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타임 - 렌티큘러 없음
앤드류 니콜 감독, 아만다 사이프리드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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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왔다갔다 길바닥에서 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음악만 듣기도 뭐하고 이러 저리 주파수를 돌리다 보니 알게 모르게 뉴스와 시사 관련 이야기를 스피커를 통해 많이도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주 들려오는 단어가 머릿속에 인이 박혀 버릴 지경이다.

 

양극화.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이 단어. 이젠 낯설지가 않다. 중산층의 붕괴로만 표현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우리나라 사회에 전반적으로 골고루 퍼진 이 끔찍한 단어를 영화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만나버리고 말았다. 장르는 SF. 그리고 등장하는 배우들은 젊고 아름다운 남녀. 적당한 킬링 타임과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어떤 호러 영화보다 무섭게 느껴진다.

 

원스 업 온 어 타임. 겁나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근 미래. 인간은 유전자 조작으로 25세로 노화가 멈춘다. 그래 외모지상주의에 불노불사에 전신성형까지 불사하는 요즘 시대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 무시무시한 디지털시계가 등장한다. 사람의 팔뚝에 저마다 새겨진 년/시/분/초로 표현되어지는 이 살벌한 생체시계는 익히 봐왔던 시한 폭탄마냥 거꾸로 흘러간다. 모든 숫자가 제로가 되면 생명이 끝나는 건 양반. 인간의 경제 활동이 “돈”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되어지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밥 한 끼, 커피 한 잔, 친구들과 퇴근 후 호프집에서 500CC 한 잔을 마셔도 몇 만원이 아닌 몇 분, 몇 시간으로 계산된다는 것이다.

 

 

생체시계가 "제로"가 되는 순간. 저렇게 객사하는 건 아주 당연시 되는 사회다.

 

 

빈익빈 부익부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현실세계 S그룹 모 회장 같으신 양반은 팔뚝에 새겨진 시계는 몇 천 년 정도 되는 것이고, 비정규직 최저 연봉을 받는 노동자는 몇 시간이 새겨진 시계를 가지고 있다. 몇 천 년 새겨진 양반은 도박판에서 백년 단위로 배팅을 하며 호기롭게 시간을 낭비하지만, 몇 시간을 팔뚝에 새긴 일용직 노동자는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황천길로 가는 시스템인 것이다. 더불어 이 생체 시계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인에게 강탈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강도가 총 들고 “꼼짝 마. 가진 돈 다 내놔!” 가 아닌 “꼼짝 마. 팔뚝 시계에 새겨진 시간을 다 내놔!"인 상황이다. 돈 다 주고 생명을 건질 수 있는 시추에이션이 시간 다 털리면 바로 저 세상 하직하는 무서운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살벌한 사회 속에 건실한 우리 주인공 총각이 우연히 삶을 포기하려는 억만장자를 도와주며 받은 몇 백 년을 가지고 수직적인 신분상승 후 세상을 다 뒤집어버리겠다는 일종의 임꺽정식 혁명을 이뤄내는 고루하며 상투적 줄거리는 그리 시선을 끌지 못한다.

 

 

"꾼 돈 갚어!"의 모습이 아니라 도망치는 두 선남선녀 주인공이 살기 위해 시간을 공유하는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SF적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와 전혀 다르지 않은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양극화. 빈익빈 부익부. 시간은 곧 돈. 몇 천 년의 시간을 차지한 소수의 사람들이 몇 년의 시간으로 삶을 위태롭게 살아가는 대다수를 지배하는 사회구조. 영화는 분명 SF라고 하지만 난 마치 리얼리티 사회고발 다큐멘터리를 보는 심정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영화 속 혁명이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 0%에 가깝다는 차이점 정도.

 

 

"딩동" 고객님의 시간 잔액은 1시간 14분 11초 되겠습니다. 다시 말해 1시간 14분 11초 동안 어떤 방법으로든 시간을 벌지 못하시면 바로 황천길 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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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2012-02-1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ㅅ-걍..영화기만 하면 좋으련만.
나이먹어 일할 기회가 없어지면 어쩌나
가슴이 벌렁벌렁 할 때가 있어요..;

레와 2012-02-14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보았습니다. ㅡ.ㅜ

moonnight 2012-02-1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컥 무, 무섭습니다. ㅠ_ㅠ
극장 개봉했을 때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봤는데 꼭 봐야겠군요.

