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비에서 중앙대대학원신문의 새연재 '구양봉의 橫書竪說(횡서수설)'을 옮겨온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S1N5&rsec=&idxno=9324). 자주 언급한 랑시에르의 <감성의 분할>(도서출판b, 2008)에 대한 리뷰이다. 이전에 옮겨놓은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 맞서라'(http://blog.aladin.co.kr/mramor/1972805) 등과 겹쳐 읽으면 유익하겠다.

중앙대대학원신문(247호) 미학은 어떻게 정치와 조우하는가?

<감성의 분할: 미학과 정치>(2000)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2005)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 소개되는 자크 랑시에르의 책이다. 비록 원문이 74쪽 밖에 안 되는 소품이지만 <감성의 분할>은 <불화: 정치와 철학>(1995)과 더불어 독창적인 사상가로서의 랑시에르가 지닌 진면목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다행히도 국역본 <감성의 분할>은 국역본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의 증오스러운 번역에 비한다면 훨씬 읽을 만하다. 물론 과도한 직역 탓에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건 문체에 대한 ‘감성’의 차이일 수도 있으니 일단 넘어가자.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이자 주요 개념인 ‘Le partage du sensible’를 ‘감성의 분할’이라고 옮긴 건 조금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옮긴이의 해명(미주 1번)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때문에, ‘(le) sensible’은 ‘감성’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으로 옮겨지는 게 좋을 듯하기 때문이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le) sensible'은 그리스어 'to aisthêton', 즉 감각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의 대상을 지칭한다. 이에 반해 감성은 흔히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을 뜻하기 때문에(가령 “저 사람은 감성이 예민해”라는 표현을 떠올려 보라) 원래의 뉘앙스가 거의 살아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런 뉘앙스를 살려야 하는 이유는 이 개념이 랑시에르의 정치(la politique) 대 치안(la police) 개념과 밀접한 관련을 맺기 때문이다. 랑시에르에게 우리가 말하는 정치는 ‘치안’에 가깝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치안이란 곤봉을 든 경찰력으로 상징되는 어떤 구체적인 억압의 구조이기 이전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즉, 감각적인 것)을 나누고 할당하고 분배하는 상징적 구성원리이다.

그래서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는 치안이 특정한 분할선에 의거해 감각적인 것을 배분하고 나눠놓은 질서를 다시 나누고 할당하고 분배하려는 행위이다. 이와 관련해 ‘(le) partage’의 역어로 ‘분할’을 선택한 것은 틀린 건 아니더라도 불충분하다. 나라면 ‘나눔’이라는 역어를 선택할 텐데, 왜냐하면 그래야만 랑시에르의 원래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몫’과 ‘공유’의 의미를 느슨하게라도 포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랑시에르는 <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1998)에서 ‘(le) partage’를 법(nomos)의 어원인 그리스어 ‘nemein’과 관련지어 설명한 바 있다. ‘nemein’은 무엇보다 ‘토지’의 분할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해갈 토지의 구획을 확정해 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모든 공동체, 모든 제국의 역사의 시초”(칼 슈미트, <대지의 노모스>)이며, 그렇기 때문에 법의 어원이 된 것이다.

이런 토지의 분할은 무작위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신화적 사유(혹은 지배 이데올로기) 속에서 응당 그 토지를 소유할 자격이 있는 민족, 계급, 사람들의 등급에 따라 차별적으로 할당된다. 특정 토지를 어떤 누군가가 소유하게 되는 것은 그의 자격에 따라 그에게 주어진 ‘몫’인 셈이다. 가령 야훼가 유대민족에게 선사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다른 민족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동일한 자격과 몫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자들에 대항해 서로의 자격과 몫을 ‘공유’한다. 적어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기 때문에 분할은 ‘배제’의 근거인 동시에 ‘참여’의 근거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토지 분할의 논리가 정치적 장으로 옮겨가면 그것은 특정 지위를 할당하는 논리가 된다. 가령 어떤 누군가가 지배자의 지위를 자신의 몫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그가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이다. 플라톤은 일찍이 이런 자격(연장자, 강자, 현자 등이 타인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을 세분화한 바 있는데, 랑시에르는 이를 정치의 ‘아르케’(근본원리)라고 부른다. 따라서 랑시에르의 정치는 이런 아르케를 뒤흔들고, 더 나아가서는 아르케 자체의 해체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랑시에르에게 있어서 미학과 정치는 이렇게 조우한다. ‘자기 몫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각자의 몫을 주장할 때, 즉 기존의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뒤흔들어 더 많은 몫을 더 많이 공유하려고 할 때 비로소 정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랑시에르에게 “정치의 미학화”나 “미학의 정치화” 같은 말은 동어반복이다. 왜냐하면 정치·치안이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것인 이상, 그것 자체가 이미 미학이기 때문이다.

단, 이때의 미학은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미학이 아니라 그 어원에 충실한 미학이다. 즉, ‘감각적인 것’ 혹은 ‘감각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to aisthêton'에 바탕을 둔 그 미학(‘감각학’으로서의 미학) 말이다. 이렇듯 랑시에르가 포착한 상동성으로 인해 가능해진 미학과 정치의 조우를 음미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08. 03. 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단테의 <신곡>에 관한 자료들을 읽다가 잠시 눈을 돌린 사이트에서 바디우의 <사도 바울>(새물결, 2008)에 관한 리뷰기사를 옮겨온다(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6&title_down_code=002&article_num=9090). 필자는 출판기획자 이재원씨이고 그의 리뷰 연재를 즐겨 옮겨오던바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컬처뉴스(08. 03. 25) 사도 바울, '다시' 논쟁의 가운데 서다

“헤겔은 어디에선가, 모든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은 말하자면 두 번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 그러나 이렇게 말한 맑스 역시 잊은 것이 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에는 그 반복이 꼭 비극-소극 짝일 필요는 없다”는 말을.

그 예외적인 경우 중 하나가 사도 바울(10?~67?)과 철학자들의 조우이다. 이들 간의 첫 번째 조우는 대략 51년경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 언덕 한복판에서 이뤄졌다. 이때 사도 바울이 만난 철학자들은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등의 철학자들이었는데, 이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말하자 배꼽을 움켜잡은 채 파안대소하며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희극적이라고 할 만한 이 조우 이후 거의 20세기 뒤에 이뤄진 두 번째 조우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때 사도 바울이 만난 철학자들은 현대 유럽 철학자들이었는데, 이 조우는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1937~  )에 의해 촉발되어 지난 2005년 미국 뉴욕 주의 시러큐스 대학에서 제법 ‘진지하게’ 이뤄졌던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바디우인가? 바디우 이전에도 사도 바울을 언급한 철학자들은 부지기수이다(바디우 본인이 작성한 명단만 봐도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 리오타르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왜 바디우만이 사도 바울과 철학자들의 두 번째 조우를 실제로 현실화했을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바디우의 바울은 ‘사도’ 바울이기 전에 ‘투사’ 바울이기 때문이다. ‘투사’ 바울의 형상을 찾는 것 역시 바디우가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건의 사상가=시인인 동시에 투사”로 그려진 바디우의 사도 바울은 새로운 투사였고, 이 새로운 투사로서의 바울이 갖는 동시대적인 의미는 동료 철학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번에 국역되어 나온 바디우의 1997년 저서 『사도 바울: ‘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원래 제목은 “성 바울: 보편성의 정초”이다)는 바로 이 두 번째 조우의 발단이자 초대장 같은 책이다. 이 초대에 응할지 안 할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겠지만, 이 초대는 쉽게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다. 바디우가 사도 바울을 “사건의 사상가=시인인 동시에 투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이 ‘보편성’의 새로운 개념을 창안했기 때문이다. 흔히 보편성이란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모든 사람/사물에 적용되는 어떤 성질/원칙이다. 그런데 바디우의 설명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정초한 보편성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에게는 기존의 모든 차이와 분리를 무화시키는 무엇인가가 보편성이다.

‘그게 그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자와 후자의 보편성은 매우 다르다. 전자가 실제 대상들에서 뭔가 공통적인 것을 ‘추출’해낸 것이라면(이런 보편성은 “……이지만 ……이다”의 논리를 따른다. 예컨대 “그들은 성별이 다르지만 인간이다”), 후자는 공통적인 것을 ‘창출’해냄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이런 보편성은 “……이고 ……이다”의 논리를 따른다. 예컨대 “그들은 성별이 다르고 그리스도교인이다).

