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 타임 - 렌티큘러 없음
앤드류 니콜 감독, 아만다 사이프리드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요즘 왔다갔다 길바닥에서 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음악만 듣기도 뭐하고 이러 저리 주파수를 돌리다 보니 알게 모르게 뉴스와 시사 관련 이야기를 스피커를 통해 많이도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주 들려오는 단어가 머릿속에 인이 박혀 버릴 지경이다.
양극화.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이 단어. 이젠 낯설지가 않다. 중산층의 붕괴로만 표현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우리나라 사회에 전반적으로 골고루 퍼진 이 끔찍한 단어를 영화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만나버리고 말았다. 장르는 SF. 그리고 등장하는 배우들은 젊고 아름다운 남녀. 적당한 킬링 타임과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어떤 호러 영화보다 무섭게 느껴진다.
원스 업 온 어 타임. 겁나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근 미래. 인간은 유전자 조작으로 25세로 노화가 멈춘다. 그래 외모지상주의에 불노불사에 전신성형까지 불사하는 요즘 시대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 무시무시한 디지털시계가 등장한다. 사람의 팔뚝에 저마다 새겨진 년/시/분/초로 표현되어지는 이 살벌한 생체시계는 익히 봐왔던 시한 폭탄마냥 거꾸로 흘러간다. 모든 숫자가 제로가 되면 생명이 끝나는 건 양반. 인간의 경제 활동이 “돈”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되어지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밥 한 끼, 커피 한 잔, 친구들과 퇴근 후 호프집에서 500CC 한 잔을 마셔도 몇 만원이 아닌 몇 분, 몇 시간으로 계산된다는 것이다.
생체시계가 "제로"가 되는 순간. 저렇게 객사하는 건 아주 당연시 되는 사회다.
빈익빈 부익부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현실세계 S그룹 모 회장 같으신 양반은 팔뚝에 새겨진 시계는 몇 천 년 정도 되는 것이고, 비정규직 최저 연봉을 받는 노동자는 몇 시간이 새겨진 시계를 가지고 있다. 몇 천 년 새겨진 양반은 도박판에서 백년 단위로 배팅을 하며 호기롭게 시간을 낭비하지만, 몇 시간을 팔뚝에 새긴 일용직 노동자는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황천길로 가는 시스템인 것이다. 더불어 이 생체 시계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인에게 강탈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강도가 총 들고 “꼼짝 마. 가진 돈 다 내놔!” 가 아닌 “꼼짝 마. 팔뚝 시계에 새겨진 시간을 다 내놔!"인 상황이다. 돈 다 주고 생명을 건질 수 있는 시추에이션이 시간 다 털리면 바로 저 세상 하직하는 무서운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살벌한 사회 속에 건실한 우리 주인공 총각이 우연히 삶을 포기하려는 억만장자를 도와주며 받은 몇 백 년을 가지고 수직적인 신분상승 후 세상을 다 뒤집어버리겠다는 일종의 임꺽정식 혁명을 이뤄내는 고루하며 상투적 줄거리는 그리 시선을 끌지 못한다.
"꾼 돈 갚어!"의 모습이 아니라 도망치는 두 선남선녀 주인공이 살기 위해 시간을 공유하는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SF적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와 전혀 다르지 않은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양극화. 빈익빈 부익부. 시간은 곧 돈. 몇 천 년의 시간을 차지한 소수의 사람들이 몇 년의 시간으로 삶을 위태롭게 살아가는 대다수를 지배하는 사회구조. 영화는 분명 SF라고 하지만 난 마치 리얼리티 사회고발 다큐멘터리를 보는 심정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영화 속 혁명이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 0%에 가깝다는 차이점 정도.
"딩동" 고객님의 시간 잔액은 1시간 14분 11초 되겠습니다. 다시 말해 1시간 14분 11초 동안 어떤 방법으로든 시간을 벌지 못하시면 바로 황천길 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