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다른 일을 할 때, 그 회사의 오너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좋게 말해 대단한 것이지 “꼼수대마왕”이라는 명칭이 전혀 부럽지 않은 존재였다. 각종 공과금은 끊임없이 연체 중이었고 오죽하면 한전에서 직접 방문하여 지정 일자까지 미납금을 내지 않을 경우 부득이하게 전기를 끊을 수밖에 없다는 통보가 내려져도 1시간여를 남기고 입금을 하곤 했었다. 이러한 사항은 끊임없이 반복되곤 했다. 어쩌다 밥이라도 같이 먹는 시간에선 이러한 공과금을 비롯한 남에게 빌린 자본에 대해선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이상한 신념으로 들어찬 속내를 내비치곤 했다. 종국엔 법적으로 문제가 들이닥치고 나서 그때 줘도 된다는 마인드도 겸비하고 있었다. 물론 직원들 월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불경기의 여파로 자본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서라는 원인도 있을까 싶었지만 과거 업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도 이러한 일이 일상다반사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애당초 사람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 같다는 판단이 서버렸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에서 종종 목격하곤 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이용가치가 떨어졌다고 느껴지는 순간, 씹던 껌 뱉듯 인간관계를 청산하곤 하는 사람. 완벽한 소시오 패스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간들의 특징이라고 단언할 수도 있어 보인다. 흔히들 욕하면서 본다는 TV속 드라마의 막장 시추에이션 역시 이러한 인물은 필수다. 상욕을 처먹는 극악의 캐릭터가 있기에 평범한 주인공이 반동적 성격으로 돋보이곤 하니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사족이 겁나 길어졌다. 단지 나는 1987년 옵니버스 애니메이션 “미궁물어”중 두 번째 에피소드인 “달리는 남자”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리하여 지금부턴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오래된 이 만화영화에 대해 몇 가지 말해보려고 한다.

 

미궁 이야기 (迷宮物語 ラビリンス: Neo-Tokyo, 1987)

 

  1987년이라면 지금처럼 화려한 CG로 떡칠을 한 애니메이션은 존재하지 않았을 때이다.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 한 픽셀씩 그려나가며 하나하나 완성을 하는 수동화된 시대였다. 예술이라 치부하기엔 지나친 노가다 성향이 지배적이 었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에게 “거장”의 명칭을 붙여도 이견이 없는 감독들의 범상치 않은 단편 작품이라 칭할 수 있는 것이 이 "미궁물어"라 보고 싶다.

 

  3편으로 구성된 작품이며 각각의 에피소드는 린타로, 가와지리 요시아키, 오토모 가츠히로란 3명의 감독들이 상업적인 목적을 다소 배제시키고 감독중심적인 생각을 가득 찬 내용을 담고 있다. (린타로 : 은하철도 999 시리즈, 캡틴하록, 메트로폴리스 가와지리 요시아키 : 요수도시, 마계도시, 수병위인풍첩(무사 쥬베이) 오토모 가츠히로 : 아키라)

 

  그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2번째 에피소드 가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의 “달리는 남자 (走 の男)”는 앞서 말했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취했던 회사 오너를 떠오르게 해준다. 대략적인 스토리는 주인공은 근 미래 배경의 카레이싱에서 우승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레이서 “잭 휴”라는 인물의 몰락을 짧은 시간에 보여 준다.

 

 

지정된 룰을 지키며 우승을 위해 제일 먼저 결승점에 도달하는 인물에게 관객은 환호와 갈채를 보내지만, 어느 누구도 결승점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공작과 꼼수를 부리는 인물에게 어떤 영광과 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만족만 있을 뿐.

 

 자아가 붕괴되며 결국 몰락해버리는 레이서 “잭 휴”와 얼마 전 들은 소식에 의하면 결국 채무 독촉과 각종 불법, 편법의 들통으로 인해 동남아 도주를 계획 중이라는 그 오너의 결말이 묘하게 오버랩이 돼버린다.

 

암튼 15분이 채 되지 않는 단편 애니메이션에 지나치리만큼 사족이 길었다. 이제 시청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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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1-27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 에니메이션을 TV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KBS에선가 방영했던것 같더군요.
메피님이 말씀하신 그 회사의 오너는 아마 부자아빠 책을 본 모양입니다.제 기억에 그 책속에 나오는 부자아빠가 말씀하신것처럼 세금같은 것은 제일 마지막으로 낸다고 하다군요ㅡ.ㅡ

Mephistopheles 2013-01-28 12:25   좋아요 0 | URL
그런 책이 불티나게 팔렸다는 것 자체가..우리나라 도서인구의 현실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지요. 그 양반 파산했다는데..(계획적 파산이란 이야기가 지배적이지만..)