바디우가 보기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교적 주체’라는 새로운 주체를 창안함으로써 바로 이 새로운 보편성의 윤곽을 정초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교인이 되기 위해서 그/그녀가 반드시 어떤 특정한 귀속 조건(민족, 성별, 신분 등)을 미리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봤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갈라디아서」, 3:28)라는 사도 바울의 선언은 이렇게 가능해진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보편성에는 묘한 ‘도약’이 있다. 통상의 보편성에서 실제 대상들의 차이는 좀 더 높은 차원의 공통적인 것 안에서 통합된다. 가령 성별의 범주로 보면 그/그녀는 남성/여성이지만, 종(種)의 범주로 보면 인간인 것이다. 여기에서 그/그녀의 정체성이 지닌 차이(성별)는 좀 더 높은 차원에서의 공통적인 것(종)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그/그녀의 정체성은 연속적이다, 혹은 말 그대로 동일하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보편성에서는 이런 연속성(동일성)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도교인’이라는 범주는 그/그녀의 정체성이 지닌 차이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지 않다. 즉, 사도 바울의 보편성에서 실제 대상들의 차이는 좀 더 높은 차원의 공통적인 안에서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무화’된다. 그러므로 이때의 공통적인 것은 기존의 차이와 분리를 뛰어넘는(여기서 “뛰어넘는다”는 “극복한다”보다는 “초월한다”에 가깝다. 즉, 사도 바울의 보편성은 차이에 ‘무관심’하다) 제3항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것은 ‘창안’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주체가 창안되려면 그 이전의 주체에게서 미리 일종의 단절이 일어나야만 한다. 열정적으로 그리스도교 박해에 가담하던 바리새파 유대인 사울을 사도 바울로 뒤바꿔놓은 것과 같은 단절 말이다. 바디우는 이 단절을 ‘사건의 도래’라고 부른다. 사도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사건이 바로 이와 같은 단절이었다. 바디우가 그 안에서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고 있는 레닌에게는 1914년 8월에 발생한 제2인터내셔널의 배신, 혹은 1917년 2월 혁명이 그런 사건이겠다(흥미롭게도 프랑스의 맑스주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이 시기를 레닌의 ‘철학적 계기’라고 부른 바 있다).

바디우가 말하는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의미에서의 사실이 아니다. 사건은 “한 시대의 열림,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관계들의 변화”, 즉 가능성의 열림이다. 요컨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건이 열어놓은 가능성(“죽음에 대해 승리를 거둘 수 있음”) 때문이다. ‘사도’(ἀπόστολος)란 사건으로 인해 비로소 열린 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 사건의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사건은 단절이기에 “……이 아니라 ……임”의 논리를 갖는다. 바디우에 따르면 여기에서 “……이 아니라”는 폐쇄적인 특수성들을 해체하는 과정이고, “……임”은 사건이 열어놓은 가능성에 주체들이 동역자(즉, 사도)로서 임해야 하는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사건은 주체(화)와 하나의 구성적 짜임이 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먼저 사건이 있다. 그리고 이 이 사건을 사건으로서 볼 수 있는 주체(사도)가 있다. 이 주체는 이 사건을 사건이라고, 혹은 이 사건이 열어놓은 가능성을 진리라고 선언함으로써 새로운 보편성을 창안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바디우에게 있어 “사건의 사상가”가 “시인”인 동시에 “투사”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건의 사상가는 늘 새로운 보편성을 창안하기에 시인(시인의 어원이 그리스어 ‘만들다’[ποιέω]인 점을 염두에 둬라)이며, 그 보편성에 근거해 새로운 세계를 열기 때문에 투사이다.  

그리고 두 가지 공식이 있다. “……이 아니라 ……임”이라는 사건의 논리. “……이고 ……이다”라는 주체화의 논리. 이 두 가지 공식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주체는 사건의 논리에 따라 이미 도래한 사건을 저지하려는(또는 보지 못하는) 힘을 해체하고, 주체화의 논리에 따라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미래의 동료들을 사건에 충실한 주체로 만듦으로써 사건이 열어놓은 가능성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걷기 때문이다. 바디우에게 있어서 진리의 사건=주체화 과정(le processus de subjectivation)인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사건, 주체성, 보편성. 바로 이것이 바디우의 사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과 철학자들 간의 두 번째 조우가 왜 첫 번째 조우 때와는 달리 희극적이지 않았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세 가지 키워드들이다(따라서 이 두 번째 조우에 “철학자들 한가운데의 성 바울: 주체성, 보편성, 그리고 사건”이라는 명칭이 붙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건, 주체성, 보편성. 인류의 위대한 실험이었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일체의 진리가 상대화되고, 인류의 해방이라는 보편적 원칙이 의심받으면서 국가에 맞서는 정치가 정체성의 정치로 축소되어버린 오늘날, 우리가 혁명을 다시 사유하려 한다면 이 세 가지 키워드들을 외면할 수 있을까? 이 세 가지 키워드들의 의미를 몸소 보여준 ‘우리의 동시대인’인 사도 바울을 외면할 수 있을까? 바디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다소 뒤처진 감이 있지만, 우리는 뛰어난 국역자의 도움으로 비로소 바디우가 내놓은 ‘미래를 위한 내기’에 동참할까 말까를 고민할 수 있게 됐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미 유럽에서는 이 내기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참여하는 철학자들이 부쩍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지오르지오 아감벤이 있다. 아감벤은 “……이고 ……이다”라는 주체화의 논리를 “……이지만 ……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기”(『남겨진 시간: 로마서에 대한 주해』, 2000)의 논리로 다시 읽는데, 이는 사도 바울을 “보편성의 정초자”가 아니라 “급진적인 분리의 주창자”로 읽는 방법으로서 바디우의 주체화 논리와 첨예한 쟁점을 형성 중이다.

그리고 『까다로운 주체』(1999)에서 『꼭두각시와 난장이: 그리스도교의 도착적 핵심』(2003)[이 책의 국역본 제목은 『죽은 신을 위하여』이다)에 이르는 일련의 저서들을 발표한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있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철학자들 간의 두 번째 조우의 결과 역시 곧 책으로 발간될 예정이며, 그리고 또……. 아무튼 우리에게는 더 많은 판단 자료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바디우의 말마따나 많은 사건들, 심지어 멀리 떨어진 사건들조차 여전히 우리가 그것들에 충실하기를 요구하고 있는데?(이재원_출판기획자)

08. 03. 25.

P.S. 리뷰에서 언급된 아감벤의 책 <남겨진 시간>에 대해서는 '아감벤과 사도 바울'(http://blog.aladin.co.kr/mramor/1010259) 참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주에 출간된 이안 파커의 <지젝>(도서출판b, 2008)에 대한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77316.html). 접해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영국의 라캉주의 분석가의 이 '비판적 입문'에서 방점은 '비판'에 더 많이 가 있다. '지젝을 읽기 위하여 알아야 할 것들'이라고 소개된 책이지만 동시에 '지젝을 안 읽기 위하여 알아야 할 것들'도 된다. 가령 아래 기사의 주장대로 "지젝에 홀린" '지젝 애호증자'들이 한편에 있다면, 그 반대편에 있을 '지젝 혐오증자'들의 '복음서' 같은 책인 것이다. 이 책에 대해 <라캉과 정치>(은행나무, 2006)의 저자 야니스 스타브라카키스는 "지젝에 대한 유일한 비판적 소개서"라고 환영했는데, 파커와 스타브라카키스의 공통점은 모두 라캉에 대한 지젝의 해석(전유)을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어디서나 다툼은 '상속자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아직 완독하지 않은 상태라 파커의 시시비비가 얼마만큼 유효한지는 모르겠지만 지젝에 대한 '비판'으로서뿐만 아니라 '입문'으로서도 유익하기를 기대한다.  