암튼,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참 예뻐요. +_+ (결론이 ;;;;)

반딧불,, 2012-02-1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면서 참 아쉽다 싶었어요. 좀만 더 잘 풀어냈으면 좋았겠다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계가 지나치게 분명한 아까운 영화. 정말 외면하고 싶은 현실..ㅠㅠ

sooninara 2012-02-15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정이나 처음은 좋았는데..
두남녀가 사랑놀이하며 시간 나눠주기 할 때부터는 그다지.ㅠ.ㅠ
양극화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긴했어요. 엄마가 시간오버되서 쓰러질때..
노동자가 쉬지 못하게 공장 돌아가게 하루치 시간만 일당으로 줄때..
이스탄불까지 11시간 비행기타면서 본 영화중에 하나입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영화 보다 지치면 자다가 갔네요.

머큐리 2012-03-1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고픈 얘기를 다 해주셨숩니다...^^
 
리얼 스틸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숀 레비 감독, 휴 잭맨 출연 / 월트디즈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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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과학의 발달로 스크린에 실사와 분간이 가지 않는 CG의 표현이 난무하는 요즘 아마도 사람들은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에 그리 큰 기대감을 갖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많이 봐왔던 로봇. 화려하게 변신을 하며 거대한 파워를 내뿜으며 초월적인 모습을 선보이곤 했다. 과유불급이라고 해야 하나 때론 지나치게 넘쳐나는 이런 표현들로 인해 영화의 재미가 반전되는 것 또한 요즘 현실이다. 다시 말해 영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이 날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것. 아마도 이런 변화무쌍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리저리 재가며 어떤 방향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이 영화는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트랜스포머로 대변되어지는 전지전능한 로봇들보단 조금은 과도기적 허술해 보이며 현실성을 곁들인 로봇을 등장시킨다. 더불어 휴머니즘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이기적이며 자기 멋대로인 아버지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 앞에 존재자체가 무의미했던 아들을 대치시키며 근사한 부성애를 완성시킨다. 아니 이걸로는 아직 부족하다. 인간에게 너무 지나친 휴머니즘은 식상한 소재일 수 있으니까. 오랫동안 인연을 끊고 지낸 아들과 아버지의 기적적인 소통은 이미 실베스터 스텔론 주연의 “오버 더 톱” 같은 영화에서 우려냈었으니까. 조금은 로봇에 집중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트럭을 모는 책임감 없는 아버지가 어느 날 자기 앞에 나타난 아들을 위해 세계 팔씨름 대회를 재패하는 이야기랍니다. 실베스터 스텔론의 발뚝 근육이 이야~~~아직 쓸만해... (쌍칼버전)

 

그래 드라마틱하며 조금은 기적과도 같은 인간승리, 아니 로봇승리 같은 요소를 첨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싸구려 B급 로봇이 최첨단 강력한 로봇을 뛰어넘는 부분은 어떨까. 차가운 금속피부와 끈적끈적한 윤활유와 마찰음 내는 기어와 기계 부품에 록키 발보아 같은 투혼을 불어 넣어주는 방법. 아톰이라는 B급 로봇이 제우스 같은 절대 강자를 통쾌하게 압도하는 카타르시스. 거기에 완성되어지는 부성애. 이걸 적당히 조율하면 제법 근사한 물건이 나올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솜씨 좋은 감독과 연기와 이미지가 좋은 배우, 특히 당돌한 아들 역엔 확실하지만 너무 얼굴이 알려진 아역은 제외한다.

 

영화 마지막 눈탱이 밤탱이 된 록키가 외치는 "에드리아안~~ 에드리아안~~"은 영화 속 가장 짧은 명대사가 아닐까 생각된다는..

 

이런 출중한 전략성으로 이 영화 리얼 스틸은 이런 각 부분의 영화의 장점을 발췌한 후 배합하여 근사한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나타내주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지나친 거대토끼를 낚겠다는 욕심을 버린 결과일지도 모른다.