마녀고양이 2013-01-2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는 건 좋은데, 잘 달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멈춰서서 주위도 살펴주면 좋을텐데 말이죠. ^^

메피님, 가끔 뵐 수 있어 참 좋네요, 다른 일 잠시 하실 때 힘드신거 같았는데
요즘 글은 훨 편안하네요, 다행이예요. 평온한 한주되셔요.

Mephistopheles 2013-01-28 12:27   좋아요 0 | URL
빠르게 달려나가는만큼 흘리는게 분명 있겠죠. 그걸 감수할 자신이 있다면 전력질주해야 하는 거고요.^^

몸이 힘들기 이전에 마음이 힘들더군요. 그 기간동안 좋은 공부했고요..^^
 

 

어느 날인가 TV를 보며 킥킥킥 거리는 주니어를 발견. 대체 저 녀석이 뭘 보면서 저리 웃는지 궁금해짐. 킥킥거리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닌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름. 뭘까 시청하는 것이....이미 짱구는 시청금지령을 내렸고..(이유는 주니어의 기막힌 짱구성대묘사) 혹시라도 봐선 안 될 걸 봤단 말인가. 검문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들..뭘 보고 그리 웃나...

 

어, 아빠도 봐봐 엄청 웃겨 이거...

 

안 웃기고 이상하면 이것도 짱구와 같은 취급을 받으리라. 다짐하고 같은 자세로 시청 시작.....1분 후. 킥.....2분 후. 킥킥... 3분 후...푸하하하하....

 

아는 분은 알고 모르는 분은 모르는 꽤나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CG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노는 게 젤 좋고 아름답기만 한 세상을 보여주는 뽀로로 보다는 연령층을 조금 더 상향 조정했고, 내용은 결코 순박(?)하기만 한 아이들의 세상을 보여주진 않고, 표현기교는 조금은 덤엔더머 식이며...이러쿵저러쿵..

 

 

단언하건데 이걸 만든 사람들은 덕후까지는 아니더라도 준덕후쯤 되는 것 같다. 에피소드마다 깨알 같은 패러디와 표현기교가 난무하니까. 덕후들이 성장하여 회사를 차려 성공한 사례는 옆 나라 일본의 가이낙스(건 버스터 톱을 노려라, 에반게리온, 그렌라간 제작)라는 제작사의 실적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아마도 “라바”를 만든 투바엔터테이먼트의 구성원들 성향은 가이낙스와 비스무리하지 않을까. 라바를 보면 왠지 오덕후들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뱀꼬리 : 이거슨 어쩌면 아마도 확실하게도................

 

 

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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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3-01-23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이거 버스 안에서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서울 버스는 라바 안보여주나요?)

Mephistopheles 2013-01-23 18:58   좋아요 0 | URL
서울버스를 안 타본지 꽤 오래되다 보니 확인 불가능입니다..^^ 경기버스는 틀어주긴 하는데 같은 편을 계속 무한반복하더라고요,

paviana 2013-01-2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집 엘리베이터에서 보곤 해요. 저 그래도 정신연령이 좀 높아서 보고 웃지는 않아요.ㅋㅋ

Mephistopheles 2013-01-23 19:02   좋아요 0 | URL
왠지 그 좀이라는 간극이 파워레인저와 백터맨의 차이 정도일지도 모릅니다..ㅋㅋ

스파피필름 2013-01-2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웃고 갑니다. ㅠㅠ 거미줄로 음악연주요.. 전 이 수준인가봐요..

Mephistopheles 2013-01-23 19:02   좋아요 0 | URL
ㅋㅋㅋ 같은 수준입니다 저도. 이거 말로 유튜브 뒤지면 가지가지 에피소드 나오는데 제법 재미있습니다.

조선인 2013-01-23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뒷북... 옆지기와 해람이도 딱 라바에 꽂힌 지 오래 오래.