한겨레(08. 03. 22) 지젝은 배우다, 혁명을 연기하는

철학을 농담처럼 하는 사람, 농담으로 철학을 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그 농담 같은 철학 또는 철학적 농담으로 세계 지식계를 들쑤시고 어지럽히고 열광시키고 노하게 하는 사람은 슬라보예 지젝(1949~)밖에 없을 것이다. 지젝은 세계 철학계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는 난데없이 출몰하고 도발하고 불지른다. 말하자면 그는 철학적 게릴라, 철학적 빨치산이다. 그의 글들은 건드리면 터지는 이론적 지뢰밭이다.

국내에서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다. 지젝에게 홀린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의 책들은 1년이면 두세 권씩 한국어로 번역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까다로운 주체’다. 논리의 그물에 잘 걸리지 않는다. 미꾸라지처럼 하염없이 이리저리 빠져나간다. 지젝의 책을 읽고 이해했다 싶으면 다음 책에서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지젝이라는 이 모순적인 인간의 전모를 살필 방법은 없을까?

영국의 정신분석학 연구자 이안 파커가 쓴 〈지젝〉은 이 잡히지 않는 인물을 포획해 보려는 책이다. 지젝이 딛고 있는 핵심 거점을 중심으로 하여 그가 무엇을 노리는지 해설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지젝이라는 미로로 들어가는 데 도움을 주는 안내서다. 동시에 이 책은 지젝의 모순적 지점을 대놓고 지적하는 비판서이기도 하다. 요컨대 지젝에 관한 비판적 안내서가 이 책이다.

지젝이라는 철학적 난제를 이해하려면 이 문제적 인간의 출신 배경에 관한 지도를 그려보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알려진 대로 지젝은 옛 유고슬라비아연방에 속했던 슬로베니아 출신이다. 옛 유고연방은 자본주의 서구와 공산주의 소련 사이의 완충지대였다. 소련의 완전한 종속국도, 서구에 가까운 나라도 아니었다. 아니, 실상은 이 두 지역의 혼합체였다. 요시프 티토가 지배하던 시기에 이 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자주관리’라는 이름의 자본주의 체제였고, 정치적으로는 스탈린주의적 관료지배 체제였다. 티토는 스탈린과 싸우면서 반스탈린적 영웅이라는 이미지를 얻었지만, 그를 둘러싼 개인숭배는 스탈린 개인숭배와 거의 다르지 않았다. 티토가 사망하고 소련이 무력화한 뒤 유고연방은 여러 민족단위로 해체됐고, 1990년대에 유고내전이라는 참혹한 전쟁을 겪었다.

지젝이 철학을 공부한 곳은 슬로베니아 수도의 류블랴나대학이다. 정치적·지리적 중간지대였던 이곳은 소련의 공식철학보다는 서유럽의 철학에 더 친숙한 곳이었다. 지젝은 이곳에서 독일의 비판철학과 프랑스 현대철학을 연구했다. 80년대에 지젝은 프랑스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85년 파리8대학에서 그는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기서 익힌 라캉 정신분석학은 이후 그의 이론의 초석 가운데 하나가 됐다. 90년 지젝은 독립 슬로베니아의 첫 자유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네 명의 대통령으로 이루어진 집단지도체제에 자유당 후보로 나갔던 것인데, 5등으로 낙선했다. 자유당 후보라는 이력은 그의 모순적 삶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급진좌익에 가까운 인물이 자본주의화를 지지하는 자유당 후보로 나섰던 것이다. 지젝은 자신의 이런 선택이 전술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술적 필요에 따른 선택이 그의 저술 작업에서도 그대로 관철된다는 사실이다. 그의 주장이 모순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또는 주제의 성격에 따라 논리 구성이 바뀌기 때문이다. 반스탈린주의자인 듯 보였다가 어느 순간에는 스탈린을 찬양하는 듯이 비치기도 하는 것이 한 가지 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그의 이론에는 일관성을 부여해주는 이론적 벼리가 있다고 〈지젝〉의 지은이는 말한다. 그 벼리가 바로 헤겔과 라캉과 마르크스다. 지젝은 이 세 지적 거인의 주장들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면서 그 묵직한 이론 안에 화장실 낙서 수준의 저급한 농담에서부터 싸구려 탐정소설과 할리우드 상업영화까지 온갖 사례를 끌어들인다. 그런 뒤섞기를 통해 매력적이면서 거북살스럽고, 도발적이면서 유희적인 철학적 진술이 흘러나온다.

이 책은 지젝의 지적 토대인 헤겔과 라캉과 마르크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헤겔을 지목한다. 그러나 그때의 헤겔은 우리의 상식으로 굳어진 헤겔, 다시 말해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하나의 닫힌 체계를 완성한 국가주의 철학자 헤겔과는 정반대편에 있는 헤겔이다. 지은이는 지젝의 헤겔이 30년대 프랑스에서 부활한 헤겔이라고 알려준다. 소련에서 망명한 철학자 알렉상드르 코제브가 그려 보여줬던 헤겔은 부정과 거부와 분열의 헤겔이었다. 지젝이 자기 것으로 삼은 헤겔이 바로 이 헤겔, ‘끝없는 부정의 헤겔’이다. 이 부정의 정신으로 지젝이 행하는 것이 ‘이데올로기 비판’이다. 그 어떤 이론이든 체계든 그것이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면, 그것을 부정하고 거부하고 깨부수는 비판 작업의 도구로 헤겔을 이용하는 것이다.

지젝이 기대고 있는 라캉도 이 코제브적 헤겔로 주조된 라캉이다. 라캉은 젊은 시절에 코제브의 헤겔 강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는데, 여기서 자신의 정신분석학의 주요 개념을 익혔다. 헤겔의 부정 개념은 주체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영원한 자기동일성으로서의 주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주체란 언제나 ‘분열된 주체’, 분열된 채로 자기정체성을 구성해 나가는 주체다. 그 주체가 바로 라캉이 말하는 주체다. 이와 함께 지젝은 마르크스를 자신의 사유의 토대로 삼고 있는데, 그때의 마르크스도 헤겔과 라캉의 색깔이 배어든 마르크스다. 특히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분석’은 지젝이 자주 참조하는 지점이다.

특이한 것은 이렇게 거부와 부정과 반대로 일관하는 듯 보이는 지젝이 해체주의 철학에 비판적이라는 사실이다. 지젝이 목표로 삼는 것은 해체주의의 대책 없는 해체가 아니라 ‘긍정을 모색하는 부정’이라는 것이 이 책의 진단이다. 지젝은 보편적 혁명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레닌으로 돌아가 레닌의 혁명전략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젝〉의 지은이가 보기에 지젝의 그런 모습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할 뿐 세계를 바꾼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실천적 무기력 증상을 내장한 자의 자기방어일 뿐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지젝에게 주체의 근원적 위치는 히스테리적이다.” 이때의 히스테리는 모든 곳에서 문제를 적발하고 그 문제를 불평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지젝 자신이 그런 히스테리적 주체라고 이 책은 말한다. 그런 히스테리 주체로서 지젝은 일종의 ‘연기’를 한다. 비난하고 거부하는 지젝의 모습은 정작 혁명은 하지 못하고 혁명적 연기만 하는 자의 모습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그렇게 대신 연기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지젝을 좋아한다”고 지은이는 덧붙인다. 이런 비판에 대해 지젝은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이안 파커의 원고를 읽고서 나는 근저에서의 연대감을 경험했다. 명백한 차이들이 있지만 우리는 동일한 정치적 관심사와 전망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비판적 언급들은 언제나 적실하다.” 이 발언도 ‘연기’일까.(고명섭 기자)


08. 03. 21.

P.S. 국내 출간 도서 목록에서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철학과현실사, 2005)는 지난 2003년 내한강연의 원고들을 묶은 것이다. 해서 현재까지 최신간은 <HOW TO READ 라캉>(웅진지식하우스, 2006)이며 그 이후의 책들도 여러 권이 조만간 소개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한편 '왜 지젝과 싸울 가치가 있는가?'란 타이틀은 'Why is the Christian legacy worth fighting?'(영어본 54쪽)이란 절제목에서 따왔다. 국역본에서는 '왜 기독교적 유산과 싸울 가치가 있는가?'로 옮겨졌다. "기독교에 관한 지젝의 저술(<무너지기 쉬운 절대성>과 <믿음에 대하여>)의 상당 부분이 독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복음의 소책자 같기도 하지만, 지젝은 또한 '좋은 소식'이라는 것이 뒤섞인 축복임을 힘들여 강조한다."(111쪽)이 절의 서두는 시작되는데,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의 부제가 원래 'Why is the Christian legacy worth fighting for?'이다(국역본은 '왜 그리스도적 유산은 싸울 가치가 있는가?'로 옮겼다).

