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도서가 많지 않아서 눈길을 돌리게 된 건 해외신간이다. 중앙일보의 '글로벌책읽기'에 마침 하 진의 신간에 대한 소개가 올라왔기에 옮겨온다. 리안이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중국계 영화감독이라면 하 진은 가장 성공한 소설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그의 소설들이 국내에서도 작년부터 적극 소개되고 있다. 해서 'Free Life'(자유인생)가 원제인 이 신간도 어쩌면 내년에는 구경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672쪽 분량이니까 시일은 좀 소요될 듯하다).

중앙일보(07. 12. 14) [글로벌책읽기] 아들놈이 창피하대, 내가 영어 못해서 …

소설 『기다림』으로 명성을 얻은 중국계 소설가 하진이 새 소설을 출간했다. 중국을 배경으로 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번 소설은 중국인 이민자 가족이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미국 유학생 부부인 난우와 핑핑이 천안문 사태 직후 미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3년간 헤어져 있던 아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난우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학원을 그만두고 야간 경비원 등 갖가지 험한 일을 하게 된다. 뭐든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저축을 위해 극도의 내핍 생활을 하는 부부의 유일한 희망은 아들 타오타오의 교육이다. 난우에게는 결혼하기 전에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고 결혼 후에도 그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을 부인 핑핑도 잘 알고 있어서 부부 사이는 자주 삐걱거린다. 하지만 둘 다 중국에서 어렵게 데려온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희생한다.

보스톤 지역에서 뉴욕으로 가서 브루클린에서 조그만 레스토랑을 열고 다시 아틀란타 교외의 쇼핑 몰 한구석에 중국식당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실현되어 가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두꺼운 장편소설은 어떤 면에서 중국인 이민자들의 정착 교본처럼 읽힐 수도 있을 정도로 생활의 세목들을 자상하게 적어놓고 있다. 미숙한 영어 때문에 생기는 일들은 처음에는 코믹하지만 나중에는 가슴을 짓누른다. 그것이 결국 중국문화와 미국문화의 비교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난우가 보기에 미국인들은 근면하지만 돈의 노예이자 교양 없는 속물들이다. 하지만 중국에선 날마다 누군가와 싸워야 살아남을 수 있고 뇌물 없이는 되는 일이 없는데다 정부는 국민들을 어린아이 취급하면서 복종만 강요한다. 난우는 자신의 아들이 그런 폭력적 환경을 견디며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경제적 안정을 이루어가면서도 주인공 난우를 앙앙불락하게 만드는 열망이 있는데 그것은 시인이 되는 것이다. 중국에 있는 옛 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함께 난우를 괴롭히는 시인의 꿈은 이민자가 가지게 되는 이중적 심리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에서 살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영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미국에 온 사람이 영어를 마스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진이 인터뷰에서 한말 그대로 이민 생활의 핵심은 “영어를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을 계속 배울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다. 영어로 시를 쓰겠다는 난우의 생각은 편집자로부터 “시란 언어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라는 충고를 듣기에 이른다.

여기다 불쑥 커버린 아들 타오타오는 부모들의 어설픈 영어를 창피해한다. 십대 아이들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언행일 수도 있는 일이 이민자 부모들에겐 날카로운 아픔이 된다. 자신들의 삶을 희생해가면서 키운 아들이 미국인처럼 행동하면서 부모와 거리를 두려고 할 때, 부부는 위기에 도달한다. 부부 싸움 끝에 핑핑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전화를 집어드는데 누르는 번호가 911인 것은 우스우면서도 슬픈 장면이다.

하진의 전작들이 미국 독자들이 원하는 중국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자신이 미국에 와서 경험한 것을 적은 자전에 가깝다. 미국 숭배와 영어 배우기 열풍에 대한 적절한 비판으로 읽힐 수도 있는 이 소설은 미국 이민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이영준_문학평론가)

07. 12. 15.

 

 

 

 

P.S.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하 진의 소설은 대표작 <기다림>을 비롯해서 다섯 권 정도가 번역돼 있다. 디아스포라 문학이란 주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라 <기다림>과 <자유인생> 정도는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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