Mephistopheles 2013-01-23 19:03   좋아요 0 | URL
혹시 둘이 나란히 앉아서 오프닝과 엔딩곡을 엉덩이 들썩거리며 흥얼흥얼 따라하지 않던가요. 그게 아니면 아직 덜 꽂힌거에요..ㅋㅋ

비연 2013-01-23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라바 엄청 좋아요..ㅎㅎㅎㅎ

Mephistopheles 2013-01-23 19:03   좋아요 0 | URL
2기도 나왔다더군요. 하수구 친구들 말고 지상 친구들이 몇몇 가세했다던데..

맥거핀 2013-01-23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조카도 근엄한 녀석인데, 이걸 보고 껄껄 웃고 있길래 가서 물어봤죠. 라바가 얘 이름이니? 그랬더니 라바가 영어로 애벌레잖아, 그것도 몰라?,해서 망신을..

Mephistopheles 2013-01-23 19:04   좋아요 0 | URL
아 근엄한 조카가 정색을 하고 지적을 했다면 보통 망신보다 쪼금 더 데미지가 컸을 것 같습니다..요즘 애들이 면박주는 거 은근 상처 받는데...ㅎㅎ

잘잘라 2013-01-23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재밌어요. 재밌어요. 거미줄로 기타, 바이올린(? 첼론가요? ㅡㅡ;), 해금(? 아쟁?.. 거문고?... 다시 들어봐도 모르겠어요. OTL..) 아무튼. 라바! 저는 님 덕분에 처음 알았어요. 라바! 이것도 장바구니로~~~ 뒷북에 또 뒷북이라 해도! ^___^

Mephistopheles 2013-01-23 19:05   좋아요 0 | URL
사실 책은 부수적인 것이고 유튜브 뒤져보시면 별별 에피소드가 많이 나옵니다. 영화 "아바타"를 패러디한 "라바타"도 존재한다는...ㅋㅋ

saint236 2013-01-23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주니어들도 이걸 보고 웃습니다. 그리고 매일 라바놀이를 하는데 솔직하게...라바...재미있습니다.

Mephistopheles 2013-01-23 19:05   좋아요 0 | URL
갑자기 라바놀이가 급 궁긍해지네요. 손도 발도 없이 혀로 모든걸 하는 쟤네들을 표한하면서 어떤 놀이를 하는건지..?

saint236 2013-01-24 12:48   좋아요 0 | URL
윗옷 속으로 다리를 다 집어 넣고 기거나 뒹굴뒹굴 굴러서 갑니다. 그리고 누워서 자기 전에는 "잘 자라. 내 아들" 노래를 불러 주지요...^^

Mephistopheles 2013-01-24 13:10   좋아요 0 | URL
아 전 왜 세인트님이 블랙(장수풍뎅이)역활이 아닐까도 생각해봤습니다..ㅋㅋ

심야책방 2013-01-2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데 은근 잔인해요. ㅋㅋㅋ 그래도 버스에서 틀어주면 시선을 떼지 못한다는...

Mephistopheles 2013-01-24 10:40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대사는 없고 모든 표현이 바디랭귀지로 대사(?)를 쳐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과격한 설(혀) 포퍼먼스가 난무하긴 합니다..^^

레와 2013-01-2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봤어요! 궁금해요 궁금해.
점심시간에 볼게요. 얼른 시간이 가야 할텐데. 그래야 보쓰도 출타하시고..ㅋㅋ

Mephistopheles 2013-01-24 10:40   좋아요 0 | URL
아마...점심시간에 다 못보실지도 몰라요. 에피소드가 제법 많거든요..^^

마노아 2013-01-2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봤어요. 손석희 방송 틀어놓고 있었는데 손석희 목소리가 묻히네요. 중독성 있어요.^^

Mephistopheles 2013-01-24 13:18   좋아요 0 | URL
음 대단하군요. 손석희 교수님까지 압도하다니...^^

실비 2013-01-24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라 소리없이 잠깐 봤는데 소리까지 들으면 잼 있을거같아욤 ^^
집에가서 봐야지 ㅎㅎ
오랜만이네요 잘지내셨지요? ^^

Mephistopheles 2013-01-25 23:32   좋아요 0 | URL
네 저야 아주 신나는(?)롤러코스트를 타다 내려와서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지만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라바는 "감칠맛"나는 효과음이 압권입니다. 꼭 볼륨 키워서 유튜브 뒤져서 봐보세요..^^