전치사 'for'가 빠지면 의미가 달라지는 건지, 혹은 중의성을 갖게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30쪽에서 'THE PERFECTION OF THE STATE'이란 절제목을 '국가에 대한 지각'이라고 잘못 옮긴 걸로 보아 다른 사례들 역시 역자의 착오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 의미는 기독교적 유산과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기독교적 유산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젝은 어느 쪽인가?..

참고로 스타브라카키스의 지젝론은 <라캉주의 좌파>(2007)에서 읽을 수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8-03-2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지첵과 함께 하는 기묘한 영화여행" 이라는 영화라고 해야하나 다큐라고 해야하나 조금은 햇갈리는 영상물을 보셨는지요?

로쟈 2008-03-22 14:10   좋아요 0 | URL
다 보진 않았습니다.^^;

소경 2008-03-24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변기에 앉아 있는 지젝의 사진이 상당히 전략적으로 보입니다. ^^;

로쟈 2008-03-24 12:51   좋아요 0 | URL
제 계산이기도 하구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국내 수용 의미를 짚어보는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675). 랑시에르에 대해서라면 이미 '충분히' 언급했지만 그럼에도 한번 더 옮겨오는 것은 먼저 필자가 곧 출간될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길, 2008)의 역자이기 때문이고 두번째로는 이런 기사들이 이미 나온 두 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기 때문이다(책을 다 읽을 만한 독자가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 랑시에르를 읽고 싶은 독자라면 '세번째' 책부터 손에 들기를 권한다.  

교수신문(08. 03. 10)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 맞서라

작년에 우리는 랑시에르가 조만간 국내에 상륙할 것이라는 공습경보를 들었다. 올해 들어 이미 두 권의 책(『민주주의에 대한 증오』, 『감성의 분할』)이 출간됐고, 근간목록에 올라있는 책들만 해도 여럿이다. 하지만 앞서 번역된 책들에서 그의 사상을 맛보기 어렵다는 불평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랑시에르의 저작들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는 『감성의 분할』 부록을 참조할 수 있고, 그를 ‘불화’의 철학자, ‘평등’의 철학자로 잘 소개한 글들 역시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여기에 하나의 이정표를 굳이 더 세우기 위해 국내에 번역된 두 책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들인 ‘감각적인 것의 나눔’, ‘감성론’, ‘민주주의’ 등의 의미를 곱씹어 보기로 하자. 랑시에르의 철학을 ‘감성의 정치’라는 기획으로 설명하는 것이 그의 책들을 읽는 한 가지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하면서.

『감성의 분할』의 원제는 ‘Le partage du sensible : esthtique et politique’이다. 이미 앞에서 적었듯이 우리는 그것을 ‘감각적인 것의 나눔 : 감성론/감각학과 정치’라고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랑시에르가 말하는 ‘partage’는 사회 안/바깥의 개인들에게 각자의 몫과 자리를 나누어 주는 동시에, 그 몫과 자리에 따라 사회에 참여하도록/배제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두 뜻을 아우를 수 있는 좋은 우리말은 ‘나눔’이다. 또한 랑시에르는 이러한 나눔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감각하는 방식 사이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등이 ‘le sensible’이다. 이 단어는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을 뜻하는 감성보다는 문자 그대로 감각적인 것-감각되는 것과 감각할 수 있는 것을 동시에 뜻하는-으로 옮기는 것이 낫다.

정치, ‘감각적인 것’의 ‘나눔’과 재편성
감각되는 것/감각할 수 있는 것을 나눈다니 무슨 말인가. 랑시에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1권의 표현에 주목한다. 거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불쾌의 감각에 바탕을 둔 소리(phon)가 공적인 공간에서 하나의 말(logos)로 ‘들리지 않게’ 함으로써, 소리와 말,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나눴다. 이러한 나눔에 따라 사적 공간에 유폐됐던 노예, 여성, 노동자들은 동물과 다름없는 소리만을 가질 뿐, 의미 있는 무언가를 논할 수 있는 말을 갖지 않은 존재로 지각돼왔던 것이다.

그의 대안은 명쾌하다. 자신의 말이 말로 셈해지지 않는 자들, 자신의 활동이 오로지 사적인 것으로만 간주되던 자들-랑시에르가 ‘몫-없는 자들’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바로 이 나눔의 방식을 문제 삼기 위해서는 자신의 말이나 활동이 말로 그리고 공통적인 것으로 셈해지고 나눠지는 세계를 연출해야 한다. 이로부터 필연적으로 두 나눔의 방식이 충돌하는 바, 이를 랑시에르는 불일치(dissensus), 係爭(litige)이라고 이름 짓는다. 한 마디로 정치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과 그에 대한 재편성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서 랑시에르가 말하는 ‘esthtique’은 단순히 미학이라기보다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게다가 랑시에르는 ‘esthtique’을 아름다운 것에 대한 이론이나 예술론, 혹은 감수성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 그는 그 단어의 기원인 ‘aisthsis’―어떤 대상, 행위, 표상에 의해 영향을 받는 방식, 감각적인 것을 겪는 방식―에 주목하는 동시에, 칸트가 말하는 감성적(미감적) 판단에서 그 단어를 끌어온다. 따라서 그것은 ‘감성(적)’으로 옮기는 것이 옳다. 요컨대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esthtique’은 ‘감성(적)’, ‘감성론/감각학’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랑시에르는 『판단력 비판』에 나오는 감성적 판단의 ‘목적 없는 합목적성’에 주목한다. 감성적 경험의 주체는 어떤 목적에 대한 앎이나 욕구 충족을 향하지 않고, ‘무관심’한 즐거움을 느낀다. 이러한 새로운 감성적 경험에 기초해 감각적 확실성의 범주로 간주되는 것들을 다시 짜는 것이야말로 ‘감성적 혁명’인 것이다.



19세기 노동자 운동 문서 속에서 10년 보내
랑시에르가 68년 이후 알튀세르의 이론주의와 결별하고 10여 년간 먼지 쌓인 19세기 노동자 운동 관련 문서고에서 발견해낸 것은 바로 이 감성적 혁명이다. 구두수선공이 자신에게 권리상 접근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시신(뮤즈)에게 호소하며 시를 써내려가고, 소목장이가 철학을 하거나, 자유를 셈하는 대항 경제론을 만들어내는 등등.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주어진 자리와 기능에 무관심한 채 그것들로부터 스스로 벗어나는 노동자들의 경험이다. 19세기 노동자 운동의 독특함은 인민의 삶을 위와 같이 감성화하려는 노력, 자신이 부르주아 못지않게 가진 감성적 능력을 드러내 보이는 경험 속에 있는 것이다. 감성화는 일상적인 지각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러한 지각 방식의 틀 혹은 나눔 자체를 재편성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감성적 혁명이란 노동자들을 공동체의 상징적 공간 안에(혹은 바깥에) 자리를 배정하고, 그들을 생산과 재생산의 ‘사적인’ 영역에 놓는 전통적인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뒤집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지배적인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해야 한다. 반대로 19세기 초중반 노동자들은 밤에 더 많은 것을 하기 시작하면서 해방의 물꼬를 텄다. 밤에 안자고, 쓰고,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것, 그럼으로써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이자 이름인 노동자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이야말로 해방의 시작인 것이다. 노동자들은 또한 밤을 새로이 전유함으로써, 시간의 짜임을 바꾼 것이다. 다른 예도 있다. 19세기 중반 노동자들은 사장들 역시 작업장 안에 들어올 때 모자를 벗으라고 요구했다. 이는 단순히 사장의 예절과 존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장을 사적 공간이 아니라 공적 공간으로 다시 나누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해방은 시간과 공간의 나눔―칸트가 선험적 감성 형식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랑시에르가 생각하는 감성의 정치다. 다시 말해 랑시에르에게 정치와 감성론(감각적인 것의 나눔, 재편성)은 구별되지 않는다. 정치는 처음부터 감성적이다.