 

동양인을 모욕하는 영화라느니, 서툴게 영어를 구사하는 유럽인들을 무시하며 미국인 만세를 외치는 영화라던지 같은 확대해석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오락 영화로써 들어간 돈(표값)과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면 이는 충분히 성공한 영화라고 보여진다.

 

고철 쓰레기장에서 우연히 득탬한 아톰이라는 로봇에 제대로 감정이입하는 아버지(휴 잭맨). 아들과의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며, 잃어버렸던 자신의 꿈(복서)을 대변해주는 매개체의 역활을 해준다. 리얼(?) 스틸이라는 영화 제목에서 리얼이란 금속 본연의 모습보단 아무래도 피와 살이 존재하는 그 이면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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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2-01-08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말에 알라딘 영화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 부분에 꼭꼭 표를 던져줬어요.
정말 영화 시간 내내 한눈 안 팔고 곧게 본 영화에요 :)

토토랑 2012-01-09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그러하단 말이지요.. 두 분의 강추에 힘입어.. 토토랑의 마음속에서 꼭 봐야할 영화로 상승합니다.

2012-02-09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라이브 - Driv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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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 이 영화가 칸이라는 스펙의 날개를 짊어지는 순간부터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더불어 영화는 극명하게 호불호로 갈릴 수밖에 없다. 이유는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폭력이 너무나도 솔직하기 때문이다.

 

산탄총(아무리 봐도 사슴 잡는 구경이 큰 벅샷으로 추정됨)에 날아가는 여자 머리 반쪽이나 예리한 면도날로 사람의 피부를 긋는 장면 등은 영화 속 특수효과와 연출이라고 하기에 우리의 일상 속 폭력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다 이런 류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바이블처럼 답습하는 샘 페킨파 감독의 오마쥬까지 충실히 복습한다.

 

범죄와 폭력의 세계와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한 순간에 끊어져버리며 걷잡을 수 없는 태풍의 눈이 되버리는 드라이브 '라이언 고슬링'

 

 

감독의 전작인 ‘발할라 라이징’에서 보여줬던 징그러운 폭력에서 발전한 모습 속엔 배우 ‘라이언 고슬링’ 존재한다. 영화바닥에서 저평가 되는 대표적인 배우 중에 하나인 그가 이 영화 한편에선 주류의 반열에 올라선다. 사람 목숨을 꺼트려버리는 살인이라는 행위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압권이다. 어느 액션스타들마냥 능숙하며 냉정한 총질, 칼질이 아닌 온몸으로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는 듯 자신에 의해 행해지는 잔혹한 행위를 필터 없이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결코 흥행에 성공할 영화로는 안보이나 칸 이라는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왜 감독에서 상을 줬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영화에서 표현되는 폭력의 세계는 충분히 익숙한 장면들이다. 하지만 똑같은 총질, 칼질에도 그 틀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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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1-12-14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이 별 넷을 주면 봐야 하는 영화인데. 음, 이거 별로일 거 같았는데 괜찮은가봐요.

Mephistopheles 2011-12-16 09:46   좋아요 0 | URL
호불호로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을 꺼에요. 영화의 성질상. 크로넨버그 감독의 "폭력의 역사" 를 재미있게 봤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음악이 꽤 좋습니다.

moonnight 2011-12-14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보고 싶은 영화들을 자꾸만 놓쳐요. 이 영화도 그 중 하나. 라이언 고슬링 연기칭찬많이 하던데, 메피님 좋다하시면 꼭 봐야겠어요. 디비디로라도. +_+;

Mephistopheles 2011-12-15 21:38   좋아요 0 | URL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는 꽤 솔직해요. 폭력을 행사하는 입장에서 어떤 가식이나 꾸밈이 없더군요. 방법보다 표현이 섬뜩한 연기는 아주 간만입니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The Lincoln Lawy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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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각지고 보기에도 둔탁해 보이는 링컨 콘티넨탈 한 대가 법원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흑인 기사에 링컨 차까지 대동한 변호사 믹은 오늘도 이 아바돈 같은 직장(?)에 출근하여 한 건 올리기 위해 입장한다.