같은하늘 2013-01-25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 뒷북 맞아요. 메피님 서재에 처음 댓글 달면서 이런말을... 죄송~~^^
저희 아이 버스에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눈을 못뗀지 오래입니다.
도서관 가서 책까지 빌려보고, 하도봐서 이젠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도 다 알아요. -.-;;
인형까지 선물받아 가방에 달고 다녔는데 깜찍하니 이쁘더라구요. ㅋㅋㅋ

Mephistopheles 2013-01-26 13:18   좋아요 0 | URL
워낙 유명한지라 많은 분들이 아실꺼라 생각은 했습니다.(만 책만 좋아 하시는 책바보님들이 많은 이 동네는 그래도 덜 알려졌을꺼라 생각했는데 맞는 것 같더군요..ㅋㅋ)

실비 2013-01-2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이거
집에가서 봤는데 너무 웃긴거 있죠?
소리 안듣고 영상으로 보기엔 도데체 무슨상황인데 저럴까 했는데
역시 음악과 들으니 잼있더라구여~ㅎ

Mephistopheles 2013-01-28 12:27   좋아요 0 | URL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거말고 다른 에피스도 꽤 많습니다. 빙산의 일각이다 보니 한번 보기 시작하면 묘한 중독성으로 다시 찾게 됩니다..^^
 

 

일단 과다한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다. 피가 철철 흐르고 살점이 후드득 떨어져나가는 건 기본이다. 약물도 나온다. 약 빨고 해롱해롱 거리는 인간들이 제법 나온다. 고매하신 나라님들이 판단할 때 이 영화는 확실한 쓰레기다. 어디 그뿐인가. 원작의 훼손이 지나치리만큼 심하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원작의 캐릭터만 빌려온 스핀오프 성격을 가진 영화이다 보니 이런 비난은 받아도 쌀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원작을 답습한 스테로이드의 결정체인 스텔론 아저씨 주연의 “저지 드레드”가 명작이란 건 아니다.

 

 그래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이 영화의 미덕을 몇 가지 이야기해보자. 일단 여자 주인공이 예쁘다.(하악하악) 영화의 특성상 몸에 쫙 붙는 제복을 입고 나오는지라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닌 참으로 착한 몸매를 보여주신다. 그리고 아주 잠깐 상상씬에서 대역일지도 모르지만 정도의 노출이 존재한다.(만세!)

 

피갑칠 영화인데도 참 곱게도 나온다..

 

또 하나만 장점을 이야기해보자. 이건 순전히 불쌍한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 제목처럼 주인공의 이름은 “드레드” 앞에 저지(judge)는 직업이다. 이야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최고의 로얄 직업군으로 불릴 수 있는 판사 되시겠다. 그런데 이 주인공 참으로 애처롭다. 영화 내내 그가 내민 얼굴은 짙은 색으로 코팅한 전면유리가 장착된 화이바(헬멧)를 쓴 모습만 보여준다. 그러니까 명색이 주인공인데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생판 인지도가 없는 배우를 기용한 것도 아니다. 주연급은 아니더라도 조연급으로 여러 영화에서 인상 깊게 등장했던 “칼 어번”이란 배우가 연기했다. (레드에서 노장 브루스 아저씨에게 개기는 신참, 혹은 레슬러 더 락을 박살 내주시는 “둠”, 반지의 제왕에선 로한의 전사 에오메르, 리딕에선 대머리 벤 디젤의 전리품을 얌체같이 가로채려다 실패하는 바코) 단지 그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건 입 꼬리가 살짝 처지는 앙당 물은 한일자 입술과 코끝, 턱살이 전부다.

 

이 배우가 영화 내내........

 이렇게만 나온다....아아...

 

부실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사실 평가는 그저 그렇다가 대부분이다. 그냥 저냥 킬링타임용으로 딱 그만인 영화라는 것이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진리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설정이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미래 사회가 배경인 지구는 더 이상 판사가 법원에서 나무망치나 두들기진 않는다. 직접 출동하여 적법성을 따져 범죄자를 현장에서 즉결 처분해버린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배경은 근 미래인데 법 집행방식은 황금광 시대 아메리카 대륙의 서부와 똑같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 영화 거의 중간 넘어 등장하는 다른 저지들은 제법 흥미롭다. 강력한 드레드를 제거하기 위해 범죄자들이 선택한 것이 일명 “변절판사”라는 설정이다. 그들 역시 주인공과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으나 범죄자의 뇌물을 받으며 그들의 편의를 봐주는 일종의 부정한 법집행관으로 묘사된다.(물론 주인공에게 작살나지만.) 이건 머나먼 과거 서부까지 갈 것 없다. 연일 뉴스에 등장하시곤 했던 대한민국 사법부 법조계 몇몇 분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니까.