사회(학)적인 범주에 따라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벗어나는 이러한 감성적 경험은 탈정체화, 탈계급화라 불러 마땅하다. 이 지점에서 랑시에르는 마르크스가 정의한 ‘계급의 소멸로서의 계급’인 프롤레타리아를 급진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그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빈자라고 부르지 않으며, 노동자를 프롤레타리아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빈자, 프롤레타리아는 중요하지 않은 자들, 셈해지지 않은 자들을 가리킨다. 프롤레타리아는 본디 proles(자식, 아이)에서 파생된 단어로, 아이를 낳는 한에서만 로마에 봉사할 몫을 갖는 계층, 다시 말해 아이들을 통해서만 국가에 셈해지는 계층을 말한다. 랑시에르는 이 형상을 고대 그리스의 데모스를 다시 규정함으로써 발견한다. 그리고 데모스(인민)의 권력/역량이야말로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사실 그것의 적대자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민주주의란 통치할 자격을 갖지 않은 자들이 정당성도 없이 쪽수로 밀어붙이고, 제비뽑기로 자리와 직무를 분배하는 정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이 역으로 민주주의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는 이름도 자격도 없는 ‘아무나’가 공통의 장소에 침입해 (통치의 관점에서) 난장을 피우며 자신들의 평등을 보여주는 삶의 방식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늘 우연적이다. 반대로 이 통제할 수 없는 과잉과 초과로 가득찬 ‘민주주의적 삶’을 자본의 논리와 다름없는 무제한적인 사적 욕망의 추구로 돌리고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주장함으로써 바로 그 데모스를 정치판에서 몰아내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적 통치’를 주장하는 자들의 과제였다.

랑시에르는 오늘날의 모든 사회, 경제적 혼란을 민주주의의 탓으로 돌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 맞선다. 정치의 시대는 끝났고 사회적인 것, 경제적인 것만 중요하다거나, 반대로 사적인 것과 완전히 구별되는 고유하게 정치적인 것, 곧 국가적인 사무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맞서, ‘정치’를 다시 발명해야 한다고 랑시에르는 주장하는 것이다.



그간 국내에서 프랑스 철학자들을 수입하는 방식은 다소 비슷했다. 가장 먼저 수입되는 것은 그들의 정치철학이며, 그것이 얼마나 현실 정치를 설명하는데 쓸모가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알다시피 대답은 한결같았다. 프랑스 철학은 말만 많고 알맹이는 없으며, 기껏해야 자본주의의 첨단에 있는 향락자들의 이데올로기에 복무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고심해 만들어내는 것들, 특히 랑시에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정치의 가능성의 조건’이다. 그것을 위해 그는 10년 넘게 노동자들의 말과 글을 추적했다.

속된 표현으로 ‘날로 먹는다’는 말이 있다. 타국의 철학자들의 이론을 날로 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 랑시에르는 끊임없이 이론 체계만을 구축하는 존재론에 반대해 왔다. 오히려 그 때문에 아름다운 체계에 혹하는 이들에게 그의 철학은 간단하며 싱거울 수도 있다. 하지만 랑시에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80년 5월이나 87년 6월은 386 정치인들의 변신 및 종언과 더불어 헐값에 넘겨야할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쓰고 반복해야할 사건이다.

이 땅의 무수한 아무개들의 웅성거림이 학자들-안다고 가정하는 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목소리를 준다면서 그들을 침묵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본인의 학문분과의 경계에서 벗어나 보는 것. 이 어려운 과제야말로 랑시에르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교훈 중 하나가 아닐까.(양창렬/ 파리 1대학 철학과 박사과정)

■ 자크 랑시에르는 누구인가

알튀세르 사단의 일원으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re, 1940~)는 68혁명 세대 좌파 이론가로 알랭 바디우, 에티엔 발리바르 등과 함께 21세기 프랑스 철학계에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인물이다. 1940년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태어난 그는 이십대 중반 알튀세르가 제자들과 함께 펴낸 『‘자본’을 읽자』(1965)의 공저자로 정식 데뷔했지만, 오히려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알튀세르와의 결별이 기점이다. 68혁명의 과정에서 스승을 떠난 후 당대의 거목 알튀세르를 향해 거침없는 비난을 쏟아낸 것이 관심을 불러일으킨 배경이다. 그는 『알튀세르의 교훈』(1974)에서 알튀세르가 확고부동한 지적 지배의 위치를 보존하는 것만이 주된 관심사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스승과의 결별, 곧 자신의 학문적 여정과의 단절 이후 랑시에르는 어떠한 주체도 배제되지 않는 평등과 정치의 원리를 탐색해 온다. 이 말은 곧 이전의 철학들이 빈자, 시민, 프롤레타리아 등의 개념들로 정치의 영역에서 일부를 배제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깨달음에서 그는 박사학위 논문인 『프롤레타리아들의 밤』(1981)에서부터 배제된 자들의 주체화와 정치철학적 원리를 도출하기 위한 지적 여정을 걸어오고 있다.



그의 이러한 사유들은 비교적 뒤늦게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역시 알튀세르의 제자이자 프랑스에서 동시대에 주목받은 에티엔 발리바르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국내에 소개(『에티엔 발리바르의 정치경제학 비판』, 윤소영 옮김, 1991)된 데에 비해 한동안 홀대받았던 그의 저작들이 본격적인 상륙을 진행 중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백승대 옮김, 인간사랑)와 『감성의 분할』(오윤성 옮김, b)이 이미 나와 있고, 『정치적인 것의 가장 자리에서』(양창렬 옮김)와 『불화』(진태원 옮김)가 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책들은 ‘배제하지 않는 정치적 원리’를 찾아가는 랑시에르의 핵심적 작업들이다.

지난해 국내에 출간된 『정치적인 것의 귀환』의 저자이자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물꼬를 텄던 학자인 무페가 그러했던 것처럼 랑시에르는 ‘정치’와 ‘정치적인 것’을 구분하고 모든 주체들이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의 원리를 탐색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2005)는 그 현실태로서 대의제가 아닌 추첨제를 민주주의의 원리로 지지하고 있다.

한편,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 속에서 랑시에르의 국내 소개는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치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 번역본을 둘러싼 비판이 거세다. 주된 논지는 ‘현실의 민주주의를 향한 증오’와 ‘원리로서 민주주의를 증오하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라는 랑시에르의 구분과 맥락을 혼동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번역본에서 랑시에르의 사상을 맛볼 수 없다’고 비판했고,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지는 조짐이다. 어쨌든 랑시에르의 ‘감각적인 것의 정치’는 국내 연구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기대 속에서 조금씩 베일을 벗어내고 있다. ‘철학하기’를 강조한 랑시에르의 사유와 실천들이 국내에 어떤 모양으로 녹아들지 주목된다.(김혜진기자)  

08. 03. 10.

P.S. 번역 비판이 '법적 분쟁'으로까지 비화된다면 코미디일 테지만 이런 진통이 '좋은 번역'에 대한 사회적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감수할 만하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경 2008-03-10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상적인 그늘 한가운데에서 운을 맞추면서/리라처럼 나는 나의 심장에 한발을 들어올려서/ 구멍 난 내 구두의 구두끈을 당겼다! 왠지 랭보(나의 방랑(환상)중)가 생각나서 옯기네요 ^^:

로쟈 2008-03-11 23:28   좋아요 0 | URL
'방랑'과 '랑시에르'가 운을 맞추는 건가요?^^

람혼 2008-03-10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이 기대가 되는군요.

로쟈 2008-03-11 23:29   좋아요 0 | URL
네, 이미 나온 두 권보다는 읽을 만한 번역본이 나올 거 같습니다...

섬나무 2008-03-12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적 없이 드나드는 걸 늘 송구해 합니다. 댓가를 지불해야할 것 같은 조바심이 종종 일어나지요.^^ 묵직하고 흔감해지는 포스트들에 나처럼 소리없이 감사해하는 사람들 아마 많을 겁니다. 로쟈님의 조용한 열정에 기대어 눈 먼 길이 덜 두렵곤 합니다. 그리고 근래 일어난 심기 불편한 일들로 로쟈님의 조용한 열정이 다치지나 않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깊이 응원 합니다.

