 기사가 계기가 되어 김광석의 노래들도 연이어 들으며 관련기사도 옮겨놓는다. 역시나 절창은 시인들이 가장 즐겨부른다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다. 젊은 날 나는 왜 이런 노래들이 낯간지럽다고 생각했을까? 흠... 

 

 

 

 

 

 

 

 

 

 

한국일보(07. 12. 14) 김광석 추모비 '마음의 고향' 대학로에

1996년 세상을 떠난 ‘가객(歌客)’ 김광석을 추모하는 노래비가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앞마당에 세워진다. 노래비 제막식은 고 김광석의 12주기인 내년 1월 6일에 거행되며 같은 날 오후4시 그의 동료 및 후배들이 주도하는 추모공연이 학전블루에서 열린다.

김민기 학전 대표(김광석 추모사업회 회장)는 13일 추모공연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김광석은 자기가 하고 싶은 노래에 집착하지 않고 숨겨져 있는 명곡들을 발굴해 이를 대중에게 전달해주는 진정한 가객이었다”며 “그 동안 모인 추모공연 수익금 등을 가지고 김광석의 흔적을 남기는 방법이 무언가 찾다가 생전에 1,000회 이상의 라이브 공연을 했던 학전 앞에 노래비를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래비는 청동 조각으로 제작되며 조각가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만드는 중이다.

김 대표는 “1984년 뮤지컬 <개똥이>를 준비하면서 꾸려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통해 그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며 “노찾사 1집 앨범을 한 꾸러미씩 들고 광석이와 함께 전국 방송사를 순회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는 “광석이의 노래 중 가장 인기 있던 <이등병의 편지>는 원래 전인권이 부르기로 했는데 그의 밴드가 나오지 못해 당시 코러스였던 광석이에게 넘어갔다”고 추억했다.

김광석의 친구인 가수 박학기는 “김광석은 그의 노래 중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에 가장 애착을 보였고, 후반으로 갈수록 <일어나>와 같이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노래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추모공연에는 박학기를 비롯해 <서른 즈음에>를 만든 강승원, 작곡가 김형석, 가수 노영심 이소라 성시경 윤도현 이적 동물원 한동준 등이 참여해 김광석의 곡들을 들려준다. 학전블루의 좌석 수가 120개에 불과해 주최 측은 공연관람 신청을 20일 전화(02-763-8233)로 받은 후 이들 중 60명(1인 2매)을 추첨, 입장권을 판매할 예정이다.

박학기는 “1만 명이 모이는 큰 공연장에서 한 번 노래하는 것보다 100명이 들어가는 작은 곳에서 여러 번 공연하기를 좋아했던 김광석의 뜻을 살려 소규모로 추모콘서트를 하게 됐고, 평소 그가 마음의 고향이라 부르던 학전을 장소로 택했다”고 말했다.(양홍주 기자)

-이등병의 편지(http://www.youtube.com/watch?v=2CqZIvjdLUo)

-그녀가 처음 울던 날(http://www.youtube.com/watch?v=2kmbk_NzAvA)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http://www.youtube.com/watch?v=lxBEOisWBhw)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http://www.youtube.com/watch?v=_C3JFm911hE)

-일어나(http://www.youtube.com/watch?v=ekTNFs83ZQE)

경향신문(07. 11. 22) [대중음악 100대 명반]25위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음악사적으로 보면, 1968년 한대수 이래의 모던포크는 장르로서의 중요성보다 ‘음악창작에 대한 인식’과 ‘메시지 표현 양식’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킨 것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즉, 대중음악에서 아티스트의 탄생을 의미한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인텔리들이 대중음악 영역에 정식으로 들어옴으로써 대중음악을 단순한 ‘딴따라판’ 이상으로 자리매김시켰으며, 70년대 초반 청년문화의 중심으로 대중음악을 편입시켰다.

60년대 영미권의 록과 포크를 들었던 당시 대학생들에게 모던포크는 낯설지 않은 음악 형태였을 뿐만 아니라 자의식 강한 그들이 한국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날릴 수 있는 매개체로서도 적당했다. 왜냐하면 선동적인 록과 달리 포크는 기본적으로 ‘메시지’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박정희 정권의 ‘청년문화 탄압’에 따라 모던포크는 기운을 잃어갔고, 한대수·김민기를 비롯한 중요한 창작자들이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히면서 더 이상의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그 마지막은 한대수가 2집 ‘고무신’을 발표했던 75년 무렵이다.

이후 모던포크의 계보는 오히려 대중음악이 아니라 70년대 말의 ‘메아리’와 같은 대학 노래동아리로 이어진다. 메아리는 단순히 실연 중심의 노래패가 아니라 ‘창작자 집단’이란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그러나 메아리 이후로는 그런 정체성을 가진 곳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모던포크가 대학 내로 광범위하게 전파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무신’ 이후 모던포크의 계보는 민중음악 진영 내의 메아리-노래를 찾는 사람들-새벽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갔고, 예외적으로 활동한 인물이 정태춘, 조동진, 김두수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에 들어 ‘모던포크’의 적자임을 자부한 이가 김광석이고, 그 핵심적인 작품이 바로 김광석 4집(94)과 ‘다시 부르기 2’였다.