 

부정판사님들 등장하십니다...만 몇 분후 주인공에게 도륙 당함..

 

시청한지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다시금 떠오르는 이유가 꼭 어떤 고위 법조계 인물의 인사청문회 때문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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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3-01-22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지내셨지요,,새해 인사도 안드렸네요,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Mephistopheles 2013-01-22 17:37   좋아요 0 | URL
울보님도 잘 지내셨는지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세월 빠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류도 정말 많이 컸네요..^^

맥거핀 2013-01-2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영화 평은 괜찮던데요. 비평가들 평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고...원래 액션 영화는 예쁜 여주인공 보는 맛에..대체로 액션영화는 남자들이 봐서 그런지 몰라도 항상 착한 여조연이 등장하죠. 저는 항상 이 영화보면 '저질 드레드'라고 읽어요. 아..저질 저지는 따로 계시지.

Mephistopheles 2013-01-22 23:35   좋아요 0 | URL
전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사실 이런 류의 영화들이 스토리 부실은 어쩔 수 없는 사항이기 때문에 재꼈다 치더라도 촬영방식같은 건 나름 참신하더군요.^^ 에구...전 이 페이퍼 쓰면서 "저"지 드레드를 오타 내면서 ㅓ 옆의 자판을 치는 바람에 오타 수정하면서 미친X 처럼 혼자 웃었습니다.

마늘빵 2013-01-22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상영 중인 "잭 리처"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요. ^^ '내가 곧 법이다'까지는 아니지만.

Mephistopheles 2013-01-23 12:01   좋아요 0 | URL
영화 속 인물들이야 영화라는 테두리다 보니 그려려니 해도 "내가 곧 법이다."라 공공연히 떠들진 않아도 당당하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법조인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전체적인 인성검사 한번 해봐야 하는 건 아닐지..ㅋㅋ)

감은빛 2013-01-23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탤론 아저씨의 '저지 드레드'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내용은 같은지 다른지도 궁금하네요.

Mephistopheles 2013-01-23 19:08   좋아요 0 | URL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스텔론 아저씨는 음모에 빠져 누명을 벗는게 스토리인데 이건 다이하드 스타일이에요.

노이에자이트 2013-01-23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혈이 난무하는 영화에 여자주인공이라도 이뻐야지, 고릴라 같으면 그것도 이상하죠.

Mephistopheles 2013-01-23 19:09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 슬래셔 공포영화들의 여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풍만한 몸매와 미모를 자랑하긴 하네요. (다들 일찍 죽지만..)
 

 

 

엔딩노트 (エンディングノート, Ending Note, 2011)

 

 인생이 마라톤이라고 했던가. 단지 차이가 있다면 42.195Km라는 한정적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과 달리 인생의 종착점은 다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한발자욱을 채 내딛기도 전에 경기가 끝날 수도 있고 어느 누구는 42.195라는 체감적 거리를 넘어서 여전히 달리는 중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생은 마라톤 같다는 표현은 틀릴지도 모르겠다. 결승점이 제각각이고 그 결승점은 어느 누가 지정할 수도 없는 숙명 혹은 운명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

 

경우에 따라 틀린가 보다. 평생을 열심히 달란 남자 하나가 다른 누군가와는 다르게 결승점의 위치를 먼저 통고 받게 된다. 좋은 상황은 절대 아니다. 어쩌면 암울하고 어두운 불행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위암 4기의 말기 암. 수술은 이젠 불가능할 정도. 회복을 위해선 확률이 지극히 떨어지는 항암치료뿐이란다.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이 남자는 의외로 담담하다. 타인과 다르게 자신의 한정된 결승점을 항해 여태까지 그래왔듯 묵묵하게 페이스를 유지한다. 단지 틀린 점이 있다면 남아 있는 거리에서 뛰어왔던 거리를 정리하는 순서를 밟는다.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은 이렇게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천천히 정리해가는 순서를 그려가고 있다. 막내딸이 아버지의 남은 인생을 차근차근 기록한다. 냉정한 촬영자의 입장에서 살짝 벗어나 살갑게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도 나누며 그간 느끼지 못했을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첨가해가는 건 모든 이러한 류의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미덕중에 하나다.