로쟈 2008-03-12 17:56   좋아요 0 | URL
가끔씩 댓글을 남겨주시는 바람에 그만 내빼려던 걸음이 무거워지곤 합니다.^^;
 

이번주 시사IN의 북섹션 기사를 옮겨놓는다.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과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의 '한국 공습'에 관한 기사다. 지난 월요일에 전철에서 읽었는데, 두 꼭지로 저널에 소개된 기사들 가운데 가장 충실하고 유익하기에 챙겨놓을 만하다.  

시사인(08. 03. 04) 내몰린 자들이야말로 체제의 얼굴이다

올해는 유럽의 철학자 아감벤과 랑시에르의 저작이 한국에 도착한 원년으로 기록될 만하다. 어느 전문지에서는 아예 ‘한국 공습’이라는 제목으로 이들의 상륙을 알렸다. 유럽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이들이 제기한 논제로 떠들썩했거니와 그 풍문은 한국에도 일찌감치 알려졌다. 정작 그들의 주요 저작은 제대로 소개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2004년 이후에는 ‘왜 그들의 저작이 번역되지 않는지 의아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 사이 젊은 연구자가 알아서 번역 작업에 착수해 그 내용이 사이버 공간에 돌아다니기도 했다. 늦었지만 거세다.



올해 쏟아져 나올 두 철학자의 번역물은 줄잡아 10여 편에 이른다. 먼저 선을 보인 것은 자크 랑시에르의 저작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인간사랑 펴냄)를 비롯해 <감성의 분할>(도서출판b 펴냄)이 출간되었다. 조르조 아감벤의 저작 <호모 사케르> 1권(새물결 펴냄)도 첫 테이프를 끊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를 통해 한국에 첫 발을 디딘 랑시에르는, 반목의 철학자 혹은 불화하는 철학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평등의 옹호자로도 알려졌다. 기회의 평등이 아니다. 오히려 기회의 평등이란 무한경쟁과 그로 인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가 될 뿐이라는, 근본 태도를 취한다.



근대국가의 폭력 혹은 무능력에 대한 성찰
랑시에르는 1970년대에 일찍이 자신의 스승인 알튀세르를 ‘기성 엘리트 권력의 옹호자’라고 비판하면서 떠들썩하게 절연했고, 이후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은 채 활발한 저작 활동을 벌였다. 그는 끊임없이 정치와 철학을 말하지만, 전통 의미의 정치철학자는 아니다. 오히려 기성의 정치철학이라는 학문 분야 자체를 품평 대상으로 삼는다고 평가받는다. 

이를테면 그는 사람들이 보통 ‘정치’라고 받아들이는, 분배에 관한 합의 절차가 사실 정치가 아닌 ‘치안(Police)’에 속하는 일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치안은, 협의의 질서 유지뿐 아니라 구성원에게 몫을 찾아주기 위해 사회가 행하는 모든 활동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그런 분배의 과정이란, 이미 분배받을 권리를 인정받은 사람이 자기 몫을 찾아가는 것일 따름이다. 분배 방식을 놓고 논란할 수 있겠지만, 누가 분배받을 자격이 있는가는 묻지 않는다.   

랑시에르가 보기에 본래 의미의 진짜 정치란, 기성의 관점에서 볼 때 공동체에 별반 기여한 것이 없어 자기 몫을 주장할 수 없는 자들이 ‘뻔뻔스럽게도’ 평등주의 논리에 입각해 자기 몫을 주장할 때 발생한다. 몫이 없는 자들이 자기 존재를 인정받아 공동체를 완전히 새로운 원리에 따라 재구성하도록 강제하는 ‘범법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민주주의라는 것 자체가 기득권자에게는 불온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등장했음을 환기시킨다. 데모크라시의 어원인 데모스, 즉 평민이 귀족 정치인이나 과두 독재자와 동등한 자격을 요구하고 나선 과정을 보라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의 데모스로부터 폴란드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배제된 자들이 통치하는 엘리트에 항의했을 때, 그들은 단지 임금 인상이나 작업 조건 따위 드러난 요구뿐 아니라 동등한 상대자로 인정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것이 진정한 목표였다고 말한다. 달리 보자면 폴란드의 기성 지배층인 노멘클라투라가 자유노조(솔리데리티)를 동등한 상대자로 받아들여야 했던 그 순간 지배층은 이미 패배했다고 본다. 

그가 현대 사회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정체적 주체로 인정받은 노동계급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미 발언권을 얻은 노동자 외에도 정당하게 자신을 대변하지 못하는 다양한 특수집단, 사회에서 배제되어 있으나 자기들의 곤경을 정치화하는 데 더더욱 가로막혀 있는 ‘이주자’ 등에게 눈을 돌린다. 그들이 말을 해도, 사회는 그 말을 듣지 못한다. 혹은 듣지 않는다. 목소리가 없는 자인 것이다.



한 사회에서 말할 공간이 없으므로 지워진 것으로 간주되는 ‘배제된 자’에 관한 랑시에르의  관심은,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호모 사케르(Homo Sacaer)’라는 개념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호모 사케르는, 직역하면 성스러운 자이지만 현실에서는 불결한 것으로 간주되는 자이다. 로마법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희생양(제물)로 삼을 수 없지만, 그를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아감벤에 따르면 그들은 희생 제의의 제물이 될 수 없고, 반대로 누군가 그들을 죽여도 그 행위는 처벌받지 않는다. 체제가 체제 바깥으로 밀어낸 자인 셈이다.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은 이미 ‘미등록’ 이주 노동자, 흔히 불법 체류자로 불리는 이들의 처지를 환기시키면서 이 개념을 원용하곤 했다. 수유+너머 고병권 연구위원은 “미등록 이주 노동자야말로 한국 사회의 호모 사케르다”라고 지적한다.  산업적으로 엄연히 의미 있는 존재인 이들이, 정치 사회적 신분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법 체류자에게는 고용주가 임금을 체불하고 폭행을 일삼아도, 가해자는 별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가 출입국관리소에 넘겨질 뿐이다. 고씨는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라는 예외 존재가 권력의 정상 작동을 폭로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의 예외적 존재인 미등록 이주 노동자 역시 우리 사회의 정상성이 무엇인지를 폭로한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바로 우리 얼굴, 우리의 야만이다”라고 지적한다. 

<문학과 사회> 편집위원인 김태환은 ‘푸코가 법의 형식 속에서 작동하는 억압 권력의 기제를 밝혀내려 했다면 아감벤은 법이 그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 어떤 예외적 상태에 주목하고, 그 속에서 권력의 본질을 포착하려고 했다’고 분석했다(<문학과 사회> 2004년 가을호, 김태환, ‘예외성의 철학-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통치권력과 벌거숭이 삶>’).

"아우슈비츠를 절대악의 자리로 밀쳐내지 마라"
김씨의 분석대로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즉 ‘벌거벗은 생명’이란 표면 말뜻과 달리 진정한 자연 상태의 인간이 아니라 근대 주권자가 만들어낸 존재이다. 둘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아감벤은 독일의 법철학자 카를 슈미트의 주권 개념에 줄을 댄다. 카를 슈미트에 따르면 주권자는, 법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예외 상태, 즉 비상상태를 선포할 수 있는 자이다. 이런 카를 슈미트의 테제는, 아감벤에 이르러 주권은 누가 호모 사케르인지를 결정할 만한 권력이라는 것으로 변주된다. 보호받아야 할 보편 삶과 그렇지 않은 예외 삶 사이의 경계를 정하는 것, 그것이 주권이라는 것이다. 김태환씨는 아감벤에게 기대어 이렇게 의미를 확장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주권자에게 사람들은 모두 ‘호모 사케르’이고, 호모 사케르로 낙인찍혀 공동체에서 추방당한 사람에게는 모든 타인이 주권자이다.”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을 끄집어낼 때, 아감벤의 포부는 야심차다. 그는 푸코를 언급하면서 병원과 감옥의 ‘대감금’의 재구성에서 시작된 푸코의 연구가 수용소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가지 않았는지 의아해한다.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한나 아렌트에 관해서는 통찰력 있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생명 정치의 관점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고 꼬집는다. 그는 “두 사람의 관점을 벌거벗은 생명, 즉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을 통해 결합시켜보겠다”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아감벤의 질문은, 유럽에 많은 불편함을 야기했다. 이를테면 그는 ‘20세기에 의회 민주주의 국가가 그토록 신속하게 전체주의 국가로 변모하고, 또 전체주의 나라가 오늘날 거의 아무런 단절도 없이 신속하게 다시 의회민주주의 국가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또 세르비아의 인종 청소에서 볼 수 있듯이 옛 공산권 국가의 지배계급이 가장 극단의 인종 차별주의자로 전락하거나 유럽에서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이 재생한 현상에 착목하고 그 이유를 분석하는 데 골몰한다. 현대 사회에서 입 달린 이들은 누구나 전체주의에 혐오감을 표시하는데 사실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기이한 인접성을 갖는다는 암시인 셈이다. 