언제나 그렇듯 그에게 수감자의 결백 유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어떻게 하면 검사와 거례를 성사시켜 변호인에게 유리하게 재판을 몰고 가 두둑한 수임료를 챙기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속칭 악덕까지는 아니더라도 법의 빈틈을 이용해 이윤을 추구하는 속물 변호사가 그의 지금 위치다.

어느 날 브로커는 근사한 왕건이를 물어다 준다. 수임료를 두둑하게 뽑아낼 수 있는 부동산 재벌의 아들이 길거리 여자와의 강간 폭행미수에 연루된 끈적끈적한 사건이었다. 의당 변호사가 그렇듯 그는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고 변호인에게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재판을 이끌어가기 시작한다. 검찰 측 증인에게 모욕을 주며, 무리한 정황 증거를 제시하는 검사를 박살내는 순서로 재판을 진행시킨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주인공 믹은 수상한 냄새를 감자하고 조금 더 깊게 자신이 변호하는 변호인에 대해 접근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한 사건은 점점 꼬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조사원은 살해되고 지난 사건에서 일으킨 자신의 과오가 드러나면서 생각보다 심각한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변호사는 변호인에게 불리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법적 강제 조항 때문에 그는 발을 빼고 싶어도 뺄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린다.

선택은 두 가지가 가능해 보인다. 사악한 피고의 뜻대로 조종되어 무죄방면 시킬 것인가. 자신의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부러트리는 강수를 둘 것인가. 그런데 이 느물느물하고 꽤 똘똘한 변호사 믹은 가장 위험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이용해 상황을 일시에 반전시킨다.

이렇게 법정을 주제로 한 영화들은 흥미진진하다. 근육질의 남자들이 총탄을 날리며 칼을 휘두르며 거대한 화염과 폭발이 일어나지 않아도 사람의 세치 혀에서 나오는 언어들의 조합은 액션 영화들을 능가하곤 한다. 증거의 공방이 이루어지고 설전이 오고가는 중 결정적 요소 하나로 상황은 역전되며 그리고 억울하게 누명쓴 사람은 광명을 찾았다. 정도로 요약되는 기타 법정영화들은 이렇게 정의를 강조하고 사법체계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제대로 삐딱하다. 주인공은 속물 그 자체이다. 그렇다고 ‘데블스 에드버킷’에 나오는 뼛속까지 사악한 악마 같은 변호사는 아니다. 물질을 탐닉하고 부를 추구하나 마음 한구석엔 자신의 변호로 인해 혹시나 무고한 사람이 억울한 판결을 받을까 전전긍긍하는 나약함까지 내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참 비겁하고 쪼잔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런 그가 지능적인 범죄자의 위협 속에 한마디로 뚜껑이 열리면서 대반전의 역전을 선사하는 내용을 가득 담아주고 있다. 기존의 법정 영화들이 보여줬던 법원이라는 한정적 무대에서 확정적인 증거와 화려한 언변으로 상황을 뒤집는 모습이 아닌 속칭 물밑 작업으로 피고이자 살인범인 변호인을 확실히 보내버린다. 이런 특별한 차별성만을 본다면 이 영화는 꽤 즐겁다. 하지만 더불어 어쩔 수 없는 지독한 괴리감은 감내해야 할 것 같다. 유전무죄라는 극악의 상황에 몰린 인질범이 외치던 외마디 비명이 아닌 독보적인 사실 그 자체로 인정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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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6-20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네개 주셨네요. 안 그래도 이 영화 보러 갈까 고민 중인데.
평이 좀 갈리더라구요.

음, 요즘 TV의 시티 헌터 보니 시원하더만요~
본방 사수 최고의 사랑 때문에 재방 찾느라 힘빼지만 말이죠.

Mephistopheles 2011-06-21 09:22   좋아요 0 | URL
별..평점은...그다지...중요하지 않아요...^^
(사실 저 별점 주는 건 이해가 안가는 1人)

배우들은 분명 좋은데 말입니다. 내용도 좋고....뭔가 시간을
압축한 티는 납니다..