 

기적이나 엄청난 반전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이란 결승점의 위치 역시 변하지 않는다. 이런 극적인 클라이맥스가 포함되지 않아도 이 다큐는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 올려주는 클라이맥스는 분명 존재한다. 무덤덤하게 보고 있던 나 역시. 병원 침대 위에서 쇠약해진 목소리를 끌어올려 조용히 옆에 앉아 있던 부인에게 힘겹게 건네는 “아이시테루(사랑해)” 한 마다만큼은 뱃속 깊숙이 뭔가를 욱하게 만들어줄 만큼 강력했었다.

 

태어나 세상을 살다 생을 마감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자연논리에 우린 절대로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운명이나 숙명 따윈 개척하기 나름이라지만 이런 자연논리 앞에선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아왔다와 잘 살아왔다가 엄연히 틀리듯. 얼마인지 모를 남아있는 삶을 개척해나가는 만큼이나 정리해 보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잘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모 영화 평론가의 말처럼 유행성 버킷리스트라 평가 절하할 필요성까진 못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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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3-01-2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영화도 있었군요. 전혀 모르는 영화지만, 엄청난 반전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에 아마도 그 한 마디가 강력한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예고편이 좋기는 한데, 굳이 저런 음악을 깔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Mephistopheles 2013-01-22 09:56   좋아요 0 | URL
그냥 어떤 남자가 혹은 어떤 아버지가 마지막 남은 생애를 바쁘게 살았다는 이유로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가족과 함께하는 1년여의 기록인 영화입니다. 그런데 슬프다기 보단 의외로 영화가 밝아요. 그리고 이 음악은 다큐 제일 마지막에 엔딩곡처럼 흘러나오는 일종의 닫는 노래의 역활을 합니다.^^ 시종일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진 않고요..^^(우리나라에선 나레이션을 배우 "한지민"씨가 했다고 하더라고요. 꽤 잘 어울렸을 듯.)

프레이야 2013-01-2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작년 연말에 봤는데 너무나 좋았어요.
슬프지만은 않은 벅차오름 같은 걸 느꼈어요. 눈물로 정화되는 느낌도 받구요.
웃다 울다 그랬지요.

Mephistopheles 2013-01-22 09:57   좋아요 0 | URL
전 이 다큐 다보고 나서 슬픈 감정보다,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행동과 마음가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더 살고 싶다고 버둥거리기보다 한정된 시간을 그리고 자신의 부재로 인해 일어날지도 모를 불편함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어요.

moonnight 2013-01-2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도 잘 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가끔 저의 마지막을 생각해보는데요.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조금만 끼치고(아예 안 끼칠 수는 없을테니;) 가고 싶단 게 제 소망이에요.

Mephistopheles 2013-01-22 17:44   좋아요 0 | URL
전 이 다큐를 보고 세상을 살건 일을 하건 무엇을 하건 간에 일을 시작하거나 벌려놓는 것 못지않게 정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방법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거야”

 

HBO의 미드 “뉴스룸” 중에 한 부분을 보고 혼자 묵직해지기 억울해서 한 번 올려봅니다. 짧은 영상이지만 내 속에 울림이 제법 크다보니  집에 쟁여 논 보드카 한 병에 안주 만들어서 지성 있는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상의 인물, 허구의 세계라는 드라마일지라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현 모습과 비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희생을 하고 가난과 싸우고 지성을 존중했던 시대. 그런 시대가 있었던가? 술 좀 마셔보면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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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3-01-09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신없이 봤어요. 이런 미드가 있었네요. 메피님 덕분에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술 한 잔 생각이 나네요. (오징어 튀김을 직접 만드셨어요? 또 한 번 깜짝 +_+;)

Mephistopheles 2013-01-10 12:48   좋아요 0 | URL
저 주인공이.....덤엔 더머에 나오는 "더머"라죠...^^ 오징어 튀김은 직접이 아니라 간접입니다..^^

moonnight 2013-01-10 17:37   좋아요 0 | URL
헉 맞네요. 어디서 많이 봤다 싶더니 +_+; 더머씨가 너무 달라지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