그에게 난민과 수용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범법자와 감옥이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근대 국가의 정체를 드러내는 존재라고 본다. 우선 그는 1789년 인권선언문의 성격을 분석한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라는 제목을 단 인권선언은 ‘인간은 자유롭게, 그리고 권리에서 평등하게 태어나고 존재한다’고 선포한다. 출생 그 자체가 권리의 원천이자 담지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한 인간이 갖는 권리는, 오로지 특정 국가 시민의 권리 속에서만 보전된다. 그런 경향은 점점 더 강화된다. 국적을 잃은, 시민권 없는 이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생각해보면 그 괴리가 극명하다. 이제 인권은, 국민으로서 혹은 시민으로서 권리가 온전하지 않은 자를 위해서만 불려나온다. 아감벤이 난민, 즉 시민이 아닌 자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까닭도 바로 그것이다. 아감벤은 난민은 인간과 시민, 즉 출생과 국적 간의 연속성을 깨뜨림으로써 근대 주권의 근원적 허구성을 드러낸다고 본다.

유럽에서 이런 상황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적나라해졌다. 난민과 무국적자가 급증하면서 많은 유럽 국가는 앞다투어 국적 박탈과 귀화 철회를 가능케 하는 법령을 도입했다. 한 국가가 보호할 인간, 즉 시민과 시민 아닌 자의 경계를 명확히 하려는 시도였던 셈이다. 1915년 프랑스에 이어, 벨기에는 전쟁 기간에 반국가 행위를 저지른 시민의 귀화를 철회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 정점은 사람을 완전한 권리를 보유한 시민과 2등 시민으로 구분한 독일의 뉘른베르크 법이다. 시민권의 전제로서 의미를 가졌던 인권은 점점 시민권과 분리되었다. 이제 국제기구와 개별 국가는 ‘인간의 신성불가침한 권리’를 엄숙히 선언하곤 하지만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지극히 무능하다.

아감벤은 수용소와 관련해서도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한다. ‘어떻게 이토록 잔인한 범죄들이 인류를 대상으로 자행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은 위선적이라는 것. 누구든 수용소에 오는 사람은 합법과 불법이 구별되지 않는 지역으로 들어서는 것이고, 그곳에서 개인의 권리나 법적 보호라는 개념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떻게 모든 법이 멈추는 곳, 그런 장소와 제도를 만드는 것이 가능했나’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말한다. “수용소에서 잔혹한 일이 벌어질 것인지 아닌지는 그 시점에 주권자로 행세하는 경찰의 예의바름과 윤리 감각에 전적으로 달렸다.”



지난 2004년 전세계 사람은 아부그래이브 수용소에서 이라크인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우연히 폭로된 사진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 사태에 관한 미국의 태도도 목도했다. 럼스펠드는, 약간 유감을 표했으나 테러와의 전쟁, 혹은 악의 제거라는 명분으로 인권 유린을 정당화했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첫 권이 쓰여진 것은 1995년. 아부그래이브의 참상이 벌어진 것은 그 이후이지만, 아감벤의 지적은 마치 그런 사태를 예견한 것처럼 존재감을 갖게 되었다.  

아감벤은 역사 속에 존재했던 숱한 수용소를 통해 그런 통찰에 도달한다. 이를테면 1991년 이탈리아 경찰이 알바니아 불법 이민자를 본국으로 송환하기 전에 임시로 수용했던 바리의 축구 경기장, 바이마르 정부가 동유럽 출신 유대인 피난민을 집결시켰던 코트부르-질로프의 외국인 집단 수용소, 심지어 프랑스의 국제 공항 내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를 희망하는 외국인을 억류하는 곳인 대기 구역 또한 수용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외국인 보호소라는 이름의 감금 시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상기해보면 그 의미가 명확해질 것이다.



수용소의 가장 극단 형태는 아우슈비츠였다. 그런데 아감벤은 그에 대해서도 불편한 발언을 해댄다. 아우슈비츠를 절대 악의 자리로 밀쳐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 아감벤은 유대인 학살에 대해 홀로코스트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희생 제의적 아우라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무책임한 일이라고 꼬집는다. ‘나치 치하의 유대인은, 호모 사케르의 명백한 사례이다. 희생자 본인들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희생 제의라는 베일로 가리지 말아야 하는 진실은, 유대인은 광기 어린 거대한 홀로코스트 속에서 말살된 것이 아니라, 히틀러가 직접 언급했듯이 마치 ‘머릿니’처럼, 달리 말해 벌거벗는 생명으로서 말살되었다는 점이다’(<호모 사케르> 231쪽).

이에 대해 김태환은 ‘나치라는 절대 악과 서구 민주주의 체제 사이에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아감벤의 태도가, 특히 나치 문제에 민감한 독일에서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한다. 아감벤은 첫 권에서 이미 독일의 수용소가 나치 체제 전에 세워졌음을 지적했다. 또  악명 높은 생체실험은 나치 체제뿐 아니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판사 구실을 했던) 미국에서도 사형수와 장기수 등을 대상으로 버젓이 행해졌음을 환기시킨다.(노순동기자) 



시사인(08. 03. 04) "푸코는 법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팡테옹 뒤편에 있는 조르조 교수의 집을 찾아 내 손에는 마침 2007년 말월에 출간된 아감벤 교수의 <왕국과 영광>에 대한 안토니오 네그리의 서평이 실린 서평지가 들려 있었다. 대화는 서평을 실마리 삼아 시작되었다.

당신은 네그리와 함께 지금 세계 지성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논의되고 있다. 관계를 물어도 되는가.
네그리와 나는, 아주 가까운 친구이다. 하지만 사상적 입장은 전혀 다르다. 나는 네그리가 말하는 자본주의라는 것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와 관련된 네그리 이야기 중 내가 가장 공감하는 테제는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핵심이다’라는 말 정도이다. 내 생각의 수용과 관련해 최근 참으로 재미있는 일을 여럿 겪었다. 어제는 독일의 한 프란체스코회 수사가 찾아왔는데, 벤야민과 나의 종말론에 관한 빼어난 논문으로 박사 논문을 완성했더라. 물론 이곳 프랑스에서는 나를 전혀 다른 맥락에서 보지만.

<호모 사케르>를 읽다 보면 푸코와 관련해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데, 독일어본을 보면 당신이 푸코에 대해 조금 비판스러운 태도를 갖는 듯 보이는 반면, 영어본에서는 푸코의 말기 사상의 흐름에 속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판적이라…. 전혀 그렇지 않다. 번역본들이 여러 모로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점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nuda vita’(벌거벗은 생명)를 영어본은 ‘naked life’ 또는 ‘bare life’로 옮기고 있는데, 전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벤야민도 쓰고 있듯이) ‘mere life’에 가깝다. 푸코의 경우 어떤 푸코냐가 문제일 텐데, 적어도 푸코가 ‘법’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말년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연할 때의 푸코는 이 문제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기도 했다. 그가 통치와 주권을 이야기하면서 법 또는 법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까닭은 반드시 밝혀야 할 핵심 과제이다.