프레이야 2011-06-20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면에서 확실히 비현실적이네요.
저도 내일 보러 갑니다~^^

Mephistopheles 2011-06-21 09:23   좋아요 0 | URL
요즘 우리나라 시국에 법을 집행하시는다는 분들 보면..
이 영화는 장르상 거의 판타지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ㅋㅋ

루쉰P 2011-06-2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원래 잘 안봐서...하지만 세치의 혀에서 나오는 언어의 조합이라는 문장은 너무 좋아요. ^^ 소름 돋아요. ㅋ

Mephistopheles 2011-06-24 09:36   좋아요 0 | URL
전 소름 돋는다는 루쉰님의 댓글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ㅋㅋ

루쉰P 2011-06-27 12:59   좋아요 0 | URL
흐흐흐 감사합니다. 뭔가 해낸 이 느낌!!!

2011-07-03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4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삼국지: 명장 관우 - The Lost Bladesma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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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초반부에 원소와 조조의 대립했던 시기. 아직 세를 넓히지 못한 유비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정착을 못했을 때, 유비 휘하 걸출한 영웅이라 칭송을 받는 관운장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앙숙과도 같은 조조의 휘하에 기거했었나 보다. 그의 인품에 반한 조조는 계속해서 회유를 거듭했으나, 이(利보)다 의(義)를 따지는 관운장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의형이며 군주인 유비의 거취를 확인함과 더불어 자신의 곁을 떠나려는 관운장을 아쉽게 보내주는 조조와는 달리 그의 휘하 장수들은 생각이 달랐나 보다. 살려서 보내놓으면 뒤탈이 일어날 것이 뻔할 뻔자. 그리하여 관운장이 지나치는 다섯 군데의 관문을 지키는 장수들을 시켜 그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지의 관운장 에피소드 중 유명한 오관 돌파의 이야기이다. 무예가 출중한 그는 결국 막강한 조조의 장수(공수, 맹탄, 한복, 변희, 왕식, 진기)를 차례차례 격파하고 유비의 품에 성공적으로 돌아간다.

역사적 사실성의 진위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삼국지를 비롯한 모든 고대 이야기나 신화는 어느 정도 부풀려 있는 것이다 보니. 남자들 군대 다녀온 이야기보단 덜하겠지만 어느 정도 속칭 ‘뻥’이 결부된 이야기일 것이다. 사실 삼국지연의 오관문 돌파에 등장하는 조조 휘하 장수들 중에는 가상의 인물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조금은 부풀린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제대로 각색해버리는 무모함을 보여준다. 한 손엔 청룡 언월도를 꼬나 쥐고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춧빛 근엄한 얼굴을 한 기골이 장대한 무인 관우의 모습을 전면으로 내세웠으나 또 다른 인물에 눈이 간다. 



 기란 이라는 여인을 등장시켜 지금까지의 관운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시도를 선보인다. 여인의 신분 역시 범상치 않다. 식을 올리지 않은 관계지만 자신의 의형이며 군주인 유비의 명목상 첩실이라는 설정. 그리고 그녀와 관운장은 같은 마을 동향 사람으로 관운장이 흠모해 왔던 여인이라는 배경과 이를 이용해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조조의 모략까지 .의례 삼국지를 배경으로 삼은 중국 영화는 정형화된 액션 무림 활극일 것이다. 란 예상을 살짝 빗겨나가며 의외의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이렇게 특화된 소소한 설정과 관운장을 열연한 견자단의 액션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이 영화의 주제를 찾게 된다.

오히려 시각적으로 자극적이지 않지만 계속 곱씹게 만들어주는 관운장을 회유하기 위해 보여주는 조조의 행동과 말.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독대는 시대가 다른 현 시기에 적용 시켜도 전혀 무리가 없는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형식과 틀을 벗어나 실리로써 민생과 나라를 다스리려는 조조와 의와 예를 중시하는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관우는 사사건건 의견대립을 일으키며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칭 소인배를 칭하며 대인배의 모습을 행동으로 옮기는 조조의 모습이나 의와 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간적인 나약함까지 감내하는 관우의 모습에선 어쩌면 이상적일지도 모를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를 살짝 엿봤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마지막 관우의 장례를 치르는 조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여운이 오래간다.

‘그는 양의 탈을 쓴 늑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의 죽음에 유비, 공명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 또한 그 수많은 양 중에 하나일 뿐.’