김광석은 8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88년 동물원 1집을 정식 데뷔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동물원 2집까지 참여를 하고, 89년 솔로 데뷔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찾은 것은 ‘나의 노래’가 담긴 92년 3집부터다. 베스트앨범 형식으로 발표한 ‘다시 부르기 1’(93)부터는 작품성과 상업성 둘 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다시 부르기 1’이 동물원과 자신의 앨범에서 뽑아낸 노래들과 한때 활동하던 민중음악 진영에서 김현성, 한동헌, 문대현의 노래로 구성된 자전적 베스트 앨범이었던 반면, ‘다시 부르기 2’는 자신이 스스로 선정한 ‘한국 모던포크의 대표곡’ 모음집이다. 그리고 모던포크를 떠나서 그가 선정한 중요한 음악창작자들에 대한 트리뷰트앨범이었다.

그래서 이 음반에는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양병집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김의철의 ‘불행아’와 같은 초기 모던포크 뮤지션들의 노래가 담겼고, 백창우의 ‘내 사람이여’, 한동헌의 ‘나의 노래’와 같은 민중음악 선배들의 노래들이 있다. 또 김창기의 ‘잊혀지는 것’ ‘변해가네’, 유준열의 ‘새장 속의 친구’와 같은 당대 주목할 만한 창작자들의 노래들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앨범의 대미는 자신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로 끝맺는다.

대부분의 세션은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동익 밴드가 맡아서 90년대 국내 세션의 정수를 보여주었고, 편곡자 조동익은 원곡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노래를 참신한 김광석 버전으로 재탄생시킨 일등공신이다. 리메이크 앨범으로서는 드물게 대다수 수록곡이 원곡을 능가하는 위력을 발휘했고, 이는 자신의 노래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노래와 삶, 기쁨과 슬픔 그리고 자유와 외로움이 진득하게 녹아든 이 음반은 그의 유작이라서 더욱 애틋하다.(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

 

◇김광석 프로필
·출생 : 1964년
·사망 : 96년
·데뷔 : 84년(김민기 ‘개똥이’ 음반 참여 및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주요활동
-88년 동물원 1집 ‘동물원’
동물원 2집 ‘동물원 두번째 노래모음’
-89년 김광석 1집 ‘김광석 1’
-91년 김광석 2집 ‘김광석 2nd’
-92년 김광석 3집 ‘김광석 3번째 노래모음’
-93년 ‘김광석 다시부르기 1’
-94년 김광석 4집 ‘김광석 네번째’
-95년 ‘김광석 다시부르기 2’

07.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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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2-14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 김광석씨의 노래 중에 "그날들"이라는 노래는 저에게 많이 특별한 노래 중에 하나랍니다.^^

로쟈 2007-12-14 10:28   좋아요 0 | URL
네, 좋은 노래죠(워낙 베스트 넘버들이 많기도 하고). '먼지가 되어' 같은 노래도 좋은데 제가 유튜브에서 못 찾았습니다.^^;

드팀전 2007-12-1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로에서 하는 공연 자주 갔었는데...전 <기대어 앉은 오후>라는 곡을 좋아했어요.그리고 가곡풍의 곡들 예를 들면 <꽃>,<나무> 뭐 이런..

로쟈 2007-12-14 10:37   좋아요 0 | URL
'김광석 세대'들인가 봅니다.^^

hnine 2007-12-1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덕분에 하루 종일 김광석 목소리와 함께 할 것 같습니다.
추천드리고 가요. 저도 김광석 세대랍니다.

로쟈 2007-12-14 14:43   좋아요 0 | URL
이젠 늙어가는 세대죠...

잉크냄새 2007-12-14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12년이군요. 저도 역시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가장 좋아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도 절창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로쟈 2007-12-14 14:42   좋아요 0 | URL
네, 본인이 버스에서 들으며 울었다고 하더군요...

수유 2007-12-14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처량맞아서 싫다오~~~

로쟈 2007-12-14 14:42   좋아요 0 | URL
차마 적지 못한 단어인데 '처량' 만땅이죠.^^;

자꾸때리다 2007-12-1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른 즈음에>,<혼자 남은 밤>,<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기대어 앉은 오후에는>,<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광야에서>,<외사랑>,<이등병의 편지>.... 광팬입니다. 모두 다 50번 이상은 들었을...

로쟈 2007-12-14 14:41   좋아요 0 | URL
그래서야 솔로를 벗어나시겠습니까?^^

파란여우 2007-12-14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광석 세대는 저 잖아요. 동갑내기인데...
그가 죽었을 때 제 세대의 음표가 일제히 떨어져 부서져내리는 것 같았어요.

로쟈 2007-12-14 15:44   좋아요 0 | URL
저는 조용필의 '단발머리' 세대이기도 한 걸요.^^ 저도 예의 생각나는 건 김광석을 좋아하던 친구의 허탈해 하던 모습입니다...

likesky 2007-12-14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이겠지만, 저 지금 김광석의 다시부르기 듣고 있는 중입니다. 사랑했지만..이진행중이구요. 너무 좋아요. 그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하게 만든 건 제겐 잔인한 일이었어요. 살면서 나이들어가는 정다운 모습 볼 수 있도록 해주지....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봐요.

로쟈 2007-12-14 22:14   좋아요 0 | URL
팬이셨군요.^^

춤추는인생. 2007-12-14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제나이 스물에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해서 읽곤했어요. 김광규의 시가 더 해묵어보이면서도 그 둘이 곧잘 어울리더군요.
한번도 뵌적도 티비를 통해 본적도 없지만, 마음으로 늘 살아있는 분이 이분이 아닐까 합니다..

로쟈 2007-12-14 22:16   좋아요 0 | URL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쓴 시인도 벌써 노년입니다. 김광석씨도 40대 중반이었겠군요...

송연 2007-12-15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듣고 있는데 너무 좋네요, 갑자기 정동길이 걷고 싶어집니다..

로쟈 2007-12-15 10:48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