당신의 사상의 형성에 있어서는 하이데거와 벤야민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두 사람은 분명히 대학 시절부터 서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이력을 대조해보면 명확하다. 물론 하이데거는 강사 신분이고 벤야민은 운동권의 팸플릿을 돌리고 있었겠지만 말이다. 하이데거 선생께 직접 여쭈어봤더니 ‘기억이 없다’고 대답했지만 강한 부정은 아니었다. 하이데거 선생은 카프카에 대해서도 똑같은 태도를 보였는데, 나중에 아렌트 말로는 자기가 카프카 책을 잔뜩 갖다 드렸으니 분명히 읽었을 것이라고 하더라(웃음).



2001년의 9.11 테러와 함께 서구 지성계에서 급부상한 사상가를 두 명 꼽으라면 단연 ‘제국’과 ‘다중’이라는 다분히 논쟁적인 개념을 제시한 안토니오 네그리와 ‘호모 사케르’라는 독특한 정치철학 개념을 제출한 조르조 아감벤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두 사상가 모두 이전부터 활발히 저작을 발표해오고 있었으나 9?11테러는 ‘잠에서 깨보니 유명해져 있더라’라는 바이런의 말처럼 두 사람을 일약 서구 지성계의 신데렐라로 등장시켰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 두 사상가가 모두 미국이라는 자본의 제국,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사상의 제국과는 전혀 거리가 멀면서도 두 제국의 중심 자장에 놓인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 두 사상가는 ‘제헌 권력’ ‘생명 정치’ 따위 몇 가지 핵심 개념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일부 좌파는 두 사람을 한데 묶어 좌파적 상상력의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려 하지만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것은 그러한 개념어일 뿐 그들이 각자 개념에 부여하는 위상학적 위치는 180도 다르다. 왜냐하면 네그리가 여전히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새로운 주체(‘다중’)의 창출이라는 좌파 정치학의 틀 안에 있다면, 아감벤은 근본적으로는 하이데거에 대한 정치 독해를 축으로 벤야민과 독일의 문제적 법철학자인 슈미트에 대한 비판 독해를 개념적 성좌로 갖기 때문이다.



<호모 사케르> 1권의 제목인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에서 그러한 영향사를 직감할 수 있다. ‘주권’에 관해서라면 아무래도 칼 슈미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며, 생명과 이어지는 ‘권력’ 문제라면 1970년대 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한 푸코의 말년 강의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벌거벗은 생명’ 하면 신칸트 학파의 헤르만 코헨으로부터 시작해 존재(Sein)와 단순한 존재자들(Seiende)을 대립시키는 하이데거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영향사는 아감벤의 개인 이력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기도 하다.

그는 프랑스의 노동자이자 철학자인 시몬 베유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했으나 그가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은 독일 법철학이었다. 그는 모라비아 같은 전위적 문학 서클과 교류하는 한편 파솔리니의 영화에 사도 빌립보로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이어 벤야민을 발견하게 된 그는 그 유명한 이탈리아 벤야민 전집 편집자로 일을 하지만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그가 찾아낸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원고 편집 문제와 관련된 격렬한 논쟁 뒤에 출판사와 결별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편집상 문제만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발굴한 원고 그대로 편집하게 된다면 벤야민은 (아도르노를 중심으로 한) 프랑크푸르트 학파(그리고 유대적 해석을 대표하는 친구 숄렘)와 결별하고 (슈미트와 칸토로비츠가 대변하는) ‘정치 신학적 흐름’으로 편입될 일대 지성사적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프랑크푸르트 학파도 좌파 해석가들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이데거에서 출발한 다채로운 지적 횡단
하지만 그의 이처럼 다채로운 지적 횡단 중에서도 가장 이채롭고 결정적인 것은 하이데거와의 만남이었다. 1966~1969년 하이데거가 프랑스 남부의 한 수도원에서 은거한 채 동학 10명과 함께 헤겔과 헤라클레이토스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연 것은 이미 전설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는 이 세미나 명단에서 아감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아감벤의 가장 빼어난 저서로 꼽히는 소책자로, 그의 전체 개념틀 또는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언어와 죽음>은 바로 이 세미나 경험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했다.

이런 의미에서 연구 공동체인 ‘수유 너머’의 하이데거 세미나 안내문 중 하이데거의 영향 면에서 “아감벤이 부분적이라면, 아감벤이 크게 기대는 아렌트는 전면적으로 하이데거에 기대고 있으며”라는 부분은 정확히 정반대로 읽어야 할 것이다. 즉 아감벤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하이데거 해석자이며, 동시에 아렌트의 정치철학에 맞선다고 말이다. 이는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이탈리아어 ‘nuda vita’가 ‘vita activa’라는 아렌트의 핵심 개념을 풍자적으로 겨냥한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푸코는 ‘대감금’을 이야기하지만 20세기 수용소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탐구하지만 막상 ‘정치철학’을 결여하고 있다는 그의 진단에서도 확인된다.

아마 이러한 의미에서 그를 20세기 사상사의 살아 있는 화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정치-생명-권력’이라는 삼각형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철학을 구축하는 아감벤의 작업에 전세계 지성의 관심이 모이는 것은,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가 일상화한 테러로 대체되고 생명이 정치 권력과 과학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21세기의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조형준_새물결출판사 편집주간)

08. 03. 06.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oco 2008-03-07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슈비츠와 굴락이 절대악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어지면 지젝의 전체주의론과는 다른 결론이 나오겠군요. 그리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배제의 문제를 시공을 초월하여 동질적인 것으로 다루는 아감벤의 비역사성엔 뭔가 이론적 안이함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로쟈 2008-03-07 17:06   좋아요 0 | URL
네 그런 비판도 듣는 듯합니다. 자세한 건 읽어봐야 알겠습니다...

Ritournelle 2008-03-0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는 아감벤의 것이 아니라 랑시에르의 것이 아닐까요?

로쟈 2008-03-07 17:0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기사의 오류네요...

람혼 2008-03-07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랑시에르와 아감벤에 대해 깔끔하고 수려하게 정리한 좋은 기사로군요. 이렇게 갈무리해주시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습니다.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출간 예정인 저 모든 책들이 좋은 국역본의 모습으로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그나저나 전 최근에, 예전에 속독(速讀)으로 일독하고 제쳐두었던 불어본 한 권을 시간을 쪼개서 다시 정독하고 있는 중인데요, 아마도 예정에 없던 국역본을 한 권 따로 구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두 작품의 작곡을 동시에 진행 중인 '조금' 바쁜 상황이기는 하지만, 꼼꼼한 비교 독해를 한 번 수행해야 할 것 같아서요. 최근 로쟈님의 개인적인 리스트에는 어떤 [수많은^^;] 책들이 속해 있을까 궁금합니다. 여담이지만, 개강의 열기(?)가 찾아온 캠퍼스의 봄은 어떤 분위기일까, 슬며시 궁금해지기도 한답니다.^^

로쟈 2008-03-07 23:51   좋아요 0 | URL
'예정에 없던 국역본'이 '그 책'인가요?^^; 캠퍼스의 봄은 아직 완연하다고는 볼 수 없고요, 첫주가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몇몇 학생들이 눈빛이 그래도 노곤해지려는 강의에 채찍이 돼 주지요.^^

sommer 2008-03-08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이론적 탁월함은 그의 방법론 즉, '어원론적 추적'-벤야민과 하이데거가 동일하게 공유하면서도 서로 어긋나는 부분이겠지요-에 있지 않을까 싶네요. 호모 사케르, 오이코노미아 등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지요.

로쟈 2008-03-08 09:2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호모 사케르>의 초장에 나오는 '어원론적 추적'은 1급 철학자의 파워를 여실히 보여주죠...

마늘빵 2008-03-08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시사인 보면서 저걸 읽었는데, 첫번째 든 생각은, 아 시사잡지에 이런 내용을 담아도 될까, 였고, 또 하나는, 아 아감벤 확 끌린다 였습니다. :) 아감벤은 전 사실 모르고 있던 사람인데, 내용을 읽어보고는 저랑 코드가 확 맞아버렸어요. 아렌트도 아직 못 읽었는데 아감벤까지. -_- 두 사람 다 확 끌려버리는데, 기사 중엔 아렌트와 아감벤을 놓고 서로 다른 견해가 등장하기도 하더라고요. 재밌었어요.

로쟈 2008-03-08 09:27   좋아요 0 | URL
저도 뜻밖의 특집으로 읽었습니다. 우리의 '시사' 수준을 좀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