억지스런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양의 탈을 쓰고 관우 같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늑대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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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6-10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도 이 영화를 봤는데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은 못 했어요. 다만 견자단의 무술에 헉! 헉! 대며 액션만 보는 만행을 저질렀으니 말이에요.
제가 삼국지로 관운장의 모습과는 조금 흡사한 듯 한데 견자단의 키가 그리 크지를 못 해서 완벽한 재현은 못 했군이란 평가만 했던 찌질한 감상 뿐이었죠. 흠...

다만 조조 같은 인물이 현대에 재평가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 조금 불만이에요. 관우, 유비라고 하는 이상주의자가 조조라는 현실주의자에게 패배했다는 것이 삼국지에 대한 저의 가장 큰 불만이거든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요. ^^

Mephistopheles 2011-06-11 21:49   좋아요 0 | URL
그런데 말이죠 루쉰님..만약. 유비가 삼국을 통일하고 패권을 차지한 후 자기 생각대로 정치를 펼쳤다면....후세에 그를 칭하길 이상주의자...라고 했을까요. 이상과 현실은 반어법 같은 느낌을 받지만 사실 크게 다르진 않을 껍니다.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조조와 관우가 생각은 틀려도 목적은 같으니까요..^^

루쉰P 2011-06-12 09:58   좋아요 0 | URL
흠..그렇군요. 하기사 조조와 관우의 대화를 집중해서 듣지를 못 했으니 말이죠. 유비가 삼국을 통일한다면 이란 생각은 못 해본 것 같아요. 역시나 권력을 잡으면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아..정말 너무 어려운 인생살이...

moonnight 2011-06-1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운장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에 비해, 견자단은 실망스러워서 -_-; 영화 안 봤어요.
삼국지 등장인물 중에 관운장이 제일 멋진데. (라는 아주 얄팍한 감상;)

Mephistopheles 2011-06-11 17:45   좋아요 0 | URL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골이 장대한 그 관우와는 거리가 있습니다만. 견자단이라는 배우가 단순히 몸만 쓰는 액션배우라는 이미지는 사실 많이 벗어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재미있지만 나름 관우의 인간적인 고뇌에 대한 내면연기를 뛰어나게 했습니다..^^

BRINY 2011-06-11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에 동의요~
조조 역의 배우도 좋았지만('송가황조''붉은 수수밭'등에 출연하신 유명배우시더군요. 그 배우가 구사하는 중국어의 울림이 멋졌습니다), 이 영화 보고 조조와 그 한나라 황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Mephistopheles 2011-06-11 17:47   좋아요 0 | URL
이 양반 꽤 유명하여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조조라는 인물에 대해 여러가지 평가가 나오지만, 이 영화에서 어쩌면 조조라는 인물의 극단적인 순기능에 대해서 많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어쩌면 덩 샤오핑이 주창했던 '흑묘백묘'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마립간 2011-06-11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지 못했으나 영화평이 영화를 압도할 것 같아 영화를 보기가 두렵군요. ; 정몽주와 이방원이 연상되기도

Mephistopheles 2011-06-11 17:49   좋아요 0 | URL
제 영화평은 사실 허접이고요. 그리 큰 영향을 주진 못할 것 같습니다..^^ 정몽주와 이방원. 비슷한 분위기에요. 하여가와 단심가. 근데 역사적인 인물을 액면 그대로 평가하긴 좀 뭐하지만 영화 속에서 조조는 꽤 대인배로 근사하게 나옵니다.

산사춘 2011-06-1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벽대전도 글코 요샌 유비보다 조조가 더 입체적이신가 보아요.
멋진 배우들만 맡네요.

Mephistopheles 2011-06-14 12:3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요즘 중국영화의 내용을 슬쩍 삐딱하게 보면 조금은 노골적인 '중화사상'이 짙게 깔려 있기도 해요. 억지일진 모르겠지만 항일적 이미지가 강한 영춘권 계승장 엽문이나 가공의 인물인 정무문의 진진 같은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모습,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절대 개봉할리 없는 중국 공산당 대놓고 선전한 영화 '건당위업' 같은 영화를 보면 그 성격이 좀 짙죠..^^

어저면 유비보다 조조가 그들 입맛에 맞는 인물일지도 모